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지산
*산행일자:2006년 2월12일
*소재지 :전북 무주/충북 영동
*산높이 :민주지산1,242미터/각호산 1,176미터
*산행시간:10시25분-15시50분(5시간 25분)
*산행코스:도마령(고자리재)-각호산-민주지산-삼도봉-물한계곡-한천주차장
이 세상에 많기도 많은 것이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늘길이 있는가하면 바닷길이 있고 산길에다 물길도 들길도 있습니다. 고개길과 능선길 모두 저희들이 즐겨 오르는 길이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도 숱하게 밟아온 눈에 익은 길들입니다. 큰길과 샛길이 있고 오솔길이 또 있습니다. 국도와 지방도뿐만 아니라 국지방도도 있습니다. 철로와 고속도로를 뛰어넘는 고속전철도 선을 보인지 어느새 몇 년이 지났습니다. 이 산악회의 길에도 A코스와 B코스가 있고 어제는 C코스도 있었습니다. 이 다양한 길들이 누군가에 의해 닦여진 이래 많은 사람들이 제 각기 제 길을 찾아 걸으며 다양한 삶을 익히고 역사를 다져왔을 것입니다.
어제는 실로 오랜만에 C 코스를 탔습니다.
작년 2월 작은착갓재를 출발하여 저수령까지 가지 못하고 벌재에서 대간 종주를 마쳐 B코스를 탄 이후 악을 쓰고 풀코스를 완주했는데 근 1년 만에 B코스도 아닌 C코스로 하산하자 이 산악회의 산행도 이렇게 여유로울 수 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도마령-각호산-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의 주능을 완주하고 삼마골재에서 물한계곡을 따라 한천주차장으로 하산하는 A코스와 석기봉에서 하산하는 B코스 그리고 민주지산에서 물한계곡으로 내려서는 C코스등 예시된 총 3개의 길 중 가장 짧은 C코스로 하산한 것은 처음으로 송백산행에 참여한 제 친구가 힘들어해서였는데 덕분에 산 능선과 계곡 깊숙이에 자리 잡은 하얀 눈이 빚어 낸 설경을 한껏 즐길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황지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임산을 지나기 까지는 지난여름 백두대간 종주 차 이 길을 세 번이나 지났기에 바깥 풍경이 상당히 눈에 익었습니다. 임산을 지나 도마령에 가까이 올라설수록 굽이굽이 고개 길을 오르는 버스의 숨소리가 가쁘게 들렸고 옆자리의 친구는 바깥 설경에 넋을 잃은 듯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10시 25분 해발 800미터의 도마령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스틱이 말썽을 부려 출발이 늦었습니다. 고맙게도 여성대장 분이 내준 스틱을 갖고 절개면을 타고 올라 적송림을 지났습니다. 하늘은 쾌청했고 바람도 별로 없는데다 기온도 올라가 지난 주 살을 에는 추위에 발발 떨었던 조침령-단목령 대간종주시보다는 몇 십 배 산행이 쉽겠다 싶었습니다. 민주지산을 오르는 다른 산악회 회원들의 운행이 늦어 몇 몇 곳에서 이들을 추월해 오르다 얼마 후 산 오름이 쉽지 않다는 친구를 따라 잡았습니다. 서울 근교산을 2-3시간 후딱 올랐다가 하산하는데 익숙한 체력으로는 이 산악회의 산행속도를 따라잡기가 상당히 벅찼을 것입니다.
11시25분 해발1,176미터의 각호산을 올랐습니다.
암봉의 정상에 오르는 곧추선 바위 길이 미끄러워 밧줄의 도움을 받아 오르내렸습니다. 구름한점 없는 맑은 하늘이 온 산들을 가림 없이 드러내주어 북동쪽으로 황악산이 남서쪽의 덕유산 향적봉이 먼발치로 보였습니다. 정남으로 쭉 뻗어 있는 능선에 자리 잡은 민주지산이 가장 높게 보였고 그 뒤에 자리한 석기봉과 삼도봉이 연이어 보였습니다. 친구가 구두 속으로 들어간 눈을 빼내느라 시간을 까먹어 각호산 정상에서는 잠시 머무르며 기념사진을 찍은 후 바로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조심해 내려섰습니다. 옆 봉우리로 이동해 각호산 정상을 카메라에 담느라 경사 길을 내려서는 회원들을 돌보느라 뒤쳐졌던 대장 분들이 저희들을 추월한 것을 몰랐습니다. 서사면의 흘기골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으로 얼굴이 얼얼해져 검은 가리개로 얼굴을 가려야 했습니다만 지난 주 조침령-단목령 능선에서 맞은 추위에는 비할 바가 전혀 못 되었습니다. 골바람이 흘기골에서 실어 나른 눈들이 능선의 나무들에 얹혀 피운 눈꽃들은 여느 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크나큰 함박꽃들이었습니다. 초반에 속도를 냈던 친구가 조금은 지쳐있었지만 아직은 A코스를 포기할 뜻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12시 48분 앞선 일행들이 자리를 편 능선 길옆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방울토마토와 겨우살이차로 입맛을 돋운 후 인절미로 요기를 했는데 친구는 준비한 오곡밥을 풀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끝낸 일행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겨 자리를 일어서 식사할 엄두를 내지 못해서였습니다. 근교산행 시와는 너무도 다른 산행문화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친구의 운행상태를 점검해 혹시나 B코스나 C코스로 빠질 수도 있음을 대장에 보고하자 무전기를 제게 내주고 작동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정월 초하루 휘운각 산장에서 무전기를 찬 하이맛 친구가 공룡능선이 시작되는 무너미 고개에 걸린 산악회의 플래카드를 떼어가야 하느냐고 집행진에 묻는 것을 보고 이 친구도 무전기라는 완장을 찬 이상 주어진 책무를 다하고자 노력하는 보통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꼈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13시 점심식사를 끝내고 다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기름이 떨어진 엔진에 주유를 하자 다시 시동이 걸리듯 점심을 들고나자 비엠떠블유 엔진은 정상작동 되어 앞으로 한참을 쭉 뺐습니다. 얼마고 걸었는데 당연 뒤에 붙었어야 할 친구가 보이지 않아 잠시 불안했습니다. 3-4분 후 지친 듯한 그가 나타나 내심 A코스를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얼마 후 대피소를 지나 민주지산 정상 바로 밑에 다다르자 친구가 다리가 당긴다며 이곳에서 쉬어가기를 청했습니다. 함박눈 꽃송이가 화사하게 만개한 능선의 나무들과 이 곳에서 쉬어 가자는 친구의 지친 모습에서 사람들을 뛰어넘는 자연의 힘을 읽었기에 이 친구를 독려해 쉬지 않고 정상을 올랐습니다.
13시40분 해발 1,242미터의 민주지산 정상에 섰습니다.
중간에 퍼지지 않고 정상에 올라선 친구가 고마워 표지석 옆에 친구를 세워놓고 그의 장한 모습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친구가 바람이 비껴가는 곳을 찾아 오곡밥을 드는 동안 산행기 쓰는데 필요한 자료들을 챙기느라 여기저기를 둘러보자 지난여름 혼자 나섰던 대간 길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으로는 삼봉산과 대덕산으로 북으로는 화주봉과 황악산으로 이어지는 저 대간 길에서 한여름의 열기와 싸우느라 엄청 고전했었는데 이번에는 온 산을 뒤 덮은 하얀 눈이 내뿜는 냉기에 맞서 이 산에 올라서자 이 변화무쌍함이 바로 인생이다 싶었습니다.
14시 정각 대장 분에 민주지산에서 바로 하산하겠음을 보고하고 정상을 출발했습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지나 다다른 석기봉-물한계곡 갈림길에서 C코스를 택해 왼쪽의 계곡으로 하산했습니다. 이내 내림 길이 편해졌고 뻣뻣해진 다리의 근육이 풀린 듯 친구의 발걸음이 정상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긴장이 풀리자 그의 눈에 민주지산의 아름다운 설경이 온전하게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래서 사진을 찍느라 쉬는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눈 꽃 지대를 지나 얼마 후 만난 속새골 계곡을 따라 천천히 물한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15시23분 삼마니재로 이어지는 큰 길로 내려서자 빽빽이 들어선 낙엽송과 그 사이를 비집고 치솟은 잣나무가 서로 어울려 질서속의 조화로움을 보여주었습니다. 풀코스를 완주하고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선두대장 분의 무전이 전해지자 친구는 그 빠른 속도에 적지 아니 놀라는 기색이었습니다.
15시50분 한천주차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어제 산행은 1980-90년대 함께 다녔던 회사친구들과 이 산악회에서 함께 산행할 수 있느냐를 알아보는 시험산행이었습니다.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눈이 쌓이고 고도가 높아 냉기가 서린 산길을 평상시보다 훨씬 길게 그리고 오래 산행을 하느라 힘들어했던 친구가 고마웠고 눈이 다 녹은 4월부터 본격적으로 산행을 같이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 기뻤습니다.
세상에는 참 길도 많습니다.
이 산악회의 산행길도 점점 다양해지는 것 같습니다. 모처럼 편안한 C코스를 끝내고 나서 무리하지 않고 각자에 맞는 제 길을 찾는 것도 생활인의 지혜일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시인 정호승 님이 찾아 나선 “길”을 올리며 편안했던 C코스 산행기를 맺습니다.
길
님그리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님 그린다
꽃은 잎을 보지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못하고
님그리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님그린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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