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일기(1)-직립을 염원하며
1973년 6월18일 월요일
입원 첫날이다.
작년 10월 1일 약간의 과음 끝에 걸터앉은 마루에서 떨어져 털썩 주저앉은 것이 발병의 근인이다. 그 때 즉시 등을 눕히고 요양을 취했더라면 간단히 완치되었을 것을 그 후 다시 10월 21-4일의 3박 4일간 오대산을 등반하고 11월 3일에 축구시합에 나가 병을 악화시켰기에 12월 15일 경 증세가 시작되었다. 악화될 대로 되어 결국에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제 때 결단하지 못한 나의 우유부단함 때문이다.
서있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교사라는 직책 때문에 병세는 악화일로에 있었고 급기야 중구 초동의 백병원에서 진찰받은 결과 척추디스크(학명 추간판탈출증)으로 밝혀 진 것이 올 1월 28일로 4주 정도의 안정 및 물리치료로 완치될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3월2일 휴직을 했다. 성적 및 생활기록부 정리의 긴박성이 빠개지는 다리의 아픔보다 더하기에 휴직을 3월로 미룬 것이 또 한번의 치료기회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외관상 환자로 취급되지 않는 고마움은 병의 중대성을 반감시켰고 등을 눕혀 얼마의 비인생활과 친숙한 후면 다시 직립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환자생활 덕분의 탈출을 감사하는 기분이었다.
오늘 입원을 하는 것도 12일부터 수선을 떤 결과이다. 환자쇄도로 병실이 나 있지 않아 좀처럼 입원하기가 힘들다는 레지던트 1년차 K선배의 얘기. 환자 만원사례의 형식적인 감사표시도 없는 채 여기서도 대량의 값을 톡톡히 치러야 할까 보다.
신경외과 35호실.
이곳이 얼마동안의 나의 거실이다. 때로는 기차에서, 산중 깊은 곳에 건축한 무허가 건물 텐트 속에서 , 역전 싸구려 여관방에서 , 절에서 일박하는 정도로 거실을 자유롭게 옮겼으나 최소 2주 정도의 긴 시간을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지내기는 기록할 만한 일이다.
노모를 보호자로 하여 병원에 입원수속을 끝내고 침대에 등을 눕힌 시간은 17시가 다 되어서다. 밉지 않은 간호원들의 수고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2등실. 1일 1,150원이 숙식에 소요되는 경비이다. 옆자리의 환자는 40여일 전 교통사고로 입원했다는 35세 가량의 건장한 기혼남성. 부인과 15개월짜리 아들이 보호자다.
6월19일 화요일
인턴 윤협 씨의 혈액채취로 하루일과를 시작.
종합적인 혈액검사를 오전에 끝내고 오후에는 특별검사 X-ray촬영으로 디스크의 돌출부분을 정확히 알아냄. 혈액검사 항목은 모두 4가지. 그 중 breeding time, coagulation time측정이 있다.
정확한 병명은 HIVD(Hernia Intervertibral Disk)
수술을 결정. 주치의 신동휘 1년차에게서 25일을 수술일자로 정했다고 통보해옴. 수분 후 십분 배려로 22일로 당겨 확정. 엄마는 수술보증금 5만원 준비 차 귀향. 정형, 흉곽, 신경외과 및 일반외과는 타과보다 보증금이 2만원 비싼 5만원. 수술의 위험도 예시는 아닌지?
정영사 사우 고수성 군을 졸업 후 처음 만나다.
조카 정님에 KIST에 근무 중인 Ewha에 전하 부탁. 밖에는 비.
6월20일 수요일
간호원 실습생과 환담.
서울의대 간호학과 3년 안상숙 양. 가지고 온 FM라디오로 음악청취. 푸른색의 가운착용.
나숭렬 군이 현대문학 6월호 빌려줌. 이정구 경동동기와 동행.
수술보증금 걸고 수술전표 제출. 레지던트에 의한 일반진 수술결정. 학생간호원이 빌려 준 책에서 Rupture of Disk항을 찾아 의학사전의 힘을 빌려 비교적 정독. Abnormal Disk의 돌출부를 책 속에서 자세히 봄. 예정했던 가슴촬영은 내일로 연기.
6월21일 목요일
심전도를 측정하고자 Chest X-ray 촬영.
어제에 이어 모처럼 편안한 휴식을 즐기고 있음. 학생간호원의 정성어린 간호에 감사. 간호라야 아직은 말벗에 머무르는 정도에 더하여 침대 쉬트를 갈아주고 라벨의 음악 “보렐로”를 가르쳐줌. 조카친구인 제자 K양과 비슷한 용모가 눈을 끔. 역시 미란 언제인 가 본 듯하다는 감정에서 시작되는 듯.
기독봉사회 이주호 양, 정영사 사우 엄주철과 이동악 양군의 문병에 감사.
6월22일 금요일
성기에 고무호스를 끼어 수술 후 소변을 받을 것에 대비.
식사는 어제로 일단 멈춤. 아픔이 대단. 8시 가까운 즈음 수술 장으로 가는 침대에 오름. 두려움은 없고 가벼운 심경. 수석의 이현재, 주치의 신동휘 양씨의 모습이 눈 안에 들임. 마취의의 수고로 마취가 시작됨.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학생간호원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 옴. 안상숙 간호원인 듯싶고. 링겔을 팔에 꽂고 다시 35호실에 입실. 진짜 환자의 입실. 허리를 찢긴 아픔이 대단. 마취로 가래가 대단. 저녁 때 신경외과 실습을 오늘로 끝낸 안상숙 간호원이 사복차림으로 문병 옴. 진통제를 맞고 취침. 불과 2시간 남짓 진통제 효과 유효.
6월23일 토요일
숭렬의 문병.
아직도 링겔과 진통제로 잠을 이룸. Mr.Park의 6.23조치 발효. Ewha의 심방 기대. 가스가 나오지 않아 고심.
6월24일 일요일
가스가 아침에 나옴.
현대문학은 어제 김정애 간호원이 빌려감. 김성종의 “어느 창녀의 죽음”이 구독이유. 고 박인환의 시처럼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함을 반증. 병동 35호실은 책과 음악으로 간호원들에 인기.
큰 형수님 문병.
그리고 2시경 Ewha 꽃과 함께 입실. 금요일 조카와 여기서 면회를 약속.
6월25일 월요일
경동 급우 김자억 군의 심방에 감사.
연이은 친구들의 방문이 큰 위안. 오늘부터 미음을 먹다. 석식은 반찬이 있는 죽 복용.
6월26일 화요일
밥을 먹기 시작.
이 혜경 학생간호원이 안상숙 양에 뒤이어 실습. 5일간 입원진료비는 126,050원. 병원은 감방과 함께 금기의 장소.
현대문학 덕으로 김정애 간호원으로부터 엽서 한 장 탈취. 규성에 띄움.
6월27일 수요일
형과 이종갑형이 시골에서 상경.
종갑형의 어려운 천원에 액면가 수배를 감사.
병우형과 기영의 심방. 메론의 진미를 맛 봄.
진단서를 조카를 통해 문산종고에 보냄. 공무원 요양비 2만원 수령 목적.
이 혜경양에 산지식 일변도의 얘기와 정상 및 비정상의 가치론 일석. 빌려준 최신해시의 “심야의 해바라기”받음.
조간신문에는 국회개원 소식 게재. 6.23조치에 대한 대정부질의 진행 중.
이주호 기독봉사회원의 2차방문에 종교문제 대화. 이혜경양에게서 내일 불교입문서인 “부료의 깨묵”을 빌리기로.
6월28일 목요일
이길재 군의 뜻밖의 문병.
최길수 교수님 회진. 이양의 등 맛사지에 감사. 오후 관장으로 속 훑이.
6월29일 금요일
엄마의 이른 아침 귀향.
실을 뽑았는데 의외로 아프지 않음.
아버지 환갑 연기.
고모와 큰 누님 문병. 각 천 원씩 병원비로 보태 쓰라고 내놓음.
Ewha 문병 와 통조림을 내 놓고 버너로 바꿔가다.
퇴원해 몸이 회복되면 지리산 종주를 같이하자고 제의할 생각임.
Ewha형!
병실의 마지막 밤입니다.
드보르작의 신세게교향곡 중 제 4악장 , 1892년 America가 명작의 고향입니다.
앞으로 무척 지루한 비인생활을 2개월 여 계속해야 하는 어려움이 잔존하기에 직립에의 욕망이 더합니다. 인간은 직립을 숙명으로 하는 동물입니다. 등을 눕혀 직립을 거부당했을 때의 실망은 20만원 가까운 돈을 투자하여 환희로 만들기까지의 기로 먼 병상생활에서의 소득은 무엇인지요? 행동영역의 극소화가 사고영역의 극대화를 결과하지 못할 때 인생은 밑지는 것이라는 서글픈 당위만을 배울 뿐입니다. 그리고 빼앗긴 건강에 계절을 강도당한 채 자연을 그저 흠망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름은 건강합니다.
철석 대는 파도는 음성모음 조화의 극치입니다. 굵은 빗줄기가 태양을 삼키더라도 우리는 빗줄기의 리듬에 친숙해져 이 여름을 증오하지 못합니다. 폭염이 나체를 어루만지는 백사장의 유혹이 대단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바다로 여름을 찾아 나섭니다. 그래서 도시는 텅 비어있어 비인들만이 파수꾼의 직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산은 더할 수 없는 최고의 피서지입니다.
동양 제1의 피서지라는 노고단에서 시작되는 지리의 주능에 오르지 않으시렵니까? 설악의 섬세함에 견줄만한 굵직한 지리의 능선을 밟는 산우들의 요델소리 만큼 듣고 싶은 것은 당장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우중등반의 멋은 덩치 큰 산 덩어리가 안개 속에서 숨박꼭질하는 데 있습니다. 금년은 인월에서 덕평봉에 이은 노고단의 능선을 올라 정상인 천왕봉까지 주 능선을 이어가 칠선동계곡으로 하산할 계획이었는데 일단은 보류해야겠습니다. 조금의 인내심을 형에 부탁하며 내년 봄 동행을 요청합니다. 철쭉제에 즈음한 장기등반은 피로도가 다른 때보다 상당히 감소할 것입니다. 꽃의 속삭임덕분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빠끔히 열린 창을 헤비고 기어 들어와 살갗이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이 좋은 때에 온 몸을 지탱해줄 허리의 판이 고장 나는 바람에 사람을 세워 걷게 해주는 두 다리가 제 역할을 못해 등을 눕혀 시간을 죽이고 있습니다. 직립에의 갈망이 수술 결과가 좋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게 만들 것입니다.
두 번의 병실방문에 감사하며 고마움에 답하고자 내년 봄 직립하여 지리산을 등정하고자
동행을 요청합니다.
6월30일 토요일
문병객 없는 답답한 하루.
형수님 상경. 아직도 걷는 것은 금지. 어제 실 뽑은 즉시 걸어 주치의로부터 꾸중 들었음. 수술한 곳의 아픔은 상당히 진정되었음. 숭렬의 내원을 기대했으나 무위.
7월1일 일요일
병실의 일요일은 쇼펜하우에르의 지적대로 권태를 대표.
기영에게 빌린 하인리히 하버의 “하얀 거미” 탐독. 산 꾼의 의지확인. 아이거북벽 초등반기.
오후 숭렬에 뒤이어 규성, 기영 방문. 기영에 신동아와 산 7월호 부탁.
7월2일 월요일
규성과의 문학론.
최인훈의 궤도추적이 나의 과제임을 역설.
섬이 얼마간 나의 정착지임을 예고. 섬마을 선생님.
낮 시간에 기영이 산과 신동아를 전해 줌.
정종 동국대교수의 “히말라야를 향하여” 탐독. 그리고 희곡 “생이 부르는 소리”탐독.
7월3일 화요일
내일은 퇴원.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는 만큼 조용한 시간 속에 논픽션 구상 중. 모기와 바퀴벌레의 극성 속에 마지막 밤을 지새움. 어인 일로 금기의 장소에 정이 붙는가? 병신들의 합창을 같이 부르고 들어온 때문인가?
7월4일 수요일
“이중섭 평전”은 고은의 수고 작
문학의 새로운 장르를 발견한 기분.
퇴원수속.
관행적인 사례비 귀띔에 속물근성을 맛 본 듯해 씁쓸음.
예정했던 대로 수고비 5천원씩 K형과 주치의에 전해 줌.
그래도 나를 다시 서게 한 의료진에 감사.
김정애 간호원의 인사말-“이제 다시 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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