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8.죽엽산
*산행일자:2004년3월6일
*소재지 :경기 포천
*산높이 :601미터
*산행코스:작은넓고개-죽엽산-직벌고개-산림생산기술연구소
*산행시간:8시40분-13시20분(4시간40분)
*동행 :이규성/이상훈 교수
어제는 경기도 포천의 죽엽산을 올라 통산 160개 산의 등정을 마쳤습니다.
올 들어 18개 산을 새롭게 올랐는데 이대로라면 올해 안으로 200산을 마치겠다는 연초의 계획을 훨씬 넘어설 것 같습니다. 때로는 몇 개의 산을 오르겠다는 목표설정이 과연 옳은 일인가 자문해봅니다. 등산은 여타 스포츠와 달리 기록경기가 아닐뿐더러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컨트리대회에서는 얼마나 산행을 빨리 마쳤느냐를 재어서 상을 주기도 합니다만 그런 대회는 산악운동의 지엽말단 적인 것일 뿐 결코 본류가 될 수 없기에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목표를 설정한 것은 저 자신과의 약속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산을 가까이 하며 살아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매주 쉬지 않고 산을 찾는 다는 것이 생각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기에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과정이 제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제부터 내린 폭설로 야기된 충청권의 교통대란으로 많은 분들이 고속도로에 발이 묶여 차안에서 밤을 지새웠음에도 고속도로는 아직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뉴스입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등산복차림으로 집을 나서기가 조금은 민망했습니다. 어제는 두 교수와 함께 산을 올랐습니다. 고교동창인 울산대의 이 규성 교수와 대학동창인 수원대의 이 상훈 교수가 그들입니다.
아침 7시30분 상봉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50여분 아침을 달려 광릉내를 거쳐 8시 20분경
포천의 내촌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택시를 잡아타고 이번 산행의 기점인 진목리 입구까지 이동하여 8시40분에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그제 내린 대설로 계곡을 따라 산행을 하는 것이 위험할 것 같아 능선을 종주하기로 하고, 작은넓 고개에서 주능선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찾았으나 모든 길이 눈에 덮여 허탕을 치었습니다. 그래서 외딴집에서 조금 벗어난 산자락 밑에서 출발, 곧바로 눈길을 10여분 치켜 올라 주능선을 만났습니다. 겨우 내내 내린 눈은 다 녹아 없어지고 이틀 간 새로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깨끗해졌습니다. 눈 덮인 능선에 길을 내느라 산행속도는 조금 떨어졌지만 이게 어디 쉽게 만날 기회이겠는가 싶어 즐겁게 산을 올랐습니다.
9시40분 270미터 고지에서 10분 여 첫 쉼을 가졌습니다.
10여분 전부터 저희들보다 먼저 이 길을 밟은 어느 분 덕분에 길을 찾기가 쉬웠는데, 그나마 10시 30분이 지나자 더 이상 흔적이 남지 않아 다시 짐승발자국의 도움을 받아 육감으로 길을 내며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길 양옆에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와 잣나무 숲이 일품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소나무와 잣나무는 확실히 구별할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이 상훈 교수의 분류법을 듣고 나서, 소나무는 솔잎이 2개이고 잣나무는 5개라는 사실을 지금까지 몰라온 저의 무식함이 부끄러웠습니다.
유식을 자산으로 살아가는 두 교수들의 모처럼의 화두는 스쳐 듣기에 종교인 듯 싶었습니다. 버스에서 이 상훈 교수로부터 최근 그가 종교를 바꾼 데 대해 나름대로의 변을 들었습니다. 일상적인 크고 작은 일에 매달려 종교적인 문제처럼 묵직한 근본적인 명제들을 깊이 고민해보지 못한 저는 그의 코페르니쿠스 적 전환이 옳으냐는 별개로 그의 사색의 깊이에 놀랐습니다.
11시20분 600.9미터 봉우리를 지났습니다.
산행기에 이 곳은 정상이 아니라고 소개되어 계속 전진했으나 더 이상 높은 봉우리를 만나지 못한 채 11시 30분 바람이 비켜서고 햇볕이 닿는 곳을 찾아 점심을 들었습니다. 이 상훈 교수가 떡을 준비해와 맛있게 들었습니다. 뜨끈한 커피로 속을 데운 후 직벌 고개로 출발했습니다. 40분을 걸어 직벌고개에 도착하기까지 짐승 발자국이 선명하게 눈 위에 나 있어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발견한 것은 신기하게도 짐승들도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주로 이동한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서울 근교 산들의 짐승들은 그들 본래의 야성을 잃고 인간들에 어느 정도 길들여져 사람들이 밟은 길을 찾아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600미터대의 청계산이나 관악산에 비하여 수종도 다양하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많아 한 여름에 올라도 덥지 않게 산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기에 다시 한번 찾을 생각입니다. 직벌고개에서 오른쪽으로 걸어 내려가니 얼마후 임도가 나타났습니다. 임도를 따라 주요 숲마다 대표수종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세운 것을 보니 이곳이 광릉수목원의 일원이겠다 싶었습니다. 소나무, 잣나무, 리끼다 송, 전나무, 낙엽송과 낙우송 등의 각종 침엽수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13시20분 의정부와 진접을 연결하는 지방도로에 인접한 산림생산기술 연구소에 도착, 좀처럼 볼 수 없는 3월의 눈길을 4시간 40분 동안 걸어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였습니다.
출입이 금지된 연구소경내로 불법으로 하산하였음을 인정하는 자인서를 써 달라는 연구소 경비직원과 승강이를 벌리느라 20여분을 까먹었습니다. 직벌고개에 하산금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없음을 들어 그 부당함을 지적했지만 결국에는 자인서를 쓰고 나니 뒷맛이 씁쓰레했습니다.
길 건너편의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30여분 밖에서 기다린 후에야 15시 15분 의정부행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아침에 열쇠를 집에 두고 왔음을 우연히 알게 되어 외출중인 큰아들에 연락하여 인덕원 역에서 열쇠를 받아 오느라 18시를 넘어서 과천 집에 도착, 금호성당에서 저녁 6시에 특전미사를 드리고 연이어 소프라노 서 연주 님의 독창회에 참석하겠다는 아침의 계획을 변경해야 했습니다. 저녁 8시 과천성당에서 특전미사를 마치고 택시로 금호성당으로 옮겨 성악회의 2부 프로그램에 참석했습니다. 밤11시 집에 돌아와 정확한 교통정보가 상세한 산행정보만큼이나 아쉬웠던 하루를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