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대봉(2)
*산행일자:2015. 9. 5일(토)
*산높이 :깃대봉 365m
*소재지 :전남 신안
*산행코스:홍도선착장-전망대-연인길-깃대봉-전망대-홍도선착장
*산행시간:10시10분-12시18분(2시간8분)
*동행 :경동24회 명백회 회원17명
(이기후, 강치환, 서중원, 김주홍, 남상태, 정준식, 신재만, 이종복, 우태형,
이항래, 허숙, 이명재, 조현, 오택근, 하태연, 우명길)
우리 헌법은 제 3조에 우리 영토를 한반도(韓半島)와 그 부속도서(附屬島嶼)로 정하고 있습니다. 부속도서 중 가장 큰 섬은 강원도 홍천군 크기의 제주도로 면적이 1,849제곱Km로 남한 땅 전체의 약 2%에 해당됩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부속도서로는 남쪽으로 이어도, 서쪽으로 백령도, 동쪽으로 독도가 있습니다. 이 세 섬 중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는 이어도 한 곳입니다.
우리 국토에서 가볼만한 명산들은 반도에 몰려 있습니다. 뭍에서 사는 사람들이 명산을 오르고자 부속도서를 찾는 일은 그래서 흔치 않습니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 중 부속도서에 속한 산은 모두 여섯 입니다. 제주도의 한라산은 남한 땅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고 울릉도에 자리한 성인봉은 동해의 최고봉입니다. 남해의 금산과 사량도의 지리산은 남해의 명산이고 강화도의 마니산과 홍도의 깃대봉은 서해의 명산입니다.
이번에 고교동창들과 함께 다녀온 명산은 서해의 홍도에 자리한 깃대봉입니다. 높이가 해발365m에 불과해 반도 땅에 자리했다면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깃대봉이 명산100산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이 산이 서해의 부속도서인 홍도(紅島)에 위치하고 있어서일 것입니다. 해질 무렵이면 섬 전체가 붉게 물든다 하여 이름 붙여진 홍도는 섬 전체가 200m 내외의 급경사의 산지로 되어 있습니다. 홍도가 해상관광코스로 최적지라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해안선의 드나듦이 심하고 대부분 해식애(海蝕涯)가 잘 발달된 암석해안이어서 경관이 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섬의 최고봉인 깃대봉에 오르면 우리나라에서 서남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가거도(佳居島)가 가깝게 보이며 계속 서진하면 중국의 상해에 이른다 합니다.
오전 10시10분 홍도선착장을 출발했습니다. 전날 밤 수원역을 출발한 기차가 밤새 달려 새벽 4시10분경에 호남선의 종점인 목포항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아침 요기를 한 후 7시50분 목포에서 배를 타고 시속55Km로 내달려 10시10분이 조금 못되어 홍도에 도착했습니다. 배에서 내려 곧바로 산행에 들어간 저희는 옹기종기 집들이 들어선 홍도1구마을의 골목길을 지나 학교 앞에서 오른 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올랐습니다. 5년 전 혼자 걸었던 데크 길을 따라 올라 첫 번째 전망대에 이르자 방금 지나온 초등학교 교정과 그 아래 해변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북쪽의 깃대봉과 남쪽 맞은편의 양산봉 사이에 푹 내려앉은 안부에 자리한 흑산초교 홍도분교와 그 오른 쪽 바로 아래 몽돌해수욕장이 참으로 안온해보였습니다. 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곧바로 산 오름을 이어간 것은 서두르지 않으면 12시30분에 홍도선착장을 출발하는 유람선에 승선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산행시작 30분 만에 깃대봉을 1.1Km 남겨 놓은 쉼터에 도착해 과일을 꺼내 들며 10분여 쉬었습니다.
11시18분 해발365m의 깃대봉에 올랐습니다. 쉼터를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편안한 연인 길에 접어들자 앞서 쉼터로 오르는 중 만난 연리지가 생각났습니다. 뿌리가 다른 두 나무가 한 줄기로 이어진 연리지를 흔히 볼 수 없는 것은 세간에 참으로 진실 되고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 부부들이 많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숨골재를 지나자 이 섬에 자생하는 황철나무, 작살나무, 고로쇠나무, 참실나무, 쇠물푸레 나무 등이 명찰을 가슴에 달고 저희를 반겼습니다. 정상석이 세워진 깃대봉에 올라서자 안개가 자욱 끼여 기대했던 가거도를 조망하지 못했습니다. 5년 전 이 봉우리를 올랐을 때는 주변 산줄기에 기암들이 우뚝 서있어 인상적이다 했는데 이번에는 그조차도 보이지 않아 기념사진만 찍고 곧바로 하산했습니다.
깃대봉에 깃대가 없다고 그리 투덜댈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어도 군소리 않고 잘도 먹으면서 깃대봉에 깃대가 없는 것을 가지고 불만스럽게 말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궁실거리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산을 오르는 일이 주전부리를 먹는 것보다 훨씬 힘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간 숨을 고른 후 다시 생각해보니 이 섬 전체가 깃대여서 따로 깃대를 꽂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깃대를 세우는 것은 그 깃대에 깃발을 달아 멀리서도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잘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바다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이 봉우리를 바라보노라면 우리 몸에 깃대를 세워 매달아놓은 깃발이 펄럭이듯 가슴이 뛰는데 굳이 힘들여 깃대를 세우지 않아도 괜찮겠다 싶어 하는 말입니다.
깃대봉에서 쉼터로 내려가는 길이 미끄러워 조심스러웠습니다. 천천히 걸어 내려가며 오름 길에 그냥 지나친 몇 곳에 잠시 머무르며 안내문을 읽어보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1940년 폐쇄되기까지 이 작은 섬에 숯가마가 18기나 있었다는 것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름 길에 명찰을 달고 서있는 나무들 상당수가 상록활엽수이지만 참나무도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참나무로 만든 숯을 식량이나 소금과 맞바꾸기도 하고 빗물을 받아놓은 항아리에 띄우고 쌀독에 넣기도 했다 합니다. 숯가마터보다 더 신기해 보인 것은 깃대봉에서 450m 떨어진 숨골재입니다. 한 주민이 여기 숨골재에서 실수로 절구공이감으로 베어낸 나무를 굴에 빠뜨렸는데 다음 날 바다에 나가보니 물 위에 떠 있었다는 내용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기 숨골재가 정말 바다 밑으로 뚫렸는지 잘 모르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이 굴 일부를 나무와 흙으로 메웠다는 안내문을 보고 정말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말 이 굴이 그냥 풍혈이 아니고 바다 밑까지 뚫렸다면 이리 방치할 것이 아니고 틀림없이 탐사를 했었을 텐데 그런 얘기가 전해지는 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다른 산에서 만난 본 풍혈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12시18분 홍도선착장에 도착해 깃대봉 산행을 마쳤습니다. 전망대를 지나 홍도분교를 지나자 비가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유람선에 오르고 나서는 이내 빗줄기가 굵어지고 바람이 세게 불었습니다. 배안 갑판으로 비가 들이치고 파도로 유람선이 요동쳐 마음먹었던 사진은 거의 찍지 못하고 옷만 적셨습니다. 빗속에 홍도를 한바퀴 돌고나서 16시50분에 홍도를 출발해 깃대봉에 작별을 고했습니다.
한반도의 반도는 영어의 PENNISULA를 번역한 것인데 이 용어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의 얘기인즉 반도란 반쪽 섬을 이르는 것으로 온전한 섬나라 일본이 우리나라를 비하하고자 하는 뜻이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섬이면 섬이고 아니면 아니지 반쪽 섬이 어떻게 가능하랴 싶어 저도 생각을 같이 합니다. 다만 이를 대체할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고 헌법을 바꾸어야 하는 문제가 있어 영토학을 전공한 어느 교수분의 의견처럼 반도를 해륙국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 한반도라는 표현이 불만인 것은 우리 영토를 소위 한반도로 국한 하는 것은 자칫 잘 못하면 중국이 벌이는 동북공정을 인정해 고구려가 우리 나라가 아니고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강변을 인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까 걱정해서입니다. 고구려를 뒤 이은 고려가 여진족을 물리치고 쌓은 9성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공험진과 선춘령비가 두만강 북쪽 7백리 지점에 있다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것으로보아 두만강 건너 만주벌도 고려 땅이었음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깃대봉 산행을 주선한 이기후 / 강치환 두 동문에 감사말씀 전합니다.
<산행사진>
깃대봉(1)
*산행일자:2010.10. 17일(일)
*소재지 :전남신안
*산높이 :깃대봉367m
*산행코스:홍도탐방쎈터-홍도분교-전망대-깃대봉-347m봉
-내연발전소길 전망대-홍도분교-광성모텔
*산행시간:16시1분-18시18분(2시간17분)
*동행 :나홀로
산림청에서 선정한 명산100산에 첫발을 들인 것이 한라산을 처음 오른 1969년 여름이었으니 그새 41년이 지났습니다. 어려서 땔감을 구하러 동네 뒷산을 오른 것을 뺀다면 외지의 산으로 처음 오른 산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산인 한라산입니다. 이렇듯 저의 산행역사는 명산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산림청에서 2002년 명산100산을 선정해 발표할 당시 대략 40여개의 명산을 올랐지만, 그때까지는 거의 사진도 찍지 않고 산행기도 한 두산을 빼놓고는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 이듬해 디지털카메라를 마련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후로는 꼬박 꼬박 사진을 찍고 산행기를 작성했으며 전에 오른 산들도 다시 올라 모두 산행기를 남겼습니다.
명산100산중 99번째 오른 산이 지난 4월에 오른 충북 단양의 도락산입니다. 그 후 홍도의 깃대봉을 마지막 미등의 산으로 반년 이상 남겨놓은 것은 이 산을 오른다면 더 이상 오를 목표가 없어져 왠지 허망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다른 명산들을 우정 찾아 오르면서도 깃대봉 탐방을 애써 미뤄오다가 어차피 오를 산인데 졸고 섬진강 둘레산줄기 환주기를 책으로 내기 전에 마저 오르는 것도 좋겠다싶어 깃대봉 산행 길에 나섰습니다. 이번에 서울 청송여행사의 홍도/흑산도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해 깃대봉 산행을 마치고 나자 명산100산을 모두 올랐다는 기쁨에 가슴 뿌듯하면서도 한 편으로 더 이상 오를 명산이 남아 있지 않아 허전하기도 했습니다.
명산100산의 탐방산행은 제게는 매우 중요한 점(点)의 산행입니다. 2004년 이후 저는 백두대간과 정맥, 그리고 지맥 등의 산줄기를 이어가는 선(線)의 산행에 심취해 어느 한 산을 정해놓고 오르내리는 점의 산행을 비교적 등한히 했습니다. 선의 산행에서는 장대하게 뻗어나가는 산줄기에 감탄하기는 해도 선현들의 발자취를 찾거나 전설을 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선조들은 산을 서양 사람들처럼 험난한 산의 정상을 오르는 등산(登山)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멀리서 바라보는 망산(望山)이나 계곡을 찾아 세월을 낚는 입산(入山)의 대상으로 여겼기에 높은 봉우리에 올라 산줄기를 따라 걸을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산에서 선현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계곡이나 산 중턱에 자리한 사찰 또는 고개 마루 정도인데 선의 산행에서는 안부로 불리는 고개 마루를 제외하고는 계곡이나 사찰을 만날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나마 간간이 명산100산을 찾아 오르며 점의 산행을 해왔기에 산에서 사람들의 체취를 맡고 흔적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산행의 양축인 선의 산행과 점의 산행을 적절히 바꿔가며 산행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명산100산 덕분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침9시10분 용산역에서 KTX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12시30분경 목포역에 도착해 마중 나온 여행사 차로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로 옮겼습니다. 김밥 두 줄을 사들고 뉴골드스타 여객선에 승선해 13시 정각에 목포항을 출발했습니다. 비금도와 흑산도를 경유해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115Km 떨어진 홍도에 다다른 시각이 15시 반 경이었습니다. 홍도 동쪽 연안의 홍도1구마을 선착장은 생각보다 좁았고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조금은 어수선했습니다. 배에서 내려 하루 묵어갈 광성모텔을 들렀다가 이틀 전에 전화로 입산신고를 한 홍도관리사무소를 찾아가 깃대봉출입증을 받았습니다.
16시1분 홍도선착장의 탐방센터를 출발해 깃대봉으로 향했습니다. 탐방센터에서 몇 걸음 옮겨 골목길에 들어섰습니다. 3-4분 걸어올라 다다른 홍도분교는 북쪽의 깃대봉과 남쪽의 양산봉 사이의 안부인 고개 마루에 자리 잡았는데 이 학교 운동장 바로 옆에 호텔이 서있는 것을 보고 이 섬이 참으로 비좁은 작은 섬임을 실감했습니다. 교문 앞에서 오른쪽으로 몇 걸음 옮겨 깃대봉/내연발전소 갈림길에 이르렀습니다. 왼쪽 데크 길로 들어서 전망대로 올라가며 몇 번이고 왼쪽아래 몽돌해수욕장과 바다를 내려다보곤 했습니다. 산행시작 20분이 지나 데크 길이 끝나고 흙길이 시작됐습니다. 산허리를 에도는 흙길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 늘푸른넓은잎나무들로 위가 가려 밝지 않았습니다. 이산에서 만난 연리지(蓮理枝)는 뿌리가 다른 두 나무들이 서로 엉켜 한 나무처럼 자란 구실잣밤나무였습니다.
16시34분 데크 길이 끝나는 곳의 전망대에 올라섰습니다. 흙길이 끊기고 다시 만난 데크 길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홍도 서쪽 바다와 남쪽 양산봉이 한눈에 잡히는 전망대에서 바다를 조망하며 잠시 숨을 돌린 후 북쪽으로 이어지는 연인길로 들어섰습니다. 선착장이 들어선 홍도1구마을과 그 너머 몽돌해수욕장, 그리고 등대가 서있는 홍도2구마을을 빼놓고는 홍도 연안은 거의 다가 삥 둘러 기암절벽이어서 능선 길도 바위가 많으리라 생각했는데 이어지는 연인길은 낙엽이 깔린 흙길이어서 서울의 청계산 길보다 더 포근했습니다. 더러 더러 상록침엽수인 소나무가 보였지만 이 섬의 주 수종이 상록활엽수여서 바닥에 깔려 있는 몇 년 묵은 낙엽은 보였지만 곱게 물들은 단풍들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깃대봉/내연발전소 갈림길에서 1차 데크 길이 끝나는 곳까지 왼쪽 옆으로 누런 풀들이 보이지 않았다면 이 섬에서 가을을 만나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17시8분 해발367m의 깃대봉에 올라섰습니다. 347봉을 바로 밑으로 지나며 이제는 다 올라왔다 했는데 깃대봉은 아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며 바다 밑으로 뚫려 있다는 숨골재굴과 숯가마터를 지나 깃대봉에 올라서자 박무가 희뿌옇게 끼어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동쪽 가까이로 암봉이 잘 보였습니다. 먼저 오른 한 분에 부탁해 365m로 표기된 정상석을 배경삼아 사진 한 방을 찍고 나자 드디어 명산100산 탐방을 모두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주보이는 봉우리를 넘어 왼쪽으로 내려가면 홍도2구마을일 텐데 시간이 없어 다녀가지를 못해 아쉬웠습니다.
여기 홍도의 깃대봉에는 덕유산의 깃대봉과는 달리 깃대가 세워져 있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깃봉도 보이지 않았고 펄럭이는 깃발도 없었으며 둥글 넙적한 이산봉우리에서 깃대를 연상할만한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해안가의 기암절벽처럼 그럴 듯한 전설도 갖고 있지 못한 이 낮은 봉우리를 깃대봉으로 부르는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새삼 궁금했습니다. 한참동안 궁리하다 명산100산 탐방의 마침표를 이 산에서 찍는 것이 바로 이 봉우리에 깃대를 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혈투 끝에 고지를 점령하고 나면 으레 하는 일이 깃대를 세우고 깃봉 끝까지 깃발을 올려 펄럭이게 하는 것을 영화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홍도의 깃대봉을 마지막 명산으로 미뤄둔 것이 결과적으로 여기 깃대봉에다 마음의 깃대를 세워 깃발을 펄럭이게 만들었으니 저의 명산100산 탐방순서는 참으로 절묘했다 했습니다.
먼저 오른 분들이 모두 내려가고 저 혼자 산정에 남아 명산100산 탐방을 자축한 후 올라온 길로 되 내려갔습니다. 홍도1구에서 정상까지 거리가 1.7Km 밖에 되지 않아 마음먹고 뛰어 내려간다면 저녁6시 안에 산행을 마칠 수 있었겠지만 그리 서둘러 내려가기에는 모든 것이 아쉬워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정상 가까운 능선에 자리한 숯가마터를 하산 길에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1940년에 마지막으로 폐쇄된 숯 가마터가 이 작은 섬에 18기가 있었기에 숯으로 생필품인 소금을 바꿔 쓸 만 했을 것입니다. 오름 길에 그냥 지나친 347m봉을 들러 깃대봉의 전신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18시18분 하룻밤 숙소인 광성모텔에 도착해 깃대봉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347m봉에서 제 길로 복귀해 하산을 계속했습니다. 연인길 출발점의 전망대에서 확 트인 바다를 내려다보며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데크 길을 따라 내려가 깃대봉/내연발전소 갈림길에 도착해 잠시 머뭇거리다가 시계반대방향으로 난 데크 길을 따라 내연발전소로 향했습니다. 홍도에서 필요한 전기를 생산 공급하는 내연발전소까지 다녀오기 전에 어둠이 밀어닥칠 것 같아 중간의 가장 높은 길에서 진행을 멈추고 먼 바다에 눈길을 주었습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장엄한 해넘이를 지켜볼 수 있었을 터인데 그리 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깃대봉/내연발전소 갈림길로 돌아가 광성모텔에 도착하자 명산100산 탐방산행을 무사히 마친 것이 실감됐습니다.
홍도의 깃대봉에 올라 마음의 깃대를 세우고 이 깃대 꼭대기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보았습니다. 그 깃발은 청마 유치환님이 노래한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이 아니었습니다. 2003년 첫 산행기를 남긴 화악산을 시작으로 7년간 꾸준히 찾아올라 명산100산 탐방을 깔끔하게 마무리한 제게 그 깃발은 감격의 표징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엮어가며 100산 모두 산행기를 작성한 제게는 그 깃발이 장대한 서사의 표징입니다. 그러기에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줄을 안 그는‘하고 애통해 하지도 않습니다. 맨 처음도 맨 마지막도 깃대봉에 깃발을 단 사람이 바로 저이기에 애통해 할 이유가 전혀 없어 오히려 감격하고 있습니다.
저의 명산100산 탐방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몇 번을 더 찾아올라 산신령도 뵙고 마고할멈도 다시 만날 생각입니다. 그래서 서사시를 이어갈 생각입니다. 100대 명산이 대 서사시를 잉태해 이 세상에 내놓을 때까지 저는 계속 명산을 찾아 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르는 명산마다 감격의 표징인 깃발이 펄럭이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할 뜻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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