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종주기14
*정맥구간:마치재-어림산-시티재
*산행일자:2011. 11. 24일(목)
*소재지 :경북경주/영천
*산높이 :어림산513m
*산행코스:마치재-어림산-서낭당고개-382.9m봉-시티재
*산행시간:10시34분-15시54분(5시간20분)
*동행 :나홀로
낙동정맥 종주 길에 잠시 멈춰 서서 새파란 하늘을 사진 찍었습니다. 혹시라도 하느님이 하늘에 계시다면 틀림없이 카메라에 찍힐 것이라 생각한 것은 구름 한 점 없어 방정맞도록 새파란 하늘에 하느님을 숨겨줄 어느 무엇도 보이지 않아서였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제 카메라는 하느님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아예 하늘에 하느님이 안계셨거나 카메라로 잡아낼 수 없을 만큼 아주 먼 곳에 계셔 그러했을 것입니다. 무슨 전쟁이라도 났나 싶을 정도로 굉음을 내며 거칠게 움직이는 바람의 실체를 잡아보고자 크게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사진 찍었습니다. 바람이 움직이는 증거가 너무 확실해 나무를 뒤흔드는 바람의 모습을 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허탕이었습니다.
존재하는 것이 다 보이는 것이 아님을 두 컷의 사진에서 확인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바람의 모습이 어떠한 가를 본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바람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을 저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존재를 느끼게 하는 것이 시각만이 아니고 오감의 나머지 감각 넷이 더 있기 때문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오감을 통해 느끼는 직관 외에 이성을 통해 합리적으로 추론하는 방법으로도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카메라가 새파란 하늘에서 하느님을 잡아내지 못했다고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동양의 격언이나 “To see is to believe"라는 서양의 금언을 아무런 의심 없이 금과옥조로 믿어온 데서 오는 오류일지도 모릅니다. 또 사람의 오관을 모두 동원해 하느님을 찾아보았지만 하느님을 보았다는 사람이 아직 없는 것으로 보아 하느님은 영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하느님은 바람보다 훨씬 까다로워 존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기에, 하느님의 실재 여부는 과학의 영역이 아닌 종교에서 다룰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침 일찍 산본 집을 나섰습니다. 하루 전에 내려가 경주에서 일박한 후 새벽같이 서두르면 미룡고개까지 갈 수 있었겠지만 기말시험이 얼마 안남아 그리하지 못하고 아침에 광명역에서 경주 가는 KTX에 올랐습니다. 신경주역에 도착해 곧바로 출발지인 마티재로 가지 않고 이제껏 가보지 못한 보문호를 찾아간 것은 이번이 낙동정맥 종주 길에 경주를 들르는 마지막기회였기 때문입니다. 드센 바람에 거칠게 물결이 이는 보문호의 그림 같은 정경을 카메라에 담은 후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에 올랐다가 경주역에서 택시로 바꿔 타 이번산행의 출발지인 마치재로 향했습니다.
10시34분 마치재고개를 출발했습니다. 경북 영천과 경주를 가름하는 마치재에서 하차하자마자 곧바로 오른쪽 산길로 올라섰습니다. 10분 남짓 걸어 바람을 피할 만 한 곳에서 잠시 멈춰 서서 스마트폰을 배낭에 넣고 스틱을 꺼내 산행채비를 한 후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그리 가파르지 않은 능선을 따라 올랐습니다. 어느새 겨울이 왔다 싶었던 것은 영천 쪽에서 불어오는 삭풍이 매서웠고 공기 또한 냉랭해 한기가 감지되어서였습니다. 해발400m 대의 봉우리에 오르자 오른 쪽 아래로 제법 규모가 큰 남사저수지가 보였습니다.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던 명감나무가 뾰족한 가시로 양팔을 찔러대지만 않았다면 더할 수 없이 편안한 능선 길을 걸으며 뭔가 모르게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11시34분 해발510.2m의 어림산에 올라섰습니다. 400m대의 밋밋한 봉우리 세 개를 넘는 동안 지도에 나오는 490m봉을 지났을 텐데 어느 봉우리인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어림산 정상에 이르기 얼마 전 낙엽들이 넓은 땅바닥을 덮은 묘지 앞에 이르렀습니다. 묻힌 이의 관직이 묘비에 새겨진 것은 보았으나 효절을 기리는 문구가 들어간 것은 이번에 처음 보았는데 비문에 새겨진 “朝鮮孝節閔篙金公之墓”만으로는 길이 기릴 효절이 어떤 내용인지 확인할 수 없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삼각점이 박혀있는 어림산에 올라 고도를 보정한 후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낙엽이 길을 덮은 비알 길을 조심해서 내려갔습니다.
12시37분 오른쪽 아래로 대곡지 길이 갈리는 서낭당고개마루를 지났습니다. 어림산 정상에서 고도를 2백m넘게 낮추어 다다른 묘지위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송전탑을 지나 240m대까지 고도를 낮추었다가 다시 올라 300m대의 무명봉에 올랐습니다. 방금 전에 오른 어림산 정상봉의 의젓한 모습을 사진 찍은 후 왼쪽으로 진행했습니다. 경사가 급한 길을 걸어 내려가 서낭당고개에 이르러 바람이 잦아들자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서낭당고개에서 10분 정도 올라가 다다른 잔디가 완전히 벗겨진 봉분 앞에서 20분 남짓 쉬면서 점심을 들은 후 13시10분에 오후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13시57분 십자안부를 지났습니다. 발가벗은 묘지를 출발해 200m대의 봉우리 몇 개를 오르내렸습니다. 얼마 후 철근 기둥을 세워 철조망을 친 울타리를 만나 그 오른 쪽으로 바짝 붙어 걸었습니다. 해발 250m대의 능선에 올라 왼쪽으로 확 꺾어 진행하는 중 철조망울타리가 끝났다 했는데 이내 다시 나타나 15분 가까이 울타리 옆길을 더 걸었습니다. 왼쪽 앞으로 고경저수지를 보면서 내려가 안부사거리에 이르렀습니다. 탱크가 지날 때보다 더 큰 소리를 내는 바람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아 산 전체가 윙윙거렸습니다.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은 왼쪽 아래의 고경저수지가 가까워지자 수면에 녹조가 끼어서인지 바람에 찰랑이는 물결이 보이지 않다가 어느 한 순간 햇빛이 하얗게 반사되는 것이 잘 보였습니다.
14시54분 382.9m봉을 올랐습니다. 십자안부에서 비탈길을 오르다가 왼쪽 멀리 자리한 대구의 팔공산(?)을 사진 찍었습니다. 매섭게 불어대는 바람의 기세에 눌린 구름이 하루 종일 얼굴을 보이지 않아 하늘이 무섭도록 새파랬습니다. 날씨가 하도 깔끔해 나무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과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담아보고자 했으나 카메라에 잡힌 것은 하느님과 바람이 아니고 나무들과 하늘이어서 적지 아니 실망했습니다. 밋밋한 능선을 오르내리다 이번 산행 마지막으로 가파르게 고도를 100m가량 높여 382.9m봉에 오르자 돌무더기 가운데 박혀있는 삼각점이 보였습니다. 382.9m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조금 내려가 바람을 피할 만한 곳에서 15분가량 쉬면서 사과를 꺼내 먹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4-5분간 걸어 오른 봉우리에 “호국봉”이라는 표지목이 세워져 있었는데 삼각점이 보이지 않은 것은 382.9m봉과 호국봉이 같은 봉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5시54분 시티재에 도착해 14구간 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호국봉에서 시티재로 하산하는 중 막 베어낸 참나무그루터기를 여러 개 보았고 그중 한 개는 베어낸 단면을 사진 찍어왔습니다. 견실해 보이는 참나무를 자르는 것이 시름병 때문이라면 다음에 취할 조치는 잘라낸 나무들을 모아 비닐로 밀봉해 시름병이 전파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비교적 넓은 길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가 SK기지국을 지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시티재로 내려가 14구간 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차들이 쌩쌩 달려 아무래도 중앙분리대를 넘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 고갯마루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내려가 길을 건넜습니다. 꽤 넓은 주차장이 텅텅 빈 안강휴게소에서 따끈한 커피 한잔을 사든 후 28번 도로를 따라 영천 쪽으로 내려가 고강면 청정1리 버스정류장 앞에서 17시20분 발 영천행 시내버스에 올랐습니다.
얼마 전 국회의 한 청문회에서 어느 한 분이 천안함 피침사건을 두고 정부에서 북한의 소행이라 발표를 했으니 믿기는 하지만 직접 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 없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분도 실체가 보이지 않아 사진 찍기에 실패한 바람의 실재를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분께서도 시각만이 존재를 느끼는 감각기관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나머지 감각기관을 동원해 얻은 지식을 갖고 합리적으로 추론해 바람의 존재를 확인했을 것입니다. 천안함이 무슨 이유로 폭파되었는가를 알아내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를 따지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과학의 문제입니다. 시각만이 아니고 나머지 감각을 모두 동원해 최신의 정밀한 기구를 갖고 조사한다면 얼마든지 합리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기에, 우리 정부는 그리했고 그 결과를 발표했던 것입니다.
아래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는 신라의 경덕왕 때 승려 월명사가 지은 노래입니다.
죽고 사는 길이 예 있으매 저히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하고 가는 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다이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누나
아으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내 도닦아 기다리리다
죽은 누이를 위해 재를 올리며 이 노래를 불렀더니 홀연히 바람이 불어, 노잣돈으로 쓰이는 지전을 서쪽 극락세계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합니다. 천이백여 년 전 바람을 대하는 스님의 애절함이 이러했는데 천안함피침사건의 진상을 따지는 일에 바람의 존재를 들먹인다는 것이 죄송스러워 이만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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