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산
*산행일자:2003년 10월 8일
*소재지 :전남장성/전북정읍
*산높이 :백암산741m, 내장산763미터
*산행코스:공원매표소-서래봉-내장산-소죽엄재-백암산-백양사
*산행시간:3시45분-13시(9시간15분)
*동행 :반더룽산악회 회원
어제는 그토록 별러왔던 백암산을 올랐습니다.
지난 9월 가리봉에 이어 두 번째로 반더룽산악회를 따라 무박으로 내장산과 연계해 올랐습니다. 전남장성의 백암산은 전북정읍의 내장산과 붙어 있는데도 두 산 다 산림청에서 명산 100산으로 선정한 이유는 이 산들이 모두 단풍이 화사하고 산세가 수려해서이겠지만 내장산은 전라북도에서, 백암산은 전라남도에서 최고의 단풍명산으로 자리매김하는 등 소재한 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이 두 산을 한번에 이어서 산행하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고 짬을 내어 따로 따로 이 두 산을 다시 한번 오르자고 하는 것은 그리해야 이 산들이 숨겨놓은 계곡을 오르며 비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새벽 3시45분 짐을 챙기고 몸을 푼 후 내장산공원매표소를 출발하였습니다.
전날 밤 11시30분 양재역을 떠나 새벽3시30분경에 내장저수지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눈 좀 붙였어야 했는데 아직도 무박산행이 익숙하지 않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칠흑 같이 캄캄한 밤이지만 국립공원의 산답게 길이 잘 나있어 후래쉬만으로 별 어려움 없이 산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들머리부터 시작되는 경사가 만만치 않아 서래봉-불출봉을 잇는 능선에 도달하기까지 40여분이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매주 산을 찾는 것은 설렘과 두려움을 이어 가기 위해서입니다. 나 홀로 산행을 즐기는 것도 , 그동안 가보지 못한 산을 골라 오르고자 하는 것도 설렘과 두려움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늦가을부터는 나 홀로 산행을 자제하고 안내산악회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산을 찾습니다. 설렘이 좀 덜하더라도 두려움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5시15분 불출봉을 지났습니다.
아직도 캄캄한 밤이라 다른 분이 말씀해주셔서 알았습니다. 불출봉을 지나 망해봉에 이르기까지는 야간산행에 익숙지 못한 제게는 힘든 산행이었습니다. 특히 철제 계단을 오르내릴 때에 후래쉬가 불편하게 느껴졌고 앞으로는 양손이 자유롭도록 헤드랜턴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불출봉을 출발한지 1시간 만에 망해봉에 도착했습니다. 여명의 시간이어서 먼발치의 연봉들이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그 유명하다는 내장산의 단풍들은 어둠 속에 함몰되어 진면목을 보지 못한 채 능선에 오른 셈입니다. 연지봉 도착 직전 해맞이를 했는데, 흐린 날씨 때문인지 일출이라 부르기에는 분명치 못한 어슴푸레한 해돋이였습니다.
6시 40분 연지봉에 도착, 돋은 해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제 완연한 아침이어서 후래쉬를 끄고 1차 집결지인 까치봉까지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연지봉 까지 능선등반은 어둠에 신경을 써서인지 힘든 줄 모르고 왔습니다만, 까치봉은 달랐습니다. 높이가 715미터나 되는 내장산 제2의 봉으로 마지막 몇 분간은 숨가쁜 오름이었습니다. 까치봉에 다다르니 망해봉에서 와는 비교가 안되게 산의 자태가 분명하게 들어왔습니다. 이 시간이면 밤 시간을 지배해온 어둠을 내 쫓고 빛을 승하게 하는 해돋이와 수많은 산자락들을 숨겨주는 운무를 조망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새벽같이 산에 오르나 봅니다. 까치봉을 지나 소죽엄재로 갈리는 길에서 다른 일행분들은 예정대로 백암산으로 향하였고, 저는 대장께 양해를 구하고 내장산 최고봉인 신선봉으로 내달음 쳤습니다. 정상을 비껴가고 그 산에 올랐다는 기록을 감히 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7시45분 출발 4시간 만에 내장산 정상인 763미터의 신선봉에 올랐습니다.
헬기가 내려앉는 넓은 정상에서 다른 분의 도움으로 증명사진을 찍고 김밥으로 아침을 때웠습니다. 신선봉에 오르기까지 능선의 단풍은 여느 산보다 뛰어남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만, 정상아래 먼발치의 계곡에는 단풍이 절정을 이룬 듯싶어 사진 몇 장을 찍었습니다. 내장산-백암산을 잇는 종주산행이어서 신선봉에서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다시 백암산으로 가는 분기점으로 돌아서기가 아쉬웠습니다.
8시 신선봉을 출발했습니다.
까치봉 못미처 백암산으로 향하는 분기점을 8시 25분에 지났습니다. 대장은 왕복1시간 30분 걸린다고 했는데, 아침식사 시간을 빼면 55분만에 돌아 온 셈입니다. 13시까지 주차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먼저 떠나라고 대장께 말해버려 자칫 늦으면 차를 놓칠 수도 있기에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8시 40 분 경 어느 여대원을 치료하고 있는 산악회의 가이드 분을 만나고 나서부터 조금은 안심이 됐습니다.
9시10분 소죽엄재에서 뒤쳐진 대원을 기다리는 대장을 만나 휴식을 취했습니다.
신선봉에서 이곳까지 쉬지 않고 달렸지만 백양사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차를 놓칠까 긴장해서였는지 그리 힘든 줄 몰랐습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 보통 때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속도를 내지 못하는 편인데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고 판단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지곤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저의 두 다리가 영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머리가 명령을 해도 결정적인 시기에 다리 둘이 공모해 태업을 한다면 상당히 어려움에 처하게 될 터인데 평상시에는 꾀를 뿌리던 두 다리가 시간이 없어 다급하다 싶으면 숨겼던 실력을 최대로 발휘하니 말입니다. 소죽엄재에서 순창새재까지 경사는 비교적 완만했음에도 내장산에 연이은 산행이어서인지 숨이 가빴습니다. 여기서부터 얼마간은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능선등반이라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코스였습니다. 9시 50분 사과를 까먹으면서 15분 여 모처럼 퍼지게 쉬었습니다. 이 속도라면 12시안에 백양사주차장에 다다를 수 있다는 계산에서입니다. 등을 눕혀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을 올려 보노라니 회사 일은 까맣게 잊은 채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천상에 오른 기분이었습니다.
10시45분 산행시작 7시간 만에 백암산 정상인 해발 741미터의 상왕봉에 올라섰습니다.
1990년대 2년 반 동안 쌍용제지 회사의 충호남 영업부을 맡으며 힘들 때 종종 찾았던 곳이 백암산의 백양사였습니다. 백암산이 오지랖을 펴 감싸주는 백양사는 언제 와도 찾는 이를 편하게 해주기에 영업실적이 부진하여 심신이 피로할 때 이 곳을 찾아 마음의 평정을 얻기도 했습니다.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잠시 잊고 백암산의 정기를 한껏 마시고 나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고 머리가 맑아짐을 종종 느끼곤 했습니다. 이 모두가 제가 지금 서 있는 상왕봉에서 비롯된 백암산의 정기 덕분이었다고 생각되어 속으로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자 내장산의 신선봉이 한없이 멀리 보였습니다.
저 먼 길을 용케도 잘도 걸어왔구나 싶어 제 스스로가 대견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로 못 간다고 펄쩍 뛸 정도로 멀고도 힘든 길을 말없이 걷고 또 걸어 이렇게 정상에 올라서서 산세를 조망하는 것도 산행이 주는 기쁨이다 하겠습니다.
1969년 한라산을 시작으로 오늘로서 통산 126개 산을 올랐습니다.
지난 8월 두타산을 오름으로써 100산을 올랐는데 그간의 사진이나 산행기 등의 기록을 거의 남기지 못해 허전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사진도 찍고 글도 남기자고 생각을 고쳐먹고 정상에서 사진을 빼놓지 않고 찍어 왔습니다.
11시30분 백학봉에 다다랐습니다.
백학봉을 오르는 도중 반더룽산악회의 두 분을 만났습니다. 상왕봉부터는 하산 길이어서 속도가 붙었습니다. 그래서 여유를 느꼈고, 사이사이 저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은 사진으로 옮겨놓았습니다. 내려다보이는 백양사 계곡도 보기 좋았고 기암절벽도 일품이었습니다. 백양사까지 남은 거리는 1.6KM, 잘하면 12시에 도착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백양사에서 올라오는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시간 차질이 불가피했습니다.
12시45분 백양사에 도착했습니다.
학바위에서 백암산 특유의 단풍과 기암절벽을 조감하고 철 계단에 이어지는 수많은 돌계단을 어렵사리 내려와 백양사에 도착했습니다. 90년대에 백양사를 몇 번 들른 터라 이번에는 그냥 지나쳐 주차장으로 바로 내려갔습니다.
13시 약속대로 주차장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9시간을 넘는 종주산행 끝의 맥주 한 캔은 타는 목마름을 진정시키는 생명수였습니다. 3년 전부터 맥주를 제외한 모든 술을 끊은 후라 진종일 땀을 흘리고 마시는 맥주 한잔은 문자 그대로 신선주입니다. 산길을 거닐며 구름의 신 제우스와 노닐다가 하산해 마시는 신선주를 제우스신 몰래 마시는 기분이 짜릿했습니다. 이 지방 영업부장으로 일했던 90년대에도 가끔은 영업소장과 함께와 술 한 잔 걸치곤 했지만 영업목표달성에 시달려 술맛이 제대로 안 낫는데 이렇게 산행을 마치고 나서 드는 술맛은 해냈다는 뿌듯함이 더해져 짜릿한 맛 그대로입니다.
내장산-백암산의 7개 연봉을 모두 무사히 마친 제 자신이 대견스러웠습니다.
7개 연봉 모두가 처음 오르는 봉우리이기에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올랐습니다. 미지의 산에 오를 때처럼 설렘과 두려움 속에 회사 일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다이나믹한 시장환경에서 하루하루가 새롭기에 설렘으로 아침을 맞습니다만, 시장상황이 불투명하여 사업이 위협을 받을 때에는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안내산악회는 제게 미지의 산을 오를 때에 설렘을 줄이지 않고 두려움을 덜어 주는 고마운 일을 합니다. 두려움을 덜어주는 안내산악회처럼 회사경영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기관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면서 백암산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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