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곰치재-적천재-3정맥분기점 조약봉
*산행일자:2008. 6. 23일(월)
*소재지 :전북완주/진안
*산높이 :조약봉565m
*산행코스:곰치재-웅치전적비-514.5봉-적천재-3정맥분기점 조약봉-모래재
*산행시간:9시33분-14시(4시간27분)
*동행 :나홀로
산은 강의 어머니입니다.
모든 강의 발원지는 산입니다. 그리고 강에 물을 대는 젖줄이 바로 산입니다. 그러기에 산은 강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산은 강의 아버지입니다. 서로 다른 강물들이 섞이지 않도록 울타리를 쳐 가름하는 것이 산입니다. 한 집안의 울타리역할을 아버지들이 하듯이 강줄기 둘레에 울타리를 쳐 강물의 흐름을 잡아주는 것이 산줄기입니다. 그래서 산은 강의 아버지라 불러도 자나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산은 강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인 것입니다.
호남정맥은 섬진강의 서쪽 울타리입니다.
호남정맥 능선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섬진강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섬진강이 서쪽의 탐진강, 영산강, 동진강 및 만경강과 몸을 섞지 않는 것은 바로 호남정맥이 울타리 역할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섬진강이 독립된 수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북쪽 울타리와 동쪽 울타리가 더 있어주어야 합니다. 북쪽의 금강과는 금남호남정맥이 가르고 동쪽의 낙동강과는 백두대간과 낙남정맥 일부와 낙남정맥이 가름해줍니다. 이들 울타리산줄기는 다른 강물의 유입과 다른 강물에로의 유출을 막을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받아 섬진강으로 모아주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당연 호남정맥만으로는 섬진강의 어머니이자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다 해내지 못합니다.
조약봉에서 호남정맥 종주를 마치고 멈춘다면 저는 섬진강에 머리를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섬진강의 울타리산줄기를 반만 오르고 산이 강의 어머니이자 아버지라고 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행히 호남정맥을 종주하며 제 생각이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전남 광양의 망덕산에서 시작할 때는 호남정맥과 금남호남정맥 종주를 목표로 했지만 이제는 섬진강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인 울타리 산줄기를 모두 돌아보자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러기에 호남정맥 종주 끝은 금남호남정맥 종주의 시작일 뿐입니다. 시간은 연속해서 흐르는 데 카렌다를 만들어 1년을 마무리 짓듯 호남정맥종주의 마무리산행도 섬진강 울타리 산줄기는 경남하동의 두우산까지 계속되는데 중간에 한번 매듭져본다는 정도로 의미를 부여하면 맞을 것입니다. 그래서 잠시 쉰 후 7월 중 금남호남정맥 종주 길에 다시 나설 뜻입니다.
아침9시33분 곰치재를 출발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세 번의 알바로 바로 전날 호남정맥이 끝나는 조약봉까지 가지 못하고 곰치재를 날머리로 해 산행을 접었습니다. 택시를 불러 진안으로 나간 다음 버스타고 전주로 가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아침 일찍 일어나 그 역순으로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곰치재에 다다랐습니다. 이번에도 고심한 것은 호남정맥이 끝나는 조약봉까지 코스가 너무 짧아 아예 오룡고개까지 진출해 금남호남정맥에 첫발을 들일 까하는 구간 자르기 문제였습니다. 일단 산행을 시작하고 조약봉에서 결정하자고 생각을 정리한 후 조약봉으로 향했습니다. 오름 길이 시멘트길이어서 지열이 느껴졌는데 그 길은 그리 길지 않아 이내 웅치전적비에서 끝났습니다. 왜군의 침략으로부터 호남평야를 지키자는 이 지방 의병들의 애국심과 애향심은 비록 전투에서 패했다하더라도 영원히 기려져야 할 것이고 이런 전적비들이 이들의 충절을 되새기게 할 것입니다. 전적비에서 비알 길을 올라 곰치재 출발 25분 후에 다다른 능선 삼거리에서 오른 쪽의 600봉을 들르지 않고 바로 왼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경사가 가파른 길을 내려서자 작년 가을 떨어진 낙엽들이 아직도 온전하게 길을 덮고 있어 발바닥에 닿는 촉감이 폭신했습니다. 종주 마지막 날 노란 망사를 뒤집어 쓴 보기 드문 버섯을 카메라에 담고 나자 바로 이 한 컷이 호남정맥이 제게 주는 공로패다 싶었습니다. 낙엽 길도 푹신해 좋고 꽤 여러 종의 새들도 온 몸을 드러내 저를 반기는데 희귀종의 버섯마저 모델을 서겠다고 이렇게 나서주니 아직 끝점까지 2시간 넘게 남았는데 산식구들의 종주축하 세레머니가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10시30분 곰티재를 지났습니다.
600봉 어깨 능선에서 내려서 좋은 길을 얼마간 걸어 다다른 참나무 묘지를 지나 그 위 무명봉을 오른 쪽으로 우회했습니다. 한참 후 내려선 안부에서 좌우로 임도 길이 갈렸는데 오른 쪽 아래 임도길이 새터교 길이었습니다. 임도를 건너 산길로 들어서자 길 오른 쪽에 낡은 철망이 쳐져 있어 이 철망 울타리를 따라 오르내리다 곰티재에 다다랐습니다. 옛날에 버스가 넘나든 곰치재의 웅치전적지 안내판은 완주군이, 그 위의 웅치전적비는 전라북도가, 그리고 사람들만 겨우 넘어 다녔을 여기 곰티재의 웅치전적지 안내판은 진안문화원에서 세운 것들로 웅치전적을 기리는 기념물이 무려 세 곳에나 있어 조금은 어리둥절했습니다. 곰티재 십자안부에서 묘지 위 능선으로 올라가 전날 오른 만덕산의 늠름한 자태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묘지 위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축사 같은 건물이 보이는 안부로 급하게 내려섰다가 급경사 길을 올라 571봉에 도착했습니다. 571봉에서 가파른 암릉길을 지나 다다른 563봉에서 왼쪽의 좁은 암릉 길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 잡목들이 무성한 봉우리에서 삼각점을 찾지 못해 이 봉우리가 514.5봉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1시45분 왼쪽 아래로 신보활석광산 길이 갈리는 십자안부 적천재를 지났습니다.
514.5봉에서 비알길을 내려가 만난 갈림길에서 봉우리 하나를 오른 쪽으로 우회해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 무명봉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7-8분을 쉬었습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는데 뻐꾸기와 검은등뻐꾸기는 이 바람이 머지않아 비를 몰고 올지를 어찌 알았는지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내려갔다가 480봉에 오르며 커다란 자갈이 박힌 역암을 만나 이 산줄기도 마이산의 두 통 바위와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가 했습니다. 키를 넘는 산죽 길을 지나 오른 무명봉에서 십자안부 적천재로 내려서자 1989년에 대한광업진흥공사에서 세운 콘크리트표지판이 박혀 있었습니다. 적천재에서 급하게 올라선 497봉에서 다른 길로 내려가 20분간 알바를 했습니다. 직진해야 할 것을 표지기가 걸려있는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자 2기의 묘가 자리한 넓은 묘지가 나타났습니다. 안개가 뿌옇지만 모래재 공원묘지가 확연하게 보이는 묘지에서 조금 더 내려가자 비교적 선명한 길이 이어져 한참을 더 내려가다 표지기가 눈에 띄지 않아 진행방향을 점검했습니다. 북진길이 아니고 남동쪽으로 내려가고 있어 길이 아니라고 판단해 다시 묘지 위 497봉으로 향했습니다. 후드득 내리는 빗방울이 드세져 우의를 입고 내려온 길을 다시 오르느라 진땀을 흘렸지만 이미 조약봉에서 호남정맥 종주를 마치고 하산하기로 마음먹은 터라 서두르지 않아도 됐습니다. 12시21분에 다시 오른 497봉에서 북쪽의 제 길을 찾아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13시15분 3정맥 분기점인 조약봉에 도착해 호남정맥 종주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497봉에서 북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봉우리 2개를 넘어 급하게 내려가다 그새 내린 비로 길이 미끄러워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호남정맥 마지막 산행이어서 이 산줄기가 추억거리를 만들어주자고 작정한 듯 했습니다. 노란 망사로 가린 버섯이 저를 반겼고, 좀처럼 몸을 드러내지 않는 새들이 얼굴을 보여줬으며 20분간의 가벼운 알바를 겪었고 내장산을 지난 후 처음 엉덩방아를 찧은 것들 모두가 제게는 추억거리가 될 것이기에 말입니다. 전신주가 비스듬히 걸쳐있는 능선 길을 내려가 오른 쪽 아래 모래재 휴게소로 바로 내려가는 안부에 다다랐습니다. 조약봉에 오르는 길은 이제까지 걸어온 길처럼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싸리나무와 산딸기가 얼굴을 때리는 잡목 숲길을 꽤 오래 걸어올라 헬기장에 다다랐습니다. 헬기장에서 한 걸음에 내달아 조약봉에 도착했습니다. 두 번째 오르는 조약봉에서 수많은 표지기를 보았습니다. 작년 4월 첫 번째 오를 때는 정맥종주를 마친 기쁨에 겨워 저 많은 표지기를 매달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무탈하게 종주산행을 마치게 해준 산줄기에 고마움을 표하고자 걸어놓았겠다 했습니다. 아니 저 표지기들에 기쁨과 고마움이 모두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14시 정각 모래재휴게소로 내려가 모든 산행을 마치고 전주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기차타고 상경하는 중 축하주를 사겠다는 고교동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산본에서 한북정맥을 같이 뛰는 동료 넷이서 자리를 마련해 줘 고마웠습니다.
호남정맥을 종주하며 산줄기를 이어가는 것이 고마움을 쌓아가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3정맥분기점에서 표지석 앞에 배낭을 벗어놓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5월 광양의 섬진강포구 외망에서 시작한 호남정맥에 총34회를 출산해 여기 3정맥분기점에서 마지막 산행을 끝내기까지 건각을 주시고 항상 보살펴주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주님께서 가까이서 보살피시는 집사람에도 완주를 고했습니다. 근무 중인 두 아들에는 문자메시지를 띄웠습니다. 그리고 경동동문산악회의 한 후배에 전화를 걸어 완주를 알렸습니다. 아직도 고마워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백운산과 무등산의 두 구간을 우정산행한 경동동문산악회 이규성회장님, 존제산 구간을 무탈하게 산행하도록 순천에서 무네미고개까지 차편을 도와주신 순천의 깜상님, 광주에서 알콜결핍증을 깔끔하게 낫게 해준 양방현사장님, 산에 다니면 쉽게 배가 고플 것이니 실컷 먹으라고 밥도 반찬도 고봉으로 많이 내준 정읍버스정류장의 한식집 할머니에도 감사인사 드립니다. 한국의 산하에 종주기를 올리신 성봉현님과 따라가기님의 산행기가 크게 도움이 되었음을 각별히 감사드립니다. 경동고 동문들도 고맙기는 마찬가지이고, 졸고를 실을 공간을 내준 송백산악회와 열심히 격려해주신 산악회 여러분들도 고맙습니다. 한국의 산하 사이트에 격려의 댓글을 올려주신 모든 분들과 졸고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도 감사인사 올립니다. 아침 일찍 들머리까지 차를 태워주신 군내버스 기사님도 고맙습니다. 종주길 거의 반을 끈질기게 같이한 능선의 꼬막 조개들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웬만하면 올 안으로 하동의 두우산에 올라 건너편 광양의 망덕산을 카메라에 담아 올 뜻입니다. 울타리 종주가 끝나면 언제고 짬을 내 섬진강 강줄기를 밟아 볼 뜻입니다. 산줄기와 강줄기를 모두 밟고 나면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 님을 찾아뵈어 제가 본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고할 생각입니다. 산줄기를 이어가는 것이 이처럼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것이기에 생각의 진화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호남정맥 산줄기에 감사인사 올립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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