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호남정맥 종주기

호남정맥 종주기 33(슬치고개-만덕산-곰치재)

시인마뇽 2008. 6. 26. 15:19
                          호남정맥 종주기 33


         *정맥구간:슬치고개-만덕산갈림길-곰치재

         *산행일자:2008. 6. 22일(일)

         *소재지  :전북완주/임실 및 진안

         *산높이  :만덕산763m, 박이뫼산346m

         *산행코스:슬치고개-박뫼이산-북치-마재-만덕산갈림길-곰치재

         *산행시간:8시55분-19시21분(10시간26분)

         *동행    :나홀로

 


  이번 33차 출산으로 호남정맥 종주산행을 마무리하겠다고 마음 다져먹었는데 그 결과는 과욕이었습니다. 욕심이 서두름을 불렀고 서두름이 알바를 자초해 고생은 고생대로 했으면서도 욕심냈던 종주산행 마무리는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갈 길은 멀고 마음은 다급한 데 초반부터 길을 잘 못 들어 1차 가벼운 알바를 했습니다. 한참 후 또 다시 길을 잘 못 들어 적지 아니 헤매다가 마루금에 복귀하느라 얼마고 진이 빠졌습니다.  가장 멍청했던 알바는 온 길을 다시 갔다 되돌아 오은 바람에 반시간을 까먹은 마지막 알바였습니다. 재작년 여름 금북정맥 종주 시에는 날짜를 달리해서 전에 걸은 길을 또 다시 걷다가 원 위치했지만 이번에는 한날 한 시에 겪은 일이어서 정신이 다 멍했습니다. 하루에 세 번이나 알바를 겪게 되면 저는 더 이상 발을 내딛기가 겁이 날 정도로 소심해 집니다. 이런 날 무리하게 산행하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가까운 데서 탈출하여 산행을 마치곤 했는데 어제는 딱히 탈출할 만한 적당한 지점을 못 찾아 곰치재까지 진출해 하루 산행을 접었습니다. 집 떠날 때 계획한 이번 산행의 끝점이 곰치재였기에 크게 억울해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들머리인 슬치고개에 조금 일찍 도착해 3정맥 분기점인 조약봉까지 가보겠다 욕심을 낸 것이 어리석었을 뿐입니다.


  산이 제게 최고의 스승인 것은 이렇게 저를 꾸짖어 욕심을 접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산이 어제 제게 산에서의 과욕이 금물임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두 번의 알바로 경고를 주었는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욕심내는 제게 똑 같은 길을 두 번 걷도록 해 욕심을 접도록 했습니다. 이제껏 저는 6-8월 한 여름에 더 치열하게 산행해 겨우 내내 불어난 몸무게를 팍팍 줄여왔습니다. 복중 땡볕 길도 마다않고 10시간 넘게 산행해 몸속의 노폐물을 짜내는데 열을 내곤 했습니다. 작년 8월 폭염을 무릅쓰고 호남정맥의 삼수마을-사자산-시목치 구간을 12시간 남짓 걸어 종주하느라 진을 뺀 적도 있습니다. 올 여름에도 그리 할 것입니다. 제가 조심해야 할 것은 긴 시간 종주가 아니라 과속입니다. 충격의 강도는 단위시간당 운동량의 변화이고 운동량은 질량과 속도의 곱이기에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체중을 줄이고 산행속도를 느리게 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체중은 별반 줄이지 못하고 속도를 내다가는 몇 해 산행 못하고 무릎이 부실해져 주저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는 어느 누구도 바라는 것이 아닐 진데 이 자명한 이치를 망각하고 산행을 서두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제가 그러했습니다. 이런 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산, 산뿐입니다. 그래서 산이 제게 알바를 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올 여름 내내 욕심내지 못하도록 가르친 것입니다.


  아침8시55분 슬치고개를 출발했습니다.

강남에서 아침5시반에 전주행 첫 고속버스에 올라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8시가 채 안되어 전주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금왕사거리의 수협 앞 정류장에서 관촌가는 시내버스에 오른 시각이 8시5분이었고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슬치고개까지 40분이 걸려 8시45분에 하차했습니다. 차도를 건너 우측으로 조금 올라가 왼쪽 위로 난 시멘트길로 들어섰습니다. 슬치고개에서 조약봉까지 제가 가지고 간 지도에 11시간40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어 사진을 덜 찍고 조금만 서두르면 어둡기 전에 3정맥 분기점에 다다를 것 같았습니다. 곰치재에서 끝낼 까 아니면 조약봉까지 갈 까 잠시 고심하다가 조금 더 빨리 그리고 많이 걸어 이참에 조약봉에서 호남정맥 종주를 끝내기로 뜻을 굳히고 서둘러 슬치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시멘트길이 끝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고추밭을 지나 봉우리에 오르고자 했으나 넝쿨풀숲 길이어서 포기하고 능선을 이어가고자 또 다른 고추밭을 가로 질러 능선 길로 들어섰습니다. 여기에도 길이 선명하지 못하고 표지기가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 싶어 지도를 꺼내보니 진행방향이 달라 이 길이 아님을 직감했습니다. 다시 시멘트 길로 되돌아가 1-2분을 내려가다 표지기가 걸린 삼거리에서 북쪽의 넓은 흙길로 들어서 첫 번째 알바를 끝냈습니다. 박이뫼산(?)을 왼쪽으로 우회하는 흙길을 지나 다시 시멘트 길을 따라 계속 북진했습니다. 능선을 따라 난 시멘트 길 좌우에 개간된 밭에 고추가 주렁주렁 열려있어 참으로 탐스럽다 했는데 밭주인은 농약을 뿌려도 고추 병이 수그러들지 않아 걱정이라 했습니다. 해발고도 300m대의 밋밋한 산들을 개간해 일군 밭 사이로 나있는 시멘트 농로를 1시간 가까이 걸어 능선 오른 쪽에 8개의 봉분이 앉혀진 마지막 묘지를 지나기까지 구름이 해를 가려 걸으면서 그리 더운 줄  몰랐습니다. 다시 산길로 들어가 415봉에 오른 시각이 10시 정각으로 알바시간을 감안하면 산행속도는 다른 때보다 훨씬 빠른 편이어서 이 속도라면 해 떨어지기 전에 조약봉에 다다를 것 같았습니다.


  11시 정각에 두 번째 알바를 끝내고 컨테이너박스가 있는 정맥길 안부로 복귀했습니다.

415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큰 길을 따라 내려가자 밭으로 일군지 얼마 안 된 개간지가 나타났고 먼발치로 마이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개간지 아래로 내려가 길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아 왼쪽으로 이동해 숲속으로 들어가자 아주 희미한 길이 나타나 그 길을 따라 풀  숲을 헤치고 나아가자 넓은 개활지가 나타났습니다. 둔덕에 세워진 감나무 및 고사리와 취나물을 재배하고 있어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판을 보고 길을 잘 못 들었음을 확실히 알았지만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 415봉으로 원위치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고사리 밭을 지나자 과수원이 나타났고 그 아래로 큰 길이 보여 과수원 밭 안에 지그재그로 난 길을 따라 큰 길로 내려선 후 길을 막고 설치한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 민가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마리 개들이 제게 달려왔지만 스틱이 두려웠던지 덤벼들지는 않았습니다.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나와 본 주인아주머니에 이 길을 따라 오르면 고개에 닿게 되는 가를 물었더니 고개에 올라가면 더 이상 길이 없다며 간혹 그 고개 능선 길로 등산하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해주어 그 능선 길이 바로 정맥 길임을 직감했습니다. 밭으로 일궈 비료 부대를 갖다 놓은 개간지를 지나 고개 마루에 올라서자 컨테이너 박스가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 표지기가 보이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두 번의 알바로 지친 몸을 이끌고 안부에서 오른 쪽으로 숲길로 들어서 450봉으로 향했습니다. 넝쿨 숲길을 지나느라 팔등을 긁힌 후 다다른 450봉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진행하는 동안 멧돼지가 심하게 분탕질한 흔적이 계속 나타나 웬만해서는 쓰지 않는 호루라기를 꺼내 불고 스틱으로 돌을 연신해서 쳐댔습니다. 11시27분 470봉 바로 앞에서 슬치고개 출발 2시간 반 만에 처음으로 짐을 내려놓고 10분간 푹 쉬었습니다. 415봉에서 북서진해야 할 것을 큰 길 따라 북동진해 황산재 오른쪽 깊숙이 내려섰다가 컨테이너 안부로 올라선 것이 두 번째 알바의 경위입니다.


  12시35분 삼각점이 서 있는 416.2봉을 지났습니다.

470봉에서 조금 내려가 안부에 다다르자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햇살이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고도차가 별로 없는 봉우리 두 개를 넘기까지 길이 평탄해 막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은 원추리(?)와 이름 모르는 나무 열매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가파른 비알 길을 올라 오른쪽으로 483봉이 갈리는 470봉에 다다랐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한참을 내려가다 다시 오른 430봉에서 북진하여 삼각점이 세워진 416.2봉에 도착해 지도상의 제 위치를 확실하게 확인했습니다. 오른쪽 아래 마루금과 나란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차도가 반갑게 다가온 것은 두 번의 알바로 길의 고마움을 새롭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봉우리 하나를 오른쪽으로 에돌아 복귀한 능선 길은 오른쪽 사면이 목초지로 개간된 듯 파란 풀밭이 시원스레 보였습니다. “만덕산정상4Km”, “죽림온천9km”과 “임실”의 안내판이 길바닥에 놓여있는 이정표가 세워진 곳을 13시3분에 지났습니다. 무덤이 있는 무명봉 바로 아래 그늘을 찾아 점심을 들면서 25분을 쉰 후 13시45분에 다시 정맥종주를 이어갔습니다. 


  14시52분 오른쪽으로 오봉산 행 표지가 있는 봉우리삼거리로 되돌아왔습니다.

민둥산의 무명봉을 넘어 불도자로 낸 넓은 길이 좌우로 갈리는 능선사거리를 지났는데 아무런 표지물이 없어 왼쪽 아래로 종현 길이 갈리는 슬치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숲속 길로 들어서 몇 분을 내려가다 올라선 봉우리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진행했습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 몇 개를 넘어 올라선 530봉에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오른 쪽으로 오봉산 행 표지기가 있고 마루금은 왼쪽으로 이어져 그동안 까먹은 시간을 벌충하고자 산행을 서둘렀습니다. 17분을 내달려 오른 무명봉에서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표지기들을 사진 찍은 후 왼쪽의 제 길로 내려간다 했는데 한참 후 진행방향을 체크해보니 북쪽이 아니고 남쪽으로 내닫고 있었습니다. 혹시 길을 잘못 들어 온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면 오봉산 갈림길에서 확인할 수 있겠다 싶어 계속해 달렸더니 원치 않은 오봉산 갈림길이 나타났습니다. 꼭 반시간을 헛걸음질 하고 나자 어처구니도 없고 맥이 풀려 이제 산행을 접고 적당한 곳에서 탈출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되돌아온 봉우리에서 조금 더 가 550봉에 오르면 오른 쪽 아래 가까이에 임도길이 지도에 나와 있어 일단 그 봉우리까지 가서 하산여부를 결정하자 마음먹고 돌아온 길을 되짚어 다시 걸었습니다. 표지기를 사진 찍느라 방향을 잘 못 잡은 봉우리에서 7분을 쉰 후 왼쪽으로 10분을 걸어 550봉에 올라서자 오른 쪽 아래 마을에 자리한 작은 저수지가 보였습니다. 오른 쪽 사면이 벌목지인 능선 길을 따라가다 숲길로 들어가 잡풀이 무성한 묘지의 580봉에 올랐다가 내려선 안부가 오른 쪽 아래 상회마을로 길이 갈리는 마치 고개였습니다. 마치 고개에서 10분가량 올라 표지기가 엄청 많이 걸린 610봉에 다다른 시각이 16시10분으로 이 봉우리에서 10분을 쉬면서 이번에는 곰치재까지 가서 종주산행을 접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17시17분 만덕산 갈림길에 다다랐습니다.

610봉에서 만덕산 갈림길까지 이어지는 산줄기에 완주군에서 마련한 이정표와 쉼터가 있고, 인수봉을 축소해 놓은 암봉과 암릉 구간도 있어 앞서 걸어온 능선 길과는 좀 달랐습니다. 610봉에서 왼쪽으로 내려서자 “정상1.6Km/정수사2.1Km/동부교회수련원4.3Km"의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고 10분을 더 가자 의자가 있는 제5쉼터가 나타났습니다. 잠시 긴 의자에 걸터앉아 숨을 고른 후 왼쪽으로 내려가 우뚝 솟은 암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했습니다. 이어지는 암릉 길을 오르며 뒤돌아 본 암봉은 우람하면서도 아담해 북한산의 인수봉을 작게 해 옮겨놓은 것 같았습니다. “원불교훈련원 2.3Km"의 스텐리스 표지봉을 지나 이동통신탑이 서있는 만덕산 갈림길에 다다르자 진안의 마이산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만덕산 정상으로 향하는 중 저와 반대방향으로 호남정맥을 종주하는 부부 한 팀을 만났습니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 제가 걸어온 길과 이분들이 하산하고자 하는 슬치가 어디쯤인가를 설명 드리고 다시 만덕산으로 향했습니다. 시야가 트이지 않아 답답한  만덕산 정상에서 대삼각점을 사진 찍은 후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10분을 쉬는 바람에 갈림길 도착 반시간이 더 지난 17시50분에 곰치재로 출발했습니다. 동쪽으로 내려가다 왼쪽으로 꺾어 또 하나의 암봉을 우회하면서 산죽 길을 지나고 너덜 길을 지나자 제4쉼터와 제3쉼터를 보지 못했는데 뜬금없이 제2쉼터가 나타나 또다시 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갔습니다.


  19시21분 곰치재로 내려서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제2쉼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곰치재가 있으리라는 제 생각이 잘 못이었습니다. 500봉 대의 봉우리가 계속 이어져 하산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지만, 낮 시간이 가장 긴 하지가 바로 하루 전이어서 어둡기 전에 산행을 마칠 수 있다 싶어 그리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500m대 봉우리를 몇 개 넘어 내려선 안부 오른 쪽에 넓은 평원이 나타나 시원해 보였는데 이 안부가 바로 오두재였습니다. 다시 봉우리2개를 넘어 곰치재로 내려서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비록 패했지만 왜군의 호남평야 진입을 막고자 우리 의병들이 용감히 싸운 전적지이고, 모래재 길이 뚫리기까지는 전주와 진안을 오가는 차들이 다 넘나들었던 곰치재지만 이 고개를 지나는 넓은 도로가 노선버스가 다니지 않는 비포장도로여서 별 수 없이 택시를 불러 진안으로 이동했습니다. 


  하루에 3번씩이나 알바를 하느라 목표했던 호남정맥의 마무리종주는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습니다. 잦은 알바로 얼이 빠져 산행기록도 부실했고 그래서 산행기를 쓰는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조약봉까지 갔다면 노선버스를 탔을 텐데 중간에 끊는 바람에 꽤 많은 택시비가 추가로 들었습니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이번에 종주산행을 마치고자 했던 것은 위 문제들을 단박에 풀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긴 시간을 서둘러 산행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서 산이 저를 알바로 고생시켰다는 생각입니다.  과연 산들은 제게 최고의 스승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