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종주기13
*정맥구간:아화리굴다리-관산-마치재
*산행일자:2011. 11. 4일(금)
*소재지 :경북경주/영천
*산높이 :만불산275m, 관산394m, 남사봉470m
*산행코스:아화리굴다리-아화리-아화고개-만불산-관산-한무재
-남사봉-마치재-남사2리마을회관
*산행시간:7시38분-17시33분(9시간55분)
*동행 :나홀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멀쩡한 정맥 길을 놔두고 쉬운 길로 우회한 것이 마음에 걸려 한 구간을 잘 종주하고도 기분이 영 개운치 않습니다. 두 해전 한남앵자지맥을 종주할 때도 이번 정도 거리의 짧은 구간을 마루금에서 벗어나 좋은 길로 걸은 일이 있습니다만, 그때보다 훨씬 더 꺼림칙한 것은 먼 길을 내려와 걷는 정맥종주가 가까운 지역의 지맥종주보다 더 무겁게 느껴져서일 것입니다.
아화리에서 지난번에 통과한 경부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로 돌아갈까 아니면 곧바로 아화고개로 올라갈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이번에 목적지인 마치재까지 가지 못하면 중간에 차가 다니지 않는 곳으로 하산해야 하고 다음에 내려온 길을 다시 찾아가 올라가야하기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비용도 훨씬 더 들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다음번에도 버스가 다니는 시티재까지 진행할 수 없어 시간과 비용이 추가되는 불편함이 이어지게 됩니다. 아화리에서 굴다리로 돌아가 아화고개까지 마루금을 제대로 이어가려면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은 과수원 안을 지날 수밖에 없는데 아침부터 밭주인과 승강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고 시간도 넉넉지 않아 이번 한 번만 눈 딱 감고 마루금에서 벗어나 굴다리-아화리-아화고개 코스로 우회하기로 했습니다. 아화리에서 아화고개로 직행해 서둘러 산행한 결과 저녁 5시가 채 안되어 목적지인 마치재에 다다랐습니다.
한 산의 정상을 목표로 정해놓고 오르는 점 산행에서는 조금 편안한 길로 우회해 정상을 오른다 해서 말들을 일이 아닙니다만, 대간이나 정맥을 이어가는 종주산행에서는 마루금이라는 선을 벗어나 산행하는 것은 분명 떳떳치 못한 일입니다. 이번의 마루금 우회로 한 두 해 후 낙동정맥 종주산행을 성공리에 마친다 해도 다른 정맥을 종주했을 때만큼 명쾌하지 못하고 내내 꺼림칙할 것이라 생각하자 밤길을 걷더라도 굴다리로 돌아가 마루금을 제대로 이어갈 껄 하는 후회도 됐습니다.
아침7시38분 아화리를 출발했습니다. 경주역전에서 7시10분 경 아화리로 가는 305번 버스에 올랐습니다. 건천을 거쳐 넓은 논 뜰을 지나 하차한 아화리에서 35번도로를 따라 아화고개로 향했습니다. 애기지 저수지를 조금 지나 오른 쪽 굴다리를 통과한 다음 왼쪽으로 올라가 민속공예 안내판이 서 있는 차도 옆에서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묘지를 지나 곧바로 올라선 능선에서 마루금에 복귀해 북진했습니다. 한 여름에는 뚫고나가기가 쉽지 않았을 풀숲 길을 지나 큰 소리를 내며 가동 중인 공장 뒷길을 걸었습니다. 얼마 후 다다른 임도삼거리에서 가을이슬을 듬뿍 머금은 노란 들국화의 탐스러운 꽃송이들을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8시59분 해발279m의 만불산에 이르렀습니다. 임도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직진하다 3기의 묘지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자 지난 번 종주 때 멀리서 사진 찍은 커다란 불상의 뒷모습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불상이 가장 많은 사찰로 알려진 경북 영천의 만불사에 자리한 이 입상은 아미타대불로 그 높이가 무려 33m나 되어 먼발치서도 그 위용에 중압감이 느껴졌습니다. 15분을 더 걸어 넓은 공터에 다다랐습니다. 미니 축구장만한 공터 한 끝에 자리한 석탑은 만불사의 진신사리탑으로 1993년 스리랑카대통령에게서 기증받아 만불사로 이운해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이 탑 안에 모셨다 합니다. 석탑 뒷길로 내려가 시꺼먼 솔밭을 지나는 동안 잠에서 막 깨어나 인사를 나누는 양 쉼 없이 재잘대는 작은 새들에게서 아침의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내려선 시멘트 길 삼거리인 애기재에서 오른 쪽 길로 진행해 목장 입구로 다가갔으나, 구제역예방을 위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안으로 난 제 길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목장 앞에서 영축산 방향으로 난 오른쪽 시멘트 길을 따라가다 산불감시초소 쪽으로 가서 목초지를 돌아 왼쪽의 능선 길로 복귀해 다시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경운기가 다닐만한 평탄한 임도를 따라 계속 북진하다 8기의 봉분이 가지런히 자리한 밀양박씨 묘지 앞에 이르러 이번 산행 처음으로 십 수 분간 휴식을 취했습니다.
11시26분 해발394m의 관산을 올랐습니다. 밀양박씨 묘지 앞에서 쉬는 동안 새로 장만한 스마트폰의 카카오톡을 통해 국문과학형들과 인사를 나눈 후 10시반 경 자리에서 일어나 관산으로 향했습니다. 평탄한 길을 따라 얼마간 걷다가 3백m대의 봉우리 하나를 넘어 올라선 322m봉에서 왼쪽으로 진행했습니다. 100m 가깝게 고도차가 나는 된비알 길을 올라 묘지 허리에 박혀 있는 삼각점과 나무에 걸려 있는 이름표를 보고 이 봉우리가 관산임을 확인했습니다. 올 가을도 어느새 정점에 이르렀음을 일러주는 진노랑 단풍잎들을 정성스레 카메라에 옮겨 놓은 후 관산 정상을 출발했습니다. 북서쪽으로 짧은 시간 직진하다가 오른 쪽으로 꺾어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안부를 지나 올라선 야트막한 262m봉을 넘어 12시10분경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외골재에 도착해 점심을 들었는데, 한 낮의 기온이 20도를 넘어 이른 아침 한때 느꼈던 냉기가 전혀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14시6분 한무당재에 도착했습니다. 20분 남짓 걸린 점심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외골재를 출발해 시계방향으로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전면이 탁 트인 묘지에서 잠시 멈춰 이름그대로 점잖아 보이는 관산의 의젓한 자태를 카메라에 담은 후 북서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여러 곳의 묘지를 지나고 몇 개의 봉우리를 왼쪽으로 우회해 다다른 해발300m대의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쪽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 316.4m봉에 이르렀습니다. 활엽수 나뭇잎이 떨어져 땅바닥을 뒤덮은 316.4m봉에 세워진 삼각점을 뒤로하고 오른 쪽으로 내려가 시멘트 포장도로인 심곡로가 지나는 한무당재에 다다랐습니다. 점심시간을 빼면 관산에서 여기 한무당재까지 2시간 반이 채 안 걸려 이 정도 속도라면 해가 지기 전에 마치재까지 진출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싶어 10분간 쉬면서 숨을 고른 후 길 건너 시멘트블록계단으로 올라섰습니다. 한무당재에서 동쪽으로 조금 올라 다다른 267m봉에서부터 남사봉까지의 정맥 길은 이제까지와는 반대방향인 남쪽으로 뻗어나갔습니다.
16시46분 경주시와 영천시를 가르는 마치재에 도착해 13번째 구간종주를 마쳤습니다. 267m봉에서 시작된 평탄하고 넓은 길을 얼마간 걸어 왼쪽 옆으로 넓은 운동장과 집 한 채가 있는 능선을 지나는 중, 개 두 마리가 제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능선에서 반대쪽으로 내려가 우회해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이제 성공적으로 개를 따돌렸다 했는데 다시 올라설 고갯마루에 개들이 딱 버티고 서있어 제게 덤벼들 듯이 지저대는 것을 보고 아연 긴장했습니다. 달리 피해갈 길도 없어 일전을 벌일 각오로 한껏 소리를 크게 지르고 스틱 2개를 휘두르며 개를 향해 돌진했더니 두 마리 모두 꼬리를 내리고 집 쪽으로 물러나 위기(?)를 면했습니다. 고갯마루에서 남쪽으로 올라가 15시38분에 해발471m의 남사봉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고 10분 넘게 쉬었습니다. 남사봉에서 동쪽으로 조금 내려가 다다른 넓은 안부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진행했습니다. 봉우리 하나를 넘어 내려선 안부에서 잠시 멈춰선 것은, 집에 두고 온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느라 끄지를 못하고 켜놓았더니 국문과 학형들이 카카오톡으로 소식을 물어와 무사히 산행하고 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둠의 기색이 조금씩 감지되고 그에 따라 제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북동쪽으로 진행해 올라선 318m봉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 904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마치재에 이르렀습니다. 다음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한 후 고갯마루에서 오른 쪽 아래에 위치한 남사리로 향했습니다.
17시33분 남사2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마치재 고갯마루에서 동쪽으로 아스팔트길을 따라 조금 걷다가 오른 쪽으로 산길이 보여 이 길로 들어섰습니다. 저 아래 남사리 마을에서 마치재로 올라오는 샛길인 것 같은 이 길을 따라 부지런히 걸어 내려갔습니다. 중간에 길이 분명치 않아 잠시 머뭇거린 것을 빼고는 쉬지 않고 내달려 생각보다 일찍 마을길로 내려섰습니다. 묘지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 바로 아래 집 앞길로 내려가 아주머니 한 분에 버스정류장 가는 길을 확인했습니다. 국문과학형들에 하산을 끝냈음을 알리자 이제 안심이라며 잘 올라오라는 메시지를 주어 고마웟습니다. 산 아래 외딴 집들의 공통점은 개들을 여러 마리 기른다는 것(?)인데 이집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10마리는 족히 될 것 같은 개들이 저를 보고 죽어라고 짖어댔습니다. 시골 길을 걸어 남사2리 마을 회관 앞에 다다르자 낮 시간 내내 산길을 밝게 비추었던 태양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졌습니다. 50분 가까이 기다려 18시20분에 남사리 종점을 출발하는 230번 경주행 시내버스에 올라 깜깜한 시골의 밤을 뚫고 내달렸습니다.
아침에 버스에서 내린 아화리에서 굴다리로 돌아가 마루금을 제대로 이어갔다면 해떨어지기 전에 마치재에 도착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 길을 재촉하다가 중간에 길이라도 잘 못 들었다면 별 수 없이 한무당재에서 산행을 멈추어야 했을 것입니다. 아화리에서 곧바로 아화고개로 갔기에 마치재에 넉넉하게 도착할 수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아침의 아화고개 직행 결정은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남들 다가는 길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은 낙동정맥 종주를 마치고서도 제 가슴에 묻어두고자 합니다. 저는 완벽주의자가 못되어 더러더러 대강 마친 것이 이번 뿐이 아닙니다. 방송대 중간시험의 서술식 문제도 제가 완벽하게 알아서 쓴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충 아는 대로 때로는 아는 척하며 답안지를 채운 일도 여러 번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보다 완벽한 사람 들 앞에서면 주눅이 들곤 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누구 앞에서 저 잘났다고 목에 힘을 주는 일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겸손해서가 아니고 망신당할까 두려워서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러는 엉성하게 마쳐 부끄러운 일면을 갖고 사는 것도 괜찮다 싶기도 합니다. 제가 항상 완벽하다면 누가 저를 인간적으로 대하겠습니까? 제게도 부끄러운 일면이 있기에 남들에 큰 소리 치지 않고 공손할 수 있으며 그래서 남들이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저를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내 사전에는 그런 일이 절대 없다”며 큰 소리 치는 분들도 만납니다. 너무 확신에 차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누구 한 사람 감히 "그게 아닌데요"하고 이의를 달지 못합니다. 누구든 뻥뻥 치는 큰 소리가 흰소리가 아니 되려면 그만큼 완벽해야 하는 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항상 긴장해야 하고 완벽하게 이해하고 행해야 하기에 말입니다.
낙동정맥 종주를 마친 후 누가 제게 물어오면 어느 어느 구간은 얌체 짓을 해 우회 길로 돌아갔다고 이실직고할 뜻입니다. 그런 구차한 답이라도 할 수 있으려면 부득이한 경우 우회를 해서라도 낙동정맥 종주산행을 마쳐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고 마음 편히 이런 글을 쓸 수 있나 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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