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호남정맥 종주기

호남정맥 종주기 27(곡두재-소죽엄재-유군치)

시인마뇽 2008. 5. 7. 10:29

                                 호남정맥 종주기 27


      *정맥구간:곡두재-소죽엄재-유군치

      *산행일자:2008. 5. 4일(일)

      *소재지  :전남순창및 정읍/전남장성

      *산높이  :백암산741m, 내장산764m

      *산행코스:월성리삼거리-곡두재-백암산-소둥근재-내장산-유군치-내장사

      *산행시간:9시15분-18시5분(총8시간50분/구간종주7시간30분)

      *동행    :나홀로

 

 

  입하(入夏)를 며칠 앞두고 내리는 봄비는 곡우(穀雨)임에 틀림없기에 웬만하면 고맙고 반가운 마음으로 비를 맞으며 끝까지 걷고자 했습니다. 처음 4-5분간은 지난주에 밀재-곡두재를 종주하며 만났던 봄비 정도려니 생각해 땀도 식힐 겸 오히려 잘됐다 했는데 이런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이내 바람이 거칠어지고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뿌리기 시작하자 곡우려니 했던 이번 비가 이참에 아예 일찌감치 여름을 불러들이자고 작정하고 내리는 소낙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빗줄기가 조금 더 굵고 강하속도가 조금만 빨랐다면 여름비와 다를 바 없다 싶었던 것은 이 비가 불러들인 천둥소리였습니다. 처음에는 구름 위를 비행하는 여객기 소리인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인지 식별이 잘 안됐는데 소리가 더 커지고 더 잦아지자 천둥소리가 틀림없다는 판단이 섰고 그런 후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산행 중 이런 비를 한두 번 만난 것도 아니기에 이내 평정을 되찾았습니다. 얼마간 고심 끝에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추령을 30-40분 남겨두고 유군치에서 내장사로 내려섰습니다. 제가 유군치에서 내장사로 하산한 것은 꼭 굵은 빗줄기를 동반한 천둥소리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내장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연봉들 중 신선이 노닐다 갔을 신선봉만은 헬기장이 들어설 정도로 넓은 공터가 있어 이 산의 주봉으로 자리 매김할 만한 편안한 봉우리지만, 그 밖의 고봉들은 오르내리기가 결코 만만치 않은 나름대로 성깔이 사나운 암봉들이 대다수입니다. 이런 봉우리들을 몇 개 오르고 나자 뾰족 봉우리를 오르내리느라 날이 선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은 생각이 생겨 아늑하고 포근한 내장사로 하산했습니다.


  제가 내장사를 처음 찾은 것도 20여 년 전 한 여름의 비오는 날이었고, 집식구들과 함께 왔던 두 번째에도 빗줄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비가 내리는 내장산의 공원길을 걸으면서 가을날의 영화를 뒤로 하고 늦은 봄날 온 몸으로 비를 맞고 있는 한가한 이 길이 보통사람들이 걸어오고 걸어갈  삶의 길이다 싶어 누구에게라도 이 길을 혼자서 비를 맞으며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습니다. 도저히 제 머리로는 가을날의 새빨간 단풍 색을 끌어낼 수 없는 연초록 단풍나무들이 길 가에 가지런히 서 있었고, 덥수룩한 수염을 막 깎아낸 듯 잔디밭이 깔끔해 보였습니다. 내장사로 들어가는 길에 오랜만의 봄비를 마다하지 않고 맨몸으로 흠뻑 비를 맞고 있는 연못을 보자 단 몇 시간을 못 참아 우의로 몸을 가린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내장사 경내로 들어서자 천년을 지켜온 그윽하고 아늑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산허리를 에워싼 구름들도 대웅전에 안치된 부처님의 눈치를 살피며 세를 더해 산 아래로 내려갈 것인지 아니면 이쯤해서 산꼭대기로 물러설 것인지 고심하는 빛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부처님이 오시는 길을 밝히는 연등이 걸리지 않았다면 화사함이라곤 손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내장사 경내가 석가탄일이 열흘도 남지 않았는데 하나도 부산하지 않았습니다. 공원 안의 가게들이 거의 다 문을 닫을 정도로 한 적한 공원길을 걸으며 사람들을 집 안에 붙잡아두는 일을 누구보다 잘해내는 것이 바로 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초록 단풍나무들이 봄비를 맞아가며 벌써부터 차분히 가을날의 단풍제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비에 묶여 누구 하나 이 나무들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면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한 동안 한 자리에 꼼짝 않고 멈춰 서서 이 나무들을 지켜보다 카메라에 옮겨 담아왔습니다.


  주일미사를 올리고자 아침 일찍 정읍의 성당을 찾았습니다.

하루 전 대전으로 내려가 고교동문들과 함께 인근의 도덕봉을 오른 후 호남정맥 종주를 이어가고자 정읍으로 이동해 찜질방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새벽같이 서둘러 아침6시 미사를 올린 후 떡집과 과일가게를 들러 점심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일전에 들렀던 조촐한 한식집에서 할머니가 차려준 백반으로 배를 불린 후 8시40분에 출발하는 순창행 버스에 오르자 등산복 차림의 아주머니 한분도 뒤따라 승차했습니다.   


  아침9시15분 월성리 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정읍출발 35분후 월성리삼거리에 도착한 버스에서 하차하여 곡두재로 향했습니다. 동리를 지나며 흘낏 본 낡아빠진 안내벽보의 간첩식별요령이 머릿속에 남은 것은 이 벽보를 붙였던 그 옛날만 해도 저처럼 혼자서 산줄기를 타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간첩 같다고 신고를 당했을 것이 뻔했을 텐데 그동안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지난 주 하산 길에 보았던 흙탕물이 가득했던 논에 그새 모내기를 마쳐 연초록 벼들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곡두재로 올라서자 이번에는 백양사로 내려가는 길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인근 복흥의 택시기사 한분이 일본이 지난 강점기에 우리나라의 기를 끊어놓고자 산줄기를 잘라내고 이곳에다 백양사로 넘어가는 길을 냈는데 해방 후 이 길을 메워 없애고 다시 산줄기를 이어놓았다고 전해주었습니다.


  9시45분 곡두재를 출발해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인삼밭을 지나자 철망으로 울타리를 친 남의 집 밤나무 밭 안으로 마루금이 나 있어 이어가지 못하고 별 수 없이 왼쪽 능선으로 옮기느라 물이 흐르지 않은 지곡을 건넜습니다. 지곡을 건넌 다음 된비알 길을 오르는 중 새벽3시에 추령을 출발했다는 한 종주 팀의 선두 한분을 만났습니다. 곡두재에서 백학봉까지는 출입이 금지된 비탐방로여서 표지기도 없고 로프도 걸려 있지 않아 각자 알아서 자기 안전을 챙겨야했기에 제법 가파른 바위 길을 조심해서 올랐습니다. 길지 않은 직등의 바위 길을 오른 후 산죽 길을 지나서 다다른 전망바위에서 왼쪽 아래 골짜기를 내려다보자 꼭 11년 전에 집사람과 함께  거닌 백양사 경내가 한 눈에 들어와 반가웠습니다. 곡두재를 출발 1시간 남짓 동안 된비알 길의 산 오름을 모두 끝내고 무명봉에 다다라 잠시 쉬었다가 구암사와 백학봉 양쪽으로 길이 갈리는 안부사거리에 도착했는데 그 시각이 11시15분이었습니다.


  11시56분 해발741m의 백암산을 올랐습니다.

구암사 삼거리로 이름 붙여진 안부사거리에서 똑 바로 7-8분을 올라 헬기장을 지났고 이내 722봉에 다다르자 활짝 핀 철쭉꽃들이 봉우리를 밝혔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이어지는 능선 길은 정식 탐방로여서 표지목도 세워져 있었고 길도 넓고 편안해 속도를 냈습니다. 시야가 확 트인 암릉 길에서 점심을 들고 있는 산객들과 인사를 나누며 북서쪽으로 진행해 엄청 큰 암봉인 도집봉을 왼쪽으로 우회한 다음 10분을 가파르게 올라 백암산의 주봉인 상왕봉에 올라섰습니다. 내장산국립공원을 대표하는 산은 내장산이고 절은 백양사라고 하더라도 이 백양사를 감싸고 있는 백암산의 최고봉인 상왕봉에 삼각점은 모르더라도 표지석 하나 없어 처음 얼마간은 정말 상왕봉인지 긴가민가했습니다. 상왕봉에서 20분 가까이 쉬고 난 후 온 길로 몇 걸음 되돌아가  북서쪽으로 난 길로 들어서야 했을 것을 곧바로 진행해 자칫 사자봉으로 갈 뻔 했는데 추령에서 출발했다는 한 부부가 순창새재로 가는 제 길을 가르쳐주어 큰 알바를 면했습니다.


  13시15분 소둥근재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상왕봉에서 순창새재로 갈리는 길이 처음 얼마간은 급하게 내려가다가 이내 길이 평탄해져 최대한 빨리 걸었습니다. 표지목이 세워진 두 곳을 지나고 640봉을 넘어 순창새재에 이르기까지 45분이 걸렸습니다. 직진 길은 막혀 있고 왼쪽으로 입암산과 오른 쪽으로 까치봉으로 가는 길이 갈리는 순창새재에서 오른 쪽 길로 들어서 소둥근재로 내려섰습니다. 소둥근재에 조금 못가서 순창 가는 버스를 같이 탔다가 추령에서 하차해 산줄기를 타고 백양사로 남진 중인 아주머니를 만나 반가웠습니다. 소둥근재에서 점심을 들면서 내내 의아했던 것은 종주산행에서 금기사항인 계곡을 건넌 점입니다. 이는 분명 순창새재에서 제가 걸어 내려온 길이 마루금이 아님을 뜻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정맥 길은 순창새재에서 비탐방로라며 막아놓은 직진 길로 들어서야 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딱 점심을 들고 나서 13시25분에 소둥근재를 출발해 까치재로 향했습니다. 가파른 길을 20분 넘게 걸어 580봉 어깨에 올라선 후 몇 분을 더 걷자 왼쪽에서 합류하는 흐릿한 길이 보였는데 이 길이 혹시 순창새재에서 직진해 이어지는 정맥 길이 아닌가 싶은데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한참을 더 걸어 앞 뒤 큰 바위사이에 자리한 까치봉1.1Km 전방의 안부에 도착해 시간을 점검해보니  14시 정각이었습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고 바람이 거칠게 불어 오후에 비가 내린 다는 일기예보대로 비가 오는 것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15시40분 내장산의 주봉인 해발 763m의 신선봉에 올라섰습니다.

1.1Km 남은 까치봉을 오르기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경사도 급하고 곧바로 비가 쏟아질 것 같아 마음도 다급했습니다. 왼쪽으로 암벽이 받쳐주는 암릉 길을 걸어올라 신선봉행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해 300m남은 까치봉을 들를까 말까로 잠시 멈칫했습니다. 코앞까지 와서 그냥 지나치기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까치봉으로 내달렸지만 암릉 길을 오르내리느라 10분이 넘겨 걸려 14시45분에 까치봉을 올랐습니다. 내장산을 일주할 생각으로 까치봉을 오른 한 분을 만났는데  이 분은 큰비를 내릴 것 같은 먹구름을 보고 그대로 하산 할 뜻을 내비춰 저 혼자서 삼거리로 되돌아 왔습니다. 암릉길에서 만난 비가 삼거리로 돌아오자 더욱 세차게 뿌려 배낭카바를 씌우고 우의를 입는 등 소나기에 대비해 중무장을 한 후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신선봉으로 내달렸습니다. 5년 전 가을에 지난 이 길이 기억에 남아 신선봉 조금 못가서 두 갈래로 갈렸다가 바로 밑에서 합쳐지는 산길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헬기장이 들어선 신선봉은 신선들이 무리지어 쉬어가도 될 만큼 공터가 넓어 백암산의 상왕봉이나 바로 전에 들렀던 까치봉과 대비됐습니다. 궂은 날씨로 골짜기 아래 자리한 내장사에 몰아칠 삭풍을 막아주는 내장산 북쪽 산줄기의 서래봉, 불출봉과 연자봉의 자태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안타까워하며 삼각점이 세워진 해발 763m의 신선봉에서 바로 내려가 장군봉으로 향했습니다.


  17시15분 유군치에서 추령 행을 포기하고 오른 쪽의 내장사 길로 내려섰습니다.

왼쪽 아래 금선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 안부를 지나 북측사면이 절애의 암벽인 고봉을 넘었습니다. 비탈길을 올라 해발 671m의 연자봉에 올라서자 바로 아래로 케이블 카 승강장이 보였습니다. 20여 년 전 동서네 가족4명과 저희식구4명 등 모두 8명이 내장산 입구에서 야영을 한 후 이튿날 아침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며 비를 흠뻑 맞고 있는 8월의 내장산을 조망한 기억들이 자연스레 되살아났습니다. 연자봉에서 똑바로 내려섰다가 북측사면이 절벽인 암릉길을 걸어 장군봉 바로 아래 안부에 다다르자 잠시 멈칫했던 비가 다시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비가 불러들인 천둥은 처음에는 그 소리가 작아 여객기가 지나는 소리이려니 했는데 이내 빗줄기가 굵어지고 천둥소리가 커지자 장군봉을 오르는 길이 더욱 가파르게 느껴졌습니다. 16시43분에 해발696m의 장군봉에 오르자 산행기록을 남기기가 엄청 불편할 만큼 비바람이 드셌습니다. 내장사로 표시된 길을 따라 5분을 내려가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진행해 유군치에 다다르기까지 반시간여 비를 맞고 나자 구두 안으로 스며든 빗물이 양말을 다 적셔 모처럼 제대로 우중산행을 한다싶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유군치에서 추령으로 직진할 것인가 아니면 왼쪽 아래 내장사로 내려설 것인가는 벌써 마음속으로 결정을 했으면서도 재빨리 움직이지 못한 것은 자기합리화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산행을 계획할 때부터 추령까지 진출하겠다고 결정한 일을 비가 좀 많이 내리고 바람이 거칠게 분다고 포기하고 내장산으로 내려가는 것이 뭔가 모르게 심약해 보이는 것 같아 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내적갈등을 해소한 것은 내장사로 내려갈 만한 새로운 명분이었습니다. 다음 종주산행이 추령에서 개운치까지 6시간이 채 안 걸리는 짧은 구간이어서 유군치에서 출발한다 해도 문제될 것이 없겠다는 것과, 내장사로 내려가 함께 걸은 공원길을 먼저 간 집사람을 떠올리며 다시 걸어보고 싶다는 새로운 명분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자기합리화과정을 거친 후에야 마음 편히 내장사 길로 내려설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기합리화는 때때로 산행을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기에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갈림길에서 어느 한길을 택해 한참을 갔는데도 표지기가 나타나지 않으면 일단은 멈춰 서서 이 길이 맞는가를 점검해야 맞습니다. 그럼에도 그냥 진행하는 것은 얼마만큼 고민해 택한 길인데 제 길이 아닐 리가 없고 조금만 더 가면 틀림없이 표지기가 나타나리라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설사 멈춰 서서 지도를 꺼내보고 산행기를 읽은 후에도 지도가 틀렸고 산행기가 잘못 기록되었다고 믿으며 그대로 진행하다가 결국은 큰 알바를 하고나서야 잘못된 자기합리화로 사서 생고생을 했음을 인정한 일도 몇 번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기합리화가 인지부조화를 해결하기위한 수단으로 쓰일 때에는 상당히 위험하다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이 엘리엇 에런슨과 캐럴태브리스가 그들의 공저 “거짓말의 진화”에서 지적한 거짓말의 진화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수입한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고 믿어온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는 과학적인 증거를 만나게 되면 인지부조화를 겪게 됩니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입쇠고기가 안전하다고 믿어온 사람들이 모 방송국의 PD수첩 프로그램을 보았다면 엄청 심한 인지부조화를 겪었을 것입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길이라고 확신한 어느 산 꾼이 이제껏 걸어온 길이 틀린 길이라고 알려주는 이정표를 보고나서 느끼는 당혹스러움과 같은 것입니다.  이 경우 우리들의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과학적인 증거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조작된 것이라며 그 증거에 대항할 만한 새로운 증거를 찾아나서는 일입니다. 다시 출발지로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장난으로 표지목을 돌려놓았다고 자기의 결정을 합리화하며 그대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저도 가끔은 지도가 잘못됐다거나 나침반의 바늘이 고장 났다며 건방을 떤 일이 있는데 이 모두가 잘못된 자기합리화의 결과였음을 실토합니다. 자기합리화과정이 길면 길수록 견고하면 견고할수록 영원히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재빨리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용기와 유연함이 생활인의 지혜이다 싶어 자기합리화에 대한 제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18시10분 내장사에서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유군치에서 반시간을 걸어 내려가 공원 안 차도에 다다랐습니다. 왼쪽으로 꺾어 내장산으로 가는 길이 참으로 고혹적이어서 잠시 집사람을 불러내 같이 걸었습니다. 생전에 그녀도 이 길을 함께 걸으며 비 맞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 공원의 주인인 나무들이 비를 맞는데 객인 저희들이 우산을 받쳐 들어서야 예의가 아닌 것을 잘 알고 행했기 때문입니다. 내장사 경내로 들어서자 대웅전 앞마당의 석탑이 비를 맞고 서있었습니다. 이 비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세월의 때마져 씻겨 내려가서인지 너무 말끔한 석탑이 천년고찰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만, 부처님의 온후함이야 비가 온다고 덜해지는 것이 아니기에 경내는 여전히 포근하고 아늑하게 느껴졌습니다. 정읍의 택시를 불러 버스터미널로 이동했습니다. 속옷을 갈아입은 후 19시20분 발 강남 행 고속버스에 올랐습니다. 빗줄기도 여전했고 주말의 길 막힘도 여전했습니다. 24시 반이 다되어 강남터미널에 도착했고 새벽 1시반경에 산본 집으로 돌아와 5월의 첫 원행 길을 마무리했습니다.


  산길은 혼자 걸었지만 생각은 함께 했습니다.

빗속의 산길을 오랜 시간 혼자 걸었어도 외롭다거나 힘들지 않은 것은 생각만은 함께 해서였습니다. 이 산의 주인들인 나무와, 그리고 새들뿐만 아니라 큰 비를 불러온 먹구름과도 묵언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집사람과도 생각을 함께 했습니다. 생각을 함께한 산 친구들이 많이 있어 5년 만에 다시 찾은 내장산 종주 길이 조금도 지겹거나 힘들지 않았습니다. 과연 신록의 5월은 계절의 여왕다웠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