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시인마뇽의 문학산책/시인마뇽의 소설습작

3.동강난 라디오

시인마뇽 2007. 1. 6. 10:21
                                                동강난 라디오


  하늘은 쾌청했다.

방금 날벼락이라도 내려 두 동강이 날 정도로 방정맞게 구름한점 없이 새파랬다. 오래 계속되는 가뭄에 기온조차 초여름을 방불하고 보면 반소매의 나들이가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워낙 작은 땅덩어리라서 한번 고기압권내에 먹히고 나면 전국 어느 구석에도 비가 뿌린다는 소식이 있을 턱이 없었다. 장기기상예보는 4월2-3일경 큰비가 오리라는 애드발룬을 띄웠지만 벌써 초닷새가 되었는데도 매섭게 파랄 뿐이었다. 하느님도 너무하시다는 푸념이 도처에서 들려왔다. 이곳 사창 골에서는 누구하나 이렇다 할 종교를 갖지 못한 터라 그들은 내심 깊이 자리한 샤머니즘에 푸념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현석의 푸념은 다른 이들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는 남달리 채소를 크게 벌여놓은 터라 푸념 이상으로 삶의 절규에 가까운 것이었다.


  현석이 채소에 손을 댄지도 벌써 4년째 접어들었다.

비를 제 때 내려주는데 하늘이 궁색만 떨지 않는다면 참외나 배추를 가꾸어 완전한 상품으로 출하하는 데는 자신이 만만할 만큼 그의 채소 경작 기술도 발전되었다. 애당초 4백 평 남짓한 보리밭에 큰맘을 다져먹고 참외를 심어본데서 그의 채소경작은 시작되었다.


  그해 역시 봄 가뭄이 대단해 그의 호기스런 출발은 찬물을 얻어맞은 듯 보기 좋게 실패였다. 4월 하순경이었을 게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복더위를 연상할 만큼 무더운 날씨에 휀풍의 기습으로 설상가상 전국에 건조주의보가 내려졌던 그 상황에 비닐을 씌워둔 채 물 한 초롱 제대로 안주었으니 참외가 꽃도 피기 전에 말라 죽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동네 아낙들의 입방구가 대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리, 조, 수수 등의 곡식과 콩, 팥, 동부와 녹두만을 심어 왔던 밭에다 난데없이 참외를 심는다고 호들갑을 떨었으니 현석의 아버지인 민배기 영감인들 불안하지 않을 수 없던 차에 참외가 덜커덩 말라죽고 나니 그런대로 끼니를 이어대던 가세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안양인가 시흥인가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에서 전근해온 국민학교 선생의 조언에 힘입어 모처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시도했던 현석으로서는 큰 낭패였다. 아낙들은 현석의 실패를 기대한 듯 모두가 입을 뾰족 대며 한마디씩 할 때마다 민배기 영감의 입에서는 연숨 쉰 한숨만 새어 나왔다. 그러나 현석에는 참외농사의 실패가 큰 교훈이 되었다. 그는 채소재배에는 무엇보다도 온도조정과 물 공급이 성공의 관건이라는 뼈아픈 교훈을 얻어냈다. 그래서 그는 이십 리가 훨씬 넘는 장터에 나가 온도계를 사왔다. 이제 더 이상 빈정대는 동네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는 채소재배에 열과 성을 다하리라고 마음을 다져먹고 온도계를 사왔다. 온도계를 움켜쥔 그의 손은 파르르 떨렸다. 마치 미지의 소녀에게서 사춘기의 소년이 예쁜 엽서를 받은 손 마냥  그의 손은 상하로 리드미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니 때면 장에 다녀오는 날은 몇잔 술에 떨어져 민배기 영감 몰래 자기 방에 들어가 두문불출했을 그가 술 생각을 달래가며 온도계를 산 것은 실로 큰 용단을 내린 것이다. 실인 즉 참외를 말라 죽인 그 날도 민배기 영감의 지시대로 보십을 사러갔다가 술에 떨어져 비닐을 벗기는 것을 깜박 잊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국민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백엽상을 지어 그 안에 온도계를 안치할 생각이었으나 흰 페인트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우선은 통풍이 잘되고 미쳐 햇살이 닿지 않는 마루의 벽에 못을 박고 온도계를 걸어 놓았다. 빨간 수은주가 매일 상하운동을 하는 것을 눈 심히 여겨본 민배기 영감의 자랑으로 한때는 사창골의 화제가 온도계였을 만큼 새롭고 진귀한 존재로 등장한 셈이었다.


  그런 온도계 덕분인지 토정비결의 가르침대로 동쪽에 사는 나무 목 씨 성을 가진 사람과 가까이 해서인지 그 이듬해 참외농사는 대 성공이었다. 오만여원은 그 밭에서 족히 벌었으니 말이다. 현석의 손은 두툼한 지폐가 주는 부피의 충족감을 즐기고 있었다. 오만원이면 당시로는 쓸만한 논 한마지기를 살 돈이었으니 과연 큰 돈임에 틀림없었다. 동쪽에 사는 목씨성을 가진 사람이란 바로 옆집에 사는 임경순이라는 17살 난 처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엄마, 저 집엔 웬 사람들이 저렇게 들끓어요?”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들 현석이네 온도계를 보고 제마다 한마디씩 하고야 돌아섰다. 온도계를 사온 후 며칠이 지나서였다. 궁금함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옷소매를 걷어 제치고 설거지를 하던 경순이가 엄마인 임씨 댁에 물었다.

  “현석이네 말이냐?”

임씨 댁  역시 막 구경을 하고 돌아오던 참이라 자랑도 할 겸 서두를 꺼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요 며칠을 잔치 집처럼 왔다 갔다 하니 궁금하잖아요?”

  “응, 그럴 테지. 그 영감 아들이 언더겐가 운도게를 사왔다 구나. 나도 방금 보고 왔는데 고놈 신통하던데. 아 글쎄 호 불면 그 빠알간 고추 같은 놈이 놀란 토끼모양으로 깡충 뛰어오르지 않던?”

아직도 재미나는 양 임씨 댁은 신이 나서 경순에게 설명을 계속했다.

  “ 그 언더겐가 뭔가 하는 고 놈이 춥고 덥고를 알아 맞춘다지 뭐냐? 그 현석이 녀석은 어디서 그런 것을 구했는지......”

이번에는 온도계보다 현석을 칭찬할 듯한 기세로

  “그 녀석, 보기보다 신통하더라. 말하는 게 아주 다부져. 올해는 채미로 실패를 했지만 두고 보라는 거야. 내년에는 고 놈이 있어 한 오만원은 자신 놓는다나.”

  “흥, 두고 보라지요. 그 따위 온도계 하나에 동네에서 그 야단이에요? 읍에만 가도 얼마든지 있는 걸 갖고......”

말은 꾸며내어 뾰로퉁하게 했으나 실인 즉 어서 설거지를 끝내고 한번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동했다.

  “아냐, 그렇게 코웃음칠 게 아니다. 눈빛이 달라요. 두고 보면 자연 알겠지만 다른 녀석들하고는 눈빛이 다르단 말이다. 얘, 너도 한번 가보지 않으련?”

임씨댁은 온도계보다 현석에게 더 마음이 쏠린 양 은근히 경순에게 한번 가보기를 권했다.

  “내가 가서 그 시건방진 소리 좀 작작하라고 쏴주고 와야지.”

경순으로서는 전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입속에 지어 내뱉고 부엌에서 나오려는데

  “너무 까불대지 말고 찬찬히 구경하고 바로 와라.”하고 염려하는 임씨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배기  영감과 임씨댁은 집을 서로 이웃하고 살아왔으나 두 사람 모두 자식하나만 데리고 살아왔던 참이라 별로 왕래 없이 여태까지 지내왔다.


  “이게 그 잘난 온도계냐? ”

경순은 처음부터 시비조로 한 살 손위의 현석에 말을 건네 왔다. 마침 밭에 나가려던 현석은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섰다.

  “응, 어때? 갖고 싶지?”

  “흥, 난 또 뭐 대단한거라고.”

코 방구를 뀌어대면서도 경순은 힐끔힐끔 현석의 눈을 훔쳐보았다. ‘과연 엄마 말이 맞아. 저 눈은 보통이 아니야.’ 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는 데 현석은 계속 싱글벙글대며 경순에 호의를 보였다.

  “한번 호 해봐. 저 빨간 고추가 네 키만 해질 걸.”

경순과 현석이가 서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때부터였다,


  현석은 벌어들인 오 만원을 전부 그 이듬해 참외농사에 재투자를 했다. 자기 땅 4백평에 임씨 댁의 호의로 평당 이십오원 꼴에 이만원을 갖고 팔백평되는 밭을 얻어  합치면 한나절 갈이가 넘는 밭에 전부 참외를 심었다. 채소에는 물관리를 잘 해야 한다며 귀띔해주는 경순의 말을 쫓아 궁리 끝에  라디오를 한대 샀다. 온도계에 이어 라디오가 이렇게 해서 사창골에 선보였다. 사창골은 다시 법석댔다. 이미자의 황포돛대가 울려나오자 “고것 참, 어찌 그렇게 구성지게 노래를 잘 한담.”하면서 상당수의 아낙네가 혀를 찼다. 연속극 장희빈이 시작되기 직전 그 주제가를 황금심이 구성지고도 연약한 목소리로 부르기 시작하면 동네사람들은 헛기침조차 조심하면서 귀들을 모았다. 마침 그 때의 국사가 오늘의 일인 양 “저런, 저런 요망한 고년이 나라망하게 할려고.”, “국부라는 한나라 임금이 그래 조런 요망한 계집에 빠지단 정말 큰일이군. ”암, 그래야지. 어지신 민비가 다시 입궁하게 되셨으니 과연 사필 귀정일세.” 하면서 불안과 안도의 감정을 교차해 가면서 진지해 했다.


  라디오의 다양한 프로는 사창골동민들에 큰 오락거리였고 임씨댁은 덩달아 현석을 칭찬하느라 침이 마를 새가 없었다. ‘그것 봐라 . 내 짐작이 꼭 들어맞지 않던?’ 현석은 물론 민배기 영감 역시 밭에서 진 종일 살면서 참외를 돌보았고 임씨댁과 경순이 역시 현석네 일이라면 만사제치고 와주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다시 참외재배는 큰 성공이었다. 삼십 만원이면 이곳 사창골에서는 이렇다하게 내 놓고 사는 부자 집 한해 농사의 절반을 넘는 큰 금액이었다.  순전히 참외만으로 30만원을 올렸으니 다시 김장배추로는 얼마를 더 올릴 것인가로 동네 사람들의 입담이 계속되었다.


  “20만원은 더 올릴 걸.” “20만원이야 뭘 해도 10만원이야 쉽게 올릴 걸.” “우리 주제에 10만원인들 적은 건가?” “내게 10만원만 있다면 아주 딴 집 살림 차리겠네.”

현석은 이 모두가 라디오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라디오가 정확히 일기예보를 해주어 적절하게 대책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구는 현석이 엄마가 살아 있을 대 불공을 드린 덕분이라는 둥, 누구는 현석의 인품에 복을 내렸다는 둥, 그러니 마음이 착해야 한다고들 공론에 분주했다. 그만큼 사창골의 농민들은 소박한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동네사람들의  칭찬이 더하면 더할수록 현석은 내심 경순을 고맙게 생각했다.

라디오를 사라고 귀띔해준 것이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산신령이니, 터줏대감이니, 부처님이니 하며 공을 그들에 돌리는 아낙들에 비해 경순의 생각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고것 참 똑똑하단 말이야.’ 하고 현석은 혼자 중얼거렸다. 가을배추까지 해서 그해에 현석은 45만원을 벌어들였다. 마침 김부자 집 영감께서 일손이 없어 농사짓기 힘들다고 내놓은 논 세마지기를 20만원에 사들이고 나머지 돈은 다음해 농사밑천으로 비축해 두었다.


  봄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태나 계속된 공은 사창골은 물론 노픈골과 건너 동네 굽두리, 도마메, 바랑골등의 젊은 청년들에 큰 자극이 되었다. 온통 비닐이 밭을 뒤덮었고 여기저기서 라디오 소리가 빵빵댔다. 밭에서 보리라고는 눈을 부벼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모두들 참외를 심고 벌써 부자라도 된 듯이 들떠 있었다.


  현석은 눈부신 변화라고 생각했다.

변화다. 더 큰 변화는 현서의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경순의 앞가슴이 요 몇 년 동안에 남모르게 부풀어 오른 것을 발견한 현석은 이제 경순에게서 처녀의 성숙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경순의 가슴은 꽤나 부풀어 있었다. 마치 비닐하우스 같이 둥그런 반원 꼴의 젖가슴이 확 눈에 들어 왔다. 얼굴 역시 많이 예뻐졌다. 전에는 조금 들어간 턱이 보기에 좀 뭣했으나 어느새 살이 붙어 이제는 어디에 가도 미인소리를 들을 만큼 아름다워졌다. 초롱초롱 굴리는 눈동자에 현석은 이제 예전처럼 맞대고 눈싸움을 하기가 거북해졌다. 몸을 가까이 할 제면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에서 여인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렇다. 이제는 경순에게서 소녀의 냄새가 사라지고 성숙한 처녀의 냄새가 흙냄새와 묘하게 조합되어 현석의 코를 끌었다. 현석을 끌어당기는 그녀의 매력은 머리카락뿐이 아니었다. 임씨댁을 꼭 닮은 그녀의 눈웃음도 일품이었다. 경순이 변한 것은 몸매만이 아니었다. 몸매보다 더 변한 것은 언어였다. 그전 같으면 톡톡 쏘아붙이고 배배 꼬아대기를 일삼던 그녀가 이제는 묻는 말에만 신중히 대답하고 괜스런 농담을 무척 삼가며 뼈있는 말만 골라 했다.

  “이제 일은 고만하고 시집갈 준비를 해야지. 벌써 나이 스물인데.”

참외 모를 모창에서 옮겨 심을 때였다. 단 둘이서 모를 떠내던 현석은 은근히 수작을 걸어보았다.

  “제 걱정 그만두시고 자기 앞일이나 가리세요.”

어느새 반말은 들어가고 깍듯한 공대말로 조심스럽게 대답하는 경순에

  “하기는 나도 장가를 들어야 할 텐데. 이제는 손수 밥해먹기도 지쳤어.”

또 실없는 소리를 건네 보았다.

  “그런데 현석씨는 어떤 여자를 원하세요?”

이름 끝에 씨자를 붙여가며 은근히 현석의 심중을 떠보는 듯한 가라앉은 음성이었다. 언어의 변화란 정신의 변화를 의미한다. 다시말해 언어의 성숙이란 정신이 성숙해지고 나아가 사상도 성숙해진 후에 가능한 것이다. 존대 말부터가 그러했다. 예사말에서 존대 말로 전이되는 것은 친구에서 흠모자로 탈바꿈했음을 은근히 알려주고 싶다는 의도가 숨어 있음에 틀림없다.

  “글쎄요. 경순씨라면......”

현석은 말끝을 흐리며 얼른 그녀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귀밑이 새빨개지면서 그녀는 대답할 바를 몰라 쩔쩔매었다.

  “우리 어머니 들으시면 경칠 소리 하시네요.”


  얼마 후 현석은 민배기 영감에게 올 채소가 자되면 경순이와 결혼을 하겠다고 허락을 받아냈다. 기실 민배기 영감역시 다 큰 사내놈이 밥을 짓는 것이 볼꼴 흉했고 벌써 나이가 오십을 넘은 터라 손주 하나 보고 싶었던 참에 아들의 얘기를 듣고 쾌히 승낙을 한 것이다. 벌써부터 현석을 참하게 보아왔던 임씨댁이 제들 좋으면 중신들 것도 없이 결혼식을 올려주자고 밀어붙여 지난 가을 11월에 일을 치렀다.


  경순과 결혼한 지 벌써 다섯 달이 지났다.

지난해 채소농사는 실패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온 밭에 몽땅 참외만 심었으니  값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 전해만 해도 참외 한 접에 3천원을 호가하던 것이 일등품도 천원을 받기가 힘든데다 현석은 한 밭에 계속 몇 년을 심고 보니 만월병인가 뭔가 하는 병에 꽃이 피기 전에 뿌리가 썩어 문드러지고 설상가상  종자를 잘못 사들여 참외의 단 맛이  떨어져 천원은커녕 그 반을 받기도 힘들었다. 온 동네가 아우성이었다. 부처도 별것 아니라는 둥, 현석이 때문에 밥은 먹을 것을 죽도 못 먹게 되었다는 둥 떠들어 댔으나 패인의 분석은 신통치 않았다. 현석은 참외농사에 크게 실패해 경순을 볼 낯이 없었고 그래서 결혼 얘기는 입 밖에 낼 수도 없어 아예 장가들기를 포기했었다. 그런데 임씨 댁의 생각은 달랐다.

  “이놈 저놈 다 채소를 할 수 있으면 아무 놈에나 딸을 주게, 흥.”

한번 저렇게 망해야 현석이 혼자서 채소로 재미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눈에 쌍심지를 틀고 채소를 심을 때 임씨 댁은 실패를 예상했다. 잔뜩 낙담한 현석에게 격려의 말과 함께 딸을 맡아달라는 임씨댁의 제의에 민배기 영감조차도 어안이 벙벙해서 입만 벌리고 있었다. 요 몇 년간 벌은 돈은 김부자 집의 논을 사들이느라고 다 썼고 그나마 남은 돈은 참외실패로 날렸으니 임씨댁의 호의가 고맙기는 하나 당장 무슨 돈으로 패물이며 국수며 살 것인가로 현석은 주저했다. 이를 눈치 챈 임씨 댁은 이렇게 말하면서 재촉해왔다.

  “돈이 있을 때 하면 남의 눈치볼랴  쓸 데 없는 돈이 많이 든단 말일세. 이번 기회에 아주 잘 됐네. 어째 패물 때문에 걱정 하는가 본데 그런 걱정 아예 말게. 우리 딸년도 그런 것은 딱 질색이네. 정 섭섭하다면 천천히 돈 벌어서 나중에 하면 되네.”


  임씨 댁으로부터 혼사 말이 정식으로 나 온지 보름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딸 네미 패물은 필요 없다던 임씨 댁이 현석에 양복이며 구두며 시계를 해주었고 자기 딸 경순에게는 네 돈 반되는 금반지를 해주면서 남들에게는 현석이가 작년에 채소해서 벌은 돈으로 해준 것으로 자랑하고 돌아다녔다. 임씨 댁의 생각인 즉 남들이 현석에게 처갓집 덕 보는 놈이라고 흉 들을까 서였다. 남보라는 듯 현석과 경순 내외는 금슬이 좋았다. 밭에 나가도 서로 손을 맞잡고 나머지 한손으로 각각 라디오와 연장을 들고 이미자의 황포돛대를 합창하면서 나갔다. 현석은 경순에 장모가 채소를 실어 나르는데 쓰라고 사준 자전거를 틈틈이 가르쳐주기도 했다.


  작년에 실패를 해서인지 비닐터널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현석은 경순의 충고대로 참외 대신 대형 무우를 심었다. 같은 땅에 참외를 계속해 심으면 병해가 심하고 또 이제는 참외시세도 다 한 듯싶어 무우로 바꿔 심었다. 3월 초순 비닐하우스 속에다 다시 조그마한 비닐 터넬을 만들어 파종을 시작할 때만 해도 가뭄으로 속을 태울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 이종하기에는 한달 가까이 시간이 남았고 더구나 라디오의 일기예보대로라면 전혀 걱정할 것이 없었다. 10-11일 사이에 우리나라 전역이 북태평양의 저기압권내에 들어 많은 비가 내린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무우를 옮겨 심을 땅은 흠뻑 목을 축일 것이고 한동안 다시 비가 안 온다 하더라도 모를 이식할 말일 경에만 조금이라도 내리면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11일이 다가왔어도 온다던 비는 내리지 않고 오후 늦게 이슬비만 살짝 뿌려 감질만 났다.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를 했던 라디오는 겨우 내내 이상고온에다 눈이 적게 와서 여기 저기 큰 화재가 났다는 불안한 소식만 전해주었다. 건조주의보가 전국에 내려졌고 산을 찾는 등산객에 버너를 휴대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령이 하루 간 내려졌다. 논에 벼를 심고 밭에 보리를 일구어 먹는 다른 사람들이야 벌써부터 가뭄에 신경을 안 써도 괜찮지만 쥐뿔 나게 채소를 한답시고 사서 걱정한다고 생각이 들자 내년부터는 올해 채소가 성공하면 그 돈으로 논이나 더 사서 부쳐 먹자는 민배기 영감의 얘기도 일리 있는 얘기로 들려왔다.


다시 20일 경에 큰비가 올 것으로 라디오는 주간 예보를 내보냈다.

이번에도 북태평양 기단의 영향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비란 비는 몽땅 북태평양에 묶여 있는 모양이다. 도대체 저 파란 하늘에 무슨 비가 숨어 있어 내리겠냐고 생각하자 북태평양 기단이 우리나라를 스쳐가야 그 속에 숨어 있는 비가 내리는 것이 맞겠다고 현석은 생각했다. 기왕 비를 풀어줄 바에야 진작 풀어줄 것이지 20일 경에야 풀어준다니 태평양도 너무 무정하다고 경순의 푸념이 대단했다. 20일 경에만 틀림없이 비가 온다면 그리 늦을 것은 없었다. 현석은 비닐터널 속의 무우는 아직 몇 잎 안난 터라 그리 많은 물을 길어 주지 않아도 되고 그때 가서 비만 흠뻑 와준다면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경순을 달랬다.


  그런데 이번에도 공수표였다.

20일이 지났어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전에는 흐리기라도 하고 이슬비라도 조금은 내렸는데 이번에는 아예 아침부터 눈 말거니 해만 빠끔거릴 뿐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고기압이 워낙 강해 북태평양기단이 밀려 블록(block)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제길 할, 돈만 있으면 그 북태평양에 한번 가보고 올 텐데.”

현석은 비닐을 벗기고 다섯 잎 난 무우에 물을 주면서 걱정을 했다.

  “가면 알 수 있나요? 생각조차 없는 비를 기다릴 것 없이 물을 푸는 게 어때요?”

거들어 주던 경순의 입에서 이제 기다림에 지쳤다는 듯 물을 푸자고 했다.

  “물을 푼다? 좀 기다려보죠.  30일경이면 온다고 하니까.”

  “그걸 어떻게 믿어요? 벌서 몇 번을 속고서도......”

  “사람이야 못 믿는 게 요새 풍조라지만 기계야 한두 번 고장 나서 틀린 것을 갖고 뭘 그리 야단이오? 그리고 물 풀 돈도 따로 마련된 것이 없잖소?”

천 평이 넘는 넓은 밭에 물을 퍼 대는 것도 수월한 것은 결코 아니다. 밭떼기가 한 군데 모여 있으면 그나마 좀 수월하겠지만 띄엄띄엄 서 너 군데 떨어져 있는데다 모두가 수원지인 개천에서 이 삼백 미터는 족한 거리에 있으니 물을 운반할 호스 값도 상당히 먹힐 것이고 밤낮으로 꼬박 하루를 퍼야 하니 실히 만원은 잡아먹을 것임에 틀림없거늘 그 돈을 어데서 융통해 낼 수 잇단 말인가? 작년에 채소 경작을 실패해 돈을 못 벌은 데다 장가드는데 얼마고 나머지 돈을 쓰고 나니 경제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채소 농사 밑천도 가을에 돌려주기로 하고 틈틈이 장모에게서 얻어내 쓰는 판에 무슨 돈으로 물을 푼단 말인가? 현석으로서는 그래도 믿을 것은 라디오 밖에 없었다.

  “내 반지 팔아요. 넉 돈 반이니까 못 받아도 만 오천 원은 받을 꺼에요.”

경순은 용단을 내린 듯 다부지게 말했다.

  “무슨 소리요? 장모님이 해주신 건데 그 걸 팔아요?”

현석은 딱 잘라 거절했으나 경순의 그 말이 상당히 고마웠다.

  “무우 팔아 다시 사면 되잖아요? 이렇게 땅이 포동포동해서야 모를 낼 수 없잖아요? ”

  “글쎄,  그 반지는 못 팔아요. 당신, 반지 파는 날에는 우리 집에서 짐 싸갖고 나가는 것으로 알라고요.”


  30일에 비가 온다고 하기에 31일에 이식하기로 결정했으나 그날 역시 비가 오지 않았다. 땅에서는 흙이 너무 말라 먼지로 되어 날라 갈 기세였다. 벌써 무우는 여섯 잎이 크게 나고 뿌리가 십 센티는 족히 내려 더 이상 비닐하우스 속에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저 마른 땅에 말려 죽이려고 내 심을 수 도 없으니 참말로 처지가 딱했다. 다시 경순은 반지를 팔아 물을 푸자고 주장했고 라디오에서는 다시 4월3일 경에 정말로 큰비가 온다고 예보했다. 중국 본토의 양즈강 기단과 북태평양기단이 우리나라 중부지방에서 전선을 이루어 비가 온다고 했다.  그동안의 오보를 미안해하듯 아나운서는 꼭 그리고 정말로 단어에 힘을 주고 말했다. 경순은 라디오에서 뉴스 끝에 일기예보를 해댈 때 마다 물을 푸자고 거의 신경질적으로 주장했다. 마치 라디오와 경순의 대결인 듯싶었다.  현석은 다시 라디오에 기대를 걸었다. 참외농사 성공이 라디오 덕분이라고 경순이가 귀띔을 해주었을 때도 고개를 끄덕였던 그였다.

두 기단이 전선을 만들면 백발백중으로 비가 온다 함은 도시에서 전근해온 그 선생님에게서 확인한 현석이 라디오에 거는 기대는 거의 광신적이었다.  현석은 라디오도 그 선생님도 비가 온다고 하니 한 이틀 기다려보자고 경순을 진정시켰다.


  모판의 무우는 잎이 다시 나와 여덟 잎이 되었다.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어 4월2일에는 이식을 단행했다. 물통으로 길어온 물을 한 구덩이에 1/4바케츠 정도 부어가며 어렵게 이식을 끝냈다. 내일이면 비가 오리라는 희망적인 관측이 가능할 만큼 구름이 하늘에 있었던 것은 아니나 일기변화는 수분을 다투는 만큼 힘든 일도 참아가며 일단 본 밭에 이식을 끝내고 비닐로 터널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4월3일이 지나고 식목일에도 하늘은 계속 맑았다.

오히려 바람만 불어 건조한 땅에서 이식할 때 조금씩 준 물기마저 빼앗아 갔다. 무우는 피식 피식 말라가고 있었다. 이리도 가뭄이 끝나지 않고 계속될 줄 알았으면 경순의 말대로 진작 물을 퍼줄 것을 이제 반지를 팔아 물을 푼다 해도 읍내에서 양수기를 들여와야 하기에 이틀이 지나야 가능하기에  단 몇 시간이 아쉬운 이 때에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무우가 말라 죽어가는 광경은 가관이었다. 수분이 부족해 죽어가는 무우는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사람들처럼 현석에게는 처참하게 보였다. 아니 잔인하게 보였다.

  ‘저런 꼴로 죽어가는 것을 내보이는 무우가 잔인한가, 저렇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내가 잔인한가, 아니면 저 꼴을 만든 라디오가 잔인한가? ’  이제는 밭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라디오는 다시 오늘 큰비가 온다고 빵빵대는 모양이었다.

하늘을 쳐다보니 파랗다 못해 시퍼렇다. 마치 잘 갈아진 칼날과 같이 서슬 퍼런 그런 색이었다.

  “제길 할. 비는 얼어 죽을 비가 온담.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는데 무슨 비가 와.”

누구한테 들으라는 소리인지 아니면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다짐의 소리인지 알 수 없으나 현석의 말소리는  한마디 한마디가 분명했다. “-비가와.”하고 그의 말이 끝났고 이제는 사람의 말소리가 아닌 금속성 소리가 땡그랑  하고  바로 그 뒤를 이었다.

  “북태평양에서 강하게 발생한 중심기압 990밀리바의 열대성 저기압이 아침 10시 현재 목포 앞바다 동북쪽 12키로 전방을 지나 시속 30키로 속력으로 북상하고 있습니다. 서울지방은 오늘 오전부터 큰비가 오겠으니 계속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부탁드......”

아마도 “립니다.”로 끝을 맺고자 했을 터인데  땡그랑 소리가 대신했다. 현석이 라디오를 집어 들어 안마당에 냅다 팽겨 쳐 라디오가 동강났기 때문이었다. 분한 마음에 다시 하늘을 쳐다보니 먹구름이 급작스레 끼어들기 시작했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비가 한 두 방울씩 뿌리기 시작했다.

  “여보, 비가 와요. 어서 밭에 나가 봐요.”

경순이가 밭에서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그래, 비가 오는 구만요. 그동안 비 때문에 고생 많이 했소. ”

현석은 고개를 떨구며 힘없이 대답했다. 비가 온들 이제 다 죽은 무우에 무슨 소용이 닿겠느냐는 체념을 읽을 수 있었다.  경순은 동강난 라디오를 맞추면서 현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읽었다.

  ‘여보, 진작 당신 얘기를 들을 걸. 이제 비가 온들 뭣하오. 이제는 저 라디오도 거짓말은 더 못하겠지.’ (1973.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