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지역 명산/지역명산 탐방기

A-11.화야산(1-3)

시인마뇽 2007. 1. 3. 15:35

                                       화야산(3)


              *산행일자:2009. 10. 25일(일)

              *소재지  :경기가평/양평

              *산높이  :뾰루봉710m, 화야산754m, 고동산590m

              *산행코스:뾰루식당-뾰루봉-절고개-화야산-670봉-사기막골갈림길

                        -사기막골-삼회2리

              *산행시간:10시30분-17시30분(7시간)

              *동행    :총18명

              (대구참사랑산악회13명 및 서울팀5명)

 



  대구 참사랑산악회원님들과 같이 오르는 올 가을의 합동산행은 북한강변의 뾰루봉-화야산-고동산을 이어가는 선의 산행으로 치렀습니다. 해마다 한 번씩 서울과 대구를 번갈아 오르내리며 지속해온 합동산행이 이번 산행으로 6회를 맞았고 서울에서의 산행은 3번째였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로 지난 두 번을 모두 불참해 서울 합동산행은 제게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벌써부터 가슴 설렜습니다. 지난 봄 대구의 감암산을 오를 때 과분한 대접을 받은 터라 이번 합동산행을 주선한 서울의 성봉현님께서 사전답사를 하는 등 꼼꼼히 준비를 했기에 제가 할 일은 오직 반갑게 대구분들을 맞고 즐겁게 함께 산행하면 되었습니다. 북한강변의 고동산 쉼터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대구분들이 타고 온 버스에 올라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청평댐 인근의 뾰루식당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10시30분 뾰루식당을 출발했습니다.

잣나무 숲을 지나 다다른 능선 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460봉에 올라섰습니다. 재작년 9월 초에 이 봉우리를 지났을 때는 안개가 짙게 깔려 보이지 않았던 청평 앞 북한강이 이번에는 멀리 대구에서 오신 분들에 다소곳이 얼굴을 내보이고 인사를 해와 길손을 맞는 예의를 다했습니다. 왼쪽 뾰루봉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능선 길을 따라 오르면 오를수록 짙어가는 가을 색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어 이번 산 오름은 그다지 힘 든 줄 몰랐습니다. 송전탑을 지나 만난 암릉 길은 일부 구간에 로프가 늘어져 있을 만큼 경사가 급해 바위를 잡고 오르는 동안 짜릿한 손맛을 느꼈습니다.


  뾰루봉을 400m앞둔 평평한 둔덕에서 잠시 숨을 돌린 것은 절정에 이른 단풍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서였습니다. 땅바닥을 뒤덮은 낙엽들은 대개가 작년에 떨어진 것들이고 올봄에 새로 돋아나 한여름을 보내며 나무들에 에너지를 공급해온 나뭇잎들은 그 대부분이 아직은 나뭇가지에 붙어 있어 부지런히 이 산을 만산홍엽으로 바꿔가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클로로필이 지배하는 연초록색의 나뭇잎들은 이미 땅바닥을 나뒹구는 황갈색의 낙엽 덕분에 한여름의 진초록 나뭇잎들보다 그 푸르름이 더 두드러져보였습니다. 이 둔덕에 자리한 단풍나무들이 내는 주조색은 크산토필의 진홍색단풍들이었고 카로틴 색소가 내뿜는 노란색 단풍들은 존재만 확인시키는 정도로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황갈색과 연초록, 진홍색과 노란색이 앙상블을 이루는 가을 산 특유의 색의 향연에 저만 빠져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간시인 이성부님도 그의 시집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에서 덕유산의 불타는 단풍을 보고 “아름다운 빛깔들 모두 우리나라 산천에서 떠온 것임을 알겠다”고 노래했습니다.


  12시22분 해발710m의 작은 암봉인 뾰루봉에 올랐습니다.

깔끔하게 잘 다듬은 자그마한 정상석과 생긴 대로 자라나 줄기가 구부러진 꽤 큰 소나무가 서로 자리다툼을 하지 않고 뾰루봉 정상을 잘 지키고 있어 뾰루봉이 뾰로통해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정작 이 소나무가 서운해 하는 것은 불과 몇 해 전에 세워진 정상석을 배경으로 해 증명사진을 찍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 말없이 이 봉우리를 지켜온 자기들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일행들은 이 나무가 느꼈을 서운함을 바로 혜량해 소나무를 따로 모시고 같이 사진 찍은 후 하산했습니다.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뾰루봉에서 화야산쪽으로 10분가량 옮겨 평평한 곳에다 자리를 잡은 다음 일행들 모두 빙 둘러앉아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인절미 한 팩만 달랑 싸간 제가 배를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옆자리 대구분이 싸온 밥을 제게 나눠준 덕분입니다. 이 나라 최고의 석학이신 이어령선생께서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나누기 문화가 이 나라를 정보강국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우리선조들은 시루떡을 돌리는 것으로 온 동네에 정보를 알렸습니다. 그리고 시루떡을 받은 사람들은 “이게 웬 떡이냐?”하고 외쳤습니다. “누구네 생일 떡이다”이라거나 “아무개집 고사떡이다”라는 이 의문형 감탄사에 대한 답 속에 모든 정보가 들어있었으니 시루떡 자체가 하나의 메디아로서 여러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발신자의 감각이 그대로 전달되는 아날로그 식 떡돌림의 정보원리는 인터넷을 닮은 분산형이라는 것이 이분의 말씀이었습니다.   


  13시20분 점심식사를 끝내고 화야산으로 향했습니다.

655봉을 올랐다가 한참 동안 내려가 다다른 절고개는 이번 산행 중의 가장 깊은 안부로 왼 쪽 아래로 크리스탈 생수공장 길이 갈리고 오른 쪽으로 삼회리 큰골로 가는 길이 나있었습니다. 산행재개 40분 만에 내려선 절고개에서 선 채로 숨을 고른 후 670봉을 향해 가파른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아직도 마지막 봉우리인 고동산까지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는데 대구 팀 한분은 힘든 기색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아도 출발점인 뾰루식당의 표고가 70m 정도로 워낙 낮아 뾰루봉을 올라서는 데만 수직으로 6백m 넘게 고도를 높였으니 된비알 길을 급하게 치고 올라가는 것이 익숙지 못한 분들에는 힘든 코스였을 것입니다.


  670봉 어깨능선에 올라 물푸레나무 밭을 지나자 새빨갛게 물든 단풍이 넓은 능선을 꽉 채워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습니다. 이틀 전에 다녀온 지리산 능선 길의 단풍보다 훨씬 진홍색이 짙고 말끔해 이 정도라면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와 이번 산행에 동참한 대구분들도 흡족해 할 것 같았습니다. 새빨간 단풍 길을 걸으며 정호승님의 시 “길”에 나오는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하는 시 구절을 떠올린 것은 꽃이 보지 못하는 것은 그냥 잎이 아니고 단풍잎이라고 고쳐주고 싶어서였습니다. 가을이슬을 맞고 벌써 산 속에서 사라진 꽃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면 이 꽃들은 절정에 이른 단풍잎을 보고 엄청 시샘했을 것입니다. 열흘 가는 꽃이 없듯이 단풍 또한 매한가지여서 가을비만 내리면 곧바로 패잔병이 되어 땅 바닥을 나뒹굴 것입니다. 그래도 해를 넘겨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데는 같이 오른 우리 여인네들이 더 능할 것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네들이 단풍보다 못할 수가 없기에 하는 말입니다.


  15시12분 헬기장이 들어선 해발 754m의 화야산을 올랐습니다.

670봉에서 삼회1리 큰골로 길이 갈리는 십자안부로 내려섰다가 20분 가까이 더 걸어 오른 화야봉은 태극기가 펄럭이는 국기봉치고는 산마루가 꽤 넓었습니다. 산마루에서 휘 돌아보자 북한강은 내려다보이지 않았지만 용문산으로 이어지는 통방산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백두대간의 두로봉에서 서쪽으로 갈라져나간 한강기맥이 용문산 일원의 천사봉(?)에서 북쪽으로 갈라져나가 곡달산을 거쳐 여기 화야산에 이르렀으니 이번에 저희들이 걸은 산줄기는 한강기맥의 한 지맥이 될 것입니다.


  한강은 참으로 크고 유서 깊은 강입니다.

한강유역을 차지하고자 힘쓴 나라는 일찍이 한강유역에 둥지를 튼 백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삼국사기에 가장 먼저 세운 나라로 기록된 신라가 삼국의 한 나라로 제대로 대접 받기 시작한 것은 24대 진흥왕이 한강을 차지하고 나서였습니다. 고구려의 장수왕이 만주의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것도 기실 한강유역을 확보해 한반도의 종주국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1961년 1인당 국민소득이 89달러로 북한의 320달러에 1/4 조금 넘는 수준이었던 대한민국이 내년에 G-20 정상회의를 유치할 만큼 성장한 것도 한강의 기적에 힘입어서입니다. 이렇듯 이 나라의 명운은 누가 한강유역을 확보하느냐에 크게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한강은 태백산의 검룡소에서 발원해 서해의 경기만으로 이어지는 물줄기로 그 길이가 장장 497km나 됩니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은 여기 화야산에서 멀지 않은 양수리의 두물머리에서 한강에 합쳐집니다. 두물머리에서 북한강을 받아들인 한강은 파주의 오두산 앞에서 임진강도 받아들여 서해로 흘러갑니다. 다시 말해 임진강도 북한강과 마찬가지로 한강의 제1지류인 것입니다. 이렇듯 한강은 큰 강입니다. 이 한강에 물을 대는 울타리 산줄기가 바로 북쪽의 한북정맥과 북한 땅 분수령에서 속리산의 천황봉에 이르는 동쪽의 백두대간, 그리고 남쪽의 한남금북정맥과 한남정맥으로 총 길이가 1,200Km를 넘습니다. 물론 한강의 제1지류인 임진강을 둘러싼 산줄기를 빼놓고도 말입니다. 그 중간에서 한강본류와 북한강을 가르는 산줄기가 바로 오대산의 두로봉에서 양수리의 두물머리까지 이어지는  한강기맥이고 이 기맥의 한 줄기를 이번에 대구분들과 같이 오르내린 것입니다.


  화야산 정상에서 얼마간 남쪽으로 내려섰다가 올라선 636봉에서 고동산으로 향하는 능선은 서쪽으로 이어졌습니다. 봉우리 몇 개를 더 넘어 590봉 바로 아래 사기막골로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 닿기까지 눈에 보이는 것은 여전히 만산홍엽이었습니다. 재작년 9월 하루 종일 비를 맞고 이 길을 걸으면서 비를 흠뻑 맞은 단풍나무들을 보고 한 가을이 되면 이 산의 단풍이 내장산 못지않을 것이다 했는데 그 때의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16시24분 능선삼거리에서  사기막골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느린 걸음이 단풍에 취해 더욱 느려지는 바람에 고동산을 오르면 해지기 전에 사기막골에 닿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앞서 고동산으로 간 분들을 따르지 못하고 아쉽지만 고동산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삼거리에서 후미의 몇 분들과 함께 오른 쪽으로 꺾어 사기막골 길로 내려섰습니다.  잣나무 밭을 지나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서는 데 40분이 조금 못 걸렸습니다. 하산 길에 동행한 대구 임상택님의 “먼저 오른 분들의 산행기보다 2만5천분의 1의 지형도가 훨씬 유용하다”는 지적을 깊이 새겨들었습니다. 장마철이라면 물이 철철 넘쳐흘렀을 계곡이 오랜 가을가뭄으로 거의 말라있어 안쓰러웠습니다. 산행안내판이 세워진 계곡입구에 다다르자 방금 빠져나온 계곡을 어둠이 빠르게 에워쌌습니다. 정감 가는 돌담길을 지나 길섶의 달맞이꽃과 나눈 눈인사가 올 한해 마지막 꽃 인사가 될 것입니다.


  17시30분 사기막골 동네 큰 길에서 대기 중인 버스에 올라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낙동강과 한강은 서로 몸을 섞지 못하지만 서울의 저희들과 대구분들은 하루 종일 한강변의 산줄기를 같이 걸으며 마음을 섞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강물보다 훨씬 더 위대한 것입니다. 모두들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먼 여로에 긴 산행을 치러낸 대구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듯이 내년 봄 대구산행도 그리 먼 일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기다리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댓글

  • 아사비
  • 2009.10.30 10:
  • 대구 사람들 말도 억세고 씨끄럽고 투박할테인데요~~~그러나 의리 하나는 좋답니다.오래오래 좋은 인연 이어가세요...

     

    혹시 대구 쪽이 고향이신지요? 그쪽 친구 말은 아직도 다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도 우정은 변치 않습니다. 봄 가을로 번갈아가며 초대해 같이 산행하곤 합니다. 고맙습니다. .

     

    기찻길로 대구~경산~청도~밀양에서 청도입니다.소싸움과 청도 운문사 반씨감이 유명하답니다.학교는 대구에서 다녔고요.결혼은 어찌어찌해서 경기도 광주 경안에 허씨 부인 이랍니다.ㅎㅎㅎ 부인은 쌍령지나서 도곡이 고향이고요.
     
    경상도 분이 경기도분과 결혼하셨네요. 경안에 있는 광주중학교에서 3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집사람을 만나 결혼한 곳이기에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 안산, 즐산하시기 바랍니다.

     

     

    • 은둔자
    • 2009.11.02 22:25
    안녕하세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산하" 산행기보고 추적해 왔습니다. ㅎ

    그날 화야산-고동산구간 진행중 만났었습니다. 저희는 수입리쪽으로 하산했지요..

    저희 일행은 두명이였고요!!!!! 보통 홀로 산행하는 독립군입니다만, 그날은 직장 동료와 같이 했습니다.

    혹시 고동산-수입리 구간을 제가 여쭤봤었는데...친절히 답해주신 님이 아닌지요?

    다음에 어느 산에선가 또 만나뵐 날이 있겠지요!!! 그날 친절히 안내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뵙게 되어 반가웠고,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앞으로도 안전한 산행되시고 즐산하십시오!!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날 길을 알려드린 분은 저는 아니고 저희 일행분이신 것 같습니다. 저역시 정맥은 혼자 종주하는 독립군입니다. 항상 조심하시고 안산, 즐산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지방 출장같다가 오늘 올라와 산행기를 보다가 댓글이 있어 토를 달아봅니다.
    선배님 말씀대로 그날 길을 알려준 사람이 저입니다.
    그리고 은둔자님,
    이 댓글을 보실 수 있을련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산행길 항상 즐겁게 산행하시길 바랍니다.
    연이 된다면 산에서 다시 산행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화야산 (2)


                      *산행일자:2007. 9. 1일

                      *소재지  :경기가평

                      *산높이  :화야산755m, 뾰루봉710m, 고동산591m

                      *산행코스:뾰루식당-뾰루봉-절고개-화야산-고동산

                                -사기막골마을-고동산쉼터버스정류장

                      *산행시간:8시59분-17시55분(8시간56분)

                      *동행    :경동고 24기이규성, 29기정병기, 유한준 동문

     

         

      

      주룩주룩 끈질기게 비가 내렸습니다.

    어제 하루 하늘이 한 일이라고는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는 세레머니 치고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비를 종일토록 퍼부은 게 전부였습니다. 9월 들어 첫 산 나들이를 떠난 저희들도 힘들었고 요 며칠 동안 시도 때도 없이 뿌리는 변덕스런 비에 시달린 우리의 산하도 똑같이 힘들었습니다. 진흙탕 물이 유입된 강물은 시뻘겋게 변했고 아침부터 비를 맞은 산속의 나무들과 바위들은 후줄근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비를 무릅쓰고 화야산을 찾은 저희들이나 이 산에서 만난 다른 산객들이나 물에 빠진 생쥐모습을 하고 있기는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맙게도 짙은 안개가 하루 종일 이 산 속 군상들의 구지레한 모습을 얼마고 감싸주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비가 세게 내리면 웬만한 안개는 먼발치로 물러서는데 이번에는 까딱도 않고 끈질기게 비에 맞서 저희들을 숨겨주었습니다.

     

      벼禾자가 들어간 화야산(禾也山)의 이름이 참으로 독특해보였습니다.

    색다른 전설이라도 품음 직해 먼저 오른 몇 분들의 산행기를 검색해보다 3년 전 한북정맥을 종주할 때 제게 큰 도움을 주신 김용진님의 산행기에서 다음 대목을 발견하고 그러면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화야산은 벼 화(禾), 어조사 야(也)를 산명으로 쓰는 특이한 산으로 ......중략.... ,「“화”라는 이름을 가진 연인을 부르고 기다리다 생을 마친 어느 한 많은 사람의 애끓는 사연이 담긴 지명」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기는 하나 ......”라는 이 분 글을 읽고 나자 1970년대 사월과 오월이 부른 제가 좋아하는 “화”라는 노래가 바로 이 산에서 노랫말의 시상을 얻은 것이 아닌 가 했습니다. “화”라는 주인공도 그렇고 젖은 짚단의 등장으로 벼 禾가 연상되어서였습니다. 혹시나 어제가 “화”라는 연인을 기다렸던 사람이 기다리다 지쳐 생을 마친 날이라면 어제 내린 굵은 비는 통곡의 눈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 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또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오늘도 애태우며

           또 너를 생각했다 오늘도 애태우며


     

           이대로 헤어질 순 없다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끝까지 따르리

           그래도 안 되면 화- 안 된다 떠나지 마

           .........................후략............................

      

      아침 8시59분 뾰루식당 근처 들머리에 들어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춘천행 버스를 타고 가다 청평에서 하차해 택시로 들머리까지 옮겼습니다. 산본 집을 나설 때부터 지분적댄 빗줄기가 멈추지 않아 배낭에 카버를 씌우고 비 채비를 단단히 한 후 뾰루봉 가는 산길로 올라섰습니다. 물이 거의 흐르지 않은 계곡 바로 위 길로 들어서 시꺼먼 잣나무들이 빽빽한 숲길을 지났습니다. 가파른 산등성을 치고 오르다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능선 길과 만나 서서히 고도를 높였습니다. 산행시작 50분 만에 456봉에 올라 10분을 쉬는 동안 가져간 물로 목을 축였습니다. 


     

      11시 정각 해발710m의 뾰루봉을 올랐습니다.

    456봉에서 뾰루봉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까다로운 암릉 길로 가느다란 로프가 걸려있기는 하지만 조심해서 올라야하는 구간이어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2004년 3월 키나바루를 안내해준 승진이와 함께 이 길을 오를 때 잔설로 미끄러워 애를 먹은 기억이 났습니다. 그해 5월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을 한 후 지난 4월 처음으로 귀국한 녀석을 명동에서 만나 점심을 함께 들면서 오랜만에 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한 산들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2.1Km의 멀지 않은 길을 걸어 두 시간 만에 오른  뾰루봉에서 캔 복숭아를 들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챙겨온 이규성회장에 고마워했습니다. 오지 깊숙이 자리해 속세와 떨어졌다 해서 속리산으로도 불렸다는 뾰루봉에 오르면 다른 때 같으면 북쪽의 호명산과 이 산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청평호가 눈을 끌었을 텐데 이번에는 짙은 안개로 전망이 안 트여 기념사진만 몇 방 박은 후 4.98Km 떨어진 화야산으로 향했습니다. 오른쪽 아래 마이다스호텔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 655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비를 맞고 걸어도 마음이 느긋해지는 편안한 길이어서 오는 가을 낙엽을 밟으러 다시 와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12시5분 해발420m 대의 깊숙한 안부인 절고개로 내려섰습니다.

    655봉에서 무려 230m가량 고도를 낮추어 안부로 내려서기까지는 급한 내림 길이 아니어서 안부가 특별히 깊다는 생각이 별반 들지 않았는데 절고개에서 한참을 쉬었어도 670봉으로 올라서기는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왼 쪽 아래로 생수공장 길이 나뉘는 절고개는 사거리 안부로 강변 따라 찻길이 나기 전에는 양쪽 아래 마을주민들의 안부를 넘겨주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커뮤니케이션의 장이었을 것입니다. 절고개에서 2.64Km 떨어진 화야산 정상에 올라서서 점심을 든다면 이제껏 지켜온 오후 1시를 넘기기 전에 점심을 먹어야한다는 불문율을 깰 수밖에 없어 670봉을 지나 가던 길을 멈춰 섰습니다. 조금이라도 비를 가릴 만한 바위를 찾아 비좁은 곳에서 선채로 비를 맞으며 준비해간 성찬을 함께하는 것도 산행 중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가 될 것 같았습니다. 13시10분 다시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13시57분 헬기장이 들어선 해발755m의 화야산을 올랐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자 힘이 다시 났습니다. 절고개에서 670봉에 오르기는 힘들었지만 670봉부터 화야산까지는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았고 반 아름은 넘을만한 활엽수들이 들어서 지나기에 좋았습니다. 지척대며 끊이지 않고 내리는 비는 영락없는 봄비인데 빗줄기의 굵기와 세기는 틀림없이 여름비였습니다. 억척스레 퍼붓는 여름비에 굴하지 않고 화야산을 감싸고 있는 안개가 자욱한 산길은 차라리 몽환적이었습니다. 이 비에 저 안개마저 없다면 최악의 산행이 되었을 터인데 아스라한 안개 덕에 3년 전의 산행을 반추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시 3년 후에 이 산에 올라 이번 우중산행을 명징하게 머리에 떠올릴 수 있도록 체력과 더불어 기억력감퇴도 어떻게 해서든 막아 낼 뜻입니다. 비가 많이 와 화야상 정상에서 사기막골로 바로 하산할 것인가 아니면 예정대로 3.6Km 거리의 고동산을 거쳐 내려 갈 것인가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예정대로 고동산을 오르기로 결론을 맺고 나서 산행을 서둘렀습니다. 짙은 안개로 시야가 가려 빤한 길인데도 나침반을 꺼내 방향을 확인한 후 길을 나섰습니다. “3.5Km 고등산 방향”의 잘못된 스텐리스 안내판을 뒤로 하고 고동산으로 향하는 남서진 길은 진달래 길을 지나 안부로 이어졌는데 안부마다 사기막골로 내려서는 하산 길이 오른 쪽으로 나 있어 힘들고 지치면 언제든 중간 탈출이 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15시38분 해발600m의 고동산을 올랐습니다.

    안부에서 다시 올라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 헬기장이 들어선 599봉에 올라서기 전에 토요근무를 마치고 산에 오른 것으로 보이는 20명은 족히 될 만한 대규모 혼성팀의 산객들을 만났습니다. 제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그 회사 사장 분은 엄청 산을 좋아하는 분일 것입니다. 저도 2년 전 회사를 접기까지 한 3년 동안 매 분기마다 영업실적이 가장 저조한 영업소직원들과 함께 산행을 했는데 격려와 채찍을 함께한 산행이었기에 눈비를 가리지 않고 올랐었습니다. 뾰루봉에서 화야산까지는 활엽수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고 화야산에서 고동산까지는 적송과 잣나무들도 꽤 많이 보였습니다. 길가 소나무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북한강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고동산 정상은 암봉으로 비좁았지만 오른쪽 아래로 도도히 흐르는 북한강이 가깝게 보여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이산의 산마루가 물이 들어온다는 수입리(水入里)에 위치해 있음을 표지석이 알려주었습니다. 맞은 편 552봉을 에워싼 운무의 몸놀림이 또 하나의 볼거리여서 카메라에 실어왔습니다.


     

      17시55분 고동산쉼터 버스정류장에서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고동산에서 사기막골로 내려서는 하산길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바위를 내려섰습니다. 몇 곳에 더 있는 암봉을 바로 오르기도 에둘러 돌기도 했습니다. 1시간을 내려와 온 종일 우산을 들고 비를 가린 유한준동문이 쉬어가자고 해 쵸코렛을 꺼내들며 한참을 쉬었습니다. 암봉 길이 끝나자 이번에는 가파른 흙길이 이어졌습니다. 조심해서 지났는데도 엉덩방아를 찧는 것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연 궁둥이는 흙으로 뒤범벅이 되어 한참 후 만난 사기막골 계곡에서 물속에 텀벙 주저앉아 흙을 씻어내고 양말의 물기도 짜냈습니다. 산행 내내 빗속에서 사진 촬영을 맡아온 정병기동문이 땅에 떨어진 잣을 주워 까먹는 것을 보고 사기막골 임도가 잣 채취를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3년 전에 여기 사기막골을 지났을 때보다 많은 집이 들어서 골짜기 주변이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사기막 마을을 지나 고등산 쉼터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이내 청평가는 버스를 탔고 청평에서도 바쁘게 청량리행 기차에 올라 귀경시간과 비용을 모두 절약했습니다.


     

      청량리에 도착해 인근 음식점에 들렀습니다.

    하산주를 주고받으며 되돌아본 이번 산행은 끈질기게 비가 내려 구지레하고 힘들었지만 동문들과 같이 올라 즐거운 산행이 되었음을 기록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화야산(1)


                              *산행일자: 2004년 3월14일

                              *소재지  : 경기 가평

                              *산 높이 :뾰루봉710미터/화야산 755미터/고동산 600미터

                              *산행코스:뾰루식당-뾰루봉-화야산-고동산-사기막골

                              *산행시간:8시32분-16시25분(7시간53분)  

                              *동행      :정승진    


      올 들어 어제로 4번째 청평을 찾았습니다.

    2월에 호명산을 두 번 올랐고, 3월 1일 곡달산-통방산-삼태봉-중미산을 연이어 올랐으며 오늘은 북한강변의 뾰루봉-화야산-고동산의 연봉들을 약 8시간 걸려 모두 밟았습니다.  청평에 인접한 산들 중 아직도 밟지 못한 산들이 많이 남아 있어 앞으로도 몇 번은 다시 올 뜻입니다. 이번 산행은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새내기 승진이와 함께 했습니다.


      7시10분 청량리발 첫 기차에 몸을 실고 강변의 아침을 달리던 중 승진에게서 사탕을 선물 받고서야 오늘이 화이트데이임을 알았습니다. 청평역에서 17시 36분 귀경 열차표를 끊어 놓고 오늘 산행의 출발점인 청평댐에 인접한 뾰루식당까지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8시 32분 뾰루식당 뒤에서 들머리에 들어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잣나무 숲을 지나 뾰루봉에 이르는 능선을 올라타니 청평댐의 잔잔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 왔습니다. 맞은 편의 호명산과 북동쪽의 곡달산이 오늘 오르는 뾰루봉과 더불어 청평댐을 감싸고 있는 청평호 지킴이입니다.


      9시20분 송전탑에 조금 못 미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완연한 봄이어서 산행 중 냉기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겨울과 봄의 어름에 위치한 3월이 가장 산에 오르기 좋은 달인 듯 싶습니다. 그리 춥거나 덥지 않고 낮 시간도 길어져 몇 개의 산을 이어 오르기에 충분할 뿐더러 시야가 나무 잎에 가리지 않아 오늘처럼 안 가본 코스를 처음 밟는 산행에는 3월이 딱 알맞습니다. 송전탑을 지나 제법 경사가 심한 바위 길을 올랐습니다. 1970년대 대학시절에 암벽등반을 했음에도 여전히 바위를 타기가 겁이 났습니다. 200산을 마친 후 백두대간을 종주할 계획인데, 무사히 전 코스를 완주하기 위해서 먼저 인공암벽을 오르는 훈련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0시 32분 해발 710미터의 뾰루봉에 도착했습니다.

    우선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사방을 둘러보아 먼발치의 산들의 정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땀흘리며 올라 산상에서 마시는 커피 맛이 그윽하고 깊었습니다. 고동산 정상까지 약 8.5키로의 주능선이 북한강과 나란한 방향으로 나있어 산행 중 더러 더러 강물을 내려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여분간의 편안한  쉼을 끝내고 화야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밟는 주능선 길이 고즈넉하고 포근해서 힘든 줄 몰랐습니다. 즈려밟는 낙엽의 촉감을 발끝으로 감지해 냈고 산바람의 쌀쌀함은 얼굴이 읽어 내어 온몸이 상쾌했습니다. 이 길을 밟는 다른 분들도 흐뭇해 보였습니다.


      11시 52분 안부 가까이 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제게는 명품인 거버칼로 껍질을 깎아낸 사과 맛이 일미였습니다. 짬을 내 걸어 온, 그리고 걸어 갈 길을 몇 커트 찍었습니다. 제게는 길의 의미가 남달리 진하게 느껴집니다. 나 홀로 산행 시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밟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기에 말입니다. 지난여름 어비산에서 길을 잃고 2시간여 비를 맞으며 헤매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산에서만 길을 잃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보기에 길을 잃은 듯 잘못된 인생행로를 걷는 분들도 많아 보입니다. 가능하면 길은 혼자 걷는 것보다 같이 걷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설사 혼자 걷더라도 시인 정호승님의 “길”과 같이 “님 그리며 길을 걷는”다면 길을 걷는 것이 고행만은 아닐 것입니다.


      12시 8분 짐을 챙겨 출발했습니다.

    420미터대의 깊숙한 안부를 12시 11분에 지나 2.7키로 남은 화야산으로 내달렸습니다. 안부의 깊이만큼 다시 올라야 하기에 능선길을 오르내리는 종주산행에서는 깊은 안부는 바로 급경사의 치받이 길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표지판이 4-500미터마다 세워져 있어  혼자 왔더라도 길을 잃을까 걱정할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승진이와 알피니즘에 관해 몇 마디 나누었습니다.

    알피니스트를 해발 2000미터이상의 산을 오르는 록 크라이머로 한정한다면 저는 알피니스트는 될 수 없고 한낱 트레커에 지나지 않습니다. 산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소수의 알피니스트들이 독점하지 않는다면 알피니스트와 트레커는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준 높은 산악문화를 알피니스트가 주도해야 하듯이 저변의 대중적인 산악문화를 트레커들이 받처 주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알피니스트와 트레커는 상보적인 관계이지 서로 대척점에 서서 갈등을 일으킬 관계가 되어서는 아니 되기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 주는 아량이 필요하다는 것이 오늘의 결론입니다.


      13시 25분 755미터의 화야산 정상에 섰습니다.

    오전에 오른 뾰루봉이 까마득하게 멀리 보이는 저 먼길을 걸어온 저희들이 대견스럽게 생각되어 약 5키로에 걸친 주능선의 연봉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혹시나 김밥이 얼어 버릴까 걱정되어 겨우 내내 인절미로 대용해왔는데 오랜만에 승진이가 준비해온 김밥을 맛있게 먹었고  후식으로 남은 사과를 마저 들었습니다. 양평군과 가평군에서 각각 세워놓은 표지석을 배경으로 정상에 올랐음을 증명하는 사진을 남기느라 지체하는 사이에 뾰루식당에서 저희들보다 1시간 가량 늦게 출발한 남성팀 몇 분들은 벌써 고동산으로 떠났습니다. 그분들 정도의 주력이 뒷받침되어야 백두대간을 뛸 수 있을 터인데 제 경우 지구력은 자신하지만 주력을 더욱 강화해야 문제가 없을 듯 싶습니다.


      13시 50분 고동산을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고동산까지 3.6키로의 먼 거리를 한 시간 안에 주파해야 청평행 시내버스가 출발하는 사기막에 16시까지 도착할 수 있는데 무리한 산행이 될 것 같아 청평까지 택시로 이동하기로 마음을 먹고 서두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산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의 원인은 서두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몇 개의 봉우리를 넘고 넘어 고동산 정상에 이르기까지 고귀한 자태를 뽐내는 수많은 적송들과 곧게 뻗은 잣나무들이 여기 저기 군락을 이루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옛날부터 가평은 잣의 주산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어서 유실수를 심으라고 장려할 때만 해도 잣나무가 큰 재산이었을 터인데 요즈음은 열린 잣을 따기가 힘들어서 그 재산가치가 옛날만은 못한 것 같습니다. 한때 어느 경기도 지사 분의 아이디어대로 원숭이를 훈련시켜 잣을 따고자 시도했으나 꾀부리는 원숭이를 부려먹을 길이 없어 중단했다는 일화가 잣을 따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고동산 정상을 1키로 남겨 놓은 안부에서 잠깐 쉬며 깨끗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셔 일상에 더럽혀졌을 폐부를 씻어 냈습니다.


      15시 10분 600미터의 고동산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맥주 한 캔으로 목을 적신 후 또 다시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두물머리를 거쳐 서울로 내닫는 북한강의 도도한 물 흐름이 눈에 잡혔고 뾰루봉에서 화야산을 거쳐 고동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연봉들도 그 높낮이가 한편의 파노라마를 연출하는 듯 싶었습니다.


      15시 23분 하산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산 길에 지난 토요일 죽엽산 산행 중 친구로부터 배운 침엽수 식별 법을 승진에게 확실히 전수하였습니다. 소나무는 두 잎이고, 잣나무는 다섯 잎이어서 오엽송으로도 불리며, 리키다송은 네 잎이 달려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주된 식별 법입니다. 소나무, 잣나무, 리키다 송, 전나무, 낙엽송, 향나무, 노간주나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여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웬만한 침엽수를 오늘 하루에 모두 섭렵하였습니다.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이 계속되어 하산 길이 빨랐습니다. 거의 다 내려와서 전나무 숲을 지났는데 그 푸르름이 빼어나 저희들의 피로가 일시에 가시는 듯 싶었습니다.


      16시 25분 대로변의 민박집에 도착,  약 8시간 동안의 긴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택시를 불러 청평 역으로 나가 17시 36분발 청량리 행 기차를 탔습니다. 차 길은 귀경하는 차들로 꽉 차 보기에도 답답했지만 기차는 쏜살같이 달려 18시 40분 경에 저희들을 청량리에 내려놓았습니다. 역 근처의 깔끔한 집에서 순대와 동동주를 들며 성공적인 이번 산행을 자축함으로써 하루 일정을 전부 마쳤습니다.


      어제 오른 3개봉중 고동산만 처음 오르는 산입니다만, 제대로 산행기를 남겨 보고자 3개 산을 이어서 종주하였습니다. 내년 봄에는 비매품으로 그동안의 산행기를 모아 책으로 펴내겠다고 이 사람 저 사람에 알리고 있는 것은 책을 펴내는 일이 쉽지 않아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막상 어려운 것은 저의 지식창고에 보관된 언어의 재고가 바닥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소설도 다시 찾아 읽고 시집도 종종 읽어 창고를 채워가고 있습니다만 역부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산행중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교적 나 홀로 산행을 즐기는 편이라 얘기할 상대가 없어 입을 다물고 산행을 해왔는데 오늘은 승진이가 동행을 해주어 봇물이 터지듯 말꼬 가트여 모처럼 만에 다변을 즐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침묵의 시간에는 제 지식창고에 쌓아둔 언어의 재고가 불어나지 않는데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보면 그 동안 잠재웠던 새로운 언어들을 만나게되어 지식창고를 불릴 수 있음을 오늘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사는 것이 중요함도 배웠습니다.

     

      8시간의 긴 산행을 동행해준 승진에 감사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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