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아차지고개-석성산-42번국도
*산행일자:2005. 12. 1일
*소재지 :경기 용인
*산높이 :석성산471미터
*산행코스:아차지고개-할미성터-작고개-석성산-멱조고개-42번국도
*산행시간:8시56분-15시(6시간4분)
*동행 :나홀로
용인 땅은 저와 제 가족이 13년간 살았던 곳이어서 지금도 애틋함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결혼 그 이듬해 경기도 광주에서 이사와 큰 아들을 낳았고 다시 그 다음 해에 막내아들을 낳아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과천으로 옮기기까지 애들이 어린시절을 흙장난을 하며 건강하게 보낸 곳이라 아직도 정감이 가는 도시가 용인입니다. 지금은 그동안의 쉴 새 없는 개발로 과천으로 이사 나온 1991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의 전 지역이 도시화되었지만 그 때는 중심지인 용인읍 김량장리도 논밭이 지근거리에 있어 아파트에 살면서도 시골생활을 맛볼 수 있었으며, 애들이 흙과 친하며 살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가 그때였다는 생각이 들자 용인 땅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주룩주룩 쏟아지는 겨울비를 맞아가며 한남정맥의 어정구간 종주를 강행해 1978년 용인에서 수원으로 출퇴근 하느라 일년 가까이 오며 가며 차창 밖으로 내다보았던 산줄기를 어제야 비로소 두발로 직접 오르내리며 모두 밟았습니다. 고즈넉한 산길도,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길도, 그리고 산허리를 잘라 내고 길을 내고 있는 도로공사현장도 다 밟았습니다. 어정의 아차지 고개에서 시작한 정맥종주를 정신병원을 지나는 42번 국도에서 일찌감치 마치고 더 이상 나아가겠다는 욕심을 접은 것은 젊어 한때 집사람과 함께 잘살아보고자 바동댔던 용인 땅을 그리 빨리 벗어나기가 싫었고 다음에 나머지 용인구간의 정맥 길을 느긋하게 밟아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침8시56분 어정의 아차지고개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어정삼거리에서 하차하여 16분을 걸어 다다른 아차지고개를 넘자마자 오른편의 들머리로 들어서 정맥 길을 이어갔습니다. 지난 주 일요일 한번 왔던 길이라 마루금을 찾기가 한결 수월해 철조망을 두 번 넘고 초록색 울타리를 따라 걸어 창덕아파트 뒷산으로 쉽게 들어섰습니다. 왼쪽의 아파트단지를 끼고 올라 182봉에 올랐다가 솔밭 길을 지나고 묘지를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서자 며칠 전 통과했던 지하도보다 100여 미터 동쪽으로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지하도가 보였습니다.
9시28분 이 지하도를 통과해 영동고속도로를 건넜습니다.
동백-죽전간 도로개설공사 현장으로 올라서 88CC로 이어지는 구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얼마 안 되어 일하시는 한분을 만나 향린촌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그분이 가르쳐준 대로 도로 왼쪽의 산으로 들어서 잡풀지대를 지나 88CC로 가는 아스팔트길로 올라섰습니다. 오른 쪽으로 꺾여 차츰 고도를 높여 가는 차도를 따라 가다가 빗줄기가 점점 굵어져 우의를 꺼내 입고 방수카바로 배낭을 가리고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어느새 두 손에 끼고 있는 목장갑이 금방 젖어버려 손끝이 점점 시려왔고 등산화도 젖어오기 시작했으며 아스팔트 길 양옆으로 빗물이 콸콸 흐를 정도로 빗줄기가 드세져 이렇게 굵은 빗줄기가 하루 종일 계속된다면 며칠 전부터 시작된 감기를 무릅쓰고 산행을 계속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10시28분 동백리 향린동산 주차장을 지나고 얼마 후 차단막을 넘어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88CC로 향하는 아스팔트길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반시간 전에 도로 오른쪽의 송전탑이 있는 길로 5분여 전진하다가 이내 잘못 들었음을 판단하고 다시 돌아오느라 이번 산행에서 유일하게 10분간 알바를 했습니다. 차단막을 넘어서서는 빗줄기는 여전했지만 표지기가 안내를 잘 해주어 어렵지 않게 사거리에 도착해 차단막 출발 20분이 채 안되어 본격적으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첫 번째 봉우리를 왼쪽으로 우회하여 향린산가는 길이 나있는 삼거리에 도착, 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봉우리에 올라서자 철조망이 쳐져있었습니다. 이 철조망 왼쪽으로 나 있는 낙엽이 소북이 쌓인 고즈넉한 길을 따라 한참을 걷는 동안 비가 그치자 가시거리가 20미터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어 산속은 더욱 더 어둡고 스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11시24분 산불감시초소가 서있는 해발350미터의 할미성터에 올랐습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산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밀려 산마루에 걸린 안개의 날렵한 몸놀림을 카메라로 재빨리 잡았습니다. 일명 마귀할멈으로 불리는 마고선인 할머니가 쌓았다하여 할미성으로 불리는 이성은 할머니가 쌓기에는 힘이 달렸을 큰 돌들로 축성되어 있는데 너저분한 쓰레기들이 성 주위에 나뒹굴고 있어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에버랜드가 가깝고 고려초기에 축성된 오래된 성이어서 진입로만 잘 다듬고 주변을 깨끗이 한다면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어 모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12시2분 에버랜드 후문 앞길을 건넌 다음 교각 밑으로 다시 차로를 건너 왼쪽으로 나있는 계단으로 올라서 작고개를 건넜습니다. 할미성에서 하산하여 에버랜드에서 영동고속도로로 합류하는 큰길이 나있는 작고개로 내려서자 교통경찰이 다가서며 이 길은 건널 수 없으니 다시 산으로 올라가라며 불응 시 스티커를 발부하겠다고 해 한남정맥을 종주하며 별일을 다 겪는다 싶었고 스티커를 발부할 것이 아니라 길안내를 해주면 얼마나 고마워할 텐데 아비 벌 되는 제게 무슨 죄인 취급하듯이 고압적인 자세를 보인 교통경찰에 심히 마음이 상했습니다. 작고개를 건너 계단을 올라서자 바로 석성산 들머리로 연결되었고 들머리에 할미성을 쌓았다는 마고선인을 기리는 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용인에서 서울로 10여년을 출퇴근하며 보아온 군사기지가 들어선 이 높은 산을 언제고 한번 오르겠다고 별렀었는데 어제야 비로소 이 산을 올랐습니다.
12시50분 해발471미터의 석성산 정상을 밟았습니다.
군부대가 들어있어 입산을 금할 것이라는 제 생각은 잘못이었습니다. 동백리와 마성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잘 나있고 낭떠러지이니 조심하라는 용인시장명의의 안내판이 세워진 정상이 쉼터로 조성되어 정상에서 간이식탁에 앉아 점심을 들었습니다. 덩치가 초등학생만한 큰개가 점심을 먹고 있는 제 앞에 턱을 받치고 있어 김밥2덩이를 주었더니 눈 깜작할 사이에 먹어치웠습니다. 짓지도 않고 꼬리도 치지 않는 순둥이 녀석의 풍모가 하도 젊잖게 보여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얼마고 떨어져 있는 군사기지를 중심해서 왼쪽으로 쳐져있는 울타리 바로 밑으로 난 길을 따라 우회해 군부대 정문 앞에 다다르기 까지 울타리를 잡고 직등도 하는 등 23분간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들었습니다. 군부대정문에서 324봉을 거쳐 멱조고개로 내려서는 등산로는 길도 넓고 낙엽이 소북이 쌓여 걷기에 좋았습니다. 나무계단을 따라 324봉에 올라섰다 철계단을 밟고 멱조고개로 내려서기까지 송전탑 몇 개가 길안내를 잘 해주었습니다.
14시24분 어정에서 김량장리로 넘어서는 멱조고개를 건넜습니다.
술이라고는 맥주밖에 안 마시는 제게는 산행 후 마시는 맥주 1캔이 제일 맛있게 느껴지는데 어제는 멱조고개에서 슈퍼마켓을 지나면서 문이 잠겨있어 별 수 없이 맥주생각을 잠재워야 했습니다. 멱조고개를 건너자마자 바로 산으로 들어가 길이 나있지 않은 산등성까지 5-6분간 낙엽을 밟으며 곧바로 치고 올라갔습니다. 겨울 철 주말이면 산에 올라 땔감을 해왔던 어린시절에는 산에 낙엽이 제대로 쌓일 날이 없었지만 이제는 아주 낮은 산에서도 겹겹이 쌓인 낙엽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시골에서도 땔감을 나무에서 연탄으로 그리고 다시 석유로 전환했기 때문이며, 만주의 용정에서 토문 가는 길에서 건너다 본 북녘의 산들에서 낙엽이 제대로 쌓인 울창한 숲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아직도 땔감을 산에서 구하는 후진성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산등성이로 올라서 오른 쪽으로 능선을 타고 220봉으로 향했습니다.
15시정각에 까까비탈의 절개면을 조심스럽게 타고 42번 국도로 내려섰습니다.
멱조고개에서 용인정신병원을 지나는 42번국도의 고개마루에 다다르기까지 길이 잘 나있고 이 길을 산보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었으며 마지막 절개면을 따라 고개마루의 현대오일뱅크 주유소로 내려서는 데 경사가 급해 조금 힘들었습니다. 왕복4차선의 42번국도 한가운데 중앙분리대가 설치되어 있고 쉴 새 없이 차들이 다녀 무단으로 횡단하기는 엄두가 나지 않아 길 건너 들머리를 확인하지 못한 채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용인에서 살았던 1980년대에는 주말이면 서울을 다녀오기가 너무 힘들어 서울근교의 명산들을 거의 오르지 못하고 대신에 용인읍내 뒷산들을 주로 올랐습니다. 어두워지더라도 조금 무리하면 하고개까지는 갈 수 있겠지만 여기서 산행을 마친 것은 애들과 손잡고 집사람과 함께 오른 산들을 다음번에 느긋하게 오르고자 해서였습니다. 애들을 키우느라 고생하신어머니와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느라 분주했던 집사람의 체취가 감지되는 용인 땅을 밟게 되는 다음산행 시는 애들 모두가 올곧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음을 고할 생각입니다. 이 고함이 한남정맥 종주로 가능한 것이기에 저의 종주산행에 도움을 주고 있는 모든 분들에 고마움을 전하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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