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5대강둘레산줄기 환종주기/섬진강 둘레산줄기

9.지리산권 환주기

시인마뇽 2010. 9. 10. 07:22

 

 

환주기44:백두대간 5구간(정령치-노고단)

 

*산행일시:2009. 10. 10일/ 7시40분-17시25분(9시간45분)

 

*소재지  :전북남원/전남구례

 

*산높이  :노고단1,507m, 만복대1,433m, 작은고리봉1,248m

 

*산행코스:정령치-만복대-작은고리봉-성삼재-노고단-코재-화엄사계곡-화엄사버스정류장

 

 

 

 

  어느 한 분의 산행기에 따르면 지리산의 산신할머니인 노고(老姑)는 천신의 딸로 반야(般若)와 결혼해 딸 여

 

덟을 낳고 천왕봉에서 잘 살았다 한다. 남편 반야가 깨우침을 더 많이 얻기 위해 반야봉(般若峰)으로 떠났고

 

부인 노고는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의 옷을 만들며  반야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노고단에 오르자 반야봉에서

 

수도하는 남편을 기다리다 지친 노고할미가 이 옷을 불태우고 죽고 말았다는 전설이 새삼 생각났다. 끝끝내

 

남편 반야를 만나보지 못하고 죽고 마는 노고(老姑)는 비련의 여인임에 틀림없다.  이 비련의 노고할미를 모시

 

는 단(壇)을 천왕봉이 아닌 노고단에 만들어 놓은 것은 반야가 머문 반야봉에 보다 가까이 갖다놓기 위해서였

 

을 것이다.

 

 

 

  영국의 서정시인 예이츠는 그의 시 “술 노래 (A Drinking Song)”에서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님은 눈으로 들

 

어온다”고 노래했다. 서양에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금언

 

이 전해지고 있으며, 영국의 과학자 뉴턴은 “만유인력은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곱에 반비례

 

한다”고 했다. 이 모두가 사랑하는 두 남녀가 오래 떨어져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러주는 것들이다.  님이

 

 눈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모두 어우르는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진작 알았지만 반야와 노고처럼 죽

 

은 사람들의 영혼에도 주효한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산자들끼리는 물론 산자와 죽은 자 및 죽은 자들의 영

 

혼들을 결합시키는 위대한 사랑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고 있음을 노고단에 올라 다시 확인했다. 30여 년 전

 

천왕봉을 같이 올랐던 집사람이 편히 쉬고 있는 고향땅 선산에 여유 공간이 있다는 것에 새삼 안도했다.

 

 

 

 

 

아침7시40분 정령치에서 만복대로 향하는 계단 길로 올라섰다. 정령치에 올라서면 운무가 골짜기 골짜기를 가

 

득 메워 광활한 운해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가슴 설렜다. 그새 햇살이 퍼져 비록 기대는 무산됐어도 반야

 

봉을 중심으로 한 산자락들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 이 또한 볼만했다. 전망 좋은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만복

 

대로 오르는 길에 여기 지리산과 덕유산 및 무등산에서만 자란다는 구상나무가 보여 반가웠다. 아침이슬을 머

 

금은 길섶의 잡풀들로 바짓가랑이에 조금 물기가 묻었지만 구두를 적실 정도는 아니었다. 4년 전에 대간종주

 

차 이 길을 걸은 나를 잊지 않았는지 주홍색으로 곱게 채색된 당단풍나무가 가슴에 명찰을 달고 다소곳하게

 

아침인사를 건네 왔다. 만복대가 왼쪽으로 아주 가깝게 보이는 곳에서 오른 쪽으로 다름재 길이 갈리는 능선

 

삼거리에 이르렀다. 오른 쪽 길은 탐방도로가 아니니 가지 말라는 안내판을 뒤로 하고 이 삼거리에서 왼쪽으

 

로 꺾어 만복대를 오르는 중 짐 크기로 보아 대간 종주 중임이 틀림없는 40대의 한 쌍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확률이 만나는 사람들의 수에 반비례할 수밖에 없다

 

싶은 것은 서울 근교 산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 반갑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지만 사람들을 거의 만

 

나지 못하는 종주 길에서는 멀리서 목소리만 들려와도 달려가 인사를 건네고 싶기 때문이다.

 

 

 

 

 

8시50분 해발1,433m의 만복대에 올랐다. 정상의 돌탑이 이번에는 무엇을 소원하러 올라왔느냐고 내게 물어왔

 

다. 네 해전 한 여름에 올랐을 때 불경스럽게도 이 돌탑 앞에서 팬츠를 내리고 거풍을 즐긴 나를 내치지 않고

 

고맙게도 소원을 말해보라는 이 돌탑에 이만큼 몸이 회복되어 여기 다시 선 것만도 대만족이며 달리 소망할

 

것이 없다고 답하고 나자 정말 몸이 다 나은 것처럼 가벼워졌다. 저 아래 달궁계곡 건너편에 자리한 반야봉이

 

참으로 의젓해 보였고 성삼재로 이어지는 대간 길 또한 절세미인도 시샘할 정도로 선이 아름답고 부드러웠다.

 

길 양옆 작은 키의 억새들이 가을정취를 물씬 풍기는 풀밭을 지나 아주 작은 헬기장으로 내려갔다가 1200m봉

 

(?)에 오른 시각이 9시58분으로 만복대를 출발해 딱 1시간 걸렸다. 헬기장에서 이 봉우리로 오르는 길에 한 부

 

부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걸음이 느린 부인분과 답답하다고 행보를 같이 하지 못하고 한참 앞서갔다가 다

 

시 돌아와 부인을 챙기는 남편 분을 보고 나도 옛날에 집사람에게 저렇게 했지 하는 생각이 났다.  

 

 

 

 

10시34분 해발 1,248m의 작은고리봉에 올랐다. 이번 산행 최고의 반려자는 반야봉이었으니 숨을 가쁘게 몰아

 

쉬며 1200m봉에 오른 나를 보고 저 건너 반야봉이 두 팔을 벌려 반겼다. 이 봉우리의 파리와 벌들도 윙윙대며

 

덩달아 나를 반겨 시야가 탁 트인 1200m봉에서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간신히 숨만 고른 채 곧바로 묘봉치로

 

내려갔다. 헬기장이 들어선 “만복대3.3Km/성삼재2.0Km" 지점의 안부가 지도에 나와 있는 묘봉치 같았다. 묘

 

봉치에서 1108봉으로 올라섰다가 작은고리봉으로 진행하는 중 50명이 넘는다는 산악회 팀원들을 만나 길을

 

비켜주느라 10분 가까이 멈춰 섰다. 서로 맞부딪히면 어느 한 쪽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할 만큼 길이 좁았

 

고 시간이 흐를수록 만복대를 오르는 산객들은 점점 늘어났다. 정상석이 세워진 작은고리봉 또한 전망이 일품

 

이었고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성삼재가 더욱 가까이 보였다.

 

 

 

 

 

 11시15분 성삼재에 다다랐다. 작은고리봉에서 내려서서 성삼재로 진행하는 중 피아골로 내려가 볼까 하는 생

 

각이 퍼뜩 났다. 이 속도로 진행하면 성삼재에 11시 반경이면 다다를 것이고 그리되면 예매한 구례구역 발 저

 

녁7시11분 기차시간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게 된다. 이참에 코스를 길게 잡아 아직도 못 가본 피아골로 하산

 

하자고 마음을 바꿔먹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작은 고리봉을 출발한 후 40분이 채 못 되어 다다른

 

성삼재는 더 이상 차를 댈 수 없을 정도로 차들이 많이 올라와 시장 통처럼 시끌벅적했다. 피아골 행을 확정짓

 

고자 구례터미널에 전화를 걸어 피아골에서 구례로 가는 버스시간을 확인해보았다. 저녁6시40분차는 너무 늦

 

고 그 앞 4시30분 버스를 타야하는데 아무리 따져 봐도 내 주력으로는 무리라는 판단이 서 아쉽지만 피아골 행

 

을 포기하고 이제껏 오르지 못한 노고단을 들러보기로 했다. 11시25분에 성삼재 탐방센타 앞을 출발해 꽤 넓

 

은 길을 따라 올랐다. 전망대와 코재를 지나지 않고 새로 설치된 계단 길로 질러 올라가 다시 만난 넓은 길을

 

따라 왼쪽으로 진행했다.

 

 

 

 

 

 13시 정각 해발1,507m의 노고단을 올랐다. 큰 길을 따라 걷다 대피소로 질러 오르는 산길로 접어들어 몇 분

 

을 오르다가 잠시 쉬면서 점심을 들었다. 노고단대피소는 언제보아도 활기가 넘쳐 이곳을 지날 때 마다 힘든

 

것을 잊고 활기를 되찾는다. 대피소 위 고개 마루에서 오른 쪽 계단 길로 올라 때맞춰 열어놓은 노고단 정상을

 

밟았다. 노고단은 아고산지대의 키 작은 초본들이 자라고 있는 보기 드문 평원이다.  군부대주둔 및 탐방객과

 

다로 훼손된 환경을 복원하고자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오랫동안 제한적으로 열어놓았기에 지리산에 첫 발을

 

들인지 39년 만에 처음 올랐다. 커다란 돌탑과 정상석이 서있는 노고단은 지리산 서부의 최고의 전망지여서

 

동쪽 끝으로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이 잘 보였다. 이번 산행 내내 나를 지켜본 반야봉도 지척에 자리하고 있

 

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남서쪽 아래로 굽이져 흐르는 섬진강이 눈에 잡히자 내가 걸어온 능선이 저

 

강에 물을 대온 동쪽울타리 산줄기임이 실감됐다.

 

 

 

 

 

13시48분 코재를 출발해 화엄사 길로 내려갔다. 노고단에서 대피소로 내려가 큰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일제

 

때 외국인선교사들이 풍토병을 피하기 위해 머물고자 지었다는 별장건물의 굴뚝이 보여 사진 찍었다. 1970년

 

대 초 만해도 노고단 평원에 굴뚝 등의 별장 잔해들이 여러 곳에서 보였는데 지금은 다 없어지고 이 건물만 남

 

아 있는 것 같다. 코재를 지나 구례 가는 버스를 타고자 성삼재로 내려가다가 시간을 셈해보았더니 코재에서

 

5.7Km거리인 화엄사로 내려가도 문제없겠다 싶어 다시 코재로 돌아가 화엄사계곡 길로 내려섰다. 시간도 넉

 

넉하고 경사도 가파른 돌 가닥 길이어서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꼭 두 해전 고교동

 

기들과 이 계곡을 지났을 때는 물이 제법 많이 흐른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물이 졸졸 흐르다가 끊

 

어지고 더 내려가면 다시 이어지는 등 물 흐름이 영 시원치 않은 것으로 보아 가을가뭄이 여간 심각한 것이 아

 

니다 싶었다.

 

 

 

 

 

14시59분 화엄사 전방 3.5 Km 지점의 국수등을 지났다. 노고단과 화엄사의 중간지점인 국수등에 내려서자 화

 

엄사계곡의 나뭇잎들이 여전히 푸르러 이 가을이 아직도 여름을 완전히 접수하지 못한 것 같다. 지겹도록 이

 

어지는 돌 가닥 길이 그나마 덜 짜증스러웠던 것은 바짝 뒤따라 내려오는 두 모녀가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왔

 

기 때문이다. 마치 친구들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녀를 보고 왜 우리 아버지들은 저처럼 아들들과

 

살가운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가 싶어 안타까웠다. 국수등에서 1Km 떨어진 참샘터도 물을 떠 마실 만큼 수량

 

이 넉넉지 못했다. 잠시 흙길이 나타나 좋아 했는데 이내 너덜 길로 바뀌었고 이 너덜 길은 연기암 입구에서

 

끝났다. 국내최대 문수보살기도성지인 연기암을 들러 그 보살님의 입상을 카메라에 담아 왔다. 노고단에서 내

 

려다보는 섬진강보다 연기암에서 바라다보는 섬진강이 더 다정다감해 보이는 것은 저 강이 보듬고 있는 세속

 

과 더 가까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16시가 다 되어 연기암을 출발해 2Km 남겨놓은 화엄사로 향했다. 

 

 

 

 

 

17시25분 화엄사 주차장에서 하루 산행을 접었다. 연기암을 출발해 화엄사로 내려가는 큰 길을 따라 꽤 오래

 

걸었어도 화엄사가 보이지 않았고 오가는 차들이 먼지를 풀풀 날려 하산 길을 잘 못 잡았다 했다. 아직도 반시

 

간 이상 걸어야 화엄사에 다다를 것이라는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한참을 걸어 내려온 큰 길을 버

 

리고 화엄사 계곡을 끼고 걷는 산책로로 들어섰다. 재작년 가을 이 길을 걸을 때보다 물이 많이 줄어든 화엄사

 

계곡 안의 담과 소에 눈길을 주고 대나무 숲길도 걸어 16시47분에 화엄사입구에 다다랐다. 탐방소에 들러 버

 

스정류장이 1.5Km 떨어져 있다는 안내를 받고 차도를 따라 바쁘게 걸어 내려갔습니다. 버스정류장을 절 저

 

아래로 멀리 떨어뜨려 놓은 것이 화엄사의 경내를 정숙하게 유지하고 싶어서라면 한화콘도를 절 가까이 일주

 

문 안에 짓도록 한 것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10분 넘게 기다려 구례행 버스에 올랐다. 구례 터미널에서 저녁6

 

시10분발 버스로 갈아타 구례구역으로 옮기면서 기사 분으로부터 구례구역이 구례군이 아닌 순천시 땅에 소

 

재하고 있음을 처음 알았다.

 

 

 

 

 

멀리 있는 님을 눈 가까이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입으로 들어오는 술의 힘을 빌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저녁

 

식사 후 맥주 한 캔을 사 들자 에이츠가 환생해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님은 눈으로 들어온다”고 읊조릴 수 있

 

을 것 같았다. 기차에 올라 자리에 앉아 눈으로 들어오는 옛 님을 기다리다 이내 잠에 떨어져 님이 언제 다녀

 

갔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 달 안으로 섬진강 산(山)울타리 환주를 이어가기 위해 노고단을 찾을 것이기에

 

그리 서운해 하지 않았다. 노고할미의 러브스토리가 살아 전하는 한 언제고 나도 옛님을 다시 만나볼 수 있으

 

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환주기45:백두대간 6구간(노고단-세석 영신봉)

 

*산행일시:2009. 10. 22일(목)/ 4시57분-17시26분(12시간29분)

 

*소재지  :전남구례/전북남원/경남하동 

 

*산높이  :삼도봉1,435m/토끼봉1,534m/칠선봉1,558m/영신봉1,652m

 

*산행코스:성삼재-노고단-삼도봉-연하천-벽소령-영신봉-세석대피소

 

 

 

 

이번 환주산행은 최근 어느 산행보다 신경이 많이 쓰였다. 이틀에 걸쳐 치러낼 산행코스를 성삼재에서 백두대

 

간을 타고 세석으로 가서 일박한 후 영신봉에 올라 낙남정맥을 따라 길마재까지 진출하는 것으로 잡고나자 몇

 

가지가 걱정됐다. 외삼신봉에서 묵계치로 내려가는 낙남정맥 길에 수직암벽이 있는데 이 길이 비탐방로여서

 

옛날에는 두 단계로 걸어 놓았던 로프를 아래 단계는 걷어내 따로 자일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았

 

다. 세석대피소에 예약을 해놓지 않아 잠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지도 걱정되었고 버너와 코펠에 보조자일이 추

 

가되어 꽤 무거워질 짐을 지고 긴 시간 산행을 해도 아직은 성치 못한 몸이 탈 없이 견뎌낼 수 있을지 자신하

 

지 못했다. 한 후배에 도움을 받고자 동행을 요청했으나 여의치 못해 혼자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번에

 

는 보조자일이 필요한 암벽 길을 다음으로 미루고 산행코스도 낙남정맥의 삼신봉에서 청학동으로 하산하는

 

짧은 코스를 택해 짐 무게를 줄이기로 했다.  

 

 

 

 

새벽4시57분 성삼재탐방소를 출발했다. 전날 밤 산본 집에서 전철로 천안역으로 가 밤11시57분에 전라선 열차

 

에 몸을 실었다. 새벽3시20분 경 구례구역에서 하차하여 성삼재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성삼재 행 버스가 구

 

례읍내 터미널에서 15분여 대기하는 동안 어묵으로 요기를 한 후 4시 정각에 터미널을 출발해 성삼재로 향했

 

다. 4시40분 조금 넘어 도착한 성삼재의 새벽공기는 냉랭했다. 발목과 손목을 덮는 긴 내의를 입고도 추위가

 

느껴져 다운자켓을 덧입고 산행 길에 올랐다.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고 노고단으로 오르는 나를 잠시 멈춰

 

세운 것은 저 아래 구례읍의 야경이었다. 도시의 밤을 밝히는 전등불은 햇빛처럼 어둠을 완전히 몰아내지 않

 

고 공존하는 것이어서 저토록 매혹적인 야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새벽에 산객들의 코고는 소리가 들리는

 

노고단 대피소를 지나 곧바로 노고단 고개로 올라섰다.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내 보이는 반야봉이 일출을 준비

 

할 즈음에도 숲속의 산길은 여전히 어두웠는데 생각보다 밤과 낮의 교체가 순조롭게 이루어져 6시25분에 헤드

 

랜턴을 끄고 아침을 맞았다.

 

 

 

7시16분 임걸령에서 아침을 들었다. 어둠이 가시고 붉은 해가 산 능선을 넘어 솟아오르자 방금 우회해온 노고

 

단에서 아침 햇살을 받은 노란색과 붉은 색의 단풍들이 막 세수를 마친 듯 환해 보였다. 돌가닥 길과 흙길을

 

번갈아 걸으며 오른 쪽으로 피아골 길이 갈리는 능선 삼거리를 지나 임걸령으로 내려섰다. 오랜 가을 가뭄으

 

로 수량이 많이 줄어든 샘물을 떠 마신 후 바람을 피할 만한 곳에서 김밥을 꺼내 들었다. 왼쪽 위로 반야봉 길

 

이 갈리는 노루목까지 오름 새가 계속 이어져 오름 길 중간에 다운 자켓을 벗어 넣었다. 지리산 서부의 최고봉

 

인 반야봉을 오른쪽으로 에돌아 삼도봉에 오른 시각이 8시44분으로 그새 아침 냉기는 완전히 가셨다. 화사한

 

단풍나무 숲에 회색의 고사목 및 푸른색의 구상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반야봉은 노고단 쪽에서 바라본 반

 

야봉과 삼도봉에서 올려다 본 반야봉을 잘 꿰어 모아야 온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반야봉에서 극락정토로

 

떠나는 반야용선에 오르려면 그동안 베푼 적선의 탑이 이 산의 1732m보다 높아야 할 같은 생각이 들었다. 

 

 

 

 

10시 정각에 해발1,534m의 토끼봉에 올랐다. 전라 남/북도와 경상남도가 만나 한 점을 이루는 삼도봉에 올라

 

10분 여 쉰 후 화개재로 내려갔다. 지리산 능선의 급속한 훼손을 막아 줄 깔끔한 계단 길을 내려가며 뒤돌아

 

본 삼도봉이 품고 있는 거암들의 당당한 모습을 제대로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 달 전 쯤 들렀던 화개재는

 

동서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바람에게는 고개 마루이고 지리산의 주능선을 종주하는 내게는 편안한 안부이기에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다. 뱀사골에서 불어 올라온 골바람에게 이 골짜기에서 이무기의 영혼을 달래고 있을 고

 

(故) 고정희 시인의 안부를 물었다. 화개재에서 토끼봉으로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던 것은 1시간 가까이 오름

 

길이 계속 되어서였다. 바로 아래 헬기장을 지나 오른 토끼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내쳐 연하천을 향해 내달았다.

11시36분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했다. 울긋불긋한 단풍들로 온산이 불타고 있는 지리산의 연봉들에 대한 감탄

 

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은 6시간 넘게 강행군을 한 탓에 많이 지쳤기 때문이다. 지리산의 주능선을 종주하

 

면서 높낮이 차가 200m선인 봉우리와 안부를 수 없이 오르내리리라는 각오를 아니 한 바는 아니지만, 산릉 길

 

이 거의 다 너덜길이어서 바닥창이 두꺼운 구두를 바꿔 신고 걸었는데도 발바닥이 아팠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젊은이도 견디기 힘들었던지 쉬다 가다를 반복하는 돌가닥 길을 걸음이 느린 나는 쉬지 않고 걸어 토끼봉

 

출발 1시간 반 만에 연하천에 다다랐다. 지난 달 연하천에서 명선봉으로 오를 때는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으면서 단풍색상이 참으로 곱다 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단풍잎들이 바닥에 떨어져 낙엽으로

 

바뀌었고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나뭇잎들도 그 때의 해맑음은 다 잃어버리고 칙칙하게 변해버려 이번에는 카

 

메라를 들이댈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 연하천의 샘물도 많이 줄어들어 휴일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태풍이 건너 뛴 올 가을 강수량이 턱 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닷물을 대량으로 담수화해 육지

 

로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태풍의 상륙이기 때문이다. 점심을 들기는 조금 이른 것 같아 페트병에

 

샘물을 채운 후 벽소령으로 향했습니다. 음정으로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 오르기까지 모처럼 평평한 흙길

 

도 걸었는데 주홍나비가 나풀거리며 몇 십 미터를 동행했다. 삼각봉을 정각12시에 올라 점심을 들면서 20분

 

남짓 쉬었다. 

 

 

 

 

13시56분 벽소령대피소에서 4-5분가량 쉬었다. 한 번 지치자 삼각봉에서 벽소령에 이르는 짧은 길도 마냥 멀

 

게 느껴졌다. 몇 곳의 암봉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우회하는 동안 뒤따라오던 몇 분들이 나를 앞섰다. 나와 똑같

 

이 야간열차를 타고 내려와 화엄사 계곡을 타고 노고단으로 올라왔다는 50대 초반의 이천 분 은 성삼재에서

 

출발한 나를 삼각봉 조금 지나서 앞지르면서 내 걸음이 결코 느린 것이 아니라며 격려했다. 당일로 천왕봉을

 

 

올랐다가 대원사로 하산한다는 이분은 내게 벽소령보다는 세석의 대피소가 빈자리가 더 많다며 세석에서 묵

 

을 것을 권했다. 미쳐 대피소예약을 못한 터라 벽소령대피소에 자리가 없으면 음정으로 내려가 일박하고 새벽

 

같이 되올라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던 내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는 것이 다음날은 세석을 거쳐 낙남정

 

맥 첫 구간을 종주할 뜻이었기 때문이다. 성삼재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까지 장장16시간을 걸어 하루에 마

 

쳤던 그 때에 비해 주력이 많이 떨어진 것은 나이를 더 먹었기 때문이 아니고 작년에 허리를 크게 다친 사고의

 

 후유증 때문이라고 애써 자위하면서 종주산행을 이어갔다. 우뚝 솟은 거암들이 가운데로 바람에 길을 내준

 

형제봉을 지났다. 벽소령에 이르자 먼저 와 쉬고 있는 몇 분들도 평일 날은 빈자리가 많으니 아무 걱정 말고

 

세석으로 가서 묵으라고 일러주어 쵸코렛을 꺼내 든 후 곧바로 세석으로 향했다.

 

 

 

 

15시5분 선비샘에서 식수를 보충했다. 벽소령에서 1.1Km 되는 길은 낙석을 조심하라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지

 

만 땅바닥이 평평한 흙길이어서 모처럼 발바닥이 편안했다.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떨어진 거리가 6.3Km여서

 

서두르지 않으면 해지기 전에 닿기 어려울 것 같아 평지길이 끝나는 삼거리까지 들입다 내달렸다. 왼쪽으로

 

나 있는 넓은 길이 음정으로 내려가는 넓은 도로 같은데 나뭇가지들을 쌓아 길을 막아 놓은 것으로 보아 음정

 

가는 길은 벽소령 대피소에서만 열려 있는 것 같았다. 삼거리에서 20분 남짓 걸어 통나무 쉼터에 올라서기까

 

지 땀을 좀 흘렸지만 이 쉼터에서 선비샘까지는 덕평봉을 오르지 않고 오른쪽으로 에돌아갔기에 그다지 힘들

 

지 않았다. 39년 전 처음으로 지리산을 종주했을 때는 선비샘 주변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지금처럼 깔끔하

 

지는 않았지만 수량만은 충분하다 했는데 이번에는 오랜 가뭄으로 수량이 많이 줄어 물줄기가 힘이 없어 보였

 

다. 선비샘을 출발해 칠선암으로 다가갈수록 천왕봉이 점점 가깝게 보이자 지리산의 주봉은 역시 천왕봉이라

 

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17시26분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선비샘 출발 반시간 남짓 걸려 “벽소령4.2Km/세석대피소2.7Km” 지점에 이

 

르자 회색의 고사목 군이 나타났다. 온 몸을 불살라 생의 고별 향연을 벌이고 있는 단풍잎들을 옆에서 지켜보

 

면서 등을 눕힐 마음이 일지 않아서인지 여기 고사목들도 장터목과 마찬가지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하늘을 향

 

해 똑바로 서있었다. 나무계단 길을 올라 다다른 칠선봉에서 장터목대피소가 잘 보여 세석대피소가 자리한 곳

 

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 칠선봉을 여섯 번째 오르면서도 영신봉을 받쳐주는 암봉들이 저리도 절경인가

 

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흔히들 지리산은 육산(肉山)이고 설악산은 골산(骨山)으로 표현한다만 칠선봉에서 바

 

라다본 영신봉 전위봉의 거암들은 설악산 못지않아 보였다. 하기야 산신령께서도 이 넓은 산을 더러 더러 바

 

위도 갖다 놓아야지 몽땅 흙으로만 채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깎아지른 암봉을 계단 길로 올라서자 지나온 연

 

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길 왼쪽 위 영신봉을 밟아본 후 세석대피소로 내려가 하루 산행을 마쳤다.

 

 

 

 

빈자리가 꽤 있어 18시가 조금 넘어 잠자리를 배정받았다. 옆자리의 한 분도 나처럼 예약을 하지 못해 오후 3

 

시부터 자리배정을 기다렸다 한다. 10여 년 전에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지내신다는 이 분은 나보다 2년 연상인

 

데 지리산을 105번 오르고 백두대간과 9정맥 종주를 모두 마쳤다 한다. 같은 처지인 내가 이 분만큼 산을 자주

 

오르지 못한 것은 산에 대한 열정도 떨어지고 산행기를 작성하는데 시간을 많이 써서다. 라면을 끓여 저녁을

 

해결하고 나자 소등시간인 저녁8시가 다 되었다. 이참에 밀린 잠이나 실컷 자두자는 생각에서 일찌감치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애당초 묵으려고 했던 벽소령에서 6.3Km를 더 걸어 세석에서 하루 산행을 마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성

 

삼재에서 세석까지 5년 전 몸이 성할 때보다 2시간 반가량 더 걸렸지만 이정도면 낙남정맥과 낙동정맥 종주도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벽소령-세석-삼신봉-청학동으로 잡은 이튿날 산행코스를 삼신봉에서 청학동

 

으로 하산하는 대신 더 먼 쌍계사로 하산하기로 변경한 것도 세석까지 진출했기에 가능했다. 바닥이 딱딱해

 

허리가 더 아팠지만 마음이 편안해 잠을 푹 잤다.

 

 

 

 

 

 

 

 

환주기46:낙남정맥 1구간(세석 영신봉-삼신봉)

 

*산행일시:2009. 10. 24일/ 6시25분-17시42분(11시간17분)

 

*소재지  :경남하동/산청

 

*산높이  :영신봉1,652m, 삼신봉1,288m

 

*산행코스:세석대피소-영신봉-의신갈림길-삼신봉-상불재-쌍계사-향원슈퍼앞 버스정류장

 

 

 

 섬진강 산(山)울타리 환주 차 아침 일찍 낙남정맥의 출발점인 해발1,652m의 영신봉에 올라섰다. 2007년5월

 

전남광양의 망덕산에서 시작한 섬진강산줄기 환주산행은 이 강의 서쪽 울타리인 호남정맥과 북쪽 울타리인

 

금남호남정맥을 차례로 밟은 후 동쪽 울타리인 백두대간으로 바꿔 타 남쪽으로 이어갔다. 영취산에서 백두대

 

간으로 들어선 후 총6회 출산해 영신봉 아래 세석에 이르렀는데, 섬진강의 울타리 산줄기는 영신봉에서 백두

 

대간을 벗어나 낙남정맥으로 이어지기에 전날 들른 영신봉을 아침에 다시 찾아 올랐다. 백두대간의 영신봉에

 

서 남쪽으로 분기해 옥산, 대곡산, 여항산, 무학산, 천주산, 정병산과 신어산을 거쳐 낙동강 하구 매리에서 끝

 

나는 산줄기로 그 길이가 도상거리기준으로 약 226km나 되는 낙남정맥은 낙동강의 남쪽 울타리 산줄기다. 이

 

 낙남정맥이 영신봉에서 돌고지재를 조금 지나 낙남금오지맥이 갈라지는 547m봉까지 섬진강의 동쪽 울타리

 

도 겸하고 있어 이번에 낙남정맥에 발을 들인 것이다.

 

 

 

아침6시25분 세석대피소를 출발해 영신봉으로 향했다. 전날 밤 대피소에서 저녁8시에 소등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새벽2시에 잠이 깨 남은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다. 새벽 4시반 경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총총히 빛나

 

는 별들로 밤하늘이 환했다. 지구에서 800광년 떨어진 북반구의 으뜸별인 북극성과 이 별을 맴도는 북두칠성

 

을 모두 찾아내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었다. 인절미로 아침식사를 한 후 세석대피소를 출발해 영신봉에 오르자

 

일출을 먼저 맞는 촛대봉 주위가 불그스레했다. 몇 분을 기다려 해오름을 사진을 찍은 후 낙남정맥을 무사히

 

종주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십사 하고 주님께 기도를 올렸다.

 

 

 

아침7시 정각 해발1,652m의 영신봉을 출발해 낙남정맥에 첫발을 들였다. 영신봉에서 음양수까지 낙남정맥 길

 

은 비탐방로여서 세석대피소로 되 내려갔다. 샘터에서 페트병에 물을 가득 채운 후 세석평전을 뒤로 하고 거

 

림 가는 길로 내려가다가 7시30분 경 다다른 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들어서 삼신봉으로 향했다. 산죽과 철쭉

 

나무, 그리고 사스레 나무들이 평원을 덮은 고즈넉한 길을 잠깐 동안 앞장서 안내해준 다람쥐가 귀엽고 고마

 

웠다. 숲의 낙엽생산성분석을 위해 설치한 낙엽 포집기를 이번에 처음 보았다.

 

 

 

영신봉에서 잠시 벗어났던 낙남정맥에 복귀한 것은 음양수에 다다라서였다. 넓적한 거암 아래 음양수 샘터도

 

오랜 가뭄으로 물이 거의 말라 과연 이 샘터가 비련의 러브스토리를 만들어낸 전설의 고향인가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아득한 옛날 지리산에 제일 먼저 들어와 대성계곡에 자리 잡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 호야와 연진 부부

 

는 안타깝게도 자식을 두지 못했다 한다. 곰으로부터 음양수 샘물을 마시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연진 여인은 곧장 달려와 샘물을 퍼마셨는데 호랑이가 이 사실을 산신령께 고해바쳤다. 대노한 산신

 

령은 음양수의 신비를 발설한 곰을 가두고 연진에게는 평생토록 세석의 돌밭에서 철쭉을 가꾸게 했다. 촛대봉

 

은 연진이 이봉우리 정상에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의 산신령께 죄의 용서를 빌다가 그대로 굳어진 암봉이라 한

 

다. 연진 여인을 돕는 선한 일은 곰이 하고 산신령께 밀고하는 악역을 호랑이가 맡은 이 애틋한 전설은 그 프

 

레임을 단군신화에서 따온 것 같아 전혀 낯설지 않았다.

 

 

 

8시26분 의신 갈림길을 지났다. 대피소에서 1.2Km를 걸어 음양수에 이르는데 40분이 걸려 이런 걸음으로는

 

해지기 전에 쌍계사에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아 산행을 서둘렀다. 평평한 좋은 길은 음양수에서 끝났고 이어지

 

는 낙남정맥 길은 오르내림이 심해 조금씩 힘들게 느껴졌다. 오른 쪽으로 의신 가는 길이 갈리는 분기점을 지

 

나 커다란 암봉인 1270m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하면서 호야와 연지부부가 함께 살았다는 대성골을 내려다보았

 

다. 아침 햇살을 맞아 골짜기에서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새빨간 단풍잎을 보고 대성골이 숨겨놓은 지리산의 속

 

살이 저리도 고혹적인가 감탄했다. 1270m봉을 에돌아 올라선 능선 쉼터에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나

 

뒹굴어 지리산의 산신령께 부끄러웠다. 지리산을 105번 올랐다는 세석대피소에서 만난 한 분이 영신봉-삼신

 

봉-상불재를 잇는 능선이 웅장한 지리산을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길이라며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끔 지나온 길

 

을 뒤돌아보며 가라고 일러주었는데 과연 그러했다. 대성골과 거림골을 가르는 이 능선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

 

아보자 영신봉과 촛대봉이 북쪽으로 선명하게 잡혔고 북동쪽에 우뚝 솟은 천왕봉은 이 산의 주봉답게 참으로

 

의젓해 보였다. 

 

 

 

10시11분 세석대피소에서 4.4km를 걸어 헬기장에 다다랐다. 봉우리 하나를 오른쪽으로 우회해 만난 석문은

 

속세의 일들을 다 내려놓고 산사로 들어서는 일주문 같아 이 문을 경건하게 지나야 삼신봉에서 삼신을 알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석문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넓적한 암봉에 올라 천왕봉을 향

 

해 앉아 있는 한 분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혹시라도 이 분이 극락정토인 천왕봉으로 떠나는 반야용선을 기다린

 

다면 여기보다는 반야봉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가닥 길을 오르내리며 길을 가로 막은

 

 큰 나무를 밑으로 통과해 또 하나의 암봉을 우회하느라 진행속도가 많이 더뎠다. 재난구조용 이동통신 중계

 

기가 설치된 헬기장에서 십 수분을 더 걸어 다다른 1214m봉에서 짐을 내려놓고 7-8분을 쉬었다.

 

 

 

 

11시45분 해발1,288m의 삼신봉에 올라 낙남정맥 첫 구간 종주를 마쳤다. 1214m봉에서 쉬는 동안 남쪽 먼발치

 

에 자리한 삼각봉이 삼신봉이라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감이었고 실제 삼신봉은 그 봉우리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어 그 사이에 자리한 해발1200m대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4-5개는 더 오르내린 후에야 다다를 수 있었

 

다. 1214m봉과 세석대피소5.5Km 지점 사이 능선 길에서 만나 본 지난여름 한몫했을 용담꽃 몇 송이와 방아깨

 

비(?) 한 마리는 도망치는 가을에 몸을 맡기고 주저앉은 모습이 맥없어 보였다. 몇 곳의 암봉을 에돌며 삼신봉

 

에 올라가 쉴 뜻이었는데 삼신봉은 꼭꼭 숨어 좀처럼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며 고사목

 

지대를 몇 번 지나 사람들이 올라선 거암의 삼신봉 앞에 다가섰다. 암봉인 삼신봉에 오르자 남쪽으로 낙남정

 

맥이 지나는 외삼신봉이 보였고 서쪽으로 쌍계사 가는 산줄기가 뻗어 나갔다. 다음 산행들머리로 잡은 청학동

 

이 그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이제껏 걸어온 천왕봉은 북동쪽으로 조망됐다. 정오의 햇살이 따가워 오래 머

 

무르지 못하고 서쪽으로 내려섰다. 바로 아래 청학동 길이 왼쪽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낙남정맥과 헤어지

 

고 쌍계사로 향했다. 

 

 

 

13시22분 “삼신봉2.5Km/상불재2.5Km” 지점을 지났다. 서쪽으로 뻗어나간 수려한 산줄기가 쌍계사로 이어지

 

는 능선으로 이 능선을 따라 10분 남짓 걸어 다다른 그늘진 고개 마루에서 짐을 풀고 건포도와 사과를 꺼내 들

 

면서 10분여 쉬었다. 8km가 더 남은 쌍계사까지 가서 오후3시반에 출발하는 구로행 버스를 타려면 쉴 새 없이

 

내달려야하는 데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그 다음 오후5시40분발 버스시간에  맞추기로 하고 천천히 걸었다.

 

20분가량 걸어 올라선 1375m봉은 "三神山頂 1,354.7m"의 정상석이 세워진 암봉으로 사방이 탁 트여 전망대로

 

는 앞서 오른 삼신봉에 못지않았다. 삼신봉에서 내려선지 얼마 후 높다란 암봉을 에도는 중 삼신봉-상불재의

 

중간지점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 능선 길로 올라서자 왼쪽 아래 청학동이 보다 가깝게 보였다.

 

 

 

 

14시28분 상불재에 다다랐다. 삼신봉에서 “삼신봉2.5Km/상불재2.5Km” 지점에 이르기까지는 몇 곳의 암봉을

 

에도느라 오르내림이 심한데다 길바닥도 너덜이 많아 시간 반 가량 걸린 산행이 버거웠다만, 그 다음 상불재

 

까지는 평평한 길도 있어 한결 수월했다. 남녀4명이 한 팀이 된 경상도 분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그들

 

의 대화가 시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많이 지쳐 있어 나도 모르게 좀 조용히 하라는 곱지 않은 말이 입에서 튀어

 

나갈까 신경 쓰였다. “삼신봉3.2Km”지점을 지나 “삼신봉4.1Km”지점의 상불재에 이르는 동안 잠시 멈춰 서서

 

지나온 산줄기를 뒤돌아보면서, 삼신봉-상불재 능선도 영신봉-삼신봉의 산줄기처럼 중간 중간에 깎아지른 암

 

봉들이 자리하고 있어 이들을 에도느라 많이 지쳤다. 왼쪽으로 삼신궁 길이 갈리는 상불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다 이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곡으로 내려섰다. 가파른 너덜 길을 걸어 “삼신봉4.9Km/쌍계사

 

4.1km” 지점에 다다른 시각이 14시50분으로 이런 속도라면 17시40분에 쌍계사를 출발하는 구례행 버스를 타

 

는 데는 별 문제 없을 것 같아 바위에 털썩 주저앉아 10분가량 쉬었다.

 

 

 

 

15시58분 불일폭포 앞에 섰다. “삼신봉4.9Km/쌍계사4.1km” 지점에서 7-8분 걸어 내려가자 너덜길이 끝나고

 

계곡물을 만났다. 여기서부터 불일폭포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까지 2Km 길은 참으로 편안해 속도를 한껏 냈

 

다. 하늘로 치솟은 침엽수들이 숲을 이룬 고즈넉한 길을 지나 단풍잎이 새빨갛게 불타는 활엽수림에 들어서자

 

많이 지친 내 몸의 원기가 되살아났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0.3Km 떨어진 불일폭포는 그 높이가 60m에 달하

 

며 지리산의 10대 비경의 한 곳이지만, 물이 조금밖에 흐르지 않아 초라했다. 뱀사골에서는 용이 승천하지 못

 

하고 이무기가 되었다는데 용이 승천하다 살짝 꼬리를 쳐 만든 청학봉과 백학봉사이로 물이 흘러 만들어진 것

 

이 불일폭포라 하니 그 규모가 웅장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불일폭포를 다녀오느라 24분을 까먹어 되돌아온

 

 삼거리에서 쉬지 않고 쌍계사로 내달렸다.

 

 

 

16시50분 쌍계사 경내로 들어섰다. 삼거리에서 조금 내려가 불일폭포 휴게소라고 문패를 달아놓은 초가집 앞

 

을 지났다. 초가집 앞에 비스듬히 놓인 알록달록한 적 청 황록색의 파라솔을 보자 대간시인 이성부님이 덕유

 

산의 단풍을 접하고 “아름다운 빛깔들 모두 우리나라 산천에서 떠온 것임을 알겠다”고 노래한 뜻을 알 것 같았

 

다. 하산 길은 넓어지고 불일폭포를 보러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쌍계사 경내로 들어서자 이 절도 규

 

모가 엄청 큰 대찰이어서 다 들러보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대웅전, 팔상전, 9층석탑과 진감선사대공탑

 

비 등 몇몇만 카메라에 옮겨 담았다.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21년인 서력722년에 선종(禪宗)의 육조(六祖)이신

 

 혜능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귀국한 대비(大悲)와 삼법(三法) 두 화상께서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안내를

 

받아 이곳에다 지은 절이라 한다. 이 절에 세워진 진감선사대공탑비는 불교음악인 범패를 도입하여 널리 퍼뜨

 

렸고 여기 쌍계사에서 입적하신 진감선사를 기리고자 세운 탑비로 통일신라의 문호 최치원이 직접 비문을 짓

 

고 글을 쓴 것이어서 널리 알려졌다.

 

 

 

 

17시42분 향원슈퍼 앞 정류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다. 쌍계사의 일주문에서 버스정류장까지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인데 중간에 화장실에 들러 옷을 갈아입느라 바빴다. 넓은 주차장 한 구석에 자리한 화장실을 나

 

와 이곳 초등학생에 버스정류장이 어디 있는지 묻자 앞장서 향원슈퍼 앞까지 안내해 고마웠다. 17시40분에 의

 

신을 출발한 버스를 몇 분간 기다렸다 올라 타 구례로 이동했다.

 

 

 

 

땅거미가 내려 앉아 어둑어둑한 섬진강을 따라 십 수분을 달렸다. 향원슈퍼에서 남쪽으로 내달아 다다른 화개

 

장터는 노래로만 들어온 곳인데 그냥 지나쳐 많이 아쉬웠다. 이곳에서 구례로 가는 버스길이 섬진강 오른 쪽

 

으로 나란히 나 있어 섬진강의 도도한 물 흐름을 내다 볼 수 있었다. 몇 번을 더 출산해 하동의 두우산에서 섬

 

진강 산줄기 환주를 끝내면 섬진강 상류에서 본류의 물줄기를 따라 이 강 하구까지 걸어볼 뜻이다. 그 때는 이

 

번에 버스로 가는 길을 두 발로 걸어 갈 것이다. 버스 안에서나마 그 때의 감동을 조금이라도 미리 맛본다 싶

 

어 가슴이 뛰었다. 낙남정맥의 첫 구간을 마치고 이름만 들어온 쌍계사를 일별한 후 섬진강의 물 흐름을 지켜

 

본 이번 행로는 내게는 분명 축복의 길이다. 장시간 산행으로 왼쪽 발바닥의 인대가 늘어나 두 주간 산행을 하

 

지 말라는 의사선생의 말씀을 듣고도 가슴 뿌듯한 것은 축복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먼 곳을 동경하

 

고 그리로 떠나는 나들이는 내 삶의 원동력이자 활력이기에 나는 또 다른 나들이를 꿈꾸고 있다.

 

 

 

 

 

 

 

환주기47:낙남정맥 2구간(삼신봉-고운동재)

*산행일시:2010. 4. 19일/ 8시56분-15시59분(7시간3분)

*소재지  :경남 하동

*산높이  :외삼신봉1,288m

*산행코스:청학동버스종점-삼신봉-외삼신봉-묵계재-고운동재-묵계초교

 

  가파른 바위 길이 위험해 혼자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반년이 지난 어제서야 친구의 도움으로 이 길을 통과해 섬진강 산(山)울타리환주산행을 재개했다. 작년10월 세석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영신봉에서 낙남정맥에 발을 들여 삼신봉까지만 진행한 것도 쌍계사를 들러보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기실 그 속사정은 외삼신봉 바로 아래 직벽에 가깝다는 바위길을 혼자 내려가기가 겁이나 피했던 것이다. 재작년 가을 용화산에서 추락 사고만 당하지 않았다면 별반 신경 쓰지 않고 지났을 이 바위 길 때문에 반년을 문치적거리는 나를 보고 오랜 산 친구인 경동고교 이규성동문이 동행하겠다고 나서주어 큰 숙제를 풀었다. 한 주전 용화산에서 같이 오른 성봉현님으로부터 새까맣게 잊어버린 하강법을 다시 익힌 후 20m 보조 자일을 갖고 내려가 이번에 잘 써먹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막상 끝내고 나자 이런 길이 두려워 반년을 허송세월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이어갈 꿈은 첫째가 섬진강산줄기환주산행을 마무리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올해 안으로 낙남정맥을 마저 종주하는 것이다. 이번 산행을 함께 해준 친구가 고맙고 또 고마운 것은 이제는 나 혼자서 이러한 꿈을 이어갈 수 있어서다.

 

  전날 월출산을 올랐다가 천황사지로 내려가 광주를 거쳐 진주로 옮겼다. 자정이 다 되어 내려온 친구와 함께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의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아침7시10분에 진주를 출발하는 청학동행 버스에 올랐다. 하동을 들르지 않고 곧바로 청학동으로 가는 버스가 택시가 한 대 밖에 없다는 청암리를 거치고 묵계리를 지나 청학동에 이르기까지 잔뜩 찌푸린 날씨에 안개가 끼여 내내 답답했지만 차도 변에 만개한 벚꽃들만은 여전히 화사했다. 청학동 마을 끝자리의 종점에서 하차하자 이곳 주민들을 대신해 이들이 세웠을 솟대들이 우리들을 반겨 맞았다. 설마하니 이 깊은 산골짜기 마을에서 장원공을 배출했을 리 없고 보면 여기 세워진 솟대들은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기리기위해서가 아니고 이듬해에 풍년을 빌고자 세웠을 것이다.

 

  오전 8시56분 청학동버스종점을 출발했다. 아스팔트길을 따라 4-5분을 걸어 다다른 청학동공원지킴터에서 삼신봉으로 올라가는 산길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탐방로답게 길이 잘 나있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 돌가닥 길과 산죽 길을 이어가는 산 오름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새소리에 계곡 물소리가 더해졌지만 바람소리가 들리지 않아 안개 낀 산속이 약동하는 봄답지 않게 고요했다. 산수유 한 그루가 그나마 노랑꽃을 피우지 못했다면 봄의 징후를 느끼기가 쉽지 않았을 산길을 1시간가량 걸어 샘터에 도착했다. 좁다란 공터도 있어 야영하기가 딱 좋은 샘터에서 물을 떠 마신 후 0.8Km 떨어진 삼신봉으로 향했다.

 

  10시26분 삼신봉에서 낙남정맥의 2구간 산행을 시작했다. 샘터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15분가량 올라가 고개 마루에 이르렀다. 낙남정맥이 동서로 지나는 안부인 이 고개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0.5Km 남은 삼신봉을 오르고자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10분 남짓 걸은 후 삼신봉을 왼쪽으로 우회해 오르자 안개가 잔뜩 끼어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내린다는 비가 오지 않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에 조망이 좋지 않다고 투정부릴 계제는 아니었지만, 늠름한 천왕봉을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기가 영 서운했다. 정상석을 카메라에 담아가는 친구를 사진 찍고 나서 곧바로 삼신봉을 출발해 낙남정맥 종주 길에 들어섰다. 동쪽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은 앞서 지났던 고개 마루를 거쳐 외삼신봉으로 이어졌다. 고개마루를 지나 외삼신봉으로 향하는 중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빗방울이 굵어져 가던 길을 멈추고 배낭에 방수카바를 씌우고 비옷을 덧입었다. 고개 마루부터 고운동재까지 비탐방로여서 걱정했는데 표지기가 걸려있고 길도 잘 나있어 한 걱정 덜었다.

 

  11시15분 해발1,288m의 외삼신봉에 올라섰다. 잠시 비는 그쳤지만 정상석만 제대로 보일 정도로 여전히 안개가 자욱해 지리산의 마지막 고봉인 외삼신봉의 전모를 보지 못했다. 외삼신봉에서 조금 내려가자 걱정했던 바위 길이 나타났다. 친구의 도움으로 준비해간 자일을 나무에 걸고 첫 번째 짧은 바위를 내려갔다. 두 번째 거의 수직에 가까운 바위 길이 다행히도 7-8m 밖에 되지 않아 20m 보조자일로 충분했다. 하강을 마치고 나자 가파르기는 해도 두 구간 다 로프가 걸려 있어 보조 자일을 가지고 가지 않아도 별 문제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이제껏 혼자서 이 구간을 지나지 못한 것은 2008년 가을 이후 두 번째 구간 로프를 제거한 것으로 사진에 나와 있었기 때문인데 최근에 누군가가 로프를 다시 건 것 같다. 좀처럼 고도가 떨어지지 않는 능선길이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어졌다. 키를 넘는 산죽들이 터널을 만들어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통과해야 한다는 산죽 길이 하나 남은 걱정거리였는데 2007년 봄에 지난 금남정맥의 산죽길보다 오히려 쉬웠다.

 

  12시57분 무명봉 바위에서 점심을 들면서 처음 제대로 쉬었다. 산죽 길을 지나 만난 나뭇가지들이 연출한 정경이 참으로 고혹적이어서 잠시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다. 아직 이 산등성에 봄이 찾아오지 않았기에 지난 가을 마지막 잎 새를 떨쳐낸 나뭇가지들이 앙상해 보였지만 겨울이 물러난 것은 분명해 그리 추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자욱한 운무사이로 나뭇가지들이 연출한 굵은 직선과 섬세한 곡선이 드러났고, 산등성을 넘나드는 바람도 나뭇가지를 흔들어대지 않아 모처럼 시간이 이 나뭇가지에서 멈춰 선 듯했다. 산죽 터널을 허리를 구부리고 지나야 하는 것으로 알고 스틱을 접어 넣었더니 경사진 길이 조심스러워 속도가 나지 않았다. 무릎통증은 아침에 파스를 붙인 것이 효과가 있어  전날 월출산을 오를 때보다 훨씬 덜했다.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어진 능선 길이 북서쪽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남동쪽으로 바뀌면서 고도가 낮아졌다.

 

  13시58분 묵계재에 도착했다. 남동쪽으로 다시 바뀐 길을 따라 내려가 산죽 길을 빠져나가자 헬기장이 나타났다. 사진에서 많이 본 듯해 가던 길을 멈추고 지도를 찾아 확인해본 즉 이곳이 바로 묵계재였다. 비가 계속 내려 목적했던 길마재까지 진행하는 것이 무리다 싶었고 위험한 바위 길을 안전하게 지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어 여기 묵계재에서 구간 종주를 마칠 생각이었는데, 차도로 내려가는 남쪽 북쪽 하산 길이 어느 하나 분명하지 않고 풀숲이 우거져 난감해 하다가 샛길 하산을 포기하고 1시간2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고운동재를 향해 곧바로 진행했다. 묵계재보다 200m 가까이 고도가 높은 991m봉을 오르는 길이 생각보다 가팔랐고 이제껏 지나온 길보다 산죽이 더 빽빽이 들어서있어 뒷다리가 당겼다. 40분 넘게 들락날락하던 산죽 터널 길을 빠져나와 만난 공터에서 7-8분간 쉬었다.

 

  15시05분 고운동재로 내려섰다. 잠시 쉬었던 공터에서 산죽 길은 끝났고 경사가 완만한 내림 길이 고운동재까지 계속해 이어졌다. 접어 넣은 스틱을 다시 꺼내 하산속도를 높였더니 15분도 채 못 걸어 차도가 보였다. 고운동재로 내려가 길마재 길을 확인한 후 두 번째 구간의 낙남정맥 종주를 마치고나자 반년을 끌어온 숙제를 끝냈다 싶어 홀가분했다.

 

  15시59분 묵계초교 앞에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다. 왕복2차선 차도가 지나는 고운동재 고개 마루에서 고운호로 내려가는 길은 왼쪽으로 이어졌고, 우리 둘은 그 반대방향으로 내려가 묵계초교로 향했다. 고도가 낮아지자 나뭇잎이 파릇파릇하고 벚꽃이 만발해 춘색이 완연했다. 주룩주룩 비가 내려 우중충했지만 그래도 봄비여서 맞으며 걸을 만 했다. 청학동 입구를 지나 묵계초교 앞에서 하동 가는 버스가 저녁 5시10분에 이곳을 지나간다는 것을 확인하고 맥주 몇 잔을 같이 들며 자축했다.

 

자정이 다 되어 산본 집에 도착했다. 이번 산행은 비가 많이 와 목표한 길마재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친구의 도움으로 외삼신봉 아래 바위 길을 안전하게 통과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뜻 있는 산행이었다. 이제부터는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구간들이어서 틈나는 대로 내려가 정맥 길을 이어갈 뜻이다. 이틀간 비를 맞으며 산행을 했어도 전혀 피로하지 않았고, 우려했던 오른 쪽 무릎의 통증도 많이 가셨다. 이제 남은 나흘 밤낮을 중간고사 시험공부에 쏟아 붓고자 한다.

 

  함께 동행한 친구가 고마웠다. 반년이나 묵묵히 나를 기다려준 낙남정맥에도 고마움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