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23.비슬산 산행기(1-2)

시인마뇽 2007. 1. 2. 20:23

                                  비슬산 (2)


 

        *산행일자:2008. 4. 12일(토)

        *소재지  :대구/경북청도

        *산높이  :비슬산1,084m, 청룡산794m, 앞산660m

        *산행코스:헐티재-비슬산-청룡산-앞산-앞산공원케이블카승강장

        *산행시간:9시42분-18시57분(9시간15분)

        *동행    :대구 임상택, 권재형님/ 서울 범솥말, 조부근, 성봉현님 및 시인마뇽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공자님이 더욱 즐거웠던 것은 아마도 가까운 곳이 아닌 먼 곳에서 온다는 것과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친구가 찾아오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만나는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찾아온 데서야 공자님인들 그리 즐겁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도 “가까운 곳에서 악동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말씀은 남기시지 않았습니다. 

 

  먼 곳에서 찾아온다하니 그동안 자주 오지 않아 더욱 반가웠을 것이고 또 오랜 시간 묵혀놓은 뉴스가 무엇인지 퍽이나 궁금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새 소식을 유통시킬만한 것이 이렇다하게 없던 옛날에는 입소문이 최고의 매체였기에 믿을만한 친구로부터 소식을 듣는 것은 바로 반가움이자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뉴스라고 다 복음(good news)이 아닙니다. 뉴스는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이어서 좋은 뉴스(good news)도 있고 나쁜 뉴스(bad news)도 있습니다. 좋은 뉴스는 좋은 친구가 전해줍니다. 친구가 전해주는 좋은 뉴스는 이내 유용한 지식과 지혜로 변환되어 축적될 것입니다.  믿을 만한 친구가 오랜 시간 쌓아온 좋은 뉴스를 전하고자 찾아온다는 데 공자님 같은 성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기뻐했을 것입니다.


 

  넉 달 만에 대구의 산형들을 만나 헐티재-비슬산-앞산의 청룡지맥 산줄기를 함께 걸었습니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요즈음은 넉 달이면 서로의 소식을 궁금해 할 만큼 충분히 긴 시간이고 대구 정도면 고속전철개통으로 오고가는 시간은 많이 단축됐지만 심리적으로 느끼는 거리감은 아직도 여전해 먼 곳으로 칭해도 그리 억지소리는 아닐 것입니다.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라는 말씀을 주신 분도 바로 공자님이십니다.  산을 끔찍이도 아끼는 저희들은 좋은 친구임에 틀림없기에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 가?”라는 공자님 말씀을 “먼 곳으로 친구를 찾아가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바꿔놓는다 해서 크게 꾸중들을 일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 아침6시25분 서울역을 떠나는 대구행 고속전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8시 조금 지나 동대구역에서 하차하자 작년5월 팔공산을 함께 오르내린 임상택님과 권재형님이 저희들을 맞아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이분들 차로 들머리로 이동하는 중 아침식사를 하느라 9시 반이 막 지나 902번 지방도가 지나는 헐티재에 도착했습니다. 육상교통의 총아로 등장한 고속전철 덕분에 서울에서 대구까지 2시간이 채 안 걸릴 만큼 이동시간은 엄청 단축됐는데도 심리적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이번에도 아주 먼 곳으로 산 나들이를 떠날 때처럼 설레여  밤새도록 잠을 설쳤습니다.


 

  아침9시42분 헐티재를 출발했습니다.

경북청도와 대구달성을 가르는 헐티재는 해발고도가 500m가 넘어서인지 아침공기가 제법 찼습니다. 한북정맥을 매개로 만나 대구와 서울을 번갈아 오가며 함께 산행하는 저희들 모두가 각자 웬만큼 산행을 해온지라 잔뜩 찌푸린 하늘과 쌀쌀한 날씨에 괘념치는 않았지만 여기보다 배가 높은 비슬산 정상 부근의 참꽃들이 냉랭한 공기로 만개가 늦어지는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였습니다.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 제법 가팔라 50분간 쉬지 않고 오르자 등 뒤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10시32분 삼각점이 세워진 778.1봉에 올랐습니다.

산줄기를 오르내리며 숱하게 보아온 삼각점이 어떤 정보들을 담고 있는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성봉현님의 설명으로 이번에 처음으로 도엽명과 등급, 그리고 연번이 삼각점에 새겨져 있음을 알았습니다. 용천사로 갈리는 안부로 내려서자 빽빽이 들어선 참꽃나무들이 참꽃은 한 송이도 피우지 못하고 회색의 줄기만을 그대로 내보여 철지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워보였습니다. 두 해전에 참꽃 축제가 끝나는 4월19일에 이 산을 올랐는데도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아 실망을 했었는데 그 때보다 한 주 빠르게 이 산을 오르면서 참꽃이 만개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망각이 빚어낸 욕심이다 생각하자 서운함과 아쉬움이 많이 덜어졌습니다.


 

  11시37분 대삼각점이 서있는 해발1,084m의 비슬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용천사갈림길에서 20분을 더 걸어 소재사로 내려서는 길목에 올라서자 “헐티재3.8Km"의 표지목과 돌탑 몇 개가 보였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 헬기장과 억새밭을 차례로 지난 후 비슬산 정상인 대견봉에 다다랐습니다. 저 아래에서 벚꽃을 활짝 피운 기세등등한 봄도 이 산 정상에서 버티고 있는 겨울을 밀어내기는 역부족인 듯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견봉에서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던 것은 참꽃들이 피건 말건 관계치 않고 그저 비슬산이 좋아서 오른 산객들이 많아서였습니다. 비슬산의 진달래가 개 꽃이 아니고 참꽃이라 불리는 것이 어느 때고 오르면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그런 흔한 꽃이 아니기 때문이라면 겨우 두 번을 오르고서 보지 못했다고 투덜댈 일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비슬산을 출발해 암릉길을 걷다가 오른 쪽으로 내려가 왼쪽 아래 김흥리로 내려서는 안부삼거리에 다다르기까지 1.8Km를 걸었습니다.


 

  12시50분 880봉을 막 넘어 우씨묘지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옥포김흥 갈림길에서 5-6분간 걸어 올라선 마치 갓을 올려놓은 것 같은 암봉에서 13분을 내려가 용연사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안부에 이르렀습니다. 삼거리안부에서 낙엽이 길을 덮은 참나무숲길을 올라 삼각점이 서있는 880봉에 다다랐습니다. 880봉에서 조금 내려가 앞서간 일행들과 함께 우씨묘지 앞에서 짐을 풀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날씨는 여전히 우중충했지만 한자리에 모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든 점심은 더 할 수 없는 성찬이었습니다. 밥과 떡, 그리고 빵에다 후식으로 방울토마토와 포도로 배를 채우며 30분 넘게 푹 쉰 후 13시22분에 자리에서 일어나 청룡산으로 향했습니다.


 

  14시20분 된비알 길을 올라 무명봉에 다다랐습니다.

비슬산 대견봉을 출발해 웬만한 봉우리들은 거의 다 우회를 해 오르내림이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용문사 갈림길 안부에서 무명봉에 올라서는 15분간의 산 오름이 힘들었습니다. 우씨묘지에서 20분 남짓 걸어 헬기장을 지난 후 20분을 채 못 걸어 청룡산6.0Km 전방인 옥포반송으로 길이 갈리는 봉우리사거리에 올랐습니다. 또 다른 봉우리를 왼쪽으로 에돌며 모델을 자청한 범솥말님의 땅바닥에 놓인 예쁘장한 안내판을 들고 서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갈림길 안부가 꽤 깊다 했는데 오름길도 꽤나 가팔랐습니다. 중력에 반하는 산 오름에 특별히 힘들어하는 것은 과체중 때문인지 뻔히 알면서도 몸무게를 줄이지 못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저를 뒤따르며 후미를 맡은 성봉현님에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길섶 여기저기에 노란 양지꽃(?)이 함박웃음을 머금고 있어 오름 길이 마냥 힘든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참나무토막들이 네모꼴로 가지런히 놓인 무명봉에 올라 잠시 숨을 고른 후 마비정으로 길이 나뉘는 안부에 닿아 샘물을 떠 마신 후 솔밭 길을 걸어 망부석이 서있는 꽤 넓은 묘지에 다다른 시각이 15시9분이었습니다.


 

  16시9분 해발794m의 청룡산을 올랐습니다.

묘지를 지나 얼마 후 권재형님은 헐티재에 주차해둔 차를 앞산공원의 하산지점으로 옮겨 놓고자 오른 쪽 정대로 먼저 하산했고 남은 다섯 명만 청룡산으로 향했습니다. 이정표가 세워진 정대 갈림길에서 편안한 길을 걷는 동안에는 이번 산행 중 마지막 깔딱 길이라는 청룡산의 산 오름이 별 것 아니다 했는데, 이는 희뿌연 구름에 가린 청룡산 정상이 보이지 않아 잘 못 판단한 것으로 이내 산 오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해발고도를 150m이상 높여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제우스신보다 못하지 않는 청룡의 심술이 이 산에 짙은 구름을 불러 모아 제대로 조망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후다닥 기념사진을 한방 찍고 앞산으로 향했습니다. 정상에서 20분을 북진해 안개에 둘러싸인 소나무들이 신비롭게 보이는 수직 암봉을 옆으로 지나 나무뿌리가 그대로 드러난 능선에 다다라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17시50분 안부사거리인 달비고개에 다다랐습니다.

능선에서 10분 넘게 걸어 도착한 삼거리에서 10분여 쉰 후 직진해 내려가다가 길이 아닌 것을 알아챈 임상택님을 뒤따라 삼거리로 원위치하는 데 다시 10분이 걸렸습니다. 안개가 옅게 깔린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난 달비고개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길도 넓고 높낮이가 별로 없어 마냥 편안했습니다. 산성산이 빤히 보이는 달비고개는 청소년수련원과 수밭고개 양쪽으로 길이 분기되는 사거리안부로 여기에서 앞산과 산성산 가는 길이 나뉘는 능선삼거리에 오르는데 12분이 걸렸는데 차를 옮겨놓느라 먼저 하산한 권재형님이 다시 올라와 저희들을 맞으면서 19시에 마지막 케이블카가 떠난다 하여 지척의 산성산을 들르지 못하고 바로 왼쪽으로 꺾어 앞산으로 향했습니다.


 

  19시6분 앞산공원의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능선 삼거리에서 시멘트 길을 따라 얼마고 걷다가 왼쪽 산길로 들어선 후 나무계단 길을 올라 헬기장에 다다랐습니다. 해발660m의 앞산 정상은 군부대가 점하고 있어 오르지를 못하고 바로 아래에서 오른 쪽으로 우회해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향했습니다. 19시에 출발하는 마지막 케이블카에 올라 불빛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는 대구 시내를 조망하면서 하루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대구팀이 마련한 저녁회식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사패산의 귀신으로 불리는 조부근님이 의정부로 돌아가 다음날 산행을 준비해야 했고 저 역시 경주로 옮겨 남산을 오를 뜻이어서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감칠맛 나는 소고기생육으로 맛있게 저녁을 들었고 중간에 임채미님이 자리를 같이해 석별의 아쉬움을 덜었습니다.

 

  기대했던 참꽃은 피지 않았지만 22Km에 달하는 청룡지맥의 산줄기 종주를 깔끔하게 마쳤다는 기쁨에 가슴 벅찼습니다. 헐티재-앞산의 전 구간을 사전에 답사해 꼼꼼하게 산행을 준비한 임상택/권재형님과 나중에 저녁자리를 함께한 임채미님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발뒤축에 염증이 생겨 걷기가 불편한 두 발로 끝까지 종주한 범솥말님의 감투정신에 박수를 보냅니다. 대구팀과 더불어 줄곧 선두에 서서 팀을 이끌어준 조부근님과 그리고 걸음이 느린 제가 너무 뒤에 처지지 않도록 산행 내내 후미를 맡아온 성봉현님의 노고에도 감사말씀 올립니다.


 

  제게는 먼 곳에의 동경이 그동안 가보지 못한 산을 오르게 하는 추동력입니다.

먼 곳을 찾아 나선 서울 팀들, 그리고 먼 곳에서 저희들을 반긴 대구 팀들 덕분에 “먼 곳으로 친구를 찾아가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저의 패러디가 참임이 밝혀져 한껏 기뻐하며 이 글을 맺습니다. 

 

 

 

 

                                                           <산행사진>

 

비슬산(2)

 

*산행일자:2008. 4. 12일(토)

*산행코스:헐티재-비슬산-청룡산-앞산-앞산케블카승차장

*동행 :대구 임상택, 권재형님/서울 범솥말, 조부근, 성봉현님과 시인마뇽

 

 

 

松琳 통나무

2008.04.15 10:24

  • 답글대구가셔서 좋은 산우들과 함께하셨네요....대구앞산...제대후 현대자동차 복직후 서울오면서 박현출군과 앞산유원지에서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그리고 보기 어려운 장면을 두번씩 보았다는..
  • 시인마뇽
  • 2008.04.21 10:40
  • 추억을 삭히면 그리움이 됩니다. 먼 옛날에의 동경이나 먼 곳에의 동경 모두 본질적으로 같은 것은 다다르기 힘들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움은 또한 희망이기도 합니다. 다시 한번 옛친구들과 비슬산을 다시 올라보겠다는 희망을 키워가시기 바랍니다.

 


                                                  비슬산 (1)


*산행일자:2006. 4. 23일

*소재지 :대구달성/경북청도

*산높이 :1,084미터

*산행코스:유가사입구도로변-도통바위-비슬산-대견사지-수도골-유가사-주차장

*산행시간:11시1분-16시4분(5시간3분)


 

                                                      

  4월 한 달 늦은 즈음에 산 밑에서는 봄이여 빨리 가라고 등을 떼밀고 있고 산 위에서는 머뭇거리는 봄에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해발1,084미터의 비슬산을 찾았습니다. 대구시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을 어우르는 비슬산은 한반도 남단의 산 중에서 보기 드물게 광활한 약 30만평의 진달래 꽃 군락지가 정상 주위에 자리 잡고 있어 해마다 4월이면 참꽃 축제를 열어 불러들인 손님들을 모시느라 몸살을 앓아 왔다는데 어제도 그러했습니다. 먼저 온 수 많은 차량들로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어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봄의 한가운데로 나 있는 길을 걷는 동안 아스파트가 뿜어내는 열기로 초여름의 더위를 느꼈습니다.


  11시1분 유가사 주차장 전방 약 3키로 지점에서 하차하여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참꽃축제가 어제로 끝나가 전국 각지의 산악회들이 비슬산으로 모여들어 산 들머리로 완전히 들어서기까지 수많은 인파와 차들로 붐비고 어수선해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스팔트차도를 20분가량 걸어 유가사일주문을 지났고, 이어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극락교를 건넌 다음 오른쪽에 자리한 유가사 옆길로 계속 오르다가 얼마 후에 포장도로를 버리고 왼쪽으로 난 비슬산 들머리로 들어서기까지 다시 20분이 걸렸습니다.


  11시 40분 들머리에서 7-8분을 걸어 오르자 된비알의 나무계단 길이 시작됐습니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참꽃으로 더 알려진 진달래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뜻으로 이산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산객들이 꽤 넓은 산길을 꽉 채워 속도를 낼 수 없었지만 무릎에는 무리가 가지 않아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발 700미터 대에 이르자 산 밑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한껏 시원했습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난 나무계단 길을 오르다 암릉 길도 걸었고 너덜겅도 지나는 등 길지 않은 코스가 다양하고 아기자기해 걷기에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12시40분 비슬산 정상이 선명하게 잡히는 전망 좋은 바위에 당도해 목을 축이며 십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아스팔트길을 걷는 동안 느꼈던 초여름의 더위는 소리 없이 가시고 어느새 맑게 갠 하늘, 선선한 골바람과 회색의 겨울티를 씻어내는 연초록의 나뭇잎들이 어울러 펼치는 봄의 향연이 시작되어 이 산 정상에 만개한 진달래가 더해진다면 이봄 최고의 잔치가 될 것 같다는 기대로 부푼 가슴을 안고 자리를 떴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중 길섶에 피어 있는 샛노란 노랑제비 등 청아한 풀꽃들을 만나 서울의 봄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13시27분 해발 1,084미터의 비슬산 정수리에 올라섰습니다.

억새밭을 조금 지나 왼쪽의 용연사로 갈리는 삼거리에서 정상까지 10분 정도 걸리는 평평한 능선 길을 걸으며 아직도 꽃을 피우지 못해 애를 태우는 진달래를 보고 너무 일찍 이 산을 찾은 것이 아닌가 걱정을 했는데 정상에 올라 한바퀴 휘둘러보아도 제대로 만개한 꽃이 눈에 띄지 않자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도 제대로 꽃이 피지 않은 참꽃을 보러오라고 축제를 연 사람들의 무성의와 무능도 그러려니와 미리 현지사정을 확인하지 못한 산악회에도 서운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상에서 같이 오른 몇 분들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후 남서쪽으로 뻗어나가는 늠름한 산줄기를 보고나서야 아 이것이 비슬산의 참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방금 전까지 진달래꽃이 피지 않았다고 분개했던 저의 속 좁음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내장산을 단풍을 보러 가을에만 올라가고 대야산을 용추계곡에 발을 담그고자 여름에만 찾는다면, 또 선자령에는 눈길을 걸으려 겨울나들이만 나선다면 그를  진정 산을 아끼는 산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진달래꽃이 피지 않았다고 투정을 하는 것보다 그 명성에 가려진 비슬산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보는 것이 옳겠다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정상에 자리 잡은 바위의 모습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흡사하다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비슬산에 올라 저 묵직한 바위를 보고 섬세한 거문고를 떠올리는 선조들의 시심을 보지 못한 것도 진달래꽃만 찾아 오른 저의 좁은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정상에서 점심을 함께 든 한 분이 서울에는 큰 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열어놓은 된장독을 걱정하는 것을 보고 발효라는 과정을 거치는 우리의 고유음식 슬로우푸드가 그냥 손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천천히 그리고 착실하게(Slowly and Steadily)" 시간을 익혀가며 얻어지는 것이다 싶어서 저희들의 산행도 이와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시48분 20분 남짓한 달콤한 점심시간을 끝내고 남쪽의 대견사지로 향했습니다.

명산 순례는 대간을 종주할 때보다 긴장감이 덜 해서인지 자연 쉬는 시간이 늘어나고 몸놀림도 둔해졌습니다.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 B코스인 오른 쪽의 수성골로 갈라지는 안부로 내려서기까지 20분이 걸렸습니다. 안부에서 다시 올라 톱바위로 갈리는 삼거리에 다다르는 동안 오른쪽으로는 경사가 완만한 진달래 군락지가 펼쳐져 있었고 왼쪽으로는 다소 경사가 급했으며 날카로운 톱바위는 북사면의 너덜겅들이 받쳐주고 있었습니다. 톱바위를 0.2키로 남겨 놓은 삼거리에서 반대쪽으로 3-4분을 더 걷자 왼쪽 발밑으로 넓은 공터에 자리 잡은 대견사지 3층석탑이 들러 가라고 제 소매를 잡아끌었습니다만 오후4시까지 유일사 주차장에 도착해야 했기에 사진만 찍고 가던 길을 계속해 이어갔습니다.


  14시55분 조화봉을 들르는 대신에 팔각정에서 잠시 쉬며 넓디넓은 진달래 군락지를 여유롭게 조망했습니다. 저 넓은 평원에 진달래가 활짝 폈다면 온 산이 연붉은 꽃들로 화사하게 빛났을 것이고 그리되면 과연 빼어난 장관을 이뤘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자 화룡점정의 마지막 한 점을 찍지 못한 아쉬움이 또 다시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비슬산 정상을 곧바르게 받쳐주는 절애의 암벽과 바위들을 유심히 바라다보았지만 거문고를 켜는 신선을 연상할만한 형상의 바위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팔각정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유가사로 하산하는 길은 급했습니다. 후미의 저를 기다리느라 버스의 서울행이 늦어지는 것이 아닐까 해서 마음이 다급했고 내림 길의 경사도 급했습니다. 고도를 낮추어 얼마큼 내려서자 길섶에 무리지어 붉게 핀 진달래꽃들이 만개해 그 동안의 아쉬움을 달래주었습니다. 이 정도의 꽃밭이라면 오랜 세월 잠자고 있을 소월을 깨워 시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겠다 싶어 가던 길을 멈추고 그의 시를 읊으며 사진을 몇 커트 찍었습니다.


  14시38분 수성골계곡을 건너 B코스에 합류했습니다.

유가사에 이르기까지 20여분간의 하산 길이  편했습니다. 넓은 흙길이 계곡을 따라 잘 나있어 하산하는 중 적당한 곳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몸을 닦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종주산행에서 맛 볼 수 없는 계곡산행의 즐거움은 모든 일상의 잡음들을 잊고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소리는 말이나 글처럼 딴 뜻이 숨어 있지 않아 듣는 이를 편하게 해줍니다. 분노나 증오의 글도, 거짓과 위선의 말도 아니 보고 아니 하고자 한다면 화음의 소리를 찾아 산길을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것은  자연의 소리만한  화음의 소리를 저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귀를 째는 불협화음의 소음이 찾아 들 수 없는 심산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듣노라면 소리가 저렇게도 맑을 수 있는가 싶고 또 용솟음치는 힘이 온 몸에 전해지는 듯 합니다. 


  15시58분 유가사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사찰을 일별했습니다.

신라 흥덕왕 2년인 서기827년에 도성국사가 창건한 유가사는 일명 법상종으로도 불리는 보수적 귀족 불교의 종파로 알려진 유가종의 총 본산이었나 지금은 그저 팔공산 동화사의 말사에 지나지 않아 뭔가 조락해 보이고 새 절을 짓느라 부산한 모습이 이 절의 역사가 만만치 않았음을 일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16시4분 유가사앞 주차장에서 5시간 동안의 길지 않은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비슬산은 대간 길의 비경들을 올망졸망 맛볼 수 있는 보기 드문 명산임에 틀림없습니다. 소백산의 넓은 평원, 속리산의 깎아지른 암봉과 암릉길, 황철봉의 너덜겅지대 ,수정봉의 끝없이 이어지는 소나무 밭과 지리산의 웅장함을 모두 다 조금씩 옮겨놓은 듯한 비슬산은 정말 아름다운 산입니다. 이번 산행이 풀꽃들로 성이 차지 않아 나무 꽃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니었기에 아직도 봄을 기다리는 진달래꽃이 만개하지 않았다 해서 산행의 즐거움이 반감된 것은 아닙니다. 지난 주 목요일의 이상저온으로 꽃이 피고 질 때까지 나무줄기 속에서 한참을 더 숨죽이고 기다려야 하는, 그래서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하는 이른 봄꽃의 숙명을 따라야하는 진달래남의 잎들의 인내와 순종에 그저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언제고 신선과 거문고의 자취를 찾아보고자 다시 이 산을 오를 때를 대비해 바위의 형상과 그 이름들을 익혀나갈 뜻입니다. 그리해야 앞으로 묵묵히 서 있는 바위들과 얼마고 묵언의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아서입니다. 

 

 

                                                                                  <산행사진>

 

비슬산(1)

*산행일자:2006. 4. 23일

*산행코스:유가사-비슬산-대견사지-유가사

*동행 :송백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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