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불재-경각산-슬치
*산행일자:2008. 6. 13일(금)
*소재지 :전북임실/완주
*산높이 :경각산660m, 갈미봉540m
*산행코스:불재-경각산-쑥재-갈미봉-설치재-슬치
*산행시간:9시13분-17시39분(8시간26분)
*동행 :나홀로
사람들이 새까맣게 모여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하고 많은 색깔 중에 하필이면 까만색을 써 “새까맣게”로 표현할까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새까맣다”라는 단어는 빛이 아주 까맣다는 뜻으로 까만색이 예쁘거나 고운 색상이 아니고 어감도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아서입니다. “새까맣다”라는 단어는 이 뜻 말고도 전혀 아는 것이 없거나 아주 잊고 있어 기억에 없다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뜻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자고로 우리민족은 흰옷을 즐겨 입어 백의민족으로 불렸습니다. 색깔을 빌려 동사를 꾸미는 예는 “새까맣게” 말고도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나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 등 얼마든지 있습니다. 굳이 색을 빌릴 뜻이라면 “새하얗게” 모여들었다고 하는 것이 백의민족인 우리나라사람들에게는 백번 옳을 것 같은데 굳이 “새까맣게”로 표현하는 데는 제가 모르는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제껏 그 이유를 몰라 궁금했었는데 이번 종주 산행 중 에코브리지 앞에서 엄청 많이 모여든 새까만 개미떼를 보고 아 이래서 그리 표현했구나하고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떡여졌습니다.
에코브리지(Eco-Bridge)란 동물들이 오고 갈 수 있도록 끊어진 산줄기를 다시 이은 다리를 말합니다. 에코브리지는 동물이동통로이기에 이 다리의 주인공은 단연 산속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입니다. 이 다리의 주인공인 까만 개미들이 다리 앞에 모여들어 동그랗게 떼 지어 있는 모습을 보고 새까맣게 모여든다는 표현이 저 까만 개미 떼들 모양에서 연유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궁금해 한 것이 이렇게 풀리자 이번에는 그러면 그들이 왜 새까맣게 모여들었는지 그 사유가 또 궁금했습니다. 여기에 에코브리지를 놓은 것은 벌써 옛날 일이어서 개통식에 모여든 것은 아닐 테고 그들만의 애경사가 있어 모여들었다면 그 숫자가 지나치게 많아 도시 그 이유를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답답해하다가 아 이개미들도 동물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다리 앞에서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쳤습니다.
그럴 것입니다.
개미인들 살아 있는 생물인데 한 평생 살아가면서 어찌 불만이 없겠습니까? 그 불만은 개인적인 불만일 수 있고, 최고급 먹거리인 쇠고기가 미국에서 수입되면 식탁의 안전이 위협받을게 분명하다며 서울시청 앞에 모여든 대한민국 국민들의 집단적인 불만처럼 일개미들 전체의 명운이 걸려있는 중대 사항을 혼자서 제멋대로 결정하는 여왕개미의 횡포가 불러온 집단적인 불만일 수도 있습니다. 지구상에 퍼져있는 분포와 또 개체수를 기준할 때 이 지구에서 가장 성공한 동물을 들라하면 단연 사람과 개미라 합니다. 수많은 동물 중에서 이 두 동물이 이 땅에 군림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동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물학자 한 분은 사람들이 개미와 구별되는 것은 종교 밖에 없다했습니다. 제가 새까맣게 모여든 개미떼를 보고 수도서울의 밤을 밝히는 촛불시위대를 연상한 것은 바로 이 개미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회적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개미들의 시위양상은 어떠할 까 잠시 더 머무르며 관찰했습니다.
몇 분이 지났는데도 개미들은 원형의 대오를 깨뜨리지 않았습니다. 수명이 길지 않은 개미가 그 작은 몸매로 맞는 몇 분이란 수명이 길고 덩치가 훨씬 큰 사람들이 맞는 며칠에 해당될 텐데 어느 개미하나도 대오에서 뛰쳐나오지 않았습니다. 한 참 후 원형의 대오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들이라고 어찌 여왕 궁을 진입하겠다고 뛰어가는 개미가 없으랴 싶어 흥미 있게 지켜보았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런 부류의 개미떼를 보지 못했습니다. 일부 개미들이 한 쪽으로 움직여 가운데가 홀쭉하고 양 끝이 원형인 아령모양을 만들어가고 있는 듯 했는데 그들의 움직임이 정말 질서정연해 이제 시위를 끝내고 저 에코브리지를 넘는 대장정에 들어가는 듯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저 개미들이 새까맣게 모여든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은 우리 장병들의 움직임만큼 질서정연했습니다. 사람들에 종교마저 없었다면 개미보다 나은 게 뭐가 있겠나 생각하자 사람과 개미를 모두 어우르는 이 산이 더욱 위대해보였습니다.
아침9시13분 경각산을 향해 불재를 출발했습니다.
새벽같이 서둘러 강남에서 5시30분 발 전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8시 조금 지나 전주터미널에 도착해 1시간에 한 대 있다는 불재를 넘는 버스를 놓칠까보아 남부시장까지 택시로 내달렸지만 7시40분 다음 차가 10시에 출발한다는 아주머니들의 말씀을 듣고 나자 난감했습니다. 결국 택시 타고 불재까지 갔지만 웬 놈의 배차간격이 이리도 긴 가하는 볼 멘 소리가 저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낮 기온이 섭씨31도까지 올라간다는데 아직은 태양의 열기가 대단치 않았습니다. 동쪽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을 따라 오르다가 묘지를 지나 솔밭으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됐습니다. 불재 출발 반시간이 채 안되어 전망바위에 오르자 서쪽 건너 모악산이 머리위의 통신 탑만 보였고, 지난번에 확인 못한 패러글이딩 활공장(?)도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10시27분 해발660m의 경각산을 올랐습니다.
전망바위를 지나 묘지 위 소나무들이 서 있는 무명봉을 올라 남동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다시 가파른 참나무 숲길을 따라 봉우리 하나를 또 넘어서 산불감시초소에 다다랐습니다. 고개를 반짝 처 들고 움직이지 않는 자그마한 살모사(?) 한 마리가 스틱을 휘두르자 위협을 느꼈던지 숲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헬기장이 들어선 경각산 정상에 올라서자 검은등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높이 오르는 경각산 오름 길에 진을 빼게 되면 남은 길에서 더운 날씨로 고전할게 뻔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산행초반이어서 그런지 전혀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헬기장을 내리쬐는 6월의 땡볕에 등 떠밀려 정상에서 물러났습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조심해서 걸어 내려가 양 사면의 경사도가 60-70도는 됨직한 좁은 길의 능선을 지나는 중 그동안 숱하게 보아왔으면서도 며칠 전에야 이름을 익힌 야생화 백선 꽃을 만나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올라선 봉우리에서 왼쪽 아래로 효관마을 길이 갈리는 효관재로 내려서자 오른 쪽 아래로 저수지가 보였습니다.
12시34분 옥녀봉으로 길이 갈리는 550봉에 다다랐습니다.
표지기가 엄청 많이 걸린 효관재에서 완만한 길을 따라 오르다가 암릉 길을 지나 올라선 520봉에서 다른 때보다 훨씬 이른 11시21분에 점심을 들면서 2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얼씬거리며 날아다니는 벌 한 마리가 윙윙대는 소리가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굉음 못지않게 귓전을 크게 울렸습니다. 520봉을 출발해 측백나무(?) 숲을 지나 다다른 543봉에서 정동 쪽으로 진행하며 다시 측백나무 숲을 보았습니다. 훤칠한 키의 곧추 선 측백나무 숲 아래 땅에는 다른 풀들이 일절 자라지 못해 잣나무 숲보다 더 심하게 메말라보였습니다. 이러다가는 다른 수종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이 나무의 유아독존이 이 산을 황폐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습니다. 측백나무 숲을 지나 다다른 무명봉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 봉우리가 550봉으로 오른 쪽으로 옥녀봉 가는 길이 나뭇가지로 막혀 있었습니다. 550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왼쪽으로 꺾어 급하게 내려서자 경사가 완만하고 평탄한 길이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어 왼쪽으로 내려가 낮은 봉우리에 올랐다가 동쪽으로 내려선 사거리안부가 쑥재로 지도와는 달리 이 고개를 넘는 길이 잘 나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14시28분 해발540m의 갈미봉에 올라섰습니다.
쑥재에서 15분을 올라 다다른 470봉에서 참외를 까먹으며 10분 여 쉬는 동안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시원했습니다. 470봉에서 갈미봉까지는 남진 길로 경사도 완만하고 길도 좋아 걷기에 편했습니다. 480봉을 지나 갈미봉 오름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했는데 조금 더 오르자 도로를 내기 위해 베어낸 나무들이 길을 가로 막아 왼쪽 아래 넓은 길로 들어섰습니다. 4-5분을 걸어 만난 불도저 기사분에게서 군부대의 탄약창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공사를 하고 중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헬기장이 들어선 해발540m의 갈미봉정상에서 10여m를 더 가서 공사 중인 차도가 끝났습니다. 갈미봉에서 신설도로를 벗어나 숲길로 들어선지 20분이 채 안지나 산불감시초소에 이르자 이 지역은 폭발물처리장이니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나무 아래 그늘에다 돗자리 깔아놓고 한 잠 푹 자면 신선이 따로 없겠다 싶겠다 싶은 거목들이 꽉 들어찬 숲을 지나서 장재에 다다르자 산불감시초소에서 본 경고판이 또 있었습니다. 십자안부 장재에서 15분을 걸어 469봉에 올라선 시각이 15시7분으로 이제껏 길이 좋고 그늘이 잘 져서인지 더운 줄 모르고 한 낮의 땡볕더위를 보냈습니다.
16시17분 설치재위 에코브리지 앞에서 14분 간 마지막 쉼을 가졌습니다.
10분 남짓 쉰 469봉에서 숲길을 지나 오른쪽으로 나무를 베어내 민둥산이 된 산줄기가 보여 이 땡볕에 어떻게 저 길을 지나나 걱정했는데 정맥 길은 오른 쪽의 그 길이 아니고 앞쪽으로 똑바로 나있어 정말 다행이다 했습니다. 조금 내려섰다가 평탄한 산길이 꽤 오래 이어졌으며 한 두 곳 가시 숲길도 지났습니다. 440봉을 지나 임도 길을 만난 것이 15시57분으로 469봉 출발 반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숲길에서 차가 충분히 다닐 만한 넓은 임도로 나서자 왼쪽 아래로 차도가 보여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슬치고개가 멀지 않았다 싶었습니다. 산나리 한포기가 주홍색 꽃을 활짝 피워 임도 길을 안내했습니다. 20분간 이어진 넓은 임도가 햇빛을 가리지 못하는 몇 곳이 그리 길지 않아 걸을 만 했습니다. 산줄기를 들어내고 차도를 낸 설치재 위로 동물들이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도록 에코브리지를 설치하지 않았다면 호남정맥 종주 객들도 저 가파른 절개면을 오르내리느라 엄청 힘들었을 것입니다. 에코브리지 앞 그늘에서 14분을 쉬는 동안 새까맣게 원을 이룬 개미떼들을 보았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고는 형체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이렇게 작은 개미를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 작은 개미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들어야 저렇게 새까맣게 보일까 궁금해 하다가 문득 저 개미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촛불데모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처럼 그들의 광장에 집결하여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7시39분 슬치휴게소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들으며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에코브리지를 건너 숲속 길로 들어섰다가 다시 큰 길로 나와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묘지 위를 지났습니다. 왼쪽으로 인삼밭이 보이는 산길로 다시 들어서 똑바로 몇 분을 오르자 이중의 철조망 울타리 안에 세워진 군부대 초소가 보였습니다. 이 초소 오른 쪽으로 울타리를 돌며 한참을 가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일단 멈춰 섰습니다. 울타리 안의 한 장병에 길을 물었더니 잘 모른다면서 더 진행하면 길이 막힌다 했습니다. 선답자의 산행기에도 군부대 울타리를 지난 기록이 없어 길을 잘 못 들었다고 판단하고 5-6분을 걸어 표지기가 걸려 있는 곳까지 되 내려가자 인삼밭 쪽으로 표지기가 걸려있어 마음을 놓았습니다. 인삼 밭을 지나 들어선 숲길에서 동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크게 나 혹시 멧돼지가 아닌 가 신경이 쓰였습니다. 다시 만난 임도를 따라 몇 분을 내려가 밭가에 세워진 이동통신탑 앞에 다다랐습니다. 왼쪽 구릉 위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밭가를 지나 차도로 내려섰습니다. 이 차도를 따라 오른 쪽으로 4-5분을 걸어 다다른 슬치고개에서 17번 국도를 건넜습니다. 주유소 옆 슬치휴게소에서 맥주를 사 드는 중 만난 젊은 한 분이 고맙게도 전주역까지 태워주어 귀가 길이 편했습니다.
기차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개미떼들에 물어보지 못하고 빼먹은 게 몇 가지 있었습니다.
개미들 너희들은 누가 시위를 주도하고, 또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시위대열에 참여하는 지, 포리스라인이 설치되어 있는지, 있으면 그 선을 사람들처럼 수로 밀쳐버리지는 않는지, 혹시라도 선동세력들의 꾐에 빠져 참여했다며 후회하는 개미들은 없는지 물어볼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이 많은 질문을 다 했다면 개미들의 대답은 이러했을 것입니다. 이제껏 다 보고도 모르냐고 말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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