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매교역-세류역-수원천/황구지천합류점
탐방일자: 2026년1월7일(수)
탐방코스: 매교역-반야사-세류역-장다리천/수원천합류점-수원천/황구지천합류점
-송산교-병점역
탐방시간: 14시5분-17시23분(3시간18분)
동행 : 나 홀로

이번 탐방으로 수원화성의 성곽 안을 남북으로 흐르는 수원천 따라 걷기를 마무리했습니다. 황구지천과 서호천에 이어 수원천도 따라 걷기를 마쳐, 수원시를 관통해 흐르는 하천으로는 이제 원천리천 하나만 남았습니다. 제가 수원시의 하천을 따라 걸으면서 알게된 것은 ‘물골’을 뜻하는 수원은 이름 그대로 물이 넉넉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수원시의 가장 오래된 지명은 ‘모수’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관한 설명은 수원시 홈페이지에 아래와 같이 자세히 실려 있습니다.
“철기시대(원삼국시대 포함)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한반도 중남부 일대에는 수많은 소국이 성립되었고 이들은 삼한을 구성했다.『삼국지 위지 동이전(三國志 魏志 東夷傳)』「한조」(韓條)에는 삼한 소국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삼한은 크게 마한, 진한, 변한으로 나뉘는데 수원지역은 마한에 속했고, 마한의 54개 소국 가운데 경기도 일대에는 모수국(牟水國), 원양국(爰襄國), 상외국(桑外國) 등의 소국이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모수국이 수원 일대의 소국으로 추정되는데 '모수'란 이름이 '벌물'의 뜻을 갖는 것으로 지금의 '수원(水原)'의 뜻인 '물벌'과 글자 순서가 바뀌었을 뿐, 뜻이 같기 때문이다.”
수원시는 수원팔색길 중 첫 코스의 길이름을 모수길로 정해 이 시의 최초 이름인 '모수(牟水)'를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수원팔색길이란 수원이 지닌 8(八)의 의미를 담아 수원시의 곳곳을 연결하여 만든 길로, 모수길, 지게길, 매실길, 여우길, 도란길, 수원둘레길, 요행길과 화성성곽길 등이 이에 속합니다. 수원팔색길의 1코스인 모수길은 수원천과 서호천을 중심으로 수원의 대표적인 하천들을 잇는 코스로, 이 코스를 걸으면 수변경관이 빼어난 광교저수지와 서호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모수(牟水)’로 시작된 수원의 지명은 그 후 '매홀(買忽)', '수성(水城)', '수주(水州)' 등으로 바뀌었지만 항상 '물'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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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즐기는 운동은 걷기입니다. 백두대간과 9개정맥의 종주산행을 마치고 강줄기 따라 걷기에 나선 것은 2020년의 일입니다. 그동안 발원지에서 강 하구까지 낙동강, 금강, 섬진강과 영산강을 따라 걸었고, 임진강은 남한 땅 구간만 따라 걸었습니다. 하천 길이는 낙동강에 미치지 못하지만 유역면적은 남한에서 가장 넓은 한강은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시의 검룡소에서 시작해 여주시의 강천보까지 걸어, 앞으로 약130Km를 더 걸으면 이 강 하구인 김포의 유도 앞에 다다르게 됩니다.
제가 요즘 따라 걷고 있는 하천은 수원시를 흐르는 하천들로 한 번 나서면 10Km 가량 걷습니다. 이 거리는 매일 산책을 하며 걷는 정도여서 전혀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14시5분 매교역을 출발했습니다. 산본 집에서 수원의 매교역까지는 전철로 이동했습니다. 매교역 5번 출구로 나가 세천교 아래 수원천 좌안의 천변길로 내려섰습니다. 이틀 전에 소한(小寒)을 맞았는데도 날씨는 그다지 춥지 않아 맨손으로 사진을 찍어도 손이 시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걷는 수원천의 옛 이름은 유천(柳川)입니다. 정조가 화성을 축성할 때 천변에 버드나무를 심어 수원천의 자연 경관을 돋보이게 한 흔적이 몇 곳에서 보이는데, 수원천이 지나는 세류동에 세운 상류천(上柳川) · 하류천(下柳川)이라는 도로 표지석과 세천교를 지나 만나는 다리들이 차례로 유천2교-버들교-유천1교-버드네교-세류대교로 명명된 것이 그 실례라 하겠습니다.
유천2교를 지나 나병환자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한하운(韓何雲, 1919~1975) 시인의 ‘보리피리’ 시비(詩碑)를 보았습니다. “보리피리 불며 /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로 시작해 “보리피리 불며/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로 끝나는 「보리피리」 시를 새긴 시비가 시인 단체나 지자체가 아닌 ‘세류3동좋은마을만들기협회’에서 시인 한하운이 잠시 수원천변에 머물다 간 인연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라는데 놀랐습니다.
이름이 독특한 ‘카네이션 경로당’을 거쳐 다리 폭이 깨 넓어 보이는 세류대교를 지나자 앞쪽으로 1호선 전철이 보였습니다. 천변에 홀로 서 있는 갯버들 한 그루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폭이 좁은 철다리를 지나 다다른 이름 없는 다리 아래에 차단막이 설치되어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가 좌안의 반야사에 이르렀습니다. 다리 아래를 차단해 통행을 금한 것은 여기서부터 수원천은 수원비행장 안으로 흐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15시17분 1호선의 세류역을 지났습니다. 2층건물의 조촐한 도심속의 사찰 반야사(詊若寺)를 지나 정조로에 다가가자 길 건너로 반석교회가 보였습니다. 세류역을 지나 장다리교를 건너면서 잠시 멈춰서서 그 아래로 흐르는 장다리천의 물 흐름을 지켜보았습니다.
다리 건너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장다리천에 접근한 것은 카카오맵에 나오는 대로 장다리천과 수원천이 별개로 흘러 황구지천과도 따로 따로 합류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은 장다리천과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는 이름 모르는 하천이 합류해 한 줄기를 이루어 남쪽으로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북에서 흘러 내려오는 하천은 다름 아닌 수원천으로 여기서 만나는 장다리천은 수원천에 합류되는 제1지류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16시13분 황구지천에 다다라 수원천 따라 걷기를 모두 마쳤습니다. 장다리천이 수원천으로 흘러드는 합류점을 사진 찍은 후 사거리로 되돌아가 정조로를 따라 남진했습니다. 대황교를 건너면서 유유히 흐르는 원천리천을 내려다보자 다음에 이어갈 원천리천 따라 걷기가 기대되었습니다. .
집에 돌아와 대황교에서 찍은 원천리천 사진을 살펴보고 카카오맵 상의 장다리천이 원천리천에 합류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제가 사진으로 확인한 바로는 원천리천으로 흘러드는 하천은 장다리천이 아니고 장다리교 인근에서 장다리천의 물을 받아들인 수원천이었습니다. 제가 본 바가 맞다면 수원천은 황구지천의 제1지류가 아니고 원천리천의 제1지류이자 황구지천의 제2지류라는 것입니다.
대황교를 건너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1호선 철로 아래 황계지하차도를 건너 황구지천 위에 놓은 황계교 앞에 다다랐습니다. 이 다리는 황구지천을 따라 걸을 때 한 번 왔던 다리 북쪽에 차단물이 설치되어 안타깝게도 지도에 나오는 수원천과 황구지천의 합류점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옛날에 한 번 걸었던 황구지천의 우안길 대신에 좌안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좌안의 제방 길에서 황계교를 돌아보며 다리 아래로 다리 건너 북쪽을 살펴 보았지만 수원천/황구지천 합류점은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17시23분 병점역에 도착해 금정역행 1호선 열차에 올랐습니다. 황계교를 출발해 황구지천 좌안 길로 들어서자 찬 바람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화산교 건너 화성시로 들어서 황구지천의 우안길로 접어들자 3년 전 이 길을 걸은 일이 생각나 길가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쉬어 갔습니다. 저녁이 되면서 기온이 떨어지자 발걸음이 빨라져 생각보다 일찍 송산교에 다다랐습니다. 병점역까지 걸어갈 뜻에서 송산교를 건너 카카오맵이 가리키는 대로 진행했는데, 중간에 길을 잘못 든 일이 없어 해지기 직전에 병점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내 도착한 광운대행 전철을 타고 귀가 길에 오름으로써 수원천 나들이를 모두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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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을 뜻하는 수원(水原)의 옛 이름이 ‘매홀(買忽)’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런 것이 ‘매홀’은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진 ‘고구려어(高句麗語)’이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어는 적으나마 현전 자료를 가진 유일한 부여계 언어입니다. 오늘날 남아 있는 고구려어 자료는 내외 서적에 나와 있는 고유명사들인데, 그중에서도 『삼국사기』 지리지가 가장 주된 광원(鑛源)입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정사체 역사서 중 가장 오래된 『삼국사기』에 언급된 수원에 관한 기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 하나는 권 제35의 “水城郡 本高句麗買忽郡 景德王 改名 今水州(수성군은 본래 고구려 매홀군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 의 수주이다.)” 이고, 또 하나는 권제37의 “買忽 一云 水城(매홀 또는 수성이라고도 하였다.)”입니다. 『삼국사기』에 ‘매홀(買忽)’이 ‘수성(水城)’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근거로 쓰일만한 자료는 더 있습니다. 그 하나는 권제35의 “檀溪縣 本高句麗 水谷城縣 景德王 改名 今俠溪縣(단계현은 본래 고구려 수곡성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협계현이다)”이고, 또 하나는 권제37의 “水城郡 `水谷城縣 一云 買旦忽(수성군 `수곡성현 또는 매단홀이라고 하였다)”입니다.
‘매홀(買忽)’이 ‘수성(水城)’이라는 것은 이기문 · 이호권 교수들이 공저한 『국어사』 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상기 자료에는 한자의 뜻과 관계없이 그 발음으로 읽는 표기를 뜻하는 음독명(音讀名)과 한자의 새김으로 읽는 표기를 뜻하는 석독명(釋讀名)이 병기되어 있습니다.
(1) 買忽 一云 水城
(2) `水谷城縣 一云 買旦忽
(1)에서는 음독명인 ‘買忽’이 앞에 있고 석독명인 ‘水城’이 뒤에 있으며, (2)에서는 석독명인 ‘水谷城’이 앞에 있고, 음독명인 ‘買旦忽’이 뒤에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음독명 ‘買’가 석독명 ‘水‘와 대응하고, 음독명 ‘忽’이 석독명 ‘城’과 대응하며, 음독명 ‘旦’이 석독명 ‘谷’과 대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종합하면 고구려어에서는 물(水)을 ‘매(買)’라 했고, 성(城)을 ‘홀(忽)’이라 했습니다.
『삼국사기』 지리지의 지명 표기에서 얻을 수 있는 고구려의 단어 수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제법 확실한 것은 50개가 채 못되고, 불확실한 것까지 합쳐도 100개에 못 미친다고 합니다. 수원의 옛 이름인 ‘매홀(買忽)’이 50개가 채 안 되는 고구려어 중의 하나라는 것만으로도 수원의 옛 이름인 ‘매홀(買忽)’은 국어사적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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