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2007. 12. 2일
*소재지 :충남논산
*산높이 :월성봉(다리성봉)650m
*산행코스:법계사-안부삼거리-월성봉-영주사
*산행시간:10시38분-13시12분(2시간34분)
*동행 :과천 산사랑산악회 회원
긴 시간 버스를 타고가 명산을 오르는 지방원행에서 3시간도 채 못 걸어 산행을 접기는 어제가 처음이었습니다. 이번의 산행실패는 충남 논산의 월성봉과 바랑산을 잇는 능선 길을 아홉 달 전 금남정맥 종주산행 차 이미 한번 밟아보았기에 길을 잘 못들 일이 전혀 없다고 믿어버린 나머지 갈림길에서 지도를 꺼내 제 길을 챙겨야 할 것을 그리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월성봉 출발 1-2분 후에 만난 첫 번째 갈림길에서 바로 서쪽으로 꺾었어야 했는데 그대로 직진해 북쪽으로 진행하는 바람에 목적한 바랑산은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버스가 대기하는 바랑산 남쪽의 채광리로 하산하지 못하고 그 반대방향인 북쪽의 영주사로 곧바로 내려서게 된 것도 차라리 모르는 길이었다면 당연히 체크했을 것을 한번 와봤던 길이어서 믿고 그냥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최단시간의 산행사유가 이렇듯이, 제가 이제껏 산을 오르내리며 길을 잘 못 들어 생고생을 한 알바들도 갈 길을 몰라서기보다는 길이 너무 분명하다는 생각에서 지도를 보지 않고 무조건 내달려 자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 등 찍힌다는 우리 속담의 진정한 속뜻은 아무리 믿더라도 점검해야 할 것은 반드시 사전에 챙겨서 낭패 보지 말라는데 있는 것이지, 이 사회의 신뢰시스템에 이상이 생겼으니 아무도 믿지 말라며 불신을 조장하는데 그 숨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제가 중언부언하는 것은 특히 매사를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대하고 받아들이는데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위 속담이 “너무 믿다가는 큰 코 다치니 적당하게 믿고 적당하게 불신하며 사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생활인의 지혜다.”라는 메시지로 잘 못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무엇이 옳으냐를 따지기보다는 누가 옳으냐를 가려 몇 번 옳다 싶으면 그 다음부터는 그가 말하는 모든 것들을 무조건 믿어버리는 관성의 게으름에 빠져버리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기 십상입니다. 이번 산행만 해도 그러했습니다. 30명 가까운 일행 중 단 2명만 제 코스를 탔을 뿐 저보다 한참 뒤에 월성봉을 출발한 나머지 일행들도 모두 저처럼 제 길에서 벗어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동안 길안내를 잘해온 과천산사랑산악회의 산행대장들을 너무 믿어 산악회에서 나누어 준 지도를 꺼내보고 진행방향을 챙긴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행들 거의 다가 똑 같이 길을 잘 못 든 것을 가지고 마치 뭔가에 홀려 모두가 한동안 집단환각증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한다면 이는 올바른 진단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번 알바는 챙겨야 할 것을 챙기지 않은데서 야기된 것이지 결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을 발등 찍는 도끼로 키워온 것은 어느 하나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믿어버리는 바로 그 관성의 게으름이지, 결코 믿음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전10시38분 충남 논산의 오산리에 자리 잡은 법계사를 출발했습니다.
군포사거리에서 승차한 버스가 천안을 지나 논산에 가까워지자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가 제법 드세져 이 겨울에 비를 맞고 산을 오르내릴 생각에 얼마고 긴장이 됐었는데 법계사에 다다르기 얼마 전에 비가 그쳐 다행이었습니다. 지난 3월 금남정맥을 종주할 때에 능선에서 내려다 본 법계사가 승지에 다소곳하게 잘도 들어앉았다 싶어 언제고 한 번 들러보고자 했습니다만, 막상 가까이 와서 보니 지은 지가 얼마 안 된 대형 시멘트건물이 몇 채 들어앉아 있어 그동안 단순하게 머릿속에 그려왔던 고색창연하고 아담한 그런 절이 아니어서 조금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이 절에서는 월성봉으로 바로 오르는 길이 없다하여 4-5분을 되 내려가 왼쪽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찾아들었습니다. 법계사를 오른 쪽으로 에도는 산길에 떨어진 낙엽들이 하나도 부서지지 않고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이번에 오르는 월성봉이 산객들이 별로 찾지 않는 한적한 산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법계사 출발 20분이 다되어 산죽 길로 들어섰습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넓게 퍼진 너덜겅지대에 뿌리를 박고 사는 가느다란 산죽들의 생명력이 보기보다 훨씬 강한 듯 했습니다.
11시53분 해발650m의 월성봉을 올랐습니다.
너덜겅지대를 지나자 경사가 몹시 가팔랐습니다. 지그재그로 난 된비알 길을 걸어 금남정맥 산줄기인 안부삼거리에 올라섰습니다. 11시31분에 오른 쪽으로 수락리 가는 길이 이어지는 안부삼거리에 올라 잠시 숨을 고른 후 왼쪽으로 꺾어 월성봉으로 향했습니다. 편안한 능선 길은 잠시 뿐으로 곧바로 경사진 오름 길이 계속됐습니다. 누군가가 나무에 걸어 놓은 삽자루를 카메라에 담은 후 고도를 계속 높여갔습니다. 월성봉 어깨능선에 올라서자 법계사가 자리한 왼쪽 아래로 천 길 낭떠러지 암벽이 보여 아찔했습니다. 흔들바위를 지나 곧바로 다다른 월성봉에 올라 둘러본 전망이 별 것 아니었던 것은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시야가 가려서였습니다. 지난 3월 금북정맥 종주 때 동행한 친구와 쭈그리고 앉아 점심을 들었던 월성봉 바로 아래 움푹한 곳을 지나 널찍한 헬기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12시14분 동행한 두 분과 먼저 일어나 헬기장을 떴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점심을 드느라 땀이 식어 뒤늦게 도착한 분들이 모두 점심을 다 들기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추웠습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져 바지 끝이 젖어들고 장갑에 물기가 스며들어와 손끝도 아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월 이미 한번 지나간 길이라 능선 길이 눈에 익은 듯했습니다. 헬기장을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만난 갈림길에서 서쪽으로 꺾어 내려가지 않고 별 생각 없이 북쪽으로 뻗어나간 능선을 따라 직진한 것이 알바의 시작이었음을 알아챈 것은 한참후의 일이었습니다. 동서 양쪽 사면이 밑으로 가파르게 떨어지는 능선 길을 다른 산악회의 몇 분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꽤 오래 걸었어도 길을 잘 못 들었으리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고 오로지 바지와 구두가 푹 젖기 전에 산행을 마쳐야겠다는 일념에서 산행속도를 한껏 높였습니다. 얼마 후 안경이 완전히 서려 맨눈으로 산행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선두자리를 일행 두 분에 넘겨주고 천천히 걸어 내려갔습니다.
13시12분 바랑산 북쪽 아래에 자리한 영주사에서 하루 산행을 접었습니다.
안경을 벗고 한참을 내려갔는데 표지기가 보이지 않아 길을 잘 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나침반을 꺼내 북서쪽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확인 한 후 지도를 꺼내보았습니다. 547봉에서 바랑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 북서쪽으로 나 있음을 체크 한 후 이 길이 맞다 싶은데다 곧 바로 표지기가 보였고 어떤 한분이 저를 앞질러나가 이 길이 틀림없음을 전혀 의심치 않았습니다. 얼마 후 뒤따라온 일행들과 함께 수로를 따라 내려가 넓은 마당에 세워진 석불을 만났는데 전혀 눈에 익지 않아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석불 왼쪽으로 흐르는 계곡물을 보고 길을 잘 못 들었음을 직감하고 길을 찾아보니 왼쪽 위로 능선으로 올라서는 길이 보였습니다. 다른 일행들이 모두 다시 산을 오르지 않고 그대로 내려가 버려 별 수 없이 저도 석불마당으로 내려섰습니다. 지도에는 바랑산 북쪽으로 바로 아래 관음사라는 절대신 영주사라는 절이 나와 있어 헷갈렸습니다. 관음사에서 조금 아래 자리한 큰 절이 영주사임을 알고 나자 비로소 지도에 나와 있는 월성봉에서 영주사까지 걸어 내려온 능선 길이 확실하게 잡혔습니다. 빗속에 다시 바랑산을 찾아 오르기는 무리다 싶어 영주사에서 산행을 마치고 나자 다른 때처럼 기분이 산뜻하지 못하고 씁쓰레했습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 제게 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산사의 한 낮은 적적했습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절을 찾는 길손들을 막아 주말인데도 영주사는 마냥 한가해 보였습니다. 영주사 바로 아래 지어놓은 큰 집은 물론 맞은편의 노인 분들 요양소 건물도 텅텅 비어있어 조금은 을씨년스럽기도 했습니다. 길을 잘 못 들은 저희 일행들이 이 절을 지나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 말없이 앉아계셨을 부처님께서 침묵을 깨고 제게 들려준 한 말씀은 “너희 중생들은 설사 도끼가 되어 발등을 찍을지라도 믿음 없이는 한 시도 서로 같이 살 수 없음을 명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 어리석은 제게 삶의 지혜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또 고맙습니다.
<산행사진>
*동행 :과천 산사랑산악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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