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종주기22
*정맥구간:황장재-명동산-임도삼거리
*산행일자:2012. 5. 29일(화)
*소재지 :경북영양/청송/영덕
*산높이 :명동산812m
*산행코스:괴정2리버스정류장-황장재-화매재-630.5m봉-명동산
-봉수대-임도삼거리-하삼의소공원
*산행시간:7시42분-18시55분(11시간13분)
*동행 :나홀로
낙동정맥 종주 길에 경북 영양군의 영양 읍내를 들러 하루를 묵었습니다. 2007년 새해 아침 백암산을 올랐다가 귀경길에 버스를 타고 영양 땅을 지난 적은 있었지만 버스에서 내려 묵어가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곳 택시기사 한 분이 말씀한대로 영양은 경북 최고의 오지답게 가는 곳마다 첩첩산중이어서 조금은 답답한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제가 특별히 영양을 기억하는 것은 오지라서가 아니고 영양이 낳은 인물들 때문입니다. 먼저 말씀드릴 분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 선생입니다. 1920년 영양 땅 일월면의 주곡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명문가인 한양조씨의 후손으로 1939년 정지용시인의 추천으로 문장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입니다. ‘얇은 사 하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로 시작되는 ‘승무’는 1960년대 고등학교에서 배운 선생의 시입니다. 선생께서 1968년 세상을 뜨시기까지 많은 국민들에 존경을 받으신 것은 빼어난 시 때문만은 아닙니다. 선생은 ‘지조론’을 써 낼만큼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후 독제체재 아래서도 지조를 지켜낸 분으로 물신주의에 빠져 옳고 그름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이 나라 지식인들에 귀감이 되신 분입니다. 선생의 4촌동생인 조동일 선생은 국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학자로 이분의 대작인 ‘한국문학통사’를 틈나는 대로 꺼내 읽고 있습니다. 영양이 낳은 또 한 분은 소설가 이문열입니다.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등의 화제작을 낸 이문열 작가는 저와 동년배로 같은 대학을 다녀,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친근감이 느껴지는 작가입니다. 포스터에 빨간 색이 너무 많이 들어가도 아무도 지적하기를 꺼려하는 요즈음에 보수꼴통이라는 온갖 욕을 들어가면서도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자 애쓰는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한양조씨의 450년 세거지인 주곡리에 지훈문학관이 있고, 두들마을에는 이문열 작가가 세운 광산문학연구소가 있다 합니다. 영양 땅을 벗어나기 전에 하루 짬을 내 이 두 곳을 둘러보고자 합니다. 경북 최고의 오지라는 영양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분의 작품들이 수많은 독자들에 의해 꾸준히 읽히는 것은 두 분 모두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켜내고자 애써서라는 생각입니다. 일부 문인들이 증오에 가득 차 내뱉는 독설이 귀에 거슬리는 요즈음 이분들이 돋보이는 것도 이분들이 지켜냈고 또 지켜내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휴머니즘 덕분일 것입니다.
아침7시42분 괴정2리 버스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전날 밤 기차로 내려와 안동역전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새벽같이 서둘러 안동초등학교 앞에서 6시5분에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진보로 갔습니다. 7시10분에 진보를 출발한 군내버스는 몇 안 되는 통학생들을 태우고자 외진 동네를 들락날락하느라 괴정2리 종점까지 가는데 32분이 걸려 지난 번 괴정2리에서 진보로 돌아갈 때보다 시간이 배는 더 걸렸습니다. 괴정2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해 영덕으로 넘어가는 황장재까지 걸어 오르는데 20분이 채 안 걸렸습니다.
8시1분 황장재에서 낙동정맥의 22구간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낙석방지 철망에 낸 개구멍을 통과한 다음 가파른 정북쪽으로 난 가파른 길을 따라 진행했습니다. 바짓가랑이와 구두가 젖어 축축했지만 새소리가 경쾌해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묘지를 지나 만난 임도를 잠시 따라 걷다가 오른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임도에 세운 원두막 모양의 쉼터 옆을 지나자 경사가 가팔라졌습니다. 비알 길을 걸어 8시53분에 올라선 해발532m의 시루봉에서 동쪽으로 난 비탈길로 내려가 만난 무명봉을 오른쪽으로 에돌아 동진을 계속했습니다. 묘지 2곳을 지나고 봉우리 몇 개를 넘어 안부에 내려서기까지 경사가 완만해 걷기에 편했습니다. 안부에서 조금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 9시53분에 405m봉에 도착했습니다.
10시19분 화매재를 지났습니다. 왼쪽 아래로 밭이 보이는 405m봉울 출발해 과수원 울타리 왼쪽 길을 따라가 화매재로 내려섰습니다. 황장재에서 화매재까지 2시간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보았는데 20분가량 더 걸려 산행을 서두르지 않으면 해떨어지기 전에 목적지인 풍력발전단지에 닿기가 쉽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아스팔트차도가 지나는 화매재에서 쉬지 않고 직진, 10분 쯤 올라 만난 묘지에서 짐을 내려놓고 10분가량 쉬었습니다. 묘지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가다 오른 쪽으로 돌아보자 지나온 황장재와 시루봉이 한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약간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선 450m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확 틀어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능선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12시1분 포산마을 갈림길에 이르렀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 송전탑 2기를 지났습니다. 왼쪽 아래 시멘트도로로 내려섰는데 이 길이 저 아래 포산마을로 이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두 노부부가 일을 하시는 밭 위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다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묘지를 지나 올라선 자갈 깔린 비포장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진행했습니다. 길 옆 나지막한 구릉에서 점심을 든 후 당집으로 내려가 한 바퀴 빙 돌아보았지만 문이 잠겨 집안을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당집이란 신을 모셔놓고 위하는 집을 이릅니다. 마을의 수호신을 멀리 떨어진 이 높은 곳에 모실 리 없고 보면 모르긴 몰라도 여기 모신 신은 산신령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넓은 자갈길을 따라 걷다 오른 쪽 봉우리를 들러 다시 도로로 내려섰습니다.
13시55분 해발632m의 여정봉에 올랐습니다. 넓은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서 4-5분을 걷다가 왼쪽으로 꺾어 과수원윗길을 지났습니다. 듬성듬성 서 있는 고사목이 눈을 끄는 여정봉에 오르자 삼각점이 보였습니다. 지도를 꺼내 갈 길을 살펴 본 후 왼쪽으로 꺾어 북쪽으로 진행했습니다. 10여분 후 오른쪽으로 확 틀어 송전탑을 지나기까지 벌써 보였을 지도상의 헬기장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계속 북진해 묘지 두 곳을 지나면서 지도에 나오는 송이모듬터를 찾아보았으나 이 또한 보지 못했습니다. 여정봉 출발 1시간 10분이 지나 포도산으로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 도착해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난 급경사 길을 따라 100m가량 고도가 낮은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서서히 올랐습니다. 묘지를 지나 된비알 길로 바뀐 마루금을 쫓아 올라 만난 봉우리를 왼쪽으로 우회해 비포장도로가 지나는 박짐고개에 도착한 시각이 15시31분이었습니다.
16시28분 해발812m의 명동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되어서인지 박짐고개에서 울치재에 이르기까지 얼기설기 임도가 잘 나있어 필요시 탈출로로 활용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박짐고개에서 쉬지 못하고 곧바로 통나무계단 길로 올라 40분가량 동진했습니다. 고도를 180m가량 높여 다다른 해발805m의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15분가량 더 걸었습니다. 산불감시무인카메라가 설치된 명동산 정상에서 남은 김밥을 꺼내먹었습니다. 그리 멀지 않는 곳에서 멧돼지가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와 산행을 서둘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멧돼지 소리는 풍차가 회전하며 내는 소리 같았습니다. 정상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자마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정신없이 내달려 230m가량 고도가 낮은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17시55분 풍차가 돌고 있는 임도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깊숙한 안부에서 봉수대로 오르는 길은 경사는 완만했지만 짧지 않은 거리여서 내달리지 못하고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명동산 정상출발 50분이 조금 지나 안개가 뿌옇게 낀 봉수대에 이르렀습니다. 돌을 쌓아 만든 봉수대 앞에 안내판이 서 있었다면 그 내력을 알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잘은 몰라도 여기 봉수대는 동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를 조정에 신속보고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봉수대에서 몇 분 거리에 자리한 해발732m의 헬기장에서 20분가량 걸어 내려가 임도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J-46번의 풍차가 도는 소리가 멧돼지가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린 것은 바로 앞 풍차의 회전날개가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안개가 짙게 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화가 걸리지 않아 택시도 부를 수 없고, 더 이상 진행하다가는 안개 속에서 헤맬 것 같아 이곳에서 종주산행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하산 길을 찾았습니다.
18시55분 하삼의리 소공원입구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지도를 보니 임도삼거리에서 곧바로 왼쪽으로 내려가다가는 박짐으로 내려갈 것 같아 그보다 훨씬 가까운 하삼의리로 내려가고자 맹동산 쪽으로 5-6분을 진행해 천마농장으로 이어지는 왼쪽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출입금지구역이어서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어 넓은 시멘트 길로 다시 나왔습니다. 임도삼거리로 돌아가는 중 안개가 잠시 걷히면서 서쪽 아래 못가에 서 있는 트럭터 한 대와 그 오른 쪽으로 뻗어나가는 시멘트길이 보였습니다. 저 길을 따라가면 버스길로 연결될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밭을 가로 질러 트럭터가 서 있는 곳으로 내려가 오른 쪽으로 시멘트 길을 이어갔습니다. 천마농장 입구삼거리를 지나 917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하의삼리 소공원 앞에 이르는 길이 계곡을 따라 낸 호젓한 길인데다 경관도 볼만해 노래가 절로 나왔습니다. 소공원 길 건너편 밭에서 일하시는 한 분에게서 마지막 버스가 지나갔음을 확인하고 택시를 불러 영양으로 이동해 읍내 모텔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영양고추는 맵고 맛있기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조금 덜 맵고 맛이 떨어지더라도 여기 영양고추를 많이 먹으면 고추를 낳는다는 이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만 된다면 쌈지 돈을 내어서라도 두 아들 며느리에 듬뿍 사줄 터인데 이제껏 그런 얘기는 들어보지 못해 아쉽습니다. 고추만 많이 나고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은거의 고장 영양의 산을 오르내리면서 조지훈 선생과 이문열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을 배워갈 수 있다면 낙동정맥 종주가 더욱 뜻 깊을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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