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광교저수지 광교쉼터-화홍문-매교역
탐방일자: 2026. 1. 4일(일)
탐방코스: 광교저수지 광교쉼터-광교공원-수원시상수도사업소-용연
-화홍문-동남각루-수원영동시장입구-세천교-매교역
탐방시간: 14시20분-17시15분(2시간55분)
동행 : 나 홀로

수원시를 관통해 남북으로 흐르는 황구지천, 서호천, 수원천과 원천리천 중 대표할 만한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수원천을 꼽고자 합니다. 그 까닭은 수원천이 수원의 역사적 중심지인 화성 안을 흐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천변의 안내판에 소개된 아래의 안내문을 읽으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수원천은 경기도 수원시의 북쪽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광교저수지를 거쳐 영화동, 북수동, 팔달로, 매산로 등 수원의 구시가지를 관통한다. 이후 권선구 대황교동에서 황구지천에 합류하는 준용하천이다. 발원지에서 광교저수지에 이르는 데까지는 광교천이라고 따로 부른다. 구시가지 내 수원천 주변에는 북수문(화홍문), 남수문 그리고 방화수류정 등의 문화재가 있다. 정조가 화성을 축성할 때 이들 건축물뿐만 아니라 수원천변에 버드나무를 심는 등 수원천의 자연 경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 혼적이 뚜렷하다. 수원천이 지나는 세류동에 정조 때 세운 상류천(上柳川) · 하류천(下柳川)이라는 도로 표지석이 있다. 이를 통해 옛 이름은 유천(柳川)임을 알 수 있다.”
제가 수원천을 수원시의 대표적인 하천이라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하천 상류의 광교저수지가 수원시의 상수도원으로 이용되기 때문입니다. 수원시 상수도사업소는 수질정화를 위해 이 저수지에 인공지능수질정화장치인 에코 봇(Eco-Bot)과 부력수차수류확산장치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에코 봇(Eco-Bot)이란 “녹조가 심한 곳으로 장지가 스스로 이동하면서 수중펌프를 이용해 녹조를 제거하고 수질을 수시로 측정하는 친환경 수처리시스템”으로 “온도, pH, 용존산소, 탁도, 전도도와 남조류 등”을 측정합니다. 이 장치로 하루에 2,500m3을 처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부력수차수류확산장치란 “부력에너지를 이용한 것으로 소량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물속에 산소를 공급하고 물을 순환시켜 수질을 정화하고 녹조를 방지하는” 수질정화장치입니다. 전력소비량은 1.5kw이고, 수류발생거리는 300m이상이며, 수류파장면적은 10만m2이상이라고 수원시상수도사업소에서 설치한 안내판에 적혀 있습니다. 이러한 장치들은 여기 광교저수지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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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처음 나선 하천 따라 걷기는 수원천의 광교저수지에서 시작했습니다. 1호선의 성균관대역에서 하차해 광교저수지가 시작되는 광교쉼터까지는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수원천 따라 걷기를 발원지인 광교산의 남사면에서 시작하지 않고 그 아래 광교저수지에서 시작한 것은 해지기 전에 수인분당선이 지나는 매교역까지 진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4시20분 광교쉼터를 출발했습니다.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고가도로 아래 굉교쉼터 정자를 출발해 광교저수지 우안의 수변산책로로 들어서자 광교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건너 편의 좌안 길은 광교산에서 경기대학교 쪽으로 하산할 때 몇 번 지난 적이 있지만 우안의 산자락 길을 걷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에 완공된 광교저수지는 해발 582m의 광교산에서 발원한 수원천의 상류를 막아 건설한 인공저수지입니다. 제방의 길이가 약 373m이고, 높이가 약19m인 이 저수지의 둘레길은 좌안길이 1.5Km, 우안길이 1.9Km로 합하면 3.4Km가 됩니다. 수원천의 광교저수지는 만수 시 면적이 약 33만m2(약10만평)으로, 서호천의 서호보다 1.7배 가량 넓습니다. 농업용저수지로 축조된 이 저수지가 수원시의 상수도원이 되고 산책 및 휴식 공간으로도 활용되면서 중요성이 더해졌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수변산책로를 걸으면서 반쯤 얼은 저수지를 보았습니다. 나머지 얼지 않은 수면도 소한이나 대한을 겪고 나면 꽁꽁 얼을 것입니다. 데크길을 따라 여러 차례 오르락내리락해 다다른 제방을 건너 그 아래 광교공원으로 이동했습니다. 거란의 침략을 막아낸 고려의 명장 강감찬(姜邯贊, 948-1041) 장군의 동상을 사진 찍은 후 수원천 제1교인 경기교 아래로 내려가 좌안의 천변 길로 내려섰습니다. 길 건너 수원시 상수도사업소가 가까이 보이는 제2교 창훈교를 거쳐 연화교를 지나 무명교 아래에 이르자 공사로 길이 막혀 제방으로 올라섰습니다. 다리 이름이 한자 ‘迎練橋’(영련교)로 표기된 다리를 건너자 제가 걷고 있는 하천이 ‘지방하천 수원천’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서 있어 반가웠습니다.
15시58분 작은 연못 용연(龍淵)을 들렀습니다. 영련교에서 우안의 천변길로 내려서 연무교와 방화2교를 차례로 지나 방화교 위로 올라서자 서쪽으로 화성의 북동포루가 보였습니다. 방화교를 건너 동쪽의 동북각루 아래에 자리한 아담한 연못인 용연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약 5.5Km 길이의 화성성곽 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저는 용연 일대가 바로 그런 곳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작은 인공 섬이 한 가운데 자리한 원형의 아담한 연못 용연, 이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용두바위에 지은 ‘ㄱ’자형의 2층누각의 동북각루(東北角樓), 그 아래 수원천 위에 7개의 수문이 석조 아취 구조로 이루어진 화홍문(華虹門) 등이 조화를 이루어 빚어내는 정경은 참으로 볼만 합니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라는 별칭을 가진 동북각루는 1794년에, 화홍문은 1796년에 지은 것으로, 둘 다 정조 임금이 화성을 건설할 때 같이 건설한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매향교를 지나 눈길이 머문 곳은 하천 건너 쪽에 자리한 조계종 수원사(水原寺)였습니다. 산골짜기를 벗어나 도심 속의 천변에 내려다 지은 수원사의 부속건물은 전통 가람과 대비되는 현대식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17시15분 매교역에 도착해 수원천 1구간의 탐방을 마쳤습니다. 수원천이 화성의 성곽 안을 흐르는 것은 화홍문에서 남수문까지로 1Km 남짓 됩니다. 동쪽으로 동남각루(東南角樓)가 가까이 보이는 남수문을 지나 제방으로 올라선 것은 마주보고 있는 영동시장과 지동시장 입구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다시 천변으로 내려가 우안길을 걸으며 빠른 속도로 내려앉는 어둠을 감지했습니다. 세천교를 건너 매교역에 도착한 시각은 일몰 10여분 전이었습니다. 광교쉼터에서 더 올라가 발원지에서 수원천 따라 걷기를 시작했다면 어둡기 전에 매교역에 다다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매교역에서 수인분당선을 타고가다 4호선의 한대앞 역에서 환승해 산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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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 연못의 아름다움이 오늘까지 전해지는 데는 내려오는 전설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수많은 경승지(景勝地)들이 명승지(名勝地)가 되지 못하는 것은 이렇다 할만한 서사(敍事)가 받쳐주지 않아서입니다. 다행히 용연은 그럴듯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 명승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천변의 안내판에 소개된 용연과 용두암에 관련된 전설은 이러합니다.
“정조 대왕께서 화성을 쌓으면서 방화수류정을 짓기 전 이곳은 수원천이 휘돌아 나가는 제법 깊은 연못이었다. 이곳에는 하늘로 을라 가기를 기다리며 천 년 동안 수양을 쌓던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용은 매일 연못으로 놀러 나오는 귀여운 한 소녀를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여러 번 그 소녀를 도와주었지만 소녀는 용의 존재를 몰랐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소녀는 아리따운 여인으로 성장하고 용도 하늘로 오를 날이 가까워졌지만 문제가 생겼다. 어느덧 용은 소녀, 아니 성숙해진 여인을 짝사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용과 여인은 서로 다른 존재라서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고 거기에다 여인은 혼인을 앞두고 있어 용은 하늘을 다스리는 옥황상제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옥황상제는 인간이 되어 여인과 살든지 여인을 잊고 승천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그러나 용은 승천하여 인간들에게 도움을 푸는 용이 되는 게 소녀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승천을 선택하면서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하루만 인간이 되길 원했던 것이다. 옥황상제는 소원을 들어주며 소녀를 만나게 해 주었으나 해어진 후 다시는 소녀의 얼굴을 쳐다보아선 안 된다고 하였다. 소녀와 만난 후 승천하기를 기다리던 용에게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용은 충만한 하늘의 기운을 온몸에 받으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토록 연모했던 여인을 아주 잊을 수는 없었던지 잠시 공중에 멈추어 여인이 사는 집을 바라보았다. 아! 우연의 일치인지, 그 순간 여인이 용이 승천하는 하늘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용은 가슴과 온몸이 굳어지며 바로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천 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말았다. 굳어진 용의 몸은 용연 옆으로 떨어져 내려 언덕이 되었고 머리 부분은 바위가 되었다. 후에 사람들은 이 바위가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용두암으로 부르게 되었고 살던 연못은 용지, 또는 용연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는 애절합니다. 점점 각박해지는 이 세상을 따뜻하게 살 수 있는 확실한 길은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누가 말했듯이 혼자 벽을 보는 것보다 둘이 같이 벽을 보는 것이 덜 외로울 것 같아 하는 말입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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