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산행일자:2010년 1월 1일(금)
*소재지 :경남 남해
*산높이 :681m
*산행코스:금산입구 주차장-도선바위-보리암-금산정상
-상사바위-복곡탐방지원센터
*산행시간:10시9분-13시33분(3시간24분)
*동행 :나홀로
한 번 오른 산을 같은 날 다시 오르기는 남해의 금산이 처음입니다.
새벽 이른 시각에 복곡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매표소로 이동한 다음 쉼터까지 비포장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안내산악회에서 마련한 이번 나들이의 주된 프로그램은 보리암에서 경인년의 새 아침을 여는 해오름을 맞이하는 것이었기에 금산 산행은 덤이었습니다. 아침7시36분 이글거리는 태양이 바다를 박차고 올라와 새해 새아침을 여는 감동적인 순간을 지켜본 후 서둘러 반대편인 금산입구 주차장으로 하산했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해 제가 산악회에 다음 일정인 연화산 산행의 불참을 알린 것은 이 산이 꼭 한 주 전에 다녀온 산이기도 했지만, 보리암의 해맞이코스에 덤으로 끼워 놓은 금산 산행을 얌체같이 하고나서 산행기를 쓰기가 낯간지러워서였습니다. 오름길의 3/4이상은 버스를 이용했고 정상은 도둑고양이처럼 밤을 도와 올랐으며 서둘러 하산하는 바람에 일출을 빼 놓고는 무엇 하나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동네 뒷산이라면 모를까 이 먼 곳까지 내려와 이렇게 흘깃 보고 돌아간다는 것이 명산100산의 한 산인 금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영 마음에 걸렸습니다. 고심 끝에 산악회의 연화산 산행을 포기하고 저 혼자 남아 금산을 다시 올랐습니다. 탐방지원센터에 알아본 즉 금산 산행코스는 앞서 밟은 길 외에는 달리 없다고 해 어쩔 수 없이 금산입구주차장을 출발해 정상을 오른 후 복곡탐방지원센터로 하산하는 역코스로 산행했는데, 시간만 충분하다면 저 아래 상주해수욕장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산행을 시작했을 것을 그리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오전10시9분 금산 입구 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탐방지원센터를 찾아가 코스를 안내받고 리프렛을 챙겨 받은 후 물이 부족해 문을 닫은 주차장의 공중화장실이 마침 그동안 받아 놓은 물이 얼마만큼 모여 사용이 가능하다 해 다시 내려가 볼일을 보느라 출발이 늦어졌습니다. 바다에 에워싸인 섬이 물이 더 부족한 것은 산과 들이 강수를 담아두지 못하고 지척의 바다로 흘려보내서인 것 같은 데, 산이 저수고 역할을 하는 육산(肉山)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여기 금산은 바위가 많은 골산(骨山)이어서 빗물이 이 산에 머무를 새 없이 바로 바다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조금만 가물어도 물 부족 사태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오른 쪽으로 난 자연탐방로를 그냥 지나 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을 건너기까지 비교적 산길이 평탄해 힘든 줄 몰랐습니다. 이어지는 산길은 점점 경사가 더 해졌고 통나무계단과 돌계단이 번갈아 나타나 산 오름이 많이 더뎠습니다.
10시52분 도선바위 쉼터에서 잠시 머무르며 테마공원 전시물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길가에 명찰을 달고 서 있는 나무들과 통성명을 해 본즉 이 산이 따뜻한 남쪽나라 남해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상록활엽수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으며, 곰솔로 불리는 해송과 사람주나무를 제외한 나머지 수종들은 바다 건너 내륙의 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정상을 1.2Km 남겨놓은 도선바위 약수터 역시 말라있어 이 산의 물 사정이 어떠한지 쉽게 짐작됐습니다.
약수터 옆 쉼터에는 “산과 바다의 어울림”이라는 테마로 한려해상의 야생화, 수목자원과 야생동물들의 사진들이 전시되었습니다. 유리 속에 갇혀 있는 크지 않은 사진들이 냉랭한 겨울을 맞아 더욱 초라해 보여, 여기 금산은 바위동물원으로 불릴 만큼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많아 이 산 전체가 야외전시장인데 따로 테마공원을 표방해 초라한 사진들을 전시할 필요가 있겠나 싶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 만난 전시물의 테마는 “역사속의 한려수도”로 격전지, 사적지, 그리고 역사적인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이나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보다 제 눈길을 더 끈 인물은 숙종 때의 문관인 서포 김만중이었습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7년에 태어나 숙종18년인 1692년에 세상을 떠난 서포 김만중은 남해에서 유배 중 한글소설 사씨남정기를 탈고하고 필사본을 돌리도록 해 한성의 민심과 숙종임금의 어심을 같이 움직이게 했다 합니다. 이렇듯 서포 김만중은 희빈 장씨가 쫓겨나고 인현왕후가 복위되는 데 큰 일을 한 인물이어서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역사속의 한려수도” 사진전시장 쉼터에서 보리암까지 오름 길이 이번 산행의 깔딱 길이었지만, 아침에 이 길로 내려갈 때 무릎이 아파 이번에는 천천히 올랐더니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보리암이 가까워지자 금산이 빚어낸 바위명품들이 하나씩 하나씩 얼굴을 내보여 이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느라 산행이 지체됐습니다. 왼쪽 능선에 자리한 의젓한 자태의 향로봉 등 세 암봉은 이 산이 금강산을 닮았다 하여 개골산에서 이름을 따 개암산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동서남북의 신선 넷이 모여 놀았다는 사선대(四仙臺)는 신선들이 놀다가 다칠 수도 있겠다 싶은 뾰족바위였고, 쌍홍문(雙紅門)을 지키는 장군암(將軍岩)은 이름 그대로 늠름했습니다. 두 굴이 쌍무지개 같다 하여 원효대사께서 작명한 쌍홍문(雙紅門)은 보리암에 이르는 관문입니다. 장군암보다 훨씬 더 장대하고 용맹스러워 보이는 이 굴 오른 쪽의 직벽거암 만장대(?)는 저 아래 숨죽인 듯 물결이 잔잔해 보이는 남해바다 한려수도를 당장이라도 흔들어 깨울 듯 그 기세가 참으로 등등했습니다. 쌍홍문 입구는 10명 정도는 같이 사진을 찍을 만큼 넓었고 조금만 고개를 숙이면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높았지만 이 굴의 출구는 입구보다 많이 좁았습니다. 굴을 빠져 나와 내려다 본 굴 아래 풍경은 음지와 양지가 대비를 이루고 구도가 꽉 짜여 보였습니다.
11시40분 보리암에 다시 섰습니다.
아침 한 때 장엄하고 환희로운 해오름의 무대였던 바다는 막을 내린 듯 조용한데 최고의 객석이었던 보리암은 여전히 붐벼 다음 막이 올라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 산의 중심지는 누가 뭐라 해도 보리암이라 생각이 들만큼 이 산 정상의 봉수대보다 더 많이 붐볐습니다. 여기 보리암은 영양 낙산사 및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해수관음도량의 한 곳으로 태조 이성계가 개국의 꿈을 빈 곳이기도 합니다. 관세음보살 입상 옆에 자리한 삼층석탑 주위에서는 나침반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 다하여 신비롭다 하는 데 이 사실을 깜박 잊어 나침반을 가지고 갔으면서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금산이 자랑하는 바위 명품 들 거의다가 주위에 포진해 있고 일출을 연출한 남해바다 한려수도가 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보리암은 최고의 기도처이자 최고의 전망지임에 틀림없습니다.
12시 정각에 해발681m의 금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정상 한 가운데 자리한 봉수대는 현존하는 것들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 때 축조되었다 합니다. 이쪽저쪽으로 모두 청정하기 이를 데 없는 쪽빛 바다가 조망되고 금산 38경이 모두 잡힌다는 정상에 세워진 표지석 옆에 배낭을 세워놓고 같은 날 두 번 오른 금산정상을 사진 찍은 후 왼쪽으로 0.7Km 가량 떨어진 상사바위로 옮기는 중 단군성전을 잠시 둘러보았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조금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 다다른 상사암은 천 길 낭떠러지의 곧추선 바위로 그 아래 푸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13시33분 복곡탐방지원센터에서 금산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상사암에서 보리암 위 쉼터에 도착한 시각이 12시46분으로, 늑장을 부리다가는 오후 3시까지 삼천포에 도착해 산악회에 합류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여기서부터 정신없이 내달렸습니다. 8-9분 후 새벽에 산행을 시작한 매표소를 지나자 비포장도로가 끝나고 시멘트길 차도가 이어져 빨리 걷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산허리를 잘라 낸 차도를 따라 급하게 내려가는 저를 잠시 멈춰 세운 것은 크기가 때까치만하고 주홍색 깃털을 한 산 새 몇 마리였습니다. 길가 나뭇가지에 앉아 모델이라도 되어 줄듯 했던 새들이 카메라를 꺼내 들면 다른 나무 가지로 옮겨 앉아 애를 먹었지만 낯선 과객인 제게 새해 인사를 해온 것만도 충분히 감사할 일입니다. 셔틀버스와 승용차들이 뻔질나게 오르내리는 차도는 다리를 건너자 아스팔트길로 바뀌었고, 이 길을 십 수분 더 걸어 내려가 복곡탐방지원쎈타 앞에 다다랐습니다.
산악회와 약속한 오후 3시가 조금 못되어 삼천포 어시장에 도착했습니다.
새벽에 셔틀버스를 탄 복곡에서 산행을 마치고 택시를 잡아 지곡으로 이동했습니다. 지곡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마침 삼천포로 돌아가는 택시가 있어 다른 손님들과 합승해 삼천포로 향했습니다. 다리 건너 창선을 지나 남해 창선도와 삼천포 사이의 3개 섬을 연결한, 서로 다른 공법으로 놓은 5개 다리의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면서 올망졸망한 섬을 잇는 주홍색다리가 푸르른 바다와 잘 어울린다 했습니다. 어시장에서 연화산에서 돌아온 동문들을 만나 장광종/이기후 두 동문이 회를 내 마련한 저녁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다시 오르는 금산 길은 금세 눈에 익었습니다.
해돋이를 지켜보는 것만큼 흥분되지는 않았지만 다시 들른 보리암에서 내려다 본 바다는 큰 일을 치른 것 같지 않게 차분했습니다. 저도 저 바다만큼 차분한 마음으로 금산의 이곳저곳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인생길도 이처럼 다시 밟을 수 있다면 훨씬 더 차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욕심만 접는다면 가끔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살아온 인생을 관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제껏 살아온 인생길이 눈에 더 익을 것입니다. 아직은 갈 길이 바빠 이번 금산처럼 다시 밟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종종 멈춰 서서 뒤돌아보는 것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해야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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