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17.신불산 산행기(1-3)

시인마뇽 2007. 1. 2. 18:18

                                                    신불산(3) 

 

                                     *산행일자:2011. 9. 5일(월)

                                     *소재지 :경남양산/울산

                                     *산높이 :신불산1,209m, 영축산1,059m, 간월산1,069m

                                     *산행코스:지경고개-영축산-신불산-간월산-배내봉-배내고개

                                     *산행시간:8시48분-18시24분(9시간36분)

                                     *동행 :나홀로

 

 

  신불산을 지나는 낙동정맥을 종주하면서 이산의 억새평전에서 훈련을 했을지도 모르는 신라의 화랑을 떠올렸습니다. 신라의 고도 서라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이 있고 그 위에 넓은 평전이 있는데 수려한 산천을 찾아 심신을 닦는 화랑이 이런 곳을 그냥 빼놓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직 관련기록을 찾지 못해 이곳이 훈련장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신라의 명승 원효대사가 머물렀다는 천성산이 그리 멀지 않기에 화랑들이 원효대사를 기리기위해서도 이 산길을 오르내렸을 것입니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향가에 등장하는 화랑은 모죽지랑가의 죽지랑, 화랑일것으로 추정되는 찬기파랑가의 기파랑과 혜성가의 세 화랑입니다. 융천사가 지어 불길한 혜성을 퇴치했다는 혜성가(慧星歌)에는 “세 화랑의 산 구경을 오심을 듣고”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홍기삼교수의 해설에 따르면 세 화랑의 무리가 지금의 금강산인 풍악에 놀러가려고 하는데 혜성(慧星)이 심대성(心大星)을 범하여 낭도들이 의아해 하며 여행을 중지하려 했다 합니다. 그때 융천사가 향가를 지어 부르자 괴성이 곧 사라지고 일본병도 환국해 오히려 경사스럽게 되었고 이에 대왕이 기뻐하여 낭도들을 풍악에 놀러 보냈다는 것이 이 노래 내용의 요지입니다. 서라벌에서 그 먼 풍악까지 놀러갔는데 이 가까운 신불산 정도라면 왔어도 몇 번은 왔을 것입니다.

 

 

 

  신라의 화랑이 낙동정맥이 지나는 이 산줄기를 원행 코스로 삼았음을 문헌으로 확인할 수만 있다면 영남알프스라 명명한 이 산길을 화랑로(花郞路)로 바꿔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삼국사기에 분명히 적혀 있는 북한산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이름을 바꿨다며 삼각산으로 고쳐 부르자는 주장도 있는데 관련기록만 확실하다면 굳이 유럽의 알프스산맥에서 이름을 따다가 쓸 일이 없잖나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참고로 북한산에 관련된 삼국사기의 기록을 옮겨 놓습니다.  신라본기 진흥왕 편의 “16년 정월에 비사벌에 완산주를 두었다. 10월에 북한산에 순행하여 강역을 확정하였다(十六年, 春正月, 置完山州於比斯伐, 同十月 王巡行 北漢山 拓定封疆).”는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산의 본래 이름도 북한산이 분명합니다.

 

 

 

  아침8시48분 지경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야간열차에서 잠을 설쳐서인지 5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어디다 흘려 아침부터 찜찜했는데, 그에 더하여 통도사버스터미널에서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지경고개까지 걸어가는 데 넉넉잡고 20분이면 족한 거리를 길을 잘 못 들어 빙 돌아가는 바람에 한 시간이 거의 다 걸렸습니다. 지경고개를 출발해 통도사버스터미널쪽으로 차도를 따라가다가 첫 삼거리인 35번 국도를 건넜습니다. 오른 쪽으로 2-3분 걸어 가 만난 현대오일뱅크 주유소 바로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좁은 길을 따라갔습니다. 황태구이식당을 지나 차도를 건넌 다음 오른 쪽으로 몇 걸음 옮겨가 OK목장식당에 다다랐습니다. 왼쪽으로 난 시멘트 길로 들어서자 구름이 6부 능선쯤에 내려앉은 영축산이 가깝게 보였습니다. 밭 사이 농로를 따라가다 전통손두부집 앞에서 차도를 건너 오른 쪽 고갯마루 쪽으로 가야 할 것을 생각 없이 직진방향의 시멘트 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엉뚱한 데서 반시간 가량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시멘트 길로 저수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자 길이 끊겨 다시 차도로 돌아갔습니다. 반시간 가량 알바를 한 후 되돌아간 차도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이동해 표지기가 붙어 있는 고갯마루에 이르자 영축산 안내판이 서 있었습니다. 어렵게 제 길을 찾았지만, 버스터미널에서  이곳에 이르기까지 이래저래 1시간 넘게 헛걸음을 해 어느새 10시가 거의 다 됐습니다.

 

 

 

  10시26분 오른쪽으로 방기리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영축산 안내판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왼쪽으로 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영축산 정상 방향으로 난 산길을 따라 가다 거의 다 뚫린 철조망펜스를 지났습니다. 몇 분후 골프장 왼쪽으로 난 풀숲 길을 따라 오르는 동안 20분 가까이 큰 키의 억새 등 잡풀에 얼굴이 계속 스쳐 짜증이 났습니다. 골프장 위 방기리 갈림길에서 조금 더 올라가 왼쪽 산길로 들어서자 이제야 비로소 길다운 길에 들어섰다 싶었습니다. 버스터미널을 출발해 두 시간 넘게 걸었어도 쉬고 가겠다는 마음을 먹지 못한 것은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다 까먹어 서두르지 않으면 해떨어지기 전에 목적한 배내고개까지 진출하는 것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차가 다녀도 될 만한 넓은 임도를 가로 질러 곧바로 치고 오르기를 몇 번해 다다른 해발660m대의 임도 길에서 첫 쉼을 가진 시각이 11시18분이었으니 버스에서 내려 3시간20분 동안 쉬지 않고 걸은 셈입니다.

 

 

 

  11시48분 취서산장에서 십 수 분간 쉬었습니다. 방기리갈림길에서 정상까지 거리가 1.9Km로 표지목에 적혀 있었지만 갈림길에서 표고를 700m이상 높여야 정상에 이를 수 있어 결코 이번 산 오름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정상을 0.6Km 남겨놓은 곳에 자리 잡은 허름한 취서산장에 올라 그 앞마당에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먼발치로 구름이 정상을 살짝 덮은 금정산이 보였고 천성산과 정족산이 점점 가까이 보였습니다. 오로지 두발로 저 먼 길을 걸어온 제가 하도 대견스러워 맥주 한 캔을 사들어 자축한 후 다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홀로 정상을 향해 떠났다는 큰 개를 찾아 내려오는 산장 주인을 뒤로 하고 십 수분을 더 오르자 너덜이 보였습니다.

 

 

 

  12시40분 해발1,059m의 영축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너덜 오른 쪽으로 난 길을 따라 고갯마루에 올라선 후 너덜지대 위쪽의 암봉을 오른쪽으로 에돌아 조금 더 진행하자 오른쪽으로 영축산의 정상석이 보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달려가 정상에 올라서자 울산에서 왔다는 젊은 두 분이 같이 식사를 하시자며 인사를 건네 와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북쪽으로는 신불산을 거쳐 가지산에 이르는 주능선이 깔끔하게 보였고 남서쪽으로는 7년 전 가다가 되돌아온 시살등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정상을 뒤덮었던 먹구름이 하늘 위로 자리를 옮겨 제게 자리를 내준 덕분에 그림 같은 영남알프스의 주능선을 멀리까지 조망하고 나자 그 길을 걷고 싶은 마음에 더 이상 정상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서둘러 원경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쓰고 간 초록색 모자를 삼각점 위에 놓고 근경을 사진 찍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좋은 산행되시라는 울산 젊은이들의 인사말에 고맙다며 답을 한 후 억새 향연이 펼쳐지는 초원으로 내려섰습니다.

 

 

 

  산중의 음식은 그 무엇이 되었든 시내 음식보다 몇 배 더 맛있어 점심시간이 마냥 기다려집니다. 달랑 한 두 팩의 떡만 준비해가는 제게도 점심시간은 더 할 수 없이 달콤한 시간인데 나름대로 안주인께서 정성들여 싸준 음식을 가지고 올라왔을 울산 젊은이들에는 더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높은 데까지 힘들여 갖고 올라온 음식을 나뉘고자하는 것은 우리네 상정입니다. 또 이를 진정 고마워하는 것 또한 상정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음식은 더 할 바 없는 인사말이었기에 진지 드셨느냐고 어르신들에게 문후인사를 올렸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그의 저서 “디지로그”에서 음식이 동네의 새 소식을 실어 나르는 훌륭한 매체였다고 말씀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 시골 동네에서 시루떡을 돌리고 또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시루떡은 그냥 떡이 먹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루떡은 귀한 손님이 오셨거나 크고 작은 집안 행사가 있을 때 빚는 떡이기에 이를 받으면 떡을 돌린 집에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물어 확인 한 후 떡 그릇을 비워 돌려보내주곤 했습니다. 먹을거리도 짐이기에 무작정 많이 싸갖고 산을 오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산중의 점심상이 잔칫상처럼 남아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처음 보는 이에게도 같이 들자고 권하는 것은 음식나누기의 아름다운 전통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을 나누는데 음식만큼 좋은 것이 없어서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14시21분 해발 1,209m의 신불산을 올랐습니다. 등산로가 한 눈에 잡힐 만큼 넓고 분명해 모처럼 길을 잘 못들 일을 걱정하지 않고 편히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산들바람을 맞느라 긴 머리를 풀고 너울너울 춤을 추는 억새들도 달포후면 완전히 황금빛으로 변해 여기 억새평전에 장관을 연출할 텐데 그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기가 아쉬웠습니다. 왼쪽 아래 백련암(?)에서 올라오는 한 분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1026m봉을 넘었습니다. 띠 동갑인 이분은 1980년대에 백두대간에 발을 들여 다섯 번이나 종주를 마친 베테랑이어서 그간의 경험을 듣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배움이었습니다. 1026m봉에서 신불재로 내려가 억새 평전 한 가운데 자리한 쉼터에서 점심을 든 후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 돌탑이 세워진 신축산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파레소폭포로 하산한다는 띠 동갑내기분과 사진을 찍은 후 저 혼자 간월산으로 향했습니다.

 

 

 

  15시55분 해발1,069m의 간월산을 올랐습니다. 신불산에서 간월재로 내려가는 길바닥이 지난 4월에는 더러 더러 얼음이 살짝 얼어있었는데 이번에는 물기가 남아 있어 여전히 미끄러웠습니다. 간월산장 옆 간월재 쉼터에서 한 차례 쉬면서 간월산을 다녀오신 수녀님을 뵈었습니다. 금욕과 봉사로 한 평생을 살아가시는 수녀님께 등산이 혹시라도 고행을 의미한다면 평상화로 간월산을 다녀오신 것도 신앙생활의 일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고차가 150m가량 나는 간월산에 올라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본 것은 여기서부터 배내봉까지는 영축산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확 트인 길이 아니고 좁은 산속 길을 걸어야 해서였습니다. 어느새 오후 4시가 다 되어 따갑던 햇살에서 저녁이 감지되었습니다. 어둡기 전에 산행을 마치고자 간월산 정상에서 뜸들이지 않고 곧바로 배내봉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온 몸의 에너지를 두 다리에 모은 후 최대로 속력을 높여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800m대로 고도를 낮추었다가 900m대의 봉우리 몇 개를 넘는 동안 거의 내내 능선 바로 아래 그늘진 숲속 길을 걸었습니다.

 

 

 

  17시27분 해발966m의 배내봉에 이르렀습니다. 간월산을 출발해 한 시간 쯤 걸어 다다른 무명봉에서 10분가량 쉰 후 간월산보다 훨씬 가깝게 보이는 배내봉을 향해 빨리 걸었습니다. 오른쪽 동쪽사면이 까까비탈인 산길이 외길이어서 길 잃을 걱정 않고 내달려서인지 간월산에서 배내봉까지 2시간쯤 걸리리라 생각했는데 그 보다 반시간을 앞당겨 일찍 도착했습니다. 숲속 길을 빠져나와 확 트인 배내봉에 이르자 다음에 오를 영남알프스 최고봉인 가지산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정상을 살짝 가린 구름이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아 산행을 다 마칠 때까지 가지산의 정상을 보지 못했는데, 가지산이 구름에 둘러싸이는 것이 늘 있는 일이어서 인근의 다른 남쪽지방 산들과 달리 3월에도 쌓인 눈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직진방향으로 오두봉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이르기까지 평평한 큰 길이 계속되어 찬찬히 초가을 야생화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8시24분 배내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오두봉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배내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내내 나무계단 길이어서 하산 길이 편했습니다. 서쪽 멀리로 보이는 천황산(?)도 북쪽 가까이 보이는 가지산과 마찬가지로 구름이 정상을 덮었습니다. 구름 속에 숨어 숨바꼭질을 하던 태양이 얼굴을 내보였을 때는 이미 석양이었는데 배내고개에 내려서자 다시 구름 속으로 몸을 숨겨 사방이 어둡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두 편 밖에 없는 버스는 벌써 떨어져 만 오천 원이 드는 택시를 불렀습니다. 울산역으로 나가 저녁7시22분발 서울행 KTX에 올라 하루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옛날 화랑이라면 신불산 산줄기를 원행한 후 택시를 타지 않고 말을 탔을 것입니다. 또 저처럼 KTX를 타고 서둘러 서울로 내빼지 않고 천천히 서라벌로 입성했을 것입니다. 화랑들이 영남알프스 길을 걸은 것이 확인만 된다면 배내고개 쯤에 역참을 만들어 울산역까지 말을 타고 가보는 관광프로그램도 꾸며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뀔 이름의 화랑로만은 옛 그대로 천천히 걸으며 화랑들처럼 유람해보고 싶어서입니다. 그 때보다 수명은 몇 십 년 늘어났는데 그 긴 인생을 내내 달릴 수만은 없지 않나 싶기도 해서입니다.

 

 

 

 

                                                               <산행사진>

 

 

 

 

 

 

 

 

 

 

 

 

 

 

 

 

 

 

 

 

 

 

 

 

 

 

 

 

 

 

 

 

 

 

 

 

 

 

 

 

 

 

 

 

 

 

 

 

 

 

 

 

 

 

 

 

 

 

 

 

 

 

 

 

 

 

 

 

 

 

 

 

 

 

 

 

 

 

 

 

 

 

 

 

 

                                                 신불산(2)

 

 

                                  *산행일자:2011. 4. 24일(일)

                                  *소재지   :경남양산/울산시

                                  *산높이   :신불산1,209m

                                  *산행코스:녹수가든-금강폭포-에베로리지-신불산-간월재

                                                 -홍류폭포-작천정

                                  *산행시간:10시18분-17시20분(7시간2분)

                                  *동행      :대구참사랑산악회원 및 성봉현, 범솥말, 조부근, 이규성님

 

 

  반년을 기다려 대구의 지인들과 함께 산행을 했습니다. 대구참사랑산악회의 초청으로 오른 신불산은 2004년에 한 번 오른 산이지만 그 때는 배내고개-신불산-죽바우등-통도사주차장의 능선코스로 산행해 이번처럼 아슬아슬하지 않았습니다. 저 혼자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에베로리지 코스를 택한 것은 다음 날 오를 만어산 코스 중 산행기에 조금 위험하다고 나와 있는 구천산 암릉길에 대비해서인데 서울과 대구의 베테랑 회원들과 같이 해주어 생각보다 쉽게 마쳤습니다.

 

 

  광명역에서 서울역을 6시 반에 출발하는 KTX를 타고 대구로 향했습니다. 서울 팀의 동행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잠시 눈을 붙였다가 동대구역에서 하차했습니다. 역에 나와 저희들을 기다린 대구분의 승합차에 올라 신불산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참사랑산악회원들을 만나 아침을 든 후 가천으로 향했습니다. 녹수가든에서 먼저 와 기다리는 이규성 교수와 만나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장제마을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10시18분 장제마을 위 시멘트 길에서 신불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과수원으로 보이는 철제대문 집을 지나 다다른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라 진행하다가 군부대 철조망을 만나 다시 삼거리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뒤 남쪽 계곡으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만나 그길로 내려갔는데 사람이 다닌 흔적이 분명치 않아 길 찾기에 애를 먹었습니다. 군부대 철조망을 넘고 내려가 포사격장 안으로 들어선 후에야 금강폭포로 이어지는 제 길을 만나 서진했습니다. 넓은 공터를 지나 만난 계곡에 물이 콸콸 흘러 내려갔습니다. 조심해서 물을 건너기를 몇 번 반복해 이름 없는 폭포 앞을 지났습니다. 에베로리지가 가까워질수록 보다 바위 길에 대한 공포가 스멀스멀 되살아났습니다.

 

 

  11시46분 금강폭포 앞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쾌청한 하늘과 전날 내린 비로 선선해진 날씨가 해발고도를 천여m 높여 정상에 오르는 이번 산행에 딱 알맞았습니다. 쇄락한 물소리가 잦아든다 했는데 커다란 몸집의 바위를 타고 수직으로 흐르는 금강폭포에 이르자 폭포소리가 굉음(?)처럼 크게 들렸습니다. 편안한 오름 길이 여기 금강폭포에서 끝나고 바로 위험한 에베로리지가 이어진다 싶어지자 잠시 쉬는 시간도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금강폭포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암봉을 우회해 에베로리지에 발을 들였습니다. 아찔하다 싶은 곳에 로프가 걸려 있고 암벽등반에 능한 한 동료가 뒤를 봐주어 보기보다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2008년 산행사고 후 새로 생긴 바위공포증 때문에 그간 애써 피해온 리지코스를 과연 잘 해낼까 싶어 심히 긴장됐습니다. 이리 걱정하다가도 막상 다가가서 붙으면 또 문제없이 해왔듯이 마음 한 편으로는 이번에도 잘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고 저 혼자서 이 코스를 지나기는 힘들겠지만 베테랑 동료들과 같이 오르는 것이어서 안심도 됐습니다. 바위틈에서 꽃을 피운 진달래꽃이 엷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온몸으로 이 길을 오르는 저를 반겼습니다.

 

 

  13시38분 영축산-신불산의 주능선에 올라 점심을 들었습니다. 에베로리지를 오르는 산객들이 저희들만이 아니어서 이 코스를 통과하는 데 시간 반이 다 걸렸습니다. 어떤 코스는 무거운 배낭을 먼저 올리고 맨 몸으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아리랑코스와 쓰리랑코스라 불리는 북쪽의 릿지코스에 붙은 록 크라이머들을 사진 찍으며 잠시 암벽등반에 몰두했던 대학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암벽등반에 한 번 빠지면 그 중독성 때문에 쉽게 빠져나오지를 못해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해나갈 수 없다는 판단에서 록 크라이밍을 접었지만 바위 잘 타는 분들을 보면 지금도 여전히 부럽습니다. 영축산-신불산 주능선 바로 아래에서 든 점심식사가 유난히 맛있는 것은 난코스 에베로리지를 무탈하게 통과한 덕분이어서 오름 길에 도와준 여러분들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지난 가을 북한산 의상능선을 함께 오른 후 반년 만에 다시 만난 대구의 참사랑산악회 회원들이 이것저것 많이 준비해와 최고의 성찬인 오찬을 마치는 데 반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15시7분 해발1,209m의 신불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지근거리의 영축산은 다음 달 낙남정맥을 종주할 때 지나야 해 이번에는 들르지 않고 곧 바로 신불산으로 향했습니다. 13시38분에 “영축산/신불산/장제마을”의 표지목이 서 있는 능선 삼거리를 출발해 간월재에 이르기까지 2시간 남짓 낙남정맥을 따라 걸으며 광활한 억새군락지인 신불평원을 지났습니다. 60만제곱m의 억새군락지 신불평원에 자리한 단조늪지는 그 넓이가 30만-35만제곱m로 꽤 여러 종의 희귀식물 및 곤충과 척추동물이 살고 있는 고산늪지인데, 신라가 해발940m-970m의 능선부에 쌓은 왼쪽 아래 단조성터가 이 늪지를 둘러싸고 있다합니다. 햇빛에 너울대는 억새꽃들의 황홀한 군무를 가을이 아니라서 보지 못했지만, 능선에 가지런히 들어선 억새들의 모습이 마냥 수수해 무척 정감이 갔습니다. 8년 전에 한 번 다녀온 재약산의 사자평원이 서쪽 멀리 보였는데 여기 신불평원에 견줄만한 억새군락지는 사자평원이 유일할 것입니다. 1046m봉에서 내려다본 신불재가 7년 전에 지난 고개가 아니었습니다. 고개에 조성된 안부쉼터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계단길이 주변의 억새밭과 잘 어울려 그 기하학적 아름다움이 빼어났습니다. 신불재에서 가파른 계단 길을 걸어 올라선 신불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15시43분 간월재에 내려섰습니다. 신불산을 같이 오른 분들 중 몇 분들은 오른 쪽 공룡능선으로 내려갔고 나머지 분들은 간월재 코스로 하산했습니다. 오전 내내 쾌청했던 하늘이 얼굴을 찌푸린다 했는데 어느새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져 잠시 긴장했습니다.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지만 찬바람이 거칠게 불어 윈드자켓을 꺼내 입었습니다. 신불산 정상에서 왼쪽으로 얼마간 평탄한 능선 길을 따라 진행하다 1159m봉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바로 아래 보이는 간월재로 내려갔습니다. 고도를 250m 넘게 낮추느라 다소 지루한 길을 따라 내려가 간월재에 다다랐습니다.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의 안부인 간월재쉼터와 왼쪽 아래에 자리한 대피소 건물이 유럽 알프스의 산장처럼 깔끔하고 주변 환경과 잘 어울려 영남알프스의 대피소답다 했습니다. 간월재에서 오른 쪽 간월산장으로 내려가는 꼬부랑길을 두 번 찔러가다 제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며 왼쪽의 거대한 암봉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7시20분 작천정(酌川亭)에서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꼬불꼬불한 시멘트 길이 끝나고 오른 쪽 아래로 내려가 호젓한 산길을 걸었습니다. 묘지 옆의 장송을 사진 찍느라 잠시 숨을 고른 후 주차장으로 내려가다 동행한 대구분의 권유로 길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떨어진 홍류폭포를 들렀는데 앞서 들른 금강폭포보다 규모가 조금 작아 보였습니다. 다시 제 길로 돌아가 하산을 계속했습니다. 주차장을 지나 작천정 앞 계곡의 너럭바위에다 전을 편 것은 대구의 참사랑산악회에서 정성들여 준비한 저녁을 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작궤천 계곡의 절경과 우정 어린 성찬에 곁들인 반주로 분위기가 무르 익을 즈음 서울 팀이 상경열차에 시간을 대고자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작천정이 세워진 것은 대한제국 때인 1902년의 일이니 고려 말의 대유학자 포은 정몽주가 언양으로 유배와 글을 읽던 곳은 작천정 정자가 아니고 이번에 저희들이 식사한 그 앞 작궤천의 너럭바위였을 것입니다. 고려 우왕2년인 1376년 정몽주가 이곳에 유배당한 것은 무슨 큰 죄를 저질러서가 아니고, 이인임 등 친원파의 배명친원(排明親元) 정책에 대해 점점 강해지는 명나라를 버리고 망해가는 원나라와 친하고자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며 상소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그 이듬해 풀려난 포은 정몽주가 그 15년 후인 1392년에 피살된 것은 친원파가 아닌 친명파인 이방원에 의해서였습니다. 정치에서 영원한 친구도 또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것은 시공을 뛰어넘는 참이기에 이방원의 “하여가”에 “단심가”로 대응했을 때 이미 정몽주의 죽음은 예견되었습니다. 이방원이 태종으로 등극 후 정몽주를 영의정으로 추서한 것으로 보아 강력한 정적이어서 죽이기는 했으나 그의 충절과 학문은 존경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의 학문은 제자 길재 등에 의해 조선의 사림파로 이어졌으니 억울하게 죽었을망정 사후 명예는 모두 되찾은 셈입니다.

 

 

 

  산행을 마치고 이렇게나마 포은 정몽주 선생을 뵐 수 있어 이번 신불산 산행이 제게는 뜻 깊었습니다. 이처럼 뜻있는 산행을 준비한 대구 참사랑산악회원들에 감사 인사 올리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신불산(1)

 

 

                            *산행일자:2004.11.20일
                            *산높이  :간월산 1,083미터/신불산 1,209미터/영취산 1,059미터
                            *소재지  :경남 양산시/울주군/울산시
                            *산행코스:배내고개-간월산-신불산-영취산-죽바우등

                                           -백운암-통도사주차장
                            *산행시간:4시48분-12시 40분(7시간 52분)

                            *동행      :숲향산악회

 

 

  작년 11월 능동산-천황산-재약산등 서쪽의 영남알프스를 종주한 지 일년만에 어제 다시 영남알프스를 찾은 것은 아직도 오르지 못한 동쪽의 연봉들인 간월산-신불산-영취산을 밟고 싶어서였습니다. 지난해에는 사자평에 안개가 자욱히 끼어 억새 밭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하산해서 아쉬움이 진했기에 맑은 날씨에 종주를 하는 이번 산행에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어제는 안내산악회를 따라 영남알프스의 연봉들을 오르내렸습니다.
그제 밤 10시에 고교동창인 이 규성교수의 환송을 받으며 사당을 출발,  새벽 4시 18분 언양 톨게이트를 빠져 나왔습니다.  30분 가까이 지방도로를 더 달려 해발 640미터대의 배내고개에 도착, 짐을 챙겨 산행준비를 끝내고 아침 4시 48분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혀 배내봉으로 올라서는 들머리에 들어섰습니다. 출발 30여분 후 해발 966미터의 배내봉에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왼쪽의 산밑에 자리한 언양읍의 야경만 눈에 잡힐 뿐 칠흑 같은 어둠이 조금도 가시지 않아 사방이 캄캄했습니다. 다행히도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포진하고 있는 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밝게 빛냈습니다.

 

 

  6시26분 해발 1,083미터의 간월산에 올라섰습니다.
작년 7월 강원도의 청옥산을 올라 통산 100산을 등정한 후 꾸준히 새로운 산을 찾아  200번째 오른 산이 바로 여기 간월산입니다. 제게는 200산 등정이 맥주라도 마시며 자축을 하고 싶을 만큼 가슴 뿌듯한 일입니다.  912봉을 트래파스해 안부로 내려섰다 치받이 길을 치고 올라서 배내봉 출발 1시간만에 간월산 정상에 이르렀는데 고현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이 정확한 산 높이를 알려주어 고마웠습니다. 산악회에서 이곳에서 일출을 볼 수 있도록 산행시간을 조정했다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한참을 기다려야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동안 동해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에 땀이 식어 체온이 급강하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간월재로 발걸음을 옮겨 몸을 데웠습니다. 놓칠세라 해 오름 직전의 동해의 붉음을 카메라로 연신 잡았습니다. 사진을 찍느라 멈칫하는 사이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둔 영업본부장을 만났는데  서울에서 한 차를 타고 왔다 하니 좁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간월재에 내려서자 가슴팍을 파고드는 찬바람이 매서웠습니다.
아직은 가을인가 싶었는데 등산로에 얼음이 얼어 있어 앞으로는 겨울산행을 제대로 채비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울주군에서 설치한 탐방로가 간월재에서 신불재까지 이어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느라 황폐해진 등산로를 정비해 다시 내고자 이곳 간월재에 알루미늄자재를 상당량 쌓아 놓았는데 당국의 환경보존에 대한 열의를 읽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산마루에 올라서 지나온 간월산과 그 주변의 억새 밭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간월산의 허리를 동강낸 도로가 보기에 흉해 도로의 용도가 과연 무엇일까 알고 싶었습니다. 천성산의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이유로 고속전철의 통과를 결사 저지한 환경운동가 들은 허리를 짤라내고 도로를 낼 때에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기에 막지 못했는지 궁금했습니다.

 

 

  7시 40분 영남알프스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해발 1,209미터의 신불산에 도착했습니다.
신불산 정상에 도착하기 10여분간은 길이 평평하여 걷기에 아주 편했습니다. 정상에 쌓여 있는 제법 높은 케륜이 이 산을 찾는 산 꾼 들의 소원을 모두 수리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 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배내고개에서 시작된 주 능선의 동쪽 사면은 야간산행이 매우 조심스러울 만큼 급경사의 낭떠러지인데 반하여 그 반대사면은 경사가 완만한 고원에 군락을 이룬 억새 밭이 장관이었습니다. 아직도 정상에서 약주를 찾는 산객들이 많이 있어 장사가 될만 하기에 주인 아주머니가 이 산상에로 땀흘려 등짐을 지어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8시8분 신불산 정상을 출발, 해발 980미터대의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동쪽으로 내려서면 가천 마을입니다. 마을주위의 산골짜기를 가득 채운 안개가 한 폭의 동양화와 같아 주변의 작은 저수지와 함께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이번 산행 중 만나는 최고의 억새 밭은 신불산-영취산 사이의 광활한 평원입니다. 몇 개의 커트만으로는 드넓은 억새 밭을 전부 잡을 수 없어 사방을 둘러보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이곳의 억새들은 명성산의 억새보다 키는 낮은 듯 하지만 식생하는 넓이는 그 산에 비교할 바가 아닐 정도로 광활했습니다. 그런데도 신불산에서 영취산까지의 2.95키로의 거리에 펼쳐진 이곳의 억새평원이 사자평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지도에 나타나 있어, 그렇다면 도대체 사자평의 억새 밭은 얼마나 넓을까 궁금했습니다.

 

 

  8시54분 영취산에 올랐습니다.
해발 1,059미터의 정상에 올라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거칠게 바람이 불어댔습니다. 정상을 조금 비껴 바람이 잔잔한 곳을 찾아 짐을 풀고 김밥을 들어 요기를 했습니다. 정상 옆의 작은 웅덩이에 고인 물이 얼어 있어, 이제 가을의 기도를 그만 접고 셀리의 서풍부를 읊조려야  하는 겨울이 왔음을 실감했습니다. 안내산악회에서는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꺾어 하산할 것을 1차 적으로 권해 왔습니다만 바로 하산을 하면 통도사에 너무 일찍 도착해 13시 30분까지는 시간이 남아 돌 것 같기에 남서쪽으로 3키로 떨어진 시살등을 오른 다음 한피기고개로 다시 내려와 통도사로 하산하기로 마음을 먹고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9시5분 영취산을 내려서자 억새 밭은 끝나갔고, 여름 내내 푸르렀던 활엽수들이 그 잎들을 떨어내고 남은 회색의 나목 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 능선을 이어갔습니다. 어제 하루 영남알프스를 종주하는 동안 3색의 산 군들을 만났습니다. 배내고개에서 간월산까지는 모든 색을 삼켜버린 밤이 지배하는 시간이어서 검은 색의 산을 만났고, 간월산에서 신불산까지는 억새 밭의 주황색이 평원을 뒤덮었으며, 영취산에서 남서쪽으로 내닫는 능선에는 전형적인 겨울 산의 회색이 주를 이루어 극명하게 대조되었습니다.

 

 

  10시1분 함박등을 트래파스해 함박재를 지났습니다.
한피기고개까지 1.5키로 남아 있고 왼쪽으로 꺾어 하산하면 백운암에 다다르는 갈림길인 함박재에서 시간을 체크한 후 내쳐 시살등으로 내달렸습니다. 청수중앙능선이 시작되는 체이등을 트래파스해, 푸르른 산 죽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 가다가 우뚝 서있는 큰 바위의 암봉을 만나 카메라에 그 전면을 담았습니다.

 

  10시 31분 시살등으로 생각되는 암봉에 올라섰습니다.
표지석이나 표지봉이 없어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산행시간이나 시계에 나타난 고도로 보아 시살등이 거의 틀림없다고 믿고, 짐을 풀어 휴식을 취했습니다. 울산에서 왔다는 한 젊은이에 이곳이 시살등이냐고 묻자 어정쩡한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해왔습니다.

 

  10시42분 주변의 경관을 카메라에 담고 나서 함박재로 되돌아갔습니다.
체이등을 우회하는 중  한 쌍의 부부를 만났는데 그 분들로부터 방금 다녀온 암봉이 시살등이 아니고 죽바우등임을 확인했습니다만 다시 돌아가 시살등을 오를 만큼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아 백운암으로 바로 하산했습니다.

 

  11시35분 백운암에서 잠시 쉬면서 시원한 약수를 들이 마셨습니다.
이 겨울에 백운암 바로 밑의 대나무 숲이 그 푸르름으로 빛을 발했습니다. 그 동안 제대로 작동되었던 시계가 고장이 났는지 고도가 엉터리로 나타나 다음 산행이 걱정되었습니다. 얼마 후 산 중턱에 설치된 간이 주차장에 도착, 이곳에서 시작되는 차로를 따라 편하게 하산하여 영취산을 완전히 빠져 나왔습니다. 삼거리에서 안내원을 만나 통도사주차장으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오른 쪽 길을 알려줘, 그 길을 따라 계속 걸으니 통도사로 넘어가는 고개가 나타났습니다. 별 수없이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 터덕터덕 걸어 고개 마루에 거의 다 올라섰는데 반대편으로 택시가 지나가 불러 세웠습니다.

 

  12시 40분 8시간의 산행을 전부 마치고, 택시에 올라타 통도사 주차장으로 옮겼습니다.

덕분에 시간 전에 주차장에 도착, 점심을 들고 13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3대 사찰의 하나인 통도사를 들러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시간을 충분히 내 관찰할 절이지 잠시 들러 보는 것으로 족한 그저 그런 절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번 산행으로 통산 200산 등정을 마쳤습니다.
작년 7월 100번째로 오른 청옥산에서 100산을 추가해 금년 말까지 200산을 마치기로 목표를 정했습니다. 이에 더하여 가능한 한 그 동안 남기지 못한 산행기를 제대로 기록하고 사진을 찍겠다고 결심했고, 나름대로 착실히 이를 실천해왔습니다. 산행기를 제대로 써 보고자 국어사전을 새로 장만하였으며, 야생화 및 나무도감도 마련했습니다. 뿐더러 주머니에 들어 갈만한 크기의 작은 디지털카메라도 새로 구입해 부담 없이 수많은 사진들을 찍어 댔습니다. 목표를 정하고 산을 오르는 것이 정말 잘하는 일인 가 고심도 했습니다. 저 같이 심지가 굳지 못한 사람들에는 목표를 정하고 뛰어야 계속해 산을 오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제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자 합니다. 그 목표는 다름 아닌 백두대간 종주입니다. 이마저 달성한다면 그때 가서 저는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과정 하나 하나가 바로 삶이기에 목표를 제 인생에서 빼버릴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저는 얼마간은 부지런히 백두대간을 밟을 것이며, 산행기도 계속  써 나갈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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