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시인마뇽의 문학산책/시인마뇽의 소설습작

1.어떤 죽음(1973)

시인마뇽 2007. 1. 4. 07:27
 

                                            어떤 죽음


  오늘을 살아왔던 한 친구가 남긴 풍문을 전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아니 죽음을 이끄는 풍문만이 살고 있는 오늘을 증언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우리는 그 친구의 이름을 M이라 부릅니다.


           *                        *                        *

 

  희뿌연 담배연기 속으로 여인의 얼굴이 기어들어 왔다. 빨간 코트 깃을 세우고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여인의 얼굴은 조금은 갸름한 편이며 작은 눈매에 얼굴 전체가 풍기는 인상은 그래도 날카롭다고 표현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연기마저 갸름해졌다.


  M은 기차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가 찾는 곳은 잔디가 널게 깔린 평원의 소백산이다. 등산용 간이지게에 버너, 코펠, 의류, 침구와 3박4일분의 식량을 챙겨 급하게 청량리 역으로 나가 20시30분 발 중앙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밤을 달리는 기차는 썰렁하다 못해 청승스러웠다. 을씨년스럽게 제 멋대로 자리 잡은 손님들에게서  요새 유난히도 떠들어대는 질서를 찾기에는 빈자리가 제법 있었다.


  한 가을의 20시30분은 늦은 시간이다.

M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차창 밖으로 눈을 주었을 때야 비로소 기차가 치악 역을 지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단양팔경을 구경하겠다고 나선 예쁘장한 계집아이와 담소를 즐기느라 원주 역에서 기차가 멈춘 것도 모른 채  치악역을 지난 것이다. 졸업여행 아니 졸업을 사칭한 여행을 몇 번이나 즐긴 후라 대학 4년간 마지막 여행일 수도 있는 이번 여정에 M은 감히 졸업여행이라 명명하지 못한 채 소백산등정에 나섰다.  작년의 위수령에 이어 1년 만에 선포된 계엄령으로 학교가 문을 닫아 언제고 기회를 노려오던 서울에서의 탈출이 다시금 가능하게 되었음은 서글픈 다행이었다.


  모두의 아우성이 가슴앓이 메뚜기처럼 내연되어가고 모두의 사색이 코트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썰렁한 늦가을인 11월 14일 24회 생일을 자축도 할 겸해서 집을 나선 M은 담배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생각 속에 잠겨 있었다.

  “재 떨어져요.”

바로 옆에 자리한 계집아이의 관심이었다.

  “네?”

사라져가는 여인의 얼굴을 아쉬워하는 M의 대답에 계집아이는 바로 되받아 물었다.

  “재 떨어지는 것도 모르면서 뭘 그리 생각하고 있어요? ”

계집아이는 하얀 잇몸을 내보이며 밖으로 웃음을 조금 새어보였다.

  “네?”

  “두고 가시는 연인이라도 있나보죠?”

  “네”

  “아이 답답해라. 뭐가 네에요?”

계집아이의 신경질적인 발언은 그래도 애교 있는 관심이었다.

  “그 네 네 하지 말고 소주 한 잔 들지, 학생?”

듬직한 체구에 사십은 실히 보이는 앞자리의 중년남자가 말을 건네 왔다. 일찍부터 코를 골고 있어 계집아이와의 얘기에 잔뜩 신경을 써왔는데 어느새 술을 사서 권해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고맙습니다만 술을 못하는 데요?”

  “남자가 술도 못해요?”

역시 계집아이가 웃음 섞인 관심을 보내왔다.

  “네. 조금도 못합니다.”


  M이 술을 거절하는 것은 그의 말대로 술을 거부하는 체질 때문은 아니었다.

계엄령과 젊음을 바꿈질당한 요즈음의 대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술집을 찾는 것이 못마땅해서였다. 어제만 해도 그러했다. M이 나와 즐겨 찾던 청진동의 해심집에 발을 들였을 때 한 낮인데도 꽤 많은 대학생들이 술을 즐겼다.

  “파르라니 깍은 머리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젊음의 분노뿐이 아닌가? 장발족을 구경할 수 없는 오늘의 사회에서 젊은이 들이 탈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술 뿐 이지. 이 사회가 술을 강요하고 있네. 난 저들을 이해하네. 차라리 동정이 가네.”

그 분들은 교수였을까? 장소가 장소니 만큼 용기 있는 발언이었다. 작년에 위수령발동을 못 마땅히 여긴 Y대학의 교수 한분이 사표를 제출했다는 1단기사의 활자가 대문짝만하게 눈에 들어왔었는데 올해는 그마저 이어지지 못한 참에 정말 귀가 번쩍일 만한 말이었다.

  “자네 얘기에 나도 동감이 가네만 동정이 동정으로 끝날 때 그것은 시선일 뿐이네. 시선이 쌓이면 체증이 되지. 왜 젊은이들이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술이어야만 하는가? 술집은 현장이 아니네. 광장도 아니고. 술집은 그저 풍문만을 낳는 곳이 아닌가? 젊은이들이야 풍문만을 먹고 살 수는 없지. 아니 그들은 풍문에서 뛰쳐나와 현실을 만나야 하네. 그들이 굳이 피한다면 우리가 그리로 내쫓아야지.”

이분 역시 교수인 듯싶었다. 풍채에서도 감지할 수 있었고 탁자 옆에 놓여진 낡은 가죽가방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보다 저렇게 젊은이들을 배려해주는 분들이 교수가 되어 줄 것을 더욱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분들 말씀이 고맙더군. 술집만이 우리가 도피할 수 있는 곳은 아니지. 난 우선 서울에서 탈출해야겠네. 대학가에 새로 부임한 파수꾼들과 같이 호흡하기가 싫어졌네.”

M의 여행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졌다. 급작스런 출발이라 벌써부터 산을 다닌 그만이 여행길에 올랐다. 그의 여행은 술집에서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현장을 향한 여행이랄 수는 없었다.  차라리 밀실을 구축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벌써 단양역이다. 기차의 멈춤은 수 초 동안 인 듯싶었는데 계집아이와 중년남자는 그 시간을 쪼개어 잽싸게도 하차했다. 그것도 무사히 다녀오라는 인사를 빼놓지 않고 말이다. 허전했다. 그래서 싸늘했다. M은 다시 담배를 꺼내 물고 성냥불을 그어댔다. 다시 담배연기 속으로 여인이 기어 들어왔다.

  “올 가을에는 산에 가실 계획이 없어요?”

작년 9월 어느 날 학림다방에서 그녀가 말을 건네 왔다.

  “소백산을 다녀 올 까 합니다.”

  “네? 언제요?”

  “10월20일 전 후해서 3박4일정도 예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동행이 된다면 거부는 안하시겠죠?”

이것은 분명 뜻밖의 소리였다. 소리가 아니라 환성이었다. 봄에는 J극장에서 상영한 마운틴 영화를 같이 보자는 제의를 가볍게 거절했던 그녀가 먼저 동행을 청해와 말문이 막힌 M에 그녀의 재촉은 대단했다. 꼭 장난만 같았다.

  “아니 정말 같이 가시겠습니까?”

  “승낙하시는 거죠? 고마워요. 술은 제가 내죠. 희방사의 법주가 유명하다 하던데요.”

그녀와의 동행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졌고 서울에서의 탈출이 그녀와 합창한 구호였다.

  “우린 정말 탈출하는 거죠?”

  “그럼요. 모든 굴레를 벗어버리고 산에서의 침잠이 소백에서 이루어짐은 길이 기억할 만 합니다.”

  “그래요. 인간은 멍에를 벗으려고 누구나 애쓰고 있나 봐요. 인간의 멍에라는 모옴의 소설 있잖아요? 필립이라는 남자의 끈질긴 시도는 살만하던데요. 밀드레드보다는 시골 목화밭의 셀 리가 필립이 지고 있는 멍에를 벗기기에 적합하겠대요. 모옴도 그렇게 얘기하는 듯도 싶고. 그럼 나의 멍에는 뭔가?”

  “바로 인간입니다. 부모, 형제, 학교, 국가 모두가 멍에죠. 나를 낳아주었다는 이유만으로 혼자 늙을 수 가없다고 투정하고 엄마 뱃속이 너와 나의 고향이라고 같이 굶자고 졸라대는 가하면 국민 됨은 오직 나의 덕이니 너희들은 세금을 내라하고 또 학교는 어떻습니까?”

M은 스스로의 요설에 놀랐다. 이런 식으로 멍에를 크게 하다가는 삶 전체가 짐이 아닌가 싶어서다.

  “심했다. 이러다간 내가 짐이 되겠는데요. 하긴 학교도 그렇죠. 매일 출석하라고. 그것도 먹을 것과 돈을 갖고.”

  “그런 것에서 탈출이 제 덕분에 이루어지는데 겨우 술 한 잔으로 때우려 합니까?”

  “바로 그 덕분이라는 게 멍에에요. 어떤 사실은 사실로 존재하는 것으로 끝내야지 왜, 누구 덕분에 그런 것은 논리학에서나 다룰 문제죠.”

날카로운 되받음이었다.

  “크게 당하는데.”

  “안 그래요? 부모, 형제, 국가 모두가 요구하는 게 뭐 에요? 나 때문에, 내 덕분이라고 주장하고 있잖아요?”

  “옳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견은 언제 키웠습니까?”

  “ 그건 또 무슨 숙맥 같은 소리예요?”

그녀는 남달리 칭찬을 거부하는데 덧보이는 데가 있었다. 서울에서의 탈출 론을 하차준비로 끝낸 곳이 단양 역이었다.


  따끈한 차 한잔 생각나는 쌀쌀함이 엄습해왔다.

M은 연기로 가슴 속을 씻어내 듯 깊게 담배를 빨았다. 짐이라야 챙길 만한 것도 없었다. 구두끈과 스타킹을 점검한 후 간이지게를 걸머메고 출구로 나섰다. 바깥 공기는 싸늘했다. 기차의 속도로 더해지는 찬바람에 그동안의 꿈에서 깨어난 듯 M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인삼으로 널리 알려진 풍기 역에 도착한 것은 청량리를 떠난 지 6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볼 품 없이 길게 늘어진 작은 읍에 보급은 물론 특급이 머물 만큼 호주머니가 듬직한 장사꾼들의 관심이 대단하다함은 익히 들어온 터다.


  02시30분.

열연의 연정에 휩쓸려 순간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자 하는 불면의 밤에도 잠을 청했을 시간이다. 그 시간에 여기 여관업자들의 환성이 대단하다. 그 환성이 그들이 추구하는 돈벌이와 직결된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흔히들 진하다는 연애의 감정보다 더 함을 알아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을비는 그리 칭찬받는 편은 아니다. 단풍을 떨구어 낙엽을 재촉하는 잔인성으로 소녀들의 미움을 도맡아 받으면서 좀 멈추어도 관계없을 것을 눈치 없이 빗발은 계속되고 있었다. 역을 나서자 머리가 차가워졌다. 숙소는 역에서 불과 2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한 조촐한 여관집이다. 작년 그녀와 동행 시 찾은 그 집이다.

  “서울에서 탈출은 성공한 셈이죠?”

대문을 열고 앞마당을 지나 왼쪽 구석으로 들어서자 골방에서 반기는 듯한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 내일 아침에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비는 안 올까요? 날이 잔뜩 흐렸던데.”

  “탈출은 언제나 악조건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탈출예찬론자가 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비가 홍수가 되더라도 내일 떠날 예정입니다.”

짐을 푼 후 두 다리를 쭉 뻗고 나니 그녀의 환상과 졸음이 동시에 엄습해왔다. 누가 말했던가? 둘이 보는 벽보다 혼자 보는 벽이 더 외롭다고.


  “안녕하세요?”

올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의 남동생이 인사를 해왔다.

  “아니 자네를 여기서 만나다니 어인 일인가? ”

  “누나와 같이 왔습니다.”

  “누나와? 그건 또 왜?”

의외의 일이 생겨 잔재미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여행 덕이라지만 그녀가 여기 석윤암에 와있다는 사실은 뜻밖의 일이었다.

  “저기 오네요. 국망봉에 오르겠다며 점심 먹고 떠났는데 벌써 오네요.”

  “그렇군. 그런데 그동안 자네는 잘 있었나?”

  “ 네. 잘은 있었지만 입시에 실패한걸요.”

  “상심말 게나. 내년에 합격하면 되지 않겠는가. 출발이 늦다고 반드시 늦게 도착하는 것은 아니니까.”


  소백산은 이번으로 3번째 찾는 것이지만 몇 번이고 다시 찾고픈 좋은 산이다.

천여미터의 고지에 자리 잡은 석윤암은 그 높이로 전망이 일품이다. 해발 1,400여미터의 국망봉을 한 시간 거리에 두고 있고, 풍기에서 청다리를 지나 초암사를 거쳐 오르면 5-6시간이면 족한 조촐한 코스다. 청다리까지 이어지는 옛 선비들이 유유 작작했을 법한 계곡을 따라 오르면 제법  산내음을 짙게 풍기는 초암사에 이른다. 여기서부터 민가는 없고 두어 채 화전민의 집이 있을 뿐이다. 그들 화전민조차 여름 한 때 더위를 피해 온 피서객처럼 벌써 풍기로 내려갔다. 말이 화전민이지 겨울이면 풍기에서 부유하게 살림을 꾸리고 늦은 봄부터 초가을까지만 밭을 일구어 옥수수와 감자 등을 심어 화전민 고유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그들이다. 초암사를 지나면 계곡의 폭은 좁아져 급류가 되고 물살이 거세진다. 그리고 오솔길이 시작된다. 복중에 발을 담가도 냉기가 서릴 찬 물과 문답하며 2시간가량 오르면 45도 이상 경사진 가파른 언덕받이를 오른다. 청다리에서 4시간 가깝게 걸어 이곳에 이르기에 오직 역부족을 실감할 뿐이다. 간신히 반시간 가깝게 올라 석윤암에 도착하면 7-8미터 높이의 불상을 만나는데 완전한 석불입상이랄 수는 없어도  규모가 대단하고 그 돌 밑에 아낙들이 시주하는 곳이 있다. 전설로는 돌부처의 귀를 통해 쌀이 흘러 내려와서 이곳 암자에 거처하는 분들에 제공되었는데 임란 때 왜병들이 그 귀를 빠개어서 지금은 그저 전설만을 되씹을 뿐이다. 때가 11월이니 만큼 여름철 짙푸른 옷으로 치장했던  넓은잎나무 들은 모두가 알몸이었고 더러는 내내 벌거벗은 고사목들도 눈에 띄었다. 석윤암 암자 앞에는 제법 너른 뜰이 있어 야영하기에 적합하고 조금 오른 쪽으로 돌면 바위가 천정인 방이 있다. 희방사에서 출발하던 풍기에서 출발하던 산에서 첫 밤은 이곳에서 묵게 된다. 몇 년 전부터 비치해둔 방명록을 보여주는 주인의 자랑이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안녕하십니까?”

  “어머 왠 일이세요?”

  “서울에서 탈출했습니다.”

  “역시 탈출예찬론자로서 손색이 없네요. 또 혼자세요?”

  “네. 동생한테서 와있다는 얘기는 방금 들었습니다만 탈출은 아니시겠죠?”

  “동생이 아니라고 하던가요?”

  “지금 막 와서 자세한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휴식을 위해서랄까. 자세한 얘기는 전번의 그 방 있죠? 바위방말에요. 거기 가서 해요.”


  밤이 깊숙한 시간에 그녀와 M은 다 꺼져가는 캠프화이어를 뒤척이고 있었다.

  “어머, 별이 구름에서 탈출했네요.”

회색의 하늘에서 첫 눈을 기대했던 M은 시덥지않은 듯

  “별로 반갑지 않은 탈출이다. 난 눈이라도 와 줄 것을 기대했는데.”

  “벌써 가을을 거부하는 건가요? 그새 가을이 싫증났나요? 서울에서도 같은 기분으로 도망친 거죠?”

그녀는 계엄령으로부터 탈출의 충분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 사회가 젊은이들에 술을 권하고 있습니다. 술만이 유독 젊은이의 문화라고 떠들어대고 있어요. 난 그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술이 주는 문화, 그것은 풍문만의 문화입니다. 분노의 풍문도 있고 좌절의 풍문도 있고 자기발견의 풍문도 있습니다. 더러는 격려의 풍문도 들었습니다. 풍문만을 먹고 사는 내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탈출의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왜 현장을 찾지 뭐 하러 이곳에 왔어요?”

그녀의 지독한 반문이었다.

  “그렇지요. 하지만 난 현장에서 행동할 만한 기운이 없습니다. 나뿐만이 아닙니다. 젊은이들 모두가 그래요. 서글픈 좌절이죠.”

  “그 좌절을 어떻게 수용하죠? 이렇게 산으로 도망쳐 오는 것으로 끝나나요? 그러면서도 젊음은 혼자 특허 낸 양 젊음 젊음 해요? 그런 위선이 어디 있어요?”

적지않이 분개한 그녀의 목소리였다. 위선, 그 것도 옳은 소리일 수 있겠다. 위선이란 결국은 컴프렉스를 은폐하기 위한 시도가 아닌가?

   ‘그렇지, 나는 권력결핍증 증세를 갖고 있는 놈이니까. 난 고위관리들을 면전에서 욕을 퍼 불 자신도 없는 놈이니까. 오히려 그 권력을 얻어 보고자 애쓰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위선이라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젊음 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그 젊음이 썩어가고 있어요. 차마 눈뜨고 지켜보기가 안타까워 젊음 젊음하고 부르짖는 것도 위선이라고 몰아버리면 나로선 달리 항변할 말이 없습니다.”

울먹임에 가까운 M의 항변에 그녀 역시 공감할 수밖에 없는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

  “누구는 그럽디다. 사회뿐만 아니라 대지도 술을 권하고 있다고. 술을 마셔도 , 그것도 신들린 사람처럼 마시고 또 마셔도 , 대지가 권하는 대로 술을 퍼마셔도 대지는 끝내 우리 편이 되 줄 것을 거부할 뿐이죠. 그래서 난 생각했습니다. 대지는 술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죽음을 권하고 있다고. 그렇죠. 죽음만이 우리가 만나야 할 현실입니다. 도처에 득시글대는 풍문은 오직 죽음을 키워온 배양소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말을 가로챘다.

  “큰 발견이네요. 그러나 죽음이 무슨 탈출인가요? 죽음은 현실이 아니라 모든 것의 끝이에요. 그러니까 현실도 죽음 앞에서 의미를 죽음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런 죽음이 광장일 수는 없잖아요?”

  “광장일 수 없다고요?  나를 아주 광장으로 내쫓을 생각이군. 난 광장에서 살아나갈 힘이 없는 사람입니다. 광장에서 현장에서 좌표를 도둑맞고서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요? 난 지금 광장에서 탈출해 온 겁니다. 나대로의 밀실을 만들기 위해서 뛰쳐나온 겁니다.”

  “ 그 밀실에 죽음이라는 두터운 벽을 치고 싶단 말이죠? 뭐라고 말씀해도 전 동의 할 수 없어요. 삶을 거부하는 사람하고는 더 이상 얘기하기도 싫어요. 어서 죽으세요. 어서요.”


         *                             *                                *


  M군의 죽음을 이해하는데 보탬이 될까 해서 그녀의 증언과 그의 일기를 토대로 나는 기꺼이 그의 죽음을 소설화하는 데 손을 댔다. 그녀가 나에게 M의 죽음을 알려온 것은 마지막 언쟁이 있은 열흘 뒤였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M이 석윤암을 출발한지 닷새 후인 11월 20일 흰눈이 소복이 쌓인 비로봉을 그녀 혼자서 오르는데 정상에 눈에 익은 텐트가 처져 있어 반가워 뛰어가 보니 M이 죽어있더란 것이다. 지금 그녀와 나는 비로봉 정상에서 M의 주검을 지켜보고 있다. 누구하나 감히 M군의 죽음을 시비할 생각이 내킬 수 있겠는가?

  “내가 심했어요. 그렇게 다구치는 것이 아닌데.”

침통어린 그녀의 편지 속에서 타인의 죽음은 뭐든 생각나게 함을 발견했다. 그렇다. 죽음은 생각을 이끌고 생각은 슬픔에서 머문다. 그래서 죽음은 슬픈 것이다. 그 이상의 슬픔을 죽음은 의미하지 않는다.

  “꼭 그렇게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M은 이미 죽게 되어있었어요. 그의 말대로 죽음은 탈출방정식의 최종 해라면 최종 해를 얻는 것이 죽음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나는 여기서 M의 죽음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도움이 될 그의 마지막 일기를 일부 소개한다.


  “죽음은 탈출방정식의 최종 해다. 삶이란 연속된 탈출함수라면 죽음이야말로 그 함수의 참된 해인 것이다. 나는 벌써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궁 밖으로 탈출해 나오는 것으로 탈출과 인연을 맺어 왔다. 산다는 것은 결국 탈출함수의 해를 찾는 것이 아닐까? 삶을 유지하면서 구한 해란 미분과정에서의 해일뿐이다. 미분을 끝낸 최종해란 죽음이다.”


서울에서 몇 친우들에 그녀가 보내온 M의 마지막 일기를 내보이며 동행을 청하자 그런 미친 놈의 죽음을 추도할 뜻으로는 못가겠다고 거절하여 나 혼자 달려 왔다. 과연 M은 미친 놈 인가? 그것만이 그들이 거절한 사정의 전부였을까? 눈발이 끝난 바로 후라 날씨가 추워 귀찮았거나 다른 일거리가 긴박한 것도 오지 못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음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M처럼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와 함께 M의 주검을 보자 그들 이상으로 현실을 중시하는 나도 M의 죽음에 선뜻 동조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1973.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