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낙동정맥 종주기

낙동정맥 종주기21(주산재-먹구등-황장재)

시인마뇽 2012. 5. 14. 18:01

                                                        낙동정맥 종주기21 

 

                                      *정맥구간:주산재-먹구동-황산재

                                      *산행일자:2012. 5. 10일(목)

                                      *소재지   :경북 청송/영덕

                                      *산높이   :먹구동846m

                                      *산행코스:양설령-주산재-왕거암갈림길-느즈매기재-먹구동

                                                     -대둔산갈림길-황장재-괴정2리버스정류장

                                      *산행시간:5시-17시48분(12시간48분)

                                      *동행      :나홀로

 

 

  정맥을 종주하며 개미들을 만나보기는 꽤 오랜만입니다. 4년 전 호남정맥의 불재-경각산-슬치 구간을 종주할 때 에코브리지 길 위에서 개미떼들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땡볕 더위에 새까맣게 모여들어 원형을 이룬 개미들을 보고 사진을 찍고 그들의 행태를 관찰한 소감을 산행기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번 낙동정맥의 주산재-먹구등-황장재 구간을 종주하며 만난 개미들은 눈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몇 마리 되지 않았습니다. 4년 전 길 위에 새까맣게 모여든 개미들을 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시위에 참여하려 시청 앞 광장에 모여든 군중들이 생각났는데, 이번에 만나본 몇 마리의 개미들은 시위를 끝내고 일터로 돌아가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직장인들을 연상시켰습니다.

 

 

  커다란 소나무의 두 줄기 밑동이 만나는 움푹 들어간 곳이 개미집인 것 같았습니다. 움푹 들어간 곳 앞에는 개미들이 나무를 갉아 만들었을 톱밥모양의 소나무 속살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었습니다. 물론 톱밥보다 작고 정교한 소나무 속살을 저 정도로 쌓아놓을 정도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소나무 밑동이 많이 비어있겠다 싶었습니다. 톱밥 위를 나다니는 몇 마리의 개미들은 집을 지키는 개미들일 것인데 참으로 여유로워보였습니다. 이들보다 훨씬 많은 일개미들은 밖으로 일 나갔을 것입니다. 이들의 지도자인 여왕개미(?)는 소나무 밑동에 숨겨진 엄청 큰 거실에서 머물고 있을 것입니다. 앞에 쌓인 톱밥모양의 속살을 보아 밑동 속 개미집은 유사시 일개미들을 모두 불러들여 대피해도 충분하겠다 싶었습니다.

 

 

 

  저 정도로 살을 에어냈으면 송진이라도 뿜어내 개미들의 접근을 막을 수 있었을 터인데 어인 일인지 소나무가 개미들에 저항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떨어져나간 살점들은 개미집 앞에 차곡차곡 쌓여 있고 집지키는 개미들은 그 위에서 한가하게 놀고 있는데도 소나무가 분노한 징표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자기 살을 깎아 개미들에 집터를 내준 것이 소나무의 자의였음을 일러주는 것입니다. 저 정도쯤이야 눈 하나 까딱 안 할 만큼 소나무가 거목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래도 집터를 내주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인데 역시 소나무는 위대했습니다. 개미들도 소나무의 관대함에 탄복했을 것입니다.

 

 

  새벽5시에 양설령을 출발했습니다. 산행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캄캄해서 주산지입구 민박집을 나섰습니다. 15천원을 내고 택시로 이동해 양설령에 도착한 시각은 4시50분경으로 먼동이 트기 시작해 사방이 훤해오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양설령에서 낙동정맥의 주산재까지 캄캄한 밤을 뚫고 진행한 것은 아니지만, 숲속은 여전히 어두워 헤드랜턴을 켜야 했습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장대한 광경의 일출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안개가 자욱 끼어 모처럼의 좋은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산행 시작 거의 반시간 만에 올라선 무명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주산재에 이른 시각이 5시40분이었습니다.

 

 

  5시45분 쓰러진 나무줄기가 길을 막고 있는 주산재에서 21번째 낙동정맥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주산재 바로 위 625m봉을 왼쪽으로 에돌아 복귀한 능선을 따라 북진하면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가파른 길을 다시 올랐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고 길이 희미해 표지기가 크게 도움 된 능선을 따라 올라선 무명봉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는 중 바람이 세게 불어 냉기가 느껴졌습니다. 주산재 출발 1시간 13분 후 “처사 경주이공”의 묘지를 거쳐 만난 봉우리를 왼쪽으로 우회하면서 나무 사이를 초록색으로 물들인 풀밭을 지났습니다. 7시13분 오른쪽으로 희미한 길이 갈리는 움막터삼거리(?)에 다다르자 돌탑이 보였습니다. 안개가 잔뜩 끼어 20m(?)여 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스산한 길을 오르는 중 왼쪽 아래 계곡 쪽에서 개소리가 들려와 마음이 놓였고 또 반가웠습니다.

 

 

 

  7시50분 해발805m의 첫 번째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움막터삼거리를 지난 지 한참 되어 북진 길은 북서쪽으로 이어졌습니다. 바짓가랑이가 축축할 정도로 길가 나무와 풀들이 모두 젖어 오름 새가 급한 길을 걸어 오르는데도 등 뒤에 땀이 나지 않았습니다. 주산재 출발 2시간이 다 되어 올라선 좁은 헬기장의 시멘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과일을 꺼내들며 십 수 분을 쉬었습니다. 급경사 길로 수분 간 내려갔다가 완만한 길을 따라 올라선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진행해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20-30m 전방의 갓바위전망대(?)를 들렀다가 안개 속에 몸을 숨긴 산자락들을 보지 못하고 왼쪽으로 꺾어 북서쪽으로 뻗어나가는 마루금으로 돌아갔습니다.

 

 

 

  9시40분 왕거암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을 경계 짓는 낙동정맥 길이 주왕산 동쪽으로 남북으로 뻗어나가 북진 길은 계속됐습니다. 전망바위를 출발해 북서쪽으로 진행하면서 오른 쪽 아래가 천애절벽인 능선을 지났습니다.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 다다른 능선분기점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갔다가 왼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전환하며 가파른 길을 올랐습니다. 왕거암갈림길에 도착해 10분 넘게 쉬면서 왼쪽으로 지척의 거리에 있는 해발 907m의 왕거암을 들르지 않은 것은 가봤자 아무 것도 볼 수 없겠다 싶어서였습니다. 오른 쪽으로 뚝 떨어지는 능선 길은 이내 끝났고 이어지는 능선 길은 느지미재고개까지 완만하게 뻗어나갔습니다.

 

 

 

  이번 피나무재-황장재 구간이 꽤 길어 걸음이 느린 저로서는 한 번에 마치지 못하고 2구간으로 나눌 수밖에 없어, 여기 느지미재에서 한 구간을 끊고 왼쪽 아래 내원동으로 내려갈까도 생각했었습니다. 전날 첫 구간을 주산재에서 마치고 양설령으로 내려가기를 참 잘했다 싶은 것은 만약 여기 느지미재에서 끊었다면 내원동을 거쳐 대전사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그리하면 다음에 느지미재로 올라오는 길이 너무 길어 당일로 황장재까지 진출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부산의 다대포에서 피나무재까지는 그렁저렁 잘 올라왔는데 남은 구간이 하나같이 다 길어 이번처럼 구간 끊기에 애를 먹을 것 같습니다.

 

 

 

  11시51분 해발846m의 먹구등에 도착해 점심을 들었습니다. 나무에 걸려 있는 표찰에 “느즈매기”로 적혀 있는 느지미재에 다다라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느지미재에서 제2헬기장으로 오르는 길에 산나물을 캐러 다니시는 어른 두 분을 만나 인사를 드렸습니다. 느지미재에서 북서쪽으로 40분 넘게 걸어 제2헬기장에 올라선 시각이 11시13분으로, 이곳이 지도상의 명동재인 것 같았습니다. 헬기장에서 북서쪽으로 진행해 조금 내려갔다가 봉우리 하나를 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12시가 되기 전에 먹구등에 도착해 서두르지 않아도 황장재까지는 해지기 전에 충분히 다다를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20분 넘게 쉬면서 점심을 들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대둔산으로 향했습니다. 책갈피를 빼어 닮은 책바위(?)를 지나 너덜지대에 발을 들인 것은 먹구등 출발 40분이 조금 지나서였습니다.

 

 

 

  14시27분 대둔산 갈림길의 묘지 앞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너덜지대에서 조금 올라 만난 묘지를 지나 800m봉에 올라섰습니다. 왼쪽으로 내려가 산상의 화원에 이르자 제철을 만난 야생화들이 몸단장을 하고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왔습니다. 안개가 걷히자 노란 꽃의 산괴불주머니와 피나물, 하얀 꽃의 아기나리와 이름을 까먹은 4-5종의 야생화들이 활짝 피어 그 아리따운 모습이 한껏 청초하다 못해 요염해보였습니다. 앞만 보고 내달리는 저를 멈춰 세워 이 꽃들이 건넨 말은 자기들의 빼어난 미색이 시들기 전에 사진을 찍어 뭇사람들에 널리 보여 달라는 것 같았는데 제 사진 솜씨가 신통치 않아 영 미안했습니다. 꽤 높게 보이는 봉우리 대둔산 정상을 얼마 앞둔 묘지 앞에서 마루금이 오른 쪽으로 꺾여 내려가 다행이다 했습니다. 왼쪽 위로 대둔산 길이 갈리는 삼거리 묘지 앞에서 과일을 꺼내 들며 십수 분 쉬었습니다.

 

 

 

  16시55분 황장재에 다다랐습니다. 황장재가 가까워지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습니다. 대둔산 갈림길 묘지앞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다 얼마 후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북서쪽으로 진행했습니다. 능선 길에 세운 경고판을 보고나서야 지나온 길이 출입금지구역이었음을 알았는데, 설사 미리 알았다 해도 달리 길이 없어 이 길로 걸어왔을 것입니다. 표지판이 세워진 “황장재3.1Km/먹구등5.8Km"지점을 지나 안부로 내려가는 길에 왼쪽 아래로 갈평지가 보여 찻길이 멀지 않겠다 했습니다. 안부사거리 갈평재에서 고목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마지막 쉼을 취한 후 곧바로 다시 올라 능선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왼쪽 위로 662m봉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십수분을 진행하다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황장재까지 그대로 북진했습니다. 생각보다 황장재에 일찍 도착해 바로 위 몸을 가릴 만한 곳에서 땀이 쪄든 내복을 모두 갈아입느라 20분 넘게 걸렸습니다.

 

 

 

  17시48분 괴정2리 버스정류장 앞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감했습니다. 황장재 고갯마루에서 왼쪽 아래 괴정2리로 내려가 18시40분발 버스를 타고 진보로 나갔습니다. 괴정2리 회차지점 정류장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려 오른 버스가 진보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밖에 안 걸려 19시5분에 진보를 출발하는 안동행 버스를 여유 있게 탈 수 있었습니다. 피나무재에서 황장재까지 종주하는 데 14시간 정도 걸린 셈이어서 이 악물고 한다면 하루에 끝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그리 무리해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싶어 이번처럼 긴 구간은 두 번에 나눠서 할 생각입니다.

 

 

  지구상에 가장 널리 분포해 있으면서 종족을 잘 보존한 동물이 인간과 개미라 합니다. 개미들도 그들 나름대로 사회를 이루어 생활을 하고 있어 사회적동물이라는 관점에서 인간보다 못할 바 없다 합니다. 어떤 학자는 인간이 개미보다 유일하게 뛰어난 점은 개미들이 갖고 있지 못한 종교를 갖고 있다는 점이라 말했습니다. 이런 정도의 개미들이라면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을 감수하며 집터를 내준 소나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언제고 다시 찾아가 이들의 아름다운 공생을 확인해볼 뜻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