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 종주기 12
*정맥구간:무네미고개-문수봉-안골도로-미리내고개
*산행일자:2005. 12. 23일
*소재지 :경기 용인
*산높이 :문수봉405미터/바래기산368미터
*산행코스:무네미고개-은화삼CC-망덕고개-바래기산-문수봉-안골도로-미리내고개
*산행시간:10시31분-16시31분(6시간)
*동행 :나홀로
어제는 여느 때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 용인구간의 한남정맥을 종주했습니다.
이달 들어 호남지역에 보름 넘게 집중적으로 눈이 퍼부어 현지 주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고 지금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데 해마다 겨울이면 폭설로 교통이 두절됐던 강원도산간에는 보름여 눈이 내리지 않아 산불예방목적으로 취한 입산 금지조치를 풀지 못할 정도로 겨울가뭄이 극심하던 차에 호남지역에서는 눈이 그치고 밤사이 내린 눈이 가뭄에 시달렸던 온 산하에 수북이 쌓여 한남정맥을 종주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어린 시절을 산골에서 살아온 저 같은 시골뜨기에는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흰눈이 그리도 고맙고 반가운데 요즈음의 도시인들에는 그리 반가운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늘을 나는 동안만 반갑지 땅에 내려앉는 순간부터는 도시의 찌든 때에 바로 물들어버려 흰눈발의 순수한 아름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교통 혼잡의 주범으로 내몰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일곤 합니다.
70%이상이 물로 되어 있는 우리 몸이 항상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물로서 저희들은 이 물을 자연으로부터 공급받고 있습니다. 자연으로부터 공급받는다 함은 물이 자연계에서 열을 흡수하거나 내놓아 얼음- 물-수증기 상태로 변화하면서 뭍과 바다, 하늘과 땅속으로 순환하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필요한 물을 정상적으로 공급받으려면 물의 순환시스템은 언제나 작동되어야하기에 겨울이라 해서 나무들처럼 쉬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겨울이면 빼놓지 않고 내려주는 눈이 반갑고 고마운 것입니다. 바닷물을 담수화해 육지로 운송해오는 태풍의 순기능이 그 피해를 상쇄하고도 남듯이 눈 역시 그러하다는 생각입니다. 눈이 내려야 겨울에도 쉼 없이 강수량을 확보할 수 있고 이렇게 확보한 물로 식수와 용수를 공급할 수 있기에 말입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어렵게 오늘을 살고 있는 소시민들의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 줄 순수함과 따뜻함은 바로 눈 안에 있기에 하늘을 날고 있는 흰눈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오염된 이 세상을 잠시라도 순백의 흰색으로 덮어주는 것도 눈이요, 하늘에서의 무질서한 윤무를 끝내고 이 땅에 내려앉아 차곡차곡 쌓이는 모습을 보여주어 카오스의 질서를 가르쳐주는 것도 눈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아침10시31분 은화삼CC 입구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새벽같이 눈을 떴어도 과감하게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하고 민지적대다가 아침 8시가 넘어서야 산본 집을 출발했기에 용인의 무네미고개에 도착한 것은 10시 반이 다 되어서였습니다. 은화삼 빌리지로 갈리는 삼거리에서 새로 산 아이젠을 차고 골프장안으로 찻길을 따라 얼마고 걷다가 정맥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지 못해 눈을 치우는 직원에 길을 물은 것이 작은 실수였습니다. 윗분들이 알면 질책을 받는다며 길은 알려줄 수 없음은 물론 이 산은 사유지이니 다시 입구로 되돌아가 우측 능선을 타라고 강력히 요구해와 난감했었습니다. 직원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젊은 계장에 정맥종주 사정을 얘기하고 몇 번이고 봐달라고 간청을 해 간신히 그 곳을 통과하고 정맥 길로 들어서느라 십 수분이 늦어졌습니다.
11시15분 골프장을 빠져나와 정맥 길의 한 봉우리에 올라서자 광활한 골프장이 한눈에 조망되었습니다.
18년간 몸담았던 쌍용그룹이 만든 골프장이기에 그래도 정감이 갔는데 겨울이라서 골퍼는 보이지 않고 대신에 흰눈이 소복이 쌓여 고요한 아침의 평화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솔밭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남동쪽으로 진행하다 반시간 후에 성봉현님의 산행기에 적힌 ABC No.39의 송전탑을 지났고 누군가가 저보다 이 눈길을 먼저 밟아 반대방향으로 진행한 족적을 따라 고바위 길을 올라 10분 후 한 봉우리에 도착했습니다.
11시55분 철봉과 벤취가 세워진 봉우리에서 짐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깜박 잊고 집에다 펜을 두고 와 이번 산행기는 전적으로 기억력에 의존해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자 준비성 없는 제가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밤새 내린 눈으로 보이는 것은 모두 하얀 산뿐이어서 그나마 글쓰기가 쉽겠다 싶었습니다. 오른쪽 산 밑에서 개들이 시끄럽게 짖어대는 시멘트도로로 내려서는 동안 여성 두 분과 남성 한분을 차례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길 건너 능선 길로 다시 올라서 오른 쪽의 신원CC를 감싸고 있는 정맥 길을 따라 남동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진행하는 중 한남정맥의 왼쪽 사면 골짜기의 모든 계곡물이 한강으로 흐르고 있음을 새삼 깨달은 것은 종주 길 간간히 “한강수변구역 NO 경안천”이라고 적혀진 노란 시멘트 표지석을 여러 개 보아서였습니다.
길옆에 쓰러져 나뒹굴고 있는 “한강수계관리위원회”라는 글이 적힌 노란 기둥을 보고 수많은 위원회의 향후 운명이 저런 것이 아닐까 싶어 미리부터 걱정됐습니다. 요즈음 들어 부쩍 경영의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의 목소리가 커져 각종 위원회가 늘어나는 듯싶은데 이는 경영의 의사결정이 선거처럼 표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간과한 것이어서 그 결과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저는 아직껏 잭웰치가 민주적으로 GE를 이끌어 왔다는 얘기를 못 들었고 MS의 빌게이츠가 하나하나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의사결정을 해가면서 일한다는 기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저 개인생각으로는 위원회를 두어 민주화와 투명성을 높이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의 최고가 되겠다는 열정과 지혜, 그리고 결과에 책임지는 자세라고 생각하기에, 설사 민주화와 투명성제고에 얼마큼 도움이 된다고 해도 위원 중 어느 누구도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 위원회를 계속 늘려나가는 데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13시30분 골프장 뒷산에 세워진 십자가 옆에 자리한 묘지에서 인절미를 들었습니다.
바로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신원CC도 하얀 눈이 골프장을 덮고 있어 안온하게 느껴졌습니다. 철탑위에 세워진 목제 십자가위에 뾰족한 침 같은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십자가 역시 골프장의 피뢰침용도로 세워진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 반전에 무명봉 쉼터를 떠날 때부터 흩뿌리는 눈발이 거세져 비닐카바로 배낭을 가리고 망덕고개로 출발한 후 30분 정도 지나 한 봉우리를 우회할 즈음 한 님이 전화를 해와 감기 몸살로 며칠 전 귀국한 친구를 이제야 만나러 간다며 제 안부를 물어왔는데 몹시 힘들어하는 목소리여서 안타까웠습니다. 내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기적으로 함께 산행해 일년 내내 달고다니는 감기를 물리치도록 만들 생각입니다. 은화삼CC에서 망덕고개까지 길안내를 맡은 것은 지난번 지나온 42번국도-무레미고개 구간에서와 같이 송전탑이었습니다. 평평한 넓은 길옆에 세워진 ABC No. 26의 마지막 송전탑과 헤어지고 임도를 따라 망덕고개로 내려섰습니다.
14시 30분 망덕고개에 내려서서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신부가 되어 순교하신 김 대건 신부님의 유해가 이 고개를 지나 미리내 성지로 운구 되었다는 비문을 읽고나자 제가 매주 성당에 나가 미사를 올릴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땅에서 이분처럼 순교한 성인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임도를 버리고 은지성지를 향해 능선 길에 올라서자 내내 흐렸던 하늘이 활짝 열려 흰 눈이 쌓인 산길이 더욱 환해 보였습니다. 망덕고개에서 삼각점이 세워진 바래기산을 거쳐 사각정자쉼터에 이르는 산길에는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옮겨놓은 눈이 더해져 발목이 빠질 정도로 많은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올 들어 처음으로 아무도 밟지 않은 새로 내린 눈을 밟아 겨울산행의 즐거움을 한껏 만끽했습니다.
15시44분 해발 405미터의 문수봉에 올라섰습니다.
반시간 전에 출발한 사각정에서 왼쪽으로 확 꺾어 분지처럼 움푹 내려앉은 곳에 자리 잡은 저유탱크 단지의 오른 쪽 능선 길을 얼마고 걷다가 치받이 길을 치고 오르자 표지기가 여러 개 걸려있는 문수봉 정상의 소나무 한그루가 제일 먼저 눈에 잡혔습니다. 넓은 공터의 정상에 올라 육각정에 짐을 내려놓고 어디에서 이번 산행을 끝낼까 계산을 했습니다. 57번 국도까지는 1시간 40분 이상 걸려 해안에 닿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4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미리내마을 앞 안골도로에서 마치기로 하고 느긋하게 사방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문수봉에서 안부로 내려서는 길은 나무계단이 설치된 급경사 길이었으나 이 길 양옆에 한남정맥에서 보기 드물게 실한 키가 큰 산죽들이 머리에 흰눈을 이고 서있어 푸르른 잎 새들과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잠시 약수터에 들러 목을 축인 후 중소기업개발원으로 내려서는 안부를 지나 모처럼 십분 남짓 편안한 길을 걷는 동안 나무사이로 전해지는 저녁 햇살을 따사롭게 느껴졌습니다. 사암리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미리내마을 앞 안골도로로 하산했습니다.
16시31분 미리내앞 안골도로로 내려서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마침 지나가는 차에 편승해 원삼으로 나가 용인 행 버스를 잡아탔습니다.
용인구간을 4회에 걸쳐 천천히 지나느라 다른 분들이 통상 10회에 끝내는 한남정맥 종주를 12번을 했는데도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만 이제 안성구간만 두 번 더 뛰면 종주산행도 끝나게 됩니다. 한남정맥 종주로 젊은 시절 13년을 살았던 용인 땅을 밟으며 지난날의 제 생활을 성찰하고 1980년대의 저의 가족사를 되돌아 볼 수 있어 기뻤습니다. 이에 더하여 은화삼CC에서 몰래 길을 안내해준 젊은이와 손을 들지 않았는데도 차를 세워 원삼까지 태워준 중년부부 두 분의 친절이 고마워 이번 종주 중 살맛나는 이 세상을 새삼 느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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