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금남호남정맥 종주기

금남호남정맥 종주기5(최종회:밀목치-장안산-영취산)

시인마뇽 2008. 8. 26. 15:25

                       금남호남정맥 종주기5(최종회)


        *정맥구간:밀목치-장안산-영취산

        *산행일자:2008. 8. 21일(목)

        *소재지  :전북장수

        *산높이  :백운산948m, 장안산1,237m, 영취산1,076m

        *산행코스:밀목치-백운산-장안산-무령고개-영취산-무령고개-주촌논개생가

        *산행시간:8시53분-17시30분(8시간37분)

        *동행    :나홀로

 


  이번산행으로 작년5월에 시작한 섬진강서쪽과 북쪽 울타리를 이어가는 산줄기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광양 외망의 망덕산에서 시작해 도상거리가 500Km가 다되는 호남기맥-호남정맥-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를 연이어서 다 밟기까지 총39회를 출산했으며 그 중 37회는 혼자서, 나머지 두 번은 고교동창과 같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9정맥 종주의 일환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낙동정맥과 낙남정맥만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생각을 바꾸어 섬진강 동쪽 울타리 산줄기를 마저 종주하고자 합니다. 영취산에서 다시 시작해 대간을 따라 남하하다가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낙남정맥으로 들어설 계획입니다. 남동쪽으로 뻗어나가는 낙남정맥을 따라 걷다가 하동의 옥산 조금 못 미쳐서 오른 쪽으로 틀어 망덕산 강 건너 편에 자리한 하동의 두우산에서 섬진강 울타리산줄기 환주를 모두 마칠 계획입니다.


 

  저의 섬진강 울타리 산줄기종주가 앙꼬 없는 찐빵이 되지 않으려면 이 강의 강줄기종주가 필수적입니다. 전설은 산골짜기에서도 생기지만, 문화는 강줄기를 따라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섬진강은 진안의 팔공산북쪽에 자리한 1,180봉의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경남하동과 전남광양의 경계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강으로 그 길이가 225Km이고 유역넓이는 4,489제곱Km라 합니다. 이 강에 흘러들어가는 지류를 다 다녀볼 수는 없지만 본류만이라도 걸어 이강의 속살을 만나보고자 합니다.  현재는 어떤 식으로 강줄기를 종주해야 하는지 전혀 개념이 잡히지 않지만 앞으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줄기 종주는 내년 일이니 미리 걱정할 것은 아닙니다. 섬진강 탐방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낙동강도 같은 방법으로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낙동정맥-백두대간(매봉산-영신봉)-낙남정맥으로 이어지는 낙동강의 울타리산줄기 환주를 꿈꾸는 것만으로도 저는 몇 년간 가슴이 벅차도록 행복할 수 있습니다. 벌써부터 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금남호남정맥의 마지막 구간종주에 나섰습니다.  

 

  장수읍내에서 일박한 후 8시30분발 덕산리 행 버스로 밀목치까지 이동했습니다.

아침7시40분이면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댈 시가지가 너무 한가롭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문이 열려 있어야 할 김밥집이 굳게 닫혀 있어 꼼짝없이 아침을 굶고 긴 시간 산행을 할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전날 밤 몇 군데를 찾아다닌 끝에 7시 반에 문을 연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음식점이 이렇게 닫혀 있는데 다른 데야 오죽하랴 싶어 먹기 싫은 빵이라도 사들어야겠다고 슈퍼마켓을 찾는 중 마침 문을 연 후진 음식점이 하나 보였습니다. 웬 떡이냐 싶어 얼른 들어가 백반을 시켰더니 맛깔스런 반찬들이 푸짐하게 나와 밥그릇과 반찬그릇을 샅샅이 비웠습니다.


  오전 8시53분 덕산리 앞 밀목치를 출발했습니다.

지난 밤 그렇게 시끄럽게 짖어댄 이 마을의 개들도 자기 집 앞을 얼쩡대는 사람들에나 겁을 주지 버스 정류장에서 서성대는 제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견공들도 나서야 할 때와 사려야 할 때를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전날 밤에는 이 동네를 지나 정류장에서 얼마간 머물렀을 때도 계속 짖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분별력은 낮 동안에만 작동되는 것 같았습니다. 742번 차도를 건너 발받침이 놓여 진 시멘트 턱을 올라 밭가 길로 들어섰습니다. 7-8분후 묘지 위에서 제 길을 찾기 까지 잠시 풀숲 길을 지났을 뿐 왼쪽 아래에서 올라오는 넓게 난 제 길과 합류한 후로는 나머지 길 전부가 장수군이 정성들여 다듬어 놓은 비단길이어서 하루 산행이 편안했습니다. 산행시작 40분이 채 못 되어 풀숲에 삼각점이 박혀있는 950봉에 이르기까지 가파른 나무계단 길을 오르느라 숨이 좀 가빴습니다.


  10시26분 860봉의 턱밑에 자리한 안부사거리를 지났습니다.

950봉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897봉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은 참으로 평안했습니다. 나뭇잎사이로 파고든 햇살과 미풍이 평평한 능선 길을 보듬어주는 동안 모습은 내보이지 않았지만 매미와 새들이 목청 높여 이 길을 지나는 산객을 반겼습니다. 사람들이 길섶의 풀들을 깎아낸 흔적이 없었다면 신이 내린 은총의 길로 착각할 만큼 평안한 이 길을 걷는 동안 저도 모르게 산에 오르면 집사람에 자주 들려주었던 로미오와 주리엣 등 입에 밴 몇 곡의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897봉에서 오른 쪽으로 진행해 양쪽으로 하산 길이 갈리는 안부사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는 6년 전에 회사직원들과 함께 장안산을 올랐다가 하산기점으로 잡은 법년동으로 가는 길이 나 있었고 왼쪽 대리로 하산하는 길은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참나무 숲과 낙엽송 숲이 능선 길 양옆으로 포진한 안부사거리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 860봉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복숭아를 들면서 푹 쉬었습니다. 이번산행은 광양 외망의   망운산에서부터 백두대간의 영취산에 이르는 호남기맥-호남정맥-금남호남정맥의 마지막 종주산행인데다 구간도 짧아 서두르지 않고 모처럼 느긋하게 산행할 수 있었습니다.


  11시30분 해발948m의 백운산을 올랐습니다. 

860봉에서 일어나 정북 쪽으로 진행하는 중 길가 숲속에서 이름 모르는 여러 마리의 새들이 제 발자국 소리에 놀랐는지 후다닥 날라 갔습니다. 아마도 일가족이 모여 뭔가를 숙의하고 있는데 눈치 없이 제가 그 옆을 지났나봅니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어째서 저 녀석들은 저를 산식구로 끼워주지 않는지 하는 섭섭함입니다. 봉우리하나를 왼쪽으로 우회해 “장안산정상4.6Km/밀목재4.6km"의 이정표가 세워진 안부에 도착했습니다. 안부에서 나무계단 길을 걸어 올라선 백운산 정상에는 달랑 삼각점 하나만 박혀 있을 뿐 백운산을 알리는 표지물이 하나도 없어 하늘을 떠도는 흰 구름이 이 봉우리를 찾아 머물다 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 같았습니다. 평안한 길은 계속 이어지는 중에 간간히 나타나는 나무계단 길이 이 길이 들판 길이 아니고 산길임을 일깨워줬습니다. 백운산에서 25분을 걸어 다다른 955봉에서 십 수분을 쉬는 동안 날파리까지 끼어든 산상음악회를 참관했는데 당연 주인공은 새들과 매미였습니다.


  13시6분 왼쪽으로 장안리지서골이 갈리는 990봉에 올랐습니다.

955봉에서 나무계단을 밟으며 내려가는 중 이 정맥을 종주하는 산악회분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그랬듯이 이제 막 첫발을 내딛은 저 분들도 내색은 안했지만 이번산행으로 영취산에 서 정맥종주를 마감하는 제가 한없이 부러웠을 것입니다. 이 분들의 장도가 무탈하기를 비는 인사말을 전한 후 몇 걸음을 옮기자 벌의 공격을 받아 사투를 벌이는 매미 한 마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람들도 저 매미와 같이 다른 종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죽어가는 일이 다반사라면 제가 감히 혼자서 정맥종주에 나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 어느 종이 감히 덤벼들겠나 싶어 어깨가 으쓱해졌다가 그래서 서로 자기네들이 최고라며 같은 종끼리 대규모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싶어지자 대표적인 헛 똑똑이가 바로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깨끗하게 다듬어진 산죽 길을 지나 930봉에 오르는 동안 비로소 남중한 태양의 열기가 감지됐습니다. 930봉을 지나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 몇 개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13시가 조금 넘어 장안산 정상을 2.0Km남겨놓은 990봉에 올랐습니다. 점심을 든 후 거풍도 즐기는 등 26분간의 휴식시간이 달콤했습니다.


  14시19분 해발1,237m의 장안산을 올랐습니다.

때 맞춰 불어올라오는 골바람에 등 뒤가 서늘해져 한 잠 자고 싶은 유혹을 떨치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다시 40-50m 가량 내려섰다가 300m 가까이 고도를 높이느라 땀이 다시 흘렀습니다. 시꺼먼 로프가 늘어진 바위 길과 팔뚝 굵기의 통나무계단 길을 여러 번 지나 고도를 높여갈수록 거암들이 자주 보여 이제껏 걸어온 평안했던 길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습니다. 나무계단 길을 올라 헬기장이 들어선 장안산 정상에 올라서자 사방이 탁 트이고 골바람이 모여들어 목덜미를 내리쬐는 따가운 햇살만 아니라면 마냥 쉬었다 가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동쪽건너 백두대간 길에 자리한 백운산이 이 산보다 41m 밖에 높지 않은데 엄청 높고 거한 산으로 보이는 것은 3년 전 대간 종주 때  한번 올라 반갑기 때문일 것입니다. 북동쪽의 영취산으로 뻗어나가는 정맥 길은 6년 전에 한번 밟은 터라 먼발치로 펼쳐진 억새밭과 그 사이로 난 능선 길이 눈에 익었습니다. 표지석 앞에 배낭을 세워놓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나머지 정맥 길을 이어갔습니다. 


  

  16시2분 해발1,076m의 영취산에 올라 금남호남정맥 종주를 마무리했습니다.

장안산 정상에서 내려서는 길이 가팔라 로프가 쳐져 있었습니다. 무령고개까지는 내림 길이지만 중간에 나지막한 봉우리를 여러 번 오르내려 서서히 고도를 낮추었습니다. 그동안 몸을 숨긴 풀꽃들이 모두 나타나 저의 마지막 구간종주를 축하해주었습니다. 9월로 접어들면 당연히 억새가 압권을 이루겠지만 아직은 철이 일러 훤칠한 키의 노랑 꽃 마타리가 단연 돋보였습니다. 주황색의 동자꽃, 샛노란 달맞이꽃, 붉은 기가 살짝 도는 하얀 꽃의 송장풀(?), 자색의 금강초롱 꽃, 자줏빛이 보일 듯 말 듯 한 흰색의 쑥부쟁이 정도가 통성명으로 이름을 확인한 꽃들이고 이 밖에 이름을 듣지 못해 눈인사만 나눈 꽃들도 꽤 많았습니다. 빠질세라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네 온 억새들도 고맙기는 마찬가지여서 미풍에 살랑대는 이 들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샘터갈림길을 지나고 한참 후 왼쪽 아랫마을 괴목리로 길이 갈리는 능선 갈림길도 지나 에코브리지 공사가 거의 끝난 무령고개에 내려서기까지 정상을 출발해 1시간10분 남짓 걸렸습니다. 에코브리지 위를 지나 영취산으로 오르는 길이 희미해 잠시 애를 먹었습니다만, 5-6분을 걸어 무령고개 왼쪽 아래에서 올라오는 계단 길을 만나고부터는 대로 길이어서 마음 편히 영취산을 올랐습니다. 작년 5월 외망의 망덕산에서 시작한 대장정을 여기서 끝낸다 하니 기쁨과 서운함이 같이 했습니다.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린 후 무령고개로 하산 했습니다.


  17시30분 논개생가 기념관이 있는 주촌마을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무령고개의 간이휴게소에서 캔 맥주를 사들며 버스 편을 알아본 즉 장계에서 17시40분에 대곡리로 들어오는 버스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무령고개에서 구불구불한 차도를 따라 한 시간 가까이 걸어 논개생가가 있는 주촌마을에 도착해 산행일정 전부를 끝냈습니다. 한 20분 간 시간여유가 있어 주마간산으로 “의암 주 논개 생가지”를 탐방했습니다. 18시가 다되어 장계에서 들어온 버스에 올라 15분 거리의 장계로 향했습니다.  

 

  돌탑과 정상석이 세워진 영취산은 대간과 정맥이 만나는 접점이어서 이산에서 정맥종주가 시작되거나 끝나게 되기에 정맥을 종주하는 분들은 다른 산보다 이 산을 오르는 것이 몇 배 더 감격스러울 것입니다. 제가 그러했습니다. 정상에 오르자마자 무릎 꿇고 무탈하게 마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백두대간과 낙남정맥을 따라 내려가 망덕산 강 건너에 자리한 하동의 두우산에 이르러 섬진강을 에워싸고 있는 산울타리 환주를 모두 마칠 때까지 건각을 기원하는 기도도 같이 올렸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자 뜬금없이 고등학생 때 배운 노계 박인로의 시조 한 수가 생각났습니다.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가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 하나이다


  한음 이 덕형으로부터 감을 대접받고 이를 집에 가지고 가고 싶어도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소용없음을 서러워한 박인로의 효심이 이 시조의 주제였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뜬금없다고 얘기한 것은 “호남기맥-호남정맥-금남호남정맥 종주”가 제게는 더 할 수 없이 소중한 결실이기에 반중 조홍 감처럼 소중하게 생각됐고, 완주소식을 품에 안고 집에 가면 이를 반길 이로 어르신들이 아니라 집사람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집사람이 아니더라도 저의 종주소식을 듣고 반중 조홍 감을 받는 것처럼 기뻐해줄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선 두 아들과 며느리가 그렇고 다른 정맥을 함께 종주하는 친구들이 그렇습니다. 제가 정맥 종주 중 도움을 받아 감사를 표해야 할 모든 분들도 같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기쁨은 나눌  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는 데 이렇게 동네방네 소문낸다 해서 욕들을 일은 아닌 것 같아 안심하고 마지막 종주소식을 올립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