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북정맥 종주기

제2차 한북정맥 종주기11(울대고개-도봉산-우이령)

시인마뇽 2008. 7. 22. 08:52
                          한북정맥  11구간


        *정맥구간:울대고개-도봉산-우이령

        *산행일자:2008. 7. 20일(일)

        *소재지  :서울/경기의정부 및 양주

        *산높이  :도봉산740m, 사패산552m

        *산행코스:울대고개-사패산-도봉산-우이암전위봉-우이령-오봉산휴게소

        *산행시간:9시35분-17시25분(7시간50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 17명

        (24기김남진/김양옥, 김주홍/김경옥, 백인목, 서중원, 이규성, 이달헌, 이명재,

        우명길, 정준식, 29기정병기/김의정, 오창환, 김정호, 30기박승욱, 초대손님 박현출)

 


  갈매기의 한반도 나들이가 이토록 소란스러워서야 파이로트 출신의 미국인 작가 리차드 버크가 그의 소설 “조나단의 꿈”을 통해 애써 구축해 놓은 갈매기의 좋은 이미지가 손상을 입지 않을까 적지 아니 염려됐습니다. 30여 년 전에 이 소설을 처음 읽으면서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문구에 매료되어 몇 번이고 되뇌며 갈매기 조나단의 비상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번에 한반도로 비상한 갈매기는 조나단의 꿈을 망각하고 오로지 이 땅에 생채기를 내는 데만 열을 냈습니다. 조용히 우리 상공을 날면서 한반도북단의 상심한 주민들에 꿈을 전해준다면 역시 갈매기조나단이다 할 텐데 이번에 소란을 피운 갈매기는 꿈을 키우고 실현하고자 애쓰는 갈매기 조나단이 아니고 새우깡을 받아먹고자 뱃전으로 몰려드는 꿈을 잃은 갈매기처럼 보였습니다.


  제7호 태풍 ‘갈매기“의 진행상황을 상세히 알리는 기상청의 예보가 횟수를 더 할수록 이런 악천후에도 한북정맥 종주를 강행할 것이냐를 물어오는 대원들의 전화가 연이었습니다.  비 온다고 안가고 눈 내린다고 멈추고 바람 분다고 쉰다면 차 포 떼고 상마저 내려놓고 장기를 두라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생각을 갖고 있는 제가 준비한 답은 날씨가 더 이상 악화되어 산행이 불가능하게 된다면 중간에 접고 탈출하더라도 일단은 산에 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호기롭게 대답할 수 있는 데는 저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강행하겠다는 이번 산행은 능선을 이어가는 종주산행이어서 산행 중 계곡을 건널 일이 전혀 없는데다 대원들 모두가 그간 몇 번이고 오른 국립공원 북한산의 도봉산 구간이어서 무리다 싶으면 어디서고 탈출이 가능해 자칫 오기로 비칠만한 답변을 자신 있게 준비한 것입니다.


  얼마 전 한 신문에서 안전과 안심이 어떻게 다른 가를 다룬 한 일본인 교수분이 올린 기고문을 읽었습니다. 안전은 과학적 사실이고 안심은 느끼는 사람의 마음으로 서로 같지 않다고 진단한 분이 다름 아닌 일본 세콤(SECOM)의 창시자라는 글을 읽고 이 분이 안전을 담보로 하여 안심을 상품화하는데 세계적으로 대성한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전은 확률론이 지배하는 이공계세계이고, 안심은 어떻게 느끼는 가의 인문학적 세계로 서로 다른 것이기에 미국산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몇 천만분의 일도 안 되어 절대 안전하다 해도 그 엄청나게 작은 확률이 자기에게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벼락 맞는 사람이 열 명 남짓해 제가 벼락 맞을 확률은 3-4백만분의 1정도로 로또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도 훨씬 낮은 데도 천둥번개가 크게 치면 집안에 있을 때도 두려움을 느끼는 되는데 이 경우가 바로 안전과 안심이 다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일 것입니다. 사리가 이러할진대 갈매기가 한반도를 비상하는 악천후에 산행한다는 것이 능선만을 종주하는 것이어서 안전하다해도 마냥 안심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산행을 마칠 때가지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산행초반과 종반에 큰비가 내린 것을 제외하고는 기상청에서 예보한 만큼 폭풍을 수반한 폭우가 내리지 않아 예정한 구간을 모두 종주하고 오봉산휴게소에서 하루 산행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산행이 끝나고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드는 중 억수같이 퍼붓는 밖을 내다보면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산행을 강행한 친구들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같이 느꼈습니다.


  아침9시33분 울대고개를 출발했습니다.

4년 전 한북정맥 종주 차 하이맛 친구와 함께 이 고개를 출발해 사패산을 오를 때도 비가 엄청 퍼부어 고생을 했는데 이번에도 그 때 못지않게 큰비가 내렸습니다. 가능역에 집결한 17명의 일행들은 불광동 가는 34번 버스에 승차해서 울대고개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39번 국도를 건너 산속으로 들어섰습니다. 민가 뒤로 난 길로 들어선 후 표지기가 걸린 제 길이 보이지 않아 그냥 위를 향해 똑바로 올랐습니다. 10여분 후 사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만났고 오른 쪽으로 꺾어 한참을 오른 후 화생방훈련 안내판이 서있는 331봉에 도착, 잠시 후미를 기다리며 쉬었습니다.


  11시 정각 해발552m의 사패산을 올랐습니다.

조선조 14대 임금인 선조께서 여섯째 딸 정휘옹주를 유정랑에 시집보내면서 하사한 산이라 하여 사패산(賜牌山)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산의 정상은 몇 십 명이 둘러앉아도 될 만한 너럭바위가 들어 앉아 다 함께 식사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이고 사방이 탁 트여 전망도 빼어납니다. 이번 산행에서는 산자락에 짙게 드리운 구름이 시야를 가려 어느 봉우리 하나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빗줄기가 멈춘 것만도 감지덕지할 일이어서 올해 환갑만 아니라면 이 비를 맞고 처음으로 이 산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한 친구와 아빠와 함께 오른 이름 모르는 꼬마들을 모델로 세워 정성들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너럭바위에서 점심을 들자는 유혹을 물리치고 남동쪽으로 향하는 사패능선을 이어간 것은 날씨가 좋을 때 얼마라도 더 진행하고 싶어서였습니다. 11시40분 경 회룡사 갈림길을 지나서도 40분가량 더 걸어 사패능선이 거의 끝나는 산불감시 초소 앞 공터에 다다랐습니다.


  12시20분 공터에 현 위치가 통신대 앞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서있는 넓은 공터에 둘러앉아 점심을 들었습니다. 사람들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비가 뚝 그치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날 좋은 때와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이 마냥 늘어져 50분이 다 걸렸습니다. 때마침 머리 위를 선회하는 잠자리 떼를 보고  앞으로 이들이 몰고 올 가을의 들머리가 보이는 날도 그리 멀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포대능선이 시작되는 망월사 갈림길을 지난 지 얼마 후 산불감시초소와 벙커가 들어선 포대정상을 오른 쪽으로 우회하는 중 헬기장을 지났습니다. 헬기장에서 깊숙이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 고개마루가 바로 포대능선이 끝나는 지점으로 자운봉과 맞은편 신선봉이 바로 앞에 보였습니다.


  14시7분 신선봉 갈림길에서 10분여 휴식을 취한 후 우이암을 향해 남진을 계속했습니다. 이제껏 신선봉을 오르지 않은 대원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신선봉을 들르지 않고 그대로 직진했습니다. 원거리를 비행한 갈매기가 많이 지친 듯 휴식시간이 제법 길어 비가 멈춘 시간도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구름 속에 몸을 숨긴 도봉산의 연봉들이 바람의 도움을 받아 구름을 걷어내고 간간히 얼굴을 내보였습니다. 아무리 미인이라도 장시간 뚫어져라 보면 얼굴의 주근깨가 크게 보이듯이 자운봉과 만장봉, 그리고 선운봉의 자태가 아무리 빼어나더라도 날씨 좋은 날에 사진을 찍으면 참 잘 나왔다는 정도 이상으로 감탄하기 힘든데 이번처럼 잠시 살짝 내보이는 희멀건 암벽이 참으로 장대하면서도 말끔하다 싶어 친구들의 감탄사가 연이어졌습니다. 오봉 갈림길을 지나고 헬기장도 지났습니다.


  15시49분 나무계단 길 전망대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목욕을 막 마친 깔끔한 오봉을 배경으로 해 더 높은 곳으로 날고자 하는 갈매기 조나단과 동류의 꿈을 꾸고 있는 친구들의 뿌듯해하는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태풍 갈매기가 몰고 온 큰비와 거센 바람이 북한산 공원의 입산을 막아 다른 주말이라면 혼잡했을 산길이 마주치는 산객들과 인사를 나눌 정도로 한가했습니다. 우이암이 코앞에 다가오자 오른 쪽 아래 우이령으로 갈리는 갈림길을 찾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4년 전 첫 종주 때 갈림길을 그냥 지나치고 우이암까지 가서 우이령가는 길을 찾고자 몇 곳을 내려갔다가 길이 아니어서 되올라와 결국에는 찾지 못하고 우이동으로 하산한 일이 있어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국립공원 내 산에서는 공원이 세운 이정표를 제외하고는 사적인 표지물을 전부 제거해 다른 산이라면 틀림없이 걸려있을 표지기가 없는데다 다시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해 더 그러했습니다.


  16시35분 경 전경들이 지키고 있는 우이령으로 내려섰습니다. 

우이암 전위봉인 542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우이령으로 가는 길을 제대로 찾았습니다. 오래 쉬었던 갈매기의 날개 짓이 다시 시작되었나 봅니다. 사패산을 오를 때보다 더 굵은 비가 더 빠르게 내렸습니다. 집 나올 때 깜박 잊고 스틱을 두고 와 비가 내려 더욱 미끄러워진 산길을 내려가기가 무척 조심스러웠는데 마침내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우이령에서 왼쪽 대로를 따라 내려가 우이동에서 산행을 마치겠다는 애당초 계획은 전경의 강력한 저지로 포기하고 전경이 일러준 대로 오른 쪽 군사도로로 내려가 오봉산휴게소로 향했습니다. 한북정맥을 종주하는 많은 분들은 우이령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왼쪽으로 치고 올라가 상장능선에서 다시 마루금을 이어가는데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날씨가 좋지 않아 저희 일행들은 큰 길을 따라 그대로 걸어갔습니다. 황토색 탁류로 변한 계곡물이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수량도 많았고 물살도 급했습니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인 빗줄기가 군부대를 빠져나오자 다시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17시25분 경 39번 국도상의 오봉산휴게소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도로변 음식점에 자리 잡고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들면서 우중 무사산행을 자축했습니다.


  8시간에 가까운 갈매기와의 힘든 데이트를 잘도 견뎌 낸 일행들의 얼굴에서 악천후를 이겨내고 또 한 구간을 마쳤다는 뿌듯함을 읽었습니다. 악천후를 무릅쓰고 종주산행에 참여한 대원들 모두가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는 꿈을 접지 않는 갈매기 조나단처럼 더 높은 산을 향해 더 멀리 종주하고자 하는 꿈을 계속 간직해나갈 것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