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4)
*산행일자:2012. 2. 25일-26일(토-일)
*소재지 :충북보은/경북상주
*산높이 :속리산 천왕봉1,058m, 문장대1,033m
*산행코스:갈목고개-천왕봉-문장대-세심정-속리산광광단지
-2월25일:갈목고개-불목이고개-안부사거리-천왕봉-세심정
-법주사입구-속리산관광단지
-2월26일:세심정-천왕봉/문장대갈림길-경업대/신선봉갈림길
-문장대-세심정-속리산버스터미널
*산행시간:총21시간14분
-2월25일:10시20분-24시30분(12시간20분)
-2월26일: 8시58분-17시52분( 9시간54분)
*동행 :경동고 동문 등5명
(24회 김주홍, 이규성, 우명길, 29회 정병기 및 초대손님 박현출님)
생각지 않은 눈이 내려 이틀간의 설산 산행이 황홀했습니다. 올 겨울에는 여느 해보다 눈이 적게 내려 두 주 전에 가지산을 올랐을 때도 두 해전에 보았던 그 많던 눈이 거의 사라지고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땅바닥에서 먼지가 펄펄 날려 황량한 느낌조차 들었습니다. 이번에 오른 속리산이 가지산보다 위도가 높기는 해도 그 후 눈이 내리지 않아 별 기대를 못했는데 전날 눈이 내려 신설이 소북이 쌓인 데다 산행 중에도 눈이 그치지 않고 조금씩 계속 내려 모처럼 설산 산행의 진수를 맛보았습니다. 이 눈이 스러지면 올 겨울도 끝난다 싶어 마지막 설경을 정성스레 카메라에 옮겨 담아 왔습니다.
매년 겨울 고교동창 몇몇이서 함께 해온 설산 산행을 이번에는 속리산에서 가졌습니다. 그간 저희들은 덕유산을 필두로 지리산, 소백산을 1월말이나 2월초에 종주해 설산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해왔습니다. 올 겨울에는 이런 저런 일로 일정을 잡지 못해 나서지를 못하다가 2월을 넘기면 최근 몇 년간 해마다 해온 설산 종주가 물 건너 갈 것 같아 만사 제쳐놓고 마지막 주 토-일요일 양일간을 속리산종주에 할애했습니다. 한남금북정맥의 마지막 구간인 갈목재-천왕봉 구간을 종주하고 속리산 관광지구로 하산해 하루를 묵은 후 다음 날 천왕봉/문장대 갈림길로 복귀해 백두대간길을 따라 걸어 문장대에 오른 후 다시 속리산관광지구로 하산하는 이번 종주 산행으로 속세의 이틀을 하얀 망각 속에 묻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1)2월25일 :갈목고개-불목이고개-천왕봉-세심정-속리산관광단지
아침6시반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출발해 그 3시간 후인 9시반 경 충북 보은에 도착했습니다. 곧바로 택시를 잡아 말티고개를 넘어 이번 산행의 출발지인 갈목고개로 향했습니다. 2006년 10월 한남금북정맥 종주 시 마지막 구간의 들머리가 갈목고개여서 이번 산행코스는 제게는 두 번째 밟는 길입니다. 이 고개에 염화칼슘을 뿌리려 차를 몰고 올라온 연세든 한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산행채비를 했습니다.
10시20분 해발390m의 갈목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서울을 떠날 때만 해도 기대하지 않은 눈이 내려 온 산이 새하였습니다. 입산금지 안내판이 서 있는 곳에서 그 뒤로 올라가 북동쪽으로 진행하며 고도를 조금씩 높여갔습니다. 515m봉을 넘어 올라선 585m봉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다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간 것이 이번 산행 중 겪은 유일한 알바였습니다. 한참동안 내려가다 길을 잘 못 들어 남쪽으로 진행했다며 선두에 선 후배가 알바를 선언해 삼거리까지 되올라가느라 반시간은 족히 허비했습니다. 갈목고개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이 길이 워낙 한갓진데다 새로 내린 눈이 길을 덮어 잠시만 방심해도 이번 같은 알바를 피해가기 쉽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11시45분 알바를 끝내고 능선삼거리에 복귀했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며 과일을 꺼내 든 후 북쪽으로 내려갔다가 580m봉을 오른 쪽으로 에돌아 헬기장이 들어선 487m봉에 이르렀습니다. 알바도 알바려니와 날이 푹해 쌓인 눈이 녹으면서 아이젠을 찬 구두에 눈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어 몇 걸음 걷지 않아 이를 떼어 내느라 진행이 많이 더뎠습니다. 산야초 재배로 출입을 금한다는 입간판이 쓰러져 있는 안부삼거리 불목이재에서 곧바로 올라가 무인감시카메라가 설치된 574m봉에 올라섰습니다. 40대의 젊은 부부 한 쌍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 분들은 천왕봉에서 정맥 종주를 시작해 갈목재로 내려가는 분들로 이번 산행에서 유일하게 만난 분들입니다. 무인 감시카메라 봉에서 십 수분을 더 걸어 저희 후미 둘을 기다리는 선두에 합류해 반시간 가까이 점심을 들었습니다.
14시20분 점심 식사를 끝내고 오후 산행을 재개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느라 머문 자리의 소나무 두 그루가 눈을 맞으며 서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한 폭의 수묵화였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어 방송대 학형들께 전송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눈은 내리다 말다를 반복했고, 하늘은 하루 종일 얼굴을 찡그리고 있어 오른 쪽 건너편 구병산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6년 전 가을 이 길을 걸을 때는 시야가 탁 트여 구병산과 충북알프스의 동쪽 산줄기가 시원스레 보였는데 대신에 이번에는 하얀 눈이 나뭇가지에 내려 앉아 꽃을 피운 설화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해발고도 600m대의 봉우리 몇 개를 지나 올라선 봉우리에 삼각점이 박혀 있어 비로소 제가 서 있는 곳이 667.3m봉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 그 시각은 16시 정각이었습니다.
17시5분 안부사거리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삼각점의 기초대가 훼손된 667.3m봉에서 조금 내려가 편안한 능선 길을 걸었습니다. 얼마 후 바위 길을 지나 올라선 암릉의 687m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 다다른 안부에서 600m대의 봉우리 하나를 더 넘어 해발550m대의 안부사거리에 다다랐습니다. 갈목고개 출발 7시간이 다 되도록 수많은 봉우리를 오르내렸지만 해발고도를 높인 것은 200m가 채 안되었습니다. 해 떨어지기까지 시간 반도남지 않았는데 해발고도를 500m가량 높여야 정상에 다다를 수 있어 남은 산행을 서둘렀습니다. 안부에서 시작된 산 오름은 묘지를 지나고 800m대를 넘기까지 치받이 길이 계속 됐습니다. 807m봉을 조금 지나 어둑어둑해졌다 했는데 923m봉에 이르기 전에 어둠이 속리산을 완전히 먹어 삼켜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혀야 했습니다.
19시20분 해발1,058m의 천왕봉에 올라섰습니다. 갈목고개에서 안부사거리에 이르기까지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몇 개씩 넘느라 힘은 들었지만 길이 까탈스럽지 않았는데 어둠이 깔린 후 걷는 길은 가파른 바위 길에 눈이 쌓여 조심해 진행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923m봉을 지나 눈이 많이 쌓인 북사면을 걸어 해발고도가 1,000m를 조금 넘는 안부삼거리에 이르자 이제 다 왔다 싶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캄캄한 밤을 뚫고 정상에 오르자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사방이 조용했고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한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허기가 감지되어 남은 먹거리를 모두 꺼내 먹었습니다. 서울서 내려와 저 아래 속리산관광지구의 한 모텔에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 이규성 동문에 정상에의 안착을 알렸습니다.
21시40분 세심정을 지났습니다. 안부사거리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앞장서 안내하느라 신경을 많이 써 천왕봉에서 하산하는 길은 다른 대원에 안내를 부탁했습니다. 낮 동안 내내 잔뜩 찌푸린 하늘이 밤이 되자 비로소 구름을 걷어내 별이 총총 빛났습니다. 문장대로 갈리는 삼거리에서 잠시 멈춰 서서 노을에 물든 듯 낙조 색을 띠고 있는 하늘의 초승달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갈목고개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눈에 덮였는데 하산 길은 수많은 산객들에 다져져 길이 잘 나있는데다 곳곳에 표지목이 서 있어 밤길이지만 안심됐습니다. 내림 길의 미끄러운 곳은 선두가 먼저 내려가 불을 비춰주어 한결 수월했습니다. 상환암 갈림길을 지나고 두 곳의 다리를 건너 세심정 앞 차도로 내려섰습니다. 밤에 보아도 절경인 기암들은 날 밝은 다음 날 다시 오를 때 사진을 찍기로 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22시40분 해주모텔에 도착해 첫날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세심정에서 법주사로 내려가는 길은 차들이 다니는 넓은 길인데도 아이젠을 벗지 않은 것은 낮에 눈이 녹아 흐르던 물이 밤이 되자 얼어붙어 길이 미끄러워서였습니다. 법주사 입구를 지나 절을 빠져나가는 매표소에 이르자 철문이 굳게 닫혀 있어 난감해 하는 중 매표소를 지키는 경비원아저씨가 문을 열어줘 월장을 면했습니다. 매표소에서도 몇 분 더 내려가 숙소인 해주모텔에 도착했습니다. 모텔 주인이 경영하는 넓은 식당에서 저녁을 해들고 술잔을 나누며 자정을 넘겼습니다. 해가 갈수록 주력이 떨어져 도착시간이 많이 지체됐지만 첫날 산행을 무탈하게 마쳤습니다.
2)2월26일(일):세심정-천왕봉갈림길-경업봉 갈림길-문장대-이얏고다리-속리산버스터미널
아침8시58분 세심정에서 이틀 째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해주모텔 주인의 도움으로 세심정까지 차를 타고 가 1시간은 번 셈입니다. 다리를 건너 산길로 들어서자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가 봄을 불러내 한 겨울이라면 움츠리고 있을 새들이 재잘재잘 조잘거렸습니다. 상환암을 들러 맞은 편 거암에 뿌리박은 소나무를 사진 찍고 나서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기억의 생생한 정도는 시간함수여서 비록 깜깜한 밤에 내려 왔지만 바로 전날 밟은 길이라 오름 길에 만나는 바위와 풍광들이 눈에 익고 반가웠습니다. 꾸준히 고도를 높여 해발고도 800m대에 이르자 오른쪽 위 천왕봉이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11시28분 천왕봉/문장대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7시간 가까이 걸어 해발고도를 겨우 160m가량 높인 전날 산행과는 달리 세심정 출발 두 시간 만에 600m이상 고도를 높인 이번 산행이 오히려 힘이 덜 든 것은 날씨가 좋아 빼어난 설경을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는데다 중간 중간 산죽 사이로 난 눈길이 운치가 있어 좋았기 때문입니다. 전날 밤에 오른 천왕봉을 다녀온 선두는 저희들을 기다려 함께 과일을 든 후 먼저 일어나 백두대간을 따라 문장대 방향으로 북진했고 2-3분 후 저희들도 일어나 그 뒤를 이었습니다. 사진에서 많이 본 석문을 지난 후 천왕봉으로 향하는 반대방향의 산객들을 계속 만나 천왕봉-문장대 간의 대간 길이 이 산의 주 산행로임을 확인했습니다.
13시3분 왼쪽 아래로 경업대 길이 갈리는 “천왕봉/경업봉/문장대”의 안부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석문을 지나 비로봉에 이르기 전 평원(?)을 지나며 키가 작은 잡목들이 피워낸 장관의 하얀 눈꽃을 가까이서 감상했습니다. 올 겨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은 눈꽃 설원을 저 혼자 즐기기가 너무 아까워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학형들에 전송했습니다. “천왕봉1.2Km/문장대2.2Km"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올랐다가 얼마간 더 걸어 왼쪽 아래 0.4Km 지점에 경업봉이 자리한 안부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쯤에 자리 잡고 기다리리라 기대했던 선두 세 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뒤쳐진 한 친구를 기다려 과일을 꺼내 들며 10분가량 쉬었습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허기진 배를 달래며 입석대를 거쳐 신선봉의 간이 휴게소에 다다르자 저희 후미를 기다린 한 대원이 두 명은 기다리다 너무 추워 먼저 문장대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이처럼 각자 산행할 바에는 뭣 하러 같이 왔나 싶어 분노가 치밀었고 그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늦게까지 기다려준 친구가 건네 준 빵을 받아 먹지 않고 저 혼자서 쌩하니 내달렸습니다.
14시23분 해발1,034m의 문장대에 올라섰습니다. 문장대 휴게소 앞 공터에서 기다리는 선두 두 명에 못마땅함을 확실하게 표한 후 후미를 같이한 친구와 둘이서 문장대에 올라섰습니다. 사방으로 전망이 탁 트여 속리산을 지나는 백두대간 능선이 한 눈에 잡혔습니다. 햇살이 따사롭고 바람이 불지 않아 사방을 둘러보며 눈 덮인 겨울 산들을 느긋하게 사진 찍었습니다. 문장대-천왕봉 구간의 백두대간과 문장대-묘봉 간의 충북알프스 능선 길에 자리한 연봉들이 모두 한 번은 밟은 길이어서 같이 오른 친구에 주위 산세를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었습니다. 먼발치의 천왕봉을 뒤돌아보자 백두대간을 다시 한 번 종주하고 싶은 의욕이 용솟음쳤지만 이번에 주력이 옛날 같지 않음을 확인한 터라 쉽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휴게소로 내려가 일행과 합류해 속리산 관광단지로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아래 간이 의자에 앉아 빵으로 요기를 한 후 부지런히 내려가 첫 번째 간이 휴게소에서 국수를 말아 먹고 나자 더 이상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16시46분 이뭣고다리를 건넜습니다. 한 겨울에 속리산을 찾아 오른 것은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그 중 두 번을 집사람과 함께 올랐는데 두 번다 큰 눈이 내렸습니다. 문장대에서 법주사로 내려가는 이 길을 먼저 간 집사람과 함께 마지막으로 걸은 것이 1979년 1월의 일이니 벌써 33년이 지났습니다. 법주사에서 문장대로 올라갈 때도 눈이 펑펑 내렸고 하산 길에도 그치지 않아 엄청 고생했습니다. 방수가 잘 안 되는 옷을 입고 몇 시간을 산행하자 속옷까지 몽땅 젖어 덜덜 떨며 하산했는데 바로 버스가 출발해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간 일이 생생하게 기억났습니다. 좀 쉬어가라는 주인의 간청을 못들은 척하고 두 번째 간이 휴게소를 지나면서 불경기의 한파가 이곳까지 미쳤다 싶어 안타까웠습니다. 얼마 후 이뭣고다리를 건너자 법주사로 이어지는 넓은 차도가 나타났습니다.
17시52분 속리산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이틀간의 속리산 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뭣고다리에서 출발지인 세심정까지는 멀지 않았습니다. 세심정에서 저수지까지 왼쪽 아래 계곡을 내려다보며 걸어 내려갔습니다. 하얀 눈이 내려앉은 계곡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안온하게 느껴졌습니다. 저수지를 지나 법주사 앞에 이르러 미끄러운 길이 끝난 것 같아 아이젠을 풀었습니다. 벌써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선두로부터 버스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전화를 받고 서두른 결과 출발 8분 전에 터미널에 도착해 숨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일단 청주로 나가 각자 편한 버스를 골라 타기로 하고 18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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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산을 즐겨 오르는 것은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만은 분명 아닙니다. 산의 맑은 공기가 몸속을 깨끗이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만, 산을 오르지 않고도 건강을 지키는데 유용한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각종 구기운동, 수영 그리고 마라톤도 건강증진에 다 도움이 되는 운동들입니다. 평지길 걷기도 권장할 만한 운동이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도 생활의 활기를 높이는 것이어서 몸과 마음을 건강히 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런 운동들은 대개가 몇 시간을 넘지 않아 그 운동의 강도가 견뎌낼 만한 것입니다.
저의 산행은 주로 산줄기를 따라 걷는 종주산행이어서 4-5시간 안에 끝나지 않습니다. 제가 걷는 산길은 주로 대간, 정맥, 그리고 지맥 등의 능선 길이어서 한 번 출산하면 보통 8시간 내외로 걷습니다. 이 긴 시간 동안 혼자서 먼 길을 걸어가는 데 하루 종일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60대 중반의 제가 단순히 건강에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낯설은 지방의 산줄기를 혼자서 긴 시간 산행을 할 수 없습니다. 건강은 산행의 결과일 뿐입니다. 제가 산을 찾는 주 이유는 건강증진은 물론 심기를 다스려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산에 올라 여러 바위, 꽃, 나무와 새 등의 산식구들과 묵언의 대화를 나누노라면 저도 모르게 그들과 한 식구가 되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가파른 된비알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는 동안에는 세속의 걱정거리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어 자연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뒤 따라가는 후미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내뺐다 해서 후배 동문에 화를 내고 나자 속이 다 시원하다 했는데 그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잘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걸음이 빨라 먼저 도착했고 20-30분을 기다리다 땀이 식어 엄습해오는 추위를 이겨내지 못해 먼저 떠난 것을 갖고 성질을 부리는 바람에 후배는 물론 제 마음의 평안도 깨졌습니다. 저라도 한 자리에서 덜덜 떨며 마냥 기다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산식구들과 묵언의 대화를 나누려면 산식구의 입장에 서야합니다. 산정에 올라 제 생각만 하고 기뻐 큰 소리로 ‘야호’를 했다면 새들이 놀라 제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산식구들과 대화를 나누려 그들의 입장을 배려하려 애써온 제가 정작 긴 산행을 같이 한 동행들의 참기 어려운 상황을 이해 못하고 성질을 부린 것은 아직도 제가 인격적으로 미숙해서입니다. 바위, 꽃, 나무와 새 등 산에 있는 것들만 산식구가 아니고 같이 산을 오르내리는 동행들도 산에 있는 시간만은 산식구들이 분명한데 이 자명한 이치를 잠깐 잊어버려 제 속 좁음을 드러내고 만 것입니다.
이틀 간 산행을 같이 한 산식구 동문들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하며 이만 글을 맺습니다.
<산행사진>
1)2월25일:갈목고개-불목이고개-안부사거리-천황봉-세심정 -법주사입구-속리산관광단지
2)2월26일:세심정-천왕봉/문장대갈림길-경업대/신선봉갈림길-문장대-세심정-속리산버스터미널
속리산 (3)
*산행일자:2009. 5. 10일(일)
*소재지 :경북상주/충북보은
*산높이 :문장대1,054m/천황봉1,058m
*산행코스:속리산국립공원 화북분소-문장대-화북분소
*산행시간:10시10분-15시10분(3시간10분)
*동행 :경동고 24회동기28명
이 세상에 태어난 지 60년이 되었거나 막 넘은 이들에 속세를 한 번 등져보라고 말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벌써 익숙해질 대로 다 익숙해져 속세를 떠나서 산다는 것이 설사 잠시라 해도 엄청 불편할 것이고, 또 이 불편을 감수하라는 말은 그리 길게 남아 있지 않은 여생을 포기하라는 이야기로 오해받기 십상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 풍진 속세에 고운 정 미운 정이 모두 다 든 것은 60년간 발붙이고 익숙하게 살아왔기 때문인데 여기에서 발을 떼고 어떠한 세상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속리(俗離) 길에 나선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60대의 거의 모두가 오늘도 별 수 없이 다람쥐가 쳇바퀴 돌리듯 어제와 별반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잠시 속세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을 마냥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세상 누구라도 언젠가는 이 속세를 완전히 등지고 영원의 세계로 먼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는데 그전에 세상만사를 모두 잊고 몇 번쯤은 속세를 떠나 속리(俗離) 길에 나서는 것이 그 날을 맞아 받아야하는 충격을 얼마간 줄일 수 있겠다 싶어서입니다.
경동고 24회동기생들의 등산모임인 동산회에서 이번에 속리산으로 명산100산 탐방을 떠나게 된 것은 주로 올해에 회갑을 맞는 동기들에 모처럼 속리(俗離) 길을 한 번 나서보라고 이달헌 회장이 주선한 덕분입니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를 충북보은의 시끌벅적한 법주사 쪽으로 잡지 않고 비교적 한갓진 경북상주의 화북 쪽으로 정한 것도 이번 나들이가 속세와 별리한 속리 길이어서 그리한 것이고 이회장이 날머리로 정했던 법주사 길로 하산하지 않고 들머리인 화북분소로 바꾼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주봉인 천황봉을 오르지 않고 달랑 문장대만 올라갔다와 산행자체는 조금 단조로웠지만 이어서 병산서원을 둘러보고 풍산의 한우고기집에서 뒤풀이를 가져 환속 후의 프로그램이 더 다채로웠습니다.
오전10시10분 화북분소를 출발했습니다.
올림픽공원역에 집결해 대기해 있는 버스에 오른 동창생들이 모두 26명이었습니다. 아침7시반이 조금 지나 출발한 버스는 수지에서 2명을 더 태워 속리산으로 향했습니다. 화서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속리산국립공원 화북분소 앞에 도착한 것은 10시가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화북분소 앞에서 합동사진을 찍은 후 문장대로 향했습니다. 작년 1월 적설기의 오대산을 오르면서 고생했던 두 분이 이번 산행에 동참해 후미에서 이분들과 함께 오르고자 했으나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문장대까지 오르지 않고 중간에 적당한 곳에서 쉬다가 하산 할 뜻을 밝혀 그분들을 앞서 갔습니다. 15분 넘게 포장도로를 걷다가 숲길로 들어서자 비로소 속리산의 싱그러운 체취가 느껴졌습니다.
숲속에서는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아 때 이른 향연이 펼쳐졌습니다.
이 향연의 주역은 단연 나무들입니다. 가지마다 돋아난 새파란 나뭇잎들로 온 산이 푸르렀습니다. 연분홍 꽃을 화사하게 피운 철쭉나무는 아직은 많지 않았고 오히려 흔치않은 이팝나무가 여기저기서 흰 꽃들을 만개시켰습니다. 풀꽃들에 제 이름을 찾아 불러주는 여심(女心)이 있어 이 꽃들도 숲속의 향연에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숲속의 나뭇잎 뒤로 몸을 숨긴 산새들이 마음껏 지저귀어 숲속의 향연이 더욱 풍성했습니다. 산새들이 지칠 즈음이면 이 숲속의 음악은 매미들이 맡을 것입니다. 나무와 풀이 꽃을 피운 이 산에서 웃음꽃을 피우는 것은 저희들의 몫이었습니다. 이번 산행이 아무리 세속을 떠난 속리의 나들이라 해도 오랜만에 해후한 동기들과 지난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웃음 짓는 일까지 삼갈 것은 아니기에 잠시 쉬는 짬에 작은 웃음들이 연이었습니다. 숲속의 향연을 묵묵히 지켜보는 바위들이 제각기 다른 형상을 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어 조각공원 못지않았습니다. 세속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묵언의 수행을 하고 있는 바위들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속리의 진수를 맛보는 것 같았습니다.
12시25분 해발1,054m의 문장대에 올라섰습니다.
입장료를 내지 않으려고 화북코스로 올라 법주사 쪽으로 하산하는 안내산악회가 많아 오름 길이 한가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만큼 오르다가 큰 바위를 만나 한참 동안 쉬었습니다. 나무다리를 건너고 비를 가리는 커다란 처마바위(?)를 카메라에 담으며 고도를 높여갔습니다. 산죽 길을 지나 문장대-문수봉사이의 고개 마루에 올라서자 몇 해 전까지 라면을 끓여 팔던 휴게소 건물이 철거되어 그 자리가 휑하니 넓어 보였습니다. 철계단 길을 올라 다다른 문장대(文藏臺)의 본래 이름은 운장대(雲藏臺)였다 하니 이 봉우리도 북한산의 백운대(白雲臺)처럼 누구라도 한 번 올라 구름들과 함께 노니면 신선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속리산에 요양을 온 세조임금께서 꿈에서 현몽을 얻은 대로 이 봉우리에 올라 오륜삼강 책 한권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하여 문장대로 바뀌었다는데 문장대 좌우로 펼쳐지는 절경에 눈을 주지 않고 딱딱한 내용으로 꽉 채워졌을 예절서를 읽느라 세조임금도 지루했을 것입니다. 이 높은 산에 올라서도 세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예절서를 읽어야했던 세조임금이 범부인 저희들보다 속리 길에 나서기가 더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속리산의 주봉은 해발1,058m의 천황봉입니다.
백두대간에서 분기하는 금남한남정맥이 천황봉에서 갈라져 나가 이 봉우리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한강과 낙동강, 그리고 금강으로 나뉘는 삼파수가 됩니다. 이 주봉보다 4m가 낮은 문장대는 천황봉에서 북쪽으로 3.5Km 떨어져 있는데 이 봉우리 바로 아래에서 백두대간이 북동쪽으로 뻗어나가고 충북알프스 연봉들은 서쪽으로 이어집니다. 문장대를 중심으로 좌우로 뻗어나가는 기기묘묘한 암릉의 산줄기가 법주사를 감싸고 있어 이 절이 명찰로 자리 매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문장대는 정상에서 휘둘러본 조망이 일품이어서 한 번 오르면 다시는 속세로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도저히 일지 않는 참으로 고혹적인 봉우리입니다. 그러기에 속리산을 찾는 산객들이 주봉인 천황봉은 오르지 않으면서 문장대만은 빼놓지 않고 오릅니다. 그래서 문장대를 속리산의 최고봉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14시45분 화북분소 주차장에 도착해 속리산 산행을 마쳤습니다.
문장대에서 내려와 반시간 가까이 점심을 같이 든 후 13시가 조금 못되어 하산 길에 들어섰습니다.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는 왕복산행이어서 하산 길이 마냥 여유로웠습니다. 오전에 이 길로 오를 때 사진작가로 추대된 김주홍동문의 손놀림이 신중해진 것은 이제까지 사진사로서 사진 찍기가 이번부터 사진작가로서 작품활동으로 격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오른 동문들이 사진 찍기에 더 열심인 것은 이만한 추억 만들기가 어디 있으랴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산 높이에 비해 경사가 가팔라서인지 계곡에 그다지 많은 물이 흐르지 않아 그 유량이 인근의 쌍용계곡에 훨씬 못 미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부지런한 친구들은 잠시 짬을 내어 이 계곡에서 탁족을 즐겼습니다. 숲속을 빠져나와 아스팔트 길로 들어서자 섭씨30도를 웃도는 열기가 곧바로 감지됐습니다. 숲속의 나무들이 태양열을 흡수하는 것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끌어올린 물로 그들이 자라는데 필수적인 영양분인 포도당을 합성하기 위해서인데 이 덕분에 산행시간이 시원할 수 있었으니 속리의 나들이가 마냥 힘들고 괴로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속리산에서 풍산의 한우고기집으로 직행하지 않은 것은 환속의 속도가 너무 빨라 문화적 충격에 휩싸일까 걱정하는 이 회장의 세심한 배려덕분입니다. 서애 유성룡의 위패를 모시는 병산서원의 탐방으로 이 서원의 역사적역할과 건축사적가치를 학습할 수 있엇고 명문고를 졸업한 동문들의 뒤늦은 학구 욕을 일부 채웠을 뿐만 아니라 급작스러운 환속을 막아 세속에 연착륙할 수 있었습니다.
풍산의 한우고기집은 재작년 가을에 한 번 다녀간 적이 있어 육회의 감칠맛과 스테이크의 씹는 맛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 맛은 여전했고 값도 많이 저렴해 몇 몇 동문들은 안심과 등심을 사갖고 가기도 했습니다. 세속에의 성공적인 환속을 기뻐하며 건배를 한 후 이야기를 듬뿍 담아 술잔들을 건넸습니다. 환속의 프로그램은 고기집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부 주당들이 귀가 버스 안에서 벌인 주연도 환속프로그램의 일환이었습니다. 밤 11시가 넘어 올림픽공원역에 도착해 속리길의 나들이를 모두 마쳤습니다.
1968년에 경동고교를 졸업한 24회동기생 8명이 2006년 가을 설악산을 오른 것을 시작으로 계절별로 한 산씩 정해 오르는 “명산100산 탐방”은 이번에 오른 속리산이 11번째였습니다. 앞으로 89회를 더 해 2031년 여름에 끝나는 “명산100산 탐방”프로그램은 장장 4반세기에 걸친 것으로 동창들의 건강을 지키고 우의를 다지는데 이만한 프로그램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2006년 10월 설악산을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덕유산, 지리산, 방태산, 주왕산을, 2008년에는 오대산, 황매산, 명지산, 가야산을 올랐으며 금년 1월에는 계방산을 다녀왔습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참여인원이 조금씩 늘어나 이번 속리산탐방에는 무려 28명이 참여해 세속의 일을 모두 잊고 명산100산으로 속리의 길을 떠나는 이 프로그램의 장수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모두들 오늘의 건강을 그대로 지켜내 2031년 여름에 마지막 명산을 다 함께 오를 수 있기를 빌고 또 빌겠습니다.
<산행사진>
속리산(2)
*산행일자:2006. 11. 11일
*소재지 :충북보은/경북 상주
*산높이 :1,058미터
*산행코스:갈목재-667.3봉-속리산천황봉-상환암
-법주사-속리산버스정류장
*산행시간:10시9분-18시19분(8시간20분)
*동행 :쌍용제지 이석범 입사동기
그동안 정맥 길에서 괜스레 심술을 부렸던 제우스신도 이번만은 저를 도와 늦가을 특유의 쾌청한 하루를 내려 주었습니다. 한남금북정맥의 마지막 종주구간인 갈목재-천황봉코스를 친구와 함께 오르기로 일정을 잡아 놓고 일기예보를 점검해왔는데 이 지역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한주 내내 계속되어 우중산행을 단단히 채비했었습니다. 냉랭한 가을비를 맞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꼼꼼하게 준비를 한 저희들을 가상히 여긴 제우스신이 계획했던 비를 거두어 깔끔하게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속리산 천황봉에서 백두대간과 갈라지는 한남금북정맥이 서북쪽으로 내닫다가 경기 안성의 칠장산에서 북쪽으로는 경기 김포의 보구곶까지 한남정맥이 뻗어 있고 남쪽으로는 금북정맥이 이어져 충남 태안의 안흥진에서 끝나는 총 연장 6백Km의 장대한 산줄기를 어제 모두 밟았습니다. 작년 9월에 김포의 보구곶에서 첫발을 들인 후 12월에 칠장산에서 도상거리 176Km의 한남정맥 종주를 마쳤고, 올 3월에 태안반도 끝 지점인 안흥진에서 도상거리 279Km의 금북정맥 종주를 시작하여 8월에 역시 칠장산에서 끝냈습니다. 이어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 만나는 칠장산의 3정맥 분기점에서 도상거리 152Km의 한남금북정맥을 밟기 시작해 어제 속리산 천황봉에서 백두대간과 합류해 총 도상거리 607Km의 한남/금북/한남금북정맥을 46회 출산하여 3개 정맥의 종주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도상거리는 진혁진님의 홈페이지에서 따왔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진혁진님께 죄송하며 늦게나마 감사드립니다.)
대간 길에 우뚝 솟은 천황봉에 올라 그 분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우리의 이 산줄기를 한번 걸어보겠다고 뜻을 세우게 해주셔서 고마웠고, 제게 건각을 주시어 힘든 길을 무탈하게 걷게 해주셔서 고마웠으며, 저 혼자서 길고 긴 산줄기를 밟으면서 산식구들과 벗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무엇보다도 고마운 것은 종주산행을 하면서 항상 무엇에든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신 점입니다. 이런 모든 고마움을 한번의 산상기도로 끝낼 수는 없기에 저는 또다시 새로운 정맥길 종주에 나서서 계속해 감사드릴 뜻입니다.
한 달 전 이티고개-상당산성-산상고개의 한 구간을 같이 뛰었던 쌍용제지(주) 입사동기 이석범 친구가 마지막 구간 종주에 합류했습니다. 제가 늦어 예정보다 30분 늦은 아침 6시30분에 강남터미널을 출발했습니다. 청주에서 상주행 시외버스를 타고가다 9시 반을 조금 넘겨 보은에서 하차했습니다. 십 수분을 기다려 한 분의 산행기에 실린 차영일 기사님의 택시를 타고 갈목재까지 이동했는데 마침 그 분이 한남금북정맥 종주를 마친 터여서 잠시나마 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었습니다. 택시비도 얼마만큼 감해주고 들머리인 갈목재에서 저희 둘의 사진을 찍어주신 기사님에 감사말씀 드립니다.
아침10시9분 해발 390미터의 갈목재를 출발해 북동쪽의 산등성을 탔습니다.
날씨는 조금 냉랭했지만 산행에는 최적의 날씨이다 싶었던 것은 하늘이 쾌청하고 바람이 불지 않아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였습니다. 17분 동안 묘를 지나고 산 오름을 계속하여 500능선상의 봉우리로 올라선 후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정맥 길을 이어갔습니다. 진달래나무의 582봉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 구릉을 넘고 한 가운데 소나무가 서있는 넓은 공터 삼거리에 다다르자 묘지를 이장한 흔적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11시15분 헬기장에서 10분을 쉬었습니다.
공터삼거리에서 왼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 묘지를 지나고 651.2봉 갈림길로 올라섰습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사면으로 내려서 안부를 지나 헬기장에 도착하기까지 그 봉우리가 그 봉우리인 것 같아 먼저 오른 분의 산행기가 없었다면 이정표로 삼을만한 봉우리를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북동쪽에 자리 잡은 속리산 천황봉과 남쪽에 위치한 구병산이 보였지만 나뭇가지들이 시야를 막아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헬기장에서 8-9분을 걸어 십자안부로 내려서자 돌무더기가 자리 잡고 있어 이 고개가 상판리와 삼기리를 잇는 불목이재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불목이재에서 18분을 걸어 오른 574봉에 세워진 자동으로 사진을 찍는 무인감시시스템이 입산금지구간을 몰래 걷고 있는 저희들을 주눅 들게 했습니다. 이번 구간은 공원에서 지정한 탐방로가 아니어서 천황봉에 오르기까지 한사람도 만나지 못할 정도로 한적했고 그동안 떨어진 나뭇잎들이 그대로 길에 쌓여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만이 산속의 정적을 깼습니다.
12시38분 638봉에서 점심을 들면서 16분을 쉬었습니다.
574봉에서 왼쪽으로 난 능선 길을 걸어 560봉을 올랐고 왼쪽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진행해 새목이와 아랫대목리를 이어주는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똑바로 다시 올라 540봉을 넘었고 넓게 자리 잡은 묘지를 지나 638봉에 오르자 시장기가 느껴졌습니다. 5년여 고집스레 맥주만 마셔온 제게는 친구가 반주로 준비해온 소주 한잔이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638봉을 출발하여 삼각점이 세워진 667.3봉에 다다르기까지 32분간 방향을 바꿔가며 몇 곳의 봉우리와 안부를 지났습니다.
14시5분 사내리에서 윗대목리를 넘나드는 십자안부에 다다라 12분을 쉬었습니다.
667.3봉에서 조금 내려섰다 오른 쪽 암릉길의 칼날능선을 지나 687봉에 올랐습니다. 이어지는 암릉길을 따라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600봉에 올라 잠시 숨을 돌린 후 십자안부로 내려서자 그동안 잠잠했던 골바람이 세게 불었습니다. 급경사길을 따라올라 660봉우리에 다다르자 남쪽 아래로 삼가리저수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동서로 봉우리들이 줄지어 솟아 오른 충북알프스의 산줄기가 빚어낸 선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습니다. 안자바위를 우회해서 너덜지대를 거쳐 800봉으로 오르는 길이 된비알의 오름 길이어서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15시 정각 923봉을 오르는 길에 만난 묘지에서 다시 쉬었습니다.
800봉을 출발하여 전망바위를 지나자 산죽길이 시작됐습니다. 치악산에 이어 고도가 1,000미터를 넘는 산은 이번이 두 번째라는 친구는 이 높은 산에 푸르른 산죽이 창창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해했습니다. 길옆의 산죽 속에 자리 잡은 묘지에서 짐을 내려놓고 목을 축이며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눈앞의 923봉이 높게 보인 것은 800봉을 지나서도 된비알의 산 오름이 계속되어서였습니다. 갈목재에서 500능선에 올라 보았던 천황봉은 나중에 확인해보니 천황봉이 아니었고 923봉이었습니다. 얼마고 올라서자 923봉을 에도는 우회길이 나있어 안도했습니다. 다 왔다 싶은데 멀리서는 잘 보였던 천황봉이 다른 봉우리에 가려 가까운 곳에서 오히려 보이지 않았지만 왁자지껄한 사람들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지척거리에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15시46분 해발1,058미터의 천황봉에 올라 같이 오른 친구와 하이파이브로 환호했습니다.
전장 607키로의 3개 정맥 종주를 백두대간과 만나는 여기 천황봉에서 모두 끝낸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재작년 10월 한 산악회의 도움으로 얼떨결에 갈령-천황봉-문장대 구간을 뛰고 나서 대간종주에 본격적으로 나섰는데 그 때도 천황봉에서 뻗어나가는 장대한 산줄기들을 보고 벅차오르는 감동을 가누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산줄기인 대간 길을 한번 종주해보겠다고 뜻을 세운 후 대간종주에 본격적으로 나서 지난 4월에 남한 땅 대간 길을 모두 밟았습니다. 3정맥 종주를 마치고 천황봉 마루에 다시 서자 새로운 정맥 종주를 또 다시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먼저 올라온 많은 분들이 비좁은 정상을 점하고 있어 선채로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장장 46회의 정맥종주를 무탈하게 마쳤음을 고마워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게 해주신 그 분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울화통 터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이 세상을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가 저 같은 소시민들에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모든 산식구들에 감사하며 길고 긴 산행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그분의 보살핌이 더욱 고마웠습니다.
16시10분 까마귀의 환송을 뒤로하고 천황봉을 출발해 하산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내친 김에 문장대를 들러보겠다는 욕심을 접은 것은 가을 해가 짧아서였습니다. 갈목재에서 천황봉까지는 비탐방로여서 안내판이 하나도 없는 대신에 거의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낙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산길이 말끔한 데 반해, 천황봉에서 법주사로 내려서는 길은 길도 넓고 곳곳에 이정표를 많이 세워 공원에서 정성들인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작년까지는 입산금지 길을 빼놓고는 다른 길을 모두 오를 수 있었는데 올부터 지정탐방로 외에는 어떤 길도 다닐 수 없도록 국립공원법이 바뀌었다 합니다. 대개의 지정탐방로가 정상을 한번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점의 산행을 즐기는 관광객을 위한 것이어서 선의 산행을 하며 능선 길을 종주하는 산객들에는 여간 불만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저녁시간 상고암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일러주는 대로 속세의 욕심을 이 산에다 모두 떨어냈습니다. 거대한 바윗돌이 석문을 만든 상환석암을 지나서 얼마 후 똑바로 서있는 바위 한 가운데서 자라나는 작은 소나무를 보고 생명체의 존귀함을 느꼈습니다.
17시28분 법주사-문장대의 큰 길로 들어섰습니다.
저녁시간 상고암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일러주는 대로 속세의 욕심을 이 산에다 모두 떨어냈습니다. 거대한 바윗돌이 석문을 만든 상환석암을 지나서 얼마 후 똑바로 서있는 바위 한 가운데서 자라나는 작은 소나무를 보고 모든 생명체의 존귀함을 새삼 느꼈습니다. 세심정의 작은 다리를 속세로 환속했지만 산속의 감동을 반 시간여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은 짙게 내린 어둠이 속세를 덮어서였습니다. 친구와 둘이서 오랜만에 학창시절에 익힌 캠프송 몇 곡을 부르며 큰길을 걸어내려 왔습니다. 불빛을 받아 윤곽을 드러낸 법주사의 황금빛 불상을 둘러보지 못하고 곧바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18시19분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강남행 고속버스표를 사 놓고 슈퍼에 들러 둘이서 캔맥주를 사들며 상쾌하게 마무리한 종주산행을 자축했습니다. 강남터미날에 도착해 또 다시 생맥주를 마시며 감격스런 하루를 반추했습니다.
가능한 한 정맥 종주는 저 혼자서 해볼 뜻이기에 위험한 한 겨울은 피할 생각입니다만 과연 그리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벌써부터 금남정맥이 저를 부르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있습니다만, 얼마간은 정맥종주를 쉬고 산악회를 따라 명산을 탐방하고자 합니다.
3정맥 종주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말씀 올립니다.
꼼꼼하게 산행기를 남겨주신 분들, 길 잡기가 쉽도록 개념도를 작성해 올리신 분들, 곳곳에 표지기를 달아놓아 안심하고 산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과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어 함께 우정산행을 해주신 모든 분들에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졸고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과 댓글까지 달아주신 분들의 격려가 산행기를 계속 써나가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산행사진>
속리산(1)
*산행일자:2006. 11.11일
*산행코스:갈목재-천황봉-법주사-버스정류장
*동행 :이 석범 쌍용동기
속리산 (1)
*산행일자:2004년 10월 3일
*소재지 :충북 보은/괴산/경북 상주
*산높이 :1,058 미터
*산행코스:갈령고개-갈령삼거리-형제봉-천황봉-문수봉-문장대-법주사
*산행시간:10시28분-18시25분(7시간 57분)
어제는 북적대는 인파를 피해 아직도 초록의 엽록소가 나뭇잎을 지배하는 속리산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주 다녀온 설악산과는 달리 여름의 초록이 가을에 자리물림을 하지 못한 속리산에는 본격적으로 단풍이 들지 않아서인지 산을 오른 분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머지않아 온 몸을 불살라 치러내는 나뭇잎의 마지막 제전인 단풍 세레머니를 지켜 볼 저는 낙엽 밟는 소리가 좋으냐는 구르몽의 잔인한 물음에 아니라고 답하고자 합니다.
저는 올 들어 “70년대의 명산”을 다시 오르고 있습니다.
당시는 도로가 제대로 나있지 않아 손쉽게 오를 수 있는 명산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천 미터를 넘는 고산 중 이름이 나있던 명산을 들라면 한라산을 필두로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오대산, 소백산, 가야산과 속리산 등인데 다행히도 저는 1970년대에 이 산들을 모두 올랐고 빠짐없이 산행기도 남겼습니다. 제가 70년대의 명산을 다시 찾는 것은 그때에 비하여 제 주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점검해 보고 싶고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후 강산과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산행기로 남기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작년10월 한라산을 시작으로 지난 6-9월에는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과 소백산을 종주했으며, 어제는 송백산악회를 따라 속리산을 다녀왔습니다.
10시 28분 속리산 남단의 갈령고개에서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아침7시 10분을 조금 넘어 잠실역을 출발한 버스는 충북 괴산에서 안개 속의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칠보산 입구인 쌍곡휴게소를 거쳐 경북 상주의 갈령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여기 갈령고개에서 문수봉까지는 백두대간의 능선으로 알고 보니 이번 산행은 송백산악회의 백두대간 종주프로그램의 하나였습니다. 덕분에 이번 산행이 제게는 내년에 본격적으로 오르고자 하는 백두대간의 맛보기 산행 격이 되었습니다.
11시 갈령삼거리에서 대간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해발 400미터대의 갈령고개를 출발하여 30여분 후 대간 길이 시작되는 갈령삼거리에 올랐습니다. 갈령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길을 틀어 형제봉으로 향했습니다.
11시 18분 해발 804미터의 형제봉을 지났습니다.
형제봉에 오르기까지 오름 새가 급해 숨을 헐떡여야 했습니다. 갈령삼거리를 출발하여 얼마 후 형제봉 바로 밑의 고개마루에 다다랐는데 좁은 곳에 많은 분들이 쉬고 있어 10여분을 더 걸어 다다른 803봉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늦어도 오후 2시까지는 천황봉에 올라야 문수봉코스를 탈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할 때에는 학소대를 거쳐 상환암으로 하산해야 한다는 회장분의 안내 말에 신경이 쓰여 여기 803봉에 오르기까지 속리산 남단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완상하거나 사진으로 옮기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12시 25분 667봉에서 숨을 골랐습니다.
천황봉까지 5.8키로가 남은 피앗재를 12시가 다되어 통과하고 나니 한 시간에 2키로 정도 걷는 제 주력으로는 14시안에 천황봉에 다다르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이 빠져 자연 발걸음이 둔해졌습니다만 능선길이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비교적 편안한 길이어서 힘들이지 않고 667봉에 도착했습니다. 803봉부터 동행한 송파에서 오셨다는 남자 분이 토마토를 건네줘 맛있게 들은 후 나무사이로 보이는 형제봉과 능선 길을 카메라에 처음으로 담았습니다.
13시 11분 703봉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703봉에 다다르기 10분 가까이 계속된 길 양옆의 산죽이 싱그럽게 느껴진 것은 단풍을 얼마 앞둔 다른 활엽수들보다 오래 계속될 푸르름 때문입니다. 김밥과 떡, 그리고 사과가 점심메뉴였는데 저 혼자 산행시보다 식탁이 풍성했습니다. 산에서는 소찬도 성찬처럼 맛있게 들 수 있는데 이번에도 동행한 송파 분 덕분에 그 맛이 더해졌습니다.
13시 28분 점심식사를 끝내고 천황봉으로 향했습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동행한 그분과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청년실업문제를 같이 걱정했습니다. 뼈 골 빠지게 일해 대학을 졸업시킨 자식들이 집에서 빈둥대는 꼴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들에게는 취직이 곧 효도일 수밖에 없겠지만, 일을 못하고 기약 없이 쉬어야 하는 자식들의 고민을 실업자생활을 몇 개월 해본 저는 이해할 수 있기에 그들에 일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저희 세대의 무능력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14시 48분 형제봉에서 7.4키로를 걸어 해발 1,058미터의 천황봉에 올라섰습니다.
능선을 오르내려 다다른 안부에서 저희들에 배를 건네준 분이 송백산악회의 회원들이 12시경부터 여기를 통과하기 시작했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지구력에 비해 주력이 달리는 제게는 빨리 걷는 분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제가 백두대간 길을 손쉽게 나서지 못하는 것은 주력이 달려 다른 분들에 뒤쳐지기에 민폐를 끼칠까봐 걱정되어서입니다. 지리산에서는 15시간 종주코스를 16시간40분에 뛰었고, 설악에서는 12시간 코스를 14시간 반이나 걸려 완주했기에 저를 기다리는 다른 분들에 미안해 산악회에 먼저 출발하라고 요청하고 시내로 나가 심야버스를 이용해 귀경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고 바위 길을 20분간 힘들게 올라 다다른 천황봉에서 둘러본 산봉우리들과 그들을 이어주는 능선이 만들어낸 실루엣은 하나의 파노라마였습니다. 형제봉까지 남동쪽으로 뻗은 막 걸어온 능선이 분명하게 보였고, 북쪽으로 연결되는 문장대까지의 암릉 길은 몇 번을 밟은 터라 반가웠습니다. 남쪽으로는 형제봉까지 육봉으로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문장대까지 암봉으로 이어져 천황봉을 경계로 극명하게 대비되어 신비로웠습니다. 저는 주로 혼자 산행을 하기에 정상에 올랐음을 증명하고자 표지석에 배낭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 왔는데 이번에는 송파 분 덕분에 배낭대신 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14시 55분 천황봉을 출발했습니다.
오후 2시가 넘었으니 의당 상환암으로 하산해야 하는 데 그리해서는 목적한 산행기를 제대로 쓸 수 없기에 시간이 늦으면 저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출발하라는 전언을 송파 분에 부탁하고 저는 문수봉으로 내달렸습니다.
15시 38분 임경업 장군이 7년간 수도 끝에 세웠다는 입석대를 지났습니다.
천황봉에서 문장대까지 거리가 3.5 키로인데 그 중 1.6 키로를 걸어 입석대에 다다랐습니다. 7년간 수도를 할 만큼의 여유가 부러웠고 그리해서 세운 바위가 뭇 사람들이 사진으로 남기기를 원할 만큼 주변 정경과 잘 어울리는 곳에 세운 장군의 혜안에 감탄하며, 저도 입석대의 전신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신선대로 이어지는 암릉 들을 우회하는 길이 산죽의 숲을 가르고 나있어 걷기에 상쾌했습니다.
16시 정각 신선대휴게소에 닿아 짐을 내려놓고 숨을 돌렸습니다.
콜라로 타는 목을 달래고 천황봉을 카메라에 담은 후 서둘러 문수봉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마지막 가파른 오름 길이 제 지구력을 테스트하는 듯싶었습니다. 문장대를 들러 경업대로 하산하는 몇 가족이 제게 길을 물어와 안내를 해드렸습니다. 길을 물을 수 있는 분들을 만날 수 있다면 나 홀로 산행도 그리 겁낼 일이 아니지만 지난 여름 한북정맥을 종주하던 중에는 산에서 거의 다른 분들을 만나지 못해 길을 잃을 까 더욱 노심초사했습니다.
16시 37분 문장대 바로 밑의 정상휴게소 앞에서 마지막 쉼을 가졌습니다.
평평한 바위에 등을 눕히고 파란 하늘을 쳐다보니 가을 하늘이 높기는 높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잠시 망중한에 빠져들자 빠르게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움직임도 한가롭게 보였습니다. 두 주 후 다시 찾을 밤티재 가는 백두대간 길을 일별한 후 사과와 남은 떡을 들어 하산 길에 대비했습니다. 10분 후 휴게소를 출발 , 5.8키로 떨어진 법주사로 온 힘을 다해 뛰어 내려갔습니다. 시간을 잡아먹는 카메라를 배낭에 집어넣고 오로지 하산에만 열중했습니다. 17시 28분 산길이 끝나고 넓은 길을 조금 걸어 내려와 이뭣고다리를 지났습니다. 하도 다리 이름이 신기해 새겨 놓은 한자를 들여다보았지만 실력부족으로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18시 속리산을 대표하는 대찰 법주사를 지났습니다.
시속 4.7키로의 속력으로 내달렸으니 제게는 앞으로도 내기 힘든 새로운 기록으로 달린 셈입니다. 휴대폰이 터져 산악회의 회장 분에 전화를 걸었더니 기다리고 있다며 빨리 오라는 답을 듣고 서둘러 내려가던 중 송백산악회의 회원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안심했습니다.
18시 25분 버스터미널에 도착, 8시간 동안 약 18키로(산악회기준 23키로)를 걸어 속리산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순두부와 묵으로 시장기를 달래고 나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몇 번은 전 코스를 끝까지 강행하다 시간 안에 대지 못해 버스를 타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먼저 3대를 보내고 마지막 1대가 끝가지 기다려 고마웠습니다.
귀로의 버스에서 옆자리의 어느 분으로부터 이 산악회가 어떻게 해서 한 대도 힘들다는 비 인기코스에 4대를 운행할 수 있는가를 배웠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고객만족이었습니다. 산행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안전산행을 위해 여러모로 회원들을 배려하고 끝까지 기다려 한사람도 떼어놓고 떠나는 일이 없다는 그분의 자랑을 듣고 나서 충성고객의 구전효과를 실감해 기업경영에 절대 필요한 한 수를 배워간다는 기쁨을 간직하고 산행기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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