XI.강줄기 따라걷기/보통천 따라 걷기

보통천 따라 걷기2(은행천/보통천 합류점-갯골습지센터-소래포구)

시인마뇽 2025. 12. 14. 21:16

탐방구간: 은행천/보통천 합류점-갯골습지센터-소래포구

탐방일자: 2025. 12. 13()

탐방코스: 신현역-은행천/보통천 합류점-갯골습지센터-방산교-소래포구-월곶역

탐방시간: 136-1636(3시간30)

동행       : 나 홀로

 

 

  보통천을 따라 걷는 길에 시흥갯골생태공원을 둘러보았습니다. 2012년 국가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시흥갯골생태공원은 경기도 유일의 내만갯골로 옛 염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자, 자연 생태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 염생식물과 각종 어류 및 양서류가 서식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시흥시민들이 갯골과 연결된 물길을 회복해 보전하려고 많이 애써온 덕분에 오늘의 시흥갯골생태공원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덕분에 멸종위기 야생생물들도 시흥갯골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시흥갯골에서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큰기러기, 세호리기, 알락꼬리마도요, 독수리, 검은머리갈매기, 잿빛개구리매 등 멸종위기에 놓인 새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갯골이 생태공원으로 조성된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시흥갯골을 가장 많이 찾아오는 새들은 도요-물떼새류와 오리류입니다. 도요-물떼새들은 봄에는 번식지로, 가을에 월동지로 이동하는 도중에 갯골에 들러 영양을 보충합니다. 청둥오리, 황오리 등 오리류는 시베리아 등 추운 지역 에서 여름을 보내고, 시흥갯골에서 겨울을 보냅니다. 그중 흰뺨검둥오리는 계절의 변화에 상관없이 일 년 내내 시흥갯골을 서식처로 살아가는 새라고 합니다.

 

  시흥갯골이 생태공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데는 갈대밭이 한몫 단단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태공원의 갈대밭은 70년대 논으로 개간되어 2000년까지 농사를 짓던 들판이었습니다. 그 후 공원으로 편입되어 현재는 갈대를 주제로 한 넓이 약 79m2, 길이 2Km의 생태문화팀방로로 바뀌었습니다. 이곳 생태공원에서 색생하는 식물은 갈대와 모세달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산조풀, , 칠면초 등이 토양과 수분 · 염분의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갯골과 갈대발은 풍부한 먹잇감과 좋은 서식 장소여서 사계절 새들의 보금자리로 이용되고 있으며, 특히 가을에서 이른 봄까지 오리류의 기러기 등 겨울 철새 수만 마리가 찾아와 장관을 이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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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접하고 보통천의 2구간 탐방계획을 접었다가, 인터넷에서 2시간 간격으로 예보되는강우량이 10mm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 정도의 비라면 우산을 받쳐 들고 걷는 것도 운치 있겠다 싶어 조금 일찍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산본 집을 나섰습니다.

 

  136분 서해선의 신현역을 출발했습니다. 신현역에서 하차해 엿새 전에 걸었던 길을 우산을 받쳐 들고 되돌아 걸어 은행천/보통천 합류점으로 향했습니다. 겨울비로 길바닥이 질펀해져 혹시라도 미끄러져 넘어질까 조심해서 걸었습니다. 조방죽 정원을 지나 은행천/보통천 합류점에 도착한 시각은 신현역 출발 20분 후인 1326분이었습니다. 이 합류점에서 은행천의 물을 받아들인 보통천은 시멘트 다리를 지나 S자를 그리며 남쪽으로 흘러내려 가다 이내 방향을 서쪽으로 바꾸어 흥부배수갑문에 이르렀습니다.

 

  배수갑문이란 하구의 담수호나 간척지처럼 해수와 차단된 구역에서 홍수 때는 물을 빼내고, 평상시에는 바닷물의 유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인공구조물을 뜻합니다. 흥부배수갑문은 다가가는 길이 나 있지 않아 먼발치에서 사진만 찍었습니다. 수문이 9개나 되는 흥부배수갑문은 신현역 앞 사거리에서 보았던 은행천갑문보다 훨씬 커 보였습니다. 여기서부터 시흥갯골생태공원이 시작되는데 한창 공사 중이어서 생태공원 안으로는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갯골 우안의 비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길 옆에 자리한 오두막집 같은 갯골습지센터를 들른 것은 안내자료를 얻기 위해서였는데, 해설사분이 친절하게 여기 생태공원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 이 글을 쓰는 데 많이 도움되었습니다. 이분이 안내해 준 대로 갯골 우안의 넓은 길을 따라 걷다가 공원 안의 흔들전망대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비만 내리지 않았다면 이 전망대를 꼭대기까지 올라가 주위를 조망했을 텐데 계단 길이 미끄러울 것 같아 그냥 지나쳤습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저 멀리 월곶포구와 소래포구, 그리고 넓은 옛 염전이 보이는데, 갯골과 칠면초 및 갈대 군락들이 잘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고 하다고 안내글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갈대밭 벌판에 휭하니 홀로 서 있는 나선형 계단의 전망대를 보자 당장이라도 이 전망대가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1431분 모새달다리를 건넜습니다. 갯골습지센터에서 15분 남짓 걸어 다다른 모세달다리를 건너 시흥갯곡 좌안길로 들어섰습니다. 깊숙이 패여 있는 갯벌의 골짜기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관찰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예전에는 저 깊숙한 갯골을 통하여 새우 · 조기배 등이 포리포구로 들이와 소래포구보다 더 큰 파시를 이루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이 소래포구에 모아져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던 아픈 과거를 간직한 곳이라고 모세달 다리 입구 안내판에 상세히 적혀 있는 안내문을 읽고 나자, 여기 시흥갯골이 어떻게 변화해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따라 걸은 안성천과 반월천은 바로 서해로 흘러드는 서해계의 하천입니다. 그럼에도 두 하천의 끝점에서 갯벌, 갯골이나 포구를 보지 못한 것은 이들 하천 하구에 방조제가 축조되어 커다란 인공호수가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보통천의 끝점에 설치된 배수갑문은 하구에서 안쪽으로 먼 곳에 설치되어 있어 그 사이의 갯골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4년 전 파주의 공릉천을 따라 걸을 때 교하의 한 갑문에서 한강과 만나는 송촌리 합류점 사이의 구간에서 갯골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본 갯골은 길이가 짧아 여기 시흥갯골에 비할 바는 못되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골프장과 시흥갯골 사이에 나 있는 갯골 좌안의 작은 도로를 따라 걸으며 저처럼 빗길에 산책을 나선 여러 분들을 만났습니다. 지나가는 한 분에 물어 지금은 갯골이 바닥을 내보이는 것은 썰물 때라서 그런 것이고 미룰 때는 갯골의 골짜기가 바닷물로 꽉 찬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갯골 좌안길을 따라 얼마간 진행하자 방산대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다리를 밑으로 지나면 소래포구가 멀지 않을 것 같아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공사로 방산다리 밑으로 지나는 길이 막혀 왼쪽으로 돌아가다 길바닥에 방치된 그물에 발이 걸려 앞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양 무릎이 까지고 옷이 흙탕물에 더럽혀져 난감했습니다. 다리 밑으로 가서 고여있는 빗물로 옷에 묻어 있는 흙을 대충 닦아낸 후 갯골 따라 걷기를 다시 이어간 시각은 1520분 경이었습니다.

 

  방산대교를 출발해 갯골 좌안길을 따라 직진하자 장수천과 신천이 만나 소래포구로 흘러드는 합류점이 보였습니다. 소래교와 소래대교를 차례로 지나 다다른 육교를 건너 소래포구 종합어시장 안의 한 카페로 들어가 따뜻한 커피라떼 한잔을 마시고 나자 몸에서 온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카페의 종업원 한 분이 친절하게도 흙탕물로 더럽혀진 옷을 수건으로 닦아주고 구부러진 우산살을 펴서 바로잡아 주어 고맙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무릎이 아파 소래포구를 돌아보려는 생각을 바꾸어 곧바로 육교를 건너 월곶역으로 이동했습니다.

 

  16시36  월곶역에서 보통천 탐방을 모en 마치고 수인분당선을 타고 귀가 길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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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들른  인천시 남동구의 소래포구는 제가 기억하기로는 19921월 겨울방학 때 집사람 및 두 아들과 함께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소래포구를 찾아간 것은 초등학생인 두 아들에게 수원과 인천을 연결하는 수인선의 협궤열차를 태워주고, 포구에 자리한 전통적인 어시장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인천의 송도와 경기도 수원 사이에 부설되었던 수인선은 수원과 여주를 이어주는 수여선과 마찬가지로 협궤 열차가 운행되었던 노선입니다. 1968년 여주에서 탔던 수원행 협궤 열차는 석탄을 태워 내는 증기로 운행하는 증기기관차였습니다. 1992년 수원에서 인천 가는 수인선의 협궤열차는 디젤기관차로 기억하고 있는데, 수인선으로 여행하기는 그때 가족과 함께 탄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1935년에 착공해 1937년에 개통한 사설철도 수인선이 주로 실어 나른 것은 경기만(京畿彎)의 소래(蘇來) · 남동(南洞) · 군자(君子) 등의 염전지대에서 생산되는 소금이었습니다. 경기도 내륙 지방에서 생산되는 미곡을 수송할 목적으로 1931년에 개통된 같은 회사의 수려선(水驪線)에 수인선을 연결함으로써 미곡을 인천항까지 철도로 운송할 수 있었습니다. 해방 후 미곡운송이 줄어들면서 수려선은 1972년에 폐선되었고, 염전이 폐쇄되면서 수인선은 1995년 영업을 중지했습니다.

 

  소래포구가 수도권의 대표적인 재래어항이 된 것은 1974년 인천내항 준공 이후, 새우잡이 소형어선들이 정박이 가능한 소래로 포구를 옮기면서 새우 파시로 발전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1992년 가족들과 함께 소래포구를 찾아가 본 것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매시장에서 거간꾼들이 손짓을 하며 생선들을 입찰하는 생생한 삶의 장면이었습니다.

 

  그때도 겨울이었지만, 이번처럼 비가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어시장에서 생선회를 시켜 가족들과 함께 먹었는데, 이번에는 카페에 홀로 앉아 커피를 들면서 25년 전에 세상 言 떠난 집사람을 불러내 그때를 회상했습니다. 33년 만에 다시 찾은 소래포구에 내려앉기 시작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추억을 불잡고 끝내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은 제가 25년 간 혼자 살면서 세월에 많이 부대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내리는 저녁에 카페에 홀로 앉아 포구를 바라보며 먼저 간 집사람을 생각하고 있노라니 밀려오는 외로움을 안으로만 새기기가 힘들어 이렇게 글로 옮겨 놓는 바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