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2007. 1. 1일
*소재지 :경북 울진
*산높이 :1,004미터
*산행코스:구슬령-임도-백암산-800봉-존질목-온천호텔
*산행시간:3시30분-10시7분(6시간37분)
*동행 :송백산악회
새해 첫날 첫 새벽이 열어준 산길을 걸어 경북 울진의 백암산을 올랐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울진 땅에 발을 들여 해발1,004미터의 백암산에 오른 것은 동해바다를 딛고 일어나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의 장엄한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였는데 구름의 시샘으로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100명이 훨씬 넘는 산객들이 밤을 뚫고 정상에 올라서서 십 수분을 대기하며 해오름을 기다렸지만 태양은 일출을 가로막는 구름만 조금 붉게 물들였을 뿐 끝내 모습을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희망의 한해가 시작되는 2007년 새 아침에 1,000미터가 넘는 고산을 올라 가슴 속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새 출발을 다짐하는 것이 나름대로 뜻 깊었기에 하루 종일 뿌듯했습니다.
밤10시에 잠실을 출발한 버스가 영동고속도로를 지나 중앙고속도로상의 치악휴게소에서 잠시 머무르는 동안 2006년이 끝나가고 2007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60대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덜커덩 내려앉는 처연함이 느껴졌지만 이미 발을 들인 미지의 2007년에서 저 나름대로 새로운 희망을 보고 가슴이 설레기도 했습니다. 영주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버스는 일출시각까지 시간이 넉넉해 모처럼 느긋하게 달렸습니다. 남한 땅에서 최고로 춥다는 봉화도 지나고 낙동정맥을 넘나드는 한티재를 거쳐 새벽 3시 반이 조금 못되어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88번 도로상의 구슬령에 도착했습니다.
새벽3시30분 해발450미터의 구슬령을 출발해 임도로 들어섰습니다.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임도 길을 걷는 동안 엄청 진을 빼며 14시간 넘게 걸었던 꼭 1년 전의 설악산 산행이 떠올랐습니다. 새벽 2시 칼바람에 등 떠밀려 한계령을 출발한지 5시간 만에 힘들게 올라선 해발 1,708미터의 대청봉에서 원단의 새아침을 맞아 한 해 동안 희망을 키우며 열심히 살겠다고 마음을 다져먹었던 기억이 새로운 것은 올해도 백암산 정상에 올라 또 다시 새로운 희망을 내걸고 열심히 살겠으니 주님께서 보살펴달라고 빌어 볼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구름이 별을 가려 사방이 캄캄했지만 차들이 지나다닐 정도로 길이 넓었고 얼어붙었던 날씨가 풀렸고 골바람이 미동도 하지 않는데다가 크리스마스전 후에 내렸던 눈들도 흔적 없이 사라져 2시간 동안의 임도 산행이 마냥 편했습니다. 칠흑 같은 밤길을 혼자 걸을 때에는 능선 길에 들어선 나무들이 마치 성난 짐승들의 곧추세운 몸 털처럼 보여 등골이 오싹했는데 이번에는 여럿이서 같이하는 산행이어서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다. 구슬령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나가 낙동정맥으로 이어지는 지능선의 산허리를 오른 쪽 아래로 에돌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나가는 완만한 산 오름이 나중에는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마치 시를 쓰듯이 간결한 문체로 소설을 써내려가는 소설가 김 훈님은 워낙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분이라서 이 길을 지났음 직 한데 그 분이라면 이 길을 어떻게 표현할 까 궁금했습니다.
5시32분 임간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두 번째 휴식을 취했습니다.
구슬령에서 1시간을 걸어 다다른 임도 옆 공터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쉬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출발하는 바람에 4-5분 동안의 두 번째 휴식시간이 더욱 달콤했습니다. 뿌리가 뽑힌 채 드러누운 거목을 비껴가고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몇 곳에 시멘트로 포장 한 것을 뺀다면 이렇다할 변화가 없는 단조로운 길이어서 여름 한 낮에 이 길을 지나가기는 보통 고역이 아닐 듯싶었습니다. 구슬령을 출발할 때와는 달리 하늘 높은 곳에서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서 잘하면 장대한 일출세레머니를 볼 수 있겠다싶기도 해 은근히 기대됐습니다. 임간도로에서 왼쪽의 산길로 들어서 낙동정맥에 발을 들인 후 얼마동안 수북이 쌓인 낙엽 길을 걷게 되어 2시간동안 딱딱한 임도를 걸었던 발바닥의 수고를 덜어줄 수 있었습니다.
6시32분 조금은 넓게 보이는 능선길에서 짐을 풀고 냉수로 목을 축였습니다.
낙동정맥 길로 들어선지 20분 후에 삼각점이 세워진 714봉에 올라서자 잔설이 손 틈만큼 보였고 바람의 움직임이 조금씩 감지되었습니다. 선두대장의 말대로 정작 러셀링을 해 길을 내야 할 것은 눈이 아니고 낙엽이었습니다. 앞사람이 밟고 가도 이내 부풀어 올라 지나간 흔적이 사라지는 낙엽을 보고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김수영시인의 풀잎을 보는 듯 했습니다. 플래쉬 빛에 모습을 드러낸 표지기 앞에 서서 금강이북의 정맥길을 종주하며 보았던 눈에 익은 주인들의 이름을 찾아보다가 “배창랑과 그 일행들”과 “강성원 우유”의 표지기가 눈에 띄어 반가웠습니다. 여러 봉을 오르내렸지만 흙길과 낙엽길이 반복되고 오르내림이 크지 않아 힘든 줄 몰랐는데 새해새아침에 일출을 보겠다며 무리하게 산행에 나선 몇 분들이 후미로 쳐져 힘들어했습니다. 그리 험하지도 또 긴 길도 아니어서 그 분들도 조금 늦게나마 정상에 오를 것이 틀림없기에 좀 쉬어가시라고 말씀을 건네고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6시58분 낙동정맥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714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려간 낙동정맥은 삼거리에서 방향을 틀어 남서쪽으로 이어 졌고 백암산 정상은 정서쪽으로 바로 앞에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앞으로 한두 해 안에 반드시 종주 길에 나설 것을 다짐한 후 1시간 22분을 걸어온 낙동정맥과 헤어지고 안부로 내려서 일출시각에 맞게 정상에 오르고자 일행들과 함께 십 분 가량 쉬면서 기다렸습니다. 삼거리에 다다르기 얼마 전부터 먼동이 트여 온다 싶었는데 불과 십 몇 분 사이에 온 산을 지배했던 어둠이 도망치듯 사라져버려 먼발치의 산봉우리들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7시27분 해발 1,004미터의 백암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안부에서 정상에 오른 길 중간 중간에 잔설이 제법 깔려 있어 발을 내 딛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정상에 올라서자 수많은 분들이 모두 동해바다를 응시하며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만 구름이 잔뜩 끼어 주위만 불그스레할 뿐이어서 올 해도 작년 설악산에서와 같이 일출을 보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가슴이 뛴 것은 가슴 속에 담아온 소박한 제 새해 희망이 일출을 못 보았다고 사라지지 않아서였습니다. 동해에서 눈길을 돌려 뒤돌아보자 밤새 지나온 임도가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정상의 헬기장을 가득 메운 산객들이 정상을 뜨기 시작해 비로소 정상석을 만질 수 있었습니다. 꺼놓았던 휴대폰을 다시 켜자 몇 분들이 보낸 신년축하메시지가 떠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분에 백암산에 올라 새해인사 드리며 복 많이 받고 건강하시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7시44분 수년 내에 밟을 낙동정맥 길을 다시 본 후 북동쪽으로 난 길로 들어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왼쪽의 합수곡으로 내려서는 헬기장으로 내려서기까지 20분 가까운 하산 길에 잔설이 얼어붙어 산행이 더뎠습니다. 다시 6분을 더 걸어 다다른 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내려가 온천호텔로 향했습니다. S자를 그리며 지그재그로 걸어 가파른 경사 길을 안전하게 내려서 600미터대에 다다르자 계곡이 나타났습니다. 두 계곡의 합수점에 이르자 얼음장 밑으로 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바위를 타고 급하게 떨어지는 낙차 큰 물 흐름이 눈길을 끌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습니다.
8시36분 흰바위길 삼거리에서 하산 길을 멈추고 백암의 흰바위를 들러보고자 오른 쪽으로 난 좁다란 길로 들어선 것이 나머지 시간을 숨 가쁘게 만들었습니다. 선두대장으로부터 온천욕을 포기해도 좋다면 흰바위를 들러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무전연락을 받고서도 백암을 떠올리지 못한 빈곤한 저의 상상력으로는 들러볼 욕심이 일지 않았는데 동행한 하이맛 친구가 흰바위가 백암임을 일깨워줘 주저하지 않고 흰바위로 향했습니다. 산허리를 에돌며 숨 가쁘게 20분 가까이 걸었는데도 친구의 GPS에 0.8키로 밖에 안찍혀 1키로를 더 가서 흰바위에 오른다면 11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가 아슬아슬할 것 같아 더 이상의 진행을 포기하고 원위치를 하느라 40분을 까먹었습니다. 졸지에 맨 후미로 쳐진 하이맛 친구와 저는 서둘러야 주차장에 다다라서 식사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아래 죽어라고 내달렸습니다. 다행히 길이 좋아 속도를 낼 수 있었지만 이 산에 빽빽이 들어선 수려한 적송들에 제대로 눈길 한번 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9시25분 천량묘가 들어선 존질목 고개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지쳐서 쉬고 있는 일행 두 분을 앞섰고 조금 후 이 두 분들을 기다리는 산행대장 두 분을 만나 후미를 면했습니다. 널찍한 큰 길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샛길로 빠져 절약한 시간을 호텔단지에 들어서서 주차장을 바로 찾지 못해 또 7-8분을 까먹었습니다.
10시7분 버스가 주차해있는 백암스프링스호텔 뒷마당에 도착해 신년 첫 산행을 전부 마쳤습니다. 흰바위를 중도에 포기한 덕분에 느긋하게 떡국을 들었고 후다닥 온천욕도 마쳐 온몸이 개운했습니다. 하나 빼먹은 캔 맥주를 몇 시간 후 봉화휴게소에서 사들어 발끝가지 전해지는 알콜기로 온 몸이 짜릿했습니다..
기대했던 해오름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겨울산행의 참맛인 눈꽃들을 만나지 못해 아쉽기도 했지만 올해도 빠지지 않고 고산을 올라 새해 새아침을 맞이하며 열심히 희망을 키우겠다고 각오를 다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뜻 깊었고 기뻤습니다. 귀경길 버스에서 새벽에 출발한 구슬령을 지나는 것을 알아채지 못 할 정도로 잠에 빠진 것도 새해 첫 산행이 충분히 만족해서였습니다.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서 소원성취하시고 건강하셔서 일년 내내 안산하시고 즐산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산행사진>
*동행 :나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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