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낙동정맥 종주기

낙동정맥 종주기19(통점재-질마재-피나무재)

시인마뇽 2012. 5. 7. 11:47

                                                      낙동정맥 종주기19

 

 

                        *정맥구간:통점재-질마재-피나무재

                        *산행일자:2012. 4. 23일(월)

                        *소재지   :경북청송/포항

                        *산높이   :유리산(?)806m

                        *산행코스:하옥리갈림길삼거리-통점재-806m봉-질마재-622m봉-피나무재

                        *산행시간:7시40분-18시3분(10시간23분)

                        *동행      :나홀로

 

 

  넉 달 만에 다시 나선 낙동정맥 종주산행을 매끈하게 마친 것은 청송에 사시는 한 지인이 도와준 덕분입니다. 청송의 현동에 사는 얼음골님은 대구참사랑산악회와 서울 근교 산을 합동산행 할 때 한두 번 뵌 적이 있는 분인데, 이분께서 참사랑산악회 권재형님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여 제게 교통편을 제공해주었습니다. 평일 날 바쁜 중에도 짬을 내어 차를 몰고 와 피나무재에서 저를 기다렸다가 청송터미널까지 태워주어 당일로 상경할 수 있었습니다. 10시간 넘게 걸은 제가 시간이 없어 거를 뻔한 저녁을 해결한 것도 얼음골님께서 준비해온 김밥과 빵 덕분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치고 올라가는 낙동정맥 종주길이 2004년에 시작한 1대간 9정맥 종주의 마무리 길입니다. 한북정맥에서 시작해 여기 낙동정맥 종주 길에 오르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2005년 한남정맥을 종주할 때는 두 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요물님께서 “계양산-경인고속도로 위 육교” 구간을 동행해주었고, 비루고개에서 한참 동안 저를 기다린 북한산님으로부터 저녁식사를 대접받았습니다.  2006년 금북정맥을 종주할 때도 천안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21번국도-유왕골고개”구간을 같이 해준 분은 천안에 사시는 봉봉 부부님과 한남정맥을 한나절 같이 산행한 인천의 요물님이었습니다. 2007년 호남정맥을 종주할 때도 제가 지나가는 지역인 순천의 한분에게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밤차 타고 순천으로 내려가 들머리 가까운 곳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곤 했던 저를 태워 들머리까지 데려다준 분은 깜상님입니다. 순천역에서 무남이재까지 차를 태워준 것만으로도 모자라 저녁때는 날머리에서 기다렸다가 순천역까지 태워주셨습니다.

 

 

 

  1대간9정맥을 종주하며 여러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은 이밖에도 꽤 많습니다. 제가 장황하리만치 위 몇 분들의 도움을 상세하게 적은 것은 이분들은 사전에 전혀 저를 한 번도 보지 못했으면서 저를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고마우신 이분들 모두 산행사이트인 “한국의 산하”에서 산행기를 올리면서 알게 된 분들로 현장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뵈었습니다. 공자께서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듯이 산을 오르내리는 분들은 누구랄 것 없이 모두 인자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주 몇 백만 명 씩 모여드는 산에서 강력사고가 나도 엄청 많이 났을 텐데 이제껏 그런 뉴스를 들어보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이분들이 저를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도와준 것은 전적으로 이분들의 산에 대한 열정과 믿음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산을 매개로 알게 된 분들이기에 저 또한 그분들의 조력을 고맙게 받아들였습니다.

 

 

 

  아침7시40분 상옥리주유소 앞 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전날 오전 방송대의 중간시험이 있어, 약속된 대구 팀과의 가야산 산행을 같이 하지 못하고 오후에 혼자서 대구로 내려갔습니다. 합동산행에 참여한 4명의 서울 팀과 대구 참사랑 산악회원들을 시내에서 만나 저녁식사를 한 후 포항으로 옮겨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서 새벽 5시40분 경 500번 버스에 올라 청하로 향했습니다. 아침 6시20분경에 도착한 청하는 바다가 가까워서인지 바람이 찼습니다. 청하환승센터에서 50분을 기다렸다가 7시10분에 올라 탄 하옥리 행 버스는 해발6백m가 넘는 샘재를 넘자마자 잠시 멈춰 경북수목원에서 일하는 분들을 내려놓고 상옥리로 내려갔습니다. 상옥리는 지난 1월 낙동정맥 종주를 마치고 영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2시간 가까이 머무른 곳이어서 눈에 익었습니다. 오른 쪽으로 하옥리 길이 갈리는 주유소 앞 삼거리에서 하차해 포항시와 청송군을 경계 짓는 통점재로 향했습니다.

 

 

  8시21분 통점재에서 낙동정맥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주유소 앞 삼거리를 출발한지 30분이 지나 도착한 통점재에서 10분가량 쉰 후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 703m봉에 이르기까지 반시간 동안 오싹한 느낌이 들 정도로 냉랭한 바람이 엄청 세게 불었습니다. 아직 연초록 나뭇잎이 돋아나지 않아 양지꽃과 진달래가 피지 않았다면 봄의 기미를 찾아보기 힘든 703m봉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내 왼쪽으로 조금 휘어 완만한 길을 따라 오르다가 오른 쪽으로 급하게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간장현으로 보이는 묘지 바로 아래 안부로 내려선 시각이 9시26분이었습니다. 고도차가 크지 않은 능선을 따라 시계반대방향으로 진행하면서 제 세상 만난 듯 여러 송이들이 한 곳에 모여 활짝 꽃망울을 터뜨린 핀 양지꽃에 눈인사를 했습니다.

 

 

 

  10시20분 해발806m의 헬기장에 올라섰습니다. 고도차가 별로 없는 완만한 길은 730m봉을 얼마 앞두고 경사가 조금 가팔라졌습니다. 730m봉을 지나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걸으며 길가에 소담스럽게피어 있는 양지꽃과 올 들어 처음 만나본 바람꽃(?)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통점재 출발 2시간이 지나 해발806m의 헬기장에 오르자 “유리산 806m"의 표지기가 걸려있었습니다. 주위의 나무들을 베어내 그늘이 지지 않은 넓은 공터의 헬기장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가며 10분여 쉬었습니다. 오른 쪽으로 조금 내려갔다가 올라선 785m봉에 삼각점이 박혀 있어, 30m가량 차이가 나는 고도계의 높이를 보정했습니다.

 

 

 

  11시58분 670m봉 오른 쪽 아래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785m봉을 출발해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걸으며 물푸레나무와 서어나무 군락지를 지났습니다. 주 수종인 참나무 가지에서 아직 잎이 돋아나지 않아 온 산이 칙칙해보였지만 바람에 살랑거리는 양지꽃과 바람꽃이 함박웃음을 웃고 있어 절로 눈길이 갔습니다. 흔적만 보이는 헬기장(?)을 지나고 왼쪽 옆으로 너덜지대를 끼고 걸어 670m봉(?)에 조금 못 미쳐서 오른쪽으로 내려섰습니다. 이내 다다른 삼거리에서 양쪽 길 모두 표지기가 붙어 있어 어느 길이 맞는지 확인하느라 7-8분을 까먹었습니다. 왼쪽 아래로 갈리는 길로 들어서 20분가량 진행하다 능선 길에서 20분여 점심을 들면서 이번 산행을 어디서 끝낼까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산행을 시작할 때만해도 이번 산행은 질고개에서 끝내고 다음 날 피나무고개를 지나 주산재까지 진출할 뜻이었는데 예상보다 산행이 순조로워 해 떨어지기 전에 피나무재까지 진출할 수 있겠다 싶어지자 피나무재까지 가보자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일단 14시 이전에 질고개에 이르면 피나무재까지 진출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13시56분 질고개를 지났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오후 산행을 이어간 것은 12시45분부터였습니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가며 조그마한 늪(?)을 지나고 묘지를 지나 질고개가 멀지 않은 산불감시초소 앞에 다다랐습니다. 초소가 들어선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질고개로 내려선 시각이 4분전 14시여서 이번 산행의 목적지를 여기 질고개에서 피나무재로 바꿨습니다. 930번 도로가 지나는 질고개로 내려서자 산불감시원이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오토바이 한 대가 세워져 있어 혹시라도 입산을 막을지 몰라 후다닥 길을 건너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북서쪽으로 쉬지 않고 20분 남짓 내달아 봉분을 파란 망으로 씌운 묘지 를 지났습니다. 간벌을 해 나무들이 훤칠해 보이는 능선을 걸어 오르다 14시 40분경에 올라선 밋밋한 봉우리에서 잠시 쉬며 여기 청송의 현동에 사시는 얼음골님에 일정변경을 알려드렸습니다.

 

 

 

  15시45분 헬기장이 들어선 622.7m봉에 도착했습니다. 얼음골님에 18시30분 안에 피나무재에 다다를 것 같다고 도착예정시간을 말씀드리고나자   느긋하게 산행하다가 늦어지면 야단이겠다 싶어 산행을 서둘렀습니다. 오름길 곳곳에 자리한 진달래가 연분홍 꽃을 피우지 않았다면 수피가 회색인 참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어 능선길이 마냥 칙칙할 뻔 했습니다. 아직 나뭇잎이 돋아나지 않아 몸체를 가릴 수 없어서인지 새들의 재잘거림도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삼각점이 세워진 622.7m봉에 다다라 얼마간 북진하자 좌 사면에 조림한 듯 정연하게 들어선 자작나무 숲이 보였습니다. 자작나무로 수종을 바꿔 조림하는 것은 대량으로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서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수피가 희어 칙칙한 산이 환해보이는 것만으로도 자작나무 숲을 조성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3년 여름 백두산 분화구 위 능선을 종주하고자 일제강점기에 채벌을 목적으로 낸 자작나무 숲길을 2시간여 달린 적이 있습니다. 장백임해로 명명된 백두산의 거대한 숲속에서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희뿌연 나무들을 보고  자작나무는 과연 우리민족의 신단수다 했습니다. 

 

 

  17시21분 표지목이 서있는 임도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자작나무 숲을 지나 올라선 능선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진행하다 왼쪽 아래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길을 건너 20-30m가량 걸어 올라선 능선에서 오른 쪽으로 진행하다 곧바로 봉우리 하나를 오른 쪽 으로 우회해 무포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으로 꺾어 아래로 내려가다가 왠지 모르게 찜찜해 삼거리로 되돌아갔습니다. 꼼꼼하게 산행기와 지도를 점검한 후 오른 쪽 길이 맞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내려갔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임도가 보이는 안부에서 다시 올라선 무명봉에서 왼쪽으로 진행해 임도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부동이전1.21Km/부동라리1.7Km/부남화장4.8Km”의 표지목이 서 있는 임도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옮겨 산길로 올라섰습니다.

 

 

  18시3분 피나무재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임도삼거리에서  산길로 조금 올라가 묘지를 지났습니다. 청송터미널까지 저를 태워주고자 피나무재에 먼저 와 기다리는 얼음골님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고 전화를 걸어 현재의 위치를 알린 후 18시 조금 넘어 피나무재에 도착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계속 서진하다 550m봉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피나무재로 내려가 얼음골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다음 산행의 들머리를 눈여겨본 후 차에 올라 청송버스터미널로 이동하면서 얼음골님이 챙겨온 김밥과 빵, 그리고 음료를 들어 요기를 했습니다. 청송터미널에 도착하자 동서울터미널 행 막차가 이미 끊어져 버스를 타고 진보로 옮겨 안동 가는 버스로 갈아탔습니다. 20시10분 발 강남행 고속버스를 타는 것으로 오랜만의 종주 길 나들이를  마무리졌습니다.  

 

 

  정맥을 종주하며 고마워할 분들을 계속 만나 이 세상 참으로 살 만하다 싶습니다. 각종 매체가 쏟아내는 뉴스들은 사람이 개를 물어야 대서특필되는 속성을 갖고 있어 이런 뉴스들만 접하고 이 세상이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흥분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 세상을 끌어가는 사람들은 뉴스 속의 주인공들이 아니고 산을 사랑하는 분들처럼 서로를 도와주고 또 도움 받으며 살아가는 선남선녀들입니다. 6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이분들의 도움에 감사하며 고마움의 탑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얼음골님 덕분에 고마움의 탑이 더 높아졌습니다. 얼음골님과 권재형님에 고마움을 표하며 종주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