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98.가지산 산행기(1-3)

시인마뇽 2010. 3. 14. 08:37

                                                               가지산(3)

 

                                *산행일자:2012. 2. 12일(일)

                                *소재지   :울산시/경남 밀양

                                *산높이   :가지산1,240m

                                *산행코스:구도로 석남터널입구(밀양 쪽)-석남사갈림길-가지산-쌀바위-운문령

                                *산행시간:11시30분-17시15분(5시간45분)

                                *동행      :경동고24회 동문13명

                                  (김주홍회장, 이규성, 이달헌, 이기후, 김동수, 김남진/김양미, 박태환, 고동준,

                                   황의천, 정준식, 장광종, 우명길)

 

 

  제가 산행대장을 맡고 있는 '명백회(名百會)'에서 어제 21번째 ‘명산100산 산행’을 가졌습니다. 2006년 가을 설악산을 오르는 것으로 첫 걸음을 내디딘 저희들은 그간 매년 철을 바꿔가며 산림청에서 선정한 명산100산 중에서 한 곳씩을 골라 올랐습니다. 1968년 경동고를 졸업한 24회 동기들의 산행모임인 ‘명백회’의 ‘명산100산 산행’이 의미 있는 것은 앞으로도 20년간 일 년에 네 번 모여 같이 산에 오른다는 것입니다. 80세가 훨씬 넘어야 끝나는 명산100산 산행프로그램을 끝까지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 모르지만 그를 목표로 건강을 관리하겠다는 열의만은 확인할 수 있어 나름대로 의미 있는 모임이라 생각합니다.

 

 

 

  첫 산행지인 설악산은 공룡능선 코스를 타느라 이틀에 걸쳐 산행을 했습니다. 그 다음 산행지인 덕유산에서는 따뜻했던 떡가래가 다 먹기도 전에 얼 정도로 엄청 추운 날 하얀 눈을 맞으며 능선 길을 걸었습니다. 13시간 동안 꼬박 걸어 지리산을 오르던 2007년 봄 만해도 50대를 벗어나지 않아 하산주를 마시면 피로가 싹 풀렸는데, 60대 중반에 접어든 요즈음은 그리 강행군을 했다가는 명백회의 존폐가 위협받을 정도로 참여 동문이 줄어들 것이 뻔해 아무리 길어도 6시간을 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서 산행코스를 잡습니다. 또 하나 서울 근교 명산들은 팔십 넘어 끝머리에 오르기로 한 것도 그때 되면 지금처럼 네 다섯 시간 버스를 타고 가서 산을 오르는 것이 무리가 될 것 같아서입니다.

 

 

 

  21번째로 오른 ‘명산100산’은 경남 밀양과 울산을 경계 짓는 가지산으로 해발고도가 1,200m를 넘습니다. 영남 알프스의 종주산으로 자리 잡은 이 산을 춘삼월에 찾은 것은 두 번으로 그때마다 설경이 장관이어서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하고 정했는데 이번에는 한 달 미리 왔는데도 올 겨울 가뭄이 유달리 심했는지 오름 길에 흙먼지가 펄펄 날렸습니다. 그래도 시야가 탁 트인 고스락에 오르자 전망이 일품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했습니다. 앞으로 올라야 할 ‘명산100산’인 신불산, 재약산, 운문산이 지척의 거리에 있고 낙동정맥이 동쪽으로 이어주는 고헌산도 운문산 다음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어 이 모두가 깔끔하게 보였습니다.

 

 

  11시48분 구도로가 지나는 석남터널의 밀양 쪽 입구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침7시경 서울 양재동을 출발한 미니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가다 밀양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엄청 긴 능동터널을 지났습니다. 곧 이어 도착한 석남사 앞에서 꾸불꾸불한 옛길을 따라 올라가 바로 아래 석남터널로 석남고개를 넘었습니다. 밀양 쪽 터널입구에서 하차해 기념사진을 찍은 후 길안내를 맡은 울산대 이규성교수가 이끄는 대로 오른 쪽 계곡으로 들어서 석남고개로 올라갔습니다. 돌무덤이 있는 석남고개 마루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왼쪽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을 따라 올라 오른 쪽 아래로 석남사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 도착한 시각이 12시17분이었습니다. 산행시작 반시간 만에 여기 능선삼거리에 올라 원래 계획대로 석남사입구에서 출발한 것보다 1시간은 절약했습니다.

 

 

 

  12시51분 휴게소에서 시작된 긴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가지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꾸준한 오름 길인데다 영상의 기온에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해발고도가 천 m를 넘어섰는데도 한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재작년 3월에 이 길을 오를 때만 해도 온 산이 하얀 눈으로 덮여 감탄사를 연발했는데 이번에는 등산로에서 흙먼지가 펄펄 날려 벌써부터 봄 가뭄이 걱정됐습니다. 휴게소근처에서 점심을 들기로 한 선두팀이 보이지 않아 나무계단 길을 걸어 계단이 끝나는 곳까지 올라갔습니다. 먼저와 기다리는 선두팀원들과 함께 넓게 자리를 잡아 점심을 들면서 40분 가까이 푹 쉰 후 산 오름을 이어 갔습니다. 10여분 오르자 눈이 녹아 질펀한 길이 나타났고 얼마 후 얼음이 언 길로 바뀌어 아이젠을 꺼내 찼습니다. 남서쪽 멀리로 재약산이, 그리고 남동쪽으로 하얀 눈이 덮인 신불산이 선명하게 보이는 해발1,165m의 중봉에 오르자 일행들은 북서쪽의 가지산 정상을 배경으로해 사진 찍기에 바빴습니다.

 

  15시 정각 해발1,240m의 가지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중봉에서 정상을 배경으로 해 저의 전신을 사진 찍어준 한 친구에 사진만 잘 나오면 훗날 낙동강둘레산줄기 환주기를 책으로 펴낼 때 이 사진을 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가파른 길을 따라 안부로 내려가면서 잠깐 동안 눈을 밟았지만, 왼쪽 아래로 호박소휴양지 길이 갈리는 안부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짧은 오름길에서도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아 눈이 좋아 이 산을 택했다는 제 설명이 거짓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영남알프스를 대표하는 최고봉인 가지산은 역시 산림청에서 명산100산의 하나로 선정한 산답게 정상이 붐볐습니다. 영남알프스에는 이번에 오른 가지산을 포함해 100명산에 포함된 산이 네 산이나 있습니다. 서쪽의 운문산, 남서쪽의 재약산과 남동쪽의 신불산이 그것들로 여기 가지산 정상에 올라서자 모두 한 번 이상 오른 산들이어서인지 다른 산들보다 훨씬 잘 보였습니다.

 

 

 

  16시 정각 쌀바위 옆 휴게소 앞에 이르렀습니다. 정상을 출발해 쌀바위로 가는 길이 북사면에 나 있어 눈이 녹지 않고 제법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아래 전망대 데크에서 후미로 쳐진 몇 명이 과일을 꺼내 드는 동안 다가온 견공 한 마리가 눈길을 끈 것은 눈 위에 까만 눈썹이 그려져 있어서였습니다. 정상 휴게소의 개라는데 여느 개들처럼 짖지를 않고 사람을 따라 이 산을 다녀간 사람들에 많이 회자된다 합니다. 재작년 3월에 사진 찍었던 눈꽃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제법 많이 눈이 쌓여 1시간 가까이 눈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난 능선 길을 따라가 헬기장을 지나서 주위를 압도하는 두 개의 거암이 서있는 쌀바위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9월 바닥에 배를 깔고 늘어지게 쉬고 있던 백구는 보이지 않아 궁금했지만 큼직한 쌀바위가 계절을 바꿔가며 자리를 지켜 듬직했습니다. 바위틈에서 쌀이 흘러나와 쌀바위라는 이름을 얻은 두 거암에 관한 전설이 주는 교훈은 너무 욕심을 부리다가는 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것입니다. 스님께 매일 쌀을 흘려준 쌀바위가 더 이상 쌀을 내려주지 않고 물만 흘려보낸 것은 스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바위틈을 들쑤신 아랫마을 사람들의 얌체 짓에 산신령이 노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17시23분 운문령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쌀바위에서 산 위로 상운산 길이 갈리는 삼거리데크 전망대까지 임도 또한 북쪽 길이어서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차들이 다니는 평평한 임도를 따라 걸으며 파란 하늘의 구름 한 점과 어느 한 쌍이 다정하게 걸어가는 눈 쌓인 임도를 카메라에 담고 나자 왼쪽 숲 안에 앙증맞고 귀여운 눈사람이 보여 이 또한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삼거리데크 전망대에서 십 수분 후미를 기다려 함께 운문령으로 내려갔습니다. 낙동정맥의 마루금 대신 남쪽 산허리에 낸 임도를 따라 내려가며 이번에 처음으로 명산100산 산행에 참여한 한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며칠 전 모교에서 정년퇴직한 이 친구도 저처럼 체중이 많이 나가 걱정을 했었데 의외로 힘들어하는 내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잘 걸어 고마웠습니다. 방송대국문과의 스터디그룹에서 같이 공부하고 있는 한 학우가 이 친구의 방송통신고 제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세상이 참 좁다 했습니다. 운문령에서 석남사 쪽으로 몇 분 걸어 내려가 대기 중인 버스에 오름으로써 고교동기들과 함께하는 명백회의 21번째 명산100산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귀가 길 버스 안에서 옆 자리의 한 동문과 ‘산경(山經)’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산경은 우리 선조들이 정립한 산줄기 개념으로 학교에서 배운 ‘산맥(山脈)’과 얼마간 그 개념을 달리합니다. 눈에 보이는 산줄기가 산경이라면, 산맥은 눈에 보이지 않은 지하자원을 중심으로 이어가는 산줄기를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산자분수(山自分水)라는 개념으로 우리 산을 이해했습니다.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산자분수의 개념에 따르면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르는 영(領)인 것입니다. 그 영(領)의 높이가 단 1m라 해도 좌우로 물을 가를 수 있어 산이 되는 것이기에 지맥이나 정맥 등의 산줄기가 아파트단지나 논 가운데를 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두 봉우리가 섬에 있지 않다면 이 봉우리들을 이어주는 산줄기가 반드시 하나 있다는 이론도 산자분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만약 두 봉우리가 한 줄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중간에 산이 건널 수 없는 물이 사방을 가로 막아서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백두산과 우리 동네 수리산이 한 줄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그 사이에 그 줄기를 끊어 놓는 물이 없어서입니다. 수리산에 올라 한남정맥과 한남금북정맥을 따라가면 속리산에 이릅니다. 이 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북진하면 백두산에 오르게 됩니다. 이번에 오른 가지산에서 낙동정맥을 따라 태백산까지 가서 백두대간을 따라 올라가면 백두산에 닿습니다. 어찌 백두산뿐이겠습니까? 유라시아가 한 몸통인데 알프스의 몽블랑인들 연결이 안 될 리가 없습니다. 일본의 후지산은 바다가 가로 막아 안 되지만  세계의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는 같은 대륙에 있기에 우리 집 뒷산인 수리산을 출발해 산줄기만 타고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이야기입니다.

 

 

 

  명산100산의 하나하나는 점입니다. 먼 훗날 이 100산을 모두 오르면 저희들은 한반도 남단에 점 100개를 찍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점들을 이어주는 산줄기를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저희들이 산 오름을 통해 이어간 우정의 끈이 얼마나 길고 질긴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나눈 이야기의 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래서 산행이란 발품을 팔아 온갖 상상을 이어가는 창작활동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됩니다.

 

 

                                                              <산행사진>

 

 

 

 

 

 

 

 

 

 

 

 

 

 

 

 

 

 

 

 

 

 

 

 

 

범솥말

 

 

  • 2012.02.1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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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에는 동문들과 함께 가지산을 다녀오셨군요?
    눈이 없어 실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눈이 없는 대신에 회색으로 물들고 새순을 돋구기 위한 연 붉은 꽃눈을 보셨잖습니까?
    눈으로 눈을 봄은 누구나 볼수 있지만 선배님 같은 분들은 마음으로 눈을 볼 수 있는데 무엇을 실망하겠습니까?
    그냥 무사히 산행을 마치셨다는것과 100산을 한곳 정복했다는 것이 참뜻이겠지요.
    제도 몇해전 100산하느라 가지산을 다녀온적이 있는데 가지산에서 운문산으로 2산을 타는바람에 가고 싶었던 쌀바위를 가보지 못했고 운문산에서 내려 오면서 무리를 했던지 그때부터 무릎이 고장이 났습니다.
    담에 쌀바위에 가면 산신령이 노하던 20kg한포대는 가지고 내려와야 할텐데 말입니다.
    이번에 쌀바위에서 가지고 온 쌀 있으면 담에 떡을 해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암튼 재밉게 봤고 즐거운 산행 축하드리고 늘 안산하시기 바랍니다.
    명산100산 산행을 통해 고교동창들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제가 동창들에 서비스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100산 안내입니다. 동창들 체력이 다를 때까지 계속 길안내를 하고자 합니다. 조금 가지고 왔는데 그때까지 쌀이 남아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지산(2)                                 

     

     

                                     *산행일자:2011. 9. 26일(월)

                                     *소재지   :울산울주/경북청도 

                                     *산높이   :가지산1,241m, 능동산983m, 상운산1,117m

                                     *산행코스:배내고개-능동산-가지산-쌀바위-상운산-운문령-외항마을

                                     *산행시간:7시50분-17시12분(9시간22분)

                                     *동행      :나홀로 

     

     

      낙남정맥 종주 길에 숨 가쁘게 가지산을 오르면서 몇 번이고 자문한 것은 “너는 째즈가 더 좋더냐?”하는 명제였습니다. 라이브공연을 하는 대학로의 한 째즈 빠를 들르지 않았다면 사흘 전인 지난 금요일에 이 산을 오르도록 계획되었는데 이틀 전에 방송대의 동아리학형들로부터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째즈공연을 함께 보러가는 바람에 가지산의 산신령을 사흘씩이나 늦게 뵌 것입니다.

     

     

     

      째즈냐 등산이냐는 두 취미 중에서 어느 한 가지를 택하는 것이어서 크게 고민되는 일은 아닙니다. 어느 것을 선택한다 해도 즐거움의 양에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생활 차원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슬 푸른 10월 유신이 있었던 1972년 가을 공무원의 이석을 절대 금지하는 포고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며칠 고민 끝에 오대산을 몰래 다녀온 것은 지금 생각해도 백번 잘못한 일입니다. 그때 군내 최대의 운동회가 개최되어 어수선하던 때였기 망정이지 이석이 들통 났다면 바로 파면되었을 것입니다. 그리됐다면 공부하나 잘한다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 대학을 졸업시킨 어머니께서 아들 잘못 두었다는 조롱 때문에 동네에서 고개를 드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불효가 따로 없는 즉, 어디서 그런 만용이 생겼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지금 제게 굳이 직업을 대라하면 방송대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으로 답할 뜻입니다. 다 늦은 나이에 무슨 공부냐는 소리도 더러 듣지만 제가 좋아 택한 것이기에 어느 과목도 소홀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제 학생이 된 이상 제가 최우선으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은 공부입니다. 젊은 학생들처럼 졸업해서 어디에 써먹겠다는 것이 아니어서 공부하는 것이 직업이라 말하기가 조금 뭣하지만 그렇다고 취미삼아 하는 것은 분명 아니고 일삼아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째즈카페에야 정말 어쩌다 간 것을 산신령께서 이미 알고 계셔서 “너는 째즈가 더 좋더냐?”며 혼을 내시지는 않았습니다. 저 또한 째즈가 산보다 더 좋아한 것이 아니고 공부를 같이하는 학형들이 좋아서 간 것이라고 이실직고해 일단 매를 피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언젠가 산신령께서 째즈가 아니고 “너는 공부가 더 좋더냐?”고 물어 오신다면 저는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대학원에 진학해 구비문학을 더 공부하고 싶고 내친 김에 박사과정도 밟고 싶은 제게 산과 공부 중 어느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정말 고민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방송대에 입학한 후 매주 두 번 하는 산행을 한 번으로 줄이고 시험이 임박해서는 산행기를 쓰지 않을 속셈으로 집근처 산으로 오르기도 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지난 6월에 시작한 낙동정맥 종주를 언제 딱 끝내겠다고 아직까지 계획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공부가 중요하다고 해도 매주 한 번 하는 산행을 거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리해야 한다면 아마도 공부를 포기할 것입니다. 산행은 제게 단순한 취를 넘어 신앙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산신령께서 “너는 정말 공부가 더 좋더냐?”라고 물어 오시지 않도록 산행을 거르지 않으면서 공부 또한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산과 공부 외에 다른 일에 눈을 돌리지 않을 각오입니다.

     

     

     

      아침7시50분 배내고개를 출발했습니다. 밤차 타고 내려간 부산역에서 첫 전철을 타고 노포 역으로 이동했습니다. 바로 위 노포버스터미널을 아침6시30분에 출발해 40분 후 도착한 언양에서 18,000원을 들여 택시타고 배내고개까지 간 것은 하루에 두 번 다니는 버스시간을 맞추지 못해서였습니다. 해발 6백m대의 배내고개는 아침공기가 싸늘했습니다. 고갯마루 정자에서 산행채비를 마친 후 건축 중인 휴게소를 지나 능동산 들머리의 나무계단 길로 올라섰습니다. 8년 전 배내고개에서 시작해 천황봉과 재약봉을 차례로 오른 후 표충사로 하산한 일이 있는데 그 때는 캄캄한 밤에 산행해서인지 이 고개에서 능동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마치 처음인 듯 생소했습니다. 길 양쪽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운 나무계단을 오르는 중 두 곳의 전망대를 지나면서 남쪽 건너 간월산-배내봉의 능선 길을 뒤돌아보았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석남고개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조금 더 직진해 산마루에 오르자 표고가 해발983m임을 알리는 능동산 정상석과 두 기의 돌탑이 저를 반겼습니다. 서쪽 먼발치로 보이는 천황봉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다시 삼거리로 되 내려갔습니다.

     

     

     

      10시 정각 능동산과 가지산 사이의 가장 깊은 안부 사거리인 석남고개를 지났습니다. 능동산에서 되 내려간 삼거리에서 석남고개로 내려가는 정맥 길은 정북 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삼거리에서 나무계단 길을 따라 해발 700m 대로 내려서자 경사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 얼마간 이어져 한껏 속도를 높였습니다. 삼각점이 박혀있는 나지막한 813.2m봉을 넘어 석남고개로 내려가는 중 죽어 길바닥에 나자빠진 비둘기만한 제법 큰 새를 보았습니다. 보다 힘 센 놈의 공격을 받고 당해내지 못해 죽은 것으로 보이는 이 새의 시신을 보고 이것이 자연의 냉엄한 질서다 싶었습니다. 하늘을 가리는 철쭉 숲을 지나 다다른 삼거리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가다가 능선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 아무래도 제 길이 아닌 것 같아 삼거리로 되 돌아가느라 10분가량 까먹은 것이 이번 산행 중 유일한 알바였습니다. 돌아간 삼거리에서 오른 쪽 능선 길을 따라 수분을 걸어 오른쪽 아래로 석남사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다다랐고 직진해 조금 내려가 돌무더기가 자리한 안부사거리에 이르렀습니다. 해발740m(?)대의 안부에서 조금 더 올라 만난 삼거리는 석남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으로 이번 산행 처음으로 이곳에서 10분가량 쉬었습니다.

     

     

     

      11시48분 해발1,241m의 가지산 고스락에 올라섰습니다. 삼거리에서 10분가량 쉬는 중 석남사에서 올라온 젊은 세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뉘었습니다. 저도 이분들처럼 작년 3월 석남사를 출발해 이 길로 눈이 꽤 많이 쌓인 가지산을 오른 적이 있는데 계절이 바뀌어서인지 오름 길이 그리 눈에 익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피소에서 시작된 나무계단 길이 꽤 길었는데도 계단 간의 간격이 적당해 별반 힘들지 않았습니다. 계단 길이 끝나는 1160m봉에 오르자 가지산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려가는 그림 같은 산줄기가 한눈에 잡혔습니다. 왼쪽 아래로 제일농원 길이 갈리는 안부삼거리에서 가지산 정상으로 오르는 중 뒷덜미에 내려앉은 한 낮의 햇살이 여전히 따가워 이것이 밀려나는 여름의 마지막 저항이다 했습니다. 암봉으로 이루어진 가지산 정상은 시야가 탁 트여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지나온 길이 남쪽 멀리로 희미하게나마 영축산까지 보였고 다음에 지나갈 고현산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한 편에 모자를 벗어 놓고 째즈 카페를 들르느라 이번 산행이 사흘 늦어져 정말 죄송하다고 산신령께 고한 후 쌀바위 쪽 길로 조금 내려가 그늘진 곳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12시33분에 오후 산행을 재개했습니다.

     

     

      13시46분 해발1,114m의 상운산을 올랐습니다. 작년 3월에 가지산 정상에 올랐을 때는 쌀바위를 경유해 석남사로 내려가려다 눈이 많이 내려 경사가 엄청 급하다는 쌀바위-석남사 길이 위험하다고 어느 한 분이 귀띔을 해주어 그 길을 포기하고 제일농원 길로 코스를 바꾸어 하산했습니다. 1년 반 만에 다시 오른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능선 길을 반시간 가량 이어가 헬기장을 지나고 쌀바위에 이르자 두 개의 거암이 주위를 압도해 과연 명불허전이다 했습니다. 백구 한 마리가 배를 바닥에 깔고 늘어지게 쉬고 있는 모습이 하품이 날 정도로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쌀바위에서 잘 닦인 임도를 따라 몇 분을 더 걸어 다다른 전망대에서 왼쪽 산길로 올라갔습니다. 경사가 급한 길을 땀을 내며 올라 다다른 봉우리가 상운산으로 해발고도가 1,114m임을 알리는 정상석이 서 있었습니다. 시야가 탁 트여 전망이 빼어난 상운산에서 정북 쪽의 첩첩이 보이는 산들을 사진 찍은 후 오른 쪽으로 뻗어나가는 능선 길을 이어갔습니다.

     

     

     

      위 거암이 쌀바위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이 바위틈에서 쌀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라 합니다. 이 바위아래에서 열심히 수도 정진한 스님께서 매일 탁발하러 아랫마을에 내려가는 것이 딱해 바위틈으로 매일 쌀을 흘려주신 분은 이 산의 질서를 세우시고 다스리는 가지산의 산신령이 틀림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스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바위틈을 들쑤신 아랫마을 사람들에 더 이상 쌀을 내려주지 않고 물만 흘려보낸 분도 역시 이산의 산신령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우리나라 산신령을 흠모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든 마냥 자비나 사랑을 베푸는 부처님이나 예수님과는 달리, 우리네 인간들과 지근거리에 있으시면서 인간들과 애환을 같이 하시고 상도 주시고 혼도 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산신령은 원래 이런 분이시니 얌체 짓을 하는 마을 사람들을 그냥 보고만 있지 못하시고 쌀 대신 물을 내려 보냈을 것입니다.

     

     

      14시57분 운문령에 내려섰습니다. 상운산에서 오른 쪽으로 능선을 따라가다 수 분후에 만난 암봉이 귀바위인 것 같은데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바위의 크기나 자태가 앞서 지나온 쌀바위에 비견할 바 못되지만 그래도 귀바위라는 귀한 이름을 얻었는데 그에 걸 맞는 전설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궁금했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운문령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빤히 보이는 능선 길을 한참 동안 걷다가 홍수예경보시설인 “석남사우량국” 앞 임도로 내려선 시각이 14시41분이었습니다. 임도를 건너 지름길로 내려가 다시 만난 임도에서 더 이상 지름길로 가지 않고 잘 나있는 임도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큰 알바를 하지 않아서인지 산행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일찍 임도로 내려선 후로는 69번 지방도가 지나는 운문령까지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운문산생태경관보전지역 환경감시소를 지나 내려선 운문령에서 15시에 언양 가는 버스가 곧 있을 것이라 해 이만 산행을 접고 버스를 기다렸으나 10분이 지나도 오지를 않아 다시 차도 건너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17시12분 외항마을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운문령 가게에서 사들은 맥주 한 캔에 들어 있는 화학에너지가 어느새 운동에너지로 전환되어 가파른 894.8m봉을 힘든 줄 모르고 올랐습니다. 운문령 위 하얀 집을 지나 북쪽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은 한동안 정북쪽으로 완만하게 계속되었습니다. 소나무 쉼터를 지나 894.8m봉 바로 밑에서 경사가 급해졌지만 미량의 알코올 덕분에 쉬지 않고 올랐습니다. 왼쪽으로 문복산 길이 갈리는 894.8m봉에서 “낙동정맥” 표지석을 확인한 후 오른 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얼마 후 다다른 790m봉에서 도계 길을 따라 직진하지 않고 왼쪽으로 확 꺾어 경상북도 경주시 권역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가파른 길을 내려가 “一松樹木園”이라는 돌기둥이 서 있는 시멘트 길로 내려섰습니다. 길 오른 쪽에 자리한 광활한 풀밭을 채운 것은 억새풀이어서 아직도 방목장으로 쓰이는지 가늠되지 않았습니다. 길 건너 고헌산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이는 이 길을 따라 내려가 만난 921번 지방도를 따라 오른 쪽으로 조금 옮겨 “대현3리 A지구" 승강장 앞에 다다랐습니다. 921번 도로와 외항재 길이 만나는 삼거리인 승강장 앞에서 산행을 마무리 한 후 17시30분 버스를 타고 아침에 출발한 언양으로 돌아갔습니다.

     

     

      산신령께서 “너는 째즈가 더 좋더냐?”며 골탕을 먹이려 작정하셨다면 이번에도 큰 알바를 피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석남고개에 이르기 몇 분전 삼거리에서 밀양 쪽으로 계속 내려가도록 내버려두셨다면 운문령까지 진행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차 안에서 줄곧 생각한 것은 째즈카페로 한 번 산신령을 모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내는 소리가 산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보다 훨씬 아름답고 감동적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때는 특별히 부탁해 째즈 음악에 능하기로 이름난 이정식님의 색소폰 연주를 들려드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생명체는 사람 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만족해하신다면 다음에는 제가 하모니카를 갖고올라가 한 곡조 불러올리겠습니다. 알바라는 벌을 내려주시지 않은 신령님,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산행사진> 

     

     

     

     

     

     

     

     

     

     

     

     

     

     

     

     

     

     

     

     

     

     

     

     

     

     

     

     

     

     

     

     

     

     

     

     

     

      

     

     

     

     

     

     

     

     

     

     

     

     

     

     

     

     

     

     

     

     

     

     

     

     

       

      

     

     

     

     

     

     

                                                                   가지산(1)

     

     

     

                                      *산행일자:2010. 3. 7일(일)

                                      *소재지 :울산/경남 밀양

                                      *산높이 :해발1,240m

                                      *산행코스:석남사주차장-간이매점-중봉-가지산-가지산/중봉안부

                                                    -너덜지대-용소골-삼양교

                                      *산행시간:12시5분-17시25분(5시간20분)

                                      *동행 :나홀로

            

     

     

        가지산은 이번에 처음 오른 것이 아닙니다. 7년 전 회사직원들과 함께 한번 다녀오기는 했지만 산행기를 쓰지 않아 내내 찜찜했습니다. 명산100산을 이렇게 대접할 수는 없다 싶어 이 산을 다시 오르고자 새벽부터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명산100산 중 하나 남은 홍도의 깃대봉을 오르기 전에 미진한 몇 산은 다시 다녀와 제대로 된 산행기를 모두 남길 생각입니다. 가지산에 이어 산행기를 안 쓴 충북 단양의 도락산도 이달 안으로 마저 다녀올 계획입니다. 산행기와 사진은 남겼지만 종주 길에 지나느라  능선만 밟고 그 속살을 들여다보지 못한 백두대간의 황장산,황악산과 호남정맥의 장안산, 그리고  산행기는 있어도 사진이 없는 월출산, 금오산, 모악산과 적상산도 모두 다 다시 오를 뜻입니다.  

     

     

     

      제가 이처럼 명산100산 탐방에 정성을 들이는  것은 제대로 한 번 점(点) 산행을 하고싶어서입니다. 제가 이제껏 주로 해온 산행은 산줄기를 이어가는 선(線) 산행입니다. 2004년 한북정맥을 종주하며  맛들인 선 산행은 그 후 6년 동안 백두대간과 7정맥 및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에서 분기한 지맥종주로 이어졌습니다. 삶의 길이란 본래가 고되고 외로운 길이라며 하루 종일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산줄기를 혼자서 말없이 이어가다가도 문득 저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 이 산들의 속살을 어루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자주 있습니다. 부처님이 들르시는 고찰도 둘러보고 싶은 욕망도 일고, 그런 욕망이 누적되어 더 이상 억누르기 힘들 때면 어느 한 산을 정해 꼭대기까지 오르는 점의 산행을 다녀오곤 했습니다. 명산100산은 전문가들의 고견을 들어 산림청에서 고르고 골라서 확정한 이름 그대로 명산이기에 점 산행을 하기에 이만한 산을 찾아 오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날실과 씨실을 교직하면 옷감이 만들어지듯이 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도 선 산행과 점 산행을 번갈아해야 그만큼 옹골차게 짜이지 않을까 생각하기에 명산100산 탐방은 깃대봉산행으로 1차탐방을 끝내도 계속 이어갈 계획입니다.  

     

     

      12시5분 석남사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한 울산행 첫 버스가 기사분의 배려로 언양정류소에서 정차해 30분 넘게 시간을 절약했습니다. 언양시장을 들러 내복바지를 사 입고 따근따끈한 떡국을 사든후 11시40분에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해 석남사로 향했습니다. 20분가량 달려 다다른 석남사주차장에는 생각보다 차들이 많지 않아 가지산을 오르는 길이 붐빌 것 같지 않았습니다. 석남사주차장에서 하차해 길 건너 신불산공비토벌작전 기념비 오른 쪽의 들머리로 옮겨 나무계단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계단 길이 끝나자 눈이 녹은 흙길이 질펀했지만 눈은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오름 길이 별반 가파르지 않아 오른 쪽으로 쌀바위가 가깝게 보이는 “가지산119” 표지목이 서 있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40분간의 산행이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애당초 계획은 석남사를 출발해 쌀바위를 거쳐 정상에 오른 후 중봉을 지나 석남사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만, 날씨가 좋지 않아 일단 짧은 코스인 중봉 길로 정상을 먼저 오른 후 상황을 보아 하산 코스를 정하기로 하고 이 길로 오른 것입니다. 연초록 나뭇잎이 두드러져 보이는 소나무 가지에 사뿐히 내려앉은 눈송이들이 고개를 반짝 들고 겨울이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봄을 달래는 듯한 진풍경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전날 내린 눈이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꽃 피운 설화를 사진 찍느라 자주 멈춰서는 바람에 생각보다 산행이 더뎠습니다.

     

     

     

      13시35분 왼쪽 아래로 석남터널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석남터널(울산)1.3Km/가지산2.2Km"의 이정표가 세워진 삼거리에 이르자 나뭇가지에 사뿐히 앉은 회색빛 새 한마리가 설경을 배경으로 사진모델이 되어주어 모처럼 온전히 새 사진 한 커트를 건졌습니다. 바로 위 795봉을 왼쪽으로 에돌아 간이매점 앞에 이르자 7년 전에 회사직원들과 함께 눈을 밟고 이 길을 걸어 오른 일이 생생하게 기억났습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설화의 꽃송이가 크고 단단해 보입니다만 이 설화도 엄연한 꽃이기에 열흘을 넘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전에 없던 나무계단길이 꽤 길게 새로 놓여 중봉을 오르는 길이 한결 쉬웠습니다. 20분 가까이 걸어 이정표가 서있는 데크에 오르자 계단 길이 끝나고 넓고 평평한 길이 이어졌습니다. 데크에서 중봉으로 오르는 눈길이 참으로 고혹적이어서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중봉이 가까워질수록 눈꽃들이 펼치는 정경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 아닌 점입가경((漸入佳景)이어서 불원천리 마다 않고 달려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산신령께서 올 겨울 내내 눈 덮인 산들을 열심히 오르내린 저를 가상히 여겨 이 겨울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눈부시도록 화사한 설경을 엮어 주신 것이다 싶어 경칩이 지났는데도 왜 봄이 오는 길을 막아서느냐고 따질 마음이 싹 사라졌습니다.

     

     

     

      15시10분 해발1,240m의 가지산에 올라섰습니다. 해발1,165m의 중봉에 오른 다음 양쪽의 나무들이 눈 터널을 만든 눈길을 걸어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 정상에 오르자 가지산 정상석과 낙동정맥 표지석이 함께 보였습니다. 정상석 옆에 배낭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고 나자 하루 빨리 작년 가을 첫 구간을 시작한 낙남정맥 종주를 마치고 낙동정맥 종주를 시작해야겠다는 욕망이 일었습니다. 수술한 허리가 더 나빠지지 않는다면 내후년 안으로 낙동정맥까지 끝내 1대간9정맥의 종주산행을 모두 마칠 뜻입니다만 어쩔런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철에도 이 산을 자주 오른다는 부부 두 분을 만나 쌀바위 길을 물은 즉 날씨가 나빠 시간이 빡빡할 것 같으니 그냥 올라온 길로 하산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해주어 고마웠습니다. 겨울 특유의 냉랭한 바람이 드세 정상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올라온 길로 되내려가는 왕복산행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어 속상해 하며 내려선 중봉 바로 아래 안부에서 "제일농원3.4Km/가지산0.35Km/석남고개2.6Km"의 이정표를 보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석남사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시간이면 제일농원에 충분히 다다를 것 같아 15시28분에 오른 쪽 아래 제일농원 길로 내려섰습니다.

     

     

     

      16시24분 "제일농원 1.5Km" 이정표 지점을 지났습니다. 앞서 제일농원 길로 내려간 산객들이 많았던지 눈 위에 지나간 흔적이 분명하고 곳곳에 표지기가 붙어 있어 길을 이어가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정작 힘들었던 것은 안부에서 조금 내려가 만난 너덜 길이었습니다. 눈이 깔린 너덜 길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너무 신경을 써서인지 20분 가까이 너덜 길을 걷고 나자 머리가 다 띵했습니다. 해발8백m대로 내려서자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안부에서 반시간가량 내려가 만난 용수골 계곡에서 나는 물소리가 반가웠던 것은 지긋지긋한 너덜길이 이 지점에서 끝나서였습니다. 용수골 계곡을 따라 내려가며 고도를 낮추자 봄을 실어 나르는 물소리가 점점 커져 겨울을 이겨내고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노랑꽃의 복수초를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됐습니다. 계곡을 한번 건너 합수점에 이르러 다시 계곡을 건너기까지 이렇다 할 소(沼)를 만나보지 못했지만 대신에 지리산에서 여러 번 본 수피가 매끈하고 불그스레한 노각나무가 눈에 띄어 반가웠습니다. 용수골이 계곡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 것은 합수점을 막 지나서였습니다. 깊지도 넓지도 않은 조그마한 소가 잠시 쉬어가도록 계곡물을 살포시 잡아끄는 모습은 참으로 다소곳해 보였습니다. 한 여름이라면 저리 작은 소로는 물을 다 담아 내지 못해 철철 넘쳐흐를 것입니다만 눈이 녹아 흐르는 정도야 충분히 받아낼 수 있어 쉬어가는 계곡물을 지켜보고자 저도 잠시 쉬었다 갔습니다.

     

     

     

      17시25분 삼양교 앞에서 가지산 산행을 마쳤습니다. 전망대 갈림길을 지나 조금 더 걸어내려 가자 넓은 임도가 나타났습니다. 아이젠을 벗어 넣고 시멘트 다리와 징검다리를 차례로 건너 화장실 건물 앞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으로 0.4Km 올라가면 볼 수 있는 구룡폭포를 포기하고 징검다리를 되 건너 제일산방가든 앞을 지났습니다. 정상 아래 안부의 이정표에 새겨진 “제일농원”이 따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가든이 제일농원 같았습니다. 가든을 지나 텅 빈 주차장의 한 끝에서 “청결한 밀양시”를 적어놓은 청소차 적재함 바로 앞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쓰레기들을 보고 개인도 아닌 자치단체가 우리말을 저렇게 욕보일 수 있나 싶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지산호박소계곡” 표지석이 세워진 삼거리 앞 삼양교에 도착해 몇 년 안에 제가 밟을 길 건너 낙동정맥 산줄기를 카메라에 옮겨 담는 것으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석남터널 개통으로 구도로가 된 24번 도로가 여기 삼양교를 지나 남명초교 앞에서 다시 석남사-밀양 국도를 만납니다. 삼양교 앞에서 오른 쪽으로 24번 도로를 따라 십 수분 걸어 내려가 “얼음골사과주산지”돌비석이 세워진 곳에서 길 건너 간이음식점을 들렀습니다. 버스 타는 곳까지 얼마나 더 걸어 가야하는 가를 물어보고자 들렀는데 고맙게도 저보다 7-8년은 더 연배이신 손님 몇 분들이 당신들 차로 남명초교까지 태워주시겠다고 해 고마웠습니다. 이분들 도움으로 남명초교로 가서 3-4분을 기다렸다가 밀양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늦게 산행을 시작했는데도 이번 산행이 순조로웠던 것은 언양에서 정차해준 기사분과 정상에서 쌀고개행 길을 말린 부부 두 분 및 남명초교까지 차를 태워준 할아버지들 덕분이었습니다. 명산100산이 이름 그대로 명산인 것은 산만 이름난 것이고 아니고 명산을 가까이서 대하는 모든 분들이 명산의 정기를 받아 부처님처럼 마음도 두루 두루 넓어서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경칩이 지났는데도 겨울연가를 뺨치는 설경의 눈길을 오르내릴 수 있었던 것도 알고보면 명산 가지산이 동해안에 자리한 고산인 덕분일 것입니다. 이 산이 인근 바다의 다습하고 따뜻한 공기덩어리를 품고 있지 않았다면 제 아무리 냉랭한 시베리아기단이 밀고 내려온다해도 여기에다 한냉전선을 만들지 못해 기껏해야  1-2 cm 정도 눈이 내렸을 것입니다. 이 정도의  눈으로는 눈 터널을 만들기에 턱 없이 모자라는 양이어서 고혹적인 설경을 빚어낼 수는 없음은 물론입니다.  이렇게 내린 눈이 고맙게도 이내 사라지지 않은 것은 가지산이 해발1,200m가 넘는 고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명산100산인에 이름을 올렸는데  아무려면 이름값을 못하랴 하는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아 명산 가지산이 마련한 눈의 향연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명산 가지산과 이 산을 오르는데  도움을 주신분들께 고개숙여 고마움을 표하며 이만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가지산 산행사진 추가>

     

                                 *산행일자:2003. 3.1일

                                 *산행코스:석남사주차장-석남고개-가지산대피소-중봉-가지산-중봉

                                                -가지산대피소-석남고개석남사주차장

                                *동행       :(주)하모라 영업부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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