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19.재약산 산행기(1-2)

시인마뇽 2007. 1. 2. 18:38
                                                               재약산(2) 

 

                                         *산행일자:2012. 10. 28일(일)

                                         *소재지 :경남밀양/울산시

                                         *산높이 :재약산1,189m

                                         *산행코스:얼음골입구주차장-얼음골-재약산-문필봉

                                                        -고사리분교터-표충사앞 마을

                                         *산행시간:11시23분-18시5분(6시간42분)

                                         *동행 :경동고24회 명백회 김주홍 회장 등 14명

 

 

 

 

  영남 알프스에 ‘명산100산’이 모여 있어 앞으로도 몇 번을 더 이 산줄기를 올라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2월 영남알프스의 최고봉인 해발1,240m의 가지산을 올랐고 이번에 해발1,189m의 재약산을 올라 두 개의 명산 탐방을 마쳐, 이제 영남알프스의 ‘명산100산’으로 더 올라야 할 산은 해발1,195m의 운문산과 해발1,209m의 신불산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 영남알프스처럼 ‘명산100산’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은 문경의 백두대간 일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에 오른 해발1,189m의 재약산은 9년 전에 오를 때만 해도 천황산(天皇山)으로 불렸습니다. 그때 재약산으로 불린 산봉우리는 천황산에서 남동쪽으로 떨어져 있는 수미봉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제국의 천황을 숭상하여 사자봉(?)을 천황산으로 고쳐 불렀으니 이제는 당연히 천황산을 재약산 사자봉으로, 재약산을 재약산 수미봉으로 바꿔야한다는 주장이 9년 전에도 제기된바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어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의 산하’ 사이트에 등재된 개념도에 천황봉을 재약산으로 표기된 것을 보면 소정의 절차를 거쳐 산 이름이 바뀐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나라에 천황산이나 천황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봉우리는 도처에 있습니다. 여암 신경준 선생의 ‘산경표’에 이어 우리나라의 주요산줄기를 족보화해 책으로 펴낸 한 분은 일제가 과연 우리이름의 산봉우리를 천황산이나 천황봉으로 고쳐 불렀느냐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해발 200-300m대의 천황산도 있고 섬의 산에도 천황봉이 있는데 이들은 본래 이름이 그러했지 일본제국의 천황을 숭배하기 위해 고쳐 부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국사기에 엄연히 나와 있는 북한산(北漢山)을 일제강점기에 고쳐진 이름이라며 ‘삼각산(三角山)’으로 개칭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작지 않습니다. 그 많은 천황산이나 천황봉 중 일제강점기에 고쳐진 봉우리가 어느 것인지 역사적 고증이 필요한 소이연입니다.

 

 

 

  11시23분 얼음골 입구 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재약산을 오르는 산객들이 몰고 온 차량들이 많아 주차장를 얼마간 남겨두고 가량 가다 서다를 반복했지만 목표한 시각에 얼음골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산내천 건너 동서로 쭉 뻗은 능선이 영남알프스 산줄기로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재약산은 이 능선 서쪽 끝머리에 자리 잡은 고봉이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재약산 정상입니다. 다리 건너 안내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본격적인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명상교를 지나고 돌계단을 올라 만난 천황사는 건너편 표충사에 비해 규모가 아주 작아 한적할 때는 참으로 고즈넉한 산사(山寺)이겠다 싶었습니다. 가을빛이 역력한 산길을 따라 올라 다다른 너덜지대가 ‘얼음골’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삼복더위에도 얼음이 얼어서라는데, 더욱 신기한 것은 한 겨울이면 얼음이 녹아 더운 김이 난다는 것입니다. 모처럼 얼음골을 찾아온 계절이 한여름과 한겨울의 한 가운데인 한 가을이어서 얼음의 한기와 더운 김의 온기 모두 감지할 수 없었음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12시45분 동의굴을 들렀습니다. 얼음골의 너덜지대는 동의굴까지 이어졌습니다. 재약산을 오르는 길에서 왼쪽으로 조금 비껴 자리한 동의굴은 장정을 눕혀 수술을 할 만큼 충분히 넓었습니다. 조선의 명의 허준이 한 여름에도 냉랭함이 유지되는 동의굴에서 그의 스승 유인태를 수술했다는 일화가 여기 밀양의 남명리 얼음골을 우리나라 최고의 얼음골로 자리매김하게 했을 것입니다. 동의굴을 들러보고 돌아와 철제계단을 곧바로 치고 올라가 다다른 능선에서 잠시 쉬면서 내려다본 얼음골의 단풍이 일품이었습니다. 억새가 빼어나기로 이름난 재약산이 이토록 곱디고운 단풍을 북사면에 숨기고 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밀양의 얼음골 사과가 당도가 높기로 이름 난 것은 일교차가 커서라는데 단풍이 곱게 든 것도 그래서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3시40분 주능선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얼음골을 벗어나 잠시 쉰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계속 올라 영남알프스의 주능선에 이르렀습니다. 9년 전 석남터널에서 능동산을 오른 후 여기 삼거리를 지나 재약산을 오른 일이 있어 이 지점이 어렴풋이 생각났습니다. 얼음골 주차장을 출발해 1.9Km의 길을 따라 오르는데 2시간이 훨씬 더 걸렸을 정도로 오름길의 경사는 가팔랐지만 여기부터 정상까지는 밋밋한 능선 길이어서 이제 힘든 구간은 끝났다 싶었습니다. 왼쪽으로 뻗어나간 영남알프스 능선이 가지산까지 이어지고, 오른 쪽 능선 길이 재약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삼거리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그리 멀지 않은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 길을 걸으며  밤을 뚫고 오른 능동산에서 이곳 삼거리를 지나 재약산 정상에 이르기까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남한 땅 최대의 고원인 광활한 사자평을 제대로 보지 못해 많이 아쉬워했던 9년 전의 옛 산행을 떠올렸습니다.

 

 

 

  14시17분 해발1,189m의 재약산 정상에 올라 40분여 점심을 함께 들었습니다. 이번에 오른 재약산 정상은 9년 전에 올랐을 때는 천황산(天皇山)이었습니다. 정상에서 둘러본 사자평은 과연 넓었습니다. 해발750-900m 높이의 재약산 정상부에 위치한 사자평의 습지 중 0.58㎢는 벌써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고, 낙동강환경청에서 2014년까지 사자평의 습지를 복원할 계획이라 합니다. 120만평의 광활한 사자평에 새로 복원할 습지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0.58㎢의 습지보호지역도 더 넓혀갈 뜻이라면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해 억새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16시10분 해발 1,108m의 옛 재약산 정상인 수미봉에 올랐습니다. 정상에서 옛 재약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깊숙한 안부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는 길로, 바람에 은빛 억새꽃이 출렁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고혹적이었습니다. 이런 느낌은 저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어서 동행한 육십 줄의 점잖은 친구들도 억새밭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빴습니다. 해가 짧은 시월에 원거리의 재약산을 오르기로 한 것이 사자평의 억새밭을 보고자함이었는데 이번에는 하늘이 쾌청해 그 뜻을 이루었습니다. “얇은 사 햐얀 고깔을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라는 조지훈의 시(詩) ‘승무’를 떠올리게 한 억새들의 춤사위가 떼를 지어 춤추는 군무인데도  하나도 야단스럽지 않았습니다. 점심식사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 하산을 서둘러야 했습니다. 수미봉을 출발해 고사리분교터로 내려가는 샛길은 울긋불긋 단풍진 숲길이어서 뒷걸음치는 가을이 머물다 가기에 딱 좋을 것 같았습니다. 17시가 조금 넘어 고사리분교터에 이르자 어릴 적 시골에서 고사리 손을 호호 불며 분교를 다니던 국민학교 옛 동무들이 생각났습니다.

 

 

 

  18시5분 표충사앞 마을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고사리분교터에서 조금 더 내려가 만난 삼거리에서 그대로 직진해 시전천 건너 임도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재약산의 명소인 층층폭포는 옥류동천을 따라 내려가는 계곡 길이어서 내심 어둠 속에 이 길을 걷는 것이 찜찜했는데 선두가 이 길을 버리고 차가 다녀도 충분할 만큼 넓은 임도를 따라 내려가 다행이다 했습니다. 맨 뒤에서 부지런히 선두를 따라 가느라 정신없이 내달리다가 얼핏 문필봉 의 붓바위가 눈에 들어와 잠시 멈춰 늦가을이 떠받치고 있는 천애절벽의 붓바위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임도가 끝나기 직전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아 표충사 앞마을에 도착해 산행을 마무리했을 때는 사방이 칠흑같이 캄캄했습니다. 이제 막 하늘에다 잔칫상을 벌인 별들에 저희는 지상에다 뒤풀이자리를 마련해 화답했습니다.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의 또 다른 소설 ‘회색인’을 읽으면서 천황산의 명칭 문제가 풀릴 수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독고준이 친구 김학의 요청으로 정치학과 학생들의 동인지인 “갇힌 세대”에 투고한 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식민지를 가졌다면 참 좋을 것이다. 먼저 그 많은 대학 졸업생들을 식민지벼슬아치로 내보낼 수 있으니, 젊은세대의 초조와 불안이 훨씬 누그러지고 따라서 사회의 무드가 느긋해 질 것이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우리가 일본을 식민지로 가지면 영남알프스보다 몇 십배 긴 북알프스와 남알프스도 갖게 됩니다. 그리되면 저의 푸념이 얼마든지 현실화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일본을 식민지로 갖는다면 이리해도 괜찮겠다 싶어 9년전 이산을 다녀간후 제 산행기에 아래 글을 남겼습니다.

 

  “천황산의 명칭에 관해 이론이 있는데, 천황을 숭배할 목적으로 일본인이 지었다는 천황산(天皇山)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천황산을 재약산 사자봉으로, 재약산은 수미봉으로 부르자는 것이 요지입니다. 백두산도 그들이 물러난 후 병사봉을 장군봉으로 바로 잡은 사례도 있기에, 얼마든지 가능한 주장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이름을 바꾸기는 때늦은 기왕지사 일 듯싶어 차라리 일본 북알프스의 어느 고봉을 선정, 이순신봉이나 사명봉으로 부르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행사진>

 

 

 

 

선배님!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안전산행을 기원합니다.
또한 많은 지도와 편달 부탁하며 무식도 많이 깨우쳐 주십시요.
해가 바뀌었으니 얼굴 한번 뵈어야 되지 않을까요?
날짜를 잡아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재약산은 저도 몇년전 다녀 온 적이 있는데 그때 무박으로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 배네고개, 능동산을 지나 재약산으로 경유해 표충사로 내려왔습니다.
넓은 사지평이 인상적이었는데 억새는 신불평원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는데 이 사자평은 이승만 정권시절 먹고살기 힘든 때였으므로 대통령이 화전민에게 화전을 승인해 줘 농사를 짓던 곳이라고 산행할 당시 어느 어르신이 이야기하더라고요.

신년 산행은 아직 안하셨나봅니다?
저도 기회를 보고 있는데 마땅치가 않아서........
올해 아무사고 없이 안산 즐산을 기원하겠습니다.
새해에 복 많이 빋으시고 안산, 즐삼ㄴ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방학을 맞아 밀린 산행기 써내느라 바쁩니다. 사놓고 못 본 책도 꽤 여러권입니다. 연락주시면 버선발로 뛰어가겠습니다.

 

 

 

                                        재약산(1)

 

                    *산행일자:2003년11월19일

                    *소재지  :경남밀양

                    *산높이  :능동산982미터/천황산1,189미터/재약산1,108미터

                    *산행코스:석남터널-능동산-천황산-재약산-표충사주차장

                    *산행시간:4시45분-12시40분( 7시간55분) 

 


  어제  경남 밀양의 재약산을 올랐습니다.

지난 3월 오른 가지산에 이어 두 번째로 영남알프스를 찾았습니다.


  요즈음은 스땅달이  거리의 거울이라 평한 소설보다 광고 C.F가 훨씬 위력적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만 믿으십시오”라는 어느 C.F의 유혹이 그럴 듯하게 다가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믿는 수 많은 신자들로부터 팽 당할 어느 회사의 C.F가 방영될 수 있는 것은  이제는 C.F가 소설을 대신하여 오늘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보이는 것만 믿으라는 유혹을 잠재우고 1시간 40분여 밤을 뚫으며 산행을 했습니다.

영남 알프스를 관통하는 석남터널을 막 빠져 나와 새벽 4시 45분 능동산 들머리에 들어섰습니다. 며칠전 구입한 간이베개의 도움으로 버스 안에서 숙면을 취한 덕인지 콘디션이 최상이었고 때마침 뿌리는 잔잔한 이슬비로 머리가 상큼해져 산을 오르기가 좋았습니다. 내리는 비로 길바닥이 조금 미끄럽기는 했으나, 플래쉬를 비추며 산행을 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출발 20분만에 안부에 도착,  몸 안의 육수를 빼내기에는 짧은 치받이코스여서 아쉬웠습니다.

안부에서 쉬지 않고 내달아 6시 15분 능동산(982미터)에 올랐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정상을 출발, 임도로 내려와 6시 40분 세 갈래길이 있는 헬리콥터 장에 도착하였습니다. 날이 밝아 플래쉬를 껐으나 짙은 안개로 시야가 트이지 않아 길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선두가 갈래 길에 안내판을 해 놓았다면 쉽게 고를 길을 얼마간의 혼선 끝에  제 길로 들어  섰습니다.


  능선길이 아닌 임도를 걷는 다는 것이 개인적인 불만이었습니다만, 비가 내려 제대로 볼 수 없음은 능선이나 임도나 마찬가지겠다 싶어 불평할 일이 아니라고 마음먹었습니다. 임도를 가볍게 오르내리며 사자평을 알리는 비석을 경유하여 7시 33분 제1주막집인 샘물상회에 다다랐습니다. 저희 후미 팀을 기다린 선두 분들이 막걸리 한잔을 권해와 목을 추겼습니다.


  산행대장의 도움으로 증명사진을 찍고, 7시 47분 천황봉으로 떠났습니다.

임도를 벗어나 능선에 오르니 밑에서 치받아 올라오는 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북적대지 않아 그제처럼 조용히 생각하며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제는 양평의 청계산을 올랐습니다. 국수역에서 출발하여 정상에 오른 후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원점왕복 산행이었는데 4시간 남짓한 산행 중 아무도 만나지 못 해, 오랜만에 고즈넉한 산길을 나 홀로 올랐습니다.

 

  얼음골 분기점을 지나  8시 18분 천황봉(1,189미터) 정상에 섰습니다.

태고의 음향을 전해 줄 듯한 세찬 바람을 준비해간 윈드쟈켓으로 견뎌내고 정상에서의 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정상의 케륜은 묵묵히 서 있는데 바로 자리를 뜨기가 민망스러웠지만, 더 이상 머무르기에는 바람이 너무 드셌습니다. 아직도 안개비로 시야가 꽉 막혀 지척의 억새만을 겨우 볼 수 있었으며, 발 밑으로 펼쳐져 있을 사자평의 진면목이 드러나지 않아 아쉬움을 머금은 채 8시 23분 재약산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천황산의 명칭에 관해 이론이 있는데, 천황을 숭배할  목적으로 일본인이 지었다는 천황산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천황산을 재약산 사자봉으로, 재약산은 수미봉으로 부르자는 것이 요지입니다. 백두산도 그들이 물러난 후 병사봉을 장군봉으로 바로잡은 사례도 있기에, 얼마든지 가능한 주장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지금와서 이름을 바꾸기는 때늦은 기왕지사 일 듯 싶어, 차라리 일본 북알프스의 어느 고봉을 선정, 순신봉이나  사명봉으로 부르도록 하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황봉에서 15분여 내려오는 동안 수많은 돌무더기사이를 지났습니다. 마이산의 돌탑처럼 정교한 멋은 없지만 투박한 그대로가 오히려 돋보였습니다. 그 돌무더기마다 나름대로 누군가의 염원을 담고 있을진대, 아 이래서 사바세상이 삼라만상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8시50분 제2의 주막집인 알프스쉼터에 도착, 모처럼 휴식다운 휴식을 즐겼습니다.

쉼터안에서 커피를 시켜, 간식으로 준비해간 인절미를 함께 들었습니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가오서”라고 바깥 벽면에 쓰여진, 젊은 부부인 듯한 주인네의 따뜻한 마음쓰임새가 저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곳 쉼터에 머무르게 했던 것 같습니다.


  9시 정각 쉼터를 출발하여 재약산으로 향했습니다.

빗발이 점점 굵어져 쟈켓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제법 리드미칼하게 들렸습니다. 구두가 젖어 오기 시작했고 바지가랑이에 길바닥의 흙이 옮겨져 무게가 더해짐을 느꼈습니다. 앞서간 산행대장이 길바닥에 피닉스산악회 표지판을 요소 요소에 설치해 놓아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얼마간의 바위 길을 지나자 바위 위에 세워진 조그마한 표지석이 여기가 재약산(1,108미터) 정상임을 알려주었습니다. 9시 35분 석남고개를 출발한지 거의 5시간이 지나 능동산-천황산에 이어 재약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같이 오른 어느 남자분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어 재약산의 정상에서도 증명사진은 남겼지만, 짙은 안개로 120만평의 광활한 사자평고원을 카메라에 담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보이는 것만을 믿을 수 없는 것은 안개 속에 가려진 사자평의 넓은 들에서 호연지기를 길렀을 신라의 화랑들이 머리 속에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빗발이 더욱 세져 하산 길을 서둘렀습니다.

9시40분 정상을 출발하여 10시 25분 고사리분교 터에 도착했습니다. 도중 내린 비로 길이 미끄러워 예의 엉덩방아를 찧었고, 이렇게 해서 산신령께 입산신고를 마쳤습니다. 학교를 대신하여 고사리 분교 터에 들어 선 간이 음식점이 등산객들을 맞았지만, 쉼터에서 먹은 인절미가 아직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어 그냥 지나 쳤습니다. 표충사로 내려가는 길은 잘 다듬어져 걷기에 편했습니다. 빗발도 멈추고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드러난  재약산의 산세는 새로웠습니다. 드넓은 평원의 맞은 편에 드넓은 단애의 바위벽이 꼿꼿하게 세워져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산마루에 걸쳐진 구름의 자태도 보기 좋았기에 열심히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평생동안 산만을 구도 잡아 그리신 유영국 화백께서 오늘의 저 모습을 보셨다면 어떤 그림을 그리셨을까 궁금합니다. 구체적인 산의 모습은  저 같은 산 꾼도 일부나마 그려 낼 수 있지만, 숨겨진 산의 정신은 위대한 화가만이 추상화로 승화시켜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약산을 오르는 많은 분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내려와 11시 45분 표충사에 이르렀습니다.

냇가로 내려가 더럽혀진 바지를 씻어낸 후  표충사를 둘러보았습니다. 이곳 표충사에서 재약산 정상과 전체적인 산세를 어느 정도 조감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12시 40분 주차장에 도착, 8시간의 능동산-천황산-재약산의 연속등반을 모두 마쳤습니다.


사자평의 억새밭을 제대로 보지 못하여 아쉬웠지만, 저는 그 사자평이 산에 있기에 찾은 것이지, 강가의 갈대밭이라면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설사 억새 밭이 없어지더라도 산에 있는 고원이기에 다시 사자평을 찾을 것입니다. 여름에 설악산을 찾고, 봄에 내장산을 오르는 것은 눈 덮인 겨울의 설악만이 설악이 아니고, 내장산은 단풍이 없어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자평의 억새를 잘 보존하기 위하여 옛 날에는 매년 한번 억새 밭을 태웠다고 합니다. 그 태움을 멈춘 후 억새의 키가 낮아지고 잡목이 침범하여 억새 밭의 아름다움이 덜해졌다는 설명을 듣고 저는 안심했습니다. 야생동물에 먹이를 주면 야성을 잃어 버려 멸종된다 합니다. 야생초 또한 사람들이 지나치게 보호하고자 하면 야생식물로서 끈질긴 생명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거센 바람에 키를 낮추고 잡목과의 터 싸움에서 견뎌낸 억새가 숲을 이룬 사자평의 참 모습이 어떠할까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보이는 것만 믿는다면 어제의 능동산-천황산-재약산의 연속산행은 무엇하나 제대로 보지 못해 실패한 산행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러나 산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은 보이지 않는 것도 믿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산을 오르기에 나름대로 모두들 즐겁게 산행을 마쳤으리라 생각되어 기쁜 마음으로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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