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낙동정맥 종주기

낙동정맥 종주기16(이리재-운주산-한티재)

시인마뇽 2011. 12. 29. 11:57

 

                                                       낙동정맥 종주기16

 

 

 

                                  *정맥구간:이리재-운주산-한티재

                                  *산행일자:2011. 11. 24일(토)

                                  *소재지 :경북포항/영천

                                  *산높이 :운주산 806m

                                  *산행시간:이리재-운주산-블랫재-한티재-감곡리버스정류장

                                  *산행시간:7시52분-15시34분(7시간42분)

                                  *동행 :나홀로

 

 

  삭풍이라 불리는 혹독한 겨울바람과 맞서 정맥 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실존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것이어서 주저하지 않고 저 혼자서 종주 길에 올랐습니다.  이번에 낙동정맥을 종주하며 새삼 겨울바람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비행기가 머리 위를 지날 때보다 더 큰 굉음을 내는 바람이 어느 한 순간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 태풍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강하게 불어 잠시 동안 육중한 제 몸체가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바람이란 공기의 이동을 이릅니다. 중력이 공기가 지구 중심에서 마냥 멀어지는 것을 막아주어 공기가 대류를 일으키는 운동공간은 지표에서 성층권과 경계를 이루는 권계면까지로 한정됩니다. 대기권이라 불리는 이 공간의 높이는 지표를 기준해 대략 10Km에 달합니다. 대기권은 문자 그대로 공기가 운동하는 운동장이어서 공기들은 이 공간에서 마음 놓고 좌우로, 그리고 상하로 운동합니다. 바람은 나름대로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양에 관계없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과 달리 바람은 항상 그 위치와 무관하게 공기가 많은 데서 적은 데로 붑니다. 해륙풍은 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밤에는 육지에서 바다로 불며 바람의 방향을 하루에 한 번씩 바꾸는데,  이점이 바로 바람이 늘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물과 다른 점입니다.

 

 

  바람의 이동방향이 하도 변화무쌍해 그 방향을 미리 종잡기가 어렵습니다. 기상학이 고도로 발달하고 관측기구가 정밀해진 요즘은 며칠 후 부는 바람의 방향을 예측하는 정도는 어떨지 모르지만, 1,800여 년 전 제갈공명에게는 엄청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유비와 손권이 연합해 십만의 병력으로 조조의 백만 대군과 맞붙어 싸워 승리한 것은 상당부분 제갈공명의 바람을 이용한 화공작전 덕분이었습니다. 제갈공명인들 소설에 나오는 대로 동남풍을 불게 하지는 못했겠지만 바람의 방향은 정확히 예측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예측이 틀렸다면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을 텐데 역사서는 제갈공명이 승리했다고 적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갈공명이 지금 살아 있다면 대박을 낼 것이 확실한 것은, 제갈공명처럼 바람이라는 통제 불능의 변수를 상수로 만들어 대처할 만한 인물이 아직 이 나라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침7시52분 이리재를 출발했습니다. 하루 먼저 내려가 포항시내에서 일박 한 후 이른 아침에 시외버스정류장 앞에서 700번 버스를 타고가 기계환승장에서 하차했습니다. 기계에서 이리재를 넘나드는 버스가 없어 별 수 없이 만오천원을 들여 택시로 이동하면서 다음 산행을 위해 기사분에 몇 가지를 물어, 기계에 여인숙이 하나 있고 택시비가 기계에서 다음 산행의 출발지인 한티재까지는 만이천원이며  하산지인 성법령까지 만팔천원 정도 나온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리재에서 하차해 오른 쪽 공터에서 산길로 들어선 후 된비알 길을 치고 올라갔습니다. 일단 150m가량 고도를 높이고 나서 잠시 숨을 돌리며 나뭇가지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장면을 사진 찍었습니다.

 

 

  9시1분 돌탑봉을 지났습니다. 일출 사진을 학형들에 전송한 후 ‘6. 25전사자 유해 발굴’을 알리는 노란 띠를 쳐놓은 능선을 따라 오르며 작년에 상영된 영화 “포화속으로”를 떠올렸습니다. 이 영화에서 학도병들이 참전해 전투를 치르는 전장이 포항이었는데 여기 운주산 줄기도 6.25전쟁을 피해가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진작 했어야 할 유해 발굴 작업을 뒤늦게 하는 것이기에 정성을 다해 작업해야 그나마 얼마라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운주산 가-21’의 표지목이 서있는 암봉에서 조금 더 올라가 돌탑이 서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자 햇살은 완전히 퍼졌으나 바람이 쌩쌩 불어 앉아 쉬지 못하고 곧바로 북동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수피가 허여멀건 서어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 평평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묘지를 지나 올라갔다 다시 내려가 산판도로를 만났습니다. 이 길을 따라 낮은 봉을 왼쪽으로 우회해 안부사거리에 이르자 넓은 길이 끝났습니다.

 

 

  10시43분 해발806m의 운주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산판도로가 끝난 안부사거리에서 직진해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다가 8부 능선쯤에서 삼거리를 만났습니다. 왼쪽 길로 들어서 봉우리 하나를 우회하면서 길이 희미해 긴가민가하다가 오른쪽 봉우리를 거쳐 가는 길과 다시 만나 안심했습니다. 조금 높아 보이는 봉우리를 왼쪽으로 우회하다 망부석이 서있는 묘지에서 잠시 쉬면서 자켓에 부착한 내피를 떼어내고 조금 더 올라가자 능선사거리가 나타났습니다. 오른쪽으로 마루금이 이어지는 능선사거리에서 왼쪽으로 지척의 거리인 운주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싸라기눈이 살짝 덮인 하얀 헬기장을 지나 소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는 해발806m의 운주산 정상에 올라서자 북쪽 멀리로 천문대가 들어선 보현산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배낭을 벗어 놓고 20분 넘게 쉰 후 자리에서 일어나 왼쪽 아래로 상안국사 길이 갈리는 능선사거리로 되돌아갔습니다.

 

 

  12시16분 421.2m봉을 넘었습니다. 능선사거리에서 북쪽으로 직진해 운주산과 비슷한 높이의 돌탑봉에 올라 낙동정맥 마루금에 복귀했습니다. 오른 쪽 멀리로 은천지저수지가 잘 보이는 돌탑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규모가 꽤 큰 영천호가 왼쪽 먼발치로 보이는 벌목지 위 능선을 걸으며 맞는 겨울바람이 엄청 매서웠습니다. 북서쪽에서 굉음을 내며 불어오는 겨울바람의 이동속도가 어느 한 순간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빨라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묘지를 지나 서쪽으로 진행하면서 완만한 길을 올라 삼각점이 박혀 있는 421.2m봉에 섰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가 오른 쪽 아래로 희미하게 길이 나있는 능선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고도차가 거의 없어 더 없이 평안할 능선 길을 한참 걸어 삼각점을 보았는데 바로 위 봉우리가 290m봉이었습니다.

 

 

 

  13시28분 블랫재에 내려섰습니다. 정오를 넘긴지 한 시간이 다 되자 시장기가 느껴져 삼각점이 세워진 능선에서 산행을 멈췄습니다. 능선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내려가 북서풍을 피할만한 곳을 찾아 점심을 들으며 20분 가까이 쉰 후 다시 능선으로 올라가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삼각점 지점에서 십 수m 올라가 다다른 290m봉에서 오른쪽으로 경사가 급한 길을 따라 하산해 블랫재에 내려서자 앞서 들른 운주산이 잘 보였습니다. 경운기라면 별 탈 없이 다닐 수 있겠다 싶은 임도 수준의 비포장 길이 지나는 블랫재에서 길 건너 산길로 들어서 된비알의 직등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블랫재에서 180m가량 고도를 높여 올라선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며 덤불길을 지나 490m봉에 올랐습니다.

 

  14시47분 550m봉을 지났습니다. 무명봉에서 북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블랫재에서 올라오는 길보다 경사가 많이 완만했습니다. 100m가량 고도를 낮추어 다다른 화령현에서 가파른 길을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자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졌습니다. 운주산을 지나 거의 산행 내내 굉음을 내온 바람이 잦아들어 평정을 되찾은 평탄한 능선 길이 모처럼 평화롭게 느껴졌습니다. 502m봉을 지나 정북 쪽으로 향하는 능선 길은 평탄하게 이어지다가 막판에 조금 경사진 길로 바뀌었습니다. 지나온 능선 길에 용도 폐기된 헬기장이 있다는데 확인하지 못한 채 표지기가 어지럽게 걸려있는 550m봉에 올라 십 수 분간 쉬었습니다. 냉기를 내뿜어 표독스럽게 느껴지는 겨울하늘을 사진 찍으면서 산신령께서는 승천하신 주님과는 달리 저 파란 하늘에 계시지 않고 우리 산에 머무시며 저 같은 산 꾼을 지켜주시리라는 믿음이 갔습니다.

 

 

 

  15시22분 한티재에 도착해 이리재에서 시작한 16구간 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왼쪽으로 601m봉이 갈리는 삼거리봉우리인 550m봉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여전히 평탄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걷기에 딱 좋았습니다. 동대구에서 19시58분에 출발하는 수원행 기차표를 끊어 놓았기에 시간이 넉넉해 급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마냥 몸이 쳐지고 발걸음도 늦어지는 듯 했습니다. 얼마 후 평탄한 길은 끝났고 이어지는 길은 제법 가파른 내리받이 길이었습니다. 묘지를 지나 곧바로 내려선 임도를 따라 오른 쪽으로 수 십 걸음을 옮겨 한티재에 도착했습니다. 옛날에는 소달구지도 넘었을 한티재 고개에서 다음 산행의 들머리를 확인한 후 왼쪽으로 내려가 31번 도로로 내려섰습니다.

 

 

 

  15시34분 감곡리버스정류장에서 7시간 반이 넘게 걸린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한티재에서 내려선 31번 도로변은 바람을 가릴 곳이 없어 금세 땀이 식었습니다. 오른 쪽 위 한티터널을 지나는 차들이 많지 않아 31번 차도는 한가했습니다. 땀이 밴 웃옷 내의를 갈아 입은 후 찻길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 감곡리정류장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으로 중리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설치한 정류장을 바람막이로 삼아 40분 가까이 버스를 기다리며 햇빛의 변화를 지켜보았습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정류장에 도착할 때는 햇빛이 비쳐 바람이 가려지는 정류장이 따뜻하다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늘이 지면서 한기가 느껴져 해가 일찍 떨어지는 산골마을에서 겨울내기가 힘든 까닭을 알 것 같았습니다. 중리를 들어갔다 나오는 버스를 잡아타고 아침에 택시를 탄 기계환승역으로 나가 포항 가는 버스로 바꿔 탔습니다.

 

 

 

  올 겨울에는 어느 겨울보다 북풍이 거세게 불 것 같습니다. 기상청의 장기예보에 따르면 올 겨울은 삼한사온이 다른 해보다 더 뚜렷하고 더 추울 것이라 합니다. 삼한사온이 더 뚜렷하고 더 춥다는 것은 여느 해보다 더 냉랭한 시베리아 기단이 일정한 시간 간격을 갖고 한반도를 찾아온다는 것이어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올 겨울이 더 춥고 더 서러울 것 같습니다.

 

 

 

   한반도의 정치기상도는 북풍의 향방을 모르고서는 제대로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엄청난 고비용을 감수하며 나라가 정보기관을 두는 것은 북풍의 변화를 추적해 미리 대처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제갈공명이 한 일을 조직화하고 시스템화 한 것입니다. 제갈공명이 혼자서 한 일을 국가조직이 대신 하니 자연 비용은 많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도 국가정보기관을 두고 돈을 많이 쓴다고 질타하지 않습니다. 이번 북에서 일어난 김씨 왕조의 커다란 변화를 사후 공식발표를 듣고서야 알았다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동네북이 되었다고 억울해 할 일이 아닙니다. 하루 빨리 조직을 점검하고 추슬러 더 큰 북풍의 조짐을 미리 알아채고 대처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바람의 방향을 예측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김수영의 시구(詩句)처럼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민첩성도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