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지역 명산/지역명산 탐방기

A-26.주금산 산행기(1-2)

시인마뇽 2007. 3. 21. 12:34

                                                        주금산(2)

 

                                  *산행일자:2011. 5. 18일(수)

                                  *소재지   :경기 남양주

                                  *산높이   :814m

                                  *산행코스:몽골문화촌-비금계곡합수점갈림길-585m봉-주금산

                                                 -605m봉 -비금계곡합수점갈림길-몽골문화촌

                                  *산행시간:10시50분-16시52분(6시간2분)

                                  *동행      :서울사대 이상훈, 원영환 동문

 

 

  선농단(先農壇)의 추억을 같이 갖고 있는 대학동기 셋이서 주금산을 올랐습니다. 서울의 동대문구 제기동에 캠퍼스를 둔 자그마한 대학에 다니느라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 수년 간 당시는 ‘청량대(淸凉臺)’로 이름 붙여진 선농단 옛 터를 자주 찾아 올랐습니다. 캠퍼스 안 나지막한 구릉에 비 하나만 달랑 서 있어 그곳이 선농단의 옛 터인 줄 정확히 안 것은 졸업하고 몇 년 뒤에 이규태님의 저서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읽고 나서였습니다.

 

 

  멀리 신라 때부터 우리나라 임금들은 해마다 세 번씩 농사의 신(神)인 신농(神農)씨와 후직(后稷)씨에게 풍년을 빌며 선농제(先農祭)와 중농제(中農祭), 그리고 후농제(後農祭)라는 농제를 올렸습니다. 이 중 선농제는 매년 봄 경칩이 지난 뒤 첫 번째 해일(亥日)축시(丑時)에 전농동(典農洞)의 선농단(先農壇)에서 치렀는데 이 제(祭)만은 구한말까지 이어졌다 합니다. 제를 올린 임금은 물론 신료들과 백성들도 제물로 쓰인 소를 고루 나눠먹어 신인융합(神人融合)을 기했는데, 이 때 소한마리의 희생물을 고루 나눠먹기 위해 탕을 끓여 먹었으니 이규태님의 말씀대로 과연 한(韓)민족은 탕(湯)민족이라 불릴 만 했습니다. 함께 나눠 든 이 탕은 선농탕(先農湯)이라 불렸으며 나중에 설렁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말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번에 함께 산행한 동기들은 대학시절 선농단 옛터인 청량대에 올라 도시락을 나눠먹곤 했습니다. 비록 탕은 아니었지만 유서 깊은 선농단 터에서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흘린 밥알이 고수레가 되어 농사 신들과 융합을 이룰 수 있었기에, 하나같이 자식농사를 잘 지은 것이 아닌 가합니다.

 

 

  10시50분 몽골문화촌을 출발했습니다. 이상훈 교수가 몰고 간 승용차를 수동국민관광지 주차장에 주차시킨 후 비금계곡 길로 들어섰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계곡물이 불어나지는 않았지만 단비를 맞은 나뭇잎들이 파릇파릇해 온 산에서 생기가 느껴졌습니다. 국민관광지여서인지 비금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임도수준으로 넓었습니다. 큰비가 오면 건너기 쉽지 않을 비교적 넓은 계곡에 다다라 잠시 숨을 고른 후 건너편 짧은 구간의 가파른 시멘트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제1코스와 제2코스가 나뉘는 삼거리 갈림길에 이르기까지 완만한 길을 걸어 오르며 하산 길에 마음 편히 쉬면서 탁족을 즐길 만한 몇 곳을 찜해두었습니다.

 

 

  11시40분 경 제1등산로와 제2등산로가 나뉘는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사흘 전 한북천마지맥 종주 길에 고교동창들과 함께 올랐던 제2등산로는 하산코스로 잡기로 하고 이번에는 오른 쪽의 제1등산로로 들어섰습니다. 얼마간 계곡 오른 쪽 길로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선 봉우리가 585m봉으로, 이 봉우리에서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주금산과 그 동쪽 건너편의 축령산을 이어주는 한북천마축령단맥에 합류합니다. 오른쪽 아래로 불기고개 길이 갈리는 봉우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능선을 타고 얼마 간 오르다가 만난 첫 쉼터에서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이번 산행은 제1코스로 주금산을 올랐다가 제2코스로 하산해 수동국민관광지로 돌아가는 짧은 코스의 원점회귀산행이어서 시간이 넉넉해 쉬엄쉬엄 올라갔습니다. 살랑살랑 불어올라오는 골바람이 시원한 듯 연분홍 색 철쭉꽃이 입을 헤헤 벌리고 저희들을 맞는 품이 참으로 천진난만해 보였습니다. 통나무 의자가 세워진 쉼터에서 한참동안 쉰 후 자리에서 일어나 주금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떼어 놓았습니다. 이맘때면 숲속에서 어김없이 들려오는 네 음절의 새소리가 돌아온 철새 검은등뻐꾸기의 귀환보고다 싶어지자 더 다감하게 들렸습니다.

 

 

  한북천마축령단맥이 분기되는 한북천마지맥의 토치카 위에서 반시간 넘게 점심을 들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동기생의 영향을 받은 한 친구가 판소리를 배울 뜻을 밝힌 것도 생각보다 수명이 길어져 퇴직 후 삶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해서 일 것입니다. 아직은 두 다리가 견실하고 두 눈이 총기를 잃지 않아 매주 산행을 하고 책 한 권은 읽어나가지만 어느 나이를 넘어서면 다리에서 힘이 빠지고 눈이 가물가물해지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그 때를 대비해 산행과 독서가 아닌 뭔가를 배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벌써부터 해왔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저를 닦달만 하고 있습니다.

 

 

  13시44분 해발814m의 주금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오른 쪽 서파검문소 쪽으로 이어지는 천마지맥 능선을 따라 10분 남짓 걸었습니다. 정상에 이르기 수분 전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바위를 보고 지학과를 졸업한 한 친구가 저 정도 바위라면 웬만한 지진에 견뎌내지 못하고 다 무너져 내릴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제껏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으로 불려온 것은 한반도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지대에 자리한 덕분에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일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지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전망이 유력하고 보면 언제 지진이 닥쳐 설악산의 천불동계곡이나 금강산의 만물상이 제 모습을 잃을 수 도 있다 싶었습니다. 표지석이 서 있는 주금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이내 오던 길로 되돌아가 독바위로 향했습니다. 축령단맥이 분기되는 능선삼거리에서 막 내려선 헬기장위 정자에서 잠시 머물며 훤칠하게 잘 생긴 뒤편의 독바위를 사진 찍었습니다. 서울에서 내촌을 거쳐 일동으로 가는 길에 오른 쪽으로 높은 산에 위치한 큰 바위를 볼 수 있는 데 이 바위가 바로 주금산의 얼굴마담 역할을 하고 있는 독바위입니다.

 

 

  15시56분 제1등산로와 제2등산로가 갈리는 분기점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주금산정상에서 시작한 천마지맥 따라 걷기는 독바위를 지나 시루봉을 얼마 앞둔 능선 삼거리까지 이어졌습니다. 능선 삼거리에 이르기 얼마 전에 길가에 서있는 나이든 소나무 한 그루를 보았습니다. 이 소나무가 참으로 명품이다 싶은 것은 이 방향 저 방향으로 가지들이 몸을 뒤틀며 뻗어나가서인데 누군가가 그 중 한 가지를 잘라내어 균형미가 깨진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거꾸로 소나무가 우리 손가락을 보고 왜 엄지만 떨어져 있느냐며 잘라버려야겠다고 덤벼든다면 펄쩍 뛸 것이 분명한데 펄쩍 뛸 짓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사람들에 마다 않고 길을 내주는 이 산이 고마웠습니다. 능선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계곡으로 내려가는 중 올 들어 처음 본 피나물 등 여러 봄꽃들을 보았습니다. 제1등산로가 갈리는 분기점으로 되돌아와 잠시 숨을 고른 후 오전에 올랐던 비금계곡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16시52분 출발지인 수동국민관광지 주차장으로 되돌아와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오름 길에 찜해 둔 계곡 쉼터를 그냥 지나지 않았습니다. 짐을 내려놓고 발을 씻으면서 조선조 양반자제들이 계곡을 찾아 즐긴 피서를 그려보았습니다. 몇몇이 동아리지어 산골 깊은 계곡을 찾아 오르다가 너럭바위가 있는 계곡 가에 자리를 잡습니다. 우선 물에 들어가 발을 씻으며 탁족을 즐깁니다. 다음으로 머리를 감은 후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는 즐풍을 하면서 시원해 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지를 다리 밑으로 내리고 사타구니 사이로 바람이 지나도록하는 거풍도 즐깁니다. 탁족과 즐풍, 그리고 거풍을 순서를 정해놓고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모두가 끝나면 너럭바위에 앉아 시 한수를 지며 음풍명월을 할 수 있어야 지체 높은 사대부의 자제라 할 만했을 것입니다. 혼자서 종주산행을 하면서 거풍과 탁족은 자주 합니다만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즐풍을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오후 5시가 다 되어 수동국민관광지로 되돌아가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조상께서 이 땅에서 농사를 짓도록 해주신 농사 신에 제를 올려온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제례란 본시 번거로운 것이어서 우리 왕실은 일 년에 세 번 올리는 농제를 단 한 번으로 줄여 선농제만 지냈습니다. 근대를 맞으면서 이마저도 사라져 신농씨와 후직씨를 분노케 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산신들은 전성기를 맞았다는 생각입니다. 불교의 전래 이후 산신각에 갇혀 있던 산신들이 다시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산악회들이 시산제를 지내서일 것입니다. 저 또한 정맥종주를 시작하고 마칠 때에는 무릎 꿇고 산신령께 무사 산행을 빌곤 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버려졌던 선농단이 최근의 사진을 보니 자치단체에서 철책을 쳐 놓고 보호를 하는 것 같습니다. 선농단을 대학 캠퍼스로 써온 서울사대만이라도 관심을 갖고 선농제를 되살려 농사 신이 산신만큼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하면서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주금산(1)


                 
 *산행일자:2007. 3. 18일

                   *소재지  :경기포천/가평

                   *산높이  :813미터

                   *산행코스:수원산분기점-서파-주금산-시루봉

                                   -금단이고개-팔야리                  

                   *산행시간:9시32분-17시40분(8시간8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

                             (이규성대장,송기훈,유한준, 정병기대원)

 


  두 해전과 마찬가지로 어제도 한북천마지맥 종주 길에 주금산을 올랐습니다.

오랫동안 이산 저산을 함께 오른 고교동기인 이 교수가 동문산악회장을 맡은 것을 계기로 그동안 부진했던 산악회활동을 활성화하고자 지맥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우선은 보다 많은 회원들의 동참을 끌어내고자 서울근교에서 가깝고 종주 길이 그리 길지 않은 한북천마지맥을 종주하기로 하고 제가 길안내를 맡아 어제 그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한북천마지맥은 한북정맥의 수원산 어깨에서 동남쪽으로 갈려나와 주금산, 철마산, 천마산, 백봉, 갑산, 적갑산, 예봉산과 예빈산을 차례로 지나 팔당의 한강으로 침잠하는 산줄기로 총 도상거리가  50Km 가량 밖에 안 되어 누구라도 쉽게 도전해볼만한 종주코스입니다. 전문 종주꾼들이라면 천마산의 마치재에서 한 번 끊고 두 번에 마치는 이 코스를 보다 많은 동문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총 4회로 나누어 종주하기로 했습니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는 재미가 없다면 참으로 황량할 것입니다.

가까이는 부모형제 등 친척들의 혈연을 시작으로 지연과 학연을 넓혀가고 급기야는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연을 확대해가는 것이 요즈음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우리말로는 인연이고 영어로는 휴먼네트워크(Human Network)이겠는데 왜인지 연을 중시하면 뒤쳐진 사람 같고 네트워크(Network)를 들먹이면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처럼 보이는 것은 전통적인 혈연, 지연과 학연이 그동안 개방적이지 못하고 폐쇄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연의 폐쇄성을 극복하는 데는 솔직하고도 개방적인 대화가 필수적인데 이러한 대화는 산행을 하며 자연의 힘을 빌릴 때 훨씬 수월해집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산행 중 처음만나는 사람들과도 손쉽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산이라는 자연의 장 안에서 이루어져서입니다.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는 학연의 폐쇄성을 극복해 진정으로 동창의 연을 이어가는 데는 선후배를 가릴 것 없이 똑같이 땀 흘리는 등산만한 것이 없을 것 입니다.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회장과 세 해 후배 1명, 그리고 다섯 해 아래 2명 등 총 5명이 어제 처음으로 한북천마지맥에 발을 들였습니다.


  아침9시32분 한북정맥이 지나는 수원산 아래 서파/포천/명덕온천으로 갈리는 고개 마루 삼거리에서 한북천마지맥에 첫발을 들였습니다. 8시20분에 상봉을 출발하는 사천행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려 서파고개에서 하차해 56번 도로를 따라 고개마루로 향했습니다. 십 수분을 걸어 다다른 고개마루에서 출정기념사진을 찍은 후 남동쪽으로 뻗어나가는 지맥 길을 올랐습니다. 20분 가까이 되어 서파고개를 지나는 47번 국도를 건넜고 묘지를 지나 주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다시 올라 마루금을 따라 걸었습니다. 2년 전에 한번 종주했던 길이어서 길 찾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고 잔설도 없는데다 날씨도 산행을 하기에 딱 알맞아 철마산까지 내달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군인들이 파놓은 교통호와 벙커를 능선 길에서 여러 번 만나 한수이북을 내닫는 이 지맥 길이 휴전선에서 그리 멀지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짙푸른 전나무 숲길을 지나고 봉우리 몇 개를 지나 로프 줄이 걸려있는 안부에 도착한 시각은 산행시작 딱 1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11시30분 삼각점이 세워진 588봉에 올랐습니다.

로프를 붙잡고 미끄러운 흙길을 올라 헬기장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대원들에 1시간 걷고 10분을 쉬겠다고 운행원칙을 일러주었습니다. 등산화 밑창과 무릎관절이 다 같이 나갔다는 3년 후배가 걱정은 되었지만 앞장선 제 걸음이 워낙 느리기에 웬만하면 따라올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장시간 산행을 오랜만에 해서인지 고전하는 기색이 역력해보여 안쓰러웠습니다. 임도 길로 내려섰다가 바로 능선 길로 직진해 헬기장 몇 곳을 지났습니다. 네 번째 헬기장에서 588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낙엽들이 쌓여 카펫 위를 걷는 것처럼 폭신하고 편안했습니다. 앞서 지나간 산객들이 거의 없는 듯 낙엽이 그대로 살아있는데다가 표지기가 걸려있지 않아 초행길이었다면 이 길이 과연 맞는지 불안했을 것입니다. 철제안테나(?)가 세워진 봉우리에서 588봉에 이르는 길이 이번 산행의 낙엽 길 중 백미라고 생각된 것은 떡갈나무 잎들이 지나온 어느 곳보다 소북이 쌓여 발끝에 전해지는 촉감과 낙엽 밟는 소리가 더할 수 없이 상쾌했기 때문입니다.


  12시56분 684봉으로 추정되는 봉우리에서 짐을 풀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583봉을 지나 한 여름이라면 잡목들과 풀들이 길을 막았을 풀 숲길을 지나 길 양쪽의 나무들을 베어내 시야가 탁 트이는 넓은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2년 전에 길 위에 즐비하게 놓아두었던 베어진 나무들이 그사이 깨끗하게 치워져 개주산으로 갈리는 능선삼거리까지 별 어려움 없이 진행했습니다. 왼쪽 길은 개주산으로, 오른 쪽 길은 주금산으로 갈리는 능선삼거리에서 684봉까지는 꾸준한 오름 새의 좁은 길로 이어졌습니다. 무릎이 안 좋은 후배가 학수고대한 점심시간은 반시간이나 계속되어 피로회복이 충분했으리라 생각했는데 주금산에 이르기까지 40분 가까운 마지막 오름 길이 죽음의 길이었다는 한 마디에 너무 강행군을 한 것이 아닌 가해서 미안하면서도 선후배들이 번갈아가며 뒤쳐진 후배를 추스르는 것을 보고 또 한편 고마웠습니다.


  14시4분 해발813미터의 주금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684봉을 출발해 몇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중 오른 쪽 아래에 자리한 아직도 눈이 쌓인 새하얀 베어스타운의 스키슬로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베어스타운 행 하산 길이 갈리는 봉우리삼거리에서 4분을 더 걸어 태극기가 펄럭이는 정상에 오르자 사방의 산세가 한 눈에 파악되었습니다. 북쪽의 운악산을 시작으로 동쪽의 축령산, 남쪽의 철마산과 천마산, 서쪽의 국사봉을 차례로 짚어보고 마지막으로 이제껏 걸어온 비단 길처럼 부드러운 지맥 길을 뒤돌아보았습니다. 갈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때면 이제껏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자신감을 되살리곤 했기에 힘들어하는 후배에 4시간 반 가까이 밟아온 지맥 길을 짚어 주었습니다. 한북천마지맥의 최고봉인 주금산의 정상석을 배경으로 함께 오른 동문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남쪽 멀리 딱 버텨서있는 철마산으로 향했습니다. 2년 전에 까옥까옥하며 떼거리로 저를 환영했던 까마귀들은 다른 산으로 봄나들이를 나섰는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는데 정상출발 10분 후 쯤 도착한 넓은 공터에는 여전히 거대한 벙커와 여러 개의 환기통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까이의 전망바위에 올라 축령산 가는 길을 조망한 후 다시 지맥 길을 이어가다 주금산의 명물 독바위를 지났습니다. 독을 엎어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이름 붙여진 거대한 암봉 독바위는 그 높이가 정상봉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 남서쪽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주금산의 얼굴로 종주산행 특성 상 정상에서 남동쪽 아래에 자리한 국민관광지 비금계곡의 비경을 들러볼 수 없는 아쉬움을 덜어주었습니다.    


  15시18분 독바위를 지나 헬기장에서 쉰지 반시간도 안 되어 송전탑아래에서 과일을 까들며 또다시 쉬었습니다. 무릎이 아파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며 오른 쪽 안암절로 하산하기를 원하는 후배에 계속 산행을 강권했기에 1시간 걷고 10분을 쉰다는 산행원칙을 반시간을 걷고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조정했습니다. 무릎이 아파 고통스러워하는 선배를 모시고 함께 내려가겠다는 또 다른 후배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걸어온 길 보다 갈 길이 훨씬 짧고 오르내림이 그다지 심하지 않아 속도를 늦추고 자주 쉬면 가능하리라 판단되어 그대로 강행했습니다. 이제는 제 코스를 다 밟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음을 깨달은 후배가 새롭게 에너지를 충전하고 완주의 전의를 다져서인지 생각보다 잘 걸어 안심됐습니다. 조림한 듯한 물푸레나무들의 군락지를 지나서 가파른 경사 길을 걸어 해발 634미터의 시루봉에 올라 또 다시 쉬었습니다.


  16시45분 안부사거리인 금단이고개에 도착해 첫 번째 구간종주를 마쳤습니다.

시루봉에서 이 고개에 이르는 길도 오르내림이 몇 번 있었지만 중간에 헬기장에서 두 번을 쉬어 더 이상 못 걷겠다고 주저앉으면 어떻게 할까 걱정했던 후배도 잘 따라붙었습니다. 종주산행을 시작할 때는 철마산을 지나서 절골로 내려가겠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이 고개까지 무사히 온 것만도 다행이다 싶어 예정대로 오른 쪽 팔야리 길로 내려섰습니다. 다음에는 내방리로 가 금단 골로 내려서는 왼쪽 길로 이 고개에 오르기로 하고 이번에는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오른 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낙엽이 길을 덮은 마지막 보너스 길을 따라 내려와  왼쪽으로 골프장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등산복 차림으로 골프장 안길을 걷기가 뭣해 그대로 직진해 능선 길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17시40분 팔야리버스정류장에 조금 남겨놓은 삼거리에서 장장 8시간의 긴 산행을 마쳤습니다. 안암절로 같이 내려가겠다던 후배가 골프장에 근무하는 동생분에 차를 대기토록 이분의 차로 구리 역까지 편하게 이동했습니다.


  조촐한 뒤풀이로 주금산을 올라 첫 번째 지맥종주를 무사히 마친 잔잔한 감동을 되새겼습니다.

힘들었지만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뛰어 자신감을 얻었다는 후배가 금단이고개에서 천마산까지 다시 한 구간을 더 나누겠다는 저의 제의를 듣고 한북천마지맥을 완주하겠다는 뜻을 밝혀 고마웠습니다. 주금산을 오르내리며 고교동창들과 함께한 시간이 가슴 뿌듯해 벌써부터 다음달 철마산구간의 종주산행이 기다려졌습니다.

 

 

                                                               <산행사진>

 

 

 

*이규성대장이 찍은 사진을 아래와 같이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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