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 (3)
*산행일자:2007. 3. 16일
*소재지 :전북완주/충남논산,금산
*산높이 :대둔산878미터
*산행코스:수락리매표소-군지골-220계단-720봉-대둔산
-배티재-560봉-오항동고개(635번지방도)
*산행시간:11시10분-17시40분(6시간30분)
*동행 :나홀로
1차대전 중 총리를 지낸 프랑스의 정치가 클레망소는 현대전은 총력전이라며 온 국민이 온 나라의 역량을 다 모아 전쟁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국민적 지지를 받아내지 못하고 치르는 전쟁은 설사 무력에서 우위를 점한다 하더라도 종국에는 미국의 월남전과 같이 패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바로 현대전이 총력전이기 때문입니다. 금남정맥 종주 차 충남과 전북을 경계 짓는 대둔산을 오르내리며 총력전의 그 총력 속에는 산천초목도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둔산은 산이 높고 거한데다 깎아지른 암벽과 협곡 등으로 적의 침공을 막아내는데 더 할 수 없는 요새입니다. 조일전쟁(임진왜란)과 한국전쟁(6.25동란) 중 이 산에서 치러낸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끈 데는 대둔산이 산식구들인 산천초목을 전부 동원해 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둔산 서쪽의 수락계곡입구에는 빨치산 및 북괴군 섬멸을 기념하는 승전기념탑이, 동쪽의 배티고개에는 전주로 침공해오는 왜군을 격파한 승전을 기리고자 전적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기암절벽이 빚어낸 빼어난 절경으로 100대 명산에 들 정도의 경승지가 된 대둔산이 산천초목을 전부 동원해 이 땅의 주인들에 승리를 가져다주어 전승지로 자리매김해왔지만,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군이 마지막 항전을 벌이다 바위벼랑 아래로 투신해 자결한 최후의 항전지가 바로 이 산이었고 까마득한 옛날에는 계룡산의 지세와 싸우다 져 한이 맺힌 곳이라는 설화가 전해지는 비운의 산이 바로 이 산이었습니다.
지난 주 목적했던 배티재까지 진출하지 못하고 대둔산 정상봉인 마천대에서 관광단지로 하산하는 바람에 이번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한번 이 산 정상을 올라 마루금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관광단지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까 그냥 걸어서 오를까 얼마를 고심하다가 아예 반대쪽인 수락계곡 쪽으로 오르자고 마음을 바꿔먹고 논산으로 향했습니다. 아침9시경 논산시내에 도착해 1시간여 기다려 10시5분에 터미널을 출발하는 수락리행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넓은 길과 좁은 길을 두루 달려 수락저수지를 지나 수락리매표소앞에 다다르기 까지 약 1시간이 걸렸습니다.
오전 11시10분에 수락리매표소를 출발했습니다.
대둔산은 국립공원이 아니고 도립공원이어서 여전히 입장료를 받았습니다. 잘 다듬어진 시멘트블록길을 지나자 비로소 산길이 시작됐습니다. 길옆의 숲이 농약사용으로 이 땅에서 사라진 반딧불이의 서식지라는 플래카드를 보고 지나온 몇 십년간 경제성장에 밀려 종을 감춘 동식물이 어찌 반딧불이 뿐이랴 싶어 이 자연에 미안했습니다. 갈 길이 멀어 길에서 좀 떨어진 대둔산승전기념탑은 들러보지 못하고 안내판을 통해 승전내용만 확인했습니다. 대둔산 일대에서 활동하며 410여회 경찰관서를 습격하고 양민을 학살한 빨치산과 영호남지방에서 패주북상하던 북괴군3,412명을 섬멸했으며 경찰군, 국군 및 애국청년단원들도 1,376명이나 희생을 했다는 안내문을 읽고나자 아직도 이 땅에 김일성 부자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상존한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첫 번째 폭포인 선녀폭포를 지나서 얼마 후 석천암갈림길에 다다라 오른 쪽의 군지골로 들어섰습니다. 커다란 암괴들이 흘러내린 너덜겅을 가로지르고 예쁘장한 초록색 철제다리를 세 번 건너 다다른 두 번째 폭포인 수락폭포는 생각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왼쪽의 골짜기를 흘러내려온 계곡물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물소리가 봄을 맞아서인지 활기차게 들렸습니다.
12시7분 220계단을 올라 잠시 쉬었습니다.
왼쪽의 수락폭포를 카메라에 담은 후 “양심안전보관대”에서 헬맷을 꺼내 쓰고 낙석위험지대인 오른 쪽 협곡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비행기소리에 쌓인 눈이 무너져 내려 눈사태가 발생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라 혹시나 때 마침 상공을 나는 전투기의 굉음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느라 균열이 생겼을 바위를 강타해 낙석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 가해서 잠시 긴장했습니다. 협곡을 지나서 비선폭포 옆의 보관대에 안전모를 걸어 놓아 안전과 양심을 같이 지켰습니다. 두 폭포보다 훨씬 높은 데서 물이 떨어지는 비선폭포에 다다라 지나온 협곡을 뒤돌아보자 정말 낙석현상이 발생했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자 아찔했습니다. 계곡 초입의 선녀탕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한 이 폭포가 하늘에 가까워 선녀들이 비상하기에 더 잘 맞아 비선폭포의 이름을 얻은 것이라면 진작 이곳에 220계단을 설치했다면 선녀들이 비선폭포보다 더 높은 이 계단을 걸어올라 하늘로 비상했을 것이고 그래서 이 계단도 “비선계단”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220계단을 단숨에 올라서서 갈림길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한 주 전에 걸었던 바랑산-월성봉의 정맥길을 조망한 후 왼쪽 길을 택해 마천대로 향했습니다.
13시20분 대둔산최고봉인 해발878미터의 마천대에 올랐습니다.
220계단 쉼터를 출발해 잠시 후 물이 흐르지 않은 계곡을 건넜고 540봉 바로 아래에 쌓아올린 석성을 보았습니다. 크고 작은 전투를 여러 차례 치러냈을 이산에 이제껏 성이 보이지 않은 것은 이 산의 암릉 자체가 더할 수 없는 자연성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높은 곳에서 커다란 석성을 만나 보고나서 우리 선조들의 유비무환 정신에 새삼 감탄했습니다. 마천대로 이어지는 능선 길에 올라 만난 아주머니들은 힘이 들어 하산해야겠다며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220계단 출발 반시간이 다 되어 전망바위에 올랐습니다. 왼쪽 아래 깊숙이에 자리한 계곡 끝자리는 패주하는 빨치산 잔당들이 이 곳으로 숨어들었다면 더 버텨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설악산의 죽음의 계곡과 닮아 보였습니다. 철계단을 오르고 암릉길을 걸어 220계단 쉼터에서 오른 쪽으로 갈린 길과 다시 합류한 후 정맥 길과 만났습니다. 먼저 오른 많은 분들이 마천대의 개척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정상이 붐볐습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내려다보이는 기암절벽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갈 길이 바빠 채 5분도 쉬지 못하고 마천대를 떴습니다.
13시21분 마천대에서 금남정맥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마천대에서 칠성봉을 지나 배티재로 갈리는 안부에 다다르기까지 북사면을 지나는 낙조대길이 질펀했고 수시로 암릉길로 복귀해 위치를 확인하느라 43분이나 걸렸습니다. 길을 잘 못 들어 태고사로 하산한 선답자 한 분의 산행기를 유심히 읽은 터라 낙조대를 얼마 앞둔 안부사거리에서 오른 쪽 나무계단 길을 택해 배티재로 내려가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해발830미터에 세운 “용문골400미터”의 표지목을 지나 다시 암릉길에 오르자 남사면의 곧추선 암봉들이 전투태세를 완벽하게 갖춘 듯 질서정연해 보였습니다. 제가 서있는 평평한 암봉에서 오른쪽으로 뻗어나간 암릉이 분명 배티재로 이어지는 정맥길이 분명한데 길이 나있지 않아 한참을 망설이다가 저렇게 험한 데로 길이 나있을 리 만무하다는 생각에서 다시 내려와 안부에 다다르자 앞서 본 암릉을 왼쪽으로 우회하는 계단길이 보였습니다. 비로소 마음이 놓였고 시장기가 느껴져 짐을 풀고 점심을 들면서 십 여분을 쉬었습니다.
14시2분 안부를 출발했습니다.
안부에서 커다란 암봉을 왼쪽으로 에돌고자 나무계단 길로 내려서면서 백두대간을 같이 뛴 천자봉님의 진적색 표지기를 만나 반가웠습니다. 금남정맥종주를 마치고 대간길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종주 길에 들어선 이 분과 3정맥 갈림길에서 랑데부를 해보고자 서두르고 있습니다만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아 여의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장군약수터/광장 삼거리에서 잔설이 하얗게 덮은 오른 쪽의 장군약수터행 길로 들어섰습니다. 거대한 암봉을 완전히 에돌아 만난 철조망 앞에서 오른 쪽으로 돌아 모처럼 편안한 흙길을 걸어 내려가면서 대둔산의 천애절벽을 카메라에 담고자 몇 번이고 가던 길을 멈췄습니다. 직립한 암벽 중간 중간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바위들이 울퉁불퉁한 팔뚝 같아 용맹스런 장군들을 보는 듯 했습니다. 힘들게 오른 636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지 못하고 656봉까지 직진하는 바람에 10분을 까먹었습니다. 길을 잘 못 들었다는 직감이 들어 636봉으로 돌아오자 배티재로 내려서는 길목에 걸려있는 표지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경사가 가팔라 내림 길이 늦어졌습니다. 길섶의 생강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전해 준 샛노란 봄소식을 가슴에 안고 배티재로 내려섰습니다.
15시34분 충남 금산과 전북 완주를 어우르는 배티재로 내려섰습니다.
17번 도로를 건너 이 고개의 또 다른 이름인 이치재에 세워진 전적비에 담긴 승전내용을 자세히 읽었습니다. 전라도절제사 권율의 독전하에 동북현감 황현이 이곳 이치재에서 금산 웅치의 방어선을 뚫고 전주로 침공해 들어가는 왜군을 대파해 임진왜란 3대첩으로 기록된 것은 왜란초기 천혜의 요새 새재를 버리고 탄금대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 대패한 신립장군의 패전에서 교훈을 얻은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휴게소를 들러 맥주 한 캔을 사들고 싶다는 작은 욕심을 누르고 이치전적지를 먼발치서 내려다보는 위용스러운 대둔산의 암봉들을 마지막으로 사진 찍은 후 오항동고개로 향했습니다. 전적지 한 끝에 난 종주길을 따라 절개면을 올라선 다음 왼쪽 아래에 나란히 나 있는 산책길을 내려다보며 남진을 계속했습니다. 억새풀이 무성한 400봉에 이어 이동통신 중계기를 지나서 산책길6Km/등산로17Km의 안내판이 세워진 지점에 이르자 산 오름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산소가 들어선 500봉에 올라 남은 김밥을 마저 들며 6분을 쉰 다음 떡갈나무들의 온전한 낙엽이 소북이 쌓인 보너스 길을 20분여 걸어 공터가 제법 넓은 560봉에 다다른 시각이 16시 48분이었습니다.
17시40분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오항동고개에 내려서 짧은 종주 길을 마감했습니다.
560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다가 “국기봉1920m지점"의 표지목을 지나서 내려선 삼거리에서 다시 봉우리를 올라 내리막길로 들어서기까지 560봉 오른편의 592봉에서 열창하는 한 젊은이의 노래 소리가 감미롭지 못해 가수지망생이 가창연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고개마루에 내려서기 얼마 전에 지난 능선 왼쪽의 경사면에 일군 인삼밭이 이곳이 금산군임을 일러주었는데 경사가 너무 급한 산비탈에 밭을 일구어 산을 버리는 것이 아닌 가해서 걱정됐습니다. 인삼의 주산지로 널리 알려진 여기 금산에서 더 이상 인삼밭을 넓힐 수가 없어 산비탈을 삼포로 일구는 것을 보고 한 때는 세계적인 중석광산지로 명성을 떨쳤으나 중석광이 동이 나 벌써 전에 폐광한 상동탄광이 생각났습니다. 635번 지방도가 지나는 오항동고개의 팔각정 쉼터인 춘경정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 교통편을 알아본 결과 저녁 7시에 진산을 출발하는 시내버스가 이 고개를 지남을 확인했습니다. 깜깜한 밤 시간에 버스를 기다리기가 뭣해 한대 밖에 없다는 택시를 불러 진산으로 나갔습니다. 다음에도 9천원을 들여 택시로 이 고개로 와서 정맥길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자 택시비가 아까웠지만 발걸음이 느려 이렇게 종주 길을 끊은 것이기에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진산에서 대둔산을 출발한 버스에 올라 대전의 서부터미널에 도착해 귀가했습니다.
여드레 만에 다시 찾아 정상을 오르내리고 나자 대둔산이 마치 승전한 장군처럼 늠름해 보였습니다. 우뚝 선 암봉들이 기세등등해 보였고 볼록하게 튀어나온 바위들이 우람해보였습니다. 산자락이 들어앉은 크기에서는 미치지 못하지만 산세의 듬직함과 우람함, 또 한편 날카로움은 계룡산을 뛰어 넘는다는 생각인데 어찌하여 계룡산에 밀렸다는 전설이 전해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장군처럼 늠름해 보이는 대둔산이 더 이상 격전지가 되어서는 안 되고 평화를 가슴에 담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승지로 더 널리 알려지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있습니다.
대둔산 (2)
*산행일자:2007. 3. 8일
*소재지 :충남논산/전북완주
*산높이 :대둔산879미터/월성봉651미터/바랑산555미터
*산행코스:물한이재-바랑산-월성봉-826봉
-대둔산-대둔산국민관광단지
*산행시간:9시25분-17시55분(8시간30분)
*동행 :쌍용제지 이 석범사우
매년 반복되는 꽃샘추위를 기상이변으로 볼 수 없듯이 능선 길 나뭇가지에 맺힌 꽃망울을 억누르고 상고대를 꽃피우는 춘삼월의 변덕스런 기후 변화를 단순히 떠나가는 겨울의 심술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난 3월1일 꽃망울을 조심스럽게 터트린 진달래꽃을 바라보면서 이 꽃들이 올 봄이라고 꽃샘추위를 피해갈 수 있겠나 싶어 걱정했었는데 꼭 한 주 만에 다시 찾은 금남정맥 산길에서 꽃샘추위가 불러들인 때늦은 눈이 대둔산 산자락을 하얗게 덮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상가까이에는 봄 꽃 대신 상고대가 나뭇가지에 활짝 피어 있어 모처럼 꽃망울을 터뜨린 봄꽃들이 모진 시련을 겪고 있음도 함께 보았습니다. 이처럼 한반도에서는 꽃샘추위가 봄 날씨의 한 유형으로 자리잡아왔기에 3월의 꽃나무들은 어차피 열흘을 넘기지 못하는 화무십일홍의 꽃들을 먼저 내보내 꽃샘추위의 강도를 점검한 후 여름 내내 나무들을 푸르게 치장할 잎파랑이를 나중에 내보내는 것이 자연의 로고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종주산행은 작년11월 한남금북정맥의 마지막 구간인 속리산을 함께 오른 쌍용제지의 한 친구와 함께 했습니다. 아침 6시 반에 강남터미널을 출발한 저희들은 8시15분 경 안개가 자욱한 논산시내에 도착해, 택시로 옮긴 시내버스정류장에서 8시 20분을 조금 지나 양촌 행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전날 내린 눈이 논밭을 하얗게 덮어 시골의 아침 길이 한층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양촌에서 5천원을 들여 물한이재까지 다시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아침9시25분 물한이재를 출발해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깎아지른 절개면에 하얗게 쌓인 눈이 초장부터 이번 산행을 힘들게 했습니다. 펜스 안으로 들어서 절개면 중간쯤에 30도가량 오른 쪽으로 비스듬히 난 길은 평상시면 쉽게 오를 수 있으련만 눈이 살짝 덮인 빙판 길로 변해 아이젠을 했어도 미끄러졌습니다. 이 길을 따라 절개면 꼭지점에 다다르기가 무리인 것 같아 포기하고, 벌곡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다 만난 물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치켜 올랐습니다. 길이 아닌 곳을 나뭇가지를 붙잡고 10여분을 올라 오른 쪽에서 이어오는 정맥 길에 합류하기까지 아무도 걷지 않은 눈 덮인 산속에 새롭게 발자국을 내며 올랐습니다. 산행시작 반시간만에 426봉에 오르자 오른 쪽 산 아래로 향적산에서부터 지켜본 탑정호가 선명하게 보였고 북쪽 멀리 계룡산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생각지도 못한 복병은 그물식아이젠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아무 탈 없이 잘 써온 아이젠이 까탈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정맥 길로 접어들어 눈길을 걷고부터였습니다. 내린지 며칠이 지나 다져진 눈 위를 걷는 데는 제 성능을 100%발휘해온 그물식아이젠이 미쳐 다져지지 않은 신설 위를 걷자 접착제를 발라놓은 듯 눈과 낙엽이 아이젠에 꽉 달라붙어 마치 굽이 높은 나막신을 신은 것처럼 뒤뚱대어 자칫 잘못하면 발목을 곱 지르기가 십상이겠다 싶었습니다. 2-3분마다 아이젠에 붙은 눈을 털어내다가 결국 아이젠을 벗고 426봉에 올랐으나 이 봉우리에서 작은물한재로 내려서는 길이 가느다란 로프를 잡고 내려가야 할 정도로 가팔라 다시 아이젠을 차고 바위 길을 내려서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바위 길을 지나 능선 길을 걷다가 앞선 친구의 발자국을 따라 딛고 걸어도 엉겨 붙는 눈 덩이를 당해낼 수 없어 440봉에 이르기 직전에 아이젠을 벗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1시30분 해발 555미터의 바랑산을 올랐습니다.
작은물한재에서 340봉과 421봉을 차례로 오르내린 후 너럭바위지대를 지나 월성봉정상 1.46Km의 이정표가 있는 440봉에 도착한 시각이 11시3분으로, 아이젠에 붙은 눈을 털어내며 걷느라 생각보다 반시간 가까이 늦어져 이 속도로는 이번 종주의 끝 지점인 배티재까지 진출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됐습니다. 440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전진하다가 만난 전망바위에서 오른 쪽 아래로 내려다 본 양촌 벌이 시원스레 보였습니다. 바랑산 정상의 좁은 공터에 삼각점이 박혀 있어 지도상의 위치확인이 쉬웠습니다. 바랑산에서 법계사 갈림길에 이르는 길은 오른쪽 면이 천애절벽인 능선 길이 대부분이어서 전망이 일품이었고 오른 쪽 아래 산기슭에 자리한 법계사 사찰도 똬리 모양을 하고 있어 독특해 보였습니다.
12시30분 해발 651미터의 월성봉에 올라 점심을 들면서 20분 넘게 쉬었습니다.
법계사갈림길에서 0.26Km 남은 월성봉을 오르는 길은 가팔랐습니다. 처음으로 눈길을 걷는 저희들보다 한 발 앞서 이 길을 밟은 산토끼(?)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보여 길 찾기가 수월했습니다. 가파른 오름길을 갈지자를 그리며 올라서자 아주 넓은 헬기장이 나타났고 헬기장 끝 지점에서 몇 발자국을 더 걸어 정상석이 서있는 월성봉에 이르렀습니다. 김밥과 곰탕면으로 빈 배를 채운 후 12시52분에 월성봉을 출발했습니다. 월성봉에서 4-5분을 걸어 다다른 흔들바위에 올라선 친구를 카메라에 담고 나서 무수재를 향하여 내리막길로 들어섰습니다. 잠시 후 전망바위 삼거리에 다다라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자 직벽의 능선 길이 아찔해보였습니다. 전망바위 삼거리에서 가파르게 내려선 곳이 오른쪽으로 양촌 길이 갈리는 안부삼거리로 여기에서 수락계곡방향으로 직진해 암릉길을 지나고 추락방지용 목책이 있는 전망쉼터에 다다라 양촌에서 올랐다는 한 분을 만났습니다. 가파른 계단 길을 부지런히 걸어 내려가 안부사거리인 무수재 고개에 다다른 시각이 13시35분으로 바랑산에서 이곳 무수재까지 오른 쪽 면이 천길 낭떠러지가 대부분인 능선 길을 2시간 여 걸은 셈입니다.
14시54분 암릉길 전망바위에서 10분을 쉬었습니다.
무수재에서 대둔산 정상봉인 마천대까지 4.25Km 거리여서 2시간 남짓한 시간이면 마천대에 다다를 것이고 그리되면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배티재에도 해 안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아 안심됐습니다. 무수재를 출발해 397봉을 거쳐 헬기장을 지났습니다. 397봉에 오르기 직전에 4-5분을 쉰 터라 헬기장을 지나 충남논산과 전북 완주의 경계를 이루는 560봉에 올랐어도 쉬지 않고 내달려 얼마 후 47개의 형형색색의 표지기 들이 나란히 걸린 220계단 갈림길의 안부사거리에 다다랐습니다. 푸르른 산죽들 사이로 난 우회 길로 돌고, 커다란 암석들의 암릉 길을 걸어 전망바위에 올라서자 왼쪽 뒤로 수락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산골짜기를 뒤덮은 하얀 눈이 대둔산의 깊이를 느끼게 했고 멀찌감치 떨어져 작게 보였던 마천대의 개척탑이 가까이 보여 대둔산의 높이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바람이 땀을 식혔지만 한 겨울의 냉기는 찾아볼 수 없어 아무리 꽃샘추위가 극성을 떤다 해도 봄이 이미 와있음을 이 바람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16시14분 대둔산 정상봉인 해발 879미터의 마천대에 올라섰습니다.
전망바위에서 826봉에 오르는 30분간의 산행이 힘들었습니다. 몇 번이고 암봉 왼쪽으로 난 우회 길로 에도는데 그동안 내린 눈이 깊게 쌓여 평범한 능선 길을 걷는 것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계속되는 산죽과 멧돼지 발자국으로 보이는 커다란 족적, 그리고 겨울을 숨겨놓은 고드름 등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동행한 친구는 “그 누구 없소?”하고 조용한 산속에 사람 찾는 메시지를 띄웠습니다. 지도상의 허둥봉으로 보이는 826봉에 오르자 저녁 햇살을 머금은 나뭇가지의 상고대가 저희들을 반겼습니다. 6번의 금남정맥 종주 중 눈길을 걷기도 이번이 처음이었고 활짝 핀 상고대를 만나보기도 처음이었습니다. 지척 거리의 마천대에 다다르는 데 50분이 걸린 것은 끝났다고 생각한 암릉길과 오르락 내리락 능선 길이 계속되어서였습니다. 바랑산에서 무수재까지 능선 길은 오른쪽 면이 깎아지른 능선 길이었는데 마천대를 받치고 있는 암벽들도 그에 못 지 않은 직벽이어서 볼만했습니다. 회색의 암벽들과 새 하얀 상고대가 흑과 백의 대비를 절묘하게 보여주어 오름길에 힘이 드는 것을 얼마고 덜어주었습니다. 마천대에 올라서자 비로소 눈보라를 몰고 온 몰아치는 바람이 매섭게 느껴졌습니다. 대둔산 등정기념으로 저희 둘의 사진을 부탁해 찍은 후 남은 김밥을 마저 들자는 친구의 제의를 묻어두고 바로 정상을 뜬 것은 어떻게든 배티재까지 가보겠다는 욕심이 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6시42분 마천대와 낙조대 중간쯤에서 배티재행을 포기하고 뒤돌아섰습니다.
마천대에서 낙조대로 가는 능선 길이 그냥 얌전한 길이 아니고 암릉 길이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 동행한 친구가 많이 지쳐 보였고, 해떨어지기 전에 배티재에 닿기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아 잠시 고심을 하다가 포기하기로 결심을 하자 아쉽기는 해도 안도됐습니다. 대전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가 저 아래 관광단지에서 저녁6시반에 출발하기에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사거리로 되돌아와 케이블카/금강구름다리로 가는 급경사 길로 내려서 양 옆에 직벽의 암봉이 만든 협곡을 지나 케이블카 승강대 100미터 전방에 다다라서야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마천대에서 다시 찬 아이젠을 풀고 1.3키로 남은 관광단지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중 높이 솟은 두 암봉을 잇는 구름다리를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동자바위 아래 휴게소를 지나자 계곡이 시작되었고 물소리가 상쾌했습니다만, 다음 주 이 길로 다시 올라가 마천대에서 마루금을 이어갈 생각을 하자 경사진 내리막길이 하나도 반갑지 않았습니다.
17시55분 주차장 바로위의 슈퍼에 들러 캔맥주를 사마시며 하루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마지막(?) 꽃샘추위로 상고대를 다시 보는 기쁨을 누렸지만 눈길을 걷는 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 목적지에 닿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자연의 변화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어 큰 다행인 것은 기쁨과 아쉬움의 접점을 찾아 적절히 균형을 이루게 하는 자연의 로고스가 아무려면 사람들의 이기심에 기초한 조절노력만 못하겠느냐 싶어서입니다.
<산행사진>
대둔산(1)
*산행일자:2004.3.7일
*소재지 :충남 논산/전북 완주
*산높이 :878미터
*산행코스:수락리 정류장-낙조대-대둔산 정상-구름다리-관광호텔
*산행시간:10시45분-15시50분(5시간5분)
*동행 :과천시산악연맹
겨울이 물러난 이 춘삼월에 100년만에 큰 눈이 내렸고, 이로 인해 특히 충청권 일원의 주민들이 막심한 피해를 보았다는 뉴스는 저희들을 슬프게 했습니다. 언제까지나 자연의 급작스러운 재해에 눈 멀거니 당하고서도 사전에 단단히 대비를 했어야 할 관계당국으로부터 천재지변으로 불가피했다는 변명만 들어야 하는가 하는 답답함을 가슴에 안고 산행 길에 나섰습니다.
어제는 한 세기만의 대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대둔산을 올랐습니다.
과천시 산악연맹의 첫 번째 봄나들이로 오른 대둔산은 그 높이가 해발 878미터로 충청남도 와 전라북도간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한의 소금강으로 불려도 좋을 만큼 바위들의 절경이 빼어난 산입니다. 대전을 지나 금산의 국도로 접어들자 온 산하를 뒤덮은 눈들이 겹겹이 쌓여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논산 수락리의 저수지만이 제 모습을 드러냈을 뿐 사방의 온 천지가 새 하얗습니다.
10시 35분 수락리의 정류장에 도착, 도시락을 배급받아 짐을 싼 후 아이젠을 찼습니다.
산에 올랐다 되 내려와 이곳에서 점심을 들라는 어느 음식점여주인의 간청을 뒤로하고 10시
45분 정상을 향해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25분간 눈이 수북히 쌓인 포장도로를 걸어 들머리를 찾았습니다. 계곡 길로 접어들어 선녀 폭포를 지났는데 폭포도 계곡도 모두가 눈에 덮여 그 실체를 볼 수 없었습니다. 무릎 가까이 푹푹 빠지는 계곡 길을 러셀링해 헤쳐나가는 선두의 노고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과체중을 지탱하는 두 다리를 번갈아 치켜올리며 깊숙한 눈길을 오르는 것이 제게는 고통이었습니다.
11시40분 석천암에 도착, 제대로 휴식을 취했습니다.
눈이 많이 쌓여 다른 때와는 달리 반시간 여 걸으니 힘에 부친 듯 싶어 선 채로 잠시 숨을 고르곤 했습니다. 산행 중 목이 타지 않아 물을 안 마셨더니 화장실을 찾지 않아도 되어 휴식시간을 몽땅 쉬었습니다. 여기 석천암에서 샘물을 마시고 스틱을 꺼내 드는 사이에 일행들은 저만치 내달았습니다. 30분을 부지런히 따라가 선 채로 짧은 쉼을 가졌습니다. 눈길이 아니라면 통상 한시간을 걸은 후 5분 여 쉬는데 어제는 탈진을 막고자 반시간을 산행한 후 짧은 휴식을 취했습니다. 계속되는 계곡 길에 종종 발이 빠져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습니다
12시 40분 허들장군 절터에 자리잡아 점심을 들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2시간 가까이 3.3키로의 거리를 걸어 이곳 절터에 다다랐습니다. 산을 오르느라 땀을 흘린 후 드는 도시락은 언제고 맛이 있기에, 반주를 함께 드는 애주가들의 소찬도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듯 넉넉해 보였습니다. 이 추운 겨울에 식후의 커피도 빼놓을 수 없는 후식입니다. 조금 빨리 식사를 끝내고 그 동안 오른 길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의 식사하는 모습도 몇 커트 찍으며 새로 장만한 디지털카메라의 시연을 마쳤습니다.
13시 5분 낙조대를 향하여 절터를 출발했습니다.
계곡에서 벗어나 깔딱고개를 20분 가까이 올라 낙조산장에 이르렀습니다. 산장의 어느 한 분이 낙조대를 들를 것을 강력히 권해와 850미터의 낙조대를 올라 주위의 절경을 감상했습니다. 서해안으로 지는 해를 수평으로 관조할 수 있다지만 늦어도 관광단지에 17시안에 도착해야하는 저희들은 이곳 낙조대에서 해넘이를 지켜볼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마천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14시 10분 낙조대에서 몇 개의 봉우리를 트래파스하고 철계단을 올라 정상인 마천대에 섰습니다. 878미터의 높이에도 바람이 거의 없고 따뜻했기에 카메라를 작동하기가 편했습니다. 같이 오른 몇 분들의 자랑스러운 모습들을 카메라에 남겼고, 나무 가지에 꽃피운 눈꽃을 근접촬영 했으며, 작년 9월에 오른 남쪽 방향의 운장산도 담았습니다. 우리나라 명산들은 주말이면 그 명성에 비례하는 인파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연이은 폭설이 막 끝나서인지 100대 명산의 하나인 대둔산을 수락리로 오르는 등산객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정상은 맞은 편의 관광단지에서 케이블카로 오른 등산객들로 조금 붐볐기에 뒤이어 오르는 분들을 위해 서둘러 자리를 비어 주었습니다.
14시 25분 이 같이 아름다운 3월의 설경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아쉬워하며 하산 길에
들어섰습니다. 경사가 만만치 않아 하산 길도 쉽지 않겠지만 이 길로 올라 온 분들의 고생도 대단했으리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수터휴게소에서 더덕과 당귀등 5종의 약재로 빚었다는 막걸리로 목을 추겼습니다. 동학군이 대둔산의 이 높은 곳에서 마지막 전투를 치렀다 하니 막걸리 한잔을 올려 그들의 비장한 죽음을 기리고 싶었습니다. 구름다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긴 후 케이블카 승강장을 거쳐 대둔산 터미널의 관광호텔에 이르기까지, 하산길이 조심스럽다는 어느 한 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섬주섬 엮어가며 천천히 산을 내려왔습니다.
15시 50분 대둔산 관광호텔에 도착, 5시간동안의 긴 설상 산행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며칠 전 휘날리는 백설의 난무에서 최고의 무질서를 보았습니다. 눈발은 그 운동방향이 변화무쌍하여 종잡을 수 없었지만 종국에는 이 땅의 어디인가에 자리잡아 차곡차곡 쌓였을 터인데 최고의 무질서는 바로 최고의 질서를 잉태하고 있음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날 이 사회의 무질서를 마냥 두렵게 볼만한 일은 아닌 듯 싶어 안심이 되었습니다.
19시 조금 넘어 과천에 도착, 산행대장 한 분이 맥주를 내어 간단히 뒤풀이를 가졌습니다.
귀로의 버스 안에서 옆자리의 몇 분들과 동네산악회와 안내산악회의 차이에 관해 몇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저희 과천시 산악연맹이 안내산악회와 같이 오직 산만을 오르내릴 수는 없기에 대원들간의 친목을 도모하고자 약간의 여흥을 즐기는 시간을 갖고 있지만 다른 동네 산악회에 비해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러도 나름대로 절도를 지키고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이런 분들이라면 척박한 이 땅에 시를 심어 그 뿌리를 내린 시인 정 호승님의 시 한 수를 권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는 그의 시집에서 옮겨온 “술 한잔”을 올려 드리며 이 산행기를 맺습니다.
술 한잔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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