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지역 명산/지역명산 탐방기

D-2.바래봉

시인마뇽 2007. 1. 3. 16:51

                                                 D-2.바래봉

 

                                  *산행일자:2006. 5. 14일

                                  *소재지  :전북 남원

                                  *산높이  :바래봉1,165미터/세걸산1,206미터

                                  *산행코스:전북학생교육원-세걸산-팔랑치-바래봉

                                                 -운지사-철쭉주차공원

                                  *산행시간:11시40분-16시40분(5시간)

                                  *동행      :송백산악회 

 

  산꼭대기 모양이 스님들의 나무밥그릇인 바리를 엎어놓은 것 같다 해서 것 바래봉으로 부른다는 안내판의 설명이 참이라면, 이름부터 불교와 연을 맺고 있는 바래봉에는 꽤 많은 명승들을 배출한 대찰이 있음직한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래봉 바로 아래 자리 잡은 유일한 사찰인 운지사는 그 규모가 너무 작고 초라해 이 절에서 배출한 명승이 몇 분이나 될까하고  헤아리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겠다 싶었습니다. 그러기에 박대통령은 1972년 호주에서 양을 들여와 이곳 바래봉에다 풀어놓을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때 키운 면양들이 다른 풀들은 다 뜯어먹고 독이 들어 있는 철쭉만 남겨 놓아 오늘날 드넓은 철쭉단지가 조성되었다 하니, 다른 고산들처럼 이름난 절이 없었던 것이 이 산을 명산으로 만드는데 오히려 도움을 주었겠다 싶었습니다. 만약 바래봉 산줄기에 고승들이 머무는 큰 대찰이 있었다면 아무리 철권을 휘둘러온 박대통령이라 해도 불교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굳이 바래봉에다 목축장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제는 송백산악회를 따라 철쭉꽃으로 이름 난 바래봉을 다녀왔습니다.

전북 남원의 운봉에 위치한 해발 1,165미터의 바래봉은 정상주위의 날 등 여기저기에 산재한 철쭉들이 만개하는 5월 한 달 내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상춘객들로 시끌벅적한 인기 있는 명산입니다. 철쭉꽃도 지역에 따라 피는 시기가 확연히 달라 전남 장흥의 제암산에서 시작하여 바래봉을 들른 다음 소백산을 거쳐 강원도 정선의 두위봉에 올라 만개한 철쭉꽃을 차례로 볼 수 있다합니다. 이 길을 따라 남녘의 훈기를 실어 날라 차례로 꽃을 피운 후 이 꽃들과 더불어 사라지는 봄의 뒷덜미를 보노라면 매끈한 자리물림이 아름다우면서도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이 봄의 노작인 화사한 철쭉꽃들이 며칠 못가서 그냥 스러지는 것이 안타까워서 입니다.


  오전 11시 40분 전북학생교육원을 출발했습니다.

호법인터체인지에서 잘 못 든 길을 되짚어 돌아오느라 산행시작이 20여분은 늦어졌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5-6분 걸어올라 들머리로 들어서자 나뭇잎들이 내뿜는 피톤치드로 숲 속의 공기가 향기롭게 느껴졌습니다. “세걸산 2Km"라는 표지목을 지나 쭉 뻗은 잣나무 숲길을 얼마고 걷자 주 수종이 소나무로 바뀌었습니다. 세걸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너무 편해서인지 운동화만 달랑 신고 오르는 나이든 아주머니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양산을 받쳐 들고 산을 오르는 아주머니의 평상화가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깨나 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저희 산악회라면 당연 입산을 만류했을 터인데 그리하지 않는 산악회는 어떤 산악회일까 궁금했습니다.  세걸산 1키로 전방에서 세동치로 오르는 15분 남짓한 길이 이번 산행의 깔딱 고개였습니다. 산죽사이로 난 급경사의 길을 따라 오르며 길섶의 철쭉꽃과 첫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2시54분 해발1,220미터의 세걸산을 올랐습니다.

학생교육원 출발 1시간 만에 정령치-바래봉의 주능선과 만나는 세동치에 다다라 일행들과 점심을 함께 드는 것을 포기하고 오른쪽으로 0.5키로 떨어져 있는 세걸산을 들렀습니다. 정상에 오르자 오른쪽  방향으로 작년 8월 더위와 싸워가며 오른 고리봉이 아주 가깝게 보였고 이 능선 길을 오르내리는 산객들의 형형색색 등산복이 아직도 피지 못한 철쭉꽃들을 대신함을 보았습니다. 고리봉 -세걸산-바래봉을 잇는 산줄기가 지리산 주 능선과 고리봉-수정산-고남산을 잇는 백두대간 한 가운데로 뻗어나가 이 산줄기를 걸으며 양쪽 산줄기를 두루 볼 수 있어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17분 만에 세걸산을 다녀와 세동치에서 점심을 들면서 후미 대장 분이 한 여성대원의 행방을 알 수 없다며 고심하는 것을 보자 배낭에 꿰찬 무전기가 새삼 무겁게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13시15분 세동치를 출발해 5.3키로 남은 바래봉으로 향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새큰대는 왼쪽 무릎을 달래고자 정신없이 내달려야하는 호남정맥 종주를 포기하고 바래산으로 바꿔 오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비록 꼴찌로 하산하더라도 시간차가 별로 나지 않아 무리하게 뛰지 않아도 되어서였습니다. 길을 걸으며 틈틈이 기록을 하다보니 벌서부터 맨 꼴찌로 쳐졌는데도 산 죽 들과 철쭉나무사이로 난 좁은 길이 오가는 산객들로 꽉 차 선두와의 격차를 줄이는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제 막 새 봄을 맞이한 듯한 능선 길의 낙엽송이 연두색 새잎들을 선보여 상큼하게 느껴졌지만 기대했던 철쭉꽃이 보이지 않아 비슬산의 실패한 꽃 나들이가 반복되는 것이 아닌 가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14시15분 깃대가 세워진 1123봉에 올라 시원한 봄바람을 맞으며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세동치에서 이봉우리에 오르기까지 좁은 산길을 걸으며 여러 사람들과 어깨를 스쳤지만 인사를 나눈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서울 근교산을 방불 하는 수많은 인파들로 산길이 너무 붐벼 일일이 인사를 나누는 것이 번거로워서 삼갔는데 지나가는 어느 한 분이 이 산을 올라 이제껏 인사한번 제대로 못 받았다고 말씀을 해 큰 소리로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십자안부인 부윤치를 지나 7분 만에 1123봉에 오르자 비로소 먼발치로 불그스레한 철쭉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팔랑치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벌써부터 반팔을 입은 분들이 딸기나무의 가시에 찔릴까 겁을 내어 조심스럽게 걷느라 산행이 더뎠습니다만, 대체로 길이 넓어져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꽃들과 함께 머무르는 산객들도 많아졌습니다.


  14시51분 팔랑치 고개에 만개한 철쭉꽃을 카메라에 옮겨 담느라 발걸음을 멈춰 섰습니다. 두해 전 전남 장흥의 사자산-일림산을 종주 했을 때에는 줄기차게 쏟아지는 봄비로 느긋하게 관찰하지 못했는데 이번만은 시간을 갖고 제대로 보았습니다. 도시에 내려앉아 화단에 자리 잡은 철쭉꽃들보다 색이 덜 진해 화사함은 떨어질지도 모르겠으나 대신에 군락을 이루고 있어 훨씬 풍요롭고 넉넉해보였습니다. 이 꽃에 빠져들어 이 꽃들과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 사진을 남기는 여심을 읽는 것도 꽃을 보는 것만큼 즐거웠고, 철쭉꽃사이로 나무계단 길을 내 놓아 꽃밭을 훼손시키지 않고도 근접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한 시당국의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으며, 길 바로 아래 서 있는 고사목들도 제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줘 눈 여겨 보았습니다.


  15시 35분 해발 1,165미터의 바래봉에 올라 산 가운데로 폭 가라앉은 팔랑치를 중심으로 2-3백미터(?)의 원안에 피어있는 철쭉꽃 뜰을 내려다보자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아늑하게 느껴졌습니다. 바래봉 못 미쳐 삼거리에서 약수터로 향하는 중 임도 양옆에 서 있는 낙엽송을 지나며 생과사의 극명한 차이를 보았습니다. 오른 쪽의 죽어있는 나무는 비록 곧게 서있었지만 시꺼멓게 가지가 말라있어 죽음의 회색을 보여주었고 임도 건너 살아있는 낙엽송 줄기에서 돋아나는 새 잎들이 내보여주는 옅은 연두색은 약동하는 새 생명의 색깔이었습니다.


  제 친구 하이맛은 그의 산행기 공룡능선 종주기에서 “대저 생명이란 무엇인가? 중력을 거스리는 것입니다” 라며 생명은 중력에 반하는 끈질긴 것이라고 갈파했습니다. 늦은 가을 겨울잠을 자느라 나무들이 내친 단풍들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죽음의 방향이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과 일치함을 알아 챌 정도로 총명한 그라면 이른 봄 하늘을 향해 새순들이 돋아나는 것을 보고 생명은 중력에 반하는 끈질긴 것임을 알아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만, 제가 중력에 반하여 고산을 오르는 것이 바로 생명행위임을 안 것은 그의 산행기를 읽고 나서였습니다. 새들이 중력에 반하는 날개 짓을 멈춘다면 더 이상 날 수 없듯이 저 또한 중력에 반하는 산 오름을 멈춘다면 살아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 하이맛 친구에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약수터에서 생명수를 페트병에다 담은 후 날 등 따라 바래봉에 오르자 오른쪽 건너로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이 한 눈에 들어와 기뻤습니다. 고려 말 북쪽으로 멀지 않은 황산에서 왜구를 무찔러 왼쪽 아래 넓게 자리 잡은 운봉평야를 지켜 낸  이 성계 장군의 충절을 지켜봤을 바래봉이 그 후 역성혁명을 일으켜 조선왕조를 열은 이 태조를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했습니다. 비닐하우스가 잔뜩 들어선 운봉평야 건너로 대간 길이 뻗어 있어 바래봉이야 말로 설사 철쭉꽃들이 다 진다해도 지리산 주능선과 대간 길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기에 다시 오를만한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시40분 바래봉을 출발해 하산 길에 들었습니다.

삼거리 근처의 경사면에 조림한 구상나무가 다 자라면 이 바래봉에 또 하나의 명물이 추가될 것입니다. 맨 후미로 쳐진 제게 산악회 플래카드를 거둬 갖고 내려오라는 후미대장의 무전교신을 받고나서 제가 할일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운지사로 직행하는 길목에서 마지막 플래카드를 떼 내어 배낭에 접어 넣은 후 편안했던 임도를 버리고 솔밭으로 발을 들여 부지런히 하산했습니다.


  16시40분 주차장에 도착해 5시간 만에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꼴찌로 내려왔어도 먹을 것은 다 챙겨 먹었습니다. 비빔밥에 곁들인 시원한 맥주 한잔은 고맙게도 여성대원 한 분이 준비해주셨습니다.


  무릎을 달래고자 보다 쉬운 바래봉을 택한 덕분에 발걸음이 여유로웠고, 그래서 이것저것을 많이 보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많이 키울 수 있었습니다. 철쭉꽃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중력에 반하는 생명행위도 아름답고 소중하기에 저는 다시 산을 오르고 또 오를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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