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산(2)
*산행일자:2015. 6. 27일(토)
*소재지 :강원홍천
*산 높이 :887m
*산행코스:공작현-740m봉-공작산-803m봉-작은골고개
-신봉교-수타사-수타사 입구상가
*산행시간:9시50분-18시(8시간10분)
*동행 :경동고24회 명백회회원 14명
(이기후회장, 강치환, 김동수, 김주홍, 김종화, 김남진/김양미,
남상태, 서중원, 장광종, 조현, 황의천, 하태연, 우명길)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언론일 듯싶습니다. 거의 모든 언론들이 메르스를 경쟁적으로 보도해 그 위험이 실제보다 많이 부풀려졌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치사율이 40% 수준이라는 초기의 섬뜩한 보도는 이제 사라졌지만 메르스가 이 나라를 몽땅 잡아 삼킬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언론들의 과장 보도는 확산추세가 현저히 줄어든 요 며칠 전에도 여전했습니다.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언론에 의해 조장된 메르스에 대한 공포감입니다. 메르스는 감염자나 사망자의 수가 결핵보다 적으며 공기로 감염되지 않는데도, 각종 모임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외국의 관광객들이 다른 나라로 발을 돌리는 데는 정부의 초기대응 실패와 언론들의 과장보도가 결정적으로 한 몫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학교 문을 닫을 정도가 아니라는 WHO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휴교를 서슴지 않은 교육당국도 공포감 조성에 부채질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결과 그렇잖아도 경기가 부진해 팍팍하게 살고 있는상인들이 메르스의 유탄을 맞아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낼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감으로 다른 모임은 거의 다 취소되었는데 유독 산모임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산악회들 모두 예정대로 산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함께한 몇 산행은 참가인원도 평소보다 줄어들지 않았고 마스크를 쓴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산을 즐겨 오르는 사람들이라 워낙 건강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닌 것이 이번에 공작산을 같이 오른 고교동기들은 나이가 모두 65-67세여서 젊은이들보다 더 건강체라 할 수 없습니다. 그 답은 다름 아닌 산으로 대표되는 자연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청정한 자연이 메르스를 내쫓을 것이라는 믿음이 강해 산모임이 가능했다는 것이 제 진단입니다. 이번에 긴 시간 공작산을 오르내리고 나서도 오히려 온 몸이 개운한 것은 이 산의 나무들이 내뿜은 피톤치드가 메르스의 근접을 막은 덕분일 것입니다.
오전9시50분 406번 도로 상의 공작현을 출발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홍천시내까지는 버스로 이동했고 시내 터미널에서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공작현까지는 택시로 옮겼습니다. 해발500m 높이에 자리한 공작현은 홍천군의 동면과 화촌면을 가르는 고갯마루입니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은 후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들어서자 전날 내린 비로 온 몸을 씻어낸 나무들이 아주 깔끔해 보였습니다. 걱정했던 지열이 없어 하나도 후덥지근하지 않은데다 바람이 살살 불어 산행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568m봉을 넘어 우람한 소나무 들이 숲을 이룬 솔밭(?)을 지나 735m봉에 이르자 왼쪽 아래로 난 길이 보였습니다. 이 길은 문바위골을 거쳐 공작교로 내려가는 길로 9년 전 거꾸로 공작교에서 이 길로 오른 적이 있습니다.
11시40분 해발887m의 공작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735m봉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 835m봉을 바로 아래에서 오른 쪽으로 에돌아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지근거리의 공작산 정상에 이르는 길 중간에 로프 줄이 쳐져있어 보다 안전하게 오를 수 있었습니다. 시야가 탁 트여 정북으로 꽤 높이 보이는 봉우리가 가리산(?)이고 남동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한강기맥의 대학산이며, 서쪽 멀리희미하게 보이는 고봉이 용문산 같습니다만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9년 전에는 북쪽 아래 뜨매기골의 공작폭포를 거쳐 군업리로 하산했는데 이번에는 남서쪽의 수타사로 하산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삼거리로 되돌아갔습니다. 삼거리 가까이에 꽤 넓은 공간이 있어 일행 14명이 한 자리에 둘러 앉아 함께 점심을 들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14시2분 해발803m의 수리봉에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오후 산행을 재개한 시각은 12시 반 경으로 남서쪽으로 조금 이동해 내리막 바위 길을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로프를 잡고 어렵지 않게 내려갔지만 한 겨울 눈이 쌓였을 때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 내려가야 안전할 것 같았습니다. 내려선 안부인 안공작재에서 다시 올라선 봉우리에 헬기장이 들어섰습니다. 헬기가 이착륙하기에 비좁을 것 같은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오른 봉우리가 770m봉으로 오르내림이 별로 없어 모처럼 편안함 길을 걸었습니다. 770m봉에서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 다다른 수리봉에서 뒤를 돌아보자 나무가지 사이로 공작산 정상이 눈에 잡혔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여유를 가지고 돌아보자 공작산의 위용이 의젓해 비로소 제 모습을 본 셈입니다. 이 산의 산세가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같다하여 이름 붙여진 공작산의 의젓함도 공작새를 빼어 닮은 것 같습니다. 수리봉에서 맞바위고개로 내려가는 길도 급경사 바위길이어서 스틱을 접고 로프를 잡고 내려가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803m봉에서 내려선 맞바위고개에서 앞서 갔어야 할 일행 두 명을 만난 것은 이들이 중간의 한 봉우리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갔다가 길이 아니어서 되돌아 올라오느라 30분가량 알바를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만난 두 명이 합류해 도합 6명이 후미를 이루고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15시45분 작은골고개로 내려섰습니다. 맞바위고개에서 서쪽 능선을 타고 진행해 554m봉에 이르기까지 큼직하고 건강해 보이는 소나무들을 여러 그루 보았습니다. 이 소나무들이 울진/봉화의 금강송처럼 줄기가 곧게 뻗어 오른 것이 아니어서 궁궐보수에 쓰기는 좀 무리일 것 같습니다. 554m봉에서 도마토를 꺼내 먹으며 얼마간 쉰 후 작은골고개로 내려갔습니다. 바로 맞은 편 봉우리가 표고가 5m밖에 차이나지 않는 해발559m의 약사봉이어서 내려간 만큼 그대로 다시 올라가야 하는 것이어서 내림 길이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넓은 임도가 지나는 작은골 고개에 내려서자 약사봉을 거쳐 수타사로 가자는 주장과 임도로 내려가 수타사로 가자는 의견이 엇갈려 3명씩 두 길로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이기후/조현 두 친구와 함께 저는 좀 멀더라도 편한 길인 임도를 택해 내려갔습니다. 임도를 따라 걷다가 잘 익은 산딸기들을 떼로 만나 올 들어 처음으로 산딸기를 따 먹었습니다. 신봉리버스종점에서 꽤 많은 돌탑이 들어선 바로 아래 동봉사를 지나 수타계곡을 건너는 신봉교 앞에 이르렀습니다.
17시4분 신봉교 앞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수타계곡을 따라 걸었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10분가량 걸은 후 수타계곡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건넜습니다. 가게를 지나고 논길을 걸어 수타계곡이 30-40m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산허리의 수타사산소 길에 접어들자 수타계곡의 명성이 과연 헛되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수타계곡을 따라 낸 좁은 이 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들 모두 수타계곡에 눈을 뺏겨 말들을 아껴서인지 떠들썩하지 않았습니다. 소여물통을 닮았다는 귕소 위에 설치된 귕소출렁다리는 시간이 없어 건너보지를 못하고 사진만 찍어왔습니다. 수타사산소길에 이어진 생태숲도 시간만 넉넉하다면 얼마간 머무르고 싶었지만 먼저 수타사에 도착한 일행들이 빨리 오라는 성화가 빗발쳐 눈도장만 찍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18시 정각 수타사 입구 상가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생태공원을 지나자 바로 앞에 수타사(壽陀寺)가 보였습니다. 신라 성덕왕 7년인 서력708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 절은 선조2년인 1569년 공작산 산자락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후 일월사(日月寺)에서 수타사(水墮寺)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오늘의 수타사(壽陀寺)로 이름을 얻은 것은 1811년 중수를 끝내고 나서라 합니다. 이번 산행을 특별히 기다린 것은 이 절이 소장하고 있는 월인석보를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월인석보란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의 합본으로 훈민정음 창제 이후 처음 나온 언해서여서 뒤늦게 국문학을 전공한 저로서는 이 절에서 그 진품을 꼭 한 번 보고 싶었습니다. 일행들이 기다려 그냥 지나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한강기맥 종주 길에 이 절을 다시 찾아 찬찬히 보고 갈 생각입니다. 수타사에서 6백m가량 떨어진 수타사입구 상가로 부지런히 내달려 저녁식사 중인 일행들과 합류했습니다. 버스 안에 놓고 내린 스마트폰을 되찾은 친구가 낸 저녁으로 포식한 후 택시를 타고 홍천터미널로 돌아갔습니다. 터미널에서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공작산 정상을 조망하는 것으로 이번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메르스 안심지역인 공작산을 오르내리며 잠시 짬을 내 만물의 영장인 인류가 작디작은 바이러스에 시달리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딱 잡히는 것은 없지만 아마도 전성기를 맞아 극성을 부리는 인류를 다른 모든 생물들이 시샘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인류를 이대로 놔두다가는 너무 번성해 다른 생명체들이 그 존립기반을 위협받겠다 싶어 바이러스가 그들을 대표해 인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능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은 고삐 풀린 인류가 머지않아 공존의 장인 지구의 동적균형을 깨 공멸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생물들이 자각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가 너무 극성을 부리면 그들 또한 다른 생물이 공격의 대상으로 삼을 것입니다. 이를 알고 있을 바이러스 또한 어느 정도 세를 불리다가 소멸될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인류가 앞으로 다른 생물의 공격을 받아 화를 당하지 않으려면 오만에서 벗어나 겸손모드로 바꿔가는 것이 바른 길이다 싶습니다. 이 세상 최고의 공존의 장은 산입니다. 사람들의 집에서 함께 사는 눈에 보이는 생물의 수는 아무리 많아도 두 손가락으로 셀 수 있습니다만, 산에서는 감히 그 수를 헤아릴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여러 생물들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산이 저를 아무런 심사없이 한 식구로 받아들이는 것은 저 하나 늘어난다 해서 바뀔 게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겸손모드의 지혜는 아무래도 최고의 공존의 장인 산에서 배워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산행사진>
공작산(1)
*산행일자:2006. 12. 16일
*소재지 :강원홍천
*산높이 :887미터
*산행코스:공작교-공작골삼거리-공작산-공작폭포-군업초교
*산행시간:10시15분-15시27분(5시간12분)
구름이 잔뜩 끼어 큰 눈이 내릴 듯한 하늘이 맑게 갠 것은 하산 길에 접어들고서도 한참이 지난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그사이 태양을 가려준 희뿌연 안개가 요 며칠 새 내린 눈이 녹아 스러지는 것을 막아주어 해발 887미터의 공작산 정상에서 능선 길을 하얗게 덮은 눈다운 눈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싸라기눈이 땅바닥을 살짝 덮은 공작골 삼거리의 들머리에서 꽤 오래 올라 주능선에 다다랐어도 눈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수타계곡으로 갈리는 정상 120미터 전방 삼거리에 오르자 능선에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아이젠을 꺼내 찼습니다.
어제는 안내산악회를 따라 고교동기 함기영 군 및 다섯 해 후배 정병기군과 함께 셋이서 강원도 홍천의 공작산을 다녀왔습니다. 나뭇가지에 붙어 있던 파란 잎들을 모두 떨어낸 나목들로 산색이 온통 칙칙한 회색으로 바뀌었어도 땀 흘리며 겨울 산을 찾아 나선 것은 고스락에 올라서서 하얀 눈이 소북이 쌓인 산자락을 바라보노라면 시내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순백의 평화로움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정월 초이튿날 한 분과 함께 홍천의 북까페 “Peace of Mind"를 들러 먼발치의 공작산을 바라다보며 과연 이름 그대로 저 산의 아름다움이 공작새와 견줄 만할까 궁금해 했었는데 어제도 힘들여 정상을 올랐어도 안개가 자욱해 산세의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인가 확인할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정상과 하산 길의 북사면을 덮은 하얀 눈이 빚어낸 설경이 눈길을 걷는 제게 마음의 평화를 주어 고마웠습니다.
아침10시15분 444번 도로에서 조금 벗어나 노천리의 공작교에서 하차했습니다.
다리건너 오른쪽으로 공작골을 따라 낸 넓은 비포장도로로 들어서 싸라기눈이 살짝 덮인 눈길을 걸었습니다. 20분 후 공작골합수점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물이 마른 계곡을 건너고 된비알의 산등성을 올라서 지능선에 다다르기까지 반 시간여 다리 밸이 당겨 산 오름이 힘들었습니다. 내린 눈이 쌓이지 않아 산등성을 오르기가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중력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산을 오르기에는 체중이 너무 나가 애꿎게 다리 밸이 고생을 했습니다.
11시38분 공작고개-공작산 정상의 주능선에 올라섰습니다.
공작골합수점에서 2.5키로를 걸어 다다른 735봉 삼거리에 이정표가 서있어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잡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왼쪽으로 꺾어 정상으로 오르는 중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눈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카메라에 옮겨 실으면서 두 친구들의 땀 흘리는 모습들도 함께 담았습니다. 길 양옆에 자리한 푸르른 노송들이 산길을 덮은 하얀 눈과 대비되어 볼만했습니다. 735봉 출발 15분 후 835봉을 지나 정상 120미터 전방의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문화재 월인석보를 보관하고 있는 신라시대의 고찰 수타사와 공작고개 그리고 정상너머 군업리로 내려가는 세 갈래 길에서 아이젠을 꺼내 차 정상에 이르기까지 눈길이 위협적인 암릉길을 무난히 지났습니다.
12시05분 해발887미터의 공작산 정상을 올랐습니다.
먼저 온 여러분들이 한 편에서 점심을 들고 있어 정상이 붐볐습니다. 삼각점이 세워져 있지 않았다면 정상봉이 방금 지나온 산불감시탑이 설치된 뒷봉과 높이차가 나지 않아 어느 봉이 정상봉인지 가름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깎아지른 절벽위의 정상에 올라서면 홍천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동남쪽으로 응복산, 수리산, 봉복산등이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다는데 어제는 짙은 안개가 산자락을 가득 메워 아무 것도 볼 수 없었기에 지근거리의 하얀 눈이 더욱 황홀하게 보였습니다. 몇 분 후 골바람이 몰고 온 냉기에 밀려 835봉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거의 수직에 가까운 낭떠러지 길로 내려서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은 길로 하산했습니다. 835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지능선을 따라 내려가 공작골합수점으로 회귀하는 코스가 산악회에서 예정했던 길이었는데 정상에서 하산을 서두르다 길을 잘 못 들어 훨씬 긴 코스를 걸어 군업초교로 내려갔습니다.
12시55분 뜨메기골을 만났습니다.
정상에서 로프를 붙잡고 까까 지른 비탈길을 내려와 안부에 다다르자 오른 쪽 길로 먼저 간 두 친구들이 길을 잘 못 든 것 같다며 되돌아와 왔습니다. 지도를 꺼내 들고 방향을 확인했더니 남동쪽으로 방향이 일치했고 표지리봉도 걸려있어 당연히 맞으려니 생각하고 한 참을 내려서다 능선 길이 아닌 계곡을 만나 길을 잘 못 들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미 내려선 길을 되올라 간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다 산악회대장이 이 길로 먼저 내려갔기에 출발지인 공작교에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이 길 끝머리인 군업초교로 옮겨놓으리라 생각되어 계곡을 따라 그대로 내려가다 5분 후에 이정표를 만났습니다. 이 길도 정식 산행코스가 분명한 듯해 비로소 안심됐습니다.
14시5분 계곡의 바위에 걸터앉아 점심을 들면서 20분여 쉬었습니다.
뜨메기골 계곡 길은 한갓지고 고즈넉해 모처럼 두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한 조직을 꾸려나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리더쉽과 멤버쉽은 무엇이며 이러한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는 지혜가 무엇일까를 주제로 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물이 흐르는 계곡은 하얀 눈이 흐르는 물에 녹아 흑과 백의 색깔 대비가 선명했습니다. 오리걸음 자세로 길을 막은 다래넝쿨 속 길을 지나서 한 참후 공작폭포를 비껴가고자 왼쪽으로 에돌아가는 길에서 연초록 이끼 밭을 만났습니다. 거대한 나무들도 혹독한 한 겨울을 이겨내고자 여름 내내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해온 나뭇잎들을 단풍이 든 후부터는 양분만 소비한다고 떨어내는데 나무들에 비할 바가 전혀 못 되는 작디작은 이끼들이 겨울에 굴하지 않고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제 색을 내는 것이 신비롭게 느껴졌습니다. 붕어빵에서 붕어를 찾지 못했듯이 공작폭포에서 공작새가 내려앉은 흔적을 찾지는 못했지만 공작새가 이 폭포에서 날개를 내리고 쉬어가더라도 편안한 쉼터가 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폭포 위의 바위가 널찍했습니다.
14시42분 계곡 길을 완전히 벗어나 안말계곡의 하천이 시작되는 합수점에 다다랐습니다.
합수점 삼거리에 세워진 등산로안내판에서 내려온 길을 확인했습니다. 점심을 들고 얼마 후 경주 포석정을 빼어 닮은 소를 만나 굽이진 물길과 그 물길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를 모두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넓은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세워진 등산로 안내판 옆에 입산금지 안내판이 서 있어 제가 하산한 골짜기가 한산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개천을 가로 지르는 돌다리는 아직은 세월의 때가 끼어 있지는 않았어도 한 걸음 한걸음 발을 옮기며 아스라한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기에는 딱 좋았습니다. 도로공사가 다 끝나면 여기 저기 팬션이 들어서 수려한 이 계곡을 더럽힐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자 그전에 이 계곡 길로 내려선 것이 잘됐다 싶었습니다.
15시27분 군업초교 길 건너편의 나분들 정류장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따끈한 찌게로 속을 데우고 나자 길 섶의 집주인이 세운 시비에 새겨진 애절한 시의 전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를 저 사람에게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시는 남편이 이미 세상을 떠난 듯한 아내에게 바치는 시로 “언제나 깃 가지런히 한 몸이 돼야 나는 새”인 전설의 새 비익조로 다시 태어나 "나뭇가지에 서로 엉켜 한 나무가 된 연리지 사랑”을 나누다가 이 세상을 날아 가버린 아내를 애도하는 시인 듯 했습니다. 혹시 제가 시를 엉뚱하게 해석하는 것이 아닌 가 걱정되어 망설이다가 이 시를 쓴 신용식님의 아내 채옥화님에 대한 애틋한 사랑만은 전하고 싶어 이렇게 산행기에 올립니다.
실존하는 화려한 공작새보다 실재하지 않는 전설의 비익조가 제 가슴에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집사람에 아직까지도 이렇다할 시를 지어 주지 못해서인 것 같아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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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산(A)
*여행일자 :2005. 1. 2일
*여행지 :공작산 기슭의 Peace of Mind
*동행 :실비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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