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2004년3월1일
*소재지 :경기 가평/양평
*산높이 :곡달산628미터/통방산650미터/
삼태봉683미터/중미산834미터
*산행코스:솔고개-곡달산-통방산-삼태봉-중미산-서너치고개
*산행시간:8시35분-17시20분(8시간45분)
*동행 :나홀로
어제는 오랜만에 나 홀로 산행을 즐겼습니다.
두 달 전 충남 천안의 광덕산-망경산-설화산을 다녀 온 후 처음으로 나 홀로 산행에 나섰습니다. 청평의 솔고개에서 시작하여 곡달산을 오르내렸고, 다시 올라 통방산을 시작으로 삼태봉과 중미산을 연이어 오른 다음 양평의 서너치고개로 하산하였습니다.
경기도에는 강원도처럼 1500미터를 넘는 고산은 없지만 남부럽지 않을 정도의 아기자기한 산들이 많이 있습니다. 1998년부터 경기도의 산들을 꾸준히 올라 그 진면목을 보아 왔고, 작년부터 몇 개의 산들을 이어 오르는 종주 산행에 맛을 들여 요즈음은 그 동안 오르지 못한 경기도의 새로운 산들을 찾기에 바쁩니다. 어제의 나 홀로 산행은 여니 때와 조금은 달랐습니다. 우선 무려 8시간 넘는 산행시간 중 한 분도 만나지 못해, 어제의 산행은 말 그대로 나 홀로 산행이었습니다. 둘째 통상의 종주등반과는 달리 한 산을 오른 다음 완전히 하산하고 또 다시 다른 산을 새롭게 올랐습니다. 셋째 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또 다른 고개에서 산행을 끝냈기에 하루 종일 계곡 길을 걷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침 7시15분 동서울터미널에서 춘천행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한강변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미세한 봄의 변화를 감지해 내고자 열심히 차창 밖을 관찰하는 동안 어느새 버스는 청평 역에 도착하였습니다.
8시35분 해발 155미터의 솔고개에서 맥주 1캔을 사서 배낭에 넣은 후 곡달산 정상에 이르는 들머리에 들어섰습니다. 꽃샘추위가 서울의 수은주를 0도 밑으로 떨어뜨렸다 하니 자연의 세계에서도 인간들의 세상에서와 같이 질투가 존재하나 봅니다. 들머리에 들어서자마자 시작된 가파른 길을 얼마고 오르니 오른쪽으로 깨끗하게 단장된 골프장이 보였습니다. 제가 수년 전 잠시 몸담았던 회사에서 만든 마이더스 골프장이었습니다. 한 여름이라면 잔디가 제 색을 내게 되어 보기에 좋았을 터인데 아직은 잔디 색이 땅 색깔과 비슷한 누런 색이어서 골프장 전체가 황량하게 보였습니다.
9시 35분 첫 쉼을 가졌습니다. 마이더스 골프장과 청평호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꽃샘추위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어서인지 바람이 찼지만 봄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첫 쉼까지 고바위 길을 올랐다면 여기에서 정상에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하지 않아 편했습니다. 솔바위에서 첫 쉼터까지 1.5키로의 길을 1시간에 올랐는데 첫 쉼터에서 똑 같은 거리의 정상을 40분만에 올랐습니다. 지난 주 비를 맞으며 오른 호명산과 호명저수지를 잇는 주능선을 분명하게 조감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10시 15분 628미터의 곡달산 정상에 섰습니다. 준비해간 떡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함과 따사로운 봄볕에 로버트카플란의 "타타르로 가는 길"을 읽는 동안에도 잠시잠시 졸음이 스쳐갔습니다. 기도서를 갖고 왔다면 산상기도를 올렸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진했습니다.
10시40분 급경사의 금강사 길로 하산했습니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초라한 규모의 금강사를 지나 계속해 내려가니 차도가 나왔습니다. 11시30분 차도를 건너 짐을 풀고 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곡달 계곡의 하천으로 내려갔습니다. 여기까지는 "한국의 산하"사이트에 게재된 어느 분의 자세한 산행기에 힘입어 쉽게 찾아 왔는데, 눈앞의 폭넓은 곡달계곡 하천에 제법 물이 많이 흘러 건너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잘하면 구두를 벗지 않고도 건널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건넜지만 결국은 구두가 물에 잠겨 양말을 적셨습니다.
11시 45분 곡달계곡 하천을 건너 들머리를 찾았는데, 그 분의 산행기와는 달리 아무리 찾아도 정상에 이르는 들머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별 수 없이 수직으로 길을 내며 치켜 오르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다행히 시야를 가리는 녹음이 없어 진행방향을 정확히 알 수 있었기에 숲이 우거진 한 여름에 길을 잃었을 때처럼 답답하거나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주능선에서 갈라져 내려온 지능선에 오르니 간혹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엿보였지만 이내 사라져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산 중턱의 넓은 낙엽송 숲 속을 지날 때에는 길은 물론하고 방향을 잡기조차 쉽지 않아 더욱 애를 먹었습니다.
12시 30분 440미터고지에서 숨을 고르며 마신 물맛이 꿀 맛 이었습니다.
커피와 귤 몇 개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오름 길에 나섰습니다. 13시 2분 주능선에 올라 낡은 표지기를 발견하고 나서야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13시 20분 650미터의 통방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혼자 산에 오르면 표지석 앞에 배낭을 놓고 산에 올랐음을 증명하는 사진을 찍습니다만, 통방산 정상에는 표지석이 없어 대신 돌무더기를 배경으로 배낭을 찍은 후 삼태봉으로 옮겼습니다. 1키로 전방의 삼태봉이 날카롭게 보였고, 0.5키로를 지나서 시작된 직등의 칼바위코스가 오늘 산행의 고비였습니다.
14시 10분 주능선에서 조금 비껴선 삼태봉에 다다랐습니다.
우선 시원한 맥주로 등정을 자축했습니다. 통방산에는 표지판이 나무에 걸려 있어 그나마 정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해발 683미터의 삼태봉에는 정상을 알려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정상에 자리잡은 고고한 모습의 고송을 배경으로 배낭사진을 남겼습니다. 중미산까지 그 거리가 약 4.8 키로로 정상을 오르는 데 2시간은 넘겨 걸릴 것 같아 출발을 서둘렀습니다. 계속 하산하여 고도 420미터에 다다르니 평평한 흙 길이 시작됐습니다. 길 왼쪽으로는 참나무등 활엽수림이 주종을 이루었고 오른쪽의 명달리 방향으로는 소나무와 전나무등의 침엽수가 숲을 이루어 분명하게 대비되었습니다. 왼쪽으로 골프장을 끼고 돌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15시 25분 고도 520미터 지점의 능선에서 짐을 풀고 인절미로 요기를 했습니다.
급히 먹느라 목이 메여 다 먹지 못하고 반절을 남겼습니다. 잣나무 숲 속의 어둠으로 가깝게 느껴진 저녁시간이 마냥 퍼 질러 쉬어도 좋은 모처럼의 여유를 빼앗고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10여분 후 절터고개를 지났습니다. 여기서부터 중미산 정상까지는 약 2키로로 1시간 가량 걸릴 것 같습니다만, 계속 오르는 길이라 산행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뒤돌아보니 삼태봉이 먼발치로 멀어져 보였고 그 뒤의 통방산은 더욱 작게 보였습니다. 오르는 길 주위에 드문 드문 남아 있는 잔설에서 봄기운에 밀려 사라지는 겨울말미의 초라함을 보았습니다.
16시 25분 고도 790미터 지점의 능선에서 마지막 쉼을 가졌습니다.
남겨놓은 인절미를 마저 들어 시장기를 해소했습니다. 커피 맛도 진하고 그윽했습니다. 매번 산행할 때마다 커피를 끓여 갖고 가서인지 커피 끓이는 솜씨가 늘었다는 칭찬을 자주 듣습니다. 아무려면 솜씨야 별 것 있겠습니까 만은 산에서는 커피도 그 맛이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16시 40분 834미터의 중미산 정상에 섰습니다.
지난 해 6월부터 오른 용문산 일원의 말산 들이 한눈에 들어 왔습니다. 백운봉에서 용문산, 폭산, 그리고 봉미산을 잇는 주능선이 확연했고 바로 앞쪽으로 어비산, 유명산과 소구니산이 또 한줄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오직 산을 오르내리는 데에만 신경을 써 산의 참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는데 어제 비로소 이 모두를 여유 있게 카메라에 옮겨 놓았습니다. 약해진 햇살이 해넘이가 멀지 않음을 알려 주어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0.8키로의 까까비탈의 하산 길을 스틱의 도움을 받으며 조심스레 내려왔습니다.
17시 20분 양평의 서너치 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대략 14-5 키로로 추정되는 코스를 8시간 반이 넘게 나 홀로 걸어 솔고개-곡달산-통방산-삼태봉-중미산-서너치고개의 긴 산행을 마쳤습니다.
때로는 이 풍진 세상을 나 혼자 살아가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휴일 날 빈집을 지키고 있노라면 몇 시간이고 한마디도 안하고 지낼 때도 있습니다. 이런 때에는 고독이 묵언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들어옵니다. 그 고독을 벗하며 깊은 사색에 잠겨보면 사는 것이 그리도 시끄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요즈음 소음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풍문의 소음도 있고, 절망의 소음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생활인의 앙칼진 소음도 있고 악의에 찬 전투의 소음도 우리를 괴롭힙니다. 잠시나마 인간들의 소음에서 탈출하여 자연의 청음을 즐길 수 있는 길은 제게는 산을 오르는 것입니다. 그 고행의 시간에는 시끄러운 소음도 힘들어 도망가고 잡념의 소음도 더불어 사라져 맑디맑은 청음만이 같이 합니다. 이러한 고독의 시간을 얼마고 지내면 비로소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또 한번 깊은 고독에 빠질 수 있는 긴 시간의 나 홀로 산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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