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호남정맥 종주기

호남정맥 종주기 26(밀재-생화산-곡두재)

시인마뇽 2008. 5. 1. 19:40
                               호남정맥  26구간


      *정맥구간:밀재-대각산-곡두재

      *산행일자:2008. 4. 26일(금)

      *소재지  :전북순창/전남담양 및 장성

      *산높이  :생화산526m, 대각산528m

      *산행코스:밀재-생화산-도장봉-대각산-감상굴재-곡두재-월성리삼거리

      *산행시간:9시36분-17시26분(7시간50분)

      *동행    :나홀로

 


  늦가을에서 초봄까지는 산행 중에 맞는 비가 반가울 리 없겠지만 한낮의 기온이 섭씨25도까지 치솟는 요즈음에 내리는 비라면 단비임에 틀림없습니다. 24절기의 하나인 곡우(穀雨)가 4월20일 경에 잡혀있는 것도 이 때 내리는 비가 농사에 큰 도움이 되는 단비이기 때문입니다. 산불예방을 위한 입산금지 조치로 3월 중순부터는 어느 산을 오를 수 있을까 고심하는 산객들이 많을 것입니다. 국립공원은 대부분의 산행코스가 닫혀있으며 그나마 열린 길도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들어 흙먼지가 풀풀 날기 일쑤입니다. 4월에 접어들면 햇살은 따가워지는데 나무들이 해를 가리지 못해 산행 중에 느끼는 열기가 초여름에 못지않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산행사정이 이러하기에 많은 산객들이 농민들 못지않게 봄비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 이제는 지식정보사회로 바뀌었어도 단비에 대한 갈증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지식이나 정보에 대한 욕구에 못지않게 시대를 뛰어넘어 단비를 갈망하는 것은 물에 대한 변함없는 갈증 때문입니다. 우리 몸의 60-70%가 물이고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의 71%가 바다라는 사실들이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밀접하게 물과 관계를 맺고 있는 가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것은 물의 순환시스템입니다. 이 순환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물의 순환은 멈출 것이고 그리되면 인류는 필요한 물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파멸의 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바다로 흘러내려간 물이 다시 육지로 순환되지 않는다면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져 고도가 낮은 대륙이 침수될 것이고 물이 부족한 육지의 나무들은 광합성을 할 수 없어 산소량이 엄청 줄어들 것입니다. 이 모두가 대륙에 살고 있는 우리 인류에는 무서운 재앙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바닷물이 제때에 적정량의 비로 바뀌어 대륙에 내려주어야 물의 순환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됩니다. 가뭄과 홍수는 모두 물의 순환시스템의 이상에서 오는 것입니다. 물의 순환이 이토록 중요하다면 순환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치산치수가 중요한 것은 물의 선순환을 가능케 해서입니다. 치산치수의 요체를 물의 순환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해 가뭄과 홍수를 예방하는데 두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어제 하루 호남정맥을 종주하며 봄비를 만나 기뻐한 것은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신록의 5월을 준비하는 온 산의 산식구들 모두가 오전 중에 내린 단비를 한껏 반가워했습니다. 풀잎과 나뭇잎 및 풀꽃과 나무 꽃등 산에다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식물들 모두가 기뻐했고 공중을 날며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니는 산새들도 비가 그치자 환호성을 내질렀습니다.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답답해하던 산식구들이 활기를 띠자 온 산에서 약동하는 생명의 소리가 요동치는 것 같았습니다. 옛날에 어르신들이 비가 내린다고 하지 않고 비가 오신다고 이르신 본뜻을 충분히 혜량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12시간의 긴 산행을 마치고 정읍으로 나가 한 찜질방에서 묵으며 모처럼 푹 자고나서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을 했더니 온 몸이 개운해 추령의 모텔에서 묵지 않고 여기 찜질방으로 옮기기를 참 잘했다 싶었습니다. 아침7시 반경에 찜질방을 나서 시내버스로 정읍역으로 나갔습니다. 저녁6시32분발 새마을호를 예매한 후 5-6분 거리의 버스터미널로 옮겨 아침을 들었습니다. 조금은 후져 보이는 음식점의 주인할머니가 차려준 백반을 5천원에 사들었는데 깔끔한 반찬을 꽤 여러 가지 내놓아 조반상이 풍성하고 맛있었습니다. 8시40분에 정읍을 출발하는 순창행 첫 버스로 복흥으로 가서 택시를 타고 전날 내려선 밀재로 이동했습니다. 


  아침9시36분 밀재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에 발을 들였습니다.

전남담양과 전북정읍을 잇는 897번 도로가 이 고개로 났지만 넘나드는 차량들이 그리 많지 않은 듯 차도가 한산했습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려 우의용 자켓을 꺼내 입고 산행을 했더니 얼마 되지 않아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산행시작 반시간 만에 삼각점이 박혀있는 520.1봉에 올랐는데 안개로 시야가 막혀 하루 전에 지나온 추월산 산줄기가 조망되지 않았습니다. 10분을 쉰 후 서쪽으로 확 꺾어 10여분 동안 급경사 길을 조심해서 내려가자 평탄한 능선 길이 이어졌습니다. 이 산을 통째로 전세 낸 듯 마음껏 재잘거리는 새들과 벗하며 편안한 능선 길을 걸어 참나무가 뿌리박은 초라한 묘지가 들어선 나지막한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11시28분 꽤 넓은 터에 상석도 없이 달랑 6기의 묘지만 들어선 묘역 앞에 다다랐습니다.

참나무 묘지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가다가 여러 기의 묘지가 들어선 곳에 다다라 왼쪽으로 난 넓은 임도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중간에 왼 쪽 풀숲으로 들어가 곧바로 오른 쪽으로 꺾어 안부로 내려갔다가 다시 묘지가 들어선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이정표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묘지가 들어선 것으로 보아 호남정맥 능선 길이 길지임에 틀림없나봅니다. 오른 쪽으로 풀숲길이 갈리는 안부에서 또 다른 6기 묘역에 다다라 북서쪽으로 진행하는 동안 해가 잠깐 들어 모처럼의 단비가 이렇게 그치나 싶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얼마 후 느티나무 거목이 들어선 안부에 다다라 사진을 찍었습니다. 앞서 지나온 안부에서는 한 뿌리에서 여러 줄기가 뻗어난 물푸레나무를 보고 나무도 대가족이 따로 있나보다 했는데, 훨씬 더 큰 느티나무를 보자 이 나무는 대가족의 세대주를 뛰어넘어 씨족사회의 족장처럼 보였습니다.


  12시13분 해발 526m의 생화산을 올랐습니다.

느티나무 안부에서 5-6분을 걸어 은행나무를 심어놓은 또 다른 안부에 도착했습니다. 오른 쪽 바로 아래로 시멘트길이 나있는 아랫마을이 금방동이 틀림없다면 밀재에서 금방동갈림길까지 2시간이 걸린 셈인데, 이 시간은 “실전 호남정맥 종주산행”이라는 책자에 나와 있는 시간보다 반시간이 늦은 것으로 이 속도로는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곡두재에서 종주를 마치고 월성리로 내려가 17시35분에 정읍행 버스를 타기가 어려울 것 같아 초조했습니다. 야트막한 산마루를 넘어 다다른 대나무밭 안부에서 생화산을 오르는 25분간의 산 오름이 가팔라 생각만큼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정맥 길에서 4-5분을 더 걸어 생화산에 올랐다가 바로 되내려와 10분여 쉬면서 숨을 골랐습니다. 편안한 쉼을 끝내고 서쪽으로 내려가 도장봉으로 향하는 중 저보다 연세가 더 들어 보이는 한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저와는 반대방향으로 호남정맥을 종주 중인 이분은 10시 반에 곡두재를 출발했다 합니다. 제 걸음으로 4시간은 조금 넘겨 걸릴 것으로 추정되는 거리를 단 2시간에 주파한 이 분의 빠른 주력에 놀라 벌어진 입이 도장봉에서 만난 이분의 일행들로부터 한참 뒤쳐져 오는 분들도 많이 있음을 전해 듣고 나서야 다물어졌습니다. 


  13시46분 강두재에 도착했습니다.

생화산에서 얼마만큼 내려선 후로는 오르내림이 그다지 심하지 않아 산악마라톤을 하듯이 뛰었습니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 왼쪽으로 좁은 길이 갈리는 분덕재에 다다른 후 연초록 새 잎으로 갈아입은 낙엽송림과 둥굴레군락지를 거쳐 13시 정각에 해발 459m의 도장봉에 도착했습니다. 무주공산 산악회의 두 분이 비좁은 도장봉에서 점심을 들면서 사과를 권해 와 고맙게 받아먹은 후 오른 쪽으로 7-8분을 내달려 수령 300세의 느티나무가 서있는 비포장 길에 닿았습니다. 왼쪽 멀리로 장성호가 보이고 오른 쪽 바로 아래 어은리 마을이 자리한 느티나무 안부에서 임도를 따라 1-2분을 걷다가 오른 쪽 산길로 올라서서 솔밭 길을 걸으며 후미로 쳐진 무주공산 산악회원들을 여러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시멘트길이 보이는 밭 위의 사거리 임도를 지나 나무들을 베어낸 벌거숭이 봉우리에 올라가 방향을 잡느라 잠시 머뭇거리다 오른 쪽으로 난 넓은 묘지진입로(?)를 따라 내려가 강두재의 시멘트길로 들어섰습니다. 전답사이로 난 시멘트농로 길을 지나 송전탑 옆 묘지에서 점심을 들며 시간을 체크해보니 생화산에서 강두재까지 예상보다 반시간이상 빠른 1시간33분이 걸렸습니다. 마음 편히 점심을 든 후 까다로운 묘지 길과 밭길을 지나 오른쪽 아래로 시멘트 길이 이어지는 고개를 가로질러 대각산으로 향했습니다.


  15시16분 49번 도로가 지나는 감상굴재에 이르렀습니다.

시멘트 길의 고개 마루를 건너 짧은 시간동안 완만한 능선 길을 걸어 오르는 중 봄비를 머금고 있는 파르스름한 현호색 꽃을 사진 찍었습니다. 대각산이 가까워지자 오름 길이 가팔라졌습니다. 가파른 비알 길을 올라 다다른 능선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진행하다가 잠시 암릉 길을 걸었습니다.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어 올라선 해발528m의 대각산에 삼각점이 서있었고 빙 둘러 팥배나무(?)들이 하얗게 꽃을 피워 비좁은 정상이 환해 보였습니다. 정상을 출발해 밋밋한 봉우리를 넘어 다다른 또 다른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급강하했습니다. 묘지를 지나 내려선 넓은 임도에서 표지기가 보이지 않아 왔다가다 하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임도를 따라 걷다 밭을 지나서 신화회관이 자리한 감상굴재로 내려선 후 이 고개가 전남장성의 북하면과 전북순창의 복흥면을 가르는 경계선상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49번 차도를 건너 북하면의 강선마을로 들어서자 273년이 되었다는 커다란 느티나무 옆에 마을 정자가 들어 앉아 있어 한 여름이라면 이곳에서 쉬면서 식수를 보충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시멘트 길 농로를 거쳐 마지막 가옥을 지나 다다른 고개마루에서 시멘트길과 벗어나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임도 길로 올라서 2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16시51분 곡두재에서 종주산행을 마친 후 월성리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감상굴재에서 곡두재에 이르는 능선 길에는 430봉이 가장 높은 봉우리여서 그다지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서인지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20분 가까운 편안한 쉼을 끝내고 임도를 따라 북동쪽으로 진행하다가 시멘트 길의 안부사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왼쪽으로 10여m를 옮겨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묘지를 지나고 소나무 밭길을 가파르게 올라 430봉에 이르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다른 두 번째 430봉에서 북서쪽으로 꺾어 내려가다 마지막 407봉을 넘어 사거리안부로 내려서자 오른 쪽으로 넓은 임도가 갈리는데 이곳이 곡두재인 줄 모르고 직진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간 지도를 보고 곡두재는 차가 다닐만한 비포장차도가 지나는 고개로 잘 못 알고 그럴 만한 곳을 찾아 그대로 진행하다가 인삼밭이 나오고 가파른 고봉이 가까워져 곡두재를 그냥 지나쳤음을 직감했습니다. 오던 길로 5분간 되돌아가 곡두재에 이르러 임도로 내려서서 여기 곡두재에서 추령까지 입산이 금지된 길이니 무단출입을 하지 말라는 경고 글이 적혀 있는 플래카드를 보았습니다.


  17시26분 월성리 삼거리 정류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접었습니다.

곡두재에서 월성리가는 길도 아침에 택시기사분이 얘기한 15분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중간에 옷을 갈아입느라 10분 넘게 지체됐지만 그 시간을 빼도 25분은 족히 걸렸습니다. 곡두재에서 내려서자 먼발치 농로에 세워진 무언가가 보였는데 처음에는 초소인가 했다가 조금 가까워지자 허수아비로 보이더니 근접거리로 다가가서야 오토바이임을 알았습니다. 그 옆으로 지나 오토바이를 확인했으니까 망정이지 먼 길로 돌아갔다면 이 산행기에 초소나 허수아비를 보았다고 기록했을 것이다 생각하자 부정확한 정보를 갖고 예단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가 실감됐습니다. 바람에 찰랑거리는 못자리의 흙탕물이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월성리로 나가 구암사입구의 산중 음식점 앞에서 10분 가까이 기다렸다가 정읍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자연 로고스의 근본은 순환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 뿐만 아니라 대기도 제대로 순환해야하고 모든 생명체도 흙에서 시작해서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시스템의 산물일 것입니다. 바위도 풍화과정을 겪으며 흙으로 변화해가고 이 흙도 압력을 받아 바위로 바뀝니다. 하늘의 별도 일생이 있습니다. 46억 년 전에 생성된 태양도 50여억년이 지나면 그 존재가 끝나가고  그 자리에 언젠가는 새로운 별이 탄생할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질서의 근본은 순환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흐르는 시간과 벗하며 산줄기를 종주하는 것도 생명의 순환과정의 하나라면 호남정맥 종주산행도 자연의 로고스에 잘 순응하는 것이다 싶어 계속 이어갈 뜻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