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2007. 10. 7일
*소재지 :충북 괴산
*산높이 :악휘봉 845m
*산행코스:입석마을-덕가산분기점 안부삼거리 -악휘봉
-824봉 대간분기점-은티재-은티마을
*산행시간:9시47분-15시12분(5시간25분)
*동행 :과천산사랑산악회(구 과천시산악연맹)
재작년 여름에 비를 맞으며 백두대간 종주 길에 들렀던 충북 괴산의 악휘봉을 어제 다시 올랐습니다. 그 때는 버리미기재에서 출발하여 장성봉을 거쳐 824봉에서 구간종주를 마치고 대간 길에서 좀 떨어진 악휘봉을 다녀 온 후 은티재로 내려가 은티마을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는데 대간종주가 주목적이었고 날씨도 궂어 악휘봉에서는 그리 오래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山"을 심벌마크로 삼고 있는 괴산군이 명산으로 선정한 35산 중 하나가 악휘봉이기에, 이 산만을 따로 올라도 좋겠다 싶어서 과천시산사랑산악회의 정기산행에 기꺼이 합류했습니다. 이 산을 오르면 절로 즐겁고 기쁘다 하여 악희봉(樂喜峰)으로도 불리는 악휘봉은 과연 산세가 수려하고 암봉들이 깔끔해 전체적인 느낌이 산뜻했습니다. 악휘봉을 보듬고 있는 충북 괴산은 원래는 백제 땅이었으나 고구려로 넘어 갔다가 삼국통일 후부터 신라에 예속되어 삼국의 통치를 모두 받은 보기 드문 지역으로 조령산, 덕가산, 칠보산 및 군자산 등 명산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괴산군은 산을 심볼마크로 정하고 나름대로 35명산을 선정해 지역 명산들을 보살피고 있다 합니다. 괴산군 당국의 산객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갈림길 곳곳에 해박은 표지목과 암릉 길 힘든 곳에 설치한 로프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런 정도라면 괴산군에서 산을 심벌마크로 정해서 쓴다하여 어느 누구라도 토를 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산 길에 과수원을 들러 탐스러운 사과를 사갖고 왔습니다.
사과가 실하고 맛있어 좀 더 사올 걸 하며 아쉬워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산악지대가 원산지인 사과가 전 세계에 널리 퍼진 것은 200년이 넘지 않습니다만, 사과처럼 사람들에 다양한 의미로 다가서는 과일은 이 땅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맛과 영양이 모두 뛰어나다는 이유만으로 사과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사과는 19세기 초에 미개척지 북미에서 공진화(共進化)과정을 겪으며 사람들과 가까워졌습니다. 조니 애플시드(Johnny Appleseed)라는 별명을 얻은 존 채프먼(John Chapman)은 북미지역에 사과나무를 심어 미개척지를 개간하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입니다. 아메리카대륙의 미개척지가 오늘 날처럼 아늑한 보금자리로 탈바꿈한 데는 사과를 널리 이식하고자 애쓴 존 채프먼의 노력도 한 몫 했다는 것이 정평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과는 황금기를 맞았습니다. 수많은 신품종이 개발되고 지구 절반의 땅이 사과의 서식지로 변화했습니다.
이렇듯 사과는 사람들과 서로 서로 도와가며 진화해왔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에는 사과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고 문화입니다. 저희들과 같은 보통사람들에는 사과는 달콤한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표현할 때 사과모양을 그리곤 합니다. 윌리암 텔의 용맹을 존경하는 스위스사람들에게는 사과는 강력한 믿음입니다.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화살을 쏘아 맞추는 윌리암 텔의 전설에서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부자간의 강한 믿음입니다. 아버지를 믿지 않았다면 아들의 머리는 움직였을 것이고, 그래서 표적인 사과도 흔들렸을 것입니다. 아들이 겁을 집어먹고 움직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지 않았다면 활을 쏘는 아버지의 팔이 흔들려 사과를 명중시키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뉴턴을 따르는 과학자들에는 사과는 위대한 발견입니다. 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생각해 낸 뉴턴에게는 사과는 위대한 발견이자 계시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렇듯 사과는 사람들에 친근한 과일이기에 문화가 있고 스토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침9시47분 입석마을을 출발했습니다.
다른 해라면 이즈음에는 산자락은 몰라도 산정만은 단풍이 붉게 물들어 불타고 있었을 터인데 올해는 9월 이후 잦은 비로 나뭇잎의 푸르름이 아직도 여전해, 그제 북한산 산속을 8시간 여 걸었어도 가을을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괴산IC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입석마을로 가는 길에 누렇게 익은 벼들이 넘실대는 논 뜰에 내려앉은 가을을 볼 수 있어 반갑고 기뻤습니다. 공사 중인 입석마을 앞에서 하차해 시멘트 길을 따라 걸으며 새빨간 사과가 탐스럽게 열린 과수원을 지났습니다. 논 뜰의 황금색 벼와 과수원의 빨간 색 사과들이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벌써 와있음을 일러주고 있는데 주변의 산들은 여전히 푸르렀습니다. 계곡 옆으로 난 편안한 임도 길을 따라 반시간 가량 걸어 묘지에 다다랐습니다.
입석마을을 출발한 지 1시간 반이 지나 악휘봉/시루봉 사이의 안부에 올라섰습니다.
묘지를 지나 좁은 산길로 들어서자 참나무들이 숲을 이루었고 땅바닥에 떨어진 도토리가 꽤 많았습니다. 얼마 후 집채 만 한 바위들이 흘러내린 너덜겅을 지나기 전까지는 경사도 완만하고 커다란 활엽수들이 이룬 숲 사이로 흙길이 계속되어 제가 오르고 있는 악휘봉이 악산(岳山)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너덜겅이 끝나자 된비알의 깔딱고개 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반시간 넘게 걸어올라 덕가산으로 갈리는 삼거리 안부에 올라서자 시원한 골바람이 저를 반겼습니다. 제 뒤의 후미 몇 분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배낭을 내려놓고 15분여 푹 쉬었더니 등 뒤가 써늘했습니다. 안부에서 왼쪽으로 꺾어 가파른 암릉 길을 곧바로 올라 암반에 올라섰습니다.
해발 845m의 악휘봉에 올라선 것은 정오가 조금 지나서였습니다.
안부에서 올라선 암반에서 커다란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하는 보다 쉬워 보이는 길을 버리고 오른 쪽으로 돌아 엄청 큰 규모의 슬라브 바위를 만났습니다. 두 피치로 나누어진 슬라브 바위 코스에 로프 줄이 있어 고소공포증만 없다면 하강이 어렵지는 않은 코스입니다만, 로프를 잡고 내려오느라 오랜만에 힘을 썼더니 어깨 죽지가 뻐근했습니다. 거암을 슬라브 코스로 우회하며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악휘봉에 다다랐습니다. 표지석이 세워진 정상의 암반은 일행들과 함께 빙 둘러 앉아 점심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사방이 시원스레 탁 트였습니다. 악휘봉의 가을 하늘은 청명하고 드높았습니다. 바로 하루 전에 북한산에서는 미동도 않던 단풍이 대간 길의 바로 앞 824봉을 붉게 들여 산정이 화사했습니다. 2년 전에 밟은 장성봉에서 824봉으로 이어지는 서쪽 대간길이 반가웠고, 동쪽 대간 길에 위치한 희양산의 희멀건 암벽도 여러 번 본 터라 반갑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남쪽 가까이에 칠보산과 덕가산이 선명하게 보였고 북쪽 멀리로 월악산의 영봉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악휘봉은 역시 최고의 전망지로서 전혀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13시가 다되어 악휘봉을 출발해 은티재로 향했습니다.
악휘봉를 내려서자마자 곧추 선 선바위를 만나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하산 길 비좁은 곳에 똑바로 서 있는 선바위는 그 키가 4m를 넘는 커다란 바위인데 몸이 너무 날렵해 날카롭게 보였습니다. 십 수분을 걸어 다다른 824봉의 분기점에서 대간 길과 만났습니다. 대간 길은 오른 쪽으로 이어졌고 저희들은 왼쪽으로 꺾어 은티재로 내려갔는데 길이 엄청 급했습니다. 중간에 로프를 매달아 놓지 않았다면 하산이 쉽지 않은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깊숙한 십자안부 은티재에 내려서자 먼저 온 일행들이 쉬고 있었습니다. 2년 전 여름에 큰 비를 맞으며 은티재에 혼자 내려서자 음산한 기운이 감돌아 곧바로 하산했는데 이번에는 그늘이 져 좀 어둡기는 했어도 전혀 음습하지 않았습니다. 은티재에서 맞은편으로 직진해 마분봉에 올랐다가 은티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이번 산행의 정규코스이지만, 마분봉은 3년 전에 한번 오른 적이 있는데다 전날 북한산의 암릉 길을 오래 걸어서인지 왼쪽 무릎이 아픈 듯해 무리해서 오를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마분봉을 포기하고 오른쪽 아래로 내려서서 곧바로 은티마을로 하산했습니다. 은티재에서 은티마을로 내려가는 하산 길이 고즈넉하고 편안했습니다. 중간에 쉼터도 있었고 밭에 닿기 직전 몸을 씻기에 딱 알맞은 계곡물도 있어 지친 몸을 이끌고 하산하기에 이만한 길이 어디 있겠나 싶었습니다.
15시12분 은티마을 정류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계곡에서 탁족을 한 후 물푸레나무(?) 조림지를 지나 다다른 사과밭을 그냥 지나지 못했습니다. 새빨간 사과가 너무도 탐스러워 여성 두 분을 옆에 세워 사진을 찍었습니다. 호텔에 납품한다는 사과 10개를 오천 원에 샀더니 주인 분이 즉석에서 맛보라며 1개를 더 주어 결과적으로 시중의 반값으로 산 셈이 됐습니다. 저 말고도 일행 두 분도 한보따리씩 사 들고 가 사과밭에 들어가 사진을 찍을 것을 흔쾌히 허락해준 주인분의 고마움에 얼마고 답했습니다. 백두대간 휴게소에서 캔 맥주를 사들고 내려가 산악회에서 버스정류장에다 마련한 제육볶음을 안주로 해 하산주로 가름하면서 악휘봉 산행을 마쳤습니다.
사과뿐만 아니라 산속의 다른 생물과도 공진화할 묘안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더 자주 산을 찾으며 포악한 멧돼지와 가시투성이의 명감나무와 공진화를 모색해보면 언제고 방안이 떠오를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 길만이 두려움과 고통 없이 미답의 산길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해줄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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