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구절재-성옥산-초당골
*산행일자:2008. 5. 30일(금)
*소재지 :전북정읍
*산높이 :왕자산444m, 성옥산389m, 묵방산538m
*산행코스:구절재-왕자산-방성골-성옥산-가는정이-묵방산-초당골
*산행시간:8시23분-19시3분(10시간40분)
*동행 :나홀로
그동안 대간과 정맥 길에 자리한 수많은 묘지들을 지나면서 제초제를 뿌려 묘지를 관리한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대간 길을 걸으며 해발 1,353m의 두타산 정수리에 안장한 묘지도 보았고, 금북정맥을 종주하면서 한쪽 편에만 묘지를 쓰는 다른 곳과는 달리 능선 길 좌우에 안치한 태안반도 산길의 묘지들도 보았습니다. 구절재-초당골 구간의 호남정맥을 종주하는 중 능선 길 바로 아래 묘지에 제초제를 뿌리다 잠시 쉬고 계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뵈었는데 이 분께서 이 약을 뿌리면 잔디는 그대로 살고 다른 풀들은 말라 죽어 묘지 관리가 수월하다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헐벗은 우리산림이 박대통령의 조림사업에 힘입어 몰라보게 울창해지자 후손들이 선조의 묘지를 찾지 못하는 웃지 못 할 일도 종종 일어나나봅니다. 그러기에 제가 아는 한 선배분의 어르신께서는 당신 가문의 묘지를 찾아 오르는 길을 손수 지도로 펴내셨다 합니다. 어쨌거나 깊은 산속의 선영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아서인지 오랫동안 방치된 봉분에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묘지들을 꽤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묘지에 진작 제초제를 뿌렸다면 나무가 묘지에 뿌리를 내리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초제를 뿌려야 묘지가 관리된다면 이제 묘지문화를 확 바꿀 때가 됐다는 생각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들은 때가 되어 죽게 되면 그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이 지구가 온전하게 살아남습니다. 자연에서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이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기에 모든 생명체는 삶의 흔적인 시체처리가 전혀 문제가 안 되는데, 유독 먹이사슬의 맨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만은 어떤 식으로든 삶의 흔적을 영원토록 남기려고 욕심을 부려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후손들이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나무가 자라나는 묘지가 오히려 낫다 싶은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죽은 자의 흔적이 지워지고 자연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잘 모셔진 분묘입니다. 산 속에 다 자란 나무들을 다 베어내고 진입로를 크게 낸데다 묘 자리를 넓게 잡은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썩지 않는 묘비와 상석 등의 석조물이 즐비하게 들어선 것은 정말 문제입니다. 선조들의 흔적을 영원히 남기기 위한 후손들의 극진한 효심을 어떤 이유로든 나무라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당국의 이장명령을 받은 후손들이 묘비 등의 석조물은 그대로 내버려두고 묘지만 파 옮겨간 것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아니온 듯 다녀가라는 우리 산의 하소연에 두 귀를 막고 산에다 크게 터를 잡아 육신을 묻는 묘지문화는 정말 바뀌어야 합니다. 살아생전 먹이사슬 맨 위 자리를 군림하며 생태계를 위협해온 욕심 많은 사람들이 이 지구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죽어서 화장한 재를 강물에 뿌리든 나무 곁에 묻어 두든 해서 살아생전 자기흔적을 깨끗이 지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아침8시22분 구절재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정읍터미널에서 아침 6시30분에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칠보까지 가는데 반시간 밖에 안 걸려 칠보에서 8시1분발 산내 버스를 타기까지 1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화강암으로 만든 두 장승들이 서있는 구절재 고개 마루에서 하차하여 차도 건너 임도로 들어섰습니다. 묘지를 막 지나 왼쪽 산길로 들어서면서 가파른 산행이 이어졌습니다. 능선에 올라 오른쪽으로 꺾어 이어지는 정맥 길을 오르는 동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뭇잎에 맺힌 이슬에 구두와 바지자락이 모두 젖었고 남방도 같이 젖어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산행시작 45분 만에 도착한 420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수 분간 급하게 내려갔다 오른 쪽 사면이 벌목지인 능선 길을 걸어 오르는 중 뒤따라 산을 오르는 아랫마을에 산다는 젊은이 한 분을 만났습니다.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 멧돼지가 아닐까 해 스틱으로 돌을 쳐 쇠 소리를 내고 큰 소리로 헛기침을 했는데 엉뚱하게도 뒤따라오던 젊은이가 제가 낸 소리에 놀랐다하니 정말 미안했습니다.
산줄기를 종주하며 한쪽 면의 나무들을 모두 베어낸 개활지 위 능선을 종종 지나는데 이런 길을 지날 때마다 어김없이 만나는 것은 키가 낮은 나무들과 청미래넝쿨 등이 만든 잡목풀숲입니다. 한 여름에 정맥종주가 고행인 것은 대간 길에서는 거의 없는 이런 잡목풀숲 길을 자주 만나서인데, 이슬이 마르기 전에 이런 길을 만나면 우중에 산행한 것처럼 옷이 다 젖을 뿐만 아니라 청미래나 산딸기 가시에 찔리며 나뭇가지에 얻어맞고 여기 저기 긁혀 한바탕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4년 전의 산행기를 읽어보면 그동안 호남정맥을 종주한 많은 분들이 길을 잘 내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대간 길처럼 길이 넓게 난 것이 아니어서 나뭇가지와 가시에 긁히고 찔리는 것은 여전했습니다.
9시52분 능선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잡목 숲길을 지나 오른 무명봉에서 오른 쪽으로 쪽으로 꺾어 3-4분을 걷다가 능선삼거리에서 저를 앞질러 앞봉을 다녀온 그 젊은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저는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확 꺾어 내리막길로 내려섰고 그 젊은이는 구절재로 되 내려갔습니다. 몇 분을 걸어 내려가 만난 안부에서 얼마간 평탄한 길이 이어져 물기를 머금고 있는 야생화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다시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어 얼마고 내려서자 완두콩 밭이 나타났습니다. 4년 전에 이 길을 밟은 어느 한 분이 420봉- 묵방산 구간에서 무려 5번이나 알바를 한 것으로 산행기에 적혀 있어 저도 자칫 길을 잃을까보아 수시로 표지기를 점검하고 몇 번이고 지도를 꺼내 길을 확인하느라 발걸음이 자연 느렸습니다. 완두콩밭을 지나고 임도를 따라 내려가 느티나무가 서 있는 윗보리밭 위 안부사거리에 내려섰습니다. 밀양박씨 묘지에서 15분을 쉰 후 산 길로 들어서 가파른 봉에 올랐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진행해 또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서있는 아래보리밭 위 능선삼거리를 지나 왼쪽 아래 묘지에서 술을 들고 계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나 잠시 말씀을 나누는 중 묘지에도 잔디는 살리고 다른 풀을 죽이는 제초제를 뿌린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얼마 더 안가 꽤 넓은 묘지를 지나며 아닌 게 아니라 잔디는 멀쩡하고 삐쭉 솟은 넓은 잎 풀들이 모두 말라 죽은 것을 보았는데 묘지용 제초제를 뿌린 것이 분명했습니다.
11시42분 해발 444m의 왕자산을 올랐습니다.
묘지를 지나 만난 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들어서 산봉우리를 우회해 진행하다가 능선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무심코 들어선 오른 쪽 길이 너무 희미해 길이 아닌데 하면서 앞으로 진행하다 풀 숲 한 가운데 자리한 묘지에 올라서자 반대방향으로 왕자봉이 보여 길을 잘못 들었음을 확인했습니다.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오름 새가 지속되는 왼쪽 길을 걸어 왕자봉에 올라서자 삼각점과 스테인리스 명판이 보였습니다. 왕자산에서 오른쪽으로 확 꺾어 급 경사 길을 조심해서 내려가 안부사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마을이 보이는 완만한 길을 오르다 410봉을 바로 앞에 두고 인절미로 요기를 한 후 왼쪽으로 내려섰습니다. 330봉에서 다시 왼쪽으로 급하게 내려가 방성골 마을의 정자에 다다른 시각이 12시57분으로 이 정자에 걸터앉아 7분을 쉬면서 지도를 펴보며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을 확인했습니다. 은행나무 옆 소로로 올라가 능선에 올라선 후 오른 쪽으로 얼마고 진행하자 삼각점이 보였는데 이 봉우리가 275봉이었습니다. 275봉에서 묘지와 밭을 지나 715번 국도가 지나는 소리개재로 내려섰습니다.
14시4분 해발 389m의 성옥산을 올랐습니다.
소리개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왼쪽으로 올라가는 큰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내 묘지가 보였고 곧 이어 비닐 줄을 쳐 놓은 밭가를 지났습니다. 다시 만난 묘지를 지나 미로학습을 막 마친 곳에서 내려오는 한 분을 만나 운암3거리까지 약 4시간 정도 걸릴 것이며 저녁 늦게까지 전주 가는 시내버스가 자주 있다는 정보를 전해 듣고 나자 마음이 놓였습니다. 된비알 길을 걸어 올라선 성옥산 어깨 능선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 성옥산에 올라 삼각점을 확인했으나 정작 갈 길이 보이지 않아 잠시 당황했습니다. 몇 걸음 물러서자 북동쪽으로 표지기가 보여 풀숲을 지나 그 방향으로 진행하자 왼쪽 사면이 벌목지인 능선길이 훤히 보였습니다. 이 길을 따라 잠시 걷다가 오른쪽 급경사 길로 내려가 편안한 길을 이어갔습니다. 성옥산 출발 16분 후에 다다른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급하게 내려가 안부에 다다랐다가 다시 올라 320봉에 도착한 시각이 14시43분이었습니다.
15시47분 749번 지방도가 지나는 가는정이 고개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320봉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 올망졸망한 봉우리 2개를 넘어 334봉에 이르기까지 42분이 걸렸습니다. 남동쪽과 북동쪽으로 수시로 방향을 바꾸면서 봉우리를 오르내리다 335봉아래 안부에서 쓰러져 있는 전신주를 보았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옥정호가 나뭇잎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해 감질났지만, 옥정호 어디에선가 들여오는 트럼펫(?) 소리가 귀에 익은 곡이어서 이내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오전 내내 찌푸린 날씨로 좀처럼 이슬방울이 사라지지 않아 다 젖은 양말을 그냥 신고 다녔는데 이제는 나뭇잎의 물기가 사라져 334봉에서 5분을 쉬면서 양말을 짜낸 후 다시 신었습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구두의 물기를 양말이 빨아들여 걷기가 훨씬 나아짐을 경험으로 익힌 것이기에 산행 종료 시까지 몇 번을 더 짜냈습니다. 334봉에서 15분을 내려가 다다른 가는정이 고개에는 음식점과 여관이 많이 보여 여차하면 옥정호가 바로 아래 보이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어가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차도를 건너 묘지에 오르자 옥정호가 한 눈에 들어와 가던 길을 멈추고 20분 가까이 쉬면서 사진도 찍고 남은 떡을 마저 드는 등 마지막 고비인 묵방산 산 오름에 대비했습니다.
17시21분 해발 538m의 묵방산에 올라섰습니다.
긴 쉼을 끝내고 16시12분에 묘지를 출발했습니다. 봉우리를 하나 넘어 내려선 안부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직진하여 올라선 나지막한 봉우리가 삼각점이 세워진 283.5봉으로 이 봉우리에서 시멘트 길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안부마을 여우재에서 폐가 몇 집을 지나 어두침침한 대나무 숲속으로 들어서자 귀곡산장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감지되어 으스스했습니다. 대나무 숲을 빠져나와 꽤나 긴 된비알 길을 오르면서 힘이 많이 빠졌다 한 것은 중간에 퍼지고 쉬지는 않았지만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기를 꽤 여러 번을 했기 때문입니다. 힘들게 가파른 능선을 오르는 제 발목을 잡은 것은 때 이르게 선을 보인 버섯이었기에 이제 남은 마지막 산 식구는 7월 출현을 준비하고 있는 매미일 듯싶습니다. 반시간 가까이 치켜 올라 묵방산 어깨 능선에 다다른 후에도 정상에 이르는데 20분이 다 걸렸습니다. 정작 묵방산 정상은 정맥 길에서 100m 가량 비켜 서 있었고 200m급의 정맥 길 봉우리에도 세워진 삼각점이 보이지 않아 썰렁했습니다. 곧바로 정맥 길로 복귀해 북서쪽으로 내려섰다가 쏜살같이 내달려 460봉에 올라섰습니다. 양말을 벗어 짜며 10분을 쉬는 동안 햇빛이 나기 시작해 새삼 산속이 훤하게 밝아왔습니다.
19시3분 초당골삼거리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460봉에서 엄청 가파른 길을 조심해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 350봉은 모악산 길이 갈리는 봉우리삼거리로 정맥 길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크게 틀어 이어졌습니다. 이제 초당골 삼거리에 다 내려왔다 싶어 새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쓰러진 큰 나무가 길을 가로막아 앞으로 나가가기가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좌우를 둘러보아도 양쪽 다 철조망에 풀숲길이어서 도저히 뚫고 나갈 수가 없어 한참을 멍청히 서서 고심하다가 나무 밑으로 기어서 간신히 통과했습니다. 3-4분을 더 내려가 아스팔트 차도로 내려서자 옥정호를 가로 지르는 높은 다리가 보였습니다. 초당골의 막은댐 정류장에서 짐을 꾸려 넣는 중 전주 가는 버스가 멈춰서 서둘러 버스에 올랐습니다. 금왕일동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터미널에 도착하기까지 초당골을 출발해 한 시간이 조금 못 걸렸습니다.
제 딴에는 비를 피해 산행일자를 잡는다고 했는데 아침이슬에 옷과 구두가 다 젖어 우중산행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스패치를 하고 우의를 입고 나서 산행해야 했던 것을 그리하지 않아 옷이 젖을 대로 다 젖고 팔다리도 찔릴 대로 다 찔려 산행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산행 중 거의 내내 땡볕이 비치지 않아 더위를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앞으로 석 달간은 장마 비가 아니면 땡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우거진 잡목 숲을 뚫고 산행하는 것이 보통 난제가 아닐 것입니다. 먼저 오른 분들의 산행기를 읽어보면 이 분들이 앞서 당한 고통은 제가 요즈음 겪는 어려움에 비할 수 없이 컸음이 분명합니다. 종주 길을 제대로 이어가기가 쉽지 않은 이번 구간을 이렇다 할 알바 없이 무사히 끝낼 수 있었던 것은 4년 전에 이 길을 밟느라 베테랑 한 분이 5번씩 알바를 하는 등 먼저 오른 분들의 노고에 힘입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길을 낸 흔적이 없었다면 저 혼자서 감히 종주 길에 나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길이 바로 문명이자 문화인 것은 이와 같이 길은 계속해서 내어지고 넓혀지며 진화해 세대를 뛰어넘는 소통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뒷사람들에 자취를 남겨도 좋은 것은 길이지 사람들의 몸 동아리가 아닐 것입니다. 대를 이어 흔적을 넘겨주는 일은 길에 맡기고 삶의 흔적을 커다란 묘지로 남기고자 하는 노력은 이제는 끝내야 할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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