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령산
*산행일자:2006. 10. 31일
*소재지 :경기 남양주/가평
*산높이 :축령산886미터/서리산832미터/화채봉649미터
*산행코스:축령산자연휴양림매표소-남이바위-축령산-서리산-화채봉
-휴양림관리소-매표소
*산행시간:12시45분-17시37분(4시간52분)
어제 축령산에서 만난 동물들은 멧돼지와 독수리가 아니고 다람쥐와 까마귀였습니다.
축령산은 이씨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 이 산을 올라 정상에서 제를 지낸 후에야 사냥에 성공하여 멧돼지를 잡았다 해서 그 이름이 연유된 것이고 정상에 오르는 길목의 수리바위는 축령산 골짜기에 많이 살았던 독수리의 두상과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이 산도 다른 산들과 같이 전설 속의 동물들은 다 사라졌고 전설을 담아온 영봉들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자연휴양림으로 조성된 후 멧돼지의 생활터전은 사람들의 휴식처로 변했고 하늘을 나는 맹금 독수리들은 그들의 먹이 감을 쫓아 다른 산으로 옮겨 가서인지 5시간 가까이 축령산의 연봉들을 오르내렸어도 그들이 살았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수리봉을 점하고 있는 까마귀의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십수마리의 까마귀가 수리봉 암봉 위를 낮게 날다가 바로 옆의 소나무 가지에 내려 앉아 까옥까옥 짖어대는 것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를 독수리의 내습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까마귀는 독수리와 맞붙어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합니다. 저는 옛날에 시골에서 고개를 넘나들면서 하늘에서 쫓고 쫓기며 공중전을 치르고 있는 까마귀와 독수리가 몇 합을 겨룬 끝에 독수리가 도망가는 현장을 목도했었습니다. 머리 나쁜 아이들에 까마귀고기를 먹었냐며 질책하듯이 옛날부터 까마귀는 아둔한 새로 널리 알려졌는데 사실은 그 정반대입니다. 교육학자들의 실험결과 까마귀는 열셋까지 세어 가장 기억력이 좋은 새로 밝혀졌다 합니다. 뛰어난 머리에 떼거리로 날아다니며 까옥까옥 괴성을 내는 까마귀를 독수리인들 무슨 수로 당해낼 수 있겠는가 싶었습니다. 수리봉을 차지한 까마귀들이 여세를 몰아 축령산 정상봉도 점거했습니다. 먼 훗날 까마귀에 얽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새로이 지어지고 전해져 축령산의 전설이 다시 써질 때쯤이면 이 산은 또 다시 새로운 전설을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해야 우리의 산하가 쌓여가는 전설과 더불어 사람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경기도 남양주와 가평을 경계 짓는 축령산을 올랐습니다.
연 사흘 맥주를 마셨더니 온몸이 찌뿌드드하고 뱃속이 더부룩해 4-5시간 몸을 풀만한 코스를 찾다가 20년 전에 다녀온 축령산을 다시 오르기로 마음먹고 아침 10시경 산본 집을 나섰습니다. 청량리역에서 마석까지는 좌석버스로 이동했고 시간을 아끼고자 마석에서 택시를 타고 축령산 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갔습니다.
12시45분 축령산 자연휴양림의 매표소를 출발했습니다.
절정에 오른 단풍나무의 새빨간 잎들이 진초록 잣나무 잎들과 대비되어 더욱 돋보였습니다. 제1주차장으로 향하다 오른쪽으로 난 나무계단 길로 들어서 이동통신중계탑이 서있는 등성이로 올라갔습니다. 들머리 초입과는 달리 조금 올라서자 이내 길이 사라져 눈짐작으로 등성이로 올라선 다음 왼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 잡목 숲도 헤쳐 나가 매표소 출발 20분 후에 중계탑을 지났습니다. 십 수분 후 한 산악회의 표지기를 보았으며 몇 분을 더 걸어 제1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수리바위능선에 세워진 이정표를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이 됐습니다.
13시39분 수리바위에 올라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수리바위능선 삼거리에서 15분을 걸어 수리바위에 오르자 이 바위를 점거하고 있는 시꺼먼 까마귀 십수마리가 머리 위를 낮게 날며 까옥까옥 울어대 조금은 음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바위의 주인이었던 독수리는 어느새 전설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그래서 하늘 높이 날다가 먹이 감을 찾아내어 수직으로 내리꽂는 독수리의 곡예에 가까운 화려한 비상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못내 아쉬웠습니다. 수리바위에서 홍구세굴로 하산하는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를 거쳐 남이바위에 오르는 길은 대체로 암릉 길이었습니다. 남사면의 수직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실족 사고를 막기 위해 암릉 길 여기저기에 굵은 밧줄을 쳐놓았습니다. 며칠 전 정맥 길에서 빠금히 고개를 들고 혀를 날름대는 뱀 한 마리를 만났는데 이번 산행에서도 제가 다가서도 길을 내주지 않는 검은 뱀을 또 만났습니다. 겨울잠을 준비하는 가을이라서 에너지를 가능한 한 적게 쓰고자 움직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한판 붙어보자고 고개를 바짝 들고 자리를 비키지 않는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스틱으로 땅을 쳐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뱀을 보고 조금은 섬뜩했습니다. 추락주위 안내판이 세워진 바위를 지나 남이바위에 올라서자 남동쪽 멀리로 용문산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남이 장군이 한성의 동북방요충지인 이 산을 자주 올라 지형지물을 익힌 후 이 바위에서 쉬어갔다 하여 명명된 남이바위는 촘촘하게 자갈이 박혀있는 뚜렷한 역암이어서 바위 표면이 파란만장한 남이장군의 일생처럼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14시45분 매표소를 출발한지 꼭 2시간이 지나 해발 886미터의 축령산 고스락에 올라섰습니다.
남이바위에서 왼쪽으로 틀어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렸고 응급환자 수송용 헬기장을 지나 태극기가 펄럭이는 정상봉에 올라서기까지 반시간가까이 걸렸습니다. 절고개에서 올라오는 몇 분들을 정상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번 산행에서는 이 산에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연휴양림이 있어서인지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남동쪽으로는 용문산이, 북서쪽으로는 한북천마지맥의 주금산이 눈에 잡혔습니다. 수리바위의 까마귀가 이곳으로 옮겨왔는지 축령산 정상에도 하늘을 나는 까마귀가 여러 마리 보였습니다. 사과로 요기를 한 후 북서쪽의 서리산을 향해 절고개로 내려섰습니다. 절고개로 내려서는 길은 경사가 다소 급해 통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보폭을 맞추기가 힘들어 하산 길이 불편했습니다. 왼쪽으로 제1주차장 길이 갈리는 안부인 절고개로 내려서자 오른 쪽 사면에 희멀겋고 커다란 바위들이 여기저기 박혀있어 듬성듬성 서 있는 짙푸른 잣나무들과 어울려 보였습니다.
16시5분 해발 832미터의 서리산 정수리에 올랐습니다.
절고개에서 서리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넓고 경사도 완만하여 힘든 줄 몰랐습니다. 절고개에서 오른 쪽 아래의 임도와 나란한 방향으로 십 분을 걸어 구릉 한곳을 넘어선 안부사거리가 억새풀사거리였습니다. 명성산의 억새에 비견할 바 못되지만 다자란 억새들이 길 섶에서 바람에 나부끼어 춤추는 모습을 보고 한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꼈습니다. 임도를 건너 서리산 정상을 향해 서서히 고도를 높여갔습니다. 잎이 다 떨어져 가지만 앙상해 보이는 활엽수 바로 뒤에 노랗게 물 들은 잎들이 화사해 보이는 또 다른 활엽수가 서 있어 같은 산에 이웃하며 살고 있는 나무들도 이름이 다르다고 저토록 크게 다를까 궁금해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한 여름이라면 길이 너무 넓어 내리쬐는 땡볕으로 고생스러웠을 길을 어제는 편안하게 걸었습니다. 길은 넓었지만 낙엽 쌓인 길이 호젓하고 조용해 고즈넉했습니다. 서리산 정상에 이르기 7-8분 동안 산오름이 조금 급했습니다. 무인산불감시시스템을 막 지나 억새가 피어있는 정상에 다다르자 작년 2월에 밟은 주금산과 철마산을 지나는 한북천마지맥길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와 반가웠습니다. 서리산 정상은 축령산 정상보다 더 넓고 평안했습니다. 사격장에서 총소리만 나지 않았다면 더 할 수 없이 평화로운 정상에서 10분을 쉰 후 서쪽으로 이어지는 철쭉동산 길로 들어섰습니다. 만평 가까운 평원에 빽빽이 들어선 철쭉나무들이 꽃을 피우는 봄이면 화사하기가 장관이겠다 싶은 철쭉동산을 지나 화채봉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90미터 떨어진 화채봉이 주금산 가는 길 초입이어서 잠시 들러보았는데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은 암릉길이어서 쉽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16시37분 화채봉삼거리를 출발해 본격적으로 하산길에 들어섰습니다.
통나무계단 길을 걸어 내려가 제2주차장 갈림길에 다다르기까지 해지기 전에 매표소에 닿고자 뛰어 내려갔습니다. 17시 정각에 주차장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0.7키로 남은 제 2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7-8분을 급경사 길로 내려가 나무계단이 끝나는 어느 정도 평평한 지점에 이르자 울긋불긋한 단풍 잎 숲이 끝났고 짙푸른 잣나무 숲이 시작돼 숲길을 지나기가 싱그러웠습니다. 5분 후에 휴양림관리소 뒤에 도착해 떡을 들어 시장기를 달랬습니다.
17시37분 출발지인 매표소로 되돌아와 5시간 가까운 원점회귀산행을 마쳤습니다.
휴양림관리소 뒤로 난 예쁘장한 나무다리를 건너 임도로 들어섰습니다. 오른 쪽으로 꺾어 조금 내려가자 왼쪽으로 홍구세굴로 가는 갈림길이 나 있었습니다. 수리바위로 오르는 갈림길을 지나 매표소를 지나 7-8분을 걸어 마석가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저녁6시40분에야 마석가는 버스가 출발한다 하여 내친 김에 내방리의 가양초교 앞까지 가느라 반시간을 더 걸었습니다. 가양초교 앞에서 20분 간격으로 다니는 청량리-비금리 좌석버스를 잡아타고 청량리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서리산에서 뒤돌아본 축령산의 연봉들이 빨갛게 단풍들어 아름다웠고 반대편의 주금산과 천마산을 잇는 한북천마지맥이 장대해 보였습니다. 매표소에서 시작하여 시계반대방향으로 부채꼴을 그리며 산줄기 연봉들을 오르내렸습니다. 다시 매표소로 돌아오면서 지켜본 단풍이 조금은 철지난 듯해 아쉬웠지만 산 높이도 적당하고 거리도 그리 멀지 않은데다 잣나무 숲이 울창해 내년에 친구들과 함께 찾아와 하루를 묵고 갈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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