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유군치-추령봉-개운치
*산행일자:2008. 5. 21일(수)
*소재지 :전북정읍/순창
*산높이 :추령봉573m, 망대봉556m
*산행코스:내장사입구-유군치-추령-추령봉-복룡재-여시목
-두들재-망대봉-개운치
*산행시간:10시40분-17시35분(6시간55분)
*동행 :나홀로
종주계획을 짤 때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떻게 대중교통을 이용해 산행을 마칠 수 있는 가입니다. 저처럼 혼자서 산줄기를 종주하는 산 꾼들에는 산행비용의 상당부분이 교통비이기에 과감하게 택시이용을 줄여야 산행경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통상 시골 길에서는 버스 삯보다 10배 이상 비싼데다가 시내에서 들머리까지 대개가 장거리여서 택시를 탈 경우 교통비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제가 버스를 고집하는 것은 꼭 교통비절감만을 위해서는 아닙니다. 종주산행이 아니면 갈 일이 전혀 없는 오지를 구석구석 찾아 들르는 버스를 타야 그곳 시골 분들을 만나 뵙고 이런저런 현지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71년 여름 저 혼자 지리산을 종주한 후 마천에서 남원 가는 버스에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40대의 남자 한분이 자리를 같이 했는데 이 분이 제게 지리산 공비들의 암약 상을 생생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약간 취기가 돈 이 분께서 당신도 젊어서 공비로 암약했다며 그 때의 아지트가 칠선동 계곡에 있는데 다시 그 아지트를 찾아가라면 못 찾아 갈 정도로 칠선동계곡이 오지 중의 오지라고 일러주었습니다. 1970년 2월 덕유산 설산산행을 마치고 무주로 나와 남원까지 전북여객버스로 이동했습니다. 앞자리에 앉은 제게 무진장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 차장은 20대의 청년으로, 이 청년의 도움으로 남원의 차장숙소에서 하룻밤을 잘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택시를 타고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인연들이 저를 기다리는 것 같아 웬만하면 버스를 타겠다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멍청하게 꺼놓은 타임 벨이 울리기를 기다리다가 아침 5시가 지나서 일어났습니다.
아침밥도 거르고 주섬주섬 짐을 꾸린 후 택시를 잡아타고 금정역으로 이동해 아침5시50분 경 천안행 전철에 올라탔습니다. 금정역에서 1시간 20분 걸리는 천안역까지 가서 7시11분에 이 역을 출발하는 정읍 행 기차를 타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아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음 열차로 가기로 마음을 편히 먹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발차 2분전에 전철이 천안역에 도착해 간신히 출발 직전의 호남선 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습니다.
오전10시40분 내장사 일주문 지나 유군치 갈림길에서 하차했습니다.
정읍터미널 앞 정류장에서 171번 시내버스를 탔더니 마침 이 버스가 공원안 내장사까지 들어가는 차여서 15분 이상 산행을 앞당길 수 있었습니다. 오른쪽 시멘트 길로 들어서 유군치로 오르는 길에 십 수 분간 계곡을 따라 걸으며 사흘 전에 내린 비로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계곡에서 벗어나 왼쪽 비알 길을 오르는 중 뒤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 뒤돌아보았더니 10여m 후방에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산위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저의 존재를 알리고자 “앗”하고 기합을 주어 큰 소리를 보냈더니 어슬렁거리든 멧돼지가 이 소리에 놀랐던지 허겁지겁 산 아래로 내달음질 쳤습니다. 멧돼지에 등을 보이며 그냥 오를 수는 없어 메시지를 보낸 것인데 제 발신음이 너무 컸나 봅니다. 제가 멧돼지를 보고 조금 놀란 것은 멧돼지의 출현 그 자체였지 저처럼 괴성을 질러댄 것이 아니었기에 지나놓고 보니 남의 땅에 들어선 제가 마치 주인인양 행세하며 과잉대응을 한 것 같아 미안했습니다. 멧돼지는 산 아래로 내려갔고 저는 산 위로 계속 올라 유군치에 다다랐습니다. 공원 안 표지목에 표기된 “유군재”와는 달리, 임진왜란 때 승병장 희묵대사가 순창에 진을 치고 공격해오는 왜군을 이고개로 유인하여 대승을 거두었다는 내용이 실린 고개 마루 안내판에는 “유군치(留軍峙)”로 적혀 있었습니다. 이 고개 유군치에서 절편을 꺼내먹느라 10분을 쉬었습니다.
11시24분 유군치에서 정맥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유군치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을 따라 15분을 채 못 걸어 전망봉에 오르자 서래봉에서 시작되는 내장산의 연봉들이 시계반대방향으로 장대하게 펼쳐져 그 한 가운데 폭 들어가 자리한 내장사가 참으로 평안해 보였습니다. 하늘도 쾌청하고 바람이 시원해 아직은 지열을 내뿜지 않는 그늘진 능선 길이 걸을 만 했습니다. 두 곳의 갈림길에서 모두 왼쪽 길로 들어서 진행하다 시야가 탁 트인 바위 길을 지나 정오를 조금 지나 49번국도가 지나는 추령고개로 내려섰습니다. 걸어서 이 고개에 이르기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간 차를 타고 열 번 가까이 넘나들었기에 정맥 길의 다른 고개처럼 낯설지 않았습니다. 차도 건너 계단 길로 들어서 한참을 오르자 전망바위가 나타나 잠시 숨을 고르며 걸어온 길을 휘둘러보다가 아침에 버스로 지나온 북서쪽의 내장저수지에서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13시4분 해발573m의 추령봉에 올랐습니다.
서쪽 사면이 직벽인 추령봉은 뾰족한 모양새가 송곳 같다하여 일명 송곳바위봉으로도 불리는데 정상에 오르니 표지석이나 표지목 하나 서있지 않은 그저 그런 육봉이었습니다. 전망바위에서 더 가서 만난 무명봉을 우회해 힘을 좀 덜고나서 정북방향으로 산오름을 계속해 출입금지경고판이 서있는 능선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으로 추령봉을 우회하는 길이 이어졌지만 직진해 추령봉에 올라서자 바로 아래 전망바위에서 볼 것은 다보고 올라오란 듯이 비좁은 정상에서는 나뭇잎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외를 까먹으며 12분을 쉬었더니 다시 생기가 돌아와 오른쪽으로 내려섰습니다. 3-4분을 내려가서 만난 경사가 엄청 급해 보이는 바위 길에 물기가 남아 있어 내려갈까 말까 몇 분간 고심하다 다시 추령봉으로 원 위치해 출입금지판이 세워진 능선삼거리로 되돌아왔습니다. 보조자일도 없이 그냥 내려가다 물에 젖은 바위 길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면 몸이 성할 리 없겠다 싶어 원 위치했습니다. 추령봉을 오른 쪽으로 에돌아 안부로 내려섰다가 녹 슬은 철망울타리를 따라 530봉에 올라선 시각이 14시3분 전이었습니다.
15시 정각에 506봉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으로 백방산 화살표의 표지기가 걸려있는 530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급경사 길을 내려가 만난 안부가 복령치로, 이 고개가 옛날에 정읍과 순창을 소통시킨 이름 있는 복령치가 맞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이 고개를 넘나든 흔적이 분명치 않고 키가 작은 나무들만 무성했습니다. 철망문을 지나 10분가량 급하게 오른 후부터는 평탄한 길이 계속되어 삼각점이 세워진 434.9봉을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지나쳐버리고 좌우 고개 길이 희미한 십자안부에 내려섰습니다. 십자안부에서 조금 올라가서는 편안한 길이 한동안 계속 되어 왼쪽 바로 아래에 자리한 내장산호텔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다시 가파른 길을 올라 506봉에 다다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원하게 바람이 불어와 남은 떡을 마저 들며 20분간 푹 쉬었습니다. 15시20분에 506봉을 출발해 왼쪽으로 급경사 길을 내려가 넓은 안부를 만났는데 여기가 여시목인 듯 했습니다.
17시 정각 해발556m의 망대봉에 자리한 통신중계소 정문을 지났습니다.
여시목에서 올려다 본 467봉을 오른 쪽으로 우회해 평탄한 능선 길을 걷느라 언제 470봉을 지났는지 기억이 잘 안 났지만 헬기장흔적이 남아 있는 공터가 470봉으로 생각됐습니다. 헬기장봉우리에서 왼쪽 길로 내려가 10여분 후 안부에 도착해 묘지를 가득 메운 여러 종류의 야생화들을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묘지를 화원으로 꾸민 야생화들을 뒤로하고 5분간 걸어 올라선 414봉에서 오른 쪽으로 확 꺾어 두들재로 내려섰습니다. 잠시 짐을 풀고 시멘트포장도로에 등을 눕혀 10분간 쉬는 동안 뻐꾸기와 검은등뻐꾸기의 노래 소리가 경쟁적으로 들려왔습니다. 시멘트 차도를 따라 26분을 걸어올라 거대한 중계탑이 서있는 통신중계소 정문 앞을 지났습니다. 정문에서 7-8분 간 중계탑을 오른 쪽으로 에돌며 더러는 풀숲을 뚫고 철조망 바로 밑을 지나느라 가시에 찔리기도 했습니다.
17시35분 개운치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망대봉 중계탑을 오른 쪽으로 우회해 마루금에 복귀한 후 오른 쪽으로 하산했습니다. 15분을 걸어 헬기장에 다다르기까지 능선 길을 천천히 걸으며 좌우 풍경을 조망했습니다. 왼쪽 아래 정읍방향의 부전제저수지와 오른 쪽 아래 쌍치 가는 시골길 차도가 모두 주변 산세와 버걱거리지 않아 평화롭고 안온해 보였습니다. 헬기장에서 15분을 더 내려가 29번 국도가 지나는 개운치에 도착했습니다. 몇 채의 집이 정읍과 순창을 경계 짓는 개운치 고개 마루에 들어 앉아 행정구역상 어느 시군에 속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외지인을 보고도 짖지 않고 눈멀거니 쳐다만 보는 흰둥이의 행동반경은 이 두 시군을 모두 어우를 것 같았습니다.
이번 산행처럼 대중교통이용이 용이하다면 택시 탈 일이 정말 없겠다 싶었습니다.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천안역에서 정읍행 열차를 바로 탔고, 정읍에서 얼마 기다리지 않아 공원 안으로 들어가 내장사 앞까지 가는 버스에 올랐으며, 개운치로 하산해 20분밖에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잡아타 정읍시내로 돌아갔습니다. 어떻게든 택시를 타지 않고 버스를 이용하고자 제 딴에는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필요정보를 얻으려 애를 쓰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기에 이번처럼 차시간이 딱 맞아떨어지는 날에는 기분이 좋아 저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곤 합니다. 기왕에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종주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앞으로도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택시를 이용하지 않을 뜻입니다. 혼자서 떠나는 종주길 나들이가 범부들과 주고받는 이야기 길이 아니라면 집에서 편히 쉬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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