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21.황악산 산행기(1-2)

시인마뇽 2007. 1. 2. 18:45

                                               황악산(2)

 

                           *산행일자:2010. 3. 28일(일)

                           *소재지   :경북김천/충북영동

                           *산높이   :황악산1,11m

                           *산행코스:직지사 정류장-직지사-입산통제소-운수암-백두대간주능선2번지점

                                          -황악산정상-형제봉-신선봉-망월봉-직지사-직지사 정류장

                           *산행시간:11시4분-18시32분(7시간28분)

                           *동행      :나홀로

 

 

   경북 김천의 황악산을 올랐다가 하산 길에 동국제1의 가람이라는 직지사(直指寺)를 들렀습니다. 서력418년 고구려의 스님인 아도화상이 신라 땅에 불법을 전하고자 지은 이 절이 직지사(直指寺)로 불리는 데는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따왔다는 설과 아도화상께서 손가락으로 황악산을 가리키며 명당 터를 일러준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 등 두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황악산 너머로 해가 넘어갈 즈음 둘러본 직지사 경내는 수많은 관람객들로 북적댔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직도 절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법고소리를 듣는데 있기라도 한 듯 북 소리가 울려 퍼지자 주변에서 경내를 둘러보던 사람들이 하나 둘 범종각 앞마당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범종각 안에 걸려 있는 범종, 목어, 운판과 법고를 사물이라 부릅니다. 사물 중에서 스님들이 가장 먼저 울린 것은 법고였습니다. 저녁 예불을 알리고자 스님 두 분이 번갈아가며 커다란 북을 치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던지 배낭차림의 외국인 여인이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보았습니다. 한 젊은 스님이 이 여인에 영어로 법고를 설명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인 즉 산속의 동물들이 이 소리를 들으면 평화를 느낀다 했습니다. 온 힘을 다해 북을 치는 젊은 스님을 보고 북소리는 아마도 이 소리를 듣고도 평화를 느끼지 못해 고심하는 스님의 번뇌와 그 크기가 비례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범종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종각 뒤로 돌아가 스님께서 종을 치는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봤습니다. 큰 나무통을 옆으로 들어 올렸다가 손을 놓으면 나무통이 종을 쳐 중후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데, 울림의 시간이 30초를 넘지 않은 것은 범종 바로 아래 종소리를 흡수할 큰 홈을 파놓아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33번의 타종으로 연 이어지는 중후한 울림이 육계33천에 두루 미쳐 이 소리를 듣는 중생 모두가 제도를 받는다 하니 바로 옆에서 지켜본 제가 먼 훗날 지옥에 빠진다 해도 틀림없이 제도를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운판을 두들겨 소리를 내는 것은 새들을 부르기 위해서이고 매달아놓은 목어를 두들기는 것은 나머지 수생물(水生物) 즉 물고기를 불러내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스님께서 말씀 주셨습니다. 사물의식을 다 끝내고 스님께서 자리를 뜨자 20분여 소리에 빠져 꼼짝 않던 외국인 여인도 자리를 떴습니다.

 

 

  중생인 저는 산을 자주 오르는 편이어서 산 속에서 짐승들과 새들을 자주 만나고 계곡에서 물고기들도 드물게 만나봅니다. 제가 이제껏 이들과 평화를 이루며 화목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매일 이런 의식을 올리는 스님들 덕분이다 싶어지자 이제껏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부처님 앞에서 제대로 예를 갖추지 않은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11시4분 직지사 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버스에서 하차해 매표소로 이동하는 도중 공짜로 받아 먹은 밤 한 톨이 감칠 맛을 내 아예 한 봉지를 사 넣었습니다. 직지문화공원 왼쪽 길을 따라 올라가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어갖고 직지사경내로 들어섰습니다. 이번산행이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산행이어서 오름 길보다는 하산 길에 느긋하게 경내를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 싶어 일주문에 이르기 조금 전에 왼쪽의 넓은 시멘트 길로 들어서 직지사를 비껴갔습니다. 왼쪽으로 은선암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조금 지나 넓게 자리 잡은 부도전(浮屠殿)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부도들을 앉힌 저 넓은 터가 결국은 돌아가신 스님들을 모실 전용 묘지로 쓰일 터인데 그리할 것이 아니라 단 한 평의 땅도 필요 없는 수목장으로 모시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1시44분 입산통제소를 지났습니다. 부도장에서 4-5분가량 걸어 황악산 정상을 4Km 남겨놓은 입산통제소에 다다랐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등산로안내도를 유심히 살펴본 즉 웬만한 길들은 거의 다가 상수원보호를 이유로 폐쇄되었는데 제가 이번에 오르는 코스는 온전하게 열려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다리를 건넌 후 명선암, 중암과 백련암 가는 길이 차례로 왼쪽으로 갈리는 삼거리 세 곳을 지나 운수암에 이르기까지 딱 한 번 노란 양지꽃(?)을 보았습니다. 다른 해 이맘때라면 연분홍 진달래나 생강나무 노랑꽃 등이 여기 저기 피어 있을 텐데 이번에는 산길에서 양지 꽃 이외에 어느 꽃도 만나보지 못해 봄나들이가 많이 무색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길은 해발고도가 400m 대에 자리한 운수암에서 끝났습니다. 산 속 깊은 곳에 산허리를 잘라내고 시멘트 차도를 내 동물들의 삶을 위협하는 일들을 못하게 막았다면 도룡농의 서식지를 파괴한다고 천성산 터널 공사를 목숨 걸고 저지한 한 스님의 진의가 어느 정도 중생들에 먹혀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수신제가(修身齊家)가 비록 공자님의 가르침이라 해도 속세에서 출가한 스님들도 귀담아 들을만한 것이다 싶었습니다.

 

 

  12시56분 백두대간주능선 2번지점에 다다랐습니다. 운수암에서 백두대간주능선2번지점으로 오르는 길은 많이 가팔랐습니다. 운수암에서 서쪽으로 조금 옮겨 만난 철조망을 비껴가 오른 쪽 위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올랐습니다. 해발고도를 200m가량 높여 대간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통나무계단과 과 철제계단으로 이어져 두 무릎이 더 힘들어했습니다. 백운봉과 운수봉 사이의 안부인 2번 지점에서 점심을 들면서 5년 전 한여름에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여기 안부에서 1시간 여 편안하게 쉬었던 일이 기억났습니다. 그때 그늘을 만들었던 나뭇잎들은 다 사라졌지만 산줄기는 그대로여서 안부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이 눈에 익었습니다. 해발고도를 700m대로 높이자 동사면의 흙길이 많이 질었고 다시 800m대로고도를 올리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보였습니다. 벤치 4개가 세워진 쉼터를 거쳐 13시49분에 “황악산1,070m” 이정표를 지났습니다.  

 

  14시33분 해발1,111m의 황악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정상을 1,070m남겨 놓은 "황악산1,070m” 표지판 앞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은 주로 통나무 계단 길이었습니다. 왼쪽 아래로 직지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백운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겨우 내내 골바람에 밀려 올라온 눈이 쌓여 눈 언덕을 이룬 능선에서 이정표의 표시대로 왼쪽 길로 올라가 눈이 녹아 질펀한 늪지(?)에 다다랐습니다. 곤천산 길이 오른 쪽으로 갈리는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1-2분 걸어 정상에 올라서자 사방이 탁 트여 주변 풍경들이 시원스레 보였습니다. 북쪽 멀리로 속리산과 남동쪽 멀리로 가야산이 보였고 남서쪽으로 민주지산과 그 너머로 덕유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날씨가 쾌청했고 모두가 몇 번은 올라가본 산이어서 이미 눈에 익은 터라 더 잘 보였을 것입니다. 바람이 세게 불고 냉기가 느껴져 정상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곧바로 신선봉을 향해 자리를 떴습니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따라 걸으며 안부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 형제봉에서 잠시 쉬며 사진을 찍는 동안 부부 한 팀이 저를 앞질렀습니다.

 

 

  15시54분 해발944m의 신선봉에 올라 5-6분가량 쉬었습니다. 형제봉에서 오른 쪽 아래로 충북 영동의 매곡면에 위치한 강진저수지가 보였습니다. 수 년 전에 인기리에 상영된 영화 “집으로”의 주인공 할머니가 실제 사시는 마을이 강진저수지에서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느 마을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형제봉에서 신선봉갈림길까지 이어지는 대간 길도 정상에서 형제봉까지 이어지는 길처럼 음지 땅은 여전히 질퍽거렸고 더러 더러 잔설이 남아 있어 봄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신선봉갈림길”표지목이 세워진 995봉에서 남쪽으로 내달리는 대간과 헤어지고 왼쪽으로 확 꺾어 신선봉으로 향했습니다. 안부로 내려서면서 오른 쪽 아래로 자주 눈이 간 것은 대간 길의 바람재가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보기 드물게 넓은 평원의 바람재를 동서로 넘나드는 것은 바람이고 이 바람을 못잊어 하는 사람들은 안부인 이 고개를 남북으로 지나는 백두대간 종주꾼들입니다. 저 또한 5년 전 한 여름에 이 고개에서 한참 동안 땀을 식힌 후 대간 종주를 이어갔습니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 925봉에서 보다 가까워 진 가야산 산줄기를 조망한 후 그리 깊지 않은 안부를 거쳐 신선봉에 올라서자 직지사가 3Km 남았음을 알려주는 표지봉이 보였습니다. 벤 취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린 후 왼쪽으로 방향을 확 틀어 직지사 길로 내려섰습니다.

 

 

  17시19분 은선암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995봉에서 신선봉으로 오르며 능선 왼쪽의 사면에 눈이 쌓여있는 것을 보고 신선봉에서 직지사로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겠다 했는데 걱정했던 눈은 보이지 않았고 길 또한 미끄럽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가파른 통나무 계단 길을 걸어 신선봉 출발 40분 후 내려선 쉼터 안부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능여골 계곡을 보고자 했으나 길을 폐쇄해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똑바로 진행했습니다. 안부에서 직진해 다다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몇 걸음을 옮겨 해발597m의 망월봉에 올랐습니다. 잠시 망월봉에 머무르며 북서쪽으로 우람해 보이는 황악산 정상을 사진 찍은 후 경사가 급해 S자로 통나무 계단 길을 낸 능선을 따라 한참 동안 내려가 시멘트 길로 들어섰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자 오전에 지났던 은선암 갈림길이 나타났습니다. 5시간 40분 만에 되돌아온 은선암 갈림길에서 오른 쪽 아래로 내려가 직지사 경내로 들어갔습니다.

 

 

  18시32분 직지사 버스정류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혹시라도 저녁 6시가 지나면 경내 출입을 막을까보아 하산을 서두른 결과 생각보다 일찍 직지사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1592년에 발발된 조일전쟁 때 의승병을 조직해 승병장으로 명성을 떨친 사명대사께서 출가하시고 득도하신 곳이 바로 이 직지사입니다. 대사의 유덕을 기리고자 영탱을 봉안한 사명각을 둘러본 후 비로전(毘盧殿)으로 옮겼습니다. 고려태조 때의 명승인 능여조사께서 처음 세운 비로전은 나중에 천불상이 봉안됨으로써 천불전으로도 불리는데 천개의 불상 중 발가벗은 동자상이 첫 눈에 띄면 아들을 낳는 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합니다. 석가모니불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아미타래여불과 약사여래불을 앉힌 대웅전은 절의 규모에 비해 조금은 작아 보였습니다. 봄이 내려 앉아 산수유 노랑꽃이 만개한 직지사 경내를 둘러보다가 20분여 머문 곳이 범종각(泛鐘閣) 앞이었습니다. 때마침 저녁 예불시간임을 알리는 범종 소리가 울려 퍼져 산 속의 모든 소리가 이 소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직지사를 빠져나가 직지사 문화공원을 들렀습니다. 깔끔하게 잘 다듬어진 공원에 전시된 조각 작품들을 둘러본 후 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가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저 혼자서 아무도 다니지 않는 산줄기를 종주할 때는 야생짐승들이 쇠 소리를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자주 스틱으로 바위를 쳐 쇳소리를 내곤 합니다. 산 속의 멧돼지에 저와 맞닥뜨리기 전에 알아서 피해 길을 내달라는 묵언의 압력인 것입니다. 제가 내는 쇳소리는 불협화음이지만 범종이 내는 소리는 천상의 화음이어서 같은 쇳소리라 해도 듣고 난 후의 감흥이 전혀 다릅니다. 천상의 화음은 지옥중생을 제도하는 데 제가 내는 불협화음은 짐승들을 성질 돋우게 할 뿐입니다. 저는 이제껏 산을 오르내리면서 스틱소리 외에도 더 많이 불협화음을 냈을 것입니다. 번뇌를 다스려야 득음할 수 있는 것이라면 속세을 살고 있는 제가 화음을 내는 일은 더욱 요원한 일입니다. 화음을 내는 것이 영영 어렵다면 불협화음만이라도 내지 말고 산행해야 산 속의 주인들인 짐승들과 산 새들이 저를 산 식구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느 산이든 아니 간 듯 다녀올 뜻입니다.

 

 

 

 

                                                                  <산행사진>

 

 

 

 

 

 

 

 

 

 

 

 

 

 

 

 

 

 

 

 

 

 

 

 

 

 

 

 

 

 

 

 

 

 

 

 

 

 

 

 

 

 

 

 

 

 

 

 

 

 

 

 

 

 

 

 

 

 

 

 

 

 

 

 

 

 

 

 

 

 

 

 

 

 

 

 

 

 

 

 

 

 

(맞는 말 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지나가면 멧돼지가 먼저 피한다고는 하더라구요..
그치만 간간히 멧돼지 목격한 산님들이 있으니...
하지만 멧돼지는 자신을 해하려 할 때만 덤비는 것 같더군요..
설사 멧돼지가 덤벼들면 잘 보고 있다 한쪽으로 살짝 비키면...
각도를 꺽지 못하고 지나쳐 가버린다는... ㅎ
저두 점봉산에서 멧돼지 떼(5~6마리)를 마주 했었는데...
횡단하며 도망가버리던데요~~
당시에 땅이 주너질 것 같고... 그 굉음은.... ㅎ

저는 뱀을 젤로 무서워 한답니다...
선배님 항상 안산 즐산 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여러번 멧돼지를 만났지만 그들이 먼저 피했습니다. 다만 비가 내릴 때는 접근하지 말라고 큰 소리로 울어대 빙 돌아 지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아직도 멧돼지가 공포의 대상인 것은 제가 멧돼지에 가슴을 열어놓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뱀은 어렸을 때 하도 자주 보아서 징그럽기는 해도 멧돼지보다는 덜 무서운 편입니다. 님께서도 안산, 즐산하시기 바랍니다.
  • 계백
  • 2010.04.06 09:14

희망차고 힘차게 경인년(庚寅年)이 시작한지도 어느덧 100일이 가까워지며,
봄(春)이 무르익어 새순이 움트고.
봄꽃(동백, 유채꽃,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들의 향연으로 들뜬 우리들의 마음에 경고하듯,
대한민국 막강해군 '천안함'의 원인모를 침몰과,
'삼호드림호'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대한민국 유조선등 해양사고로
나라 안이 시끄럽습니다.
국가의 난제들이 순조롭게 풀려나가길 발원하오며,
오랜만에 존경하는 마음에서 안녕을 여쭈며 활기찬 봄맞이를 비옵니다.

저희 나라가 커지면서 "삼호드림호 피랍" 같은 생각지 못한 사건사고도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ㅇ여기에다 아직도 종전이 아닌 휴전상태여서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일진데 만반의 대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 준위 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이 나라가 발전했다 싶어지자 싸움박질만 하는 정치권에 대오각성을 주문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제 조국이라는 사실이 엄청 자랑스럽습니다.

 

 

 

                                                    황악산(1)

 

                     *산행일자:2005. 8. 13일

                     *소재지  :경북김천/충북영동

                     *산높이  :황악산 1,111미터

                     *산행코스:우두령-1030봉-바람재-황악산-운수봉-궤방령

                     *산행시간:10시-17시52분(8시간52분)

                     *동행      :나홀로

                                             

 


  된 새벽부터 서두른 덕분에 우두령에서 아침 10시에 대간 종주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전날 밤 옛 직장동료와 맥주를 많이 마신 터라 예정했던 우두령-황악산-궤방령 구간종주를 다음 주로 미루어 놓았는데 새벽 4시에 잠이 깨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혹시 무슨 방법이 없을 까 하고 교통편을 검색해 보았더니  마침 6시40분에 강남터미널을 출발해 9시10분 경 황간을 들르는 김천행 고속버스가 있어 부지런히 산행을 채비했습니다. 황간에서는 택시로 우두령까지 옮겨 시간을 벌었습니다. 임산리까지는 서울의 양재에 사신다는 50대의 부부 두 분이 어르신네 생신으로 고향 가는 길이라 하여 5천원에 편승했고, 내친 김에 기사분에 만원을 더 주어 우두령 고개마루까지 편하게 갔습니다.


  10시 정각 해발 720미터의 우두령을 출발했습니다.

경북김천의 구성면과 충북영동의 흥덕면을 잇는 우두령은 2차선의 포장도로인데 노선버스가 없어 이 고개를 오르려면 흥덕면의 흥덕리나 구성면의 마산리에서 1시간 이상 걸어 올라와야 합니다. 생태다리를 놓느라 부산한 고개마루에서 들머리로 올라서니 참나무 숲이 울창했고 바로 헬기장이 나타났습니다. 우두령에서 870봉에 이르기까지 27분간의 산 오름이 그리 힘들지 않은 것은 영동 쪽에서 꾸준히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주었기 때문입니다.


  11시5분 986봉에 올랐지만 나무들로 시야가 가려 답답하기는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삼각점을 확인하고 이 곳에서 짐을 풀고 1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870봉에서 986봉까지 능선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바람도 시원해 걸을 만 했는데 키를 넘는 길섶의 억새들과 싸리들이 산행을 더디게 했습니다. 986봉에서 1,030봉까지 한 봉우리만 살짝 옆 질렀고 나머지 봉우리는 모두 마루 금을 탔기에 영동 쪽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이 막힘없이 그대로 전해져 정말 시원했습니다. 물푸레나무가 빽빽이 들어 선 능선을 지나자 곧바로 비를 뿌릴 듯한 먹구름이 영동 쪽에서 하늘을 덮기 시작해 불안했는데 이내 김천 쪽으로 빠져나가 안심이 됐습니다. 왼쪽 뒤편 먼발치에 4년 전 큰 처남과 함께 오른 삼도봉-석기봉-민주지산의 산줄기가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986봉에서 44분을 걸어 1030봉에 다다랐습니다.

지도상에 없는 이 봉우리 이름이 여정봉이라 하는데 여정의 한자가 여행일정의 축어인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최근에 지어 걸어놓은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1030봉에서 오른 쪽으로 난 내리막길을 택해 10분을 내려와 임도로 내려서기 직전에 정성스레 카메라에 야생화를 담고 있는 몇 분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이제껏 보지 못한 야생화의 이름을 물어 “자주꽃방망이”임을 확인했습니다. 이분들은 야생화 사진 찍기의 동호인 모임인 인디카 멤버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면서 홈피주소를 알려주었습니다. 통신중계소를 우회해 임도를 따라 걷다 또 다른 인디카 회원 분을  만나 노랑꽃의 마타리와 참취나물의 흰꽃의 이름을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임도에서 산길로 다시 들어 깨끗하게 자란 억새밭을 헤치며 바람재로 내려섰습니다.


  12시36분 헬기장이 들어선 바람재에서 점심을 들면서 반시간을 쉬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바람재는 바람의 통로여서 다른 곳보다 훨씬 시원했고 기분도 삽상했습니다. 어느 기업의 목장이 들어선 김천 쪽의 대초원이 시원스레 보였고 그 반대쪽으로는 깊숙한 산골짜기까지 도시문명을 전파해주는 도로가 눈에 띄었는데 그 길이 바로 영화 “집으로”의 배경이 된 하늘동네인 지통마 마을로 연결되는 길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할머니가 평생을 살아온 하늘동네를 떠나 어딘가로 옮겨 숨은 것은 이 길을 따라 할머니 집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라니 길이 실어 나르는 문명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시5분 바람재를 출발해 산 오름을 이어갔습니다.

비 온 뒤끝에 이글거리는 태양이 한 낮의 수은주를 한껏 높여놓았을 터인데 산 오름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은 것은 쉼 없이 영동 쪽에서 불어대는 골바람 덕분이었기에 간혹 산봉우리 오른쪽으로 우회 시에는 바람이 막혀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바람재 출발 27분 후에 신선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여기서부터 운수봉직전의 안부까지는 재작년 9월 회사의 영업사원들과 함께 직지사를 출발해 황악산에 오른 다음 신선봉을 거쳐 직지사로 하산하느라 한번 와본 길이어서 반가웠습니다.


  14시14분 해발1,111미터의 황악산 최고봉인 비로봉에 올라섰습니다.

삼거리에서 반시간 남짓 걸어 형제봉을 지나 황악산을 대표하는 비경의 능여계곡으로 하산하는 갈림길에 다다르자 급경사로 동절기에는 위험하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황악산 정상에 이르기 까지 이 산 특유의 억새밭길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황악산은 어디를 보아도 악산으로 이름 붙일 만한 암벽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육산입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와 직지사 현판에 적혀있는 대로 황악산으로 불리는 이산에는 차라리 학들이 많이 날아든다 하여 불렸다는 황학산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상에 올랐어도 나무로 시야가 가려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상에 세워진 백두대간 안내판에 1대간, 1정간과 13정맥에 10강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황악산에서 조금 내려서자 오른 쪽으로 김천벌이 한눈에 조망되었습니다. 정상에서 15분을 내려와 전망바위를 들렀더니 며칠 전에 오르내린 추풍령-큰재의 대간 길이 어렴풋이 조망되었습니다. 금산에 이어진 용문산과 국수봉을 한 줄로 꿴 산줄기가 눈에 들어 왔고 오른 쪽으로 조금 비껴선 난함산도 먼발치로 보였습니다. 전망대에서 10분을 못 걸어 능선 길 그늘진 곳에서 짐을 내려놓고 쉬면서 차편을 확인하니 궤방령과 가까운 천덕에서 4시 반에 영동으로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 그 버스를 타고자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15시16분 운수봉에 오르기 직전의 갈림길에서 하산 길을 멈췄습니다.

이 갈림길은 직진하면 대간 길인 운수봉이고, 오른쪽으로는 직지사 가는 길이, 왼쪽으로는 어둔리로 내려가는 길이 나 있고 황악산에서 2.26키로 하산하면 닿는 사거리의 십자안부입니다. 갈림길에서 시간을 체크해보니 아무리 서둘러도 천덕에서 4시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하산 길을 멈추고 벤치가 세워져 있고 활엽수들이 햇빛을 가리는 더 할 수 없이 훌륭한 사거리 쉼터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다음 버스는 6시20분에 있어 대간 종주 중 처음으로 느긋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었기에 양말과 남방을 벗어 바람맞이 채비를 단단히 한 후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이제까지의 대간종주를 반추했습니다. 처음부터 계획을 제대로 세워 지리산의 천왕봉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진행해왔으면 좋았을 것을 작년에 이 구간 저 구간을 조금씩 집적대다가 올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하느라 땜 방 산행이 너무 많았으며, 그래서 대간 종주가 끝난 후 제 산행기를 모으면 종주 날자가 뒤죽박죽될 것이 틀림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대간 종주에서 처음 해본 것은 책읽기입니다.

집 근처 산을 오를 때에는 쉬는 시간에 책을 읽곤 했습니다만, 대간 종주 시에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어 갖고 간  책을 꺼내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시간이 남아돌아 반시간 남짓 서병국 교수가 지은 “발해제국사”를 정독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하여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국 임을 논증하고자 애쓴 이 책을 읽어가며 고구려보다 더 넓은 국토를 가졌던 발해를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시5분 오랜 쉼을 끝내고 궤방령으로 향했습니다.

쉼터를 출발해 8분 만에 해발 668미터의 운수봉에 올랐는데 오른 쪽과 왼쪽 길 모두 표지리본이 걸려있어 헷갈렸습니다. 왼쪽 길이 제 길이어서, 오른 쪽 길에 걸어 놓은 표지리봉을 빨리 없애야 더 이상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 없을 것 같습니다.


  16시57분 운수봉에서 올망졸망한 봉우리 4개를 넘어 여시골산에 다다랐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소나무는 황악산에 오르기까지 전혀 보지 못했고 황악산 정상과 하산 길 몇 곳에서 간간히 몇 그루를 보았을 뿐인데 운수봉에서 여시골산에 이르는 능선에서는 작은 소나무들이 꽤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이곳에서 약해진 햇살로 더욱 시원스럽게 느껴지는 골바람을 맞으며 십 수분동안 책읽기를 이어갔습니다.


  17시52분 해발 310미터의 궤방령으로 내려서 8시간 가까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궤방령은 제가 작년 1월 대간 종주를 처음 시작한 곳입니다. 한 안내산악회에서 가성산과 눌의산을 오른다 하여 대간 종주인지도 모르고 따라 나선 것이 대간 종주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작년 한해 조령3관문-하늘재, 천황봉-노고단, 육십령-빼재, 한계령-마등령구간과 갈령삼거리-조항산구간 등을 종주했습니다. 올 들어 본격적으로 대간 종주에 나서기 시작해 어제야 비로소 우두령에서 싸리재까지의 구간들을 빠짐없이 밟았습니다.


  낮 시간이 긴 여름이 가기 전에 못 다한 남원의 매요마을에서 육십령까지 3구간과 빼재에서 우두령까지 3구간을 마저 뛰어 일단 천황봉에서 싸리재까지의 대간 길을 모두 밟은 다음 싸리재에서 차분히 북진할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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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악산(A)

 

*산행일자:2003. 9월

*산행코스:직지사 입구-황악산-직지사

*동행 :하모라 부산영업소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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