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호남정맥 종주기

호남정맥 종주기 29(개운치-고당산-구절재)

시인마뇽 2008. 5. 25. 10:47
                       호남정맥 종주기 29


         *정맥구간:개운치-고당산-구절재

         *산행일자:2008. 5. 22일(목)

         *소재지  :전북정읍/순창

         *산높이  :고당산641m, 소장봉428m

         *산행코스:개운치-고당산-476봉-사적골재-소장봉-구절재

         *산행시간:8시47분-16시25분(7시간38분)

         *동행    :나홀로

 


   5월의 산에 신록이 더해지면서 산식구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호남정맥 종주 중 유군치-개운치 구간에서 멧돼지를 만났는데 개운치-구절재 구간에서 또 다시 보아, 산 속에서 이틀 연속해서 멧돼지를 만나보기는 이번 산행이 처음이었습니다. 뻐꾸기와 검은등뻐꾸기의 “뻐꾹”노래 경연도 들을 만했습니다. 머리 위를 날며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는 동안에도 좀처럼 모습을 내보이지 않는 딱새(?)를 카메라에 담아보고자 했으나 재빠른 몸놀림을 따라잡지 못해 헛손질만 계속 했습니다. 동물들은 제가 앞으로 다가가면 어느새 알아채고 숲속으로 몸을 숨겨 심중의 말 한마디를 전하기가 너무 어려운데, 제자리를 지키는 식물들은 사진 찍기와 묵언의 대화가 가능해 동물들보다 훨씬 가깝게 지내왔습니다. 산딸나무, 때죽나무와 찔레가 탐스런 하얀 꽃을, 그리고 층층나무와 국수나무가 수더분한 흰 꽃을 피워 철쭉꽃이 사라진 5월 하순의 산속을 환하게 했고, 나무 꽃들에 밀리기는 해도 이달 들어 산괴불주머니, 은방울꽃, 엉겅퀴, 고들빼기, 둥굴레 및 이름을 모르는 풀꽃들이 새롭게 산 속에다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반갑기는 해도 걱정되는 꽃나무는 찔레꽃입니다.

청미래덩굴 및 산딸기와 더불어 종주 꾼을 위협하는 이 나무의 가시에 얼마를 더 찔려야 올 한해 산행을 끝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됩니다. 해발고도가 높은 백두대간 길이라면 혹시 몰라도 고도가 낮은 정맥이나 지맥 길의 한 여름 철 복병은 단연 이들이 숨겨둔 가시입니다. 긴 옷을 입어도 사정없이 찔러대는 가시에 온전할 리 없어 한두 번 풀숲 길을 뚫고 지나가노라면 여기 저기 긁힌 팔다리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그 부분이 가려워 며칠간 생고생하게 됩니다. 사정이 이러한 즉 아무리 꽃이 소담스럽다 해도 이 시대의 소리꾼인 장사익 님처럼 찔레꽃을 보고 사랑노래를 읊조릴 마음이 일지 않는 것입니다. 하얀 꽃 찔레꽃이, 또 순박한 찔레꽃이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러워 밤새워 노래하고 춤추고 울었다는 장사익 님의 애절한 노래 가락이 심금을 울리면 울릴수록 겉보기와는 달리 속에다 가시를 숨겨놓은 찔레꽃의 냉혹함에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찔레꽃은 5월의 산식구입니다.

막무가내로 풀숲을 헤치고 들어오는 제게 숨겨놓은 가시로 자기영역을 방어하는 찔레 등 가시나무들을 냉혹하다고 몰아치는 것은 옳은 일은 아닙니다. 분명 이 산의 주인은 산식구들이지 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몇 번이고 멧돼지가 나타나 경고사인을 보내는 것도 저의 무례를 반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똑 같이 가시를 품고 있는 장미에는 사랑의 눈길을 보내면서 산속에서 자기영역을 지키는 가시에 좀 찔렸다 해서 찔레꽃을 탓하는 것은 형평의 원리에도 어긋나는 처사입니다. 논리가 그러한 즉 이제부터라도 찔레꽃을 미워하는 마음을 거두고 장사익 님의 “찔레꽃” 노래나 한 번 목청 높여 불러볼 생각입니다.


  아침8시47분 개운치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아침 일찍 정읍사공원(井邑詞公園)을 둘러본 후 시외버스터미널로 옮겨 아침8시10분발 쌍치경유 순창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30분을 달려 도착한 개운치에서 하차해 산행채비를 한 후 검은 지붕의 외딴 집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 대나무 숲 길로 들어섰습니다. 고당산으로 이어지는 치받이 길을 오르는 중 활짝 핀 하얀 찔레꽃을 보고 마음이 환해진 것은 잠깐이고 이내 여름 내내 가시에 찔릴 일이 걱정됐습니다. 날씨는 쾌청했고 바람도 살살 불어와 제반 컨디션이 다 만점인데 배가 살살 아파와 가파른 비알 길을 웬만큼 오른 후 잠시 쉬며 속을 달래야 했습니다. 내장산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곡두재부터 개운치까지 종주 길을 안내하는 표지기가 잘 보이지 않은 것이 혹시라도 공원 측에서 제거했기 때문이라면 드물게 세워놓은 공원의 이정표보다 갈림길마다 매달아 놓은 표지기가 훨씬 더 결정적으로 길안내를 해주는 것을 간과한 단견의 소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추령봉 이후로는 이렇다하게 공원의 표지물이 보이지 않았는데 개운치까지는 종주꾼들의 표지기도 거의 걸려있지 않아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길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개운치에서 계속해 가파른 길을 올라 묘지에 다다르자 한동안 보이지 않던 낯익은 표지기가 다시 나타나 엄청 반가웠습니다.


  10시 정각 해발 641m의 고당산을 올랐습니다.

반가운 표지기가 매달려 있는 묘지를 지나 그 15분 후 헬기장에 다다르기까지 검은등까마귀의 “홀딱벗고”노래 소리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층층나무의 하얀 꽃들이 활짝 핀 헬기장에서 멀리 떨어졌을 것으로 생각한 고당산이 불과 5분 거리였음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 조선일보 간 “실전호남정맥 종주기”에 실린 지도가 잘못됐음을 알았습니다. 일명 칠보산으로도  불린다는 고당산 정상 한 복판에 묘지가 들어서 있었고 삼각점은 한 귀퉁이에 서있었습니다. 땡볕에 밀려 고당산 정상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북동쪽으로 난 산죽 길과 바위 길을  따라 내려가 다다른 안부에서 528봉으로 올라선 다음 오른쪽으로 꺾어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 갔습니다. 오른쪽 사면이 나무들을 모두 베어낸 벌목지여서 6월만 되어도 땡볕과 풀숲으로 이 길을 지나기가 엄청 고생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랑색의 고들빼기꽃(?)이 흐드러지게 핀 묘지를 지나 시멘트 길로 내려섰습니다. 왼쪽 아래로 시멘트길이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그냥 흙길인 굴재 고개 마루에서 직진해 복분자 밭 왼쪽 가로 이어지는 정맥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밭가 길을 지나 다시 숲길로 들어가 15분간 푹 쉰 후 11시5분에  정맥종주를 이어갔습니다. 


  12시12분 삼각점이 서있는 476봉에 올라섰습니다.

숲길에서 긴 시간 편히 쉬어서인지 524봉으로 오르는 비알길이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울고 있는 삼색의 딱새(?)가 언뜻 보여 카메라를 꺼내들고 한참을 기다렸으나 두 번 다시 모습을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껏 지나온 호남정맥 종주 길 중에서 가장 광활한 둥굴레군락지를 지나 올라선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올라 우뚝 선 524봉을 왼쪽으로 우회한 후 김해김씨 쌍묘를 지나 553봉에 올라섰습니다. 나뭇가지에 “553m봉”으로 표시된 표지기가 걸려있는 553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왼쪽사면이 천 길 낭떠러지인 벼랑 끝 오른 쪽의 정맥 길을 따라 경사 길을 얼마만큼 내려가자 길이 평탄해졌고 여러 그루의 국수나무들이 수더분한 흰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좁은 봉우리에 삼각점만 달랑 서있는 476봉에서 조금 내려가 준비해간 쑥떡을 들면서 십 수분을 쉬었습니다. 476봉에서 조금 내려선 후 죽은 소나무들과 그 아래를 꽉 메운 산죽들이 생과 사의 색깔이 어떻게 다른 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완만한 능선 길을 걸어 다다른 한 봉우리에서 백두대간을 함께 종주한 천자봉님 표지기가 보여 반가운 마음에서 별 생각 없이 그 쪽 길로 내려갔습니다. 이내 별안간 길이 희미해져 가던 길을 멈춰서고 지도를 꺼내 방향을 확인했더니 남쪽으로 진행하고 있어 길을 잘 못 들었음을 직감하고 원위치 했습니다. 잘 못 내려선 남쪽 길이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길 같았고 그렇다면 원위치한 봉우리는 또 다른 476봉으로 이봉우리에서 왼쪽의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타고 십자안부로 내려섰습니다.


  14시7분 사적골재를 지났습니다.

십자안부에서 비알 길을 오르는 중 별안간 왼쪽 숲속에서 후다닥 뛰어가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뛰어가는 뒷모습이 커다란 산토끼인가 했는데 제가 오르는 흙길 등로에 큰 발자국이 분명하게 나있는 것으로 보아 작은 멧돼지임에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이틀 연속 이 산의 맹주인 멧돼지를 만났는데도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느라 인사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는 것은 제가 이 산의 한 식구로써 다른 식구들과 교분을 쌓아가기가  정말로 지난하다는 반증 같아서 씁쓰레 했습니다. 안부에서 올라선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진행하며 저 아래 멧돼지가 이 능선으로 올라와 저를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였습니다. 편안한 능선 길을 걷다가 올라선 묘지봉에서 급경사 길을 내려가 만난 시멘트 길을 따라 1-2분을 걷다가 다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잠시 후 다시 만난 시멘트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왼쪽으로 확 꺾이는 커브 길에서 직진해 숲길로 들어섰다가 바로 아래 동네까지 한 번 내려 가보자는 생각이 들어 다시 시멘트 길로 나와 조금 내려가자 길 왼쪽 위로 석탄사로 보이는 절 한 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커브 길로 돌아와 지도를 꺼내 펴놓고 갈 길을 체크해보니 앗뿔사 하마터면 엉뚱한 길로 들어서 된 고생을 할 뻔 했습니다. 방금 전내려가 본 길이 북쪽에 자리한 소장봉으로 오르는 제 길이었고 커브 길에서 들어섰던 길은 동쪽 멀리 감투봉으로 이어지는 전혀 다른 길이었습니다. 다시 뒤돌아가 주홍색 지붕의 한 민가 앞에 전신주가 서 있는 사적골재에 다다르자 호남정맥 표지기가 걸려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사적골재 오른 쪽 아래에 자리한 사적골제가 지도를 보고 제 방향을 잡는데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14시44분 368봉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전신주 앞에서 시멘트 길을 벗어나 묘지가 들어선 북쪽의 풀밭 길로 올라서자 이런저런 가시들이 마구 찔러대 올 여름 종주산행이 무탈치 않음을 일러주는 듯 했습니다. 호남정맥도 이 산줄기를 종주하는 산객들이 그리 많지 않아 이름난 산이 아니면 곳곳에 풀 숲길이 있어 산행 중 가시에 찔리는 것은 다반사입니다. 올해는 5월 들어 내장산 국립공원을 지나는 통에 가시 길을 피해갈 수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꼼짝없이 만나면 찔릴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고 있습니다. 힘들게 오른 428봉에는 소장봉이라는 이름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눈에 익은 표지기만 여러 개 걸려있었습니다. 엉덩이를 붙여 쉬어갈 만한 공터도 없는데다 죽은 나무줄기들만 어지럽게 널려있어 어수선한 428봉을 바로 떠 거대한 뿌리가 통째로 뽑힌 거목을 지나 삼각점이 서있는 368봉에 도착했습니다.


  과연 거목이다 한 것은 이  나무의 키가 커서가 아니고 커다란 바윗돌을 움켜잡고 쓰러진 거대한 뿌리 때문이었습니다. 나무를 똑바로 세워 올곧게 자라게 하고 나뭇잎에 물을 공급해 필요한 영양분을 광합성을 통해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하고자, 바위를 뚫고 내려가 땅 속 깊이 수도관을 박은 뿌리의 실체를 보고나자 비록 강풍에 못 이겨 뿌리를 뽑힌 채 누워있어도 이 거대한 뿌리는 신이 만든 나무를 위해 역시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 싶었습니다. 시인 김수영님이 이 땅에 박은 뿌리도 거대했습니다. 그의 시 “거대한 뿌리”에서 “제 3인도교의 물속에 박은 철근 기둥도/내가 내 땅에/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이라고 읊은 김수영님은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한 영국의 문화인류학자인 이사벨 버드 비숍 여사가 심야에는 여자가 사라지고 남자가 오입하러 나선다고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로 비하한(?) 이 땅에 주저하지 않고 거대한 뿌리를 내리셨기에 이 땅의 더러운 역사도 더러운 진창도 진정 사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내린 뿌리가 워낙 거대해 유명을 달리한지 40년이 지났어도 후배문인들이 그의 거대한 뿌리를 뽑아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는데 여기 호남정맥에 거대한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쓰러져 속 뿌리가 드러난 것을 보자 한 시인의 의지가 태풍보다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시25분 정읍시 산내면과 칠보면을 경계 짓는 구절재로 내려서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368봉에서 오른 쪽으로 경사 길을 내려가다 얼마 후 송전탑을 지났습니다. 곧 이어 도착한 안부에서 360봉에 이르는 길은 비교적 평탄한 길이어서 편했습니다. 360봉에서 동쪽으로 진행해 320봉에 이르렀고 이곳에서 방향을 남동쪽으로 확 틀어 진행하다가 340봉으로 올라섰습니다. 340봉에서 구절재로 내려서는 길에 봉분 아래 부분에 빨간 벽돌과 큰 화강암 돌을 묘곽을 만들어놓고 한글로 비문을 써놓은 묘지 두 곳을 지났습니다. 무명봉을 마지막으로 넘어 송전탑을 지나 구절재로 내려서자 돌을 깎아 세운 장승 2개가 서 있었습니다. 


  구절재에서 택시를 불러 칠보시내로 내려가는 중 오른 쪽으로 15년 전에 한번 둘러보았던 발전소가 보였습니다. 이 발전소는 산 너머 섬진강 물을 터널을 뚫어 동진강으로 끌어가는 수로에 34,800kW의 용량을 갖도록 시설된 칠보수력발전소로 물이 떨어지는 낙차폭이 151.7m나 된다고 합니다. 호남정맥에 터널을 뚫어 섬진강의 물을 산 너머 동진강으로 보내고 발전까지 하고 있으니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고래의 산자분수 원리가 무색해진 셈입니다. 칠봉에서 대략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정읍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습니다. 40분 남짓 걸려 정읍역에 도착, 18시32분 발 수원행 새마을 열차에 몸을 실어 이틀간의 호남정맥 종주 나들이를 마무리했습니다. 칠봉에서 대략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정읍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습니다. 40분 남짓 걸려 정읍역에 도착, 18시32분 발 수원행 새마을 열차에 몸을 실어 이틀간의 호남정맥 종주 나들이를 마무리했습니다.


  이달 들어 새로 선보인 산식구들이 모두 온순하지는 않습니다.

이틀 연속 만난 멧돼지도 그렇고 찔레나무들도 그러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호남정맥을 지키는 산식구들입니다. 저처럼 지나가버리는 과객이 아닙니다. 과객이 주인행세만 안한다면 과객을 해하는 산식구들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산은 공존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과객인 사람들이 지나치게 주인행세만 안 한다면 말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