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서호저수지 축만교-벌말교-서호천/황구지천 합류점
탐방일자: 2025. 12. 28일(일)
탐방코스: 화서역-축만교-벌말교-수인선 옛 다리-평리교-서호천/황구지천 합류점
-솔대교-오색천역
탐방시간: 14시10분-17시20분(3시간10분)
동행 : 나 홀로

나흘 만에 다시 나서 서호저수지에서 서호천/황구지천 합류점에 이르는 서호천의 마지막 구간을 따라 걸었습니다. 서호천의 전장은 11.5Km인데 지난 번에 발원지인 파장저수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이목2교에서 시작해, 제가 따라 걸은 서호천 길은 11.5Km에 조금 못 미칩니다.
서호천을 따라 걷다가 제방에 세워진 안내판에 서호천을 소개하는 글이 실려 있어 여기에 옮겨 놓습니다.
“경기도 수원시의 북쪽 파장동에서 발원하여 서호를 거쳐 장지동에서 황구지천과 합류하는 하천이다. 중간에 이목천 · 송죽천 · 매산천 등의 소하천이 유입하며 중간중간에 파장저수지 · 일월저수지 · 서호저수지 등의 저수지가 있다. 얼마 전까지는 서호천 유역에 많은 농경지가 있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시가지나 주거지로 바뀌었다. 이름은 서호저수지에서 따온 것이라 추정된다. 서호는 농업진홍청 부근에 있는 저수지로 원래 축만제(祝萬堤)라고 불리었으나 팔달산 기숙에 있는 읍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호(西湖)라고도 불리었다고 한다. 옛 명칭은 사근천(沙近)川)으로 추정된다.”
안내문에 적혀 있는 몇 가지는 카카오맵에서 찾아본 것과 달랐습니다. 서호천의 지류로 소개된 하천 중 이목천과 매산천은 카카오맵에서 확인했지만, 송죽천은 찾지 못했습니다. 서호천과 황구지천이 만나는 합류점이 안내문에는 장지동으로 적혀 있는데, 카카오맵에는 고색동으로 나와 있습니다. 카카오맵에 나와 있는 만석거에서 흘러 내려오는 영화천이 송죽천인지는 더 알아보고자 합니다.
서호천에서 가장 풍광이 뛰어난 곳은 서호저수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은 이 저수지 가에 정자 항미정(杭美亭)이 세워진 것입니다. 1831년 화성유수 박기수가 지은 항미정을 1908년 순종황제가 융건릉을 참배하러 가는 길에 들른 것을 보아도 언덕에 세워진 항미정에서 내려다보는 서호의 풍광이 빼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하니 박기수가 “서호는 항주의 눈썹고 같다”는 소동파의 시구를 따와 항미정으로 이름 지었을 것입니다. 항미정을 둘러보고 아쉬웠던 점은 서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가 적힌 편액이 하나도 걸려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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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천의 남은 구간을 마저 따라 걷고자 산본 집을 나서 전철을 타고 화서역으로 이동했습니다. 날씨가 풀린데다 바람이 불지 않아 천변을 따라 걷기에 딱 좋았습니다.
14시10분 화서역을 출발했습니다. 고층 건물의 디에스컨벤션이 잘 보이는 지름길을 걸어 서호천에 이르자 한가로이 유영하는 물오리들이 보였습니다. 새싹교를 건너 서호저수지를 바라보며 의아했던 것은 지난 번 저수지를 가득 메웠던 오리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였습니다. 이내 편대를 이루어 하늘을 날고 있는 청둥오리들을 보고 아직은 시간이 일러 그때처럼 낙조를 관망할 수 없어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미정을 들러 서호를 조망한 후 서호저수지의 수문이 설치된 축만교를 출발했습니다.
14시37분 축만교를 출발해 서호천 우안의 천변길로 내려섰습니다. 수인로가 지나는 넓은 다리 서둔교를 밑으로 지나 우안길을 따라 걷다가 징검다리를 건너 좌안 길로 들어섰습니다. 얼마 후 다시 우안길로 들어선 것은 한쪽 길만 걷기에는 천변 길이 단조롭기 때문이었습니다.
천변에 세워진 ‘서호천비점오염저감시설 안내도’를 보고 수질정화를 위해 애쓰는 당국의 노고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비점오염저감시설」이란 “상가, 도로, 주택 등으로서 불특저장소에서 불특정하게 배출되는 오염농도가 높은 초기 우수 및 합류식 하류 월류수를 여과제를 통하여 오염물질을 줄이기 위하여 설치된 시설‘이라고 적혀 있는데, 지난 번에 보았던 「초기우수처리시설」의 소개 글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수질정화의 원리가 둘 다 같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농대교를 지나 오른 쪽으로 보이는 학교가 서호중학교라는 것은 ’서호중BC야구단 우승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알았습니다. 천변 길을 걷다보면 현 위치가 확인되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자주 있는데 플래카드의 문구처럼 위치를 알 만한 단서를 보게 되면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서둔가동보를 지나 올 들어 처음으로 천변에 걸쳐 꽁꽁 얼어 있는 얼음을 보자 이미 동지가 지나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음을 알았습니다.
15시15분 벌말교를 지났습니다. 다리 밑을 지나면서 다리 이름을 몰라 궁금한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런 때면 가끔 도로 위로 올라가 다리 이름을 확인하곤 했는데 이번에 확인한 다리는 권선로가 지나는 벌말교였습니다. 다리 건너 서호천 좌안에 위치한 SKV1 모터스가 엄청 커 보였습니다. 도로 위로 올라선 김에 천변으로 내려가지 않고 양변에 큰 키의 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제방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제방길은 그리 길지 않아 이내 끝났고 이어지는 차도를 따라가 사거리에 이르자 길 건너에 자리한 HD Self 주유소가 보였습니다. 사거리를 건너 이내 다다른 수원제일공업사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직진해 다시 서호천변에 이르자 폭이 좁은 철교(?)가 저를 맞았습니다. 33년전 가족들과 함께 타고 간 수인선 열차가 지나갔을 이 다리 앞에 수인선을 소개하는 글이 실린 안내판이 서 있어 꼼꼼히 읽었습니다. 안내글을 작성한 삼남길안내경기옛글센터는 수인선을 조선의 곡식을 일본으로 반출하는데 사용되어 민족의 아픔이 서린 철도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서부터 고색동의 서호천 끝점까지는 우안의 제방길을 쭉 따라 걸었습니다. 제방 길가에 차들이 즐비하게 서 있어 어수선한 천변을 지나 삼거리에 이르자 서호천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어 반가웠습니다.
16시19분 서호천이 황구지천으로 흘러드는 합류점에 다다랐습니다. 삼거리에서 얼마간 걸어가자 하천 건너 자리한 수원비행장의 울타리 벽과 초소가 보였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1992년 수인선을 탔을 때 기차에서 이 비행장을 보았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서호천의 물 흐름을 카메라에 옮겨 담으면서도 신경이 쓰인 것은 건너 편 군비행장이 같이 찍히는 것이 아닌가 해서였습니다.
선두기업을 지나 오던 길을 뒤돌아보자 북쪽 먼발치로 한남정맥의 우람한 모습이 눈에 잡혔습니다. 제가 저 한남정맥을 종주한 것은 20년 전의 일로, 그때는 오로지 산줄기를 종주하는데 몰두해 이들 산에서 발원한 하천이 무엇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백두산목재를 지나 평리교에 이르자 공군예비군훈련장 제27예비단 안내판이 보였습니다. 저녁 기운이 역력해지자 모래톱이 보이는 서호천이 더욱 정감있게 느껴졌습니다.
기안교에 다다라 바로 아래로 자리를 옮긴 것은 서호천/황구지천 합류점을 보다 가까이에서 사진 찍고 싶어서였습니다. 합류점에 이르면 두 하천의 물이 서로 반가워하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합류점은 2023년1월1일에 황구지천을 따라 걸을 때 한번 왔던 곳이어서 저 또한 반가웠습니다.
17시20분 오목천역에 도착해 서호천 따라 걷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서호천/황구지천 합류점에서 황구지천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지난 번에는 황구지천의 우안길을 따라 걸어, 이번에는 건너 편의 좌안길로 들어섰습니다. 이 길은 바로 옆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인지 우안길보다 훨씬 정비가 잘되어 걷기에 좋았습니다. 황구지천벚꽃길은 봄이 되면 꽤 많은 상춘객들이 벚꽃을 보려고 찾아올 것 같습니다.
솔대교를 지나고 목장교를 건너서부터 오목천역까지는 카카오맵의 안내를 받아 길을 찾아 갔습니다. 골목길을 지나고 고갯길을 넘어 오목천역에 도착하자 이내 수인선 전철이 도착해 귀가 길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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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수원시에 첫발을 들인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인 1968년 여름입니다. 고교동창과 둘이서 동해안을 여행한 후 귀경길에 여주의 신륵사를 둘러본 후 여주역에서 수여선을 타고 가 수원시의 화성역(?)에서 하차했습니다. 그때 제가 탄 기차가 흔히 탈 수 있는 표준궤열차가 아닌 협궤열차였습니다. 지금은 사라져 우리나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지만, 그때는 제가 탔던 수원-여주 간의 수여선 뿐만 아니라 수원-인천 간의 수인선도 협궤였습니다. 수인선 협궤 열차는 1992년 겨울 가족들과 함께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소래포구를 찾아갔을 때 딱 한 번 타보았습니다.
철로는 궤간, 즉 선로의 폭에 따라 표준궤와 협궤, 그리고 광궤로 나뉩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표준궤는 궤간이 1,435mm이고, 일부 국가나 특정 노선에 사용되는 협궤는 그 궤간이 1,067mm이며, 러시아나 스페인 등 일부 국가에서 사용되는 광궤의 궤간은 1,520mm나 1,668mm 등으로 더 넓습니다.
수여선과 수인선 모두 표준궤 대신 협궤로 건설한 것은 협궤가 건설 및 유지비용이 훨씬 적게 들어서였습니다. 철도로 실어 나를 운송량이 굳이 비용이 많이 드는 표준궤가 아니어도 협궤로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수여선은 1930년에 개통되어 1972년에 폐선되었고, 수인선은 1937년 개통되어 1995년에 영업을 중지했습니다. 수인선은 2004년 이후 협궤를 표준궤로 바꾸어 복선전철로 재건설하여 광역전철노선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제가 타 본 수여선 열차는 석탄을 태워 내는 증기로 운행하는 증기기관차였고, 수인선 열차는 디젤기관차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서호천을 따라 걷는 길에 33년 전 가족들과 함께 타고 여행했던 수인선의 흔적을 보았습니다. 그때의 협궤철로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조성한 자전거길을 따라 걸어 옛날에 협궤열차가 지났을 좁은 다리를 보았습니다. 수인선의 역사를 알려주는 소개 글이 ‘삼남길안내 경기옛길센터’에서 세운 안내판에 적혀 있어 여기에 옮겨 놓습니다.
“추억의 수인선
민족의 아픔이 서린 철도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의 곡식을 반출하던 눈물의 철도
수인선은 수원과 인천을 잇는 옛 철도로 1937년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 소유의 사립 철도로 세워졌습니다. 수인선은 같은 회사 소속의 수여선(수원-여주)을 인천항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서해바다의 풍부한 소금이 바로 이 수인선을 통해서 내륙지방으로 수송되었고, 내륙의 곡식도 수인선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일제강점기의 산미증산계획에 따라 조선의 곡식이 일본으로 대량 반출될 때 사용된 것이 바로 이 수인선이니 이 철로에는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는 셈입니다. 1945년에 해방이 되고서야 수인선은 비로소 조선의 곡식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악역을 맡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후 도로교통이 급격하게 발달함에 따라, 수인선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었고 그렇게 우리나라 유일의 협궤열차였던 수인선은, 1995년12월31일을 마지막으로 그 운행을 중단하였고 더 이상 기차가 달리지 않게 된 철길은 일부는 자전거 길로 이용되거나 관광명소로 활용되는 등 그 흔적만 남은 채 우리 삼남길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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