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15.명지산 산행기(1-2)

시인마뇽 2007. 1. 2. 18:09

                                        명지산(2)


              *산행일자:2008. 7. 13일(일)

              *소재지  :경기가평

              *산높이  :1,267m

              *산행코스:익근리주차장-명지폭포-명지4봉-명지산

                        -명지4봉-명지폭포-익근리주차장

              *산행시간:9시31분-17시21분(7시간50분)

              *동행    :경동고 24기 14명

              (서중원회장, 김남진/김양미, 김종화, 김주홍, 백인목, 이규성, 이기후,

               이달헌, 장광종, 정준식, 우명길, 29기정병기/김의정)

 

 


 어제는 고교동기들과 함께 경기도 가평의 명지산((明智山)을 올랐습니다.

2006년 가을 설악산을 시작으로 매 분기 명산100산 중 한산씩 골라 오르는 저희들이 이번 3/4분기에 찾아 오른 명산은 청정계곡으로 이름난 명지산입니다.


 가평 땅은 조선 조 태종 때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이속된 후 경기도 최고의 산지(山地)로 자리를 굳혀왔습니다.  경기 제1고봉인 화악산, 제2고봉인 명지산, 그리고 세 번째로 높은 국망봉이 모두 가평 땅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고로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했습니다. 가평 땅 고산들이 만든 깊은 골짜기의 물을 받아 북한강으로 넘겨주는 하천이 옛날에 거림천(巨林川)으로 불렸던 가평천(加平川)입니다. 북한강의 제1지류이자 한강의 제2지류인 이 가평천에 직접적으로 물을 대는 지천만도 도마천, 조무락골천, 백둔천, 명지천, 화악천, 개곡천, 승안천등 모두 7군데나 됩니다. 어제는 하산 길에 명지산과 그 좌우의 백둔봉 및 사향산 사이의 익근리계곡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명지천(明智川)을 들러 땀 흘린 몸과 세속에 찌든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냈습니다. 몇 해 전 한북정맥에 발을 들인 후 능선 종주를 주로 하는 제게는 이처럼 계곡을 들러 몸과 마음을 씻어내는 기회를 잡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고교동기들과 함께 나서는 명산탐방 때에 웬만하면 유명사찰과 계곡을 탐방코스에 넣어 함께 들러 왔습니다.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는 공자님 말씀이 없었더라도 명산을 오르다보면 산은 참 어질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나무들, 짐승들,  야생화 및 조류들과 곤충들이 산에 의지해 살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모질기도 하고 매몰차게 대하기도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산은 수많은 생명체에 삶의 터전을 제공할 만큼 어집니다. 그러나 계곡을 흐르는 물을 볼 때는 어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물이 정녕 어질다면 우선 그 형체만이라도 산봉우리처럼 믿음이 갈 정도로 의젓하고 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형체가 변하지 않고 일정하다면 그것은 이미 물이 아닙니다. 담는 그릇에 따라 그 형체를 달리하는 것은 물의 중요한 속성입니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이 물을 담는 계곡의 모양새가 다양하기에 그 위를 흐르는 물도 자연 변형에 능해야 합니다. 계곡을 흐르는 물을 보면 물이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유자재로 모양새를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산속 발원지에서 강 하구까지 옮겨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계곡으로 흐르는 것이 형체가 변하지 않는 고체라면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 없어졌을 것인데 물은 그때그때 형체를 달리하기에 별 탈 없이 바다로 흘러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어찌 물이 지혜롭다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장애물이 많은 계곡을 흐르는 물은 그렇지 않은 강물보다 더욱 지혜로울 것입니다. 그냥 지(智)가 아니고 명지(明智)인 것입니다. 명지산(明智山)에서 발원한 지천이 명지천(明智川)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해발1,267m의 고산에 자리한 깊숙한 계곡을 흘러서일 것입니다. 


  오전9시30분 익근리주차장에서 명지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침7시10분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한 버스가 예상보다 20분 이상 빠른 8시6분에 가평에 도착했습니다. 가평정류장에서 50분 넘게 기다려 9시에 출발하는 용수리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목동삼거리를 지나 익근리 주차장에서 하차해 곧바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1인당1,600원의 싸지 않은 입장료가 청정계곡을 지키는데 쓰이기를 바라면서 명지산으로 향했습니다. 20분을 채 못 걸어 1970년대에 지어진 승천사에 다다랐습니다. 2년 전 겨울 바쁘게 내려가느라 흘깃 올려다 본 석불을 자세히 뜯어보니 귀가 참 커보였습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도 중생들로부터 많은 소리를 들으시려면 귀도 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난국은 난국인가 봅니다. 반대자들로부터 충분히 경청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듣는 최고위정치인에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큰소리를 내는 분들에 다름 아닌 스님들도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기 석불처럼 큰 귀를 가진 스님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일부 신부님들도 나서는데 그만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인지 세속의 목소리를 세속인보다 더 크게 내는 스님들도 언젠가는 귀를 더 크게 열 날이 있을 것이고 보면 그 날이 바로 온 세상이 평화로운 날이기에  기다려볼 생각입니다.


  11시2분 갈림길 다리 앞에 다다랐습니다.

승천사에서 반시간 넘게 걸어 명지폭포로 내려가는 길에 이르렀습니다. 길에서 60m를 내려가 계곡에 이르자 폭포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계곡에 물이 불어 폭포가까이에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이규성 교수와 함께 이 폭포를 본 것이 어언 10년 전의 일이어서 폭포의 형상이 머리에 확실히 떠오르지 않았지만 물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나는 것으로 보아 낙차 폭도 크고 그 아래 소도 깊겠다 싶은데 보이지가 않아 답답했습니다. 다시 길로 올라서자 등 뒤로 땀이 흥건히 흘렀습니다. 차라리 적당히 비가 내려주면 찜통더위는 면할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염원이 간절한 멀쩡한 날씨를 두고 비가 올 것이라 예단하고 일찌감치 산행을 포기한 한 친구는 지금쯤 무릎을 치며 아쉬워하겠다 싶었습니다. 오른 쪽 지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물도 그 양이 꽤 많았습니다. 하늘이 열린 개활지만 지나지 않는다면 아직은 지열이 없는데다 시원하게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이정도 더위는 견딜 만 했습니다. 산행시작 시간 반 만에 다다른 갈림길의 나무다리 앞에서 10년 전에 오른 길로 직진하지 않고 오른 쪽으로 난 길로 들어서 명지천과 헤어졌습니다. 오른쪽 산골짜기에서 흐리기 시작한 지계곡을 따라 얼마간 오른 후 물이 불은 지계곡을 건너다가 구두를 조금 적셨습니다.


  12시53분 해발1,079m의 명지4봉을 지났습니다.

지계곡을 건넌 후 오래 지나지 않아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은 지계곡 끝점에 올라서자 된비알 길이 시작됐습니다. 한 여름에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저 같은 사람들은 중력에 반하여 된비알 길을 오르는 것이 정말 고역입니다. 그러기에 산행 전날 과음하는 것을 극력 피하고 있습니다. 술에는 장사가 없다는데 무더운 여름 날 과음한 채로 산을 오르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자명한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식들의 경사를 축하해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술을 들었다는 한 대원이 된비알 오름 길에서 고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도상거리가 1.3Km 밖에 안 되는 오름길을 한 번에 오르지 못하고 중간에 두 번을 쉬느라 무려 1시간 50분이 걸렸습니다. 청초한 야생화들이 곳곳에서 저희들을 반기지 않았다면 모두들 가파른 나무계단 길을 오르기가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13시28분 해발1,267m의 명지산 정상에 맨 마지막으로 올랐습니다.

명지4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능선 길을 걷는 동안 잠시 몇 분간은 참으로 편안했습니다. 불그스레한 수피가 인상적인 거제수나무도 몇 그루 보였습니다. 마지막 나무계단을 올라 명지산 정상에 올라서자 정남쪽의 명지2봉이 운무에 가려 꼭대기만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지난 2월 한북정맥을 종주하며 명지산을 바라다본 9명의 대원들은 이번에는 서쪽의 한북정맥을 한 눈에 조망하고 싶었을 텐데 그리하지 못해 더 많이 아쉬웠을 것입니다.  정상 조금 아래에 자리 잡아 점심을 함께 든 시간이 최고의 휴식시간이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14시 10분에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명지2봉을 거쳐 고개사거리에서 익근리계곡으로 내려서는 코스를 포기하고 올라온 길로 되 내려가기로 한 것은 알탕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산 시에 마치 절벽을 내려가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내려갈 때가 올라갈 때보다 훨씬 더 경사감이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가파른 길을 어떻게 올라갔냐며 스스로들을 기특하게 여기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15시41분 갈림길 다리에 되돌아왔습니다.

내림 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지계곡이 시작되기 바로 전에 잠시 숨을 돌리자 했는데 후미의 두 친구들을 기다리느라 2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산등성에 빽빽이 들어선 활엽수들의 푸른 잎들이 비로소 시원스레 보였습니다. 지계곡을 건너며 잠시 쉬어 가자는 욕망을 잠재우고 바로 하산했는데도 정상에서 갈림길로 내려서는데 시간 반이 걸려 오를 때의 1시간50분 보다 20분밖에 줄이지 못했습니다. 다시 해가 들기 시작하자 하늘이 열린 길을 지날 때마다 햇살이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힘 드는 길은 다 지나왔다는 안도감에 올라갈 때보다 물소리가 더욱 시원하게 들렸습니다. 거의 평지에 가까운 하산 길에서 속도를 냈습니다. 어느새 명지폭포를 지나 승천사가 가깝다 했습니다.


  16시30분 계곡으로 내려가 알탕을 즐겼습니다.

구두를 샌들로 바꿔 신고 웃옷만 벗고 바지를 입은 채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생각보다 수온이 낮지 않아 얼마고 물속에서 견딜 만 했습니다. 2년 가까이 함께 산행하면서 알탕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모두가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여 여름산행의 별미는 역시 알탕임을 입증했습니다. 명지천의 계곡물로 땀만 씻어 낸 것이 아닙니다. 다시 산을 오르겠다는 산 욕심을 빼고는 나머지 세속의 욕심도 모두 같이 씻어냈습니다. 어질게 보이는 고산도 오르고 지혜로워 보이는 계곡 물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했으니 이름그대로 명지(明智)를 얻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만 옷을 갈아입고 하산을 마무리 졌습니다. 반 나신의 사진만으로 누가 더 많이 땀과 욕심을 씻어냈는지를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누가 더 세속의 옷을 과감히 벗어던졌는가는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17시21분 익근리 주차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저녁 6시에 이곳을 지나는 가평행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한 동문이 쏜 캔 맥주로 성공적인 산행을 자축했습니다. 가평으로 옮겨 닭찜으로 저녁을 든 후 8시36분 발 청량리 행 열차에 올랐습니다. 두 번이나 스틱을 찾아 나선  친구와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기차는 부지런히 달려 9시57분에 청량리에 도착해 해산했습니다.


  일단 바다로 흘러간 물이 발원지인 산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바다로 들어간 물은 바다환경에 적응해 짠맛을 내는 일만으로도 정신없이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흘러들어오는 계곡물로부터 산 소식을 들을 수 있어 친정나들이가 그렇게 절실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고향소식이 궁금해 가만있지를 못하고 증발해 상공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구름이 되어 육지로 자리를 옮깁니다. 계곡물의 순환은 구름이 비가 되어 산을 다시 찾아 마무리됩니다. 그동안 말없이 자리를 지켜온 산은 비가 되어 돌아온 계곡물을 서운한 내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이토록 어진 산이 있기에 물은 마음 편히 순환을 하며 바다를 오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다를 오가는 순환을 통해 익힌 물의 지혜는 결국 어진 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도 윤회를 한다면 순환하는 물 이상으로 지혜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진 것은 타고난 것일지 모르지만 지혜는 시간함수이다 싶어서입니다. 

 

 

 

 

                                                           <산행사진>

 

 

 

 

 

 

 

 

  • 서중원
  • 2008.07.16 15:34
  • 우대장 수고많았습니다 항상 고마운 마음 갖고 있습니다

     

    • 시인마뇽
    • 2008.07.18 00:26
    • 모두 같이 하는 것이지요. 고맙습니다.

     

     

                                                        명지산(1)

     

                                       *산행일자:2006. 1. 28일

                                       *소재지  :경기 가평

                                       *산높이  :명지산1,267미터/사향봉1,013미터/백둔봉974미터

                                       *산행코스:익근리-사향봉-명지산-명지2봉-백둔봉-승천사-익근리

                                       *산행시간:9시32분-17시58분(8시간26분)

     


     

      까치들의 설날인 섣달그믐날 “나홀로 산행”에 나선 것은 가만히 앉아서 나이먹기가 민망해서였습니다.

    하루만 지나면 내 몸에 나이테 하나가 또 그어져 한 살 모자라는 육십이 되기에 기왕이면 산에 올라 지난 한해를 뒤돌아보며 나이를 먹는 것이 나름대로 뜻이 있을 것 같아 새벽부터 서둘러 동서울터미널로 나갔습니다. 나무들은 나이가 더해질수록 나이테의 둘레가 커지고 간격도 더 넓어집니다. 다시 말해 나이가 들수록 자기 몸에 징표를 남기는 일이 더 많아지고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해야 옳다는 생각입니다. 진정으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세월만 낚으면 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에 걸맞게 경륜과 지혜를 쌓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맥 놓고  집에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지난해 12월 29일 안성의 칠장산에서 한남정맥 종주를 마친 후 한 달 만에 다시  “나홀로 산행”을 한 곳은 경기도 가평에 자리한 해발1,267미터의 명지산이었습니다. 1999년 8월15일에 고교동창생과 함께 올랐던 명지산은 많은 분들이 가평읍에서 버스를 타고 30분가량 용수리 방향으로 가평천을 거슬러 올라가다  익근리 마을에서 하차하여 계곡을 따라 오르내리며 산행을 즐기는 명산입니다. 군부대가 정상을 점하고 있어 정상에의 접근이 불허된 경기도 최고의 화악산과는 달리 경기 제 2봉인 명지산은 그러한 통제가 없어 정상까지 오를 수 있고 명지산 정상을 중심으로 익근리계곡을 좌우로 감싸고 있는 능선 길을 한바퀴 삥 돌아 종주하고 출발지인 익근리로 다시 돌아오는 원점회귀산행을 하게 되면 그 거리가 만만치 않아 섣달그믐 날 나이테를 긋는 고행의 산행지로는 최적지로 생각되었습니다.


     

      아침9시32분 익근리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산본 집을 나선 지 꼭 4시간 만에 그리고 가평읍 출발 30분 만에 양지말 정류장에 다다라 군립공원사용료 천원을 지불하고 되돌아가는 버스시간을 확인한 후 익근리를 출발했습니다.승천사로 이어지는 넓은 길 왼 쪽의 익근리계곡에는 한 겨울의 모진 냉기를 이겨내고자 자기 몸의 일부를 얼려 만든 얼음장으로 이불을 해서 덮은 계곡물은 보이지 않았고 그 이불 위에 내려앉은 하얀 눈도 상당부분 얼음으로 변해 이산의 겨울가뭄을 짐작할 수 있게 했습니다. 산행시작 5분후에 오른 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 능선으로 치켜 올랐는데 처음 얼마간은 다리 종아리가 당겨 걷기가 불편했고 이러다가 쥐가 나 주저앉는 것이 아닌 가 염려되어 한 20분여 아주 천천히 된비알을 올랐습니다.


     

      10시54분 첫 번째 삼각점이 설치된 684봉에 올라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낙엽송에 뒤이은 잣나무 숲이 해발 4백 미터 대에서 끝나고 그 위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참나무들과 벗하며 오른 684봉 정상은 평평했으나 그 크기가 5-6평 정도에 불과해 헬기장으로 쓰기에는 턱없이 좁게 보여 졌고 잔 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전망도 시원하지 못했습니다. 사향봉을 오르며 대부분 해발 100미터도 못되는 낮은 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경기도의 산들이 고도가 5-6백미터를 넘는 산 들머리가 수다한 강원도에 자리 잡은 같은 높이의 산들보다 훨씬 오르기가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산 높이가 해발 6백 미터를 넘자 응달진 곳에는 그동안 쌓인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다져져 오름길이 미끄러웠습니다.


     

      12시22분 해발1,016미터의 사향봉에 올라서기까지 몇 번이고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곤 했습니다.

    684봉을 출발하여 십 수분을 걷다가 손이 허전하다 싶어 확인해보니 어디엔가 지도를 놓고 왔음을 알았습니다. 684봉에서 찬 아이젠이 5분도 안되어 벗겨져 짐을 내려  놓고 다시 신느라 왼손에 들고 있던 지도와 산행기를 내려놓고 온 듯싶어 되돌아가 보니 과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새벽에 집을 나설 때도 버스정류장에서 지도를 두고 왔음을 뒤늦게 알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가져왔는데 또 놓고 와 십 여분을 까먹었습니다.  눈이 많이 남아 있는 위험한 암릉 길 몇몇 곳 지나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제가 복사해온 산행기에는 어느 두 분이 2003년 4월에 비를 맞아가며  1시간 43분 만에 사향봉을 올랐다 했는데 저는 2시간 50분이 걸렸기에 이 속도라면 명지산 정상에 오른 다음 백둔봉을 거쳐 해 떨어지기 전에 익근리로 하산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인절미를 후딱 먹고 산 오름을 서둘렀습니다.


     

      13시22분 명지폭포로 하산하는 길과 갈리는 해발 1,079미터의 화채바위를 지났습니다.

    사향봉에서 밧줄로 가드레일을 쳐 놓고 바위 오름을 막은 이곳 화채봉까지는 고도차가 별로 없어 몇 개의 봉우리를 연속해 오르내렸는데도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화채바위를 막 지나 이번 산행 중 처음 만난 하산 객에 물어 정상에서 이곳까지 하산하는데 30분가량 걸렸음을 확인했습니다. 나무들이 쉬고 있는 한 겨울에도 잠시도 쉬지 않고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태양이  하루 중 가장 따사롭게 비치는  햇살을 받고 서있는  거제수 몇 그루의 불그스레한 나무껍질이 살포시  빛을 내 단아함을 느꼈습니다. 정상을 0.4키로 남겨 놓은 1130봉에서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20분 중 그동안 계속된 산 오름으로 지쳐서인지 제게는 마지막 나무계단을 오르는 3-4분이 힘들었습니다.  


     

      13시54분 해발1,267미터의 명지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산림청에서 100대 명산의 하나로 지정한 경기 제 2의 고산에 이렇다할 표지석 하나 세우지 않고 양쪽 암봉 사이에 세워진 표지목 하단에 자그맣게 정상이라 써 놓은 것을 보고 명산 대접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 글이 사실과 다르다는 송용민 님 지적을 받고 알아 본  결과 이분의 지적대로 명지산 정상석이 왼쪽 암봉에 세워져 있음을 사진으로 확인했습니다. 따라서 앞의 제글은 사실과 부합되지 않음을 말씀드립니다. )흰 눈 위에 내려앉는다고 까치가 될 리 없는 까마귀가 산 위에서 이 겨울을 지키고 있었고 박새로 보이는 작은 새들이 모이를 찾느라 몸놀림이 바빴습니다.  익근리에서 여기 정상까지 오르는 데 4시간 반이 걸렸는데 앞으로 남은 시간이 최대 4시간이어서 잘 하면 예정대로 백둔봉을 거쳐 익근리로 하산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아 정남방향으로 1.2키로 떨어져 있는 명지 2봉으로 내달음질쳤습니다.


     

      14시2분 해발1,250미터의 명지 2봉에 올라서자 깨끗한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 배낭을 옆에 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명지산 정상에서 150미터가량 내려섰다 다시 오르느라 1.2키로 거리를 40분 동안 걸어 정상보다 17미터 낮고 시야가 탁 트인 명지 2봉에 올라서자 햇살이 따사롭고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해 평화로운 이 순간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한 동안 숨소리도 크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망도 정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정북 방향으로 방금 지나온 명지산정상길과 사스래 나무들이 눈에 잡혔고 더 멀찌감치 한북정맥의 최고봉인 국망봉이, 그리고 북동쪽으로는 가까이는 사향봉과  멀리로는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북서쪽의 귀목봉까지 모두 카메라에 담은 후 바로 남동쪽의 백둔봉으로 향했습니다.


     

      명지산2봉 출발 10분 후에 도착한 백둔리-명지폭포 갈림길에서 남은 시간을 점검해 일단 백둔봉을 오르고 나서 계속 주능을 탈것인가 아니면 왼쪽의 명지폭포 쪽으로 하산할 것인가를 결정하기로 하고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겨우 내내 북사면에 내린 눈은 거의 녹지 않고 차곡차곡 그대로 쌓여 설질이나 설량 모두 강원도의 어느 산에도 못지않았습니다. 이 눈밭을 지나는  우회 길을 걷기가 생각만큼 빠르지 못했습니다. 30분을 더 걸어 7-8명의 한 팀을 만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해발 700미터대의 안부에 내려서 지도에 표기된 양짓말로 갈라지는 고개사거리를 확인하지 못한 채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안부에서 헬기장까지 길이 나 있지 않은 가파른 눈길을 치켜 오르느라  백둔봉 가는 길이 힘들었습니다. 


     

      15시55분 해발974미터의 백둔봉에 올라서자 생태보전지역임을 알리는 하얀 표지목이 정상에 세워져 있었고 그 주위를 작은 울타리로 에워싸 사람 들 손이 타는 것을 막았습니다. 백둔봉에서 940봉을 지나 북동쪽으로 뻗은 주능을 타고 익근리로 하산할 수 있겠는가를 최종 점검했습니다.  익근리에서 정상에 오르는데 3시간 5분밖에 안 걸린 산행기의 두 분들이 1시간 50분 걸려 하산했다는데 4시간 반이나 걸려 정상에 오른 제가 똑 같은 코스로 하산하는 데는 3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아 어제따라 헤드랜턴이 고장 나 집에다 두고 온 저로서는 더 이상 강행하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되었습니다. 이에 왼쪽의 능선 길을 따라 명지 폭포 쪽으로 하산하기로 결심하고 남은 귤과 커피를 들며 잠시 쉬는 사이 안부에서 뒤쳐졌던 그 팀이 당도했습니다.


     

      백둔봉에서 명지폭포 바로 밑의 삼거리로 하산하는 길은 지도처럼 분명하지 못했습니다.

    북사면의 이 길로 산객들이 내려간 흔적이 거의 없고 온 땅을 하얀 눈이 덮고 있어 별 수 없이 러셀을 해가며 하산해야 했습니다. 그 팀과 동행이 되어 얼마고 내려서다 산행이 지체되는 것 같아 저 혼자 길을 내며 하산을 계속했습니다. 죽은 나무들이 베어져 즐비하게 누워있는 넝쿨 길을 어렵게 통과해 다시 능선 길을 찾아 오르자 어느새 17시가 다 되었습니다. 이 능선을 따라  얼마큼 하산하다 왼쪽 능선으로 옮기자 바로 밑으로 익근리계곡 건너의 큰 길이 보여 반갑고 안심이 됐습니다만 산속에 내려앉기 시작한 어둠이 곳곳에서 감지되자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시 빨리 이 산을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하고 능선 길을 버리고 왼쪽 계곡으로 내려간 것이 큰 판단착오였습니다. 계곡에 내려서자 곳곳에서 잡목과 넝쿨 및 가시나무들이 길을 막아 진행속도가 너무 느렸습니다. 얼굴이 가시에 긁히고 배낭은 넝쿨에 걸리고 발은 눈 덮인 돌들 사이로 빠지는 등 마의 계곡을 빠져 나가고자 발버둥치고 있는 중 반가운 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간신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받아 인사말을 건네자 이 번에는 바테리가 다 달아 바로  끊어지기가 세 번이나 반복되었고 결국 통화에 실패했습니다. 더 이상 전화 받는 것을 포기하고 배낭에서 칼을 꺼내 가로 막은 넝쿨을 잘라 내며 오른 쪽 능선으로 옮겨 간신히 계곡을 벗어나자 안심이 됐습니다.  능선에서 조금 내려섰다가 다시 한번 그 계곡을 지나 반대쪽 능선으로 오르자 바로 아래가 익근리 계곡이었습니다. 이 계곡을 건너며 그 팀을 다시 만났습니다. 큰 길로 올라서는 동안 몸의 균형이 깨지고 오른 쪽 다리가 미끄러져 이상하다 싶어 확인해보았더니 오른 쪽 발의 아이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달 전부터 사용한 이 아이젠은 그동안 써오던 두발짜리 아이젠보다 훨씬 고가로 성능도 많이 개선된 그물식 아이젠이어서 한계령-공룡능선-설악동 코스를 뛰면서 13시간을 차고 다녔어도 한 번도 벗겨진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계곡 길에서 돌 가닥 사이로 빠진 발을 들어 낼 때 벗겨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큰 길로 올라서며 비로소 나이 한살 더 먹기가 이리도 어려움을 절감했습니다.


     

      17시27분 계곡을 건너 만난 익근리 2.5키로 지점에서부터 전속력으로 내달렸습니다.

    여느 때처럼 천천히 걷다가는 18시10분에 익근리를 지나는 가평행 버스를 탈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얼음길에 오른 발이 미끄러져 몸이 몇 번을 균형을 잃곤 했으나 스틱의 도움을 받아가며 내달려 16분 만에 승천사에 다다랐습니다.  이 속도라면  충분히 버스를 잡아탈 수 있겠다 싶어 잠시 숨을 고르며 커다란 석불입상에 인사를 드리고 그 전신을 카메라에 옮겨 놓았습니다.


     

      17시 58분 익근리 주차장에 도착해 8시간 반가량의 명지산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6년 전 고교동창과 둘이서 명지폭포 길로 정상을 오르내리는데 8시간 넘겨 걸렸기에 그 길보다 훨씬 긴 코스를 거의 같은 시간에 끝내 그 때보다 산행속도가 많이 빨라진 것은 분명한 듯싶습니다. 그렇다 해도 16키로 남짓한 거리를 8시간 넘게 걸린 것은 아직도 몸 안에 빼야 할 지방이 많이 남아 있어서이므로 앞으로  더 자주 산에 오르고자 합니다. 


     

      방금 걸어온 하산 길을 뒤돌아보며  아주 빠른 속도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명지산을 지켜보았습니다. 이 어둠이 태양이 애써 만든 양지와 음지를 모두 어울러 경계를 없애고 온 세상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어둠이 올해의 남은 시간을 몽땅 실고 새해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저 어둠보다 더 빨리 밤을 달려 밤 9시에 즈음해서 산본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습니다.

     

               *졸고를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복 많이 받으시기를 빌겠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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