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초당골-오봉산-불재
*산행일자:2008. 6. 7일(토)
*소재지 :전북완주/임실
*산높이 :오봉산513m
*산행코스:초당골-오봉산-염암재-작은불재-헬기장-불재
*산행시간:7시20분-17시13분(9시간53분)
*동행 :나홀로
호남정맥 종주 길에 섬진강댐 옥정호를 한 눈에 조망했습니다.
사진에서 보아온대로 오봉산에서 내려다 본 옥정호는 역시 아름다웠습니다. 눈으로 보아도 아름답고 렌즈로 보아도 매혹적이었습니다. 댐 한가운데 자리 잡은 그림 같은 외안날도 섬이 무엇을 닮았나를 골똘히 생각해도 딱 잡히는 게 없었는데 집에 돌아와 다른 분들의 산행기를 보니 붕어섬이라 했습니다. 제 눈에는 붕어보다 이 섬이 훨씬 올망졸망하게 잘 생겨 보였습니다. 옥정호에 물을 대는 울타리 산들 모두 이 호수의 성깔을 건드릴 만큼 날카로운 악산이거나 위에서 내리누를 만큼 높은 산들이 아니었습니다. 반신욕을 즐기듯 나지막한 울타리 산들이 산허리를 반쯤 물에 담가 보여주는 S라인도 옥정호 만큼이나 고혹적이었습니다.
옥정호가 지금의 명성을 얻은 것은 그 아름다운 자태 때문만은 아닙니다.
옥정호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나눔의 물터이기에 더욱 아름답습니다.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것은 무오류의 진리입니다. 이것이 산과 물을 만든 분의 뜻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이 진리를 철석같이 믿고 산과 물을 관리해왔습니다. 우리 선현들께서도 위 명제가 참이라 믿고 산경표와 수경표를 찬한 것입니다. 그런데 섬진강 상류를 막아 만든 옥정호의 물은 섬진강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호남정맥의 서쪽 너머 동진강에 물을 나눠주고 있는 댐이 바로 옥정호입니다. 물은 산을 바로 넘지 못하지만 땅 속으로 수로만 만들어준다면 산을 뚫고 흐를 수 있기에 섬진강의 물을 동진강에 나눠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칠보발전소와 호남평야에 물을 대는 옥정호가 우리나라 최고의 나눔의 물터인 것입니다.
나눔의 모습은 어디서 보아도 아름답습니다.
완주벧엘 기도원으로 향하는 고갯길을 천천히 오르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두 어깨가 이분들이 살아오신 세월의 무게 때문에 축 쳐져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허리만 조금 구부정하셨 을 뿐 어깨는 하나도 처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껏 당신들이 모아온 것은 이미 자식들에든 누구에든 다 나눠주고 빈 몸으로 저 고개를 오르시는 것이기에 이 분들 발걸음이 가벼울 것입니다. 저 연세에 두 분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고개를 오르시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으신 것입니다. 반려자와 곁을 같이하며 남은 것을 서로 나눠주고 받는 것이 바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두 분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많든 적든 지금 가지신 것은 자식들에는 그만 나눠주시고 두 분끼리 서로 나누며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아가시기를 빌어봅니다.
아침7시20분 초당골을 출발해 오봉산으로 향했습니다.
전날 전남 장성의 방장산을 오른 후 전주로 이동해 시외버스터미널 근방의 한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새벽같이 서둘러 아침6시 조금 지나서부터 금왕사거리 정류장에서 운암삼거리로 가는 975번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아침6시20분에 첫 버스가 출발하는 것으로 알고 미리 가서 기다렸는데 어인 일인지 6시36분이 되어서야 버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운암 삼거리에서 오른쪽의 749번 도로를 따라 몇 분을 걸어 쌍용건설의 순창-운암 도로확장공사 현장 앞에 이르자 길이 끊겨 들머리를 찾느라 한참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잘린 도로 건너편에 표지기가 보여 그리로 옮겨 묘지 옆으로 올라섰습니다. 잠시 멈추어 스패치를 한 후 곧바로 올라선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갔습니다. 얼마간 편안한 길을 걷다가 비알 길을 올라 건교부의 측량점이 서있는 봉우리에서 10분을 더 걸어 삼각점이 세워진 293.4봉에 다다랐습니다. 293.4봉을 출발해 20분 동안 몇 번 방향을 바꾸어 360봉에 올라선 다음 잠시 직진하다가 왼쪽으로 확 꺾어 내려가자 아기똥풀의 노란 꽃들이 떼 지어 피어 있었습니다. 바로 앞 330봉을 올랐다가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 749번 도로로 내려선 시각이 9시5분이었습니다.
10시2분 해발513m의 오봉산에 올라섰습니다.
749번 도로를 건너 절개면 꼭지점에 오른 후 왼쪽 능선 길을 이어가다가 묘지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 봉우리를 우회하자 둥굴레 군락지가 나타났습니다. 왼쪽으로 내려가 다시 749번지방도를 건너 고개 마루 왼쪽 위로 난 완주벧엘기도원/�엘노인선교원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길로 들어섰습니다. 저 만치 앞에서 걸어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약간 구부정한 허리로 저 길을 걸어 오르기가 힘 드실지는 모르겠지만 어깨를 나란히 한 두 분의 모습이 보기에 좋았고 새삼 곁에 있음이 최고의 행복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멘트길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곧바로 묘지에 다다르자 오른 쪽 아래로 그림 같은 옥정호가 다시 보였습니다. 여기서부터 오봉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 나무를 베어낸 가파른 개활지여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반시간 넘게 내리쬐는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미끄러운 길을 올라 오봉산 어깨능선에 오르자 비로소 경사가 완만해졌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며 옥정호를 카메라에 담았는데 3-4분 후에 오른 오봉산 정상이 옥정호를 조망하는 더 좋은 전망지여서 다시 옥정호의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물 한가운데 자리한 붕어섬의 외안날도가 옥정호의 압권이었습니다. 정상에서 참외를 까먹으며 15분을 쉰 후 표지목의 안내를 받아 헬기장이 들어선 500봉까지 별 탈 없이 진출했습니다. 오봉산 정상에서 왼쪽 아래로 소모마을 길이 갈리는 안부로 내려섰다가 올라선 4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갔습니다. 3봉에서 젊은 한 분이 건네준 오이를 받아먹고 2봉으로 옮기는 중 왼쪽사면이 절벽인 전망바위가 나타나 잠시 숨을 고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2봉을 우회해 헬기장에 도착한 시각이 11시8분이었습니다.
12시47분 49번 국도가 지나는 염암재로 내려섰습니다.
하얗게 페인트를 칠한 시멘트블록도 보이지 않고 공터를 가리는 나무들에 걸려 헬기가 과연 착륙할 수 있을지 의심되는 헬기장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5-6분을 내려가자 잡목도 자라지 않은 완전한 벌목지가 나타났습니다. 이 벌목지를 10분간 내려가 만난 넓은 진입로에서 왼쪽 아래가 개활지인 오른 쪽 위 능선 길로 올라서자 서쪽 멀리 모악산의 통신탑이 보였습니다. 헬기장 출발 반시간이 지나 삼각점이 서있는 365봉을 지났습니다. 365봉을 지났으니 염암재가 가깝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앞에 보이는 엄청 가파른 봉우리를 반시간 이상 걸어 오르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10분을 더 가서 오른 봉우리가 480봉으로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들게 올라온 이 봉우리는 해발고도가 500m는 넘을 것 같았습니다. 480봉에서 급 경사길을 내려가 염암고개로 내려서자 시장기도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49번 국도를 건너 일단 해를 가릴 수 있는 나무그늘을 찾아 짐을 내려놓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점심을 들면서 예정대로 불재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을 했던 것은 예상시간보다 반시간 이상 늦어진데다 불재를 넘어 전주 가는 마지막 버스가 저녁 6시에 끝난다 해서였는데 서두르면 시간을 댈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 13시10분에 염암재를 출발했습니다.
14시36분 작은불재를 지났습니다.
염암재에서 450봉에 이르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아 힘이 훨씬 덜 들었습니다. 절개면 상단에서 오른 쪽으로 오르다가 암릉 길에 다다르자 굽이굽이 돌아가는 염암 고개 길이 한눈에 들어와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450봉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 430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내 평탄해진 능선 길에서 속도를 내어 25분을 더 걸은 후 또 다른 450봉에 올라 7-8분을 쉬었는데도 다시 10분을 내려가 다다른 작은불재까지 염암재 출발 1시간20분밖에 걸리지 않아 예상시간보다 30분이 단축됐습니다. 작은불재로 내려서자 이 정도 속도만 유지된다면 목적지인 불재에 저녁 6시 안에 충분히 다다를 것 같아 비로소 긴장이 풀렸습니다. 저만치 떨어져 보이는 600봉이 이번 산행에서 올라야 하는 최고봉인데 경사는 그리 급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채로 2-3분간 숨을 고른 후 대쳐서 600봉으로 향했습니다. 잠시 임도 길을 오르다 벌목지인 잡목숲길로 들어서 한참을 오르다가 무명봉을 왼쪽으로 우회했습니다.
15시27분 헬기장 바로 위 600봉에 올랐습니다.
무명봉을 왼쪽으로 우회하자 한동안 평탄한 길이 계속됐습니다. 조용히 생각을 키우며 걸어도 좋은 길을 하루살이가 쉴 새 없이 덤벼들어 모처럼의 편안한 길이 아깝다 싶었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올라서는 중 저만치서 짐승 움직이는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오는데 실체가 보이지 않아 긴장됐습니다. 스틱으로 돌을 계속 때려 금속성 소리를 보내는 한편 경사가 완만한 오름 길을 5-6분 간 뛰다시피 걸어올라 소리의 진원지와 일정거리를 벗어나고 나자 마음이 놓였습니다. 꽤 넓은 공터의 헬기장을 지나 4-5m 위에 있는 봉우리가 바로 600봉이었습니다. 정맥 길은 왼쪽으로 이어지고 오른 쪽 으로 치마산 길이 갈리는 600봉에서 참외를 까먹으며 15분을 쉬었더니 그 무겁던 몸이 날아갈 듯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600봉에서 왼쪽으로 5-6분을 걸어 만난 봉우리삼거리에서 광속단(狂速團)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표지기를 보고 오른쪽으로 들어섰다가 길이 아닌 것 같아 다시 보니 마루금이 왼쪽 아래로 이어졌습니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10분을 진행해 다다른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다 안부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반대방향으로 호남정맥을 종주하는 세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 분들의 목적지가 제가 아침에 출발한 운암삼거리라 하니 야간산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안부에서 다시 올라 우회한 봉우리가 430봉 같았고 한참을 더 걸어 16시37분에 올라선 봉우리는 420봉으로 생각됐으나 고도계가 고장 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7시13분 불재 고개 마루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420봉(?)에 오르자 서쪽 건너로 전주의 진산 모악산이 아주 가깝게 보였고 그 아래 구이저수지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내려와 한참을 걸었어도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보이지 않아 길을 잘 못 든 것은 아닌지 불안했습니다. 이제 봉우리는 끝났겠지 했는데 또 높은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아 이 봉우리가 다음 종주 시에 오를 경각산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찾은 활공장은 이미 지나친 것이고 따라서 되돌아가야 불재로 내려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혼미에 빠진 생각을 정리하고자 가던 걸음을 멈추고 지도를 꺼내 어떤 경우든 아직 만나지 못한 포장도로 불재를 건너야 경각산으로 길이 이어짐을 확인하고 그대로 직진했습니다. 지도를 안보고 감으로만 진행하다가는 이래서 길을 잃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넘어 다다른 능선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다가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무거운 짐을 지고 활공장으로 오르는 몇 사람들을 보았는데 정작 저는 활공장을 보지 못했습니다. 남들이 다 봤다는 활공장이 제게는 왜 보이지 않았는지 지금도 의문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땔감(?)들이 꽤 많이 쌓인 공사장을 지나 전북 완주의 상관면과 임실의 신덕면을 이어주는 불재 고개마루에 내려섰습니다. 나무그늘 아래에서 땀에 쪄든 옷을 갈아입은 후 전주행 버스를 기다리다 6시5분경에 201번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 안에서 하루 산행을 반추했습니다.
제 경우 산행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길은 오름길입니다. 168cm의 작은 키로는 80kg의 과체중을 견뎌내기가 무리이기에 무릎을 보호하고자 가능한 한 천천히 오릅니다. 능선 길에서 속도를 내어 오름 길에서 까먹은 시간을 보충하는데 이번 구간처럼 가파른 봉우리가 계속 이어지면 시간당 2Km도 못 걷게 됩니다. 체중을 줄이는 일이 지난한 것은 과체중이 저희 집안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은 빛난 얼인데다 죽어라고 살을 뺄 의지도 없어서입니다. 과체중으로 발걸음이 느리다보니 안내산악회를 따라가지 못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혼자 종주 길에 나설 수밖에 없는데 구간나누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답은 오직 하나 뿐으로 과감하게 살을 빼 몸무게를 줄이는 것입니다. 정답을 알고도 풀지 못하는 것은 의지가 약하고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하루에 두 갑 반을 피운 담배를 한 칼에 끊은 6년 전의 결단을 되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길만이 80세를 넘어서도 계속해 종주 산행에 나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니 살을 빼는 것도 나눔의 효과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우선 덜 먹을 테니 남들에 그만큼 몫이 더 돌아갈 것이고, 그래서 가벼워진 몸으로 산길을 밟게 되니 길이 망가지는 것도 같이 줄어들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야 저도 아침에 시멘트 길을 오르셨던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들처럼 발걸음이 가벼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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