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산
*산행일자:2014. 3. 16일(일)
*산높이 :문수산375m
*소재지 :경기 김포
*산행코스:것고개-지석묘-56번지방도-문수산-보구곶리
*산행시간:9시30분-16시30분(7시간)
*동행 :경동OB산악회원 총11명
(24회김주홍, 함기영, 우명길, 26회임종륜, 27회송회장,
29회오창환, 박성재, 권효식 부부, 35회전부순)
트래킹만 해오던 저를 당시로는 신세계와 다름없는 바위 오르기로 이끌어준 산악회는 경동OB산악회입니다. 1969년 한라산 등산을 계기로 산에 흠뻑 빠진 제가 그 이듬해 3월 체계적인 산행을 해보고자 이 산악회를 찾아들어갔습니다. 겁 많고 굼뜨기 짝이 없는 제가 서울근교 산의 바위를 오를 수 있었음은 이 산악회에서 처음 뵌 경동고교의 정명환 선배님과 유재원 선배님의 각별한 가르침에 힘입어서입니다. 암벽등반이 트래킹에 비해 중독성이 엄청 커 주말이면 만사 제쳐 놓고 바위로 달려가게 만드는데 이러다가는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해 그럴 듯한 직장을 잡는 것이 요원하겠다 싶어, 1971년 4학년이 되면서 암벽등반을 멀리했습니다.
2007년 동기 이규성교수가 회장이 되면서 제가 산행대장을 맡아 남한 땅 한북정맥을 완주한 것이 무엇보다 가슴 뿌듯합니다. 2007년 9월 대성산 서쪽의 수피령에서 시작해 그 이듬해 12월 파주의 장명산에서 종주를 마무리하기까지 총 14회를 출산했습니다. 처음에는 5명이 시작했으나 종주회원이 늘어나 15명 수준은 언제고 유지됐습니다. 한북정맥이어 이 정맥에서 분기한 9개 지맥을 모두 종주한 이 산악회가 다시 발을 들인 정맥은 안성의 칠장산에서 김포의 문수산을 잇는 한남정맥으로, 작년 1월 첫 산행에 참여했습니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불참한 제가 이번에 특별히 참여한 것은 한남정맥의 마지막 종주산행이고 또 김포의 명산인 문수산을 오를 수 있어서였습니다.
오전9시30분 것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송정역에서 갈아탄 버스로 마송성당이 자리한 것고개까지 이동해 하차했습니다. 2005년 9월 한남정맥을 종주할 때 첫 번째 구간 종주를 이 고개에서 마치어 몇 몇 건물들이 눈에 익었습니다. 이 고개에서 문덕재(文德齊)까지 택시로 이동한 것은 해병대부대가 능선을 점해서인데, 9년 전 저 혼자 반대방향으로 종주할 때는 군부대 울타리 바로 밑으로 걸어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해주최씨 김포문중의 제실(齊室)이 있는 문덕제(文德齊)에서 군부대 울타리의 오른쪽으로 나있는 계단 길을 걸어 주능선에 올라섰습니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을 따라 걸으며 이 산줄기 여기저기에 교통호가 나있는 것을 보고 북한 땅이 멀지 않은 최전방 지역임을 실감했습니다.
10시25분 고정리 지석묘를 지났습니다. 꽃 소식은 아직도 남쪽에 머무르고 있는데 봄기운이 역력한 것은 기온이 가파르게 올라서입니다. 유격장과 교통호를 차례로 지나 다다른 곳이 울타리를 쳐 보호를 받고 있는 지석묘로, 다른 곳처럼 떼를 이루지 않고 조촐하게 홀로 자리했습니다. 지석묘에서 5분 정도 더 걸어 남정곡고개가 자리한 12번 국도를 건너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10여분 오솔길을 걸어 오른 능선에 갈산공단이 들어서 이 공단을 우회해 마루금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나지막한 80m봉에서 잠시 쉬면서 나눈 환담의 주제는 ‘바람(風)’이지만, 시원한 산바람에서 정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피우는 바람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넓어 모두가 웃고 즐기기에 충분했습니다.
11시20분 56번국도 건너 그늘진 곳에서 잠시 쉬며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80m봉에서 내려가 에덴농축 앞길을 지나면서 9년 전 이 길을 지날 때를 떠올렸습니다. 5년간 경영해온 사업을 접고 정리하느라 심신이 극도로 피곤해진 때 한남정맥 종주에 나선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입니다. 일단 종주 길에 들어서면 길을 잃지 않으려 바짝 긴장한 채 산행을 하므로 적어도 산행시간만은 제반사를 다 잊을 수 있어 좋습니다.. 마지막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려 문수산을 오르내리느라 이미 진이 빠진 상태에서 이 길을 지나 그저 힘이 들었다는 것 외에 달리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에덴농장을 지나 걸은 지방도는 생각보다 한적했습니다. 얼마간 지방도를 걸어 56번 국도가 만나는 삼거리에서 길을 건너 산길로 접어들자마자 잠시 쉬었습니다. 군부대 각개전투 훈련장을 지나 올라선 100m봉을 선점한 한 팀이 점심 판을 벌여 조금 더 진행하다 터를 잡아 함께 식사했습니다.
13시 정각 50여 분간의 점심식사를 끝내고 오후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얼마 안 걸어 만난 군사도로를 따라 15분가량 걸어 다다른 ‘쌍용대로’ 입간판 앞에서 22번 지방도를 건넜습니다. 문수산의 실체가 한 눈에 잡힐 정도로 정상이 가까워보였지만 이제껏 걸어온 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름 길이 된비알 길이어서 자연 발걸음이 느려졌습니다. 잠시 오른 쪽으로 벗어났다가 이내 왼쪽 정맥 길로 복귀해 서서히 고도를 높여 갔습니다. 오름 길옆에 자리한 바위 중에 자갈이 박혀 있는 역암이 더러 보였습니다. 서해바다가 지근거리에 있어 자갈이 쌓인 바다 속 퇴적암이 소규모의 지각변동에도 이런 높이까지 융기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말이 좋아 역암이지 진안의 마이산에 비할 바가 절대로 못 되어 감탄을 자아내지는 못했습니다.
14시5분 해발375m의 문수산 정상에 자리한 장대지에 올라섰습니다. 것고개에서 대체로 북진을 계속해 다다른 22번 국도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오름 길은 서쪽 방향으로 나 있었습니다. 반시간 남짓 서진하다 10분 가량 북서쪽으로 진행해 올라선 문수산 정상에 장졸을 총 지휘한 문수산성의 장대지(將臺址)가 자리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아 문수산성이 겪어온 320년의 역사가 고난으로 점철되었음을 전해주는 듯 했습니다.
한양에서 강화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문수산에 1692년 숙종임금께서 산성을 쌓은 것은 강화도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역사상 북쪽의 오랑캐들의 침공을 받아 이곳 강화도로 수도를 옮겨 외적과 맞서 싸운 일이 여러 번 있습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강화-김포 간 좁은 폭의 염하강이 엄청 빨리 흘러 이 물줄기를 가로 질러 건너기가 쉽지 않았기에, 예부터 강화도는 수군이 약한 북쪽의 오랑캐들이 우리 영토를 침공해올 때 어가를 옮겼던 천혜의 피난처였습니다. 고려가 원나라에 맞서 40년 가까이 버틴 것은 최씨일가의 무신정권이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해 가능했습니다. 조선의 인조임금이 청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천도하려다 이를 눈치 챈 청군이 미리 길목을 막아 남한산성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고 그 결과 45일만에 청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것입니다. 숙종 임금께서 이곳에 산성을 쌓은 것은 병자호란 때 문수산성이 축성되었다면 청군과 한 번 붙어볼 만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수산성은 문수산 정상에서 남북으로 양 날개를 펼친 듯한 모양새의 포곡식 석성입니다. 6.1Km의 산성에 서문, 남문, 북문과 사이사이에 동아문과 남아문 등 암문이 있었으나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복원된 남문과 북문이 있을 뿐입니다. 문수산성이 큰 화를 입은 것은 고종3년(1866년) 강력한 화포를 갖춘 프랑스군이 공격해온 병인양요 때입니다. 바닷가 성곽과 문루가 모두 없어져 지금 남아 있는 것은그 길이가 4.6Km에 불과합니다. 문수산성에서 패배한 조선이 끝내 강화도를 지키며 프랑스군을 내몰 수 있었던 것은 대원군의 의지와 조선 수군의 강력한 저항에 힘입어서입니다.
16시35분 한남정맥의 끝 점인 보구곶으로 내려섰습니다. 장대지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산성은 보수공사(?)를 위해 나무들을 쳐내어 시야가 확 트였습니다. 날씨도 맑아 송악산과 개성공단이 보일 법한데 공기 중에 미세 먼지가 많이 들어있어서인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북쪽 땅은 조망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9년 전 이 길을 종주할 때 조강과 개성 쪽이 한눈에 잡혀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행운은 이번에는 저를 비껴갔습니다. 북봉을 지나 270m봉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하산 길은 마냥 편안했습니다. 염하강에서 멀지않은 보구곶으로 내려가 합동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한남정맥 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강화대교 쪽으로 십 분여 걸어가 만난 첫 동네에서 버스에 올라타 22번도로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한남정맥을 에돌았습니다. 조강의 대표적인 섬 유도를 코앞에 두고 오른 쪽으로 돌아 월곶으로 이어지는 길은 최전방 지역을 통과해 경계가 삼엄해 보였습니다.
이번 뒤풀이가 뜻 깊은 것은 저희 경동OB산악회에서 한북정맥에 이어 한남정맥 종주도 깔끔하게 마무리한 것을 자축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세속의 다른 친목 모임과는 달리 산악회는 거의 모든 것을 산행으로 말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정기적으로 산행을 이어가지 못하는 산악회는 설사 대외적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해도 죽은 산악회입니다. 경동OB산악회의 산행은 크게 종주산행과 암벽등반으로 나뉩니다. 기술과 힘이 모두 필요한 암벽등반은 젊은 후배들이 주축을 이루고, 끈기와 우리 산에의 애정이 필요한 종주산행은 70세를 훌쩍 넘은 선배분도 같이합니다. 경동OB산악회가 암벽등반과 종주산행의 양 날개를 크게 펼쳐 활기찬 모임이 될 것을 믿어마지않으며, 한남정맥 전 구간을 손수 이끌며 완주한 송회장께 축하인사를 전합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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